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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조합 활동으로 경제적 풍족 이루고 살아

정순실 권사(4) / 안양교회

그 후 1957년 11월부터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건설대원을 지원받는다는 광고를 들었습니다. 저도 건설대에 지원했지만 건설대장이신 장세호 집사님이 “너는 몸이 약해서 안 돼.” 하며 받아 주지 않으셨는데, 그래도 다시 지원해서 결국 건설이 시작된 신앙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아는 건설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힘든 일을 서로 하려는 분위기였으며, 무거운 모래 나르는 질통을 가져가려고 경쟁하기도 […]

넘쳐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어

정순실 권사(3) / 안양교회

당시는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제단에 모여 철야예배를 드려서 저도 그 예배에 종종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제단에서 철야를 하고 다음 날 바로 등교할 수 있도록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챙겨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찬송과 기도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 참석자들에게 안수를 해 주시고 나자, 어느새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 저는 […]

‘동방의 한 사람’과 ‘이슬 성신’,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 들어

정순실 권사(2) / 안양교회

박 장로님께서 찬송 인도와 설교를 마치신 후 저녁예배는 끝이 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열심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전이 되어 전등이 전부 꺼져 버리자 집회장이 온통 깜깜해지고 말았는데, 그때 저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둥그런 불덩어리가 천막 안의 공중에 나타나더니 무척 빠른 속도로 사람들 머리 위를 휙휙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

박장로님이 불같은 성신을 내리시는데 죄 타는 냄새가 났다

정순실 권사(1) / 안양교회

저는 1940년 황해도 은율군의 부유한 농가에서 1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넓은 농토를 가진 시골 부자였던 저희 집은 대대로 정월 대보름이면 갖은 음식을 차려 놓고 신에게 복을 빌면서 크게 제를 올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장남인 오빠가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가족들을 전도하기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온 가족이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고 […]

높으신 하나님 말씀 의지해 날마다 주께로 나가렵니다

박부희 권사(2) / 덕소신앙촌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하실 때마다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성신을 받아 죄를 씻음 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 하는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막연하고 허무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겉으로는 점잖은 척 예배를 보지만 남녀가 어울려 사교장 같은 교회에서 어떻게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을 […]

은혜를 받으니 어렸을 적 죄된 행실까지 선명히 떠올라

박부희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9년 황해도 연백군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5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감리교인이셨던 조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들이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친척 중에는 목사나 장로인 분들이 많았으며, 큰아버님(송암 박두성 선생)은 평생 동안 맹인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한글 점자를 창안하셔서 성경을 점역하기도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온 가족이 음악을 좋아해 저도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교회의 피아노 반주를 하곤 했습니다. 그 […]

바르고 아름답게 살아 그 귀한 구원 얻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강문형권사(4) / 인천교회

그 후 1979년경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창세기부터 죽 읽어 보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성경 책을 새로 사서 창세기부터 차근차근 읽어 나갔는데,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자꾸만 새로운 의문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해와 사이에서 태어난 가인이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가인이 “만나는 자에게 맞아 죽겠나이다.”(창세기 4장 14절)라고 […]

받은 은혜가 분명한데 어떻게 다른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강문형권사(3) / 인천교회

그해 10월에는 서울운동장(現 동대문 운동장)에서 제3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교인들이 지역별로 팀을 나누어서 축구, 농구, 배구, 100m 달리기, 릴레이, 마라톤 등의 경기를 벌이는 동안 교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운동장에 들어와서 관람을 했습니다. 그때 순서 중에 ‘가장행렬’도 있었는데 가장행렬의 한쪽에는 이만제단 모형을 앞세우고 학생부터 어른까지 힘차게 찬송가를 부르면서 행진하였고, 다른 한쪽은 기성교회의 모형과 장님 […]

장로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말씀을 듣다

강문형 권사(2) / 인천교회

어머니와 저희 형제들은 전도관에 다니면서부터 오랫동안 다녔던 충무 장로교회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 사람들이 종종 집에 찾아와서는 교회로 돌아오라며 어머니를 설득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따금씩 “오늘도 장로교회 사람들이 다녀갔단다.” 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는 계속 전도관에 다닐 텐데 그분들이 괜한 수고를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원효로 구제단과 가까운 집을 구해서 가족들 모두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

성신의 불기둥 보고 용산소방서에서 불났다고 달려와

강문형 권사 / 인천교회

1941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3남 2녀 저희 형제들은 독실한 장로교인이신 어머니(故 신옥선 권사)를 따라 주일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장로교회에 다녔으며, 숙명여대 교수이신 아버님도 젊었을 때 교회에 열심히 나가시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전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충무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언젠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속에 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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