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율법 지켜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의인의 자격 갖추고파

김정자(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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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언젠가 제과 공장 직원들이 트럭을 타고 가서 시멘트 벽돌을 옮기는 작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가득히 쌓인 벽돌을 손수 집어서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벽돌을 받아들 때마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져서 순식간에 나를 수 있었습니다. 제과 공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즐겁게 찬송을 불렀는데 하나님께서 온화하게 미소 띤 모습으로 저희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때 아주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불어와 맡아져서 친구들끼리 향취가 난다며 기뻐했습니다. 그때는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신앙촌을 세워 주신 하나님의 땀과 희생을 헤아리지 못한 채 철없이 지내 온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구원을 얻으려면 자유율법 지켜야
안찰하실 때 죄를 지적하신 모습보고
하나님께서 내가 지은 죄를 아시고
성신으로 씻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

저는 신앙촌에서 생활하며 자유율법에 대한 말씀을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으려면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말고 자유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찰하실 때마다 각 사람의 죄를 드러내 지적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지은 죄를 낱낱이 아시고 그 죄를 성신으로 씻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찰 받을 때 “왜 이런 죄를 지었나요?”
라고 하신 하나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친구와 말다툼했던 일을 깊이 후회하고
죄짓지 않는 생활 위해 노력할 것 다짐해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친구와 말다툼하며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안찰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내 마음을 다 아실 텐데…….’ 하는 생각에 몹시 떨리고 긴장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안찰을 받는 가운데 제 차례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안찰하시기도 전에 “왜 이런 죄를 지었나요?”라고 하셨습니다. 안찰하실 때 배에 살짝 손을 대실 뿐인데도 저는 몹시 아파서 겨우겨우 통증을 참았습니다. 차츰 통증이 물러가고 시원함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 하시며 손을 떼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왜 이런 죄를 지었나요?” 하시던 음성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저는 순간의 언짢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했던 일이 깊이 후회되었습니다. 그때 마음으로도 죄짓지 않는 생활을 하기 위해 자제하고 절제하며 많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예공장에 근무할 때 원단 구매하러 다녀오다가 큰 교통 사고가 났는데
사고 현장을 본 교통 경찰들이 이런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하다며 깜짝 놀라
이튿날 “괜찮았지? 내가 지켜 줬어”하신 하나님 말씀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

그 후 한복부로 옮겨서 근무했던 저는 1971년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뒤에도 한복부에서 계속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기장신앙촌에서 수출을 많이 하게 되었을 때는 수출품을 만드는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예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으로 기억되는데 수예 공장에서 구매를 담당했던 저는 공장장이신 강명수 승사님과 함께 대구에 원단을 구매하러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부산에 도착해 범일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는데, 문현로터리에서 8톤 트럭이 신호를 어기고 달려와 우리 택시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깜짝 놀란 강 승사님과 저는 “하나님!” 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트럭이 택시의 왼쪽을 들이받은 채로 한참을 끌고 가다가 멈췄기 때문에 택시는 왼쪽이 완전히 찌그러지고 유리창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은 아주 경미한 상처 외에는 다친 데가 없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입술을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조금 피가 날 뿐이었고 강 승사님은 얼굴에 유리 파편이 튀어 약간 상처가 난 것 말고는 아무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운전기사도 왼쪽 팔에 조금 상처 난 것밖에 없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들이 사고 현장을 확인하고는 우리를 몇 번이나 살펴보며 다친 곳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으니 우리에게 신경 쓰지 말고 택시에 실린 원단을 잘 챙겨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얼마나 큰 사고를 당했는지 실감나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어떻게 이런 사고를 당하고도 멀쩡할 수가 있냐며 “여기 계신 분들은 하늘이 도왔네요.”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강 승사님과 저는 대연동에 있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하루를 지내고 이튿날 신앙촌에 돌아와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괜찮았지? 내가 지켜 줬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토록 위험한 순간에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 하나님. 그 고맙고 감사한 것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노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는데 굳었던 팔다리
부드럽게 움직이고 얼굴은 아기 피부처럼
뽀얗게 피고 입술에 혈색까지 감돌아

그 후 1994년에 기장신앙촌에서 저와 함께 지내시던 아버지(故 김순복 집사)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임종이 다가오면서 찬송을 자주 부르셨는데 저에게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하는 찬송을 불러 달라고 하시더니 잠시 후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리며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는데, 약간 뻣뻣하게 굳었던 팔다리가 생명물로 씻긴 후에는 살아 계신 분처럼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얼굴을 보니 아기 피부처럼 뽀얗게 피고 입술에 발그스름한 혈색이 감돌아 따끈한 물로 목욕을 마치고 단잠이 드신 것 같았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제부가 그 모습을 보더니 돌아가신 분의 얼굴이 이렇게 좋을 수 있냐며 감탄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는 순간에도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할 때 그림처럼 아름다운 신앙촌을 보고 감탄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일흔이 넘는 나이가 되었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고 싶은 소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죄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으라고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자유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자유율법을 지켜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된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백합화같이 아름답게 피어서 의로운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 계시는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정자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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