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체험기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저는 부모님 두 분 모두 감리교 교인인 가정에서 태어나, 1964년 결혼 전까지 왕십리 감리교회를 다녔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제가 전도관 교인이셨던 시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신앙의 토대가 바뀌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져 나중에는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것이라며 신앙촌 캐러멜을 정성껏 끓여 주셨고, 전도관 교인들도 찾아와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한 끝에 차츰 기운을 차린 저는 몸이 조금 나아지자 문득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밖으로 나가 감리교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가까운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께서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교회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께서는 곧 하나님께서 이만제단에 오시니 함께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녔던 터라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시어머니 말씀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에 그 주 일요일 처음으로 이만제단을 찾았습니다. 저와 시어머니는 예배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단상 쪽을 바라보니 하나님 뒤로 환한 빛이 둘러 있는 신기한 광경이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설교 말씀은 아직 생소해서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날 이후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어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신앙의 토대가 바뀌고 진정한 구원의 길 찾아 그렇게 이만제단에 출석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종암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이삿짐을 채 풀기도 전에 종암동 제단의 전도사님을 집으로 모셔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에 이전 제단의 전도사님도 동행하셨는데, 제가 기성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새로운 곳에서 제단 일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종암동 전도사님께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시어머니를 따라 제단에만 나갔을 뿐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종암동 전도사님께서는 부탁을 받으신 뒤 저에게 장례 예배에 함께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당시 전도관에서는 전도관 교인이나 그와 연고가 있는 친척의 경우, 상주의 뜻에 따라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면 그 모습이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났는데, 전도관에서는 이렇게 변화되는 과정을 누구든 직접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죽은 쥐만 봐도 무서워 길을 돌아갈 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장례를 치르는 곳에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생명물로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제단에 나오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장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장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제단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고 궂은 일도 도맡으셨던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씻겨 드린 고인의 모습이 살아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특히 굳어있던 몸이 산 사람처럼 노긋노긋해진 것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생명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한번은 인근 제단 양금준 권사님의 시어머니 장례 예배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놀라울 정도로 진한 향취를 체험했습니다. 전도사님이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생명물을 적신 수건을 몸에 덮어두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앞에서 꽃을 흔드는 것보다 더 진한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향취를 모두가 똑같이 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뒤에 물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맡지 못한 반면, 정성을 다해 앞자리에서 예배드린 사람들은 진한 향취를 맡았습니다. 그 후 종암제단의 어느 집사님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남 공주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들어섰을 때는 한여름 무더운 날씨 탓에 이미 시신이 부패해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리고 정성을 다해 함께 예배드리자, 그 냄새가 순식간에 걷히고 고인의 모습이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당시 집 아래쪽에는 평소 생명물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해오던 감리교회 전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방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입관을 마친 후 우리 전도사님께서 그에게 생명물로 고인이 피어난 모습을 똑똑히 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굳어있던 몸이 노긋노긋해지고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 장례 예배에서 목격하며 생명물의 권능 깨달아 하지만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시누이의 장례 때 있었습니다. 시누이가 한때 기성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 그쪽 사람들이 몰려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으나, 시어머니께서는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며 단호히 만류하셨습니다. 결국 입관은 시어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장위동, 보문동, 안암동 제단의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때 입관을 마친 시누이의 모습이 얼마나 고왔던지 조문객들이 아가씨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입관 후에 일어났습니다.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한 고모부가 고인의 손을 잡자 그 자리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저는 하나님의 은혜는 성결하고 깨끗한 곳에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제단마다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도 경쟁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1981년에 전농제단으로 옮겨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1986년 7월 24일 오랜 시간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생전의 시어머니께서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계셨기에 바닥과 닿는 피부는 하루만 지나도 하얗게 물집이 잡히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상조회사에 연락하자 곧 직원들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중복 무더위라 사후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며 어머니 코에 솜을 막으려 했습니다. 제가 절대로 신체에 손대지 말라고 당부하자, 직원들은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느냐며 걱정 어린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마침 저희 집에는 세종문화회관 합창에 참여했던 딸들이 받아온 생명물이 있었습니다. 상조회사 사람들이 돌아간 뒤 시어머니께 생명물을 컵으로 먹여드렸는데, 놀랍게도 한 대접이나 되는 많은 양이 입안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덕소교회 장례반 권사님들이 도착해서 어머니를 확인해 보시더니 너무나 예쁘게 피었다며 놀라워하셨습니다. 생명물을 먹여드렸을 뿐인데 생전의 깊은 주름은 펴져 있었고, 하얀 물집 자국들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한여름 집에서 치르는 장례였음에도 집안 공기가 어찌나 시원하고 쾌적했던지, 사람들이 에어컨을 새로 들여놓았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장례 내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장지 이동 시에만 멈추고 모든 절차 후에 다시 쏟아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신앙이 깊지 않았던 제가 확신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수많은 장례 예배를 직접 지켜보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늘 뒤편에 서 있던 제가 고인이 살아생전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고 싶을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이토록 귀한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죄의 근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저 자비로운 하느님께 용서받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과 마음,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구원의 길이 이 귀한 진리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안찰을 받던 날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저의 죄를 지적해주셨고, 축복을 마치신 후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세계에 같이 가자”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슬성신과 생명물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은혜에 감사드려 저는 그동안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며 소비조합원으로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세월 생명물과 이슬성신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 체험들은 오늘까지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생명물로 죄를 씻어주시고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구원을 향해 이 귀한 은혜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신앙체험기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1936년생인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세 되던 1955년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공장조차 드물던 시절, 영등포 경성방직에서 기술을 배우던 중 같이 일하던 친구가 다급히 저를 불렀습니다. 