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7) – 한강 백사장 집회(1955.7.4~7.11)

연인원 60만명 참석, 이슬성신 한없이 내려
발행일 발행호수 214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대망(待望)과 주시리(注視裡)에 한강 집회는 열리었다. 국군과 인민군의 대격전지이며 시체가 산적하였던 자리에 천여평의 가설 천막 회장에는 남한 각처에서 모여온 신도와 시민으로 만원이 되어 저녁에는 2만명 이상 2만 5천명이며 철야하는 자도 만여명이었다.”(신앙신보 1956.5.21.)

한강 백사장 집회는 이미 6월 초에 있었던 대구 칠성동 사장 집회(1955.6.6-16.)를 마치면서 예고가 되었었다.

“대구집회가 끝나는 날 광고를 들으니 다음 집회가 한강 백사장에서 7월 4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는 소식에 큰 기대를 갖고 돌아와 그날만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백사장에 쳐놓은 천막은 대구집회 때의 천막보다 배나 더 큰 천막이었고 집회는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홍영의(91. 기장신앙촌)권사의 말이다.

부산 공설운동장집회에 참석하였던 조국철(90. 덕소교회)승사도 한강 백사장에 쳐놓은 천막을 보고 놀랐다고 했는데, “1955년 7월에 한강 백사장에서 하나님의 대부흥집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부산집회보다 훨씬 큰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때의 인구 비례로 보아 모인 군중과 천막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그 넓은 천막의 규모에 놀랐다는 것과 사람들이 빼곡이 모여있어서 발디딜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는 상황, 한마디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한강 백사장 집회가 열렸던 장소는 말그대로 한강의 백사장인데, 지금은 한강 위를 다녀 보아도 백사장은 흔적도 없다. 50년전 집회가 열리던 당시의 한강은 지금의 강폭과는 달랐다.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용산에서 노량진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 중간에 섬(중지도)이 있다. 50년전에는 그곳까지 강물이 흐르지 않는 모래밭이었던 것이다. 중지도에서 노량진까지의 폭으로 강이 흘렀다.

50년전 그 때에는 장마 기간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보면서 장마기간이긴 하나 비가 오지 않았던 7월 7일 예전의 그 자리를 찾았다. 한강 백사장은 한강시민공원이 되어 서울시민의 쉼터가 되어있었다.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고 운동시설과 운동장, 수영장, 강을 따라서 마라톤 코스 등이 가꾸어져 있었다. 집회가 열렸던 장소는 발로 디뎌볼 수가 없었다. 이제 그자리엔 강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강 백사장 자리를 함께 찾아간 김정자(81. 덕소교회)권사는 “한강집회는 천막크기로 보나 모인 사람들로 보나 남산집회보다 규모가 더 거대했어요. 집회 사흘째되는 날, 예배시간 중에 갑자기 소낙비가 쏴~ 쏟아지는 소리가 나면서 굵은 빗방울이 머리위로 뚝뚝 떨어지는 데 ‘웬 비일까?’ 하는 생각에 천장을 쳐다보며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니 물기는 전혀 없고 보송보송하기만 했어요. 그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가슴속과 뱃속이 시원하면서 기쁨이 오고 입으로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라고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홍순은(91. 기장신앙촌)승사는 한강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머리가 언제 아팠던가 할 정도로 통증이 말끔히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수많은 병자들이 낫는 것을 목격했다.

“집회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 매일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집회 장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안수해 주셨는데 안수를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병이 나아 기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집회를 마치는 날, 병자를 고쳐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들을 향해 축복을 하신 후 ‘병 나은 사람들은 다 일어나라.’고 하시자 여기저기서 무수히 많은 병자들이 일어나 자신들의 병이 나았다고 외쳐댔습니다.

제 주위에서도 봉사가 눈을 떠 눈을 깜빡거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너무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았고, 20대쯤으로 보이는 꼽추 청년도 자신의 등이 펴졌다고 기뻐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집회기간 내내 새벽집회 후 하나님께서는 모인 사람들에게, 등에 업힌 아기까지도 안수를 다 해주셨다. 신앙신보의 기록으로도 철야하는 사람이 만여명이라 했으니, 철야를 한 사람들 말고 새벽에 집회장으로 찾아간 사람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수를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안수를 하셨단 말이다. 아침이 다 되도록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은 쉴 수 없었을 것이다.

송혜영기자news-song@theweekly.co.kr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