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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상을 “탕!”하고 치시는 순간 안개 같은 것이 퍼져 나와

조경임 권사(1) / 서울 노량진교회

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부용리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마을은 과수원과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꾸렸던 저희 집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형편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신병을 앓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면서 저는 서울로 올라가 큰집에서 생활하며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큰어머니는 가족과 떨어진 저를 안쓰럽게 […]

‘어떻게 하면 매 순간을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생각

임유환 권사(4) / 기장신앙촌

그 후 1980년에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밝히시며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정체를 바로 밝히지 못하시고 교인들이 깨달을 때까지 차근차근 가르치신 후에야 발표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신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초창기부터 성경 호세아서를 말씀하시며 이슬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와 같다고 하셨는데, […]

“목사가 한 말이 떳떳했다면 왜 도망을 가겠습니까?”

임유환 권사(3) / 기장신앙촌

그 후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노구산 꼭대기에 지어진 오만제단은 제가 그때까지 본 건물 중에 가장 크고 넓은 건물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서 하나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시댁 조카가 소사신앙촌에 살고 있어서 저녁예배를 마친 후 조카네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잠을 잔 후에 다음 날 오만제단에 갔습니다. […]

‘이때까지 죄인 줄도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나 많았던가?’

임유환 권사(2) / 기장신앙촌

그 후 삼례읍 정산전도관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렸을 때 저는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에게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의 손이 제 배에 닿는 순간 얼마나 아픈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았고, 안찰을 받고 나서도 배가 당기고 아파서 허리를 펴지 못했습니다. 저는 ‘살짝 손만 대셨는데 왜 이리 아플까?’ 하다가 문득 […]

‘내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기에 그렇게 지독한 냄새가 났을까’

임유환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9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하리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를 좋아했던 저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로 다녔습니다. 여름이면 하지 감자를 캐다가 삶아 먹고 참외며 수박 서리를 하는 것이 아이들의 놀이였습니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절을 보내고 열일곱 살이 되자 아버지는 제가 몸가짐을 정숙하게 하고 집에서 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완고하신 아버지 말씀을 어길 수 없어서 저는 어머니께 […]

“시신을 피게 하는 것과 흉하게 만드는 것 어느것이 성신인가?”

김순용 권사(3) / 기장신앙촌

저는 전도관에 다니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미 지은 죄를 성신으로 씻음 받아야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 성결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외래품 장사를 시작했는데 주변에는 상표를 속여서 가짜 제품을 파는 사람이 많았지만 저는 죄를 지으면 […]

찬송을 부르는데 제단 안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듯 은혜 내려

김순용 권사(2) /기장신앙촌

그 무렵 저는 가정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집안을 돌보지 않아서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도 힘든 형편이 되었습니다.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다 보니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위장병까지 생겨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몸이 점점 마르고 기운이 빠져서 온몸이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

밖에는 해가 쨍쨍한데 박 장로님 단상에서 이슬비가 내려

김순용 권사(1) /기장신앙촌

저는 1930년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버지와 함께 백화점을 경영하셔서 저희 가족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저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해 막내 동생이 척추 결핵을 앓다가 숨을 거두고 건강했던 아버지마저 특별한 병명도 없이 아프시더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게 되면서 저는 외갓집의 […]

길가에 떨어진 못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황숙주 권사(3) / 덕소신앙촌

이듬해인 1957년에는 서울 청암동에 큰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이만제단이라고 불렀는데 매 주일 이만제단이 꽉 차도록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건설되는 신앙촌 소식을 들으며 저는 신앙인들이 함께 사는 마을에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단에 열심히 다니셨던 어머니도 신앙촌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슬같은 은혜를 체험해

황숙주 권사(2) / 덕소신앙촌

한강집회에 계속 참석하셨던 어머니는 그 집회에서 병이 나은 사람을 많이 봤다고 하셨습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들것에 실려 왔던 중환자들이 병이 다 나았다며 들것을 버리고 제 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환자들이 집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병이 나았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다니는 창신교회의 권연호 목사도 부스럼병을 앓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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