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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를 만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신효균 승사(2) / 부산 기장교회

1958년 1월 하나님께서 안성전도관에 오신 날은 눈이 하얗게 쏟아졌습니다. 낮에는 이만제단에서 나온 특전대가 밴드대를 앞세우고 행진하며 집회를 알렸고, 저녁에는 안성전도관에서 영사기로 영화를 보여 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들썩들썩했습니다. 영화 속에는 이만제단에서 사람들이 가득 모여 예배드리는 모습과 한창 건설 중인 소사신앙촌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처음 보는 영사기를 신기해했고 신앙촌이라는 […]

‘심령 속 깊이 스며드는 향기’가 이것이구나!

신효균 승사(1) / 부산 기장교회

저는 1936년 충청남도 논산군 채운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천석꾼이라 소문이 날 만큼 큰 부자였습니다. 부모님은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셔서 큰 가마솥에 밥을 해 두고 누구든지 들어와 먹게 하셨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주기도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종교를 믿지는 않으셨지만 교양에 좋을 거라며 교회에 다녀 보라 하셔서 저는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스무 살 […]

유명 인사의 체험담

신효균 승사의 체험기 중에는 하나님의 설교집(1955년 9월 발행)에서 유명 인사의 체험담을 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설교집에 소개된 두 편의 체험담을 요약하여 싣는다. 저는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가 남산에서 열린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가보니 썩는 냄새가 어찌도 그리 심한지,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서 그런가 했으나 그것은 결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보통 냄새는 […]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가지요’ 하셨던 말씀 떠올라

이만화 권사(2) / 홍제교회

그 후 1960년 12월에 동아일보에서 하나님 은혜가 찍힌 사진이 조작됐다는 터무니없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전부터 비방 기사를 계속 내던 동아일보가 급기야 이슬성신 사진이 조작됐다고 허위 기사까지 쓰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인들이 항의하는 뜻으로 동아일보사 앞에 모여 구호를 외쳤는데, 최루탄을 쏘아서 눈을 뜰 수 없는 와중에 차에 실려 동대문 경찰서로 가게 […]

나도 은혜를 받아서 기쁘고 즐거웠구나!

이만화 권사(1) / 홍제교회

저는 1941년 경상북도 경주군 감포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었던 저희 집은 가을이면 추수한 곡식이 창고 가득 쌓일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 감포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도 같이 나가셨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이셨던 부모님은 행사 때면 교인들을 집으로 불러 대접하고 교회에 강대상을 기증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박태선 […]

주 안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유효순 승사(2) / 기장신앙촌

건설대에서 일을 배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원하는 사람만 작업하러 나오라고 했는데, 저는 몹시 피곤해서 그만 들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는 동안 피곤이 점점 사라지더니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뿐하고 기운이 솟아올라 다시 현장에 나가 신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

소사신앙촌

신앙체험기 속의 천부교 역사

1957년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現 부천시 소사구 범박동) 43만여 평 부지에 건설된 첫 번째 신앙촌. 신앙촌(信仰村)은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시며 최초로 명명(命名)하신 것으로, 이후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종 문헌에서 천부교와 관련된 고유명사로 정의하고 있다. 처절했던 6·25 전쟁이 끝난 후 온 나라가 경제적으로 빈곤에 허덕이고 정신적으로는 마음의 기둥을 잃어 방황하던 1950년대 후반 하나님께서 신앙촌을 건설하신 것이다. 오만제단을 비롯한 종교 […]

서울 중앙 전도관 (이만제단) 나간 후로 마음속 불안이 기쁨으로

유효순 승사(1) / 기장신앙촌

1938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저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세 살 터울 남동생과 같이 살았습니다.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셨고 몇 년 후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막연히 새엄마가 좋으신 분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새엄마는 아버지 몰래 저희 남매를 구박하며 하루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 […]

성신의 단비

1956년 11월, 저는 영산포전도관 개관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생처음 예배에 참석한 저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울지?’ 하며 궁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시 후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찬송을 인도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의 우렁찬 찬송 소리로 집회장이 […]

‘직접 보고 겪은 은혜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곽병기 / 기장신앙촌

그해 가을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만제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안개같이 뽀얀 것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욱하게 내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쏟아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싹싹 피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이슬성신이 안개처럼 뽀얗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고 못 받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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