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묻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신의 뜻, 진리라 할 수 있는가

종교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가르침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사람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진리라 믿었고, 그 믿음이 오랫동안 종교의 권위를 떠받쳐왔다. 그런데 만약 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근 교황 레오 14세는 과거 가톨릭교회가 노예제를 허용하고 정당화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노예제를 허용하는 교황 칙서가 발표된 지 574년 만이었다. 가톨릭이 노예제에 공식적인 권위를 부여한 것은 1452년 교황 니콜라스 5세 때였다. 그가 발표한 교황 칙서 「둠 디베르사스(Dum Diversas)」는 포르투갈 왕에게 “이교도의 땅과 재산을 침략하고 정복하며, 그들을 복종시킬 권리와 영구적인 노예로 만들 수 있는 권한 (Saracenos, et Paganos, aliosque infideles, et Christi inimicos quoscunque… Regna, Ducatus, Comitatus, Principatus, aliaque Dominia, Terras, Loca, Villas, Castra… invadendi, conquerendi, expugnandi, et subjugandi, illorumque personas in perpetuam servitutem redigendi… plenam, et liberam, auctoritate Apostolica, tenore praesentium concedimus facultatem)”을 부여했다. 3년 뒤 발표된 「로마누스 폰티펙스(Romanus Pontifex)」는 이 권한을 재확인하고 확장했다. 교황청의 칙서 발표로 정당성을 얻은 노예제는 더욱 빠르게 확장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수천만 명이 배 밑창에 실려 짐짝처럼 수송되었고, 이동 중에 병들거나 죽은 이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목화밭, 광산으로 끌려가 채찍질을 당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이 비극이 우발적 잘못 또는 교황 한 명의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칙서 발표 이후에도 칼릭스투스 3세와 레오 10세를 비롯한 여러 교황들이 이 권한을 재확인하고 연장했다. 그들은 노예제에 강력한 명분을 내세웠다. 바로 ‘구원’이었다. 실제로 「로마누스 폰티펙스」에는 “그 사업 안에서 영혼들의 구원과 가톨릭 신앙의 증진을 위해(in quo cum animarum salus, Fidei augmentum et illius hostium depressio procurentur)”라고 명시되어 있다. 수천만 명을 노예로 만든 참극이 교황청 공식 문서에서 ‘영혼 구원’으로 허용되었고, 신의 대리인이라는 교황이 이를 직접 승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착취와 학대가 그들이 말하던 신의 뜻이 되는 걸까? 만약 노예제가 신의 뜻이었다면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노예들의 고통이 모두 신의 계획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신은 사랑과 자비의 신이 아닌, 인간의 고통을 담보로 세력을 확장하는 정복과 살육의 신일 뿐이다. 반대로 노예제가 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교황과 가톨릭교회가 수천 년 동안 신의 이름을 팔아 자신들의 권력욕, 물욕, 정복욕을 정당화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조직적인 사기이자, 종교적 기만이다. 이 치명적인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을까. 레오 14세의 사과문에는 유독 눈에 띄는 문장이 하나 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그 결정들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절이다. 쉽게 말해, 그때는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변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노예제가 제도적으로 유지되던 시기에도 그것의 비인간성과 잔혹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다. 즉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에게 불편한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가 인간을 판매하고 착취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도덕적 실패이며, 신학적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다. 결국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이 거대한 범죄에 책임질 주체가 없다. 역대 교황들은 그들 신의 명령이었다 하고, 정복하고 침략하라 명령했던 그들의 신은 소식이 없고, 현재 교황은 시대가 그랬다는 변명만으로 책임의 빈자리를 채운다. 그들 신과 교황들이 ‘공동정범’이 되어 자행한 노예제는, 사과의 순간이 되자 신도 교황도 아닌 ‘역사’의 탓이 되어버렸다. 권위를 행사할 때는 ‘절대적 진리’를 내세우다가, 책임 앞에서는 ‘시대의 흐름’을 핑계 대는 것, 이것이 바로 가톨릭의 이중성이자,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오래된 수법일지도 모른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의 이름으로 선포한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불변해야 할 신의 진리가 번복된다는 것은 애초에 그것이 초월적 진리가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고안된 거짓이었음을 증명한다. 교황청이 수백 년간 저질러 온 범죄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 자행한 착취와 학살의 역사적 책임은 세속 법에 의해 판단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적 대가를 치른다 해도 종교적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인류에 대한 악행을 정당화하고, 책임 앞에서는 종교라는 권위 뒤에 숨어온 조직이라면, 더 이상 진리를 말할 자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교황의 이번 사과는 수천 년 동안 그들 신의 명령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자백이자, 진리 없는 종교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린 자기부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 무엇을 구원하는가?

