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여성회 연합회 임원 임명식

2026 여성회 연합회 임원 임명식

새로운 출발선에서 한마음으로 기장신앙촌 소비조합장 정향숙 2026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6년 슬로건인 ‘은혜로 하나 되어 구원의 말씀을 기쁘게 전하겠습니다’ 아래, 모두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전도와 사업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감람나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맡겨진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며,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한 해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후회 없는 노력을 이어가는 신앙촌 소비조합이 되겠습니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움직여야 서부연합회 부회장 정영희 한없이 부족한 저희에게 다시 한번 2026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자연재해와 전쟁이 잇따르며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정치와 경제의 불안 속에서 많은 이들이 삶의 방향과 가치를 잃은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요동치고 험한 일들이 이어지는 때일수록, 우리의 나아갈 길을 더욱 분명히 새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몫일 것입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신 선한 사업의 의미를 알기에, 지금은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귀한 연단의 시간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힘껏 뛰겠습니다. 2026년 모두가 한마음으로 화합하고 기쁘게 일하는 서부 지역 여성회가 되겠습니다. 새로 주신 기회와 시간에 감사 남부연합회 회장 이순희 2026년 새해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시간과 한없는 이슬 은혜를 허락해 주심에도 열심을 다하지 못한 시간들로 지난해를 돌아보면 많은 후회와 죄송함이 앞섭니다. 올해 새로 주신 기회와 시간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전보다 더 큰 열정을 품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생활하고자 합니다. ‘못하겠다’는 말 대신 ‘기필코 해내겠다’는 각오로, 맡겨진 일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앞장서 나가겠습니다. 2026년 슬로건처럼 은혜로 하나 되어 구원의 말씀을 기쁘게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귀한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해 나가는 뜻깊은 2026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굳은 각오를 가지고 목표를 완수해야 중부연합회 회장 김순덕 온 세계가 기상이변과 전쟁으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 놓여 있음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출발선에서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간구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직 인류 구원을 위해 육신을 입고 친히 저희 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생명물의 참된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맡겨진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며, 은혜로 하나 되어 구원의 말씀을 기쁘게 전하겠습니다. 목표를 완수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깊이 사모하고 그 뜻을 따르려는 감람나무 가지들의 굳은 각오에 달려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마침내 바위를 뚫듯이, 우리 역시 하나로 굳게 뭉쳐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건강을 지키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는 소비조합이 되시길 바랍니다.

2026년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2026년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1월 1일, 신앙촌 곳곳에는 화사한 꽃꽂이와 함께 새해를 알리는 2026 ‘Happy New Year’ 신년 장식과 캐릭터, 이글루 등이 어우러져 눈길을 끌었다. 주민들은 새해를 맞아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한 해의 각오를 다졌고, 양로원에서는 SANC식품여고 학생들이 어르신들과 함께 율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은 신앙촌 도서관이 개방되어 조용히 한 해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추운 날씨 속에 따뜻한 펜넬차가 제공되어 마음까지 녹여 주었다. 3일 여성회와 학생회가 함께하는 축복일에는 레스토랑에서 신년 음악회가 열려 음악 속에서 새해의 활기와 기쁨을 만끽했다. 환하게 불을 밝힌 신앙촌의 새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와 설렘을 전하며 힘차게 시작됐다. 다양한 꽃꽂이를 보는 즐거움 곳곳에 놓인 꽃꽂이가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 특히 레스토랑과 종합식당에 있는 꽃들이 예쁘고 향기도 좋았습니다. 저녁에는 신년 데코 조명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니 한층 더 예뻐 보였습니다. / 원주교회 고2 안지연 양 신앙촌 도서관은 온전한 휴식처 신앙촌은 늘 자연과 벗하는 공간입니다. 도서관에 오면 자연 속에서 책을 읽는 느낌이 더해집니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 참 좋습니다. 새해에 좋은 차까지 곁들여져 온전히 휴식할 수 있었습니다. / 신앙촌 여청 박선영 씨 음악의 힘 아늑하고 온기 넘치는 레스토랑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즐거움을 전해준 신년 음악회였습니다. / 덕소교회 김나영 씨 전도의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신앙촌에 오니 새해의 설렘이 가득했고, 푸짐한 식사며 여러 가지를 따뜻하고 세심하게 준비해 주신 마음이 느껴져 참 뭉클했습니다. 베풀어 주신 사랑이 새해를 여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 보은교회 박홍자 권사 하나 되어 앞으로 2026년 새해에는 더욱 기도에 힘쓰며, 주시는 은혜와 지혜로 열심히 뛰어 맡은 바 사명을 다하는 교역자와 시무 중앙이 되겠습니다. 또한 전국 중앙과 전 교인이 한마음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서동교회 박혜영 관장 잊지 않고 기도하기 올해 저의 계획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식사 전에도 기도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천국에 꼭 가고 싶습니다. / 대전교회 초4 김민솔 양

남자 축복일

남자 축복일

“신앙의 시작은 기본을 지키는 것” 남성회 교역자 시무식 열려 2026년 남성회 교역자 시무식이 1월5일부터 6일까지 신앙촌에서 열렸다. 시무식에서는 신앙교육과 사업활동 발표가 진행됐으며, 중남부 교역자들의 특순도 이어졌다. 협회 심광수 관장은 교육 시간에서 “올해는 신앙의 기본을 지키는 데서 출발해 맡은 바 사명에 전심전력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대구 정현철 관장은 “주어진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올해도 열심히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8일에는 남자 축복일 예배가 있었다. 중부합창단이 가곡 “눈”과 찬송가 219장 “하나님 우리를 부르는 소리”로 특순을 하였고 임원 및 성직 임명, 봉사상과 모범상을 수여하며 2026년을 의미있게 시작했다.

