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이 가장 귀하다는 것 깨달아”

<신앙체험기 507회 서대문교회 조기형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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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교회 조기형 권사

192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저는 장성하여 결혼한 후에도 줄곧 서산에서 살았습니다.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62년이었는데 처음에는 순전히 아들의 병을 낫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해 딸 넷을 둔 저희 부부는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그 뒤로 아들 둘을 더 낳았습니다. 그렇게 첫째 아들을 얻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계속 앓아눕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가고 약을 써도 아이의 병은 좀처럼 나을 기미가 안 보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에도 가보고, 굿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수심이 깊어져가던 어느 날 아이 때문에 애태우는 사정을 안타까이 여기셨던 이웃집 할머니가 전도관에 가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관에서 은혜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이 많다면서 저희 아이의 병도 나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한 저와 달리 아내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전도관에 나가 기도를 드리면서부터 아이의 증세가 눈에 띄게 호전되더니 금방 나아서 다시 방긋방긋 웃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전도관에 간 것도 아닌데 병이 나으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내는 무척 고마워하며 그 뒤로도 계속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그 후로 전도관 사람들이 저희 집에 와서 정성껏 예배를 드려주며 제게도 전도관에 와보라고 권유하기에 마음이 동한 저는 아내와 함께 서산 지곡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 전도관에 갔을 때는 찬송도 모르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멀뚱멀뚱 앉아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기 어색해서 어설프게 손뼉을 치며 우물우물 찬송을 따라 부르다가 ‘역시 나는 성격상 교회랑 안 맞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예배를 마친 후 처음 온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선량하고 따뜻한 마음씨에 감화되어 전도관에 조금 더 다녀봐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전도관에 꾸준히 다니면서 예배를 드리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진다는 것을 느낀 저는 매주 일요일 예배 시간만을 기다릴 정도로 전도관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전도관에 다니자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했던
첫째 아들의 병이 낫게 되어
전도관에 함께 다니기 시작해

예배 시간에 향취를 맡으니
속이 시원해지면서
몸이 한없이 가벼워져서
하늘로 둥둥 뜨는 느낌 들어

고인의 모습을 살아있을 때
보다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생명물의 경이로움에
눈물이 나서 말을 잇지 못해

그런데 다섯 살이 된 첫째 아들이 또다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눈동자가 점점 하얘지면서 앞을 못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아이의 눈을 고치기 위해 큰 병원 안과에도 가보고, 용하다는 약을 쓰기 위해 논 서마지기까지 팔았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 사이 아들의 눈은 더욱 심각해져서 검은자위가 거의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때마침 대전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 저는 지체 없이 아이와 함께 첫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해 안수 받는 시간만을 기다렸는데 그날은 예배를 마친 후 전도사님들만 안수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전까지 왔는데 안수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안수를 받지 못하면 아이가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될 것만 같아 저는 염치 불고하고 아들을 안고 전도사님들 사이에 줄을 섰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어 하나님 앞에 아들을 내려놓자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탁’ 하고 쳐주셨습니다. 그때 ‘아들의 눈을 안찰해주시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말씀드리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응. 됐어. 이제 가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쉬운 마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까맣게 돌아와 반짝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랍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어제 하나님께서 아이의 머리를 안수해 주셨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새벽예배까지 빠짐없이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전도관에 가려면 논과 밭을 지나가야 해서 가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힘들거나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겨울에는 흰 눈이 길 위에 높게 쌓여서 발이 푹푹 빠지는데, 그 눈을 헤치며 걷다 보면 발이 꽁꽁 얼었습니다. 그럴 때는 논 옆에 쌓인 지푸라기를 모아 불을 피워서 발을 녹이고 갈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그렇게 평소처럼 새벽예배를 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예배실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생전 처음 맡아보는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누가 꽃이라도 사다 놨나 예배실 안을 둘러봤지만 그렇게 진하고 좋은 향이 날만 한 것은 없었고, 두리번거리는 와중에도 향기는 계속해서 맡아졌습니다. 저는 그것이 향취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에게 말하니 향취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향취를 맡을 때 마음에 기쁨이 샘솟으면서 가슴에 얹혀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속이 시원해지면서 몸이 한없이 가벼워져서 걸을 때도 하늘로 둥둥 뜨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이처럼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기쁘고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지곡전도관에 다니던 시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은혜 체험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남자 권사님의 입관 예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입관 예배 시작 전에 전도사님은 고인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고,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고인의 몸도 깨끗이 닦아드렸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니 돌덩이처럼 딱딱했던 시신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환하게 피어났고, 입술에는 혈색이 도는 것이 눈을 뜨고 곧 살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편안히 주무시는 듯한 고인의 모습을 보니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고인의 모습을 살아있을 때보다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생명물의 경이로움에 저는 눈물이 나와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제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날이었습니다.

1996 추수 축복

1996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 전날 기장신앙촌 상공에 내린 축복

1970년대에는 기장신앙촌에 가서 하나님께 직접 안찰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눈과 배를 안찰해주시는데 말도 못 하게 아팠습니다. 분명히 손만 살짝 갖다 대시는데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고통스러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이 고집 좀 봐. 고집 좀 버려. 안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세던 저는 ‘그동안 지어온 죄가 많으니 아플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통이 멎을 때쯤 하나님께서는 안찰을 끝내셨고 저는 ‘그 죄를 씻어주시는 분은 얼마나 힘드시겠나’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습니다. 그 후로 화부터 내는 성격이 많이 고쳐졌습니다. 가끔 성질을 내려다가도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며 ‘아이고, 내가 또 화를 내려고 하는구나!’ 하며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로 이사 가서 서대문교회에 다니던 저는 2000년도쯤부터 신앙촌 인근 동부리와 신천리에서 자원하여 경비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앙촌 밤하늘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환한 빛기둥은 땅으로 쏟아질 것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신앙촌 인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볼 정도로 밝게 빛났습니다. 저는 그 찬란한 광경을 보며 너무나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또한 신앙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는 귀한 땅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경주에 있는 천부교 추모 공원 등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서울로 돌아와 서대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의 병이 나은 것이 고맙고 신기해서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직접 은혜의 기쁨을 체험한 후로 구원의 진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간직하는 생활을 할 때면 어디를 가나 한없는 기쁨이 마음속에 넘치고, 길을 걸을 때도 공중을 걷는 듯이 몸이 가벼워져서 한 발짝만 가도 두 세발짝을 가는 듯 느껴졌습니다. 특히 교회에 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릴 때 은혜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까지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으며 이 길을 따라왔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고 성결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허락해 주시는 시간동안 귀한 성신의 은혜를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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