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가지를 기뻐하셨던 하나님

2019 전교인 전도의 해
발행일 발행호수 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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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전도에 열중하던 시기, 축복일에 하나님께서
“전도를 많이 하는구만, 강하게 축복해 줄게” 하셔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깨달아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모습

서울 청암동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모습(1957년경)

“실천과 노력과 인내로 열매를 맺게 된다.”
조남일관장

조남일 관장

20대 시절, 저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이 길이 참된 구원의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나와 같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도사가 되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길을 알려 주고 싶어 1964년 전도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진행되는 전도사 교육은 성경상의 ‘감람나무’와 ‘동방의 일인’에 관한 수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성경을 토대로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계에 전하노라.” 하는 찬송과 같이 전도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하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개월의 교육이 끝나고 발령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각오와 결심만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 실천하고 노력하고 인내함으로써 열매를 맺게 된다.” 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후 1983년 마산 천부교회에서 시무할 때는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야무져야 해. 숱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돋아나는 싹을 나는 원해. 전도를 하되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열 번 스무 번이 아니야. 70번 이상을 계속 권고하고 전하고 끈기를 가지고 해야 돼. 사력을 다해 전도하라.” 그 말씀에 지금도 힘을 얻게 됩니다.

조남일 여성회 관장

“전도를 많이 하는구만. 강하게 축복해 주겠다.”
김상문 관장

김상문 남성회 관장

저는 1980년대 연산동제단에서 부관장으로 시무하며 학생들 전도에 열중했습니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교회에 설치된 탁구대에서 탁구를 가르쳐 주면서 교회에 자주 찾아오도록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학생들이 교회에 꾸준히 나오며 축복일예배에 참석하는 숫자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중 축복일에 가서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안찰하시기 전에 “전도를 많이 하는구만. 내가 다 알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축복해 줄게.” 하시며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기장신앙촌에서 학생들 신앙 교육을 하며 체육대회를 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직접 결승선에 나오셔서 초시계를 보시고 “1등!” “2등!” 하시며 등수를 매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운동하는 동안 아주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운동장 주변에는 꽃도 없었고 좋은 향기가 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는데 향기가 계속해서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진동하는 향취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달렸던 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힘찬 음성으로 등수를 부르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김상문 남성회 관장

뭇 심령에게 은혜 부어 주시려 희생하신 하나님
정국모 퇴임관장

정국모 퇴임관장

1969년 저는 서울 제1중앙인 이만제단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1970년에 서울 7중앙과 12중앙이 이만제단에서 분리하여 새롭게 발족되면서 저는 전도에 더욱 힘을 쏟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구역별로 조장을 임명하여 그 조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전도해 나갔습니다. 또한 1중앙 산하 제단의 전도사님들과 협력하여 전도했으며, 특히 제단에 나왔다가 쉬고 있는 교인들 집을 지속적으로 방문하여 다시금 제단에 나올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당시 기장신앙촌에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일요일마다 소사와 덕소신앙촌을 비롯해 서울 시내의 열한 개 전도관을 순회하시며 주일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매 주일 새벽에 기장신앙촌을 출발하여 천리 길을 달려서 각 제단을 순회하시는 초인적인 강행군이었습니다. 이만제단에는 오전 11시 50분경에 오셨는데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며 제단 안팎을 깨끗이 단장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하나님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설교하신 후 단상에서 내려오시는데, 몸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서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따스한 음성으로 “괜찮아.” 하시며 다음 제단인 4중앙을 향해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자 그토록 희생하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국모 퇴임 관장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가?”
노광자 퇴임관장

노광자 퇴임관장

소사신앙촌에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를 강조하시며 열매를 얼마나 맺었는지 알아보시는데, 저는 전도한 사람이 몇 명밖에 없어 이제라도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2년 고향인 충청북도로 내려가 도원제단에서 전도하기 시작했고, 그해 10월 충북 품곡제단의 전도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교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청주전도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면 집회를 알리기 위해 전도사들이 북을 치며 노방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시내 곳곳마다 다니며 전도를 하던 어느 날 얼마나 걸었던지 발이 부르터서 말도 못하게 아팠습니다. 마침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된 저는 머리를 숙이면서 “발이 부르텄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옆에 있던 관장님이 “노방 전도를 하도 다녀서 발이 부르텄답니다.” 하고 말씀드리니, 제 발 위에 ‘쉭쉭쉭쉭’ 하고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솜방망이로 발을 폭신폭신하게 두드려 주는 것 같았으며, 축복을 받고 나니 거짓말처럼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안찰받으러 올 때만 해도 발이 너무 아파서 절뚝거리며 걸었는데 깨끗이 낫게 되었고 다시 힘차게 전도하러 나갈 수 있었습니다.

노광자 퇴임관장

‘하나님께서 계시니 좌절하지 않으리라.’
김경숙 퇴임관장

김경숙 퇴임관장

육군 소령이었던 저는 교역자의 길을 고민하다가 1965년 6월 드디어 단안을 내렸습니다. 교역자 지원서를 들고 협회로 향하던 날은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돌아올 때는 감사의 눈물만 흘렀습니다. 이만제단에서 2개월 동안 교역자 수업을 마친 후 8월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부임지인 신철원제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습니다. 신철원제단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흙벽돌로 지은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예배실에 호롱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찬송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가마니가 깔린 작은 제단이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었고 정신은 점점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신념에 찬 여인, 신념으로 일관하는 교역자가 되리라. 내 비록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매 결단코 좌절하지 않으리라.’

그 후 축복일에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끝까지 잘 이겨라.” 하셨던 말씀은 제 삶에 큰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 귀한 은혜와 말씀을 널리 전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잘 이겨 나가기를 늘 기도드립니다.

김경숙 퇴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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