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고 난생 처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려

이경수 승사(1)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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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제 고향은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병산리의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식구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지만 저는 동네 형과 함께 일요일마다 꾸준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장연 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열일곱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습으로 학교도 문을 닫고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자 가족들은 저에게 잠시 이남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금방 돌아갈 줄 알고 혼자 이남에 왔으나 백령도에서 몇 달을 지내보니 전쟁이 점점 격렬해지며 돌아갈 길은 어려워 보였습니다.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저는 해병대에 자원해 5년간 군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제대 후에는 부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주동전도관 신축예배를 인도하신 후
박 장로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시니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기사 이적이 일어나

저는 대신동에 있는 큰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면 기술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열심히 기술을 배우며 일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저녁에 근무하다 보면 은은한 음악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릴 적에 배웠던 찬송가 선율이 잔잔한 종소리로 울려 퍼지니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어느 날 저녁 종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더니 공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신동전도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저녁예배를 드리는 날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교회에 다녔던 생각이 나서 예배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맨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는데 모두들 간절하게 찬송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그 속에서 찬송을 따라 부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제부터 여기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겠구나.’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가 1957년, 제 나이 스물네 살 되던 때였습니다.

얼마 후 저는 영도에 있는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전도관 교인이신 사장님은 제가 성실하게 일한다며 격려해 주시고 가족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사장님 댁 2층에 임시로 예배실을 꾸며서 영도에 사는 교인들이 예배를 드렸는데, 저는 거기서 처음으로 ‘은혜 체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전도관에 다니면서 성신을 받았다, 죄 타는 냄새를 맡았다, 향취를 맡았다 하며 여러 가지 체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후 영주동에 전도관이 완공되어 신축예배를 드렸을 때(1957. 12. 1.∼12. 4.)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영주동전도관은 새하얀 외벽의 3층 건물이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판잣집뿐이던 시절에 종각을 높이 세운 영주동전도관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박태선 장로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단상에 올라오신 박 장로님을 뵙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박 장로님의 머리 뒤편으로 둥근 광채가 둘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 장로님의 얼굴이 얼마나 밝고 환하게 빛나는지 참으로 높고 귀하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한참 동안 찬송을 인도하신 후 단에서 내려오셔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단상에 오르셔서 병이 나은 사람은 일어나 보라 하시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자신의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는 바람에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앉은뱅이였다가 일어서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는데 앞을 보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매주 영주동제단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의 인도로 찬송을 부를 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쏴아-” 하며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천장을 올려다봤지만 새로 지은 건물이 비가 샐 리도 없었고 제 몸은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습니다.

성신의 단비 같은 은혜를 받고 보니
혼자 고향을 떠난 뒤 짓누르던 불안감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거워
박 장로님 오시는 길을 정성껏 청소해

그때 머릿속에 지난 일들이 생각나는데 어릴 적에 남의 밭에서 참외 하나 딴 것까지 다 떠올랐습니다. 그 일들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용서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드리게 되었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무릎에 떨어져도 창피한 줄을 모르고 계속 울면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생각해 보니 예전에 영도제단 교인들이 ‘성신의 단비’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막연히 나도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했는데, 예배 시간에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 ‘성신의 단비’를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도 귀한 은혜를 주셨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제가 십대 적에 혼자 고향을 떠난 뒤로 마음을 계속 짓누르던 불안감과 외로움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일요일마다 영주동제단으로 올라가는 길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길을 정돈하고 싶어서 정성껏 청소를 했습니다.

(이경수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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