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성결한 자격 갖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려

권기남 권사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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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런데 제가 더욱 놀랐던 것은 친정아버지가 안동전도관에 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완고한 안동 양반인 아버지는 장로교회든 전도관이든 전부 못마땅해 하셨는데 어떻게 전도관에 나오시게 됐냐고 어머니께 여쭤 봤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네 아버지가 너를 보고 이러시더구나. ‘기남이가 전도관에 다니더니 딴사람이 됐어. 저 아이 고집은 누가 꺾는다고 꺽어질 리가 없는데 마음이 저리도 부드럽게 되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며 많이 놀라셨어. 그래서 내가 전도관에 나와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전도관에 나오시는 거야.”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전도관에 다닌 후로 성경과 찬송 책을 항상 곁에 두고 보셨습니다. 찬송가 가사가 참 좋다고 하시며 곡조를 잘 모르는 찬송은 가사에 나름대로 운율을 붙여서 한자 책을 읽듯이 읽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안동제단에 계속 다니시며 집사 임명도 받으셨습니다.

완고한 안동 양반이던 친정아버지는
누구도 꺾지 못하던 고집 센 내 성격이
전도관에 다닌 후로 부드럽게 변하자
많이 놀라시며 전도관에 나오시게 돼

그 후 1958년 무렵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몸이 약해진 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몸져눕게 됐습니다. 점점 말라 피골이 상접하게 되니 이웃들은 젊은 사람 얼굴이 못쓰게 됐다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때 마침 대구제단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안찰해 주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기운이 없어 혼자서는 제단까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새댁한테 부탁했더니 새댁이 제 양산을 들고 저를 부축해 주어서 제단까지 겨우겨우 갈 수 있었습니다.

제단에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이 안찰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어서 저도 차례를 기다려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고 나니 저도 모르게 혼자 힘으로 벌떡 일어나게 됐습니다.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저는 배가 얼마나 고픈지 빨리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올 때는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한 걸음씩 걸었지만 안찰을 받고 갈 때는 한 손에 양산을 들고 훌훌 나는 듯이 뛰어갔습니다. 밥을 한 상 차려서 맛있게 먹고 나니 기운이 솟으며 살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 아기를 업고 우물가에 갔더니 물을 긷던 아주머니들이 “새댁이 새사람 됐네.” “얼굴이 아주 좋아졌어.” 하며 한마디씩 건네셨습니다. 저는 안찰을 받고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제단에 자주 못 와 안타까워 하는 교인 집에 찬송을 부르며 심방을 가는데
밭에서 방금 전까지 풍기던 거름 냄새는 하나도 안지 않고 진한 향취가 맡아져
교인 집 도착해 찬송 부르며 예배 드리는 내내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을 느껴

그 후 저희 가족은 안동으로 이사해 얼마 동안 안동제단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정아버지가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셔서 전도관 식으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안동제단 전도사님과 남자 교인들이 시신을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 봤더니 아버지는 피부가 뽀얗고 맑게 피어서 그렇게 젊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살짝 머금고 계신 아버지는 달게 한숨을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원래 저는 어느 집에서 장례가 났다고 하면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 집을 피해 멀리 돌아서 가곤 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라도 난생처음 시신을 본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섭기도 했는데, 곱게 핀 아버지를 보고 나니 그런 무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살아 계실 때보다 훨씬 좋고 편안한 모습에 오히려 계속 들여다보고 싶었고,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친정 아버지 입관예배를 드리자
피부가 뽀얗고 맑게 피어 젊어 보이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듯 편안해 보여
귀한 은혜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그 후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을 때 집 가까이에 ‘침산전도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사하고 당장 내일부터 새벽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제단을 찾나 고민하며 동네를 돌았습니다.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손뼉 치면서 찬송하는 데가 어딘지 아니?” 하고 물었더니 애들이 일제히 “알아요!” 하며 가르쳐 주어서 제단을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침산제단에 다닐 때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먼 곳에 사는 교인 집으로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거리 때문에 제단에 자주 오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집을 찾아 찬송을 부르며 밭둑길을 가는데 갑자기 아주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교인들도 숨을 들이마시며 향기가 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밭에서 풍기던 거름 냄새는 하나도 나지 않고 진한 향취가 너른 들판을 가득히 채우는 것처럼 진동했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니 저희 일행을 무척 반가워했고, 힘차게 찬송을 부르며 예배드리는 내내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심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찬송을 부르며 그 먼 길을 즐겁게 걸어왔습니다.

아흔이 넘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씻겨 드리자
온몸은 노긋노긋 부드러워지고
어머니 얼굴 뽀얗게 피어 홍조까지

안동제단에 계속 다니시던 친정어머니는 91세를 일기로 운명하시게 되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릴 때 관장님과 교인들이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저와 안동제단 교인이 함께 생명물로 어머니를 씻겨 드렸습니다. 다 씻긴 후에 명주로 지은 수의를 입혀 드릴 때는 온몸이 노긋노긋하고 부드러워서 꼭 어린아이에게 새 옷을 입히는 것 같았습니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 얼굴이 뽀얗게 피고 발그스름한 홍조까지 띠어서 화장한 것보다 예쁘고 고왔습니다.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에 8남매 저희 형제와 가족들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대구전도관에 다니던 저는 지난 2000년에 신앙촌으로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전 소사신앙촌이 건설될 때부터 신앙촌에서 살고 싶었던 저는 오랜 소원이 이루어져서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요즘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저와 함께 신앙촌에서 사는 막내딸이 늘 바르게 신앙의 길을 가기를 기도드리곤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세워 주신 신앙촌에 살면서 자유율법을 꼭 지켜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멀리하며 진심으로 애쓰고 노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바른 정신과 맑은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아름답고 성결한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권기남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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