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이슬성신을 아십니까?”라고 묻자 벌컥 화를 내

조경임 권사(2) / 서울 노량진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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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 후로 집회가 열리는 열흘 동안 저는 매일 새벽예배와 저녁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이만제단 집회에 계속 참석하면서 마음이 참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에 홀로 남은 것처럼 춥고 외로웠던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고향 생각에 눈물지었던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후로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또 집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종 소리를 들으며 이만제단으로 향할 때면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전도관 교인이 되어 매주 빠짐없이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시작 전에는 특별전도대(특전대)의 밴드부가 찬송을 연주했는데 관악으로 연주하는 힘찬 찬송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20대가 주축이 된 특전대는 기성교회 목사나 교인들을 상대로 성경 토론을 한다고 했습니다. 젊은 특전대원들이 성경에 대해 질문하면 나이 많은 목사나 장로들이 제대로 답변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얼마나 말을 잘하기에 그런가?’ 하며 궁금했습니다.

20대가 주축이 된 특별전도대원들이
기성교회 목사나 장로들에게 성경에
대해 질문 하면 제대로 답변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특전대에 대해 궁금해져

성경을 잘 몰랐던 저는 이만제단에 다니면서 차츰차츰 성경 구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신이 이슬같이 내리신다고 하시며 예배드릴 때 앞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이슬은혜가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저는 예전에 예배 시간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렸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은혜를 직접 봤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이슬은혜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특전대원들이 목사나 교인에게 질문하면 답변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도 이슬 같은 은혜를 직접 받지 못하면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저는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한번은 옆집 목사에게, “목사님은 이슬 같은 은혜
받아 보셨습니까? 믿는다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아 죄를 씻어야
구원을 얻습니다”라고 말하자 어디서 그런 소리 들었냐며 얼굴이 벌겋게 돼

저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장로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한쪽 벽에는 불구렁텅이 지옥 그림이 있었는데 교회 선생님이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도 지옥은 무서운 곳이니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던 선생님 말이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 다녀 보니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를 직접 체험해 보면서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죄를 씻지 못하면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옆집에 사는 목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님은 이슬은혜를 받아 보셨습니까?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슬은혜를 받아서 죄를 씻어야 구원을 얻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말주변이 없는 편인데 그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는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들었냐며 벌컥 화를 내더니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 버렸습니다.

어릴 적 장로교회에 다닐 때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뇌리에 남아있었는데 전도관 다녀 보니
하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 못 얻어

1957년 11월부터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만제단에서 신앙촌 건설을 돕고자 자원하는 교인이 많았는데 저도 매주 일요일이면 건설 현장에 갔습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돌을 운반해 가면 하나님께서 한 명 한 명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때 교인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하고 새로운 건물이 속속 세워지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힘이 나고 즐거웠습니다.

소사신앙촌에는 ‘주인 없는 상점’이 세워졌습니다.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 없이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각자 계산하고 돈을 지불하는 곳이었습니다. 당시는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먹고살기가 어려웠고 서울에는 구걸하는 거지도 많았는데, 소사신앙촌에 갖가지 물건이 진열된 상점이 주인도 없이 하루 종일 열려 있는 것을 보며 무척 놀라웠습니다. 신앙촌 사람들은 자유율법을 지켜서 양심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주인 없는 상점은 1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장신앙촌에서 주인 없는 상점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가르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는 신앙촌이 아니면 세상 어디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유율법 배우면서 어렸을 때 일 떠올라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고 제 마음대로
돈을 써 버린 일이 가슴칠 만큼 후회 돼
그 후 제단 회계 맡아 돈 다룰 때도 늘 조심

저는 전도관에서 자유율법을 배우면서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 나이 일곱 살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큰집이 하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물건 값을 드리니 큰어머니가 “그건 네가 써라.” 하시며 돈을 받지 않으셨는데, 그 돈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고 제 마음대로 써 버린 일이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더욱이 자유율법을 배우며 남의 물건을 탐내는 마음만 먹어도 도적죄가 된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때 일이 가슴을 칠 만큼 안타깝고 후회되었습니다. 그 후 제단의 회계를 맡아 돈을 다루게 되었을 때는 혹시라도 죄를 지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하며 일을 했습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며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경임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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