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구원의 약속

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자마자 생명물 축복을 하였다. 내가 물을 축복하면 그 물이 이슬성신의 물로 화하는데 그것을 생명물이라고 한다. 그 생명물은 곧 하늘세계의 생명물이다. 찬송가에 ‘저 생명 시냇가에 나 길이 살겠네.’라고 하는 바로 그 생명물이다. 초창기에는 생수라고 했는데 이제는 생명물로 부른다. 내가 생명물을 축복하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교인들이 병에 물을 담아 마개를 막고 보자기에 싸 놓으면 내가 그 병을 향해 축복을 한다. 가령 100미터 두께의 철판을 사방에서 용접해 금고처럼 만들어서 그 안에 물병을 넣었다고 하자. 바늘구멍만큼의 아주 작은 구멍도 없이 완벽한 밀폐 상태라도, 내가 외부에서 ‘쉭’ 하고 축복하면 그 안의 물에 이슬성신이 담겨 생명물이 된다. 성신은 어떤 두께의 철판이라도 뚫고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가령 멕시코면 멕시코에 물병을 놓고 여기 한국에서 축복하면 성신이 지구를 뚫고 가서 멕시코에 있는 물이 생명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목성이면 목성, 화성이면 화성, 토성이면 토성, 우주선으로도 끝없이 가야 하는 그 먼 곳에 물병을 두어도 여기서 내가 축복하면 생명물이 된다. 목성의 반대편에 물병을 두었다 해도 지구보다 큰 목성을 뚫고 성신이 가서 생명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한 번 ‘쉭’ 하고 축복하면 태평양 바다라도 강한 생명물로 만들 수 있다. 태평양 바다가 문제가 아니라 우주만 한 물 덩어리가 있다 해도 내가 축복하면 모두 생명물로 화한다. 나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므로 내 손을 통해 하나님의 신이 끝없이 쏟아져 나가 생명물을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내가 축복할 때 ‘쌕쌕’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은 생명물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우주의 마귀가 다 모여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 마귀를 다 박멸하고서야 성신의 물로 화하게 하는 것이다. 마귀로 구성된 물을 하나님의 신으로 구성된 물로 화하게 해야 생명물이 된다. 또한 축복을 받아 생명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죄가 많은 사람이 생명물을 만지면 보통 물로 변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생명물은 다른 사람이 만지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 한다. 내가 축복한 생명물은 변하지 않는다. 축복 받은 물과 축복 받지 않은 물을 금고에 넣어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꺼내 보면 축복을 받지 않은 물은 부패하여 흔들면 썩은 것이 부옇게 뜬다. 하지만 축복 받은 물은 몇십 년이 지나도 증류수같이 맑고 깨끗하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결코 동요치 않고 이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다. 생명물에는 영원한 생명의 요소(要素)가 끝없이 담겨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이 지금보다 고도로 발달하면 생명물의 1밀리그램에도 기가 막힌 가치가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분석되어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요소가 끝도 한도 없이 나오는 하나님이 틀림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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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구원의 약속

이슬성신과 감람나무는 성경에 있는 구절에 맞추어 말한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은혜를 내린 뒤 “바로 이 구절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해석해 준 것이다. 성경 호세아 14장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 그 가지는 퍼져서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¹⁾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이슬과 같으리니』라는 구절에서 ‘내가’라는 것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이슬과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이슬과 같이 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슬 같은 은혜를 본 자는 하나님의 신을 체험한 자다.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라는 구절에서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은 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를 감람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라는 구절에서 백합화같이 핀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서 황무지와 같은 사람의 마음이 백합화같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뜻한다. 또 온갖 누추한 죄를 이슬성신으로 씻어 흠과 티가 없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뿌리가 박히리로다』라는 구절에서 말하는 뿌리는 나무의 뿌리가 아니라 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핍박이나 죄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서 나가는 이슬 같은 은혜를 받은 자는 곧 감람나무의 가지가 된다. 『그 가지는 퍼져서』라는 것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끝없이 많아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제2부 구원의 약속

