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세계 종교 탐구 <38> 홀로코스트의 뿌리를 찾아서-②

세계 종교 탐구 <38> 홀로코스트의 뿌리를 찾아서-②

▣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다. 반유대주의적 유대인 학살 사건 중 가장 피해 규모가 큰 것은 독일제국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유대인들을 완전히 말살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광기와 잔인함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것은 분명히 히틀러와 나치독일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독교라고 본다. 기독교의 반유대주의가 대학살을 가능케 한 확실한 기반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유대인을 악마로 간주하는 사상에 감염되게 된 데에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적 기독교 전통이 크게 작용했다. 유대인은 고리대금업자, 불경스런 배신자, 의식 살해범, 기독교에 반항하는 위험한 음모자, 또는 도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부류라는 이미지가 이미 확고하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치는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고안해 낼 필요가 없었다. 거의 2천 년 동안 기독교 세계는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비인간화시켜 왔고, 그 비인간화의 극치인 대학살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를 죽인 민족’이라는 생각은 초대교회 때부터 유럽 기독교인들의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홀로코스트 기간 중 극명하게 나타났다. 히틀러는 그의 자서전『나의 투쟁』에서 “나는 내가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주님의 일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자료7> 다음의 일화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했을 때, 폴란드의 랍비 바이스만델은 로마 교황청에 ‘무고한 유대인, 특히 어린이들만이라도 구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나치 치하에서 학살된 600만 유대인 가운데 150만 명은 어린이였기에, 그의 간구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다. 그러나 교황청으로부터 그가 받은 답장은 매몰차다 못해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이의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되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 죄(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때문에 당신들이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이다.’ 가톨릭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켜 분파한 개신교도 유대인에 대한 입장은 가톨릭과 다르지 않았다. 히틀러가 그의 자서전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았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1543년『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라는 책자를 출판했다.<자료8> 책에서 루터는 유대인을 향한 악의적인 독설을 퍼붓고, 심지어 유대인 박멸을 권하는 끔찍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이것을 알라. 사탄 다음으로 잔인하고 악독하고 폭력적인 우리의 원수는 유대인이다. 이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전염병과 같은 존재로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에게 불행이 된다. 이들의 존재는 참으로 절망적이고 사악하고 악독스럽고 악마적이다. 그들은 단지 악마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먼저 그들의 회당을 불태워야 한다… 두 번째로 그들의 집도 부수고 파괴해야 한다… 세 번째로 그들의 기도책과 탈무드를 압수해야 한다…네 번째로 그들의 랍비들이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가르칠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악하고 게으른 자들을 우리 사회에서 쫓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만일 나의 제안이 합당치 않게 여겨지거든 이 상종 못 할 사탄 같은 짐스러운 존재인 유대인들을 없앨 수 있는 더 좋은 방안을 찾아보시오.” 유대인을 향한 루터의 독설은 히틀러에게 채택되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이스라엘 선교사인『유대인 바로보기』의 저자는 “유대인들이 저주하는 3대 인물은 예수,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게 한 교황, 종교개혁 때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유대인을 이용하려 한 루터”라며,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히틀러는 끼지도 못한다”고 얘기했다. 또한 “1만 정도의 히틀러 친위대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구·신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홀로코스트를 ‘기독교 안의 반유대주의로 인한 열매’라고 표현했다. 홀로코스트라는 엄청난 일이 가능했던 것은 한가지 해석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대의 교회가 반인륜적인 이러한 학살을 방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들어갈 때, 그들은 독일의 제복에 걸려있는 나치의 구부러진 마크를 십자가로 보았고,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면서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의 최후에 대하여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2천 년 동안 기독교 역사 속에서 자라온 반유대주의의 괴물이 온전한 이성을 가진 인간의 생각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반유대주의 연구의 최고 권위자 로버트 S. 위스트리치는 홀로코스트는 보편적인 교훈을 남겼다고 했다. 그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문화적, 과학적 그리고 기술적으로 제아무리 진보했다고 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 사회 전체가 범죄 집단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또한 홀로코스트는 권력을 윤리적 절제 없이 맹목적으로 숭배할 경우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또한 명심해야 할 바는, 각 개인은 스스로 양심과 운명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명령에 복종했다는 것이 범죄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기독교적 반유대주의 연구와 반성을 다룬 한 논문에서는 “교회는 유대인들의 대량학살에 대한 책임을 히틀러와 나치 정부에게 돌리기에만 급급했고, 그것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내재되었던 신학적인 증오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2024년,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는 순교자들을 다룬 새 책에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미친 이데올로기’의 손에 순교를 당한다.”며 자신들이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고 얘기하는 내용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한 이스라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무서운 증오의 종교다. 모든 역사는 이 종교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파산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는 경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창구요, 이것이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역사가 증명해 주는 진실을 토대로 홀로코스트의 뿌리와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1>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 명령. 75년 만에 ‘피해국’에서 ‘가해국’으로. 작년 10월 7일 개전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인도적 피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전쟁 중에도 의료진과 병원은 보호받아야 하며,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이들은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전쟁 포로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며, 민간인은 보호되어야 한다. 민간인 보호 차원에서 전력 및 상하수도와 같은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도 금한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즉시 가자지구에 물과 전기, 식량 등 일체 생존 인프라를 즉각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10월 13일 기자회견에서 “가자 주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민간인들이 인지하지도, 관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얘기했고, 이에 언론들은 “가자지구에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민간인들이 직면한 인도적 피해 문제는 전쟁 내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며,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막이로 삼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반박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을 “집단 처벌”하는 방식으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고, 작년 12월 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지난달 26일,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 명령을 내렸다. 아직은 일종의 가처분 명령으로,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 협약(CPPCG)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날인 27일, TV 연설을 통해 “ICJ의 결정은 세계의 많은 사람이 홀로코스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하마스가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을 상대로 최악의 잔학 행위를 저질렀고, 하마스로부터 자국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주장했다. ICJ의 이번 명령이 실제 집행되기는 쉽지 않지만, 기념비적 명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집단학살 방지 조약의 위반자로 이스라엘이 재판 받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궤멸할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7일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완전한 승리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살아남는다면 다음 학살까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나치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 칭한 바 있다. 이들이 홀로코스트로부터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참고자료2> ‘집단학살 방지 협약’이란?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the Prevention and Punishment of the Crime of Genocide)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CPPCG)’은 약칭 ‘제노사이드 협약(Genocide Convention)’으로도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된 잔혹 행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협약으로, 1948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 51년에 발효되었다. ‘제노사이드’란 민족, 국적, 종교, 인종 등을 이유로 한 집단을 살육하거나 격리, 강제 교육 등의 방식으로 말살하는 행위다. 협약에 따르면 “집단의 구성원을 살해하는 일, 중대한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일,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일, 집단 내 출생을 막는 일, 집단의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동하는 일” 등이 해당된다. 이상의 집단학살을 행한 자는 전시·평시를 불문하고, 또한 통치자·공무원·사인(私人)의 구별 없이 처벌된다. 또한 이를 위한 공동모의에 참가한 자·교사자·공범자도 함께 처벌된다. 현재 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모두 153개국으로, 재판은 국가 간 분쟁을 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창설된 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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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바티칸은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지지하는가?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바티칸은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지지하는가?

