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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0) 부산초량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0) 부산초량집회

부산초량집회(1955.10.16~10.22.)

대구에서 두 번째 집회를 갖고, 열흘 뒤 부산에서도 두 번째 집회를 갖게 된다.장소는 초량역 앞 삼일교회 자리였다.집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이전에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때 받은 은혜를 그리며 찾아왔고,집회에 대한 이야기만 전해 들은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칠새라 집회장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에서 또다시 집회를 여셨다.   1955년 10월 12일자 […]

덕소신앙촌(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①

덕소신앙촌(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①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신앙촌 제품'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과 덕소 신앙촌을 건설하시자 당시의 한 사회학자는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아니하는 그 가운데서 아름다운 도시를 두 개나 건설하고, 공장들을 일으켜서 수만 신자가 완전 흡수되어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며 신앙에 전념하는 별천지를 만들어 놓았다.”(전 이화여대 최신덕 교수) 1964년 10월 19일자 신앙신보는 “많은 사람들이 제1, 제2 신앙촌의 웅려(雄麗)함에 찬탄을 하면서도, 그것이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9)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9)

대구집회(1955.9.30.~10.6.)

인천집회(1955.9.16~22.)가 끝나고 1주일 뒤 대구에서 하나님의 집회가 열린다.대구에서는 6월에 1차로 집회가 열렸었는데 9월에 두 번째로 집회가 열리게 된것이다.이번에도 집회 장소는 칠성동 천변 곧 경북대 앞 사장이었다.   지난 6월에 찾은 적이 있던 대구 칠성동 천변, 그 당시 신문광고에서 보이는 경북대 앞 사장을 또 찾아갔다. 집회가 열렸던 기간(9.30~10.6.)인 지난 4일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곧장 대구로 향했다. […]

덕소신앙촌(3) – 건설 당시의 비화②

덕소신앙촌(3) – 건설 당시의 비화②

신앙촌의 설계에서 건설까지 어느 한구석이라도 하나님의 손길이 안 닿은 곳 없어

주택을 지을 때는 무더운 7월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작업복을 입으시고 구슬 같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시며 손수 공사에 앞장서셨다.   “그때는 레미콘 차량이 없던 때라 시멘트 한 포대를 개자면 물이 두 초롱씩 필요하였습니다. 하루 시멘트 1천 4백 포대를 썼는데 그에 필요한 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길러 주셨습니다. 그 물이 딸릴까봐 한 손으로 하시다가 두 손으로 하시다가 하면서 땀을 […]

기장교회 – 기장읍 굽어보는 제일 크고 훌륭한 교회

기장교회 – 기장읍 굽어보는 제일 크고 훌륭한 교회

1972년 4월 24일 신축 개관집회를 드린 천부교 기장교회는 전국에서 기장신앙촌과 가장 가깝게 있는 교회이다. 개관집회 당시 28인조 시온밴드대가 기장면 일대를 순회, 주민들을 전도했었고 흰돌, 만나, 감람의 구역을 편성해 전도배가운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그때로 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기장교회는 13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3년 3월 3일 지하 1층, 지상 5층, 연건평 600평의 최신식 대형 교회로 부산 […]

1978년 10월 30일 – 전교역자와 교인이 일심동체로 감람나무를 전도

1978년 10월 30일 – 전교역자와 교인이 일심동체로 감람나무를 전도

1978년 9월 1일 전남 목포를 시발점으로 하여 11월 13일까지 협회산하 전 교역자와 교인이 일심동체가 되어 이 귀한 말씀을 전국에 전파하자는 목적으로 전국연합전도대회가 열렸다.그 중 10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열린 대구지구 전국연합전도대회 기사가 10월 30일자 신앙신보 3면에 ‘눈물로 철야한 대구집회’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실려 있다. 『은혜 갈망한 교인들 연일철야 포스타 보고 달려오고, 지나다 들려 은혜 받은 […]

덕소신앙촌(2) – 건설 당시의 비화①

덕소신앙촌(2) – 건설 당시의 비화①

기적같은 신앙촌 건설의 신화 뒤에는 하나님의 땀과 눈물과 희생

1962년 7월 20일, 신앙촌 건설대 일진34명이 풀밭이 무성한 현재 덕소 제단 앞 공터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그 다음날부터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덕소신앙촌을 건설하는 역사적인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21일 저녁까지 현장에 우리와 함께 계시던 하나님께서, 내일 새벽에 다시 와서 단에 서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소사신앙촌으로 가셨다가 그 이튿날 새벽 비가 쏟아지는데도 다시 오셔서 설교해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 동산운동장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 동산운동장집회

인천집회(1955.9.16~9.22.)

“8월의 폭서에 잠시 중단되었던 박태선장로의 야외집회가 재개되는 첫 집회로 모인 인천시민 심령 대부흥회는 그간 세간에서 받은 비난과 폐풍을 일소하기 위하여 일체 안찰로서의 치병(治病)을 중지하고 다만 환자와 시선을 마주침으로 약 3백명의 쾌유자가 나타났다.”(신앙신보 1955.9.28.)   1955년 3월말 4월초에 시작한 남산집회를 필두로 하나님의 집회는 전국각지에서 구름같이 사람들을 모으며 서울 영등포집회, 안동집회, 부산공설운동장집회, 대구집회, 용산군인교회집회, 7월 초의 한강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의 동산중학교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8) 인천의 동산중학교

1955년에 전국적으로 있었던 하나님의 집회는 넓은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열렸었다. 천막집회 장소는 누구라도 찾아오기 쉽게 널리 알려지고 교통이 편한 곳이었다.   그런데 인천에서만은 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천막집회를 여셨다. 당시 인천에는 동산중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공터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동산중학교는 일제의 탄압 가운데도 한국인만의 순수한 재원(財源)으로 운영됐던 유일한 3년제 중등학교였다. 1938년에 개교했으며, 아래 사진은 1941년에 신축한 교사이다.

덕소신앙촌(1) – 신화의 재창조

덕소신앙촌(1) – 신화의 재창조

불가능한 조건에서 더 아름답고 더 큰 규모로 덕소 땅에 두번째 신앙촌을 건설

1962년 7월 20일, 서울에서 약 20km가량 떨어진 북한강 변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와 도곡리 일대의 10만 평 부지에 두 번째 신앙촌인 덕소신앙촌 건설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신앙촌인 소사신앙촌에 이어 두 번째로 신앙촌을 건설한다는 것은 역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수천 세대의 사람들이 한 목적을 바라고 한 곳에 모여 사는 신앙의 도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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