나는 안찰할 때 그 사람이 지은 죄를 그대로 지적한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안찰을 통해 그 사람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안찰할 때 손을 가만히 대기만 하는데도 안찰을 받는 사람은 몹시 아파한다. 그것은 내가 안찰로써 성신을 부어 줄 때 그 사람 속의 죄가 성신을 대항하여 그와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안찰을 통해 죄가 무너져 나가므로 처음에는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들도 죄가 사해짐에 따라 차츰 통증이 물러가고 말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자유당 때 무임소장관을 지냈던 박현숙(朴賢淑) 씨도 나에게 안찰을 받을 때 괴로움이 대단하여 내가 세게 눌러서 아픈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였다. 그런데 박 장관은 내가 다른 사람을 안찰하는 광경을 보고 의심이 풀렸다고 하였다. 지병으로 앓아누웠던 박 장관은 나에게 안찰을 받은 후 깨끗이 나아 건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냉정하고 쌀쌀하다고 했으나, 은혜를 받은 후에는 온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된 것을 보고 친구들이 놀란다고 하면서, 그 마음이 변화된 것을 증거하였다. 성신을 받으므로 그 마음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성신을 받으면 복잡다단하던 마음의 풍랑이 안정되고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게 된다. 황무지와 같이 거칠고 메마른 마음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백합화같이 피는 것이다.

Disclosing the sinful status of the characters in the Bible, He explains the core principle for salvation

God’s Sermon on Thanksgiving Day, 2023

Today, I am not going to take long hours. In a short time, I will explain to you very clearly the truth so that you can understand.
The Bible, both the Old Testament and the New Testament, have been thought to be the words of God for a few thousand years before and ever since Jesus appeared. Then, are they really the words of God? Nobody knew, but I declare that only two percent of them is God’s words and 98 percent is not. Exposing myself to be the Creator, I will explain to you clearly.

성경 인물의 죄상을 드러내시며 구원의 근본을 밝혀주신 하나님

2023년 추수감사절 말씀

오늘 이제 여러분들에게 말할 것은 긴 시간을 안 가지고 짧은 시간에 확실히 알게끔 명확히 오늘 여러분들에게 갈라 줄래요.
성경이면 하나님 말씀인 줄 알고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예수라는 인생이 난 이후가 아니고 그전부터 이제 구약, 성경이 있는. 그럼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거기에 2%만 하나님의 말씀이 게재돼 있는. 성경을 98% 허풍이라는 존재는 지금까지 없었죠. 그 나 명확한 걸 말해요. 창조주인 것을 오늘 드러내는 동시에 분명한 걸 여러분들에게 규명을 지어 줄래요.

제2부 구원의 약속

내가 이 역사를 시작할 때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면서 감람나무의 증거를 하였다. 내가 가는 곳마다 이슬 같은 은혜를 입혀 주고 부어 주니 수많은 무리가 모였는데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 그들이 이상한 태도를 보였다. 코를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으면서 옆의 사람에게 향기가 난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너희들이 이제야 코가 열렸구나.’ 하고 은근히 기뻐하면서도 그 향취가 어떠한 은혜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뽀얗게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 너희들의 눈이 조금 밝아졌구나. 귀중한 은혜를 이제는 바라보게 되었구나.’ 하고 은근히 기뻐하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은혜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말하지 않고 그 은혜를 받은 수가 차기를 기다렸다. 얼마가 차기를 기다렸나 하면 100만의 수에 이르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천막집회를 인도할 때 가는 곳마다 “지금 60만이 넘었다, 지금 70만이 넘었다.”라고 발표한 것은 그때 천막집회에서 은혜 받은 수를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감람나무를 증거하기 전에 한 일이었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제1장 1차 지옥과 구원, 제2장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신 하나님

