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성결한 마음 주시기를 오늘도 기도 드려

김장예 집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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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소사신앙촌 공장 지대 모습(1958년경)

당시 신앙촌 캐러멜과 카스텔라는 맛있기로 유명해서 인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약속한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에서는 시간을 아끼며 생산했는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제과 공장 사람들을 부르셔서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자유율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시며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지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유율법에 비추어 합당한 모습이 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재차 강조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저는 분주한 생활 중에 죄된 마음과 생각을 가진 적이 없는지 순간순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향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하는 찬송을 속으로 계속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자유율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시며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지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하셔

1962년 경기도 덕소에 두 번째 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건설대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메리야스 공장 건물을 지을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작업복을 입으시고 시멘트 반죽에 필요한 물을 손수 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사에서 덕소까지 매일 오셔서 건설을 진두지휘하시고 작업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경험을 쌓은 건설대원들은 지시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일하며 어렵고 힘든 일을 먼저 하려고 했습니다. 건설이 한창 바쁠 때는 밤에 횃불을 켜 놓고 일하기도 했는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신앙촌은 밤에 불이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집이 한 채씩 생긴다.”고들 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건설되는 신앙촌을 보며 저는 참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때 20대였던 저는 나이가 더 어리거나 많았으면 건설대에서 일하기 어려웠을 텐데 꼭 알맞은 나이여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건설대 숙소에서 잠을 깨는 새벽이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건설대 시절 돌아보면 한없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셨던
그 시대에 하나님을 뵐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껴
이 길을 먼저 안 것보다 지금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가 더 중요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체구도 작고 힘도 약했던 제가 일을 하면 얼마나 했을지, 도리어 이 역사에 짐이 된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역사하셨던 그 시대에 하나님을 뵐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먼저 안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 봅니다.

지난 1996년에는 덕소신앙촌에 사시던 어머니가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덕소신앙촌 장례반 권사님들이 오셔서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겨 주셨는데 팔순이 넘은 어머니 얼굴이 아기 피부처럼 뽀얗게 피어서 참 곱고 예뻤습니다. 또 온몸이 노긋노긋 부드러워서 살아 계신 분에게 옷을 입히듯이 수의를 입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정신이 또렷하고 정정하셨는데 갑자기 자리에 누우셨다가 돌아가셔서 저는 슬프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처럼 맑은 얼굴로 잠든 것 같은 어머니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구나.’ 하며 어느새 마음이 잔잔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 시신을 생명물로 씻기자
아기처럼 맑은 얼굴로 잠든 것 같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구나’하며
슬픈 마음이 어느새 잔잔하고 편안해져

항상 기장신앙촌에 살기를 소망하던 저는 1998년에 드디어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입주한 첫날 잠자리에 누웠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았고 ‘제가 어떻게 이 귀한 곳에 왔을까요.’ 하며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하나님 허락해 주신 귀한 땅에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주하고 몇 년 후부터는 신앙촌의 여러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으로 활동했습니다. 장사 경험이 없는 저는 처음에 판매하는 것이 서툴렀지만 신앙촌 제품을 믿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신앙촌 상회에 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같이 즐거웠습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마음은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소비조합을 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고 젊은 소비조합의 일을 돕고 있는데 서로 격려하며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생활하며 세월의 흐름도 잊고 살았는데 어느덧 팔순이 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모든 죄를 씻어 마음의 성결함을 이룬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던 말씀은 변함없이 제 마음에 울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씻어 주시는 대로 성결하게 살지 못한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지나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적은 지금은 앞으로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고 성신의 은혜를 간직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고 저 자신에게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성결한 마음을 주시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장예 집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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