“바티칸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는 10월 7일 하마스가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을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 정권의 관계와 비교하는 12월 10일 자 논평의 제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티칸이 유대인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가만히 방관하던 것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나쁘다고 경고합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웹사이트에 게재된 논평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홀로코스트가 발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 교황의 침묵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바티칸의 관계가 긴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황은 비오 12세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 이후, 가톨릭교회의 수장은 공격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일관되게 피해 왔습니다. 대신 교황은 중동 분쟁에서 ‘테러리즘’을 전면적으로 비난했는데, 이는 주로 이스라엘 측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스라엘의 최고 가톨릭 대표인 예루살렘의 라틴 총대주교가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기독교 교회의 성명에 서명하도록 했는데, 이는 분쟁이 확대된 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논평의 저자인 토마스 얀센(Thomas Jansen)은 바티칸의 최근 성명을 “수 세기에 걸친 기독교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에서 가톨릭교회의 불명예스러운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냉철한 역사관입니다. 오늘날 진실한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 세기에 교황들은 예루살렘 정복을 요구했고 그 결과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잊었나요? 종교재판은 어떻습니까? 가톨릭교회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은 신앙을 포기하도록 고문을 당했고, 신앙에 복귀하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산채로 불에 타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많은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나치 정권하에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황 비오 12세의 “침묵”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훨씬 더 심각합니다. 우리가 전에 게재했던 기사 “교황, 바티칸, 홀로코스트”는 교황이 이끄는 가톨릭교회가 아돌프 히틀러를 선출하고 그의 권력을 유지하며 전쟁 후 나치의 탈출을 돕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최근 폭로에 따르면 교황 비오 12세는 히틀러와 비밀리에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갖고 있었습니다.<자료3> 이것은 결코 “침묵”이 아닙니다. 얀센은 또한 유대 국가가 설립된 이후 바티칸이 의미 있는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결정이 바티칸에만 달려 있었다면 이스라엘 국가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 국가의 주요 지지자인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1904년 교황 비오 10세(Pope Pius Ⅹ)에게 자신의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헤르츨의 일기에 따르면 교황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역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얀센은 이렇게 썼습니다. “40년 후인 1943년 여름, 바티칸은 팔레스타인이 유대인의 손에 넘어갈 경우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적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워싱턴에 알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바티칸은 1947년 UN에서 유대 국가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도록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바티칸은 유대 국가의 건국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이를 거의 무시했습니다.” 바티칸은 1994년에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2012년 팔레스타인 국가가 UN에서 옵서버 자격을 얻었을 때, 바티칸은 즉시 이 개념을 받아들였습니다”. 얀센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교황이 유대인들이 적개심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인 자기 방어권을 사실상 부인한다면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의 ‘형’이라는 고귀한 말은 모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진지한 질문입니다. 현대의 해설가가 이 입증된 역사와 오늘날 바티칸의 말과 행동을 이렇게 연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교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할수록, 그러한 연결이 전적으로 근거가 있고 적절하다는 것을 더욱 잘 인식할 수 있습니다. <출처: www.theTrump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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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교황이 히틀러에게 비밀 백채널을 제공하다 (*백채널: 비공식 루트)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교황이 히틀러에게 비밀 백채널을 제공하다 (*백채널: 비공식 루트)

