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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중에 머리카락 타는 것 같은 죄타는 냄새가 진동해

홍정순 집사(2) / 기장신앙촌

저는 제단에 다니면서 ‘박태선 장로님은 감람나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장로님을 보고 왜 나무라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은 이슬 같은 은혜와 향기를 내리시는 분이며, 성경 호세아서에 보면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시는 분은 감람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에도 이슬 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

꿈에서 뵈었던 인자한 분이 박 장로님이었다는 언니 말에 놀라

홍정순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2년 충청남도 신도안이라는 곳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불교 신자로 절에 자주 다니셨으며 매일 새벽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의 평안을 빌곤 하셨습니다. 성품이 온화하신 부모님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항상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열아홉 살에 논산으로 시집을 가서 얼마 동안 큰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운수업을 하던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모아 둔 […]

구원은 자유율법 지켜서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될 때 얻는 것

홍경희 권사(2) /기장신앙촌

집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온몸이 가뿐하고 상쾌하여 발이 땅에 닿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고, 아무런 걱정 없이 마냥 기쁘기만 했습니다. 집회장에서 계속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집회가 끝나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노구산집회에 다녀온 후부터 저는 대부도전도관에 나갔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와 향기를 내리시는 존재

홍경희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7년 인천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지가 은행장으로 일하셔서 부유하게 생활하다가 재산을 크게 잃는 일을 겪고 가세가 기울어 인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대부도 섬마을에 살면서 부모님은 여러 가지 장사를 하며 식구들의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저도 철이 나면서부터 살림을 도우려고 틈틈이 조개 잡는 일을 했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열아홉 살 되던 때였습니다. 해질 […]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박순절(3) / 기장신앙촌

그 후 1962년에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덕소신앙촌에 입주하여 계속 만나식당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 있는 막내 동생이 어머니가 중풍에 걸리셨다는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 도개면 고향 집에 내려갔더니 어머니는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셔서 얼마 동안 제가 집에 머물며 간호를 해 드렸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설득해 도개제단에 같이 나가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전도관을 다니는 것을 반대하셨던 분이었는데 제가 […]

하나님 서신 단상에서 이슬성신이 쏟아지는 것을 목격

박순절(2) / 기장신앙촌

그 후로도 어머니의 반대는 계속되었지만 저는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어머니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머니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시지만 제가 이 길을 계속 간다면 언젠가는 어머니도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도 이 길을 알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이 제목이 되었습니다. 신앙촌 주민과 […]

꿈에서 뵈었던 분을 실제로 뵙게 되니 참으로 놀랍고 신기해

박순절(1) / 기장신앙촌

저는 1936년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의 농가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을 돕기도 하고 가끔씩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교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불교 신자였지만 제가 교회에 자유롭게 다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스물두 살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어떤 신사 분을 뵙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분은 […]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인 것 깨달아

이경수 승사(3) / 덕소신앙촌

2년 가까이 산판에서 일한 후에는 소사신앙촌에 돌아와 비누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때 주일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반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참 귀한 직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1962년에 전도사로 나갈 청년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뜻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20여 명의 청년들이 […]

안찰 하시며 ‘이 고집과 혈기가 다 빠져야 돼요’ 지적 하셔

이경수 승사(2) / 덕소신앙촌

당시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한창 건설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신앙촌에 대해 말씀하시며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앙의 울타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촌 건설대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자원했습니다. 신앙인의 마을을 건설하는 일에 저의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신앙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1958년 2월경 신앙촌에 […]

은혜를 받고 난생 처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려

이경수 승사(1) / 덕소신앙촌

제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병산리의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식구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지만 저는 동네 형과 함께 일요일마다 꾸준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장연 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열일곱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습으로 학교도 문을 닫고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자 가족들은 저에게 잠시 이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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