프랑스의 정교분리

프랑스의 정교분리

- 2026년 1월 7일자 영국 내셔널 시큘러 소사이어티 키스 포르테우스 우드 기고문 - 법 위에 군림하는 교회와 아동 학대 방치한 국가의 책임 회피 프랑스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명문화한 1905년 법은 지난해 제정 120주년을 맞았다. 이 법의 이념적 기원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있다. 프랑스 혁명은 공화국 수립을 통해 군주와 귀족, 가톨릭 교회가 누려온 부패와 과도한 권력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를 시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국가의 종교 지원을 금지한 최초의 사례는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버지니아주였다. 성공회를 국교로 두고 있던 버지니아주에서 확립된 이 원칙은 이후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 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법제화했지만, ‘최고 존재의 보호 아래에서’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는 군주와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타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훗날 교황 비오 10세는 “국가는 교회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며, 가장 해로운 오류”라며, 이를 “하느님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선언은 1958년 프랑스 헌법의 기초가 되었고, 유엔 세계인권선언과 유럽인권협약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속주의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정교분리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공식화한 1905년 법조차 왕당파와 반세속주의 세력을 달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이 법은 ‘분리’를 선언했지만, 국가가 모든 종교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공공기관에서 종교적 표현을 금지해야 한다는 ‘라이시테(laïcité)’ 원칙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가톨릭 사립학교에 대한 국가 재정 지원 등 세속주의 원칙의 훼손은 계속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프랑스 국가가 가톨릭 교회 앞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연설에서 가톨릭 주교들에게 “교회와 국가의 유대가 훼손된 것을 함께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 세속주의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국가가 가톨릭 교회에 사실상 종속돼 있음을 가장 분명히 보여준 사례는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적 학대 문제였다. 교회 내에서 수십 년간 광범위한 학대가 자행됐다는 방대한 증거가 있음에도, 프랑스 의회는 독립적인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고, 대신 교회가 스스로를 조사하도록 맡겼다. 그 결과 출범한 ‘아동 성적 학대 조사위원회(CIASE)’는 1950년 이후 약 33만 명의 미성년자가 성직자로부터 학대를 당했으며, 실제 피해 건수는 100만 건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왜 가해자나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자들에 대한 기소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2002년부터 2020년까지 리옹 대주교를 지낸 프랑스 가톨릭 최고위 인사였던 필리프 바르바랭 추기경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약 3,000명의 스카우트 단원을 학대한 성직자의 범죄를 알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파기원을 포함한 법원들은 유죄 판결을 뒤집으며, 학대 신고 의무는 교회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있고, 그 적용 시점은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온전한 성인’이 된 이후라고 판시했다. 이는 대부분의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학대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프랑스 정부의 태도다. 2021년 프랑스 정부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성직자 아동 학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질문들을 여러 차례의 상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외면했다. 이에 위원회는 미성년자를 성직자 학대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프랑스 국가에 공식적으로 물었다. 이 모든 실패는 수십만 명의 무고한 아이들이 교회 내 범죄로 인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삶이 완전히 파괴됐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범죄가 거의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그들의 고통 앞에서 철저히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1789년의 혁명과 1905년의 개혁은 교회가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프랑스에서 교회는 여전히 법 위에 존재하고 있다.

잔혹한 투우 축복 사제들에 단절 촉구

잔혹한 투우 축복 사제들에 단절 촉구

성학대 피해자가 폭로한 가톨릭 교회와 투우의 연관성 동물보호단체 PETA(동물윤리대우를 위한 사람들)가 최근 제작한 영상에서 성직자 성학대 피해자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잔혹한 투우의 연관성을 폭로하며, 교황 레오 14세에게 무고한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학대를 인정하고 교회와의 관계를 끊도록 촉구했다. 이 영상에 등장한 인물은 PETA 미국 지부에서 동물 학대 근절 운동을 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 다니엘 패든이다. 그는 과거 가톨릭 사제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라고 밝혔다. 패든은 “가톨릭 교리에는 인간이 동물을 불필요하게 고통스럽게 하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제들이 투우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우 경기는 종종 성인을 기리는 축제에서 열리며, 동물들은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 뒤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다. 매년 수만 마리의 황소가 고통스러운 의식을 통해 도살된다. 말에 탄 투우사가 황소의 등과 목에 창을 꽂으면, 이어 여러 명이 황소의 몸에 ‘반데리야’라 불리는 단검을 꽂는다. 황소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투우사는 칼을 황소의 폐에 찔러 죽이려 한다. 이 과정에서 황소는 종종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로 귀나 꼬리가 잘려 투우사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지고, 몸은 투우장에서 끌려 나간다. 또한, 가톨릭 사제들은 투우장에서 종교 의식을 집전하고 투우장 예배당에서 투우사들을 돌보기도 한다. 심지어 사제복을 입고 투우장에서 직접 소와 싸우는 사제들도 있다. 패든은 영상에서 “자비와 사랑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잔혹한 행위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I still wonder how one who preached compassion took pleasure in cruelty.)”며 “투우를 축복하거나 옹호하는 사제들에게서도 같은 모순을 본다. (I see that same contradiction in priests who bless or defend bullfighting,)”고 말했다.