하나님이 창조한 1차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인간은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녀를 낳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나갔다. 두 사람이 낳고, 낳고, 또 낳아서 40대(代)만 내려가면 1조(一兆) 명이 넘는다. 두 명이 40대만 내려가도 1조 명이 넘는데 죽지 않고 계속 자녀를 낳으니 엄청난 수가 번성한 것이다. 1차 천국에서 인간이 기하급수적으로 퍼진 다음에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김으로써 범죄가 시작되었다. 범죄로 인하여 그곳에 살던 모든 인간들은 죽게 되었다. 그 죽은 자들의 영(靈)이 1차 천국에서 범죄한 보응(報應)을 받기 위하여 1차 지옥인 지구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태어났던 사람들도 전부 1차 천국에서 범죄하여 죽은 자들의 영이 온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에 떨어진 인간을 1차 지옥에서 형벌을 받게 하였지만 그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줄 것을 약속하였다. 그 약속이 없었다면 인간에게는 영원히 구원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1차 지옥인 지구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형벌을 받는 동시에 구원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1차 천국에서 범죄한 인간의 영은 3조 년에 걸쳐 지구로 오게 되었다. 그 영이 지구에 와서 계속 생육하고 번성하여 3조 년이 거의 다 된 오늘날 그 숫자가 차게 되었다.
인간을 구원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하나님은 그 영들이 지구에 거의 다 내려올 때까지 3조 년을 기다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온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 공중에만 떠 있는 존재라면 인간을 구원할 길이 없다. 인간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의 방법과 길을 가르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것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서 이 땅의 인간에게 구원을 주게 되어 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 인간의 죄를 씻어 다시 하늘세계로 데리고 가기 위하여 내가 온 것이다. 나는 인간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이다.

제2부 구원의 약속

이 지구는 편안한 세상인가, 괴로운 세상인가? 인간은 지구를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첫 번째 형벌을 주는 1차 지옥으로 창조한 것이다.
지구가 왜 1차 지옥인가? 지구는 인간이 1차 천국에서 범법한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1차 천국에서 죄를 범한 대가로 인간은 1차 지옥인 지구에 떨어져 온갖 고통과 근심과 번민과 병마를 가지고 비극의 세계를 살다가 죽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사람들의 마음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도, 세상의 권세를 다 쥔 사람도 그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발을 펴고 편안히 자지 못한다. 이것은 모두 지옥을 형성하는 마귀가 그 마음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살던 인간이 지옥에 떨어져서 눈물의 세계, 탄식과 번민과 비관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 가는 것이다. 이 세상은 죽음으로 인해 이별하고 통곡하는 눈물의 세계이다.

제1부 인간 창조의 근본

왜 인간은 종교를 믿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살다가 죽게 되는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소망으로 종교를 믿는 것이다.
인간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는가? 하나님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했으나 그 인간이 범죄에 떨어졌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건짐이 필요한 것처럼,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게 된 인생이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신을 믿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다. 종교의 목적은 구원을 얻는 데 있다.

