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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의 뜻을 깨달아

김신자 집사(1) / 기장신앙촌

제가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1955년 스물한 살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선교사가 되려고 인천 전동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정도선 목사는 일본 신학교를 나와 성경에 능통하고 인천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1955년 가을부터 정 목사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하신 분의 집회에 가 보자며 교인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저도 목사를 따라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와 서울 […]

인천 동산중학교 집회

신앙체험기 속의 천부교 역사

1955년 3월에 시작한 남산집회를 필두로 하나님의 집회는 전국각지에서 구름같이 사람들을 모으며 7월 초의 한강 모래사장집회까지 숨 가쁘게 개최되었다. 한강집회 이후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집회가 중단되었다가 9월 16일 인천에서 재개되었다. 16일 저녁집회를 시작으로 닷새간 예정되었던 집회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이틀을 연장하였다. 당시 인천에는 동산중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공터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산중학교는 1957년 5월 정비된 운동장의 크기가 10,760평이다. […]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바르게 살길 기도드려

신종우 집사(2) / 기장신앙촌

그 후 1967년이었습니다. 증평전도관에 전도사님이 새로 부임해 오셔서 가가호호 심방을 다니셨습니다. 전도사님은 학교를 못 간 십 대들이 동네에 많더라며 제단에서 공부를 가르치겠다 하셨습니다. 그때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전국 전도관에서 공민학교를 세우던 때였습니다. 예배실에 칠판을 걸고 선생님 두 분을 모셔 와 수업을 시작했더니 자식 교육을 못 시켜 걱정이던 동네 어른들이 더 좋아했습니다. […]

시온 고등공민학교

신앙체험기 속의 천부교 역사

1950년 6·25 전쟁 후, 당시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5달러, 문맹률 78%,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인재가 2만 6000여 명에 불과한 지구상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먹고사는 것 다음 순위였다. 당시 전국에 세워지던 전도관에서는 국민 계몽을 위해 전도관 산하에 공민학교(초등과정)와 고등공민학교(중등과정)를 설립, 운영했다. 대도시부터 멀리 시골, 작은 섬까지 전국 방방곡곡 전도관 산하에 […]

하나님께서 죄를 소멸해 주시는 능력이 있으시구나!

신종우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8년 충청북도 청원군 오송면 상봉리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래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이 있었지만 전부 어릴 때 병으로 죽게 되었고, 부모님은 저까지 잘못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줄줄이 잃은 뒤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자주 아프셨습니다. 그러던 1957년이었습니다. 앞집 사는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병을 고치러 가자고 했습니다. 광주리를 팔러 읍내를 돌아다녀서 바깥소식에 밝은 아주머니는 요즘 가는 […]

하늘의 기쁨으로 마음이 환하게 피어나다

지난 이슬성신절에 방영된 하나님 말씀의 주제는 “최고의 은혜는 이슬성신과 생명물”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백합화같이 아름답게 변화시켜 구원을 주시는 최고의 은혜라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증거하는 많은 체험담 중에서 하늘의 기쁨을 맛보고 마음의 천국을 이루게 된 체험담을 실었습니다. 저는 6·25 전쟁이 끝나고 서른네 살 무렵에는 저 스스로 교회를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집안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마음이 […]

성결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기도드려

이소쇠 승사(2) / 기장신앙촌

한번은 하나님께서 이만제단에 오셨을 때 처음으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날 1층부터 발 디딜 틈 없는 사이를 다니시며 한 명 한 명의 머리 위에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머리에 하나님 손이 닿는 순간, 폭포수 같은 물이 머리 위에 쏟아지는 것 같더니 목 안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계속 넘어갔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 은혜가 폭포수처럼 내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

생명물로 시신이 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

이소쇠 승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큰 회사를 경영하시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그때부터 외갓집 식구들과 같이 살게 됐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그리워서 교회에 나가 아버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닌 저는 열여덟 살에 결혼한 후에는 서울 청파동에 살면서 서대문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쌀장사를 하느라 바쁜 중에도 교회 임원을 맡고 부흥회도 빠지지 […]

마음에 성신을 모실 수 있도록 하루하루 맑게 살아가고파

손정숙 권사(2) / 기장신앙촌

당시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많은 교인들이 입주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동창이 소사신앙촌에 있어서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신앙촌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가 아주 달고 맛있어서 친구와 실컷 먹었던 일과 주인 없는 상점에서 물건을 샀던 일이 기억에 선합니다. 주인 없는 상점에서 나간 물건과 들어온 돈을 맞춰 보면 꼭꼭 맞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깥에는 주인이 있어도 물건을 집어 가는데 […]

은혜 받고 죄가 씻어지니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정말 기뻐

손정숙 권사(1) / 기장신앙촌

1937년 개성에서 태어난 저는 황해도 금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손 씨 문중의 마을에 친척들과 모여 살면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녔습니다. 지주였던 저희 집은 추수 때면 줄지어 찾아오는 소작농들을 대접하느라 밤늦게까지 북적였고 너른 곳간에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해 신식 공부를 했던 아버지는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존중해 주셨고 어려운 소작농들을 도와주셨습니다. 해방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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