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은혜의 한마당, 체육대회

발행일 발행호수 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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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체육대회는 초창기부터 천부교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신앙체험기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던 전도관 체육대회부터 신앙촌에서 개최된 천부교 체육대회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육신의 병고에서 놓여나 새 삶을 얻은 사람들의 환호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뛰고 함께 웃으며 기쁨과 은혜가 가득한 체험담을 발췌했습니다.

기량 겨루는 선수들과
응원하는 사람들 속에서
새하얀 운동복 차림으로
함께 달리시던 하나님

1957년 10월, 서울 이만제단에서 대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기간 중에는 제3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려서 축구, 농구, 배구, 100m 달리기, 릴레이, 마라톤 등 다양한 종목에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열전을 벌였습니다.
서울 운동장(現 동대문 운동장) 응원석을 가득 메운 교인들이 다 함께 깃발을 흔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신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부산 팀 소속이었던 제가 릴레이 주자로 운동장을 힘차게 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열심을 다해 기량을 겨루는 선수들과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새하얀 운동복 차림으로 함께 달리시던 하나님……. 생각할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저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김복동 집사(신앙체험기 9집 수록)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 교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운동장에 들어와서 관람을 했습니다. 그때 순서 중에 ‘가장행렬’도 있었는데 가장행렬의 한쪽에는 이만제단 모형을 앞세우고 학생부터 어른까지 힘차게 찬송가를 부르면서 행진하였고, 다른 한쪽은 기성교회의 모형과 장님 목사를 따라서 더듬더듬 걸어가는 행렬이었습니다. 저는 이만제단의 아줌마 교인으로 분장해서 가장행렬에 참가했었는데, 행렬을 마친 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빵과 과자를 사람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문형 권사(신앙체험기 9집 수록)

전도관 체육대회에 참석했던
윤치영 의원 등 친선경기 펼치기도
모두 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전도관 체육대회에서 어린이부터 전도사님들까지 친선경기를 하는 것 또한 큰 재미였습니다. 한번은 윤치영 의원님을 비롯한 어른 분들이 운동장에 나가셨는데, 가만 보니 머리가 벗겨진 대머리인 분들만 나와서 공 굴리기 게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잖으신 어른들이 햇살에 머리를 반짝이며 열심히 공을 굴리시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관중석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경기를 하시는 분들도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참으로 기쁘고 즐겁게 보냈던 그 시간이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곤 합니다.
정순실 권사(신앙체험기 9집 수록)

1957년 7월 11일부터 한 주일간 밀양전도관에서 부흥집회가 열렸을 때 집회 기간 중에 공설운동장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체육대회를 며칠 앞두고 날씨가 흐려 걱정을 했는데, 개회식 전날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회에 참석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우리 식구들은 우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밀양에 도착하여 운동장에 들어서시자마자 쏟아지던 비는 딱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손뼉 치며 환호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모래가 많아 빗물이 곧 스며들어 체육대회와 집회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박용한 승사(신앙체험기 5집 수록)

제 큰 아들 철종이가 어렸을 적에 감기를 앓다가 열이 심하게 나면서 고막이 터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귀가 들리지 않아 속상해하며 다른 아무런 대책 없이 지냈는데, 그 아들과 제가 1956년 10월 제 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종이가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응원을 하며 신이 나게 운동회를 치렀는데, 아들과 저는 서로 떨어져서 앉아 있다가 나중에 체육대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저를 보자마자 “엄마, 나 말이 들려.” 하고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운동회 중에 응원을 하다가 “할렐루야! 만세!” 하고 외치는 순간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귀에 확 들어오면서 그때부터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오보부 권사(신앙체험기 4집 수록)

저는 산나물을 잘못 먹고 채독(菜毒)에 걸린 후로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속이 메스꺼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눈에 띄게 여위어 갔습니다. 원래 잔병치레 없이 건강했던 저는 학교에서 육상 선수로 활동했는데 시름시름 앓게 되면서 마음에도 병이 찾아왔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내가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며 비관하고 낙담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 언니가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다녀왔다면서 “그분이 집회를 하시면 수많은 병자들의 병이 낫는대. 너도 박 장로님 집회에 가면 나을지 몰라.”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때마침 박 장로님께서 서울에 큰 교회(이만제단)를 세우시고 열흘 동안 개관집회를 하신다고 하여 작은어머니와 같이 서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57년 4월이었습니다.

열흘간의 집회 기간 중에는 3일 동안 체육대회도 함께 열렸는데, 서울운동장으로 향하는 교인들의 인파에 묻혀서 저도 체육대회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운동장 본부석에 계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만면에 미소를 띠우신 모습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바라보셨습니다.

대회 중에 안내 방송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학교에서 육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학생 때 육상 선수를 했었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분이 “그럼 나가서 뛰어 봐요.”라고 했습니다. ‘아픈 몸인데 뛸 수 있을까?’ 하고 주저하면서도 그분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100미터 경주에 나갔습니다.

아프지만 용기를 내어 출전했던
100미터 달리기에서 1등으로 골인
건강을 되찾은 그날 평생 잊지 못해

그런데 시작 신호와 함께 운동장 트랙을 박차고 나갈 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발이 땅에 닿는 것이 아니라 공중을 휙휙 나는 것처럼 제 몸이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1등으로 골인한 후 얼른 뒤를 돌아보니 2등이 한참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으며 본부석의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저를 보시고 활짝 웃으시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셨습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하여 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가슴속으로 외치며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 그날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경근 퇴임 관장(신앙체험기 400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던 저는 2007 천부교 체육대회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고객 세 분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체육대회 전날에 한 분이 저에게 신앙 토론을 하자고 하시며 “왜 예수가 구원을 줄 수 없다고 하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셔서 한참 동안 토론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 세 분 모두 경기를 관람하며 무척이나 즐거워했습니다. ‘추억의 고무줄’ 경기를 할 때는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동요를 따라 부르느라 목이 다 쉬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셨고, 다음에 다시 신앙촌에 오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저도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김정자 권사(신앙체험기 9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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