최근 미국을 겨냥한 교황 레오 14세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미국이 이주민을 쓰레기 취급한다”, “트럼프가 전혀 두렵지 않다”, “한 줌의 폭군이 세상을 짓밟는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미국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미국 측이 불법 이주민 범죄 억제와 이란 핵무기 저지를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반박했음에도, 교황은 한층 더 과격한 어조로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이 종교 지도자의 선을 넘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국제 정치에는 날을 세우던 교황의 언어가 갑자기 흐려지는 때가 있다. 바로 ‘죄’의 문제 앞에 섰을 때다. 지난 4월 교황의 순방지였던 카메룬 바멘다 성당에서의 일화는 그의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날 성당에는 카메룬 전통 부족의 추장이 참석해 교황에게 “가톨릭이 일부다처제를 수용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러자 참석한 신자들은 즉각 야유로 대응하며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가톨릭교리서 2387항에는 일부다처제가 도덕률에 어긋나는 금기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감이 고조되고 교리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상황에서 신자들의 기대와 달리 교황은 침묵으로 답변했다. 동성애 문제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이어졌다. 가톨릭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치부하며, 가톨릭교리서 2357항은 ‘동성 간 성행위는 자연법에 어긋나며, 어떤 경우에도 승인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교황은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 비행기 안에서 “동성 결합에 대한 공식적 축복은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에서는 모두가 환영받는다”는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아가 “성(性)적인 문제가 교회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된다”고 덧붙이며 논란의 핵심을 비껴갔다. 종교가 죄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단순히 도덕적 기준이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종교가 제시해야 할 구원의 방향감각 자체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본래 종교에서 죄란 단순한 실수나 사회 규범 위반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켜 결국 신과 단절시키는 영적인 문제다. 그렇기에 종교는 죄를 가장 먼저 분별해야 했고, 가장 엄격하게 경고해야 했다. 종교 지도자라면 죄의 기준 앞에서 누구보다 분명한 언어로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황의 태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 이슈에는 직설적인 언어를 쏟아내면서도, 정작 죄의 문제 앞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명확한 답변을 피한다. 오랫동안 죄라고 규정되었던 원칙조차 교황의 모호한 행동으로 혼란에 빠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인간의 욕망과 시대적 정서를 거스르지 않은 채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만을 반복하는 것은 영적 포퓰리즘이다. 의사가 암 환자에게 “당신은 괜찮다”고 말하며 진단을 회피하는 것이 친절이 아니라 직무 유기인 것처럼, 종교가 죄를 죄라 말하지 않은 채 환영과 포용만 반복하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죄에 잠식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시대의 정서와 욕망에 순응하는 종교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을 잃고 인간을 안심시켜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온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전 세계적으로 사제들의 성범죄 문제에 직면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수만 명의 사제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실질적 처벌 없이 사목 현장으로 복귀하거나 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 동일한 범죄가 교회 안에서 구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이는 죄에 대한 감각 자체가 조직 내부에 존재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영혼의 파멸로 이끌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구원을 향해간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상태, 바로 그것이 종교가 만들어낸 가장 치명적인 기만이 아닐까? 그렇다면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는 무엇을 구원한다는 것인가.