인류 역사를 앞당긴 발견들

인류 역사를 앞당긴 발견들

○ 불을 만든 인류, 생각보다 35만 년 더 빨랐다 인류가 불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약 35만 년이나 앞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영 박물관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영국 잉글랜드 동부 서퍽(Suffolk) 지역의 한 들판 유적에서 약 40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 피우기 흔적을 확인했다. 이번 발견은 인류가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의도적으로 불을 만들고 관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학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 사용 증거로 알려진 것은 약 5만 년 전 프랑스 북부 유적에서 발견된 자료였다. 이는 초기 네안데르탈인 집단이 남긴 흔적으로, 뜨겁게 달궈진 점토 덩어리, 고온에 의해 부서진 부싯돌 손도끼, 그리고 불꽃을 일으키는 데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황철석 조각 두 개가 핵심 증거로 제시돼 왔다. 그러나 이번 서퍽 유적의 연대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를 가리킨다.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것은 유적에서 발견된 붉게 변한 점토층이다. 연구팀은 이 점토가 자연 산불의 결과가 아님을 밝히는 데 약 4년간의 정밀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구화학적 검사에서 섭씨 700도를 넘는 고온에 노출된 흔적이 확인됐고, 같은 장소에서 여러 차례 불이 사용된 정황도 함께 드러났다. 이는 한 번 스쳐 간 불이 아니라,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모닥불이나 화덕을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불에 의해 특유의 균열이 생긴 석기 도구들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황철석 조각의 존재는 불이 자연적으로 번진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 재료를 모아 불을 만들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이러한 증거들이 모여, 당시 인류가 이미 불을 다루는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 7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은 이미 두 발로 걸어다녔나? 아주 오래전, 약 700만 년 전에 살았던 생물의 화석에서 두 발로 걸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증거가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이 화석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인류의 조상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이번에 다시 연구된 화석은 2000년대 초에 발견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Sahelanthropus tchadensis)라는 종으로 연구팀은 3D 기술과 기타 방법을 사용하여 사헬란트로푸스의 대퇴골 결절을 분석했고, 이족 보행과 관련된 다른 특징들도 확인되었다. 과학자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허벅지 뼈다. 사람이 두 발로 걸을 때는 몸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근육과 인대가 허벅지 뼈에 붙는다. 연구팀은 이 화석의 허벅지 뼈에서 서서 걷는 데 꼭 필요한 돌기와 구조를 확인했다. 이런 특징은 네 발로만 걷는 동물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팔뼈와 다리뼈의 모양을 함께 살펴본 결과, 이 생물은 나무를 오를 때는 팔을 사용했지만, 땅 위에서는 두 발로 몸을 세우고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즉, 완전히 사람처럼 걷지는 않았어도, 이미 두 발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단계라는 것이다. 이 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시점이 생각보다 훨씬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이 화석에 대한 분석 결과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하며, 이는 이족보행이 우리 계통에서 초기에 진화했고, 오늘날의 침팬지와 보노보와 가장 유사한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보여준다”라고 결론지었다.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때

[진리를 묻다] 신의 작동을 포기한 집단을 종교라 부를 수 있는가?

뉴욕 교구·보험사, 아동 성학대 보상 책임 공방

숨겨진 가톨릭 사제 자녀들, 교회에 존재 인정 촉구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기쁨으로 끝까지 구원의 길 가길 소망해”

“기쁨으로 끝까지 구원의 길 가길 소망해”

