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우물가에 내린 ‘만나’를 맛보니 배 속까지 시원해져

안병애(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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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대신동제단에서 하나님 인도하시는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날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뜨지 않아 하나님께서 부산에 못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무척 아쉬웠지만 이왕 제단에 왔으니 다음 날 새벽예배까지 드리기로 마음먹고 제단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때 제단에 남은 사람들끼리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예배실 가득히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냄새가 제 주변을 맴도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이 되자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예배실에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못 오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명 남짓한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오늘은 얼마 없으니 오붓하게 예배를 드립시다. 전부 앞으로 나와 앉으세요.” 하셨습니다. 평소에는 앞자리 경쟁이 치열하여 저는 앞자리에 앉지 못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앞자리에 앉아 신나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를 양손으로 짚으시며 안수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기쁘고 즐거웠던 예배 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들 살결이 맑고 깨끗하긴 하지만
그렇게 새하얗고 예쁜 피부는 난생처음
다홍빛의 입술은 어찌나 곱던지
‘시신이 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전도관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도관 교인의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두어서 입관예배를 드렸는데, 너무나도 아름답게 피어서 그 아기를 유리 관에 입관하여 대신동제단에 안치해 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교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몰려와서 길게 줄을 섰으며, 저도 많은 사람들 틈에서 아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아기는 마치 새하얀 솜으로 만들어 놓은 인형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아기들 살결이 맑고 깨끗하긴 하지만 그렇게 새하얗고 예쁜 피부는 정말 난생처음 보았으며, 다홍빛의 입술은 얼마나 고운지 어떤 화장품도 그런 빛깔을 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천사처럼 잠들어 있는 아기를 본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시신이 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아름답게 되는구나!’ 하면서 놀라우신 하나님의 권능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서면제단 교인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심장병으로 고생하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인은 거동이 불편해 제단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새벽예배 시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찬송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교인 분들과 함께 그 집에 가 보니 고인은 편안히 잠든 것 같은 모습으로 살짝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때 날씨가 추울 때라 방에 뜨끈뜨끈하게 불을 때었는데, 고인의 친척들은 방이 따뜻하면 시신한테서 물이 흘러나올 수도 있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신 주변에는 어찌 된 일인지 시원한 바람이 감도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성신의 바람’에 대해 들었던 것이 떠오르면서 ‘아! 하나님께서 성신의 바람으로 지켜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고 나자 시신은 곱고 환하게 피었습니다. 장례식을 모두 마친 후 고인이 아버지의 꿈에 나타났는데, 새하얀 옷을 입고 “아버지, 저 좋은 곳에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상심했던 아버지는 그 꿈을 꾼 뒤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고인의 가족들은 서면제단에 열심히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1958년 2월 9일 일요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이만제단에 남아 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와서 제단 안과 주변을 두루 살펴
‘대통령이 시찰할 정도로 이만제단은 큰 관심과 화제거리’ 새삼 느껴

그 후 저는 얼마 동안 서울의 친척 집에 머물면서 주일마다 서울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강변의 언덕에 우뚝 세워진 이만제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견줄 교회가 없을 정도로 웅장한 규모였습니다. 그러던 1958년 2월 9일 일요일 오후 4시 20분경, 제가 예배를 마치고 제단에 남아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이만제단에 온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제단 안과 주변을 다니며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대통령을 직접 뵙게 되어 무척 놀랐는데, 지금 돌아보면 ‘대통령이 와서 시찰을 할 정도로 이만제단 건설이 큰 화제와 관심거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촌 우물 뚜껑에 떨어진 하얀 가루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만나’
만나를 입에 넣자 배 속이 시원해지며
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아

1958년 3월에는 저와 여동생 병화가 소사신앙촌 타월 공장에 입사했으며, 그 후 11월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9남매 저희 형제 중에서 여섯 명의 형제들과 부모님이 소사신앙촌에서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앙촌 우물의 뚜껑에 새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어서 우물을 관리하는 분이 쓸어 버렸더니, 다음 날에도 같은 장소에 똑같이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어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만나’라고 하시며 장로님 한 분에게 맛을 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장로님이 만나를 맛본 소감을 예배 시간에 이야기하는데, 만나를 조금 집어서 입에 넣었더니 맛이 고소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여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만나가 목으로 넘어가자 배 속까지 시원해지며 하루 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픈 줄 몰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신앙촌은 만나가 내리는 귀한 곳이구나!’ 하면서 이곳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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