지금 서울 남산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부흥집회를 하시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결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막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터라 열흘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받고 나니 가슴이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전차표 한 장 값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그 설렘을 안고 저는 건빵 한 봉지를 손에 든 채 전차에 올랐습니다. 남산공원에 도착하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집회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저도 사람들 틈에 앉아 찬송을 따라 불렀습니다. 얼마 후 박 장로님이 등단하셔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찬송을 부르는 내내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저는 하루이틀이 지나도 집에 갈 생각조차 들지 않아 준비해 간 건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집회장에는 내무장관을 지낸 윤치영 씨와 국방부 장관 부인인 홍은혜 여사 등 당대 유명 인사들도 참석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은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 찬송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영등포까지 먼 길을 걸어 돌아오면서도 전혀 힘든 줄 몰랐고,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여의도 백사장 근처에서 영등포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저 좋은 낙원 이르니 그 쾌락 내 쾌락일세”라는 찬송을 부르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외치시자, 그 아가씨가 앞으로 나와 서툴지만 분명한 곡조로 찬송을 불렀고, 그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가슴 뭉클했습니다. 훗날 그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았을 때, 당시 은혜의 현장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초, 한강에서 다시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넓은 백사장의 천막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고, 자리를 놓칠까 봐 며칠씩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 단을 중심으로 이슬 같은 성신이 뽀얗게 내렸고, 말씀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 때면 세상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취의 은혜가 진동했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저는 더욱 힘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밤이면 은혜받은 사람들이 단 앞으로 나와 저마다 체험을 생생하게 증거했고, 아침이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신 후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겹겹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시며, 한 명 한 명에게 빠짐없이 축복해 주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저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무척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기운이 없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앞뒤로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시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제 머리 위에 한참 동안 손을 얹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던 모습과 달리 눈에 띄게 기력을 회복했고, 지금까지 그 은혜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찬송을 부르고, 생명물로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 권능을 확신해 무더기 심방 때 안수 받는 순간 기침이 즉시 멈추고, 쇠약했던 몸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해 집회를 다녀온 뒤 저는 더 이상 성결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집회 소식을 전해주었던 친구는 교회 목사들이 박 장로님을 비방한다며 저에게도 발길을 끊으라고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직접 보고 체험한 저로서는 그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로 기성교회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전부터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연한 구원의 길을 찾고 싶어 교회에 나간 것인데 마음 한구석은 늘 답답했습니다. 어떤 때는 예수의 형상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에 하나님께서 “예수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은혜는 예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지난 집회 현장에서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에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으나, 한동안 소식이 끊겼습니다. 어디서 집회가 열리는지 알 길이 없었던 저는 답답한 마음에 수소문하며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원효로 구제단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원효로 구제단을 찾아가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 말씀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계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따뜻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셨는데, 그 인자한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제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서울 시내에서 무더기 심방을 자주 다니셨습니다. 한 집에 10~20명씩 모여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안수와 안찰을 해주셨는데, 이를 ‘무더기 심방’이라 불렀습니다. 안수 후에는 귀한 말씀도 들려주셨고, 어떤 사람들은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집으로 이동하시면 저희도 그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무더기 심방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평소 겨울만 되면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밤새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기침이 심해 전날 밤에도 한숨도 못 자고 심방에 참석했다가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그 즉시 기침이 멈췄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런 기침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옆집 아이의 다리를 물어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라 급한 마음에 생명물을 찾아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습니다. 얼마 후 아이어머니가 돌아와 상처를 확인해 보니, 조금 전까지 피가 맺혔던 자리가 어느새 아물어 흔적도 없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 어린아이가 숨을 거두었을 때 생명물로 씻기자, 뽀얗게 피어 잠든 듯한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명물에 담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57년, 저는 이만제단이 세워지면서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한강 변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만제단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일요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언덕을 오르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앞서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뒤에서 등을 밀어드리며 그 길을 오르곤 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열린 장로장립식과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전도관 체육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며,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냥 기쁘고 좋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전하기 위해 의정부, 속초 등 먼 지역까지 찾아다녔습니다. 한번은 포천 송우리에서 전도하던 중, 기성교회 청년회장이 운영하던 타이어 수리점에서 그와 며칠에 걸쳐 성경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과 하나님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는 선뜻 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가 난 목사가 그를 서울로 보내 6개월간 특별 교육까지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은 두 번째 토론에서도 역시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결국 며칠 뒤 그 목사가 저를 찾아와 “우리 청년회장을 6개월이나 따로 교육해 보냈는데도 답을 하지 못하니,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경찰이나 군인들이 전도를 막으려다 오히려 전도되는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전도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기사이적을 직접 목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일은 제 인생의 가장 큰 복이었습니다. 그 모든 역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죄를 벗어 그 세계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시며 의인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귀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죄에서 벗어나 맑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세계에 합당한 자격자가 되어 하나님 뵈옵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신앙체험기 521회> 성남교회 장원애 권사 2편