저는 1952년 부산 동대신동에서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메리야스와 여성복, 군복 등을 만드는 의류 공장 세 곳을 운영하며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너무 어릴 때의 일이라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故 김용달 권사)로부터 여러 차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제가 3~4살 무렵, 어머니는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몸이 쇠약해져 부산도립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셨는데, 위와 갈비뼈 쪽에 암덩어리가 보인다며 석 달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먹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둘째 언니와 함께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는 잠결에 무척 아름다운 찬송가 음악종 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평소 장로교회에서 듣던 종소리와는 전혀 달랐고, 스무 날이 넘도록 계속 반복해서 들리니 이상하게 생각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장로교회로 가는 길에 꿈에서만 듣던 바로 그 음악종 소리가 실제로 들려왔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이 바로 동대신동 전도관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전도관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던 날, 어머니는 무릎을 꿇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남의 밭에서 오이를 따 먹었던 일부터 미처 죄라고 여기지 못했던 일들까지 하나하나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장로교회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기에 어머니는 그날 이후 장로교회에는 발길을 끊고 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니게 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서울에 출장을 간 친척에게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께서 한강모래사장에서 집회를 여셨는데,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꼽추의 등이 펴지는 등 병자들의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곧 부산에서도 집회가 열리니 꼭 가보라는 말에 어머니는 부산 집회에 참석하셨고, 그곳에서 안찰도 받게 되셨습니다. 줄을 서서 안찰을 기다리다가 어머니 차례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다 나았습니까?” 하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아픈 곳을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어찌 아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순간 몸이 가뿐해지며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어 본인도 모르게 “네, 다 나았습니다”하고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방긋 웃으셨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밥 한 그릇을 드실 수 있을 만큼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셨습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병원을 다시 찾아 검사를 받았더니, 의사는 암덩어리가 사라졌다며 깜짝 놀라더랍니다. 어머니는 이 일을 계기로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에 힘쓰셨고, 저희 가족 모두 부산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하나님께 안찰 받은 뒤 병이 깨끗이 나아 얼마 후 하나님께서 부산에 내려오셨을 때, 어머니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식사를 대접하셨고, 가족 모두 안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운영하던 공장 세 곳도 직접 둘러보시며 축복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후 저희 가족은 경북 김천으로 이사해 견사공업주식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공장 한쪽에는 제단을 마련해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왔고, 종업원들은 아침마다 찬송을 부르며 하루 일을 시작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다 1958년 소사신앙촌 건설이 한창일 때, 저희 가족은 첫 입주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지만, 신앙촌 안에는 양옥과 공장들이 반듯하게 줄지어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촌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신앙촌을 찾았고, 저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들을 안내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곤 했는데, 저 역시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가 세워지기 전 임시학교를 다닐 때는 등하굣길이나 오디나무 아래에서 오디를 따 먹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귀엽다 하시며 코를 살짝 잡아 주시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제 코를 잡아 주셨던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얼마 뒤 신앙촌 안에 학교를 짓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학교를 짓는다는 생각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 저도 어른들을 따라 조그만 돌을 옮겼습니다. 주먹만 한 돌을 들고 가 내려놓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안수해 주셨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기쁘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초등학교 3학년 초까지 지내다가, 저희 가족은 다시 김천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먼저 내려오고 외할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짐을 챙겨 오시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할머니를 특별히 부르셔서 유리병 하나를 축복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병에 물을 담으면 생명물이 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그 병에 물을 담아 아침마다 저희에게 한 컵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마신 뒤 문득 제 마음에 의심이 들었습니다. ‘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축복해 주신 것도 아닌데, 이 물이 정말 생명물일까?’ 그래서 저는 집에 있던 두 개의 병에 각각 물을 담아 한 병에는 ‘생명물’, 다른 한 병에는 ‘물’이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약 1년쯤 지난 뒤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두 병의 상태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물’이라고 적은 병의 물 색은 누렇게 변하고 이끼가 낀 듯했으며, 뚜껑을 여는 순간 썩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반면 ‘생명물’이라고 적은 병의 물은 처음 그대로 맑은 상태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병에 담긴 물이 정말 생명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병에 물을 담아 두었더니 생명물이 되었고 1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맑아 1년 후, 저희 가족은 다시 소사신앙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제단 한쪽에 이슬처럼 동글동글한 물방울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이곤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만져 보려 하면, 눈을 뜨는 순간 사라지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제가 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어머니께 보여 드렸더니, 그것이 바로 이슬성신이라고 하셔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 번은 예배 중에 꽃향기 같은 향긋한 냄새가 계속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취 은혜라고 하셨고, 그때 저는 ‘아,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하나님께서는 전국을 다니시며 전도 집회를 여셨습니다. 학교를 쉬는 날이면 저도 그 길을 함께 따라나섰습니다. 집회 장소에 먼저 도착한 특전대 관악부가 찬송가 96장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를 연주하며 “지금 불의 사자 감람나무께서 오시니 모두 가십시다”라고 외치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등을 밀어 드리며 언덕 위 교회까지 안내했는데, 그렇게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예배실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면 저희는 예배실 밖에 서서 창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그 시간은 제게 무엇보다 기쁘고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스무 살 무렵,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기장신앙촌에 입사해 약 8년 동안 수출 봉제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신앙촌상회에서 잠시 일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LA 제단에 다니기는 했지만, 여러 사업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신앙에 온전히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건강이 점점 나빠지면서 문득 삶이 부질없게 느껴졌고, 그럴수록 신앙촌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결국 저는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다시 기장교회를 다니며 소비조합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는데, 신기하게도 제 귓가에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라는 찬송가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그 찬송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은 물론,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호흡기 장애로 숨 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때 어머니 귀에 “걱정하지 마. 기장까지 내가 데려다줄게”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셨다고 합니다. 그 말씀 그대로 저희는 무사히 기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이어오시던 어머니께서는 1999년, 80세를 일기로 운명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는 기장신앙촌 장례반 권사님들께서 도와주셨습니다. 평소 간경화를 앓고 계셨지만, 입관할 때 생명물로 씻겨 드리고 입에도 넣어 드리자 얼굴이 환하게 피었고, 굳어 있던 몸도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신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니를 평안히 보내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30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명물로 온몸을 씻겨 드리자 얼굴이 환하게 피며 평안해 보이셨습니다. 두 분 모두 생명물로 환하게 피어 가신 모습을 직접 보며, 저는 하나님과 생명물의 권능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신앙촌 여러 부서를 거쳐 다시 기장신앙촌 소비조합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신앙촌 간장 선물세트 영업으로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누군가 제 등을 살짝 밀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더욱 힘을 내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하나님께서 곁에 함께 계시는 듯 등을 살짝 밀어주셔 소비조합원으로 일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저희에게 기쁨을 주시고 일할 힘과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시면서도 더럽고 추한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건강을 허락해 주신 이 시간 동안, 기장신앙촌 소비조합원으로서 맡겨진 사명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오늘도 은혜를 전하며, 죄 씻음 받아 천국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눈물로 기도드릴 때 맡아지던 향취 은혜, 지금도 잊을 수 없어”

