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채은주 권사(2) / 인천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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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 문 여세요. 마음 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시면서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하는 찬송을 힘차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쏟으며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리도 간절하게 찬송을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던 어느 순간 아주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어떻게나 기쁜지 마치 커다란 기쁨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기쁘고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고, 그대로 훨훨 날아서 구름 위에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녁예배를 마친 후에도 사람들은 집회장에 그대로 남아서 밤을 새웠습니다.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받은 은혜에 대해서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저는 집회장에서 철야를 하는 동안에도 자꾸만 마음속에 기쁨이 샘솟아 나서, ‘나만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빨리 집에 가서 어머니도 오시게 해야겠다.’ 하며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풀리자마자 집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논현동에 있는 저희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직 버스나 기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얼른 집에 가야 된다는 생각에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기찻길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아서 집으로 향하는 기찻길을 따라 송도역에서 소래역까지 있는 힘껏 뛰었습니다.(현재는 기차가 운행되지 않아 폐선된 기찻길) 찬송을 부르며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데도 전혀 숨이 차지 않았고 새처럼 훨훨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 기쁨과 즐거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어머니는 벌써 집회에 참석하러 가시고 집에 안 계셨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은혜 받은 이야기를 했더니 “너도 은혜를 받았구나. 거기는 은혜 받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 하시며 신기해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구 집회 기간 중 박 장로님이 서 계신 단상에서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에게로 퍼지는 것을 보고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닐까’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호세아서에 기록된 이슬같은 은혜`라고 말씀해 주셔

집회 중 하루는 박 장로님 서 계신 단상에서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더니 사람들에게로 쫙 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저게 뭐지? 내가 잘못 본 것일까?’ 하며 의아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성경 호세아서에 기록된 ‘이슬같이 내리는 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집회장에 진동하는 향긋한 냄새가 향취 은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설교하실 때마다 “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시며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지 속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라 쉼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귀한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그 은혜로 제 마음을 성결하게 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드리면서 집회 기간이 하루하루 지나는 것이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대구 집회가 끝나고 그 주 일요일이 되었을 때, 저는 원래 다니던 장로교회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곽 목사가 박 장로님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요즘 박태선 장로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요술을 부리고 있답니다. 거기에 휩쓸려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로 가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고는 발까지 굴러가며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지금 요술이라고 하셨습니까? 집회에 한 번이라도 가 보셨는지요. 저는 거기서 구원이 무엇이고 은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더 이상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이 교회에는 안 다니겠습니다.” 하고 그길로 교회 문을 나와서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1956년 1월에는 전동에 있는 짠지(무를 통째로 소금에 짜게 절여서 묵혀 두고 먹는 김치) 공장 2층에 ‘인천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동네 사람들을 전도해 일요일마다 인천전도관에 데려가게 되었고, “나도 전도관에 가 보고 싶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그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렇게 제단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저희 동네에 아담한 초가집을 예배실로 단장하여 매일 거기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곽 목사가 교인들에게 저하고는 이야기도 나누지 말라고 하는 속에서도 장로교회 교인들이 스스로 전도관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셨던 오 권사님은 그때 전도관에 나오셨는데, 지금도 소사신앙촌에 사시는 권사님과 만날 때면 서로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무척 반가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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