1939년 8월, 폴란드 침공 계획을 마무리 짓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는 교황 비오 12세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교황청 주재 독일 대사조차 이를 알지 못할 정도로 미묘했습니다. 이러한 회담의 존재는 비오 12세가 죽은 지 80년이 지나도록 바티칸이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했던 비밀이었습니다. 1981년에 완성된 12권의 제2차 세계대전 관련 교황청 문서에는 협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에 대한 지식은 최근 바티칸에 비오 12세 비밀문서고(Vatican Secret Archive)가 열리면서 이제서야 밝혀졌습니다. 교회 역사나 제2차 세계대전 역사에서 히틀러나 그의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공개 비판을 피하고 홀로코스트 앞에서 공개적으로 침묵을 지키겠다는 비오 12세의 결정만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 보수주의자들은 비오를 히틀러와 파시즘의 단호하고 용기 있는 적으로 묘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나치의 침략 전쟁과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히틀러의 노력을 비난하지 않았다며 그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1943년 10월 16일 나치 친위대가 1,000명이 넘는 유대인을 로마에서 체포했을 때에도 교황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를 거부했습니다. 바티칸 성벽 근처의 단지에서 이틀 동안 억류된 유대인들은 그 후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에 태워졌습니다. 국무원장이었던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 비오 12세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제 히틀러는 바티칸과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어떤 경우에든 새 교황이 자신의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보았습니다. 그는 교황과의 비밀중개자로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사위인 필리프 폰 헤센(36) 왕자를 선택했습니다. 파첼리가 선출된 직후, 히틀러는 폰 헤센을 그의 본부로 소환했습니다. 나치 정권과 바티칸의 불안정한 관계를 개선하려는 새 교황의 분명한 열망을 고려하여, 히틀러는 협상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폰 헤센은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교황과의 비밀회의 일정을 잡을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폰 헤센과 교황 사이의 대화는 비공식 루트를 통해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1939년 5월 11일, 교황은 처음으로 히틀러의 특사를 만났습니다.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교황은 바티칸 국무원장인 루이지 마글리오네 추기경의 아파트에서 회의를 갖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두 사람은 독일어로 대화했는데, 교황은 독일에서 12년 동안 교황대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독일어에 능통했습니다. 바티칸 비밀문서고에는 그들의 대화에 대한 독일어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교황은 독일인 고위 성직자를 숨겨 두어 왕자의 눈을 피해 대화 내용 전체를 받아 적었습니다. 최근 발견된 그 대화록들은 대화 내용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이 첫 번째 회의에서 교황은 히틀러에게 자신의 교황 선출에 대한 총통의 축복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자신이 히틀러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을 꺼냈습니다. 그는 왕자에게 자신은 히틀러와 합의에 이르고 싶어 하며 자신의 양심이 허용하는 한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폰 헤센은 교황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교회의 약속을 문서화 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비오 12세는 질문을 회피하면서 문제는 정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의 종교 교육을 정치적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다음 폰 헤센은 바티칸과 독일 제국의 관계에서 또 다른 골칫거리였던 독일 사제들의 “도덕” 재판에 대해 널리 알려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수백 명이 아동 학대를 포함한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교황은 “이러한 실수는 어디에서나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비밀로 남아 있고 일부는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가 알려질 때마다 우리는 즉시 개입합니다.” 당시 파첼리 추기경의 지시하에 국무원장이 실제로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전년도 사무국 파일의 폴더에는 “비엔나: 수도사와 신부의 부도덕한 사건에 관한 모든 기록 자료를 불태우라는 명령”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가들은 나치 독일의 성직자 성적 학대에 대한 경찰 조사를 나치 정권의 반가톨릭주의와 동성애 혐오의 증거로 대체로 일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러한 다양한 협박에 그토록 취약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만남 내내 폰 헤센은 그 말이 새어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확언했습니다. “저의 가까운 동료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릅니다.” 폰 헤센과 비오 12세와의 다음 비밀 만남은 8월 26일 카스텔 간돌포에서 열렸습니다. 이 만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새로 공개한 바티칸 사무국 비밀문서고에서 발견된 독일어 기록의 형태로 나옵니다. 