“눈물로 기도드릴 때 맡아지던 향취 은혜,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저는 강원도 원주시 귀례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이사하시면서 세 살 무렵부터 충청북도 충주에서 자랐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스물세 살에 첫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에 남편이 군대에 갔습니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홀로 남겨진 저는 먹고 살기 위해 아이를 업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야했습니다. 시장에서 사과도 팔고, 빗·실·성냥·비누 같은 잡화도 팔아봤지만, 경험도 없고 서툴다 보니 수익이 나지 않아 돈을 손에 쥐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와중에 기침이 심해지고 피까지 토하길래 병원에 가보니 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결핵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되면서, 그나마 생계를 이어주던 장사도 더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소식을 들은 남편이 보건소에서 약을 지어주겠다고 하여 당분간 남편의 군부대와 가까운 가평에서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핵약을 먹어도 별다른 차도 없이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평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반찬이 없어 밥만 먹으려니 도저히 목으로 넘어가지 않아 간장이라도 사 와야겠다는 생각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마침 커다란 항아리에서 간장을 담아 가는 사람들이 보여 그들을 따라 줄을 섰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간장을 받으려는데, 간장을 담아 주시던 분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친근하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원래 충주에 살았는데 몸이 아파 남편이 근무하는 가평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병색이 짙은 제 얼굴을 보시곤 사정이 딱해 보인다며 간장값은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전도관에 다니고 있는데, 전도관에서 병을 고친 사람이 많다며 한 번 와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호의를 받은 저는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찾아가게 된 전도관 그 주 일요일이 되자 저는 전도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간장을 무료로 주셔서 고맙기도 했지만, 전도관에서 병을 고친 사람이 많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가평 현리에 있는 전도관을 찾아갔습니다. 교회에 다녀본 적은 없었지만, 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예배실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저는 하나님께 저 좀 살려 달라고, 제가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냐고, 제발 살려달라고 정말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울며 기도를 드리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좋은 냄새가 났지만,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인 줄도 모르고 ‘어디서 이런 좋은 향기가 나지?’ 하고 잠시 궁금해하다 말았습니다. 그것이 향취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날 무렵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는데, 저는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가져오지 못해 마음이 무척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생활비를 아껴 10원을 겨우 마련해 갔습니다. 적은 금액을 드리는 것이 송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모든 사정을 아실 것이라 믿고 정성껏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실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순간 제 목에서 작은 핏덩어리가 툭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워서 급히 바닥을 닦고, 예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보건소에 약을 타러 갔는데, 진찰을 마친 의사가 말하기를 몸이 많이 좋아져서 약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핵에 걸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몸이 갑자기 호전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꽤 오랫동안 약을 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도관을 다녀온 뒤로 기침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다음 날부터 바로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울며 기도드리는데 향취를 맡게 되었고 전도관에 다닌 이후로 고쳐지지 않던 결핵 완치돼 그 뒤로 향취 은혜를 자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향긋한 냄새가 확 느껴졌는데, 백합꽃 향기보다도 더 은은하고 기분 좋은 향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게 좋은 향기가 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향취를 맡고 나면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면서 기쁨이 샘솟았기에, 그 향기가 향취 은혜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하던 중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것이 가슴 속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온몸이 후끈하게 뜨거워졌다가 점점 시원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른 권사님들께 말씀드리니, 그것은 불성신을 받은 것이라 하여 더욱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며 저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드릴 때 은혜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향취 은혜를 맡거나 불성신을 받았던 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드렸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다시 충주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충주에도 전도관이 있어 신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로 기억하는데, 한 번은 하나님께서 안찰을 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장신앙촌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안찰을 받았고, 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안찰해 주시며 “열심히 따라와. 어려워도 끝까지 따라와야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날 들은 말씀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제 마음에 남아 신앙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안찰받던 날 “끝까지 따라와야 해” 하시던 말씀 깊이 새기며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따라가고 싶어 2018년 축복일에도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지금 매립지 쪽에 축복이 내리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매립지 쪽으로 달려갔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선명한 빛기둥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크고 환한 빛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날 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참 동안 그 빛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2020년에는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장한희 권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장 권사님은 평소에도 늘 부지런하셨고, 교회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시며 항상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살이 빠져 볼이 홀쭉하게 패인 모습이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고인의 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리고, 입에도 생명물을 넣어드렸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모여 함께 찬송을 불렀는데, 어느 순간 권사님 얼굴을 보니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는 것이었습니다. 뼈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얼굴이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피부는 뽀얗게 피어나 얼마나 편안하고 고와 보였는지 모릅니다. 권사님의 아드님은 “어머니 얼굴이 예뻐지셨어요”라며 매우 놀라워하셨고, 그 자리에 있던 교인들 또한 잠든 듯 평안해 보이는 권사님의 모습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게 피어나셨다며 감탄했습니다. 2023년에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은 천부교인이 아니었지만 남자 청주교회 관장님께 부탁을 드려 천부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남자 교인들이 오셔서 생명물로 남편을 씻겨드리고 정성껏 예배를 드리셨는데, 입관예배를 마치고 본 남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남편은 생전에 검버섯과 점이 많은 편이었는데, 입관 예배를 드리고 나니 그 많던 점과 검버섯이 거의 사라지고 얼굴이 한결 하얘 보였습니다. 저보다 늦게 남편의 얼굴을 본 딸들도 “아버지 얼굴이 너무 깨끗해요” 하며 무척 기뻐했습니다. 입관예배에서 생명물의 권능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 보고 놀라움 금치 못해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돌아보니 제 삶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가득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병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살 길이 막막하기만 했던 시절, 펑펑 울며 기도드리던 제게 귀한 은혜를 허락하시어 다시 살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하늘의 권능으로 함께해 주시며 슬픔을 거두어가시니 마음에는 평안함과 감사가 남았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도 그 은혜를 간직하며 더욱 밝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말씀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마지막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2000년대 천부교는 안팎으로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성전이 국내외 곳곳에 세워지고, 천부교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가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신앙촌이 조성되어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진실을 바로 세운 ‘MBC 사건’ 승소 2000년대의 시작은 천부교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9년 6월, MBC가 기획 시리즈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를 방영하며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이에 천부교단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0월 27일 서울지법은 MBC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 교단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바로 세운 사건이었다. 이는 천부교를 올바르게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내외에 세워진 신‧개축 천부교회 2000년대 들어 천부교는 전국 각지에서 새 제단을 세우거나 개축하며 신앙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 나갔다. 부산 광안교회, 제주 일도교회, 인천 숭의교회를 시작으로 울산, 동두천, 원주 등지에 성전이 세워졌고, 2001년 12월 23일에는 미국 뉴욕 퀸즈 지역의 뉴욕교회가 개축되었다. 1978년 뉴욕전도관으로 개관한 뉴욕교회는 개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며, 한국을 떠나 생활하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신축의 열기가 이어져 기장, 전농, 가야, 영주, 청평, 순창, 서마산교회 등에서도 새 제단이 완공되었다. 2008년 10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 워싱턴교회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신축예배를 드렸다. 국내외에서 새롭게 단장한 성전들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널리 전하며, 진리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천부교를 알리는 홈페이지 개설 2004년 4월 20일, 천부교 공식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천부교와 신앙촌에 대한 소개와 정보, 천부교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관, 예배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온방송국,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된 어린이 코너 등 다양한 채널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천부교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 코너는 학습과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18년에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커뮤니티와 신앙신보 코너를 추가하고 소통과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천부교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천부교 홈페이지는 천부교를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 다큐멘터리 상영 2005년 추수감사절 전야 샘터공원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이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고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 집회,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은혜를 받는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 큰 감동을 주었다. 영상은 또한 정치·종교계와 언론의 핍박 속에서도 신앙촌 건설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하며,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죄 안 짓고 깨끗이 생활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신앙인의 마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큐에는 유엔 한국 재건단 콜터 단장이 소사신앙촌을 방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라고 감탄한 증언도 담겼다. 또한 1998년 9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천부교인의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본 카르멘 코토 여사의 증언도 수록되었다. 코토 여사는 “장의사로 8년 반을 일했지만, 천부교 장례식에서 고인의 손과 몸이 제 살보다 더 부드럽게 변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코닥사의 축복 사진 감정서도 영상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역사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았던 이경태 감독은 “천부교인들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정말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라면 인생이겠지만,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마다 이어진 천부교 체육대회 1998년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체육대회가 자리 잡았다. 2001년 10월 7일, 신앙촌 제강운동장에서 ‘건강한 시온인 달리는 시온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부와 남부지역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5km 건강 마라톤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뛰며 서로를 응원해 활기를 더했고, 각 팀이 준비한 화려한 응원전은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2004년 10월 3일에는 ‘희망찬 도전, 아름다운 화합’을 주제로 또 한 번의 체육대회가 열렸고, 2007년 10월 7일 신앙촌 대운동장에서는 ‘힘찬 도약, 함께 뛰는 시온인’을 슬로건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림과 글씨, 다양한 동작으로 ‘신앙촌’을 표현하는 테마 응원전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지금도 천부교 체육대회에서는 경기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기르고, 응원을 통해 하나 된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촌 조성 2006년 신앙촌에 대규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군락지와 식당 앞 분수대가 조성되었다. 사원들의 휴식처이자 축복일에는 교인들의 산책길로, 견학생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로 활용되는 두 공간은 신앙촌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7년 5월에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신앙촌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며, 사원과 교인 모두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전도관 신앙운동에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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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세계 종교 탐구 <53> 성경만 주장하는 예수의 부활. 십자가에서 죽기는 했는가? ①

