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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단에 임하시는 성신의 불을 보고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최안심 권사(2) / 덕소신앙촌

집회장 곳곳에는 병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제 앞쪽으로 다리가 불편한 20대의 젊은 아가씨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한쪽 무릎이 꺾인 채로 펴지지 않아서 잘 걷지 못했으며, 한쪽 다리는 정상이었지만 접혀진 다리는 뼈와 가죽만 있을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서 보기에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설교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집회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병 나은 자는 다 일어나라!” […]

설교하시던 박장로님 입에서 불덩어리가 청중에게 떨어져

최안심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9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풍족하게 생활했습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온 가족이 이남으로 내려왔으며, 열일곱 살에 결혼한 저는 서울역 근처 동자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에 있었던 일로 기억됩니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조문을 다녀온 이웃들이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생전보다 훨씬 […]

‘성신 나를 오라 하네…’ 일생 함께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

박희애 권사 / 기장신앙촌

그 후 저는 1970년경에 아이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을 거쳐 덕소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신앙촌 물건을 조금씩 판매했던 저는 신앙촌에 입주한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장사를 다니며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앙촌에서는 각종 생필품부터 악기와 전기 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생산되었는데, 그중에서 저는 양재와 편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자가용이 흔하지 않아서 물건을 직접 들고 다니며 판매했기 때문에, […]

향취의 은혜 속에 괴롭던 마음은 참 평안을 찾아

박희애 권사 / 기장신앙촌

저는 1933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9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한 가정 환경에서 엄격하고 근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유복하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故 장순희 권사)를 따라 어릴 적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결혼 후 서울 종로에 살면서 창신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11월, 어머니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인도하시는 광주 공원 집회에 참석하시게 되었습니다. […]

한결같이 인내하시고 부드러우시며 겸손하셨던 하나님

이교선(3) / 기장신앙촌

제가 소사신앙촌에 들어갔을 당시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전도관과 신앙촌이 세워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몰려오자, 다급해진 특정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결탁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옥고를 치르시게 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 3월 26일은 하나님께서 출감하시던 날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기쁨에 소사신앙촌 정문에서부터 도열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댁에도 들르시지 않고 곧바로 노구산으로 향하셔서 오만제단의 단에 서셨습니다. 단상의 […]

아무리 핍박을 해도 받은 은혜는 부인할 수 없어요

이교선(2) / 기장신앙촌

이만제단 집회에서 저는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약방을 운영하는 저희 집에는 크고 작은 예쁜 유리병들이 많아서 그 병에 생명물을 옮겨 담고 싶었는데, 그러기 전에 병을 깨끗하게 우려내려고 먼저 우물물을 담아 두었습니다. 쓰지 않는 빈방에 생명물을 받아 온 유리병과 우물물을 담은 유리병을 나란히 놓아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던 1957년 12월 어느 […]

나는 일개 부흥강사가 아니라 동방의 의인 감람나무

이교선(1) / 기장신앙촌

저는 1936년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에서 1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대로변에서 큰 약방과 잡화점을 운영했던 저희 집은 해마다 농토를 늘려 가면서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자수성가하신 아버지는 근면하게 일하시며 모든 면에 존절하고 깨끗하게 생활하셨고, 저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세상을 바르고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 지역의 학생들이 안성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공부하게 […]

귀한 은혜로 함께하신 하나님 사랑 잊을 수 없어

오양례 권사(3) / 덕소신앙촌

소비조합을 하기 전까지 저는 차멀미가 무척 심해서 잠시라도 차를 타면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심지어 버스가 옆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구토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비조합을 시작한 그날부터 그렇게 심하던 멀미가 감쪽같이 사라져서 아무리 장시간 차를 타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사방으로 다니다 보니, 고객이 전화번호만 가르쳐 주면 서울 시내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

안수를 받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향취가 온 몸을 감싸

오양례 권사(2) / 덕소신앙촌

그날 저녁에도 집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저는 한달음에 이만제단으로 달려갔습니다. 낮 예배 때와 마찬가지로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그 비좁은 사이를 빠르게 다니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이 향기로운 냄새가 온몸을 감싸는 속에서, 저는 어렸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부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

‘박 장로님은 하늘과 연결되신 분이신가 보다’ 생각

오양례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7년 전라북도 김제군 공덕면 마현리에서 1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사당에 다니며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비셨는데, 저는 지성으로 제를 올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어딘가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교회에 다니는 어른들이 한 집의 마당에 모여서 찬송가를 부를 때,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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