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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映像국어 시대를 향하여

박천서 / 한국 어문학회 상임이사

현대를 영상시대라고 한다. 영상 표현이 갖는 의사전달 수단으로서의 폭발적인 위력과 무한대한 산업적 잠재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2천년 이상 써오다 광복이후 배척해 온 한자(漢字)는 글자 뜻이 글자의 형상(形象)에서 바로 드러나는 세계유일의 표의문자이다. 이 영상문자와 한글의 혼용원칙을 세워 영화, TV, 언론, 학술저서 등 인쇄 영상매체에 활용해 가면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

새롭게 알게 된 ‘유다복음’

메스컴에서 가볍게 흘려들었던 ‘유다복음’이 이번 주 신앙신보 1면과 시온논평에 게재되어 독자로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더욱이 흥미 있는 부분은 그 내용이 기존 기독교 주장에 많은 부분에 있어서 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기득권을 가진 특권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기독교의 왜곡과 거짓은 언젠가 그 실체가 드러나고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말하는 것 같다.  이외에도 […]

‘유다복음’의 등장

오랫동안 지하에 묻혔다가 1700여년 만에 발굴된 이른바 ‘유다복음’(Gospel of Judas)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다복음’의 등장이 전통적 기독교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구약의 하나님은 사실은 (하나님 행세를 하는) 마귀”라고 주장하는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자들이 기록한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유다복음’에는 또 종래의 기독교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롯 유다에 대한 평가도 나온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배신한 인물로 저주의 대상이 된 […]

6천년에서 3조억년까지

영국의 과학전문잡지 네이처는 최근 3억 8천만년 된 물고기 화석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인류의 역사를 6천년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에 또 한번의 과학적 카운터 펀치가 날아든 셈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를 3조억년이라고 말씀하셨다. 기독교의 인류 역사 6천년설은 차치(且置)하고 천지와 인간의 창조 역사가 3조억년이란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들은 놀라운 말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시면 세상의 과학자들은 […]

희망의 빗물저금통

한무영 / 서울대 교수공학박사

가정에서는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자녀들에게 절약과 저축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돼지저금통을 곁에 두면 아이들은 동전을 집어넣으면서 교육적 효과는 물론이고, 돈을 모을 때의 희망과 모은 돈을 유용하게 쓰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저축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물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지구에는 물이 부족할 전망이고, 물로 인한 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후손들에게 이런 세계에서 […]

기독교에 던진 근원적인 질문들

 이 세상의 학자들은 어떤 법칙에 대해 항상 의문점을 제기하며 그 법칙에 대해 끝없이 연구를 하지만 신학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이 믿는 성경이나 예수에 관해서는 과연 얼마나 의문점을 제기하며 객관적으로 연구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믿기만하는 현실에서 2173호 4면 ‘이달의 책’에 소개된 ‘예수 후 예수’ 책은 예수의 신성이나 부활, 또 성경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한 그리스도교의 […]

상호주의(相互主義)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데 그 대의와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해 버렸으므로 이론적으로는 정부가 포용정책을 포기하고 대북정책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핵 보유 사실을 발표하자 대북 포용정책의 포기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까지 검토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

하나님의 경고하심과 인간의 선택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에 대한 경고만 하실 뿐 그 결과는 전적으로 경고를 받는 인간의 선택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경고의 결과는 절대적으로 예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와 회개에 관해 성경에는 많은 사례가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니느웨성에 관한 기록이다.   기원전 8세기경 중동지역에서 강성했던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웨성의 […]

요나와 니느웨성의 회개를 읽고

요즈음 곳곳에 터지는 성범죄, 각종 패륜적인 범죄들이 보도 될 때마다 정·재계, 시민단체에서는 ‘자정’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각성을 요하고 있다. 지난 주에 실린 ‘요나와 니느웨성의 회개’는 이러한 현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다. 선과 악의 개념이 날로 모호해 가는 현실 속에서 ‘양심의 법과 죄의 대한 예민함’을 깨우쳐 주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악에 달한 이 세상의 근본적인 해결 […]

갈등과 조화

정상봉 / 건국대 교수, 동양철학박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집단이나 국가들은 서로 다른 이해와 주장 속에 살게 마련이다. 모든 갈등은  서로 다르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반드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충돌을 수반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각과 관점 또는 이념이 나와 같을 경우엔 상대가 옳다고 하고, 나와 다르면 상대가 틀렸다고 판단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하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