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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면 다 같은 길이지 왜 꼭 전도관이 살길인가?’

김귀임 집사(1) / 기장신앙촌

1920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의 농가에서 태어난 저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때는 어려운 시절이라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며 열심히 일해도 끼니 걱정을 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논밭으로 다녔던 저는 교회나 절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종교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나고 서른네 살 무렵에는 저 스스로 교회를 찾아 […]

자유율법 지켜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의인의 자격 갖추고파

김정자(3) / 기장신앙촌

언젠가 제과 공장 직원들이 트럭을 타고 가서 시멘트 벽돌을 옮기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득히 쌓인 벽돌을 손수 집어서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벽돌을 받아들 때마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져서 순식간에 나를 수 있었습니다. 제과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즐겁게 찬송을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온화하게 미소 띤 모습으로 저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때 아주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불어와 […]

향취가 진동하면 하나님께서 공장에 오신 것을 알 수가 있어

김정자(2) / 기장신앙촌

1957년 4월에는 서울에서 이만제단 개관집회가 열려서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굽어보는 산언덕에 우뚝 세워진 이만제단은 크고 멋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수만 명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한강을 넘어 서울 시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집회 기간 중에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도관 체육대회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국의 전도관 교인들이 함께 모여 여러 가지 경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

하나님 집회에서 죄를 태우시는 불성신을 체험해

김정자 (1) / 기장신앙촌

저는 1941년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리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 뒤로는 설산이 있고 앞으로는 옥과천이 흐르는 아담한 시골이었습니다. 온화하신 성품의 부모님 슬하에서 6남매 저희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다정하고 의좋게 생활했습니다. 원래 저희 집안에서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어머님이 동네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 다니셔서 저도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녔습니다. 종교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

내가 받은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만나고 이 길을 따라온 것

조경임 권사(3) / 서울 노량진교회

저희 식구들은 오빠가 서울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저도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작은 집을 마련하게 되었고,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와 동생들도 서울에 올라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스물네 살에 결혼한 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몇 년 동안 제단에 다니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전도관과 신앙촌이 그리워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아주머니만 봐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

“목사님은 이슬성신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벌컥 화를 내

조경임 권사(2) / 서울 노량진교회

그 후로 집회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저는 매일 새벽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이만제단 집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마음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춥고 외로웠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고향 생각에 눈물지었던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로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또 집회에 […]

강대상을 “탕!”하고 치시는 순간 안개 같은 것이 퍼져 나와

조경임 권사(1) / 서울 노량진교회

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군 백구면 부용리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마을은 과수원과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꾸렸던 저희 집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형편이 몹시 어려워졌습니다. 신병을 앓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면서 저는 서울로 올라가 큰집에서 생활하며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큰어머니는 가족과 떨어진 저를 안쓰럽게 […]

‘어떻게 하면 매 순간을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까’ 생각

임유환 권사(4) / 기장신앙촌

그 후 1980년에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밝히시며 예수를 믿어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예수의 정체를 바로 밝히지 못하시고 교인들이 깨달을 때까지 차근차근 가르치신 후에야 발표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신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초창기부터 성경 호세아서를 말씀하시며 이슬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와 같다고 하셨는데, […]

“목사가 한 말이 떳떳했다면 왜 도망을 가겠습니까?”

임유환 권사(3) / 기장신앙촌

그 후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노구산 꼭대기에 지어진 오만제단은 제가 그때까지 본 건물 중에 가장 크고 넓은 건물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서 하나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시댁 조카가 소사신앙촌에 살고 있어서 저녁예배를 마친 후 조카네 집에 가서 밥도 먹고 잠을 잔 후에 다음 날 오만제단에 갔습니다. […]

‘이때까지 죄인 줄도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나 많았던가?’

임유환 권사(2) / 기장신앙촌

그 후 삼례읍 정산전도관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렸을 때 저는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에게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의 손이 제 배에 닿는 순간 얼마나 아픈지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았고, 안찰을 받고 나서도 배가 당기고 아파서 허리를 펴지 못했습니다. 저는 ‘살짝 손만 대셨는데 왜 이리 아플까?’ 하다가 문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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