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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가 분명한데 어떻게 다른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강문형권사(3) / 인천교회

그해 10월에는 서울운동장(現 동대문 운동장)에서 제3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교인들이 지역별로 팀을 나누어서 축구, 농구, 배구, 100m 달리기, 릴레이, 마라톤 등의 경기를 벌이는 동안 교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운동장에 들어와서 관람을 했습니다. 그때 순서 중에 ‘가장행렬’도 있었는데 가장행렬의 한쪽에는 이만제단 모형을 앞세우고 학생부터 어른까지 힘차게 찬송가를 부르면서 행진하였고, 다른 한쪽은 기성교회의 모형과 장님 […]

장로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말씀을 듣다

강문형 권사(2) / 인천교회

어머니와 저희 형제들은 전도관에 다니면서부터 오랫동안 다녔던 충무 장로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 사람들이 종종 집에 찾아와서는 교회로 돌아오라며 어머니를 설득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따금씩 “오늘도 장로교회 사람들이 다녀갔단다.” 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는 계속 전도관에 다닐 텐데 그분들이 괜한 수고를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원효로 구제단과 가까운 집을 구해서 가족들 모두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

성신의 불기둥 보고 용산소방서에서 불났다고 달려와

강문형 권사 / 인천교회

1941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3남 2녀 저희 형제들은 독실한 장로교인이신 어머니(故 신옥선 권사)를 따라 주일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장로교회에 다녔으며, 숙명여대 교수이신 아버님도 젊었을 때 교회에 열심히 나가시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전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충무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언젠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속에 쏙 […]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 고마우신 하나님의 사랑

최안심 권사(3) / 덕소신앙촌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저희 집에 오셔서 저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음성으로 “길은 이 길 하나뿐이다. 내가 길을 보여 주는데 왜 울고만 있는가.”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 말씀에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한참을 울고 났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 일어나서 기도로 매달려 보라. 열심히 살아야 돼.” 하시며 곁에 있던 아들에게도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

구제단에 임하시는 성신의 불을 보고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최안심 권사(2) / 덕소신앙촌

집회장 곳곳에는 병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제 앞쪽으로 다리가 불편한 20대의 젊은 아가씨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한쪽 무릎이 꺾인 채로 펴지지 않아서 잘 걷지 못했으며, 한쪽 다리는 정상이었지만 접혀진 다리는 뼈와 가죽만 있을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서 보기에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집회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병 나은 자는 다 일어나라!” […]

설교하시던 박장로님 입에서 불덩어리가 청중에게 떨어져

최안심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생활했습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온 가족이 이남으로 내려왔으며, 열일곱 살에 결혼한 저는 서울역 근처 동자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에 있었던 일로 기억됩니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조문을 다녀온 이웃들이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생전보다 훨씬 […]

‘성신 나를 오라 하네…’ 일생 함께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

박희애 권사 / 기장신앙촌

그 후 저는 1970년경에 아이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을 거쳐 덕소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신앙촌 물건을 조금씩 판매했던 저는 신앙촌에 입주한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장사를 다니며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앙촌에서는 각종 생필품부터 악기와 전기 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생산되었는데, 그중에서 저는 양재와 편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자가용이 흔하지 않아서 물건을 직접 들고 다니며 판매했기 때문에, […]

향취의 은혜 속에 괴롭던 마음은 참 평안을 찾아

박희애 권사 / 기장신앙촌

저는 1933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9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가정 환경에서 엄격하고 근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유복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故 장순희 권사)를 따라 어릴 적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결혼 후 서울 종로에 살면서 창신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11월, 어머니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인도하시는 광주 공원 집회에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

한결같이 인내하시고 부드러우시며 겸손하셨던 하나님

이교선(3) / 기장신앙촌

제가 소사신앙촌에 들어갔을 당시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전도관과 신앙촌이 세워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몰려오자, 다급해진 특정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결탁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옥고를 치르시게 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 3월 26일은 하나님께서 출감하시던 날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기쁨에 소사신앙촌 정문에서부터 도열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댁에도 들르시지 않고 곧바로 노구산으로 향하셔서 오만제단의 단에 서셨습니다. 단상의 […]

아무리 핍박을 해도 받은 은혜는 부인할 수 없어요

이교선(2) / 기장신앙촌

이만제단 집회에서 저는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약방을 운영하는 저희 집에는 크고 작은 예쁜 유리병들이 많아서 그 병에 생명물을 옮겨 담고 싶었는데, 그러기 전에 병을 깨끗하게 우려내려고 먼저 우물물을 담아 두었습니다. 쓰지 않는 빈방에 생명물을 받아 온 유리병과 우물물을 담은 유리병을 나란히 놓아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던 1957년 12월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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