시온논단

신앙신보 창간 70년을 맞이하며

2025년 2월 7일, 신앙신보가 진실의 전파자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70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과 체험담, 그리고 교단의 소식을 전하는 데 집중해 온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신보를 통해 참된 길을 찾고 천부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보람과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천부교 초창기에는 많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안찰을 받고 은혜를 체험했으나, 이후에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천부교를 중상모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기성 교단과 일부 언론은 천부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장하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뜨려 왔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역사와 신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때 박수를 치며 예배드리는 천부교의 예배 방식을 비난하던 기성교회도 지금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최고로 가치있는 생명물에 대해서 불신과 비난을 이어왔지만, 신앙촌의 생명물은 여전히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며, 시신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 사명을 다하며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동안 끊임없는 사랑으로 신앙신보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참된 신앙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편집자 주

시온포럼

AI시대의 국가전략

AI시대의 국가전략

AI(인공지능)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두뇌’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로봇과 결합해 인간을 대신할 존재가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현실화하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속속 증명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서 선진국으로 부상된 국가들은 각 산업혁명의 시기를 선도해 왔다. 우리는 제1차 산업혁명에 뒤지고 폐쇄적 세계관과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다 국권을 잃고 극도의 압제와 수탈에 시달렸다. 애국지사들의 끝없는 저항과 희생을 바탕으로 국권을 회복한 이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후손에게 이 지긋지긋한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산업의 꽃을 피우고 우수한 전통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를 선도함으로써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치열한 국가간, 기업간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AI시대다. 이 글에서는 바야흐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AI시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 발전전략을 생각해 본다. 그 첫 단계는 AI시대를 위한 준비기, 혹은 인프라 구축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AI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등을 양성하는 시기다. 정부가 100조 규모의 AI R&D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시기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다. 다만, R&D 투자만으로 AI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개발을 수행할 우수한 연구인력의 양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문인력이 세계적 수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외부로부터 수혈해야 한다. 대학입시의 자율화와 경쟁 촉진, 이민정책의 전면 개편 등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우리의 대학교육 정책은 지난 50년 이상 평준화와 경쟁 제한을 강화해 왔고, 입시생들도 첨단 과학기술 분야보다 의과대학을 선호해 왔기에 AI시대에 적합한 고도의 전문인력 양성에 취약한 상태다. 기업들도 수많은 규제 속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이겨낼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지 않고 AI시대의 무한경쟁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아울러 AI를 가능하게 할 거대 데이터센터의 구축과 이의 운영을 위한 전력공급 기반을 구축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모든 국가들이 친환경 청정 에너지원으로 원자력발전을 확정하고 수많은 원자로 건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값비싼 신재생에너지로는 AI시대 전력공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연구개발·인력·인프라 기반 구축 규제완화와 창의적 활용 확대 AI시대 세계 선도 체계 마련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주요 AI 정책을 모니터하고 이를 단계별로 평가해 세계적 기준을 넘어선 경우에만 다음 단계를 위한 지원을 시행하는 일이다. 객관적 평가를 위해 국내와 국외의 최고 전문가들을 평가위원으로 위촉하고 정부나 정치권의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평가지표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각종 AI 기술의 산업화와 활용 단계다. 여기에는 창의적 산업화를 가능하게 할 규제완화와 다양한 이용자들의 수요에 부합할 분야별 활용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활용되고 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의 창의적 및 윤리적 활용 능력 중심의 교육 제도와 내용 개편, AI로봇의 보편화로 대체될 노동계 설득 정책 등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민간의 창의적 노력이 제한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AI혁명으로 인한 역기능을 예방하고 AI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선제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특히 노동과 윤리, AI 기술의 악용을 예방하거나 엄단하는 기술적,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일은 AI시대를 선도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규제완화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AI 활용이나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어야 하며, 새로운 AI 문화의 창출을 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는 급격히 변화한다. 역사는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한 국가나 개인에게 성공이란 보상을 준 적이 없다. 지금 우리의 AI 국가전략이 저항이나 제한이 아니라 적극적 선도와 변화의 수용이어야 하는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리를 묻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 장치인가?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 『2023년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가톨릭·개신교·불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설문에 ‘구원’ 보다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 통계는 초월적 진리나 사후세계보다, 현재의 불안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기능이 종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은 신의 실재, 기적, 구원이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에게 […]

