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심을 깨달아

채은주 권사(3) / 인천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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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해 12월에는 인천 숭의동에 웅장한 전도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매주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기에 숭의동제단은 항상 대집회를 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이웃에 사는 한복순이라는 여고생을 숭의동제단에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복순이는 3년 동안 관절염을 심하게 앓으면서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습니다. 밥도 엄마가 떠 먹여 주어야 겨우 먹을 수 있었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팔을 움직여서 내 손을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복순이에게 박 장로님 집회에 가면 병이 나을지도 모르니 한번 가 보자고 권유하여, 여러 명이 부축해서 숭의동제단에 데려갔습니다.

예배 시간에 복순이는 앉아 있을 힘이 없어서 제 옆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 나은 자는 다 일어나 뛰어라!” 하시는 순간,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팔을 못 써서 자기 손도 보지 못하던 아이가 마음껏 자유자재로 팔을 움직이는데, 정말이지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순이는 사람들 앞에 나가서 “저는 관절염에 걸려서 3년 동안 팔다리를 제대로 못 움직였는데 여기 집회에 와서 나았습니다.” 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복순이가 제 발로 걸어서 집에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이 다들 놀라워하며 온통 그 이야기로 떠들썩해졌습니다. 복순이는 이제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더니, 얼마 후 서울로 이사하여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24살에 처참한 전쟁을 겪고 어둡고 막막한 마음 평안이 없어
기성교회를 다녔으나 ‘내가 정말 살아 계신 신을 믿는 것인가?’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가 하나님을 만나 구원의 길을 찾고 보니
이슬성신의 은혜 속에 기쁘고 즐겁게 일생을 살아 온 것을 감사해

당시 저희 동네 제단에는 반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기원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폐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결국 숨을 거두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그 집에 가 보았더니, 고인은 숨을 거둘 때 핏덩어리를 토해 놓아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으며 머리카락까지 피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 집 식구들도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저도 멈칫하며 서 있는데, 순간 머리 위에서 향취가 쏟아 붓는 것처럼 강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구나.’ 하며 용기가 생겨서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교인들 여러 명이 그 집에 모여서 찬송을 부르며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 드린 다음 홑이불을 덮어 두었습니다.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 동안 시신 위에는 이슬비 같은 것이 계속 내렸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친 후 홑이불을 걷어 고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폐병 환자인 고인은 원래 얼굴빛이 무척 검었고 가죽과 뼈만 남았을 정도로 삐쩍 말랐었는데, 그때는 보기 좋게 살이 오른 데다 뽀얗고 예쁘게 피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돕던 교인들이 “지금 온 집 안에 향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몰라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제단에 나오지 않았던 고인의 남편과 자녀들, 이웃 사람들까지 곱게 핀 시신의 모습에 무척 놀라워하였고, 그 일을 계기로 그 집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많이 전도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인천 용현동으로 이사 와서 어머님과 함께 숭의동제단에 계속 다녔습니다. 품성이 조용하고 부드러우셨던 어머님은 연세가 드신 후에도 무척 건강하게 지내시면서, 매일 저녁마다 간절히 기도를 드리곤 하셨습니다. 어머님이 “얘야, 내 장례 때는 네가 씻겨 다오.” 하고 당부하셨기에, 1995년 숨을 거두셨을 때 제가 직접 씻겨 드렸습니다. 기장신앙촌에서 떠 온 생명물로 다 씻기고 나니 어머님은 95세 할머니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온몸이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여서, 마치 어린아이에게 옷을 입히는 것처럼 수의를 입혀 드렸습니다. 발그스름한 핏기가 감도는 입술에 살포시 미소를 띠운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얘야.” 하시며 저를 부르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뽀얗게 핀 어머니 손을 제 볼에 가만히 대 보면서, 매일 두 손을 모으시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같이해 주시네요.’ 하며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심에 가슴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작년 5월에는 제 딸 경임이가 저와 함께 기장신앙촌에 가서 이슬성신절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경임이는 초등학교 때까지 제단에 다녔었는데, 그날 이슬성신절 예배 시간에 꽃향기가 진동해서 ‘어디서 이런 냄새가 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제단에서 맡았던 향취가 떠올랐다면서 “엄마, 어릴 때 맡았던 향취가 나네요.” 하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후로 경임이는 가끔씩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앙촌에 언제 가느냐고 관심을 보이는데, 그런 딸아이가 앞으로 제단에 꾸준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제 나이 스물네 살에 처참한 전쟁을 겪었던 그때는 어둡고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친 마음에 평안을 얻고자 교회에 다니면서도 ‘내가 정말 살아 있는 신을 믿는 것일까?’ 하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어디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그때 하나님을 뵙고 구원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귀한 이슬성신의 은혜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드릴 때 귀를 기울여 들어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망망한 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의지하며 일생을 기쁘고 든든하게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죄와는 상관없이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그리운 하나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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