오피니언
[나침반] 이탈리아 감독 루치아노, 가톨릭교회 루프니크 사제의 수녀 성학대를 주제로 다큐 제작…영성은 악으로 작동해 악을 낳은 것 外

[나침반] 이탈리아 감독 루치아노, 가톨릭교회 루프니크 사제의 수녀 성학대를 주제로 다큐 제작…영성은 악으로 작동해 악을 낳은 것 外

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신의 작동을 포기한 집단을 종교라 부를 수 있는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3. 핍박의 고장에 은혜의 집회…하나님이 기뻐하심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오랜 시간 건강을 지켜준 ‘요구르트 런’

오랜 시간 건강을 지켜준 ‘요구르트 런’

박종구 권사(75세, 서마산교회)는 신앙촌 요구르트 ‘런’이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꾸준히 섭취해 왔다.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런을 중심으로 식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진단 당시부터 수술 이후의 선택, 그리고 현재의 일상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 런을 오래 드셔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건강 상태와 평소 식생활은 어떠신가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수술을 했었나 싶을 정도예요. 런은 출시 이후 하루에 한 통(12개)씩 꾸준히 마셔왔고, 많을 때는 두 통 정도 마시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는데, 저는 런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물도 자주 마시고, 식사는 자연식 위주로 합니다. 집 텃밭에서 난 채소를 먹고 운동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 대장암 판정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런이 출시된 지 1년쯤 지난 2006년 봄이었어요. 선혈이 보여 처음에는 변비인 줄 알았습니다. 출혈이 심해지던 차에 회사에서 국가검진을 받았고,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죠.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장 전문의를 만났는데, 대장암 말기라며 두 달밖에 못 산다고 하더군요. # 그 이후 바로 수술을 받으셨다고요. 수술 과정과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출혈이 심하고 종양이 크다며 큰 병원으로 가서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산대학병원에 연락했는데, 마침 다음 날 하루만 수술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그렇게 바로 내려가 새벽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막상 수술을 해보니 전이는 없다고 하더군요. 종양은 컸지만 퍼지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술 후에는 병원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다고 했고, 퇴원하면서 약을 받았는데 제 몸에는 너무 독했는지 속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약은 먹지 않았고 대신 런을 더 많이 마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런이 제 몸에 도움이 됐다고 느꼈고, 그래서 믿고 선택했습니다. # 수술 이후의 생활과 이 경험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대우조선에서 배를 만들며 용접 일을 했는데, 수술하고 두 달쯤 지나 회사에 복귀해 2년 정도 더 일하다가 퇴직했습니다. 수술 후 2년쯤 지나 처음 진단받았던 의사에게서 ‘살아 있느냐’는 전화가 와 병원에 다시 갔어요. 검사를 해보더니 장 상태가 젊은 사람 못지않게 깨끗하다며 많이 놀라워했습니다. 저는 런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을 말해도 믿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유명한 암센터에 다녀온 분들 가운데서는 런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공감해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 안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음에 늘 감사드립니다. 사는 날까지 하나님 일을 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간절한 기도로 전도의 길 열려

