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묻다] 신이 부여했다는 권위,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최근 아일랜드의 한 고위 성직자가 사제들의 자살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를 교회의 최우선 과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사제들이 목회적 부담, 고독함, 우울과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며 “사제들은 초인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들을 “보살핌이 필요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절망과 우울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사제의 인간적 연약함이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수천 년 동안 그들을 어떤 존재로 설명해 왔는가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오랫동안 사제들이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한다고 가르쳐 왔다. 죄를 용서하고 신자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 권위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신이 실제로 사제를 통해 역사한다는 초월적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사제는 누구보다 신과 가까우며, 신의 응답과 보호를 경험한다고 여겨져 왔고,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신자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죄를 사하는 권위를 행사해 왔다. 그렇다면 사제들의 자살과 정신 건강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2013년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교 공동 연구진이 가톨릭 사제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사제들이 신과 만나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영적 메마름(spiritual dryness scale)’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적 메마름은 사제들의 우울 증상과 불안, 정서적 소진과도 밀접한 관련을 보였다. 신의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자들이 정작 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사제가 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한다고 고백하면, 신앙이 부족하거나 영적 수련이 결핍되었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투미 사제는 많은 사제들이 낙인과 평가를 두려워해 고통을 감춘다고 지적했다. 신과 특별히 연결된 존재라는 지위가 오히려 자신의 영적 공백을 숨기게 만드는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을 무너지게 만든 것은 평범한 인간에게 초월적 역할을 주입하고, 영적 메마름 속에서도 이를 연출하도록 강요해 온 가톨릭의 교리와 구조가 아닌가. 신의 응답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일선 사제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재임 기간을 회상하며 “거친 파도와 바람에 직면한 순간 신이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싶었다. (vi sono stati anche momenti in cui le acque erano agitate ed il vento contrario, come in tutta la storia della Chiesa, e il Signore sembrava dormire.)”고 말했다. 가톨릭 최고위 성직자인 교황마저 신의 부재를 토로했다면, 최소한 교회가 주장하는 신과의 교류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검증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사제들에게 주어졌다는 초월적 권한이 인간의 선언만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신의 대리자’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신의 권능을 대행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권한을 주장하려면 그 권위가 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에게서 권위를 받았다고 여겨지는 사제들이 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천 년 동안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근거로 인간에게 신의 권위를 부여해 온 체계는 거대한 사기극에 불과한 것 아닌가? 오늘날 반복되는 사제들의 자살과 이탈은 신의 권능을 증명하지 못한 채 허상으로 유지해 온 구조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가장 무거운 증거일지도 모른다.

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다

‘신비’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기원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기적 앞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비를 떠올린다. 이처럼 신비란 인간의 지혜나 힘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말 그대로 불가해(不可解)한 영역을 가리킨다. ‘신비(神祕)’라는 글자에 ‘신의 비밀’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만 봐도, 신비가 초월의 영역을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그런데 최근 교황 레오 14세가 ‘신비’를 언급한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18일,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설교했다. “교회를 설명하고자 할 때 ‘신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비란 모호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난 실체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지각 가능한 형태로 드러난 신비입니다.” 교회가 곧 지각 가능한 신비라는 교황의 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교회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의례를 행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회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신비’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우선 교회에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초자연적 현상이 있어야 하고, 다수가 목격한 기적 등의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하며, 이러한 현상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교회 안에 초월적 개입이 있다”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고, 그때 ‘신비’라는 단어를 사용할 최소한의 근거가 생긴다. 그러나 교황은 이 모든 단계를 완전히 생략했다. 증거도 없이, 검증 절차도 없이, 오직 선언만으로 “교회는 지각 가능한 신비”라고 못 박았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지각 가능하다”고 표현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지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증명을 우회하는 교묘한 전략이 숨어 있다. 바로 선언만으로 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교회가 곧 신비’라고 단언하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을 잃고, 교회에 어떤 초월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그 전제를 의심하기 어려운 인식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구를 사실로 둔갑시키는 행위이며, 오랫동안 그들이 수행해 온 현실 조작의 핵심이다. 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허영심 가득한 임금 앞에 사기꾼이 나타나 솔깃한 제안을 한다. “폐하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특별한 옷은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후, 사기꾼은 임금을 찾아와 빈 허공을 가리키며 화려한 몸짓으로 “보십시오, 이 찬란한 옷을!” 하고 외친다. 임금은 당황했다. 눈을 씻고 봐도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애초부터 옷은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던 임금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연다. “정말 아름다운 옷이구나.” 그러자 주변의 신하들도 너도나도 옷이 훌륭하다며 맞장구를 친다. 임금과 신하들은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실제로는 옷이 존재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결국 임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옷을 입고 마을을 가로질러 위풍당당하게 행진한다. 벌거벗은 임금의 행진을 지켜보는 군중들 역시 당혹스러웠지만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들 역시 보이지 않을 뿐 옷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이, 존재하지도 않는 옷이 진짜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이처럼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고 진실 행세를 할 때, 공동체의 합리적 의심은 차단당하고 믿음만이 강요된다. 사회의 이성과 상식은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마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황의 발언은 수사적 과장을 넘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신비라고 부를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데 “지각 가능한 신비”라고 하는 것은 지적 사기(intellectual fraud) 또는 도덕적 기만(moral deception)의 요소를 분명히 포함하고 있다. 비록 종교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다 하더라도, 근거 없는 주장을 사실처럼 유포하는 행위는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고도화된 구조적 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성’에 이어 ‘신비’라는 개념까지 왜곡하는 이러한 현상은, 초월적 실재 대신 제도적 자기 정당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한계를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신의 실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종교가 생존을 위해 어떤 비윤리적 수단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일까?

