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해가 쨍쨍한데 박 장로님 단상에서 이슬비가 내려

김순용 권사(1)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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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30년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큰아버지와 함께 백화점을 경영하셔서 저희 가족은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저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해 막내 동생이 척추 결핵을 앓다가 숨을 거두고 건강했던 아버지마저 특별한 병명도 없이 아프시더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게 되면서 저는 외갓집의 도움을 받아 신의주 남고등여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저희 가족은 1·4 후퇴 때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서 한 달 닷새를 걸어오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헐벗은 거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남에 올 때까지 총소리와 폭격 소리가 끊이지 않는 속에서 사람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숱하게 봐야 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그때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장로교회에서 교회 신축 헌금 마련 위해
박태선 장로님 모시고 부흥집회
어머니 권유로 부흥집회에 참석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나’ 궁금해

이남에 내려온 저는 스물두 살에 군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대구 근처의 시댁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남편이 경기도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저는 친정어머니와 남동생과 같이 서울 신당동에서 지냈습니다. 원래 장로교인이셨던 어머니는 집과 가까운 신당동 중앙 장로교회에 열심히 나가셨고, 저에게도 가자고 하셔서 저는 가끔씩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중앙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연다고 했습니다. 그때 중앙교회는 석조 건물로 교회를 신축하고 있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다가 이번에 신축 헌금을 마련하려고 부흥집회를 크게 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흥집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자꾸 권유하셔서 한번 구경하려는 마음으로 중앙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모여서 콩나물시루같이 빽빽한 교회를 보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다음 날 다시 갔을 때도 사람이 몰려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서 ‘여기에 왜 이렇게 사람이 모일까?’ 하며 점점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다음 날 세 번째로 찾아갔을 때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 교회 밖에까지 모여 있었지만, 저는 꼭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맨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단상에는 키가 크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우렁찬 음성으로 설교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맨 뒷자리여서 단상과 거리가 멀었지만 모두들 한 말씀 한 말씀에 집중하며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주여 하고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신을 받아 죄를 씻지 못하면 그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찬송 인도를 시작하시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는데, 힘찬 찬송 소리가 교회 안을 가득히 채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날 중앙교회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해
불과 몇 달 전에 신축 헌금 마련하려고 박 장로님을 초청해 집회를 하고
그때 여러가지 기사 이적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한 입 가지고 두 말을 할까 생각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예배 분위기가 장로교회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오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 그날은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이 계속 떠오르며 ‘성신을 받아야 천국에 간다는데 성신은 어떻게 받는 것일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집회장에서 힘차게 불렀던 찬송을 또 부르고 싶었습니다.

집회가 일주일 넘게 열린 것으로 기억되는데 저는 집회 3일째 되는 날부터 사흘 정도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집회 마지막 날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찬송을 부르다가 박 장로님께서 서 계신 강대상을 바라보니 그쪽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 봤나?’ 하며 다시 쳐다봐도 여전히 강대상에 비가 내리는데 어찌된 일인지 창밖에는 해가 쨍쨍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대상에 내리는 빗방울은 보통 빗방울보다 크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어서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박 장로님께서 서 계신
단상을 보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어찌된 일인지 창 밖에는 해가 쨍쨍 비쳐
보통 빗방울보다 크고 빛나는 모습이 신기

그날 박 장로님께서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발 하나 넣을 틈도 없이 빽빽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훌훌 나는 것처럼 빠르게 다니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얼마 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신당동 중앙교회에는 폐병 3기인 여자 교인이 있었는데 그분은 한눈에 보기에도 환자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몹시 마르고 병색이 짙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그분은 박 장로님 집회에서 안수를 받은 뒤로 눈에 띄게 안색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후 폐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을 의사에게 확인하고 그분은 뛸 듯이 기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신당동교회 교인들을 만나면 그 일을 이야기하며 참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을 때, 어머니가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셔서 신당동 중앙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목사가 하는 말이, 박태선 장로님이 이단이라며 박 장로님 집회에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교회에서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를 열어 놓고 왜 갑자기 180도로 변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신축 헌금을 마련하려고 박 장로님을 모셔와 집회를 했고 그 집회에서 병이 나아 새 삶을 얻은 교인도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신당동 중앙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김순용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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