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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감람나무 하나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감람나무 하나님

1956년부터 1957년까지 천부교는 전국적인 부흥과 함께 생명물의 권능이 나타난 시기였다. 하나님께서는 생명물을 축복해 주시며 사람들에게 직접 은혜를 체험하게 하셨고,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에서는 성신의 역사와 기적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기성교회의 방해는 거세졌으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더욱 굳건한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리고 1957년,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인 이만제단이 완공되며 천부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번 호에서는 그동안의 체험기 내용과 함께 그 시기 은혜의 현장을 되짚어본다. ■ 생명물 축복을 통한 권능의 체험 1956년 3월에는 하나님께서는 생명물을 축복해 주셨다. 이 생명물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물로, 이슬성신이 담겨 있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또한 돌아가신 분의 몸을 생명물로 닦으면 살이 뽀얗게 피어나며 몸이 부드럽게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더욱 확신하며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다. 최성녀 권사는 당시 ‘생명물 가지고 전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웃집에 벙어리 아이가 있었는데, 초창기 집회에서 벙어리가 은혜를 받고 입이 열려 찬송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기에, 이 아이도 고칠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축복 캐러멜을 넣어 끓인 생명물을 먹였더니 놀랍게도 말문이 열려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가족들은 고마워하며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홍순은 승사는 하나님께서 구역장들에게 생명물을 나누어 주셔서 장례가 나면 입관할 때 생명물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김도삼 승사도 “전도하러 다닐 때 처음으로 폐병으로 돌아가신 분을 생명물로 씻었더니 굳었던 몸이 노긋노긋해지고, 향취가 나며 얼굴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 순간, 이토록 분명한 생명물이 있으니 어디든지 가서 전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라고 증언했다. ■ 전국 순회집회와 성신의 역사 1956년, 하나님의 은혜는 1955년에 이어 전국 순회집회를 통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마산, 군산, 서울, 전주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성신과 향취 은혜를 체험하며 놀라운 권능을 목격했다. 그럴수록 기성교회의 반발과 방해도 거세졌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곳곳에 전도관을 세우며 천부교 역사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 마산집회(1956년 3월) 마산 신포동 바닷가 근처에서 열린 천막집회에서는 하늘로 불기둥이 솟는 광경이 목격되어 소방서에 신고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불성신임이 밝혀지며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병만 고치는 줄 알고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달고 오묘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은혜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자리를 지켰다. 첫날 1만 5천여 명이 참석했던 집회는 날이 갈수록 인원이 늘어나 6일 예정이었던 일정이 이틀 연장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수많은 인파가 집회장 안팎을 가득 메웠다. ⃝ 군산집회 군산에서는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 소식이 알려지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일부 기성교회에서는 최면을 거는 집회라며 참석을 만류했지만,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향취와 불성신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체험했다. 군산집회 당시 상황은 군산교회 문정순 권사의 체험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집회에 참석했을 때 일부러 기도하지 않고 박 장로님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박 장로님이 ‘어떤 부인이 와서 내가 최면을 거는지 보려고 나만 쳐다보고 있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제 마음을 다 읽으셨을까?’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음날 찬송 중에는 향취가 스쳐 지나갔고, 집회 후에도 그 향취가 계속 느껴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 서울 제2운동장집회 하나님께서는 이 집회에서 성신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임을 강조하셨다. 당시 신앙신보는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안수를 받고 병이 나았으며, 폐병 환자가 완치되고,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된 모습을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국회의원 윤치영 씨와 내무부 장관을 지낸 최창순 박사가 직접 은혜를 받은 체험을 증언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전했다. 이러한 은혜 체험은 성신의 역사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전주 집회 방해 사건(1956년 6월) 전주 노송동에서 열린 집회는 기성교회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기성교계는 교인들의 참석을 막으려 행동대원을 조직해 집회를 방해했다. 집회 첫날, 기성교회 측에서 보낸 300여 명의 행동대원들이 주머니에 돌을 숨긴 채 집회장에 잠입했다. 하나님의 기도가 시작되자 돌을 던지며 소란을 일으켰고, 한 청년은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대로 하나님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마이크대는 하나님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부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이 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권능을 목격했다. 그 후, 방해를 주도했던 청년 중 한 명은 또 다른 집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이후 기장신앙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 제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1956년 10월에는 전국의 전도관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운동장(現 DDP 자리)에서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렸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와 은혜를 목적으로 선의의 경쟁과 협동심을 길러주시기 위해 체육대회를 주최하셨다. 당시 서울운동장은 그 시절 가장 큰 경기장이었으며, 1회부터 3회까지 전도관 체육대회가 모두 이곳에서 열렸다. 대통령 행사가 있을 때도 사용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던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도관 체육대회는 천부교 역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대회에서는 배구, 농구, 릴레이 등 다양한 종목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마산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 감람나무 발표 1956년 11월,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풀어 주시며 감람나무의 존재를 밝히셨다. 