[진리를 묻다]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다

‘신비’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기원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적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비를 떠올린다. 이처럼 신비란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말 그대로 불가해(不可解)한 영역을 가리킨다. ‘신비(神祕)’라는 글자에 ‘신의 비밀’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만 봐도, 신비가 초월의 영역을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그런데 최근 교황 레오 14세가 ‘신비’를 […]

[진리를 묻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과 영성은 기만인가, 사기인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3>

오래전부터 인간은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근원적 한계 앞에서 초월적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간절한 갈망에 응답이라도 하듯 종교는 신의 존재를 말하며 구원을 약속했고, 수천 년 동안 기적과 신비, 초월적 신의 개입을 주장하며 인간 사회 위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자연현상과 질병, 인간의 심리와 사회 구조까지 […]

[진리를 묻다] 신의 작동을 포기한 집단을 종교라 부를 수 있는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2>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다는 통계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새삼스러운 것은 그 속도와 성격이다. 불과 수십 년 사이, 종교 없음은 주변적 선택에서 사회적 다수의 위치로 이동했다. 미국 코넬대학교 공동연구진은 최근의 종교 이탈이 단순한 세속주의의 확산이 아닌 신앙이라는 틀 자체와의 결별 선언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 사원, 회당 안에서 신을 찾지 않고 […]

[진리를 묻다] 영성은 신의 임재(臨在)를 뜻하는가? 아니면 신의 부재(不在)를 견디기 위해 고안된 언어인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1>

오늘날 종교 담론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영성(spirituality)’이다. 매년 영성과 관련된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종교 지도자들은 종파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신의 영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롯되었다며, 영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영성은 무엇일까?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그 어원에 영혼(靈,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

미국의 보호무역과 한국의 대응

미국이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 보탬이 될까? 중국 견제 등의 정치적 이유는 제외하고 경제적 측면만 살펴보자.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관세(tariff)와 쿼터(quota), 자발적 쿼터(VER:Voluntary Export Restraints)가 있다. VER는 한국이 스스로 수출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물론 세 경우 모두 교역량은 줄고 미국 내 자동차 […]

글로벌 경기 침체, 어떻게 끝내나?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지 올해로 16년째다. 이 길고 긴 경기 침체를 끝내는 방안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경기를 단박에 살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지금의 문제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행정부가 자가(自家) 소유율을 높이려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모기지 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누가 풀어야 하나?

작년 10월 7일 새벽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그날 사건만 보면 이건 100% 하마스의 잘못이다. 그러나 ‘왜?’ 라는 물음표를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끊임없는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본래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고 있는 이 지역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제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

선거 후 대통령이 해야 할 일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192석, 국민의힘 108석으로 집권여당의 참패였다. 의석수 차이는 무려 84석이나 되지만 그에 나타난 민심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실제 지역구에서 얻은 표차는 불과 5.4%에 불과하다. 의석수 차이는 많아도 실제 표차가 이처럼 근접했다는 것은 다수의석에 의한 일방적 국회 운영은 국민적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제2의 중동 붐을 위한 제언

한국은 개발 연대 초기인 1970년대 경제개발자금 확보를 위해 이탈리아의 경험을 본받아 해외 건설 전략을 선택하였다. 제1차 중동 붐은 우리나라가 1970~80년대에 중동의 산유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설시장에 한국의 건설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경제개발자금을 조달하여 한국경제의 압축 성장을 뒷받침해 준 경험을 말한다. 석유 시대의 중심에 있던 중동의 건설시장은 오일쇼크 이후에도 이란・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리비아의 대수로 건설 사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