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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8월 17일의 청년 대집회] 경천동지할 말씀에 모두가 감탄해

[1980년 8월 17일의 청년 대집회] 경천동지할 말씀에 모두가 감탄해

그날의 청년들 기장 신앙촌서 회고담

시간 2005.8.21, 장소 기장 신앙촌 샘터공원 진행 김종민(본사 논설위원) 권오윤씨(49, 서대문교회, 국세청 근무) 저는 당시에 세무서에 다니면서 강원, 충청남북도를 담당하는 청년회장이었습니다. 사실 청년연합회로부터 특별대집회에 참석할 인원을 버스 두 대 할당량을 받고 그 날부터 계속 청년들에게 전화하고 심방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무조건 반대의 반대를 일삼던 기성교회 청년들이 가겠다는 거예요. 당일 아침 비가 장대같이 쏟아져서 ‘이거 틀렸구나’ 했는데, 청년들이 […]

광의교회 – ‘뜨거운 마음’으로 매일을 여는 교회

광의교회 – ‘뜨거운 마음’으로 매일을 여는 교회

천부교 광의교회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쉽게 서울 50중앙이라고 한다.    광의교회는 서울 구의동에 있다. 35년 전 처음 교회가 지어졌던 그 자리에 지난 1997년 신축을 하여 지금의 교회가 서있다.   처음 교회를 지을 당시에 앞장서서 수고를 한 신계호권사(75세)는 “예전에 교회 앞이 넓은 공터여서 인근 전도관에서 모여와 축구대회를 자주 했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 공터에 지금은 빽빽히 주택이 들어서고 […]

광안교회 – 연간 전도시상 놓치지 않는 저력의 교회

광안교회 – 연간 전도시상 놓치지 않는 저력의 교회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메모지에 적힌 약도를 보며 239번 버스를 탔다. 25분 정도를 달리니 ‘광안리 해수욕장’이 눈앞에 보였다. 개장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바닷바람에 나부끼며 여름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수영구보건소 앞에 내려 맞은편 길을 따라 500m를 걸어 가다보니 대리석으로 꾸며진 깔끔하고 웅장한 광안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2000년 4월 18일 신축예배를 드린 광안교회는 3층 대예배실, 2층 소예배실과 사택, 1층은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이야기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이야기

한강의 백사장은 1968년에 시작한 ‘한강 개발’ 이전에는 약 100만평에 이르는 넓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1955년에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하셨고, 50년대 후반 이곳에서 열린 대통령 선거 유세엔 30만명이 모였고, 국군의 날 낙하산 시범훈련이 벌어지곤 했다.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집회(1955.7.4~7.11)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집회(1955.7.4~7.11)

연인원 60만명 참석, 이슬성신 한없이 내려

“대망(待望)과 주시리(注視裡)에 한강 집회는 열리었다. 국군과 인민군의 대격전지이며 시체가 산적하였던 자리에 천여평의 가설 천막 회장에는 남한 각처에서 모여온 신도와 시민으로 만원이 되어 저녁에는 2만명 이상 2만 5천명이며 철야하는 자도 만여명이었다.”(신앙신보 1956.5.21.) 한강 백사장 집회는 이미 6월 초에 있었던 대구 칠성동 사장 집회(1955.6.6-16.)를 마치면서 예고가 되었었다. “대구집회가 끝나는 날 광고를 들으니 다음 집회가 한강 백사장에서 7월 […]

동아일보 사건(8.끝)

동아일보 사건(8.끝)

하나님 역사 부인하는 사람들과도 합법적 투쟁을 '종교인의 물리적 시위는 유감된 일'

동아일보사건으로 투옥되었던 사람들의 옥중 체험기를 계속하여 들어 본다. “1960년 12월 10일부터 두 달간 저는 동아일보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살이를 했습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동아일보사건이란, 하나님 집회 때 나타난 축복 사진을 보고 인위적인 조작이라고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것을 보고, 사실을 오도하는 기사를 정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뜻에서 찾아간 우리를 경비원과 경찰들이 곤봉으로 무차별 내리쳤습니다. 이 때에 야기된 사건을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군인교회에서 열렸던 '국군장병 심령부흥대회'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6·25의 노래 시작부이다. 1950년에 발발하여 남북한 인구 600만명 이상의 인명피해를 남기고 전국토의 80%이상을 파괴하였던 6·25 전쟁은 발발 3년 뒤인 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있다.1955년 6월은 6·25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때이다. 1955년 6월 25일에는 6·25 발발 다섯돌을 맞아 국민대회가 폭우를 무릎쓰고 진행되었다고 당시 일간지들은 보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

동아일보 사건(7) – 사건의 파장

동아일보 사건(7) – 사건의 파장

`얼마나 당했으면 믿는 사람들이 시위까지...` 시위사건에 일부 여론은 동정적

1960년 12월 11일자 한국일보는 동아일보사건을 ‘수천 박장로 교도 동아일보사를 습격, 신문사상 최대규모의 테러’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아침 9시 5분경 일부 신도들이 정문의 셔터를 걷어 올리고 찬송가를 고창하면서 사내로 진입,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비치되어 있는 서류와 신문 등을 밖으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9시 반경 셔터가 완전히 올라가자 밖에 서 있던 수천 명의 신도들이 물밀 듯이 사옥으로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

'불의 사자 박태선장로님이 대구에 오신다는데 가봤느냐'

1955년 전국에 불길처럼 번졌던 하나님의 천막집회는 6월에 대구집회로 이어졌다. 대구 칠성동 천변 사장 집회(1955.6.9.~6.16.)   집회가 열렸던 1955년에는 신앙신보에 기사가 없고 집회가 열리고 1년 뒤에 그 때를 정리하는 기사(1956.5.21.<협회창립1주년>)에서 대구 칠성동 천변 사장 집회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한편 당시 집회를 알리는 영남일보에는 집회 장소에 대하여 경북대앞 사장이라고 광고(1955.6.7.,11.)가 나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엔 때론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 경험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 경험

김성여목사가 대구집회에 참석하여 기록한 책

“1955년 6월 9일부터 일주일간 대구에서 박태선 장로가 인도하는 부흥회가 열리었다. 나는 그 집회에 참예하여 박태선장로가 말한 것을 모두 필기하였다. 필기한 것을 원고지에 다 옮기자면 원고지 일천오백매 가량 될것이요 이것으로 책을 만들자면 오백페이지가 될 것이다. 이것을 추리고 추려서 만든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엮은 부산진교회 김성여목사(원내 사진)의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은혜 받은 사람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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