그동안 이슬성신과 향취 은혜를 내려주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신 하나님께서는 100만 명이 그 은혜를 체험하기까지 기다리신 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성경 속 감람나무임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와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들으며, 성경 예언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바로 그 감람나무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기장신앙촌 김순용 권사는 호세아 14장의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라는 구절을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셨던 순간을 떠올렸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천막 안에 이슬비가 내리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성경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를 제가 직접 체험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노량진교회 박종문 승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시는 말씀을 듣고 감사드렸다고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대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라 하시며, 그 은혜를 통해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이토록 귀하신 분을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감람나무를 만나지 못했다면 죄를 씻을 길이 없었을 텐데 얼마나 큰 복을 받은 것인가!’ 하고 깊이 감사했습니다.” ■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 서울중앙전도관 1956년, 기성교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원효로전도관 개관 후 교인 수가 급증하여 청암동에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만제단 신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7년 4월 25일,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인 서울중앙전도관이 완공되어 그 위용을 드러냈다. 집회 중 향취와 이슬성신이 가득 내려 많은 교인이 은혜를 체험했고, 수많은 기적과 말씀을 통해 구원의 참뜻을 깨닫게 하셨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교회가 외국의 원조에 의지해왔던 반면, 이만제단은 외부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건축된 국내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1956년 7월 기공식과 함께 신축 부지에서 12일간 부흥집회가 열렸으며, 약 9개월의 공사 끝에 1957년 4월 이만제단이 개관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4월 25일부터 10일간 개관집회 및 부흥집회, 장로 임명식, 제2회 전도관 체육대회가 열려 많은 교인들이 은혜를 체험했다. 특히,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진행된 낙성집회에서는 향취와 이슬성신이 가득 내려, 그때 찍힌 이슬성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이 시기 생명물의 권능과 전국 순회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 은혜를 주시는 분이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고, 이는 전도의 불길로 이어져 천부교 역사는 더욱 굳건히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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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70년 전,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크신 은혜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며 내려주신 그 은혜는 인간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특집 기사에서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펼쳐진 놀라운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955. 1.1. 하나님 초청집회 ■ 하나님 초청집회에서 시작된 은혜 1955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된 첫 집회였다. 이후 서울 삼청동 감리교회, 마산 문창교회, 소사 중앙교회, 서울 동대문 창신교회, 청주 외덕교회, 서울 용산 도원동교회 등에서도 집회가 이어졌다. 이때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깊은 감동과 은혜를 체험하며, 병자들이 치유되는 기적과 이사를 직접 목격했다. 왕십리 장로교회에 다니던 조온순 승사(기장신앙촌)는 목사로부터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박태선 장로님 집회 소식을 들었다. 성신의 역사가 불일 듯하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뜬다는 이야기에 조 승사는 곧바로 집회에 참석했다. “교회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로 가서 찬송을 부를 때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나더니 이내 백합꽃 향기가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조 승사는 예배를 마치고 안찰을 받을 때도 기쁨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안찰을 받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며 기쁨이 가득 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몸 전체가 둥실 떠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1955년은 6.25 전쟁 직후로 변변한 교회 건물이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 청량리에 정착한 승운표 퇴임관장은 보린장로교회에 다니며 교회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어 교회를 확장하려 했지만, 신축 비용 마련이 어려웠습니다. 부흥 강사를 초청해 집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헌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직회에서 당시 유명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초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 집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임옥산 집사(기장신앙촌)는 창신동 장로교회와 도원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연이어 참석하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다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하셨을 때, 꼽추의 등이 펴지고 벙어리의 말문이 열리는 것을 봤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른 봄 추위 속에서도 몸이 뜨겁다며 불성신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 집사는 이 모든 일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박말임 승사(마산교회)는 마산 문창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중, 김석찬 목사가 서울에서 박태선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신경통이 나았다며 강단 위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후 박 승사는 문창교회에서 열린 박 장로님 초청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직접 체험했다. “찬송을 부를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르고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에는 마산에 있는 중앙 장로교회, 신마산 장로교회에서도 박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 때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의 말문이 트이는 등의 기사이적을 보고 은혜를 체험한 각 교회의 교인들은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로 몰려들었습니다.” 