이 회의는 히틀러가 독일군을 폴란드에 파견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열렸습니다. 교황은 먼저 히틀러의 따뜻한 인사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역시 교회가 제국의 종교적 평화를 보장하는 명예로운 합의에 도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독일 성직자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히틀러의 우려에 관해서는, 교회가 당파 정치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폰 헤센과의 대화에서 교황은 나치의 반유대주의 운동에 대해 어떤 우려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오 12세와 히틀러 사이의 합의를 방해하려는 사람들의 “적대적 간섭”을 방지하려면 모든 일이 계속해서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황은 라틴어로 “비밀(The secretum)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회의는 1939년 10월 24일에 열렸습니다. 이제 잔혹한 폴란드 정복을 마친 히틀러는 교황에게 비밀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교황과 필리프 폰 헤센이 나눈 독일어 대화의 기록을 보면, 침공과 대규모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교황은 히틀러와 대화를 주고받길 열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황은 회의를 마치기 위해 일어섰을 때, 왕자에게 그의 방문이 얼마나 감사한지 얘기하고 히틀러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치의 외무장관 폰 리벤트로프는 히틀러가 이러한 개선을 이끌어내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금융 및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가톨릭 성직자 7,000명 이상의 기소를 기각했으며, 매년 가톨릭교회에 막대한 재정보조금을 제공하는 나치 정부의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폰 리벤트로프는 교황이 히틀러에게 감사할 것이 참으로 많다고 말했습니다. 비오 12세와 아돌프 히틀러가 이러한 회담을 시작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황은 제3제국(=히틀러 치하의 독일 제국)과 그것이 정복한 지역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종식시키기 위해 나치 정권과 협상을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히틀러는 전임 교황 치하에서 그토록 짜증나게 했던 교황의 비판을 끝낼 기회를 잡았습니다. 폰 헤센 왕자가 교황에게 말했듯이 히틀러로서는 합의에 도달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인종 문제”와 가톨릭 성직자들이 독일 정치에 참여하는 것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성직자와 주교들은 나치 정책에 대해 어떤 비판도 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이 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캠페인을 문제로 제기한 적이 있다는 징후는 없었습니다. (그 문제에 있어서 당시 교황은 이탈리아의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한 무솔리니의 “인종법”에 대해 어떤 반대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히틀러의 두 번째 우려에 관해서, 교황은 가톨릭 성직자들이 정치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거듭 부인했습니다. 비오 12세에게는 다른 우선순위가 있었습니다. 대규모 국제 조직의 수장으로서, 히틀러의 사절과의 협상에서 그의 최우선 목표는 제3제국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도적 자원과 특권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일한 목표가 교회의 복지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그의 노력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직을 도덕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도자의 위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비오 12세가 히틀러와 비밀리에 협상했다는 사실의 폭로는 극심한 실망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공포 속에서도 비오 12세는 히틀러 정권과 그 정권이 유럽의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시도를 비난하라는 큰 압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출처: www.theAtlantic.com>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바티칸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Der Vatikan hat nichts geler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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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한 걸음] 오타와大 연구팀  “우주의 나이, 138억 년보다 약 2배 많은 267억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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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 데이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문제가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초기 은하로 알려진 곳에서 거대 은하나 초거대 질량 블랙홀들이 발견되고 있는 점이다. 거대한 은하의 형성과 성장에는 방대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론상 초기 우주에는 작고 어린 은하만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이같은 발견은 ‘작은 은하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큰 은하로 진화해 간다’는 기존 우주론을 뒤엎는 결과로 […]

