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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의 단비

1956년 11월, 저는 영산포전도관 개관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난생처음 예배에 참석한 저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울지?’ 하며 궁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시 후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찬송을 인도하시자, 수많은 사람들의 우렁찬 찬송 소리로 집회장이 […]

‘직접 보고 겪은 은혜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곽병기 / 기장신앙촌

그해 가을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만제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안개같이 뽀얀 것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욱하게 내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쏟아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싹싹 피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이슬성신이 안개처럼 뽀얗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고 못 받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신앙촌 건설

1957년 11월 소사신앙촌 건설이 시작되면서 저는 1차 건설대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 큰 우물을 파서 그 우물에 쌓을 돌을 나르던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오만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돌을 하나씩 이고 우물 쌓는 곳으로 내려가 돌을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1962년 덕소신앙촌을 건설할 때에도 건설대로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업복을 입으시고 건설 현장에서 진두지휘하시며 […]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참 좋구나!’

곽병기 / 기장신앙촌

저는 1938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7남매 형제들이 오순도순 살았고, 장남인 오빠는 셋째였던 저를 무척 아껴 주었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열세 살 때 6 ·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큰 슬픔을 겪게 됐습니다. 동네에 인민군이 들이닥쳐 청년들을 모두 끌고 갔을 때 청년단 단장이었던 오빠는 인민군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도 병을 […]

보은제단 개관집회(1957. 9.29.~10. 1.)

신앙체험기 속의 천부교 역사

곽병기 님의 신앙체험기에는 보은제단 개관집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다음은 보은제단 개관집회 관련 기사가 실린 1957년 10월 14일자 신앙신보 1면 내용이다. 하나님을 모시고 지난 9월 29일 부터 3일간 진행된 집회는 첫날부터 약 80평 남짓한 제단의 안과 밖이 인파로 가득하여 초만원을 이루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서는 성신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새벽기도 시간에 벙어리가 말을 하고, 틀어진 입이 바로 […]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일세

김춘매 퇴임 교역자(2) / 기장신앙촌

전주제단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폐병을 앓던 젊은 여자 교인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입관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원래 저는 겁이 많아 시신을 보는 것이 꺼려지긴 했지만,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면 아름답게 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 보여 줬는데 고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폐병을 […]

험했던 시신이 생명물로 이토록 아름답게 피어나다니

김춘매 퇴임 관장의 체험기에서 이슬성신 은혜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 체험과 같이 시신이 피는 모습을 통해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은 체험담을 신앙체험기에서 볼 수 있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1960년경 춘천제단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 이런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전도관에 다녔던 20대 청년 한 명이 춘천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에 죽게 […]

누가 그렇게 안찰을 못 받아서 안타까워합니까?

김춘매 퇴임 교역자(1) / 기장신앙촌

저는 1928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로는 남편 직장이 있는 고창에서 살았는데,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신한 몸으로 70Km를 넘게 걸어서 전주까지 피난했습니다. 그때 무리가 됐는지 학질에 걸려 한참을 앓은 후 아이를 사산하고 말았습니다. 또 남편은 공습이 퍼붓는 중에 남원 시댁으로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어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통에 혼자가 된 저는 […]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구나!’

김주자(2) /기장신앙촌

서울에 온 뒤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도관에 나와 보라고 계속 권유하셨습니다. 그 권유에 못 이겨 이만제단에 다녀오신 날 아버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설교 시간에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아버지는 7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고 하셨습니다. 6·25 전쟁 때 큰 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서 구해 주셨던 음성이 바로 박 장로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

하나님 은혜가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 신기해

김주자(1) / 기장신앙촌

저는 1937년 전라남도 목포시 창평동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 저희 형제들은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성결교회에 다녔고, 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셔서 큰 부자는 아니어도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이 많았는데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거지 아이를 만나면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인 후 고아원까지 업어다 주셨습니다. 열성 성결교인이셨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신기한 일을 겪었다고 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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