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12) 원주집회

원주집회(1955.11.8.~14.)
발행일 발행호수 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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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50년 전에 원주집회에 참석하려 기차를 타고 원주에 왔었던 두 여학생이 50년만에 다시 원주역 앞에 섰다. 안찰 받다가 방귀를 뀌었다는 강영남권사(오른쪽)는 `여학생들이 방귀를 뀌네.`하셨던 기억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사진 왼쪽은 홍정우권사.

1955년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의 천막집회는 서울의 제2운동잡 집회 후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원주에서 집회를 열게 된다.
1955년도에 있었던 15회의 천막집회 가운데 남아 있는 자료가 가장 적은 집회가 원주집회이다. 참석자들의 체험기도 거의 없었고, 수소문 하여 찾아 보면 천막집회가 아닌 원주전도관 개관 집회였던 경우가 많았다. 집회를 하셨던 날은 시작되었고 날짜는 지나가고 있었다.50년 전 천막집회를 하신 그 기간에 그날의 참석자들과 함께 그곳을 찾아 그날의 감동을 재현하자는 것이 이 란의 취지였는데… 
 
드디어 원주집회 참가자를 찾았다. 그 때의 일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천교회의 홍정우권사(70)는 1955년 10월 25일부터 11월 1일까지 일주일간 열렸던 서울 제2운동장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예배시에 불덩이가 단상 주위에 퍼지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여달라’는 기도를 드렸다는데, 참석 삼일째 되던 날 불덩이가 본인에게로 달려오자 옆에 있던 친구 강영남권사(69. 서울동작교회)에게로 피하고는 ‘아이고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겠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그 때 옆에 있던 강영남 권사는 “얘가 뭔가 받긴 받나보다’고 생각하였다고 했다.
 
그렇게 제2운동장 집회를 마치고 원효로 하나님 댁의 기도처로 찾아가서 안찰을 받게 해달라고 했더니 일을 보던 이동선 목사가 여기는 밀린 사람이 많으니 곧 있을 원주집회로 오라고 하여 그 둘은 기차를 타고 원주로 향했다고 한다. 원주 가는 기차를 타고는 이칸 저칸 기웃거렸는데 앞의 칸에 하나님께서 앉아계신 모습을 발견하고 좋아했다는 홍권사. “그래도 가서 인사도 못 드렸어요. 내내 쳐다보기만 했지.”
 
원주행 기차를 타고 보니 앞 객차에 하나님께서도 타고 계신 것 알고 놀라
돌을 던지고 방언을 하며 방해가 극심했으나 권능의 철장 앞에 무너지고 큰 은혜 내려
 
그렇게 원주에 도착한 두 여학생은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물어물어 갔는데, 지금 그 자리가 어디인지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신앙신보 1974년 2월 11일자 3면의 <그날의 증언 1>이란 기사에 보면 원주집회의 기간이 11월 8일부터 14일까지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에서 제2운동장 집회를 마치고 1주일 뒤에 강원도 원주에서 집회가 열린 것이다.
 
집회 기간 중 하루인 지난 12일 기차를 타고 원주에 찾아갔다. 택시기사들에게 50년전 천막을 치고 집회를 열었던 장소를 찾는다고 하자 역 뒤쪽 정지뜰이 있는 정지마을 근처가 아니겠는가 하는 말들을 했다. 그곳은 원주 역 뒤 원주천 주변이었다.
 
‘50년 전 그 때도 그렇게 오래 걸어 간 것은 아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한다는 강권사는, 천막은 제2운동장 보다는 적은 규모였었다고 말한다.
 
당시를 기록한 신앙신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는 협회 창립 1주년 기사인 1956년 9월 28일 기사이다.
 
“11월 초 강원도 원주집회는 찬 반의 대시련 중에 개최되었다. 이 집회에서 부터 반대 세력은 두 가지로 나타났으니 능(能)이 없는 비진리와 능(能)이 있는 비진리인 것이다. 전자(前者)는 외부에 충만한 생명없는 자들이요, 후자(後者)는 집회에 침투하여 성신을 상대하는 사신(邪神)이 그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사신(邪神)의 소동으로 첫날과 다음날은 양세력의 대결로 은혜가 막혔으나 박장로의 철장 앞에 여지없이 무너져서 후반기에는 더 많은 은혜가 나렸다.”
 
강팍했던 도시에도 은혜를 부어 주시다
 
기사의 내용을 강권사가 증언해 주었다. “그 때 하나님 서신 단상으로 돌이 날라와 하나님께서 옆으로 피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반대세력이 심하고집회장에 가는 것을 어떻게 막았는지 마지막 날까지 꽉 차지는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주가 이렇게 강팍하다’고 하시며 손을 들어보이시는데 손이 다 갈라지셨어요. 그 때 말씀이 여기 앉아있는 사람 가운데도 손이 갈라진 사람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 때 저도 손이 갈라져서 집회가 끝나고 서울에 와서도 한동안 박수를 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아팠었습니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 개최되었던 원주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두 여학생은 그날 이후 원효로 기도처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둘 다 어머니를 전도하고, 시기는 다르지만 둘 다 소사신앙촌 건설대로 들어가게 된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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