간절한 기도로 전도의 길 열려

전도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만, 뜻대로 열매를 맺기는 쉽지 않다. 마산교회 김미혜 관장은 교역자로 나온 이후 그 해답을 기도에서 찾으며, 전도의 출발점을 기도로 삼아왔다. “발령을 받을 때마다 그곳의 상황에 맞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기도했습니다. 예를 들면 축복일에 참석할 아이들 몇 명, 주일 예배에 올 아이들 몇 명 등, 아이들을 떠올려 보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교회 아이들을 지도하는 반사 선생님이 있는 경우에는 교역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렸고, 요즘에는 학부모님들도 함께 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립니다. 막연히 잘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목표를 세워 기도하다 보니 그 방향에 맞춰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움직이게 됐다. 철야 기도의 힘 가좌교회로 발령받은 뒤에는 전도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다. 코로나 이후의 여파에 다리 부상까지 겹치며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신앙체험기를 읽다가 한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신앙체험기를 읽는데 ‘아, 나도 철야 기도를 드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어요. 그래서 ‘한 번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예배실에 갔습니다.” 완전한 철야는 아니었지만,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약 5시간 동안 기도를 이어갔다. “중간에 그만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12시는 넘겨보자’ 하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날의 기도는 절박함 그 자체였다. “전도는 하고 싶은데 몸도 아프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너무 간절했어요. 교회에 오는 아이들이 많이 생기게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도의 문을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천부교회를 다녔던 한 아버지로부터 가족들을 가까운 천부교회로 연결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첫 예배를 드리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한 학부모님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고 하셨지만, 천부교회에 와보니 마음이 너무 편안하다고 하셨어요. 그날 이후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한 가족이 교회에 나온 이후, 천부교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또 다른 학부모도 자녀와 아이의 친구들까지 데리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어려웠던 곳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새로운 목표 청주로 발령을 받은 뒤에도 김미혜 관장은 다시 목표를 세웠다. “축복일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더 많은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들도 함께 전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자 일상 속에서도 전도의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택배를 이용하러 가면 가끔 엄마 옆에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교회에 한 번 와보시라고 말씀을 드렸죠. 어느 교회냐고 물으시길래 천부교회라고 했더니, 어릴 때 다녔다며 무척 반가워하시면서 다음 주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먼저 말씀하셨어요.” 그 학부모는 실제로 다음 주에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고, 이후에는 자신의 친구와 그 자녀들까지 교회로 이끌었다. “이제는 교회에 오시면 만들기도 함께하고 정리도 도와주세요. 지금까지 한 번도 예배를 빠지지 않고 나오고 계십니다.” 기도로 얻은 용기 물론 전도의 길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노방 전도 중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며 한동안 마음이 위축되기도 했다. “그때는 용기가 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다시 기도를 하면서 이렇게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신 것 같아요.” 용기 내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아이들이 교회로 몰려들어오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 현재 김미혜 관장은 마산에서도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 전도에도 힘쓰고 있다. 방향을 정해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움직일 때 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앞설 때도 있지만, 막상 부딪혀 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놓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간절한 기도와 실천인 것 같습니다.” 김미혜 관장은 전도된 사람들을 보며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부모님들이 직접 와서 보시면 아이들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세요. 아이들을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전도된 분들이 신앙 안에서 튼튼히 뿌리내려,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앙인으로서 본연의 자세

신앙인으로서 본연의 자세

퇴근길에 계단을 올라 기숙사로 향하는 길 끝에는 가로등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 길을 지날 때면 환하게 빛을 내며 ‘어서 와, 오늘도 수고했어’ 하고 반겨주는 듯해서, 불이 꺼진 날에는 괜히 서운한 마음마저 들곤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불빛이 지나치게 노랗고 어두워져, 길을 비추어야 할 가로등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로등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주변을 밝히려 애쓰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둠을 몰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나 또한 이 가로등처럼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촌에 살면서 신앙인으로서 맡겨진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의 신앙을 키우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릴 적에는 막연히 ‘나도 나중에는 멋진 어른이 되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요즘에야 깨닫습니다. 멋진 어른은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듬고 키워 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다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힘껏 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의 심성을 잘 아시고, 낙심하지 말라 위로하시며 다시 한번 힘을 내 살아갈 용기를 주시는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실천하는 한 해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신앙신보를 통해 전도돼

신앙신보를 통해 전도돼

어릴 때 교회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저는 20대에 친구가 전해 준 신앙신보를 통해 천부교회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유난히 약했던 제게 하나님 말씀과 체험담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체험담 속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저 역시 그 은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부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 나와 생명물을 마시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면서 몸은 점차 좋아졌습니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제가 지금은 신앙촌상회 사장이 되어 일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신앙신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신앙신보를 통해 제가 전도되었고,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혼자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이 길로 이끌고 싶어, 오늘도 저는 신앙신보를 건네고 있습니다.

