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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나님을 뵙는 순간 ‘아, 꿈에서 뵈었던 분이다’

유도순 권사 (2) / 덕소교회

그러던 1957년 12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생후 10개월 된 은자를 업고 외출을 다녀왔는데,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느라 신경을 썼는데도 추위 때문인지 아이가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가려 해도 집에서 수십 리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그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아이는 숨소리가 전혀 […]

박 장로님이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

유도순 권사(1) / 덕소교회

저는 1929년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 살에 결혼한 저는 시어머니를 따라 간전면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니며 일요일예배에 꾸준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여자 전도사님(故 박말자 관장)은 성경을 깊이 탐독하고 성경 구절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교인들이 자주 모여 전도사님의 성경 해설을 듣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박 전도사님과 대여섯 명의 교인들이 좀 더 […]

호세아서에 기록된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를 증거

박종문 승사(2) / 노량진교회

그때 갓 돌이 지난 넷째 경원이를 집회에 데리고 갔었는데, 홍역을 앓아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던 아이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느새 열이 다 내리고 설사도 멈추어 언제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장시간 예배를 드리는데도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새근새근 곱게 잠이 들었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후 저는 하나님께서 전국의 대도시를 다니시며 부흥집회를 계속하신다는 […]

남산집회에서 박장로님께서는 양심의 법을 강조하셔

박종문 승사(1) / 노량진교회

저는 1922년 황해도 벽성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천도교(天道敎)를 믿으셨던 아버님은 종종 정화수를 떠 놓고 조용한 음성으로 무언가를 외우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녀 본 적은 없었지만 밥을 먹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저는 항상 식사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후 스물한 […]

돌이켜 보니 50년을 하루같이 기쁘게 살아온 세월

주채경 님(3) / 기장신앙촌

그 후 1969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축복일이 되어 덕소신앙촌에 가서 제단 주변의 공장 지대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때 피아노 공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맑고 영롱한 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피아노가 있었구나. 앞으로 사람들에게 시온 피아노를 알려야겠다.’ 하고 결심한 저는 얼마 후 덕소신앙촌에 입주하여 어떻게 하면 피아노를 […]

생명물로 아름답게 핀 시신이 많은 사람을 전도해

주채경 님(2) / 기장신앙촌

저는 이일 성경학교에서 제 상관인 유화례 선교사에게 박 장로님 설교집을 갖다 드리고 은혜를 체험한 이야기도 전해 주었습니다. 유 선교사는 전도관에 대해 호의적이어서, 저는 장로교회에 발길을 끊은 후에도 계속 성경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선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목사가 선교사를 찾아와서 제가 이단에 빠졌다고 이야기했는데, 선교사는 “내가 듣기로 박 장로님은 죄를 회개하라고 […]

집회하는 3일 내내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

주채경 님(1) / 기장신앙촌

저는 1920년 전남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저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름날 하루살이를 보면 ‘아! 저 작은 하루살이도 하나님이 만드셨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 계시는 아름다운 세계는 어떤 곳일까 하며 사색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 후 광주 이일 성경학교에서 공부했던 […]

죽은 자의 시신을 아름답게 피게 하는 생명물의 권능

김남순 권사(3) / 기장신앙촌

1958년 여름에는 남편이 영산포에 볼일을 보러 내려갔다가 닭고기를 먹은 것이 잘못되어 그만 심하게 체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몇 달간 몸져누워 있던 남편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아버님이 남편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겠다고 하셨지만, 제가 신앙촌에서 입관예배를 드리겠다고 간곡히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아버님은 가족과 친척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장례를 치르느냐며 걱정을 많이 […]

하나님을 안 후 불안은 물러가고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보다

김남순 권사(2) / 기장신앙촌

그 후로 저는 영산포제단에 다니면서 매일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몹시 허약했던 몸이 제단에 다니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제 마음이 참으로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전쟁을 겪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근심과 불안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사람은 항상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 다니면서 근심과 […]

안개같이 뽀얀 것이 집회장에 가득하고 백합 향기가 진동해

김남순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3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크게 짓는 부유한 농가에서 부족함 없이 생활하며 저는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스물한 살에 결혼하여 영산포에서 살게 되었는데, 육이오전쟁 중에 장질부사를 심하게 앓고 임신 중이던 둘째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편이었던 저는 그때부터 몹시 허약해져서 조금만 무리해서 일을 하면 2, 3일을 꼬박 앓아누워야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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