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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바닷가에 나타나셨던 그분을 초량집회에서 다시 뵙다

안순식 승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5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위로 오빠 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대대로 지주(地主)인 부유한 가정에서 귀염둥이 막내딸로 자란 저는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 나이 예닐곱 살 때,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가 계시는 중국 하얼빈으로 온 가족이 이주했으며, 저는 거기서 빈강(濱江)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자격증을 얻었습니다. 부산 초량집회에서 박태선 […]

우상을 섬기던 저희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 그 은혜 못 잊어

이순자 권사(3) / 부산 가야교회

어머니는 우리가 미신을 섬겼던 것을 두고 “어떻게 해야 그 죄를 씻을 수 있겠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어떻게 이 죄를 벗고 가겠니?” 하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때 전도를 강조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되면서 저와 어머니는 같이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예전에 사당에 와서 제를 올렸던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당을 섬겼을 때 저희 부모님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며 공경했던 그분들은 사당을 […]

아버지의 불같은 호통에도 마음은 호수처럼 고요해져

이순자 권사(2) / 부산 가야교회

사당을 정리할 때 부산의 여동생 집에 계셨던 아버지가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시기도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사당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노여워하셨습니다. 호랑이 양반으로 불릴 정도로 무서운 성격의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식구들이 가라앉히려 했지만 그 화는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지극 정성을 들였던 사당을 없애 버렸다는 사실에 분을 […]

가슴이 시원해지며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밀려와

이순자 권사(1) / 부산 가야교회

저는 1930년 경기도 수원에서 6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 건축 설계사인 아버지(故 이범순) 아래서 풍족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의 신식 직업인 건축 설계사로 활동하며 양복을 즐겨 입으시던 분이었는데, 태평양전쟁으로 혼란이 가중되면서 민간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서에 몰두하셨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8·15 해방 무렵, 저희 가족은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은암으로 이사하여 크고 좋은 기와집에 사당을 마련하게 […]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 기억하며 흐르는 눈물로 기도합니다

강봉임 권사(3) / 기장신앙촌

1961년 1월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물을 공급하는 큰 우물을 건설하던 때였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이 돌 하나씩을 이고 우물 짓는 곳으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돌을 나른 후 안수를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줄을 섰을 때, 하나님께서 양쪽의 손목을 앞으로 모으시더니 “내가 이렇게 돼도 너희가 나를 […]

목사들이 갖은 비방을 해도 내가 받은 은혜는 잊을 수 없어요

강봉임 권사(2) / 기장신앙촌

당시 종갓집 맏며느리로 대식구의 살림을 맡아 하던 저는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깨와 무릎의 신경통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일꾼들의 식사 준비, 빨래, 바느질, 베 짜기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쉼 없이 일하다 보면 종종 칼로 베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으로 꼼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무릎이 아플 때는 가만히 누워 있어야 그나마 […]

이 분이야말로 진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이 분을 따르리라.

강봉임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18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네 자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전형적인 양반집 자제인 아버지는 문중의 제사와 재산 등을 돌보는 유사(有司)를 맡아 하셨으며 저희 형제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시면서 항상 조신한 태도와 말씨를 강조하셨습니다. 열일곱 살에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간 저는 스무 명이 넘는 대식구 살림을 하면서 시댁 식구들을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에서 살 때였습니다. […]

구원의 길을 알고 따라오게 된 이 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전화순 권사(3) / 기장교회

1958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축대 위를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사고로 갑자기 숨을 거두게 되어, 저는 몹시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경황이 없었던 그때 인천제단 교인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장례 절차와 입관예배를 함께해 주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장례반이었던 이 장로님이 오셔서 시신을 씻겼는데, 마침 생명물이 없어 축복 캐러멜을 넣어 끓인 물로 시신을 닦아 주었습니다. 시신은 피부가 […]

이만제단에서 구름기둥같이 쏟아져 내리는 이슬성신을 목격

전화순 권사(2) / 기장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어깨가 맞닿을 만큼 비좁게 앉아 있는 사이를 가볍고 빠르게 다니시면서 안수해 주신 후, 단상에서 힘찬 음성으로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일어났는데 저는 주변에 있던 벙어리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한마디도 못 하고 옆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던 […]

골초에 술고래던 남편은 은혜 맛을 본 후 술담배와 손을 끊고

전화순 권사(1) / 기장교회

저는 1919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제 나이 열일곱 살에 가족들이 인천 신흥동으로 이사하게 되어 거기서 양재 기술을 배우던 중,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故 이병환 집사)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앞집에는 인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저에게도 성당에 같이 가자고 자주 권유하곤 했습니다. 천주교인인 앞집 아저씨는 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분이 매일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