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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누추한 마음이 씻음 받아 눈보다 더 희게 되어야

오향근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5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도이리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무 가구 남짓한 집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동네 어른이셨던 저희 부모님은 종종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상의해 주곤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1년에 열두 번씩 제사를 지내며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는데,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친척 언니가 찾아와서 ‘전도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도관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

성신을 받으면 뉘 죄든지 사할 수 있다는 성경구절을 모르시나요?

함복득(2) / 기장신앙촌

그 후 저는 보광동으로 이사하여 집과 가까운 보광동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시 보광동제단에는 폐병으로 고생하는 여자 교인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운명하시기 얼마 전부터 교인들이 자주 그 집에 가서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리에 몸져누워 있던 그분은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할 정도로 바싹 말랐으며 얼굴빛도 무척 검었습니다. 그런데 숨을 거둔 후 입관예배를 드리며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나자 […]

감람나무는 ‘쭉정이와 불의와 비진리를 때리는 존재’

함복득(1) / 기장신앙촌

저는 1934년 충청북도 제천군 봉양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열두 살 때부터 친구들을 따라 감리교회에 다녔는데, 저는 다니엘과 같은 성경상의 인물에 대해 배우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처럼 나도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 후로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스무 살 […]

지금도 한없는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병애(4) / 기장신앙촌

그 이듬해인 1959년에는 서울의 육촌 오빠 집에서 지내던 언니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니는 전도관에 다니지 않았지만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부모님이 병간호를 하기 위해 소사신앙촌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시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으로 계시면서 각자 집에 떠 놓은 물에 영적으로 축복해 주실 때였습니다. 그렇게 축복받은 생명물을 언니에게 주었더니 언니는 어찌 된 일인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앙상하게 말라 […]

신앙촌 우물가에 내린 ‘만나’를 맛보니 배 속까지 시원해져

안병애(3) / 기장신앙촌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대신동제단에서 하나님 인도하시는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날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하나님께서 부산에 못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무척 아쉬웠지만 이왕 제단에 왔으니 다음 날 새벽예배까지 드리기로 마음먹고 제단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때 제단에 남은 사람들끼리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예배실 […]

목사님도 구원을 원하신다면 은혜 있는 곳으로 오셔야지요

안병애(2) / 기장신앙촌

집회 중 어느 날, 설교하시던 박태선 장로님께서 큰 소리로 “지금 얼마나 귀한 은혜가 내리는 줄 압니까!” 하시며 단을 ‘탁!’ 하고 내려치셨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단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하여 ‘이 불빛이 뭐지? 누가 예배 시간에 사진을 찍나?’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그 불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불성신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곧이어 박 장로님의 인도로 힘차게 […]

설교하시는 박장로님을 따라 움직이는 빛을 보고 ‘저 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안병애(1) / 기장신앙촌

저는 1936년 평안남도 중화군 풍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너른 논밭을 가진 지주였던 저희 집은 해마다 소작료를 받으면서 어려움 없이 넉넉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1945년에 해방되어 이북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제로 집과 토지를 빼앗기게 되었으며, 저희 가족은 거의 빈손으로 월남하여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육이오전쟁 후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당감동 피난민촌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어머니를 따라 집과 가까운 제일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

이 은혜 안에서 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박정순 권사(2) / 기장신앙촌

그 후 1961년경에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입주하기 전부터 채소와 수산물을 판매했던 저는 입주 후에도 인천으로 다니며 장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몹시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얼굴이 마비되어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어느 분이 제 사정을 알고는 축복 캐러멜 녹인 것을 주면서 얼굴에 발라 보라고 […]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만 먹어도 죄가 된다

박정순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0년 황해도 연백의 농가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이 일꾼을 부려 농사를 지으시는 한편으로 수산회사의 책임자로 일하셔서 저희 가족은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열여덟 살에 결혼한 저는 육이오전쟁 때 이남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인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미군 부대 근처의 주택가에서 살았는데, 1956년 어느 날 이웃집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이 길을 따르며 참으로 바쁘고 기쁘게 살아왔구나

김백덕 승사(3) / 기장신앙촌

저와 함께 여수제단에 다니셨던 어머니는 70세를 일기로 운명하셨습니다. 20일 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깨끗한 옷을 입혀 다오.”라고 하셔서, 저는 새 한복을 입혀 드리고 교인들과 함께 어머니 곁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주 하나님 날 사랑하셨으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하는 찬송을 부를 때 어머니는 편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입관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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