1955.3.26. 전국 순회집회 ■ 1955년 전국으로 퍼진 순회집회 1955년 3월 2일, HLKA(서울중앙방송국, KBS 전신) 뉴스는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놀라운 기사와 이적 소식을 전했다.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서 꼽추, 앉은뱅이, 장님, 조막손 등 불구자들이 완치되었다는 보도였다. 또한, 고름투성이 환자들로 가득한 집회장이 오히려 기막힌 향취로 가득 차고, 하늘에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집회장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더 이상 건물 안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천막을 동원해 전국 순회집회를 시작하셨다. 남산집회를 시작으로 8개월 동안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린 15회의 집회에는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 남산집회, 첫 순회집회의 시작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 집회’ 포스터를 본 신성선 승사(덕소교회)는 시어머니와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며 찬송가 받침대를 내리치실 때마다 뽀얀 것이 풀썩풀썩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참을 찬송하시다가 받침대를 치시니 이번에는 빨간 불덩이 같은 것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 저렇게 불을 많이 뿜어내시니까 사람들이 불의 사자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공설운동장집회, 기성교회의 변화 1955년 5월, 김영애 권사(대신교회)는 부산 공설운동장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체험했다. “이웃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해 형언할 수 없는 좋은 향기를 맡았고, 병이 나았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동일교회 목사가 박 장로님을 비난하며, 앞으로 박 장로님 집회에 가는 사람들을 교적부에서 제명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신광교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집회 후 저는 하나님을 중상 모략하는 동일교회에 발을 끊었고, 동일교회는 교인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용산 군인교회집회, 향취의 은혜 집회 참석자들은 병자들이 낫고 향취를 맡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되었다. 정봉학 승사(기장신앙촌)는 용산 군인교회집회에서 잊지 못할 은혜를 체험했다. “예배 시작 전, 윤치영 장관은 암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부인이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그 자리에서 편육 한 사발을 다 먹었으며, 자신도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향기가 확 하고 코로 들어오더니 다시 맡으려고 했지만 사라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설교와 찬송 인도 중에도 향취가 났었는데, 집에 돌아가 기도를 드릴 때도 그 향취가 다시 진동했습니다.” 한강 모래사장집회, 병자들이 치유돼 한강 모래사장집회에 참석한 함복득 권사(기장신앙촌)는 들것에 실려 온 관절염 환자와 문둥병 환자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힘차게 찬송을 인도하신 후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시자, 집회장은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감사와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특히 하얀 저고리를 입은 꼽추 아가씨는 저고리가 불룩할 정도로 등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펴진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박양진 승사(기장신앙촌)는 서울 성남중학교 재학시절,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 소식을 듣고 한강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학교에서 학생들의 주된 화젯거리는 자신들의 이웃에 살던 벙어리, 앉은뱅이, 장님, 귀머거리 등의 환자들이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 참석해 완쾌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친구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자 여기저기서 병자들이 일어나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다. 벙어리가 단상으로 올라와 찬송을 부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인천 동산중학교집회, 믿음의 전환점 정인화 권사(인천교회)는 어릴 적 목사가 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라 믿으며 성경학교에 열심히 다녔지만, 인천 동산중학교집회에 참석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하루는 목사가, 전날 인천의 동산중학교 교정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갔던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며 ‘박태선 장로는 집회에서 죄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죄가 어떻게 탈 수 있다는 말이냐? 죄가 타는 물체냐? 혹 물체라 하더라도 불이 있어야 타는데, 물체도 불도 없는데 어떻게 탄단 말이냐?’라며 박 장로님을 비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오히려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말씀은 은혜롭고 신비로웠습니다. 비가 와 질퍽한 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는 기성교회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엄청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광주공원집회, 이슬 같은 은혜와 향취 박정순 권사(덕소교회)는 광주공원집회에서 놀라운 체험을 했다. “박 장로님께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인도하시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주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라고 하시며 은혜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음 날 집회에서는 안개처럼 뽀얀 것이 집회장을 덮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광경을 보던 중, 박 장로님께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은혜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1955. 12. 24. 원효로전도관 ■ 천부교 최초의 교회, 원효로전도관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몰려들자, 기성교회에서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연합회는 하나님의 천막집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목사들은 교인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이로 인해 집회장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사람들은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회에서 체험한 은혜와 기쁨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그 은혜를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1955년 12월,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원효로에 천부교 최초의 교회인 전도관을 세우셨다. 조남준 권사(기장신앙촌)는 원효로전도관이 세워지게 된 과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교인들이 하나님 은혜에 갈급한 나머지 수소문하여 원효로에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조그만 기도처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짓게 된 곳이 원효로 전도관이었습니다.” 