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율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가르침

목일신문화재단 이사 목민정 씨
발행일 발행호수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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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식당 분수대 앞 정경자 씨와 목민정 씨

목일신문화재단 이사 목민정 씨
신앙촌의 변화와 하나님 말씀에 놀라

2022년 12월 18일 자 신앙신보에 <자전거> 동시를 지은 목일신 씨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이후 딸 목민정 씨와 연락이 닿았고, 이번 이슬성신절에 어머니 정경자 씨(소사교회)와 함께 신앙촌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목민정 씨를 만나보았다.

“아버지가 전도관과 인연이 많으세요.

제 기억에는 아버지가 5남매인데 제일 큰 누님이 전도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형제들이 다니게 된 걸로 알고 있어요. 아버지는 1960년에 소사신앙촌으로 이주해 86년 돌아가실 때까지 그곳에 거주하셨고, 80년대 초반에는 천부교 찬송가 개편작업에도 참여하셨어요”라며 아버지 목일신은 신앙심과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어려운 시절에도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고 베푸셨던 할아버지를 보며 ‘내 아버지가 베푼 것에 비하면 나는 아직 멀었다’는 말씀을 항상 하실 정도였거든요.”

목일신은 이화여고에서 박목월 시인과 함께 국어 선생님으로도 일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옆에서 보며 자랐다면 아버지에게서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을 법도 하다.

“어릴 때 백일장 나가서 항상 상을 타긴 했어요. 아버지가 교정을 많이 봐주셨거든요. 써주신 것은 아니고 맞춤법이나 표현이 이상한 부분을 지도해 주셨어요. 글을 깨쳤을 무렵 하던 놀이가 사전 낱말 빨리 찾기 놀이였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지금은 목일신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소사신앙촌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다고 했다.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생활했던 그 시절 중에서도 시온국민학교 다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친구도 선생님도 교인이어서 아침을 항상 예배로 시작했거든요”라면서 그 유명한 주인 없는 상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도 했다.

“자유율법이라는 것이 엄중한 잣대인데 깨끗하고 선하게 살려고 하는 그 지침은 너무나 귀중한 가르침 같아요. 천부교에 다녀 본 사람이라면 자유율법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저 또한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키고 살아야 할 진리가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성인이 되고 신앙촌 절기 예배에 어머니를 따라 가끔 참석했다는 그는 “예수와 성경의 허풍, 창조주에 대한 말씀은 많이 들었었는데, 오늘 3조 년이라는 말씀은 인상 깊었어요. 현재 과학에서는 우주 창조를 138억 년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3조 년이라고 말씀하시니까 나중에 과학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요”라며 하나님 말씀에 놀라워했다.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왔는데 어머니가 오늘 찬송하는 걸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이 찡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다시 올 수 있을지 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머니가 오실 수만 있다면 다음에도 같이 올 텐데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학창 시절 소중한 추억이 담긴 신앙촌의 변화를 감상하러 떠나는 두 모녀 뒤에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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