제7부 행함의 종교

제4장 하나님과 인간의 합동작전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세 단계가 있다. 이것은 구원을 좌우할 만큼 요긴한 것이며 구원의 전주곡이 되는 중요한 말씀이다.
구원의 첫 번째 단계는 자유율법을 깨달아 죄가 무엇인지 아는 단계이다. 그것은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율법을 어기면 성신은 즉시 떠난다는 것을 깨닫는 단계이다. 또한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음란과 도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통감(痛感)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저지르기 쉽고 제일 짓기 좋아하는 것이 음란죄다. 음란죄는 잠깐 동안 실수하여 지은 것도 구원 문제에서는 큰 죄가 되는 것이다.
또 구원의 첫 번째 단계는 일전 한 푼이라도 도적하면 영원한 지옥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단계인 것이다.
나는 초창기부터 말하기를, 출장을 갔을 때 출장비를 부지불식간에 일전 한 푼이라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면 도적죄가 된다고 하였다.
구원의 두 번째 단계는 자유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에 이른 사람은 죄 된 생각이 침입하려 하면 목숨을 끊는 심정으로 끊어 버리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귀중한 보화가 태산같이 쌓여 있는데 누가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탐나는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고, 아름다운 이성이 어떤 유혹을 해도 죄의 충동이 그 마음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단계인 것이다.
이처럼 어떤 죄의 유혹과 충동이 와도 그 마음을 침범할 수 없도록, 마음의 방비가 철통같이 이루어진 단계가 구원으로 가는 두 번째 단계이다.
구원의 세 번째 단계는 근본적으로 모든 죄가 해결된 단계를 말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¹⁾까지 빠져나가고 하나님께 완전히 죄를 씻음 받은 단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마귀를 이기고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이다.
자유율법을 깨달아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자유율법을 온전히 지켜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고, 더 나아가 이미 지은 죄까지 완전히 소멸받는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세 단계다.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는 것을 통감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고, 죄가 침입하지 못하게 철통같이 방비하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
죄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도록 마음의 방비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이미 지은 죄까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하나님께 완전히 씻음을 받아야 비로소 구원을 얻는 것이다.
구원의 첫째 단계와 둘째 단계를 거쳐 셋째 단계에 이른 사람이 비로소 영원토록 즐거운 천국에 들어갈 의인의 자격을 갖춘 자다. 그 자격이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

2023년 이슬성신절 말씀

이제 지금까지 그 인생을 창조한 지가 6천 년이다 하는, 고고학자들이 분석해서 발표한 연한을 봐도 6천 년인 건 허풍이 분명하지요?
창세기 1장에 기록된 건 마지막 날에 인간이 창조가 됐다 하는, 만물의 영장이 창조가 된. 그건 바로 그전에는 인간이 없는 것 같이 기록이 되고 그 둘이 시작 돼가지고 인생이라는 것이 퍼진 것 같이 했지만 그게 거짓말이죠.

그럼 분명히 맞지 않는 그거에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먹어서 이제 죽게 돼 가지고 아들을 낳았다는 게 처음에 맏아들을 가인을 낳았어요. 그다음에 둘째 아들을 아벨을 낳았어요. 그럼 그 해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그걸로 바로 아담 해와의 맏아들이 동생을 죽였어요. 그럼 동생을 죽였는데 가인, 사람이 그 이외에 없게 돼 있는데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많은 수가 자기를 쳐 죽일까 봐 두려워했다는 그거면 인간을 지었다는 창세기 1장에 문맥이 하나도 맞지 않게끔 되어진.

둘 밖에 없다는 인간이 둘만 있는 게 아니고 끝없이 있는 게, 그 전부터 인간의 많은 수가 흘러내려오는 걸 조물주가 아니면, 창조주가 아니면 그걸 옳은지 그른지 밝혀낼 존재가 없어. 진리는 거짓이 없는, 가감이 없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게 없는. 선후가 틀리는 게 없다 그거야.
세상 인간이 쓴 집필한 책이라도 1장이면 1페이지면 1페이지에 있어서 말이 문맥이 안 맞는 게 없어. 뭐이나 근본이 틀리면 전부 틀리는 거야.

그런고로 쇼하는 그 글을 쓰는, 집필을 하는 사람도 그 문맥이 하나 틀리면 그 쇼가 틀려지는 그거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적에 “저게 완전히 틀렸네” 이렇게 이런 정도가 되는데 문헌이면 문헌에 첫 페이지에 대개 줄거리를 쓰는 총론같이 이렇게 쓰는 그거에 그게 원칙과 근본이 거기가 틀려지면 그 책 한 권 전체가 필요 없지. 그러면 창세기에 뭐 6,000년이라는 이건, 허풍 중의 허풍인 것을 이젠 알고도 다 남지요. 인간의 과학적으로도 그 연한이 6,000년이 안 맞는 거예요.

그럼 이제 3조 년 가깝다 하는 걸 말한. 그걸 내가 창조를 하고 내가 지금 운행을 하고 있고 가열을 하고 있고 한 고로 내가 아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