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맑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으로

백태신 승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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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 후 하나님께서는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건설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수십 개의 공장부터 유치원과 학교, 예쁜 주택과 예배드리는 제단까지 속속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희 식구들은 신앙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때 부모님과 오빠, 올케언니와 어린 조카가 같이 살았던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주택을 미리 구입해 두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면 신앙촌으로 이사하려고 기다리는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조카가 폐렴에 걸리게 됐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병원이 좋을 때가 아니어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어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린 조카가 밤새 열이 펄펄 끓고 기침을 하더니 며칠이 지나자 당장 어떻게 될 것처럼 위독해졌습니다. 다급해진 오빠와 올케언니가 소사신앙촌에 가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하자며 급히 택시를 불러서 온 식구가 소사신앙촌으로 가게 됐습니다.

늦은 밤, 폐렴으로 위독해진 조카를 업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소사신앙촌 갔더니
하나님 댁으로 안내 받아 안찰을 받게 돼
다음 날 조카는 씻은 듯이 나아 건강 되찾아

신앙촌 입구에 내렸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습니다. 식구들은 그 시간에 안찰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픈 아이를 업고 갔습니다. 정문에 있는 경비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잠시 후 하나님 댁으로 가라고 하여 하나님 댁에서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아이를 한참 동안 안찰해 주시고 “쉭! 쉭!” 하시며 축복하신 후 “이제 됐다!” 하셨습니다.

그날 밤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미리 사 둔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폐렴에 걸린 후로 며칠간 밤새 기침하며 괴로워하던 아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곤하게 잠들었습니다. 계속 애간장을 태우던 식구들도 그날은 마음 놓고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보니 전날 밤의 위독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안찰을 받고 폐렴이 씻은 듯이 나은 조카는 아주 건강해졌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가족 모두 소사신앙촌에 입주했으며 저는 양재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 후 1962년에는 경복궁에서 산업박람회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기업들이 제품을 전시하고 소개하는 박람회에 소사신앙촌도 참가해 ‘시온관’을 세웠는데 저는 거기서 안내원을 맡았습니다. 베니어판으로 지어진 다른 전시관들 속에서 전면 유리로 지어진 시온관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각종 생필품과 식품, 피아노와 바이올린까지 신앙촌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을 전시했는데 방문객들은 다양한 제품에 놀라워했습니다. 당시는 한복을 주로 입던 시절이라 안내원들이 입은 파스텔톤의 시온복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신앙촌의 전경 사진을 보고 외국의 별장 같다고 감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람회가 제품뿐 아니라 신앙촌을 알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2년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 참가해
신앙촌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제품을 전시
방문객들은 신앙촌 제품과 전경 사진에 놀라
박람회를 통해 신앙촌을 알린다는 생각 들어

그 후 결혼한 저는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서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1980년 하나님께서 성경의 거짓과 허풍을 밝히시고 예수가 구원을 줄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실 때 저는 한 말씀 한 말씀에 무릎을 쳤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을 논하시며 막달라 마리아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관계를 밝혀 주실 때 그런 존재가 구원뿐 아니라 어떤 교훈도 줄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2,000년 동안 인류가 믿어 온 예수가 가짜임을 낱낱이 밝히시는 말씀이 참 놀라웠습니다.

저는 1983년 4월에 교역자로 발령받게 됐습니다.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지만, 하나님께서 서울 27중앙에서 전도 잘하라고 격려해 주실 때 마음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몇 년이 지나 서울 17중앙으로 발령 내신 후에는 어른 교인뿐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생관장 역할도 하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고민하며 설교를 준비하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단상에 서서 학생들을 보면 이렇게 귀하고 예쁜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을 적 원효로 구제단에서 반사를 했던 때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1980년,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거짓과 허풍을 밝히시고 2,000년 동안
인류가 믿어 온 예수가 구원을 줄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셔
예수가 가짜임을 낱낱이 밝히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무척 놀라워

1987년경 안양제단에서 시무할 때는 어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독실한 장로교인이셨던 어머니는 전도부인이 되려고 공부하던 중에 하나님의 천막집회에 참석하셨고 은혜를 받으신 후로는 오로지 하나님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셨지만 이 길에 들어서신 후로는 어떤 반대에도 확고하게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임종하실 때 어머니는 물거품이 잦아들 듯이 스르르 숨이 잦아들며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생전에도 고왔던 피부가 입관예배를 드린 후에는 더욱 맑고 뽀얗게 피어서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고 달게 한숨을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지켜 주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1년간 교역 생활을 했던 저는 2004년 퇴임하고 기장신앙촌에 입주를 했습니다. 정년퇴임한 관장님들과 함께 신앙촌 장례식장의 관리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정양순 권사님의 유족이 기억에 남습니다. 정 권사님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신앙촌에 왔습니다. 미국 은행에서 근무하는 큰딸은 신앙촌이 참 아름답고 평화롭다며 연신 감탄했습니다.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고인을 깨끗이 씻긴 후에는 뽀얗고 곱게 핀 모습을 보고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으며 그 물로 시신을 씻기면 아름답게 핀다는 설교 말씀을 듣고는 참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천부교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해서 신앙촌 공장을 견학하고 기장에 있는 천부교회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교역 생활 했던 퇴임 관장님의
입관예배 후,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뻐진 모습 보고 하나님께서 관장님을
기억하시고 은혜 주심을 느껴

최근에는 함께 교역 생활을 했던 오경근 관장님이 신앙촌에서 지내시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생전에 오 관장님은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안쓰러울 만큼 병색이 완연했는데 입관예배를 드린 후 관장님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피부가 뽀얗게 피고 입술은 연홍색 빛깔이 감돌아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쁜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고운 모습을 보며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열심을 다하시던 관장님의 모습이 떠올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여든넷이 되는 저는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에 몇 시간 봉사하는데 일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올 때면 몸도 마음도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세워 주신 신앙촌에서 지내며 “신앙은 1초 1초”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 봅니다. 오랜 시간 따라온 것도, 과거에 무슨 일을 한 것도 중요치 않고 지금 이 순간 맑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새벽 눈뜰 때마다 기도가 끊이지 않는 생활이 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허락해 주시는 귀한 시간 동안 하나님 뜻대로 따르며 맑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로 함께해 주시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백태신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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