독자의 편지

종교의 진정한 역할

계속되는 성직자 성범죄와 비리 종교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요즘 신앙신보에 계속해서 실리고 있는 기획기사 ‘오를란디 사건’과 ‘프레나 신부 사건’을 보면서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범죄와 각종 비리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맑힌다는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범죄를 일으켜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있습니다. 기획기사를 통해 종교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박철규 관장 / 광양교회

시온논단

신앙신보 창간 70년을 맞이하며

2025년 2월 7일, 신앙신보가 진실의 전파자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70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과 체험담, 그리고 교단의 소식을 전하는 데 집중해 온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참된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특히, 신앙신보를 통해 참된 길을 찾고 천부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보람과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천부교 초창기에는 많은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안찰을 받고 은혜를 체험했으나, 이후에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천부교를 중상모략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기성 교단과 일부 언론은 천부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조장하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퍼뜨려 왔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시간이 지나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역사와 신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때 박수를 치며 예배드리는 천부교의 예배 방식을 비난하던 기성교회도 지금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최고로 가치있는 생명물에 대해서 불신과 비난을 이어왔지만, 신앙촌의 생명물은 여전히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며, 시신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신보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널리 알리는 사명을 다하며 진리를 전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어 나가겠습니다. 그동안 끊임없는 사랑으로 신앙신보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참된 신앙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편집자 주

[진리를 묻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신의 뜻, 진리라 할 수 있는가

종교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가르침이 ‘신의 뜻’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사람들은 그들이 제시하는 것이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진리라 믿었고, 그 믿음이 오랫동안 종교의 권위를 떠받쳐왔다. 그런데 만약 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근 교황 레오 14세는 과거 가톨릭교회가 노예제를 허용하고 정당화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노예제를 허용하는 교황 칙서가 발표된 […]

[진리를 묻다]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 무엇을 구원하는가?

최근 미국을 겨냥한 교황 레오 14세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미국이 이주민을 쓰레기 취급한다”, “트럼프가 전혀 두렵지 않다”, “한 줌의 폭군이 세상을 짓밟는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미국 행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미국 측이 불법 이주민 범죄 억제와 이란 핵무기 저지를 위한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반박했음에도, 교황은 한층 더 과격한 어조로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교황이 종교 지도자의 […]

[진리를 묻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 장치인가?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는가. 『2023년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가톨릭·개신교·불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설문에 ‘구원’ 보다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이 통계는 초월적 진리나 사후세계보다, 현재의 불안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는 기능이 종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은 신의 실재, 기적, 구원이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에게 […]

[진리를 묻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과 영성은 기만인가, 사기인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3>

오래전부터 인간은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근원적 한계 앞에서 초월적 존재를 찾기 시작했다. 그 간절한 갈망에 응답이라도 하듯 종교는 신의 존재를 말하며 구원을 약속했고, 수천 년 동안 기적과 신비, 초월적 신의 개입을 주장하며 인간 사회 위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자연현상과 질병, 인간의 심리와 사회 구조까지 […]

[진리를 묻다] 신의 작동을 포기한 집단을 종교라 부를 수 있는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2>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고 있다는 통계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새삼스러운 것은 그 속도와 성격이다. 불과 수십 년 사이, 종교 없음은 주변적 선택에서 사회적 다수의 위치로 이동했다. 미국 코넬대학교 공동연구진은 최근의 종교 이탈이 단순한 세속주의의 확산이 아닌 신앙이라는 틀 자체와의 결별 선언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 사원, 회당 안에서 신을 찾지 않고 […]

[진리를 묻다] 영성은 신의 임재(臨在)를 뜻하는가? 아니면 신의 부재(不在)를 견디기 위해 고안된 언어인가?

진리를 묻다 - 영성이란 무엇인가? <1>

오늘날 종교 담론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영성(spirituality)’이다. 매년 영성과 관련된 새로운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종교 지도자들은 종파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자신의 영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롯되었다며, 영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영성은 무엇일까? 영성(靈性, spirituality)은 그 어원에 영혼(靈,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

AI시대의 국가전략

AI(인공지능)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두뇌’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로봇과 결합해 인간을 대신할 존재가 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현실화하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속속 증명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서 선진국으로 부상된 국가들은 각 산업혁명의 시기를 선도해 왔다. […]

미국의 보호무역과 한국의 대응

미국이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한국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경제에 보탬이 될까? 중국 견제 등의 정치적 이유는 제외하고 경제적 측면만 살펴보자.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에는 관세(tariff)와 쿼터(quota), 자발적 쿼터(VER:Voluntary Export Restraints)가 있다. VER는 한국이 스스로 수출량을 제한하는 조치다. 물론 세 경우 모두 교역량은 줄고 미국 내 자동차 […]

글로벌 경기 침체, 어떻게 끝내나?

2008년 미국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지 올해로 16년째다. 이 길고 긴 경기 침체를 끝내는 방안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경기를 단박에 살릴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지금의 문제는 정확한 원인을 찾아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선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행정부가 자가(自家) 소유율을 높이려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모기지 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누가 풀어야 하나?

작년 10월 7일 새벽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일단 그날 사건만 보면 이건 100% 하마스의 잘못이다. 그러나 ‘왜?’ 라는 물음표를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 끊임없는 전쟁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본래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고 있는 이 지역은 기원전 63년에 로마제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