[우주로 한 걸음] 출처 불명 초고에너지 우주선(cosmic ray) 포착… 현대 물리학으론 설명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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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그 광대함만큼이나 끝없는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은 새로운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최근 우주과학계에는 정설로 받아들이던 이론에 어긋나는 미스터리한 결과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습니다. 작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초기 우주로 알려진 곳에서 존재할 수 없는 거대 은하를 발견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기존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고에너지 우주방사선이 발견되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우주로 한 걸음』에서는 […]

세계 종교 탐구 <37> 음란에 관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하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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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에 대해 종교가 가르친 것 지난 6월, 미국 유타주의 한 교육구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서가에서 성경을 퇴출시켰다.<자료8> 음란하고 폭력적인 내용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는 “성경에는 근친상간, 자위, 수간, 매춘, 강간 등이 기록되어 있다”며, 이는 “학교 도서관과 교실에서 음란물 콘텐츠가 포함된 모든 책을 금지한다”는 유타주의 법안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구약 성경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경전이다. […]

세계 종교 탐구 <37> 음란에 관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하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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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성학대 피해자들,  유엔과 바티칸에 조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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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 탐구 <36> 왜 여전히 미신을 믿는가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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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여전히 미신을 믿는가 중세와 달리 과학적 사고와 이성이 충분히 발달한 현대에서도 미신이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분명히 불가능한 현상이나 존재를 여전히 믿는 것이다. 앞서 사람들이 미신을 믿는 이유는 본능적인 것이라 설명한 바 있으나 이는 ‘여전히’ 미신을 믿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현대인이 명백히 비과학적인 사실들을 미신이라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여전히 믿는 이유로는 무비판적 주입, 조작된 미신, […]

세계 종교 탐구 <36> 왜 여전히 미신을 믿는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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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엘리베이터 중에는 4층을 F로 표기해 놓은 경우가 종종 있다.<자료1> 숫자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불길한 숫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외에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 등의 이야기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미신’이라 부른다. 미신이란 과학적·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신(盲信)하는 일로, 현재는 비상식·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과거에는 실제로 믿는 […]

천부교 구원의 역사, 그 놀라운 은혜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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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기 500회 리서치>

1994년 1월 ‘박혜정 승사 편’을 시작으로 신앙신보에 꾸준히 게재되어 온 ‘신앙체험기’가 어느덧 5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신앙체험기는 초창기 집회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귀한 은혜의 체험을 싣고 있습니다. 이슬처럼 내리는 성신, 향기로운 향취 은혜, 놀라운 생명물의 권능, 마음에 넘치는 은혜의 기쁨. 그 귀한 체험을 들려주신 모든 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시간을 내어 ‘신앙체험기 500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