주니어

노력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

노력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

신년 데커레이션으로 활기 더해 합창 발대식, 케이크 클래스 열려 학생 축복일 예배가 신앙촌에서 1월 4일에 있었다. 하루 전인 3일 오후부터 신앙촌에 입장한 학생들은 신년을 맞아 조명과 장식으로 꾸며진 신앙촌 곳곳을 거닐며 사진을 남겼다. 학생들의 밝은 표정과 웃음으로 신앙촌에서의 새해 첫 축복일은 활기를 더해갔다. 저녁식사 후에는 레스토랑에서 열린 신년 음악회와 합창단 발대식에 참석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4일 축복일 예배에서 김영희 관장 (전주교회)은 “전 세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운동선수들은 방법을 몰라서 온종일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실력을 쌓아가고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분야에 최고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은 구원을 얻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때가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는 행함으로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어야 하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구원의 자격자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천부교 여학생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설교했다. 예배 후 2부 순서로 ‘과일 듬뿍 케이크 클래스’가 열려 달콤한 과일과 생크림으로 직접 케이크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4. 하나님이 기뻐하신 성경 속 인물(다니엘과 세 친구③)

84. 하나님이 기뻐하신 성경 속 인물(다니엘과 세 친구③)

받은 은혜를 전할 때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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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회전 수학퀴즈 정답 발표

두뇌회전 수학퀴즈 정답 발표

손정숙 권사님 편(1)

손정숙 권사님 편(1)

교양

폭염에 뒤덮인 호주, ‘재앙’ 수준 산불 확산

폭염에 뒤덮인 호주, ‘재앙’ 수준 산불 확산

폭염과 건조한 기후로 통제불능 사망자 발행, 수백 가구 피해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가 기록적인 폭염과 건조한 기후 조건 속에서 1월 7일 시작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겪었다.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는 가운데 강풍과 함께 불길이 확산하며 수십만 헥타르의 산림과 농지가 소실됐고,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현지 당국은 산불이 닷새째 진화되지 않고 있으며 빅토리아 전역에서 30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 주간 이어진 폭염과 건조한 바람이 산불 위험을 ‘재앙’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소방대원들은 수천 명이 투입돼 진화 작업에 나섰지만 상황이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산불로 인해 35만 헥타르가 넘는 숲과 농지가 불탔으며, 주택과 농업 시설 등 3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다. 또한 전력망이 무너져 수천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기는 등 생활 기반 시설에도 큰 타격이 발생했다. 산불이 시작된 이후 기온이 최고 46도까지 올라가는 등 극심한 폭염이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강풍이 예보되면서 진화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번 산불로 성인 2명과 아동 1명이 실종된 사례도 보고됐다. 당국은 실종자 수색 작업과 함께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과 함께 각종 경보를 발령했다. 호주 연방 정부는 피해 주민과 농업 지역을 위한 긴급 재정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가축 사료 공급과 같은 농업 지원이 포함된 재건 방안이 논의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폭염, 강풍, 장기 가뭄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로, 기후 변화가 산불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산림 관리 강화와 기후 대응 정책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대두되고 있다. 대기질 또한 산불 연기로 악화되면서 인근 주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 당국은 주민들에게 불필요한 야외 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2019~2020년 ‘블랙 서머’ 산불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며, 빅토리아주와 주변 지역은 긴 회복 과정을 앞두고 있다.

인류 역사를 앞당긴 발견들

뇌의 또 다른 기준

“한겨울의 따뜻한 벗, 책 속에서 찾는 삶의 온기”

알록달록 파프리카

알록달록 파프리카

색으로 달라지는 파프리카의 영양 성분 다양한 색을 함께 먹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 추운 겨울철, 면역력 강화를 위해 비타민C를 찾는 사람이 많다. 이때 대표적으로 꼽히는 채소가 파프리카다. 다양한 색을 가진 파프리카는 비타민C뿐 아니라 베타카로틴, 칼륨, 식이섬유 등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함유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매체 <허프포스트>는 색깔이 다른 파프리카의 영양학적 특징과 효능을 소개했다. 파프리카의 색깔은 익은 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공인 영양사 진저 헐틴은 “파프리카가 덩굴에서 익어가면서 엽록소가 분해되고, 항산화 물질인 카로티노이드가 증가한다”며 “색 변화는 곧 영양 성분의 변화와 연결된다”고 말했다. ▲ 가장 영양가 높은 빨간 파프리카 빨간 파프리카는 가장 오래 익는 만큼 항산화 성분이 가장 풍부하다. 공인 영양사 매기 미칼치크는 “빨간 파프리카는 비타민C와 비타민A 함량이 가장 높으며, 그다음이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순”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스페인 비고대 연구팀에 따르면 붉은 피망은 모든 색상의 피망 가운데 비타민C 함량이 가장 높았고, 초록색 피망보다 최대 60% 더 많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혈관 · 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노란 파프리카 빨간 파프리카가 영양가 면에서 가장 뛰어나지만, 다른 색의 파프리카 역시 고유한 장점을 지닌다. 노란색 파프리카에는 혈액 응고를 막는 ‘피라진’ 성분이 들어있어, 고혈압,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도 풍부한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모세혈관의 벽을 튼튼하게 만들어 전반적인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말레이시아 국제 이슬람대 연구팀에 따르면 노란색 피망은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루테인과 자아잔틴 함량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 다이어트에 가장 유리한 초록색 파프리카 초록색 파프리카는 가장 덜 익은 상태로, 엽록소가 풍부해 초록빛을 띤다. 헐틴은 “초록 파프리카는 아직 천연 당분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다른 색의 파프리카보다 열량이 낮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빨간 파프리카 1개당 열량은 약 37kcal인 반면, 초록 파프리카는 약 24kcal에 불과하다. 여기에 식이섬유 함량도 높아 장 건강을 돕고 비만 및 만성질환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다만, 전문가들은 색깔별 영양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특정 색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공인 영양사 카라 라이던은 “각 파프리카는 서로 다른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며 “다양한 색의 파프리카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영양학적 이점을 최대한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제부터 운동 시작! 걸을까? 달릴까? 고민 말고 둘 다 하세요!

겨울철 대표 과일 귤, 껍질마저 버릴 것이 없다

눈 건강 지키는 10가지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