김춘산 권사(소사교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여러 집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체험했다. 박 장로님이 가시는 곳마다 은혜가 내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기성교회를 떠나 원효로 구제단을 찾게 되었다. “원효로 구제단은 집회에서 받은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속 기쁨이 끝없이 샘솟아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때는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시원해지며 몸의 무게가 사라지는 듯한 체험도 했습니다. 이것이 불성신의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55년은 하나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천부교의 역사가 펼쳐진 시기였다. 은혜의 발자취가 된 여러 집회와 원효로전도관은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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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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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사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신앙인의 마을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 같은 성신이 임하시는 은혜의 땅이자 천부교인의 성지입니다. 천부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며 이슬성신이 내리는 체험의 종교이자 자유율법을 지키는 행함의 종교입니다. 천부교를 믿는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신앙인의 마을을 이룬 곳, 맑고 푸른 자연 속에서 바른 양심으로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고자 노력하는 곳입니다. 신앙촌에는 청소년부터 천부교 초창기 세대인 어르신들까지 4대가 함께 모여 살고 있으며, 종교 시설을 비롯해 주택과 아파트의 주거 시설, 교육 시설과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요구르트 런과 생명물간장, 생명물두부를 생산하는 식품 단지는 부산 경남 지역의 학생들에게 첨단 설비를 견학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여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은혜의 마을 신앙촌 우리가 신앙촌에서 함께 사는 이유는 믿는 사람끼리 있으면 믿음이 커지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 은혜가 상승되기 때문입니다. 숯덩이에 비유해보자면 불을 붙인 숯덩이가 젖은 숯덩이 속으로 들어가면 불이 식어서 불길이 사그라들지만, 활짝 피운 숯덩이끼리 따로 모아 피우면 그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천부교인들이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고 깨끗하게 살기를 바라시며 신앙촌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신앙촌은 천부교인들의 마을이자 전국 모든 천부교인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신앙촌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신앙촌 기업은 우수한 제품으로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생각으로 공정마다 정성을 다하여 만듭니다. 신앙촌 기업은 1957년 창립 당시부터 정직과 신용에 바탕을 둔 “신앙촌 소비조합”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지금도 신앙촌상회에서 고유의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지는 고객들과의 신뢰는 신앙촌 기업의 큰 자랑이자 기쁨입니다. . 신앙촌 기업은 어떤 곳인가요? 신앙촌과 천부교를 처음 알게 되신 분들 중에는 왜 종교와 기업을 같이 운영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신앙촌 기업은 1957년 소사신앙촌을 시작으로 현재 부산 기장신앙촌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습니다. 신앙촌의 기업은 주민들이 경제 자립을 이루게 함으로서 재정적인 걱정 없이 참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신앙촌 기업의 역사는 소사신앙촌이 건립된 1957년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우리나라. 외국의 원조만 바라며 제대로 된 생필품이 없었던 그 시절, 신앙촌제품은 최고의 품질로 다른 기업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은 빵, 간장, 양말, 비누 등 100여 종의 생필품을 생산하며 국민들의 기본적인 수요에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도 함께 생산하여 문화생활 향상에 기여한 바 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는 자수 이불, 밍크 담요, 엑슬란 내의 등 경공업산업과 함께 중공업에 진출하여 제철과 제강제품을 생산했습니다. 기장신앙촌 때는 수출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큰 공헌을 세워 1972년에 석탑산업훈장을, 1973년에는 철탑산업훈장을 국가로부터 수여받았습니다. 정직과 신뢰, 최고의 품질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신앙촌 기업에는 경제 활동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통해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신앙촌 기업은 오늘도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기술, 최대의 화합으로 뭉쳐서 고객에게 건강과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곳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양심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1957년 소사신앙촌, 1962년 덕소신앙촌, 그리고 1970년 기장신앙촌에 이르기까지 세 곳의 신앙촌을 건설하신 것입니다. “선하고 의롭게 행하려는 마음의 법” 자유율법은 그릇됨과 잘못됨에 타협하지 않는 법을 말하며 다른 말로 양심의 법이라고도 합니다. 자유율법, 즉 양심의 법을 지킨다는 것은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탐나는 물건이 있어도 실제로 훔치기 전에는 죄라고 하지 않으며, 아무리 미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남을 해치기 전에는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무엇인가 탐내는 마음이 생길 때, 누군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이미 자유율법에 어긋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율법을 지켜 진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자유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성결해지면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자유율법은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지키는 법이며, 천부교인들은 자유율법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자 구원의 길을 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슬같은 은혜가 내리는 신앙촌 신앙촌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는 곳이며 그 은혜는 이슬과 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신, 즉 이슬성신을 말합니다. 이슬성신은 인간의 죄를 씻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신으로,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을 내린다는 것은 천부교가 시작된 이래 수백 만의 사람들이 직접 보고 체험한 사실입니다. 이슬성신이 공기 중에 흐를 때 향취라 하고 이슬성신이 물에 담기면 생명물이 됩니다. 생명물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신앙촌은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곳이기에 지금도 변함없이 이슬성신이 내리고 생명물이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