(지난호에 이어) 저는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제단 근처에 사시는 문삼섭 권사님 댁에 머물며 살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의 어린 딸을 등에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구역장 직분을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사신앙촌 1차 건설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문 권사님께서는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

“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신앙체험기 521회> 성남교회 장원애 권사 1편

꿈에서 뵌 분을 광주공원 집회에서 만나 안수 받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은혜를 체험해 지산 전도관에서 집회 30분 전 향취 맡고 앉아 있는지 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 은혜 체험 거듭되며 마음속에 분명한 확신 자리 잡아 저는 1937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맞물린 격변의 시대라 나라 안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혹시 모를 위급 […]

“기쁨으로 끝까지 구원의 길 가길 소망해”

<신앙체험기 520회> 기장신앙촌 이영선 권사

저는 1952년 부산 동대신동에서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메리야스와 여성복, 군복 등을 만드는 의류 공장 세 곳을 운영하며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故 김용달 권사)로부터 여러 차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제가 3~4살 무렵, 어머니는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

“눈물로 기도드릴 때 맡아지던 향취 은혜,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신앙체험기 519회> 충주교회 김순득 권사

저는 강원도 원주시 귀례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이사하시면서 세 살 무렵부터 충청북도 충주에서 자랐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스물세 살에 첫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군대에 갔습니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홀로 남겨진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업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야했습니다. 시장에서 사과도 […]

은혜 안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할 때 가장 큰 기쁨 느껴

<신앙체험기 518회> 서대구교회 구수웅 권사편

저는 1942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우(牛)시장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는 마을 장터에서 나물을 팔며 살림을 꾸려가셨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일어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52년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이듬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면서 저희 남매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습니다. 살길이 막막해진 저와 형제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

“은혜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려”

<신앙체험기 517회> 영주교회 엄선희 권사 2편

(지난호에 이어) 당시 저는 전도관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예배시간이 되기도 전에 예배실에 가 있었습니다. 예배실에 가면 저처럼 먼저 온 사람들끼리 모여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는 예배실 안에 이슬비 또는 소낙비처럼 이슬성신이 내렸습니다. 분명 비처럼 보이는데 바닥은 물론 옷도 전혀 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슬성신이 내리고 얼마 뒤에는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

이슬 같은 은혜를 받으니 그 은혜를 계속 간구하게 돼

<신앙체험기 517회> 영주교회 엄선희 권사 1편

예배실에서 기도드리던 중 백합꽃 향기 같으면서도 산뜻하고 시원한 향 맡아져 향취 은혜임을 깨닫게 돼 노구산 집회에서는 사람들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할 정도로 이슬 같은 은혜가 집회장에 자욱이 퍼져 반사 활동 당시 예배실에 들어갔는데 박하사탕처럼 시원한 것이 목으로 넘어가고 가슴 속이 시원해지며 처음 맛 보는 기쁨이 솟아나 저는 1941년생으로 경기도 오산에서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살던 집 바로 옆에는 앞마당이 유난히 넓은 […]

큰 위기가 올 때마다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뉴욕교회 안음전 승사

제가 처음 하나님을 따라 나오게 된 동기는 잊을 수 없는 감사한 기억 때문입니다. 1950년 당시 저희 가족은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살고 있었고 남편은 트럭 2대에 직원 4명을 두고 자그마한 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6․25 전쟁이 발발했고 저희 가족은 일가친척이 있는 양평에 얼마 동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고 살아보려던 중에, 또다시 인민군이 […]

Grateful to God Who Has Protected Me in Every Great Crisis

Ahn Eum-jeon, Seungsa

The reason I first came to follow God was because of an unforgettable and precious experience of gratitude. In 1950, my family lived in Palpan-dong, Jongno-gu, Seoul. My husband owned a small transport business with two trucks and four employees. That year, the Korean War broke out, and our family fled to Yangpyong where relatives […]

“기도하고 찬송하며 간절한 마음이 될 때 은혜를 허락해 주셔”

<신앙체험기 516회> 소사제2교회 백종찬 권사 2편

(지난호에 이어) 전도관에 다닌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전도사님께서 저와 김정범 씨에게 이제 전도사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며 교육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처자식이 마음에 걸려 고민이 되었지만, 이 귀한 은혜의 진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전도사 교육을 받으러 김정범 씨와 함께 돈암동 전도관에 갔습니다. 거기서 오전에는 체계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