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교 역사와 함께 달려온 ‘신앙신보’ 65주년 맞아

천부교 역사와 함께 달려온 ‘신앙신보’ 65주년 맞아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이야기하며 미래를 향하는 신앙신보가 되겠습니다.” 천부교의 역사와 함께 달려온 신앙신보는 1955년 1월 26일 창간되어 65주년을 맞았다. 종교 주간지로는 서울에서 두 번째로 정식 등록된 신앙신보는 1955년 2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하고 1978년 제1000호 발행과 2004년 시대 흐름에 맞춘 인터넷 신문 서비스 개시를 거쳐 2005년 1월 지면을 8면으로 최종 확장하며 전통 종교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또 1994년 1월 16일(제1871호)부터 신앙체험기가 게재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다. 신앙신보는 천부교의 국내외 이슈와 행사, 『하나님 말씀』경전, 천부교 역사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주니어 코너를 함께 운영 중이다. 또한 신앙신보 홈페이지는 천부교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한다는 점을 인정받아 ‘웹 어워드 코리아 2018’에서 방송∙신문 분야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 바 있다. 65주년을 맞아 신앙신보에서는 과거 신문에 실렸던 인물들을 만나보았다. 2008년 7월, 2260호 신앙체험기의 주인공 주채경 권사. 올해 101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척 정정한 모습이었는데, 취재진을 보자 12년 전과 변함없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날 주 권사와 함께 만난 사람은 2013년 리더스쿨 기사에 실린 고가영 양이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가영 양은 올해 스무살이 되어 향상음악회에 참가, 우수상을 받아 2585호 신앙신보에 다시 한 번 실렸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말이 무색하게 금방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주 권사가 체험기의 내용을 생생하게 이야기할 때는 마치 당시 은혜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벅찬 감동이 전해졌다. (오른쪽 사진)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을 때 이슬 같은 은혜가 뽀얗게 내리던 일, 코 끝에 진한 향취가 맡아지던 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지요. 여전히 하나님이 너무 좋고 정말 감사드리고 또 무척이나 그리워요.” 주 권사의 진심이 담긴 마지막 말에 고가영 양을 비롯해 주변에 있던 취재기자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신앙신보 관계자는 “우리는 진정한 구원의 역사, 직접 체험하는 은혜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천부교의 언론으로서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라고 하며 “천부교 역사의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천부교인들의 아름다운 삶을 함께 나눠 어두운 세상에서 진실을 전파하는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65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신앙촌의 아름다움 공유하는 “가을 담기 공모전” SNS로 진행

신앙촌의 아름다움 공유하는 “가을 담기 공모전” SNS로 진행

다양한 사진과 영상 출품돼 신앙촌 가을의 정취 느낄 수 있어 신앙촌 가을 담기 공모전이 개최되어 신앙촌 주민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번 공모전은 가을을 맞아 신앙촌의 아름다운 풍경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으로 야외 외출을 자제하고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평범하고 따뜻한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SNS로 공모전을 진행하였다. 가을 담기 공모전은 가을을 맞은 신앙촌을 연상케 하는 사진, 영상 등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제출할 수 있었다. 출품된 사진 200여 점과 다수의 영상 중에서 예술성, 창의성, 독창성 등 심사 기준에 따라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최우수상은 “매일이 새로운 오늘” 이란 제목의 사진과 영상을 출품한 입사생 조순영 씨가 받았다. 우수상은 입사생 오지영 씨, 식품여고 1학년 팀, 장려상은 신앙촌 여청 최서아 씨 외 3명이 수상했다. 수상자들에게는 신앙촌 상품권이 수여되었다. 조순영 씨는 “식품단지를 걸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집니다. 눈으로 직접 봤던 아름다운 식품단지를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경이로웠던 그날의 기분을 모두와 함께 느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코로나ㆍ독감 동시 유행 ‘트윈데믹’ 대비해야

코로나ㆍ독감 동시 유행 ‘트윈데믹’ 대비해야

코로나 확산세에 독감 겹치면 의료시스템으로 감당 어려워 인플루엔자(독감) 동시 감염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력을 두 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 일일 확진 환자 수가 31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상황에서 독감 유행까지 겹치면 현재의 의료시스템으로는 감당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와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는 최근 계절성 독감과 코로나19의 공동순환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했다. 두 바이러스의 유행 양상을 담은 데이터는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에서 추출된 것이다. 분석 결과,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는 평균 2명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지만 독감에 동시에 걸린 경우는 평균 4, 5명에게까지 전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의 전형적 증상인 기침과 재채기가 코로나19 전파를 촉진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연구진은 인체가 두 바이러스를 동시에 상대하는 만큼 상태는 더욱 나빠질 것으로 봤다. 독감 감염이 면역체계를 자극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침입을 부분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기대 섞인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앞서 5월 구글과 미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도 독감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2(ACE2)의 양을 크게 증가시켜 코로나19에 더 잘 감염되는 상태로 만든다는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ACE2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체내 숙주세포와 결합하는 데 사용되는 주요 수용체다. 진단 과정에서의 혼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논문은 동시 감염은 따로 감염된 경우보다 코로나19 진단율이 30~50%가량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잠복기가 평균 5일 이상인 반면, 독감은 하루 이틀뿐이라 동시 감염 환자가 코로나19 검사를 했을 때는 독감 증상이 이미 사라진 상태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봄철 코로나19 1차 유행 이후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든 것 역시 봉쇄령과 거리 두기 조치 외에 독감 시즌이 지나간 영향이 컸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코로나19 확진ㆍ사망 1위인 미국은 ‘트윈데믹’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 발생하면 우리가 겪어본 최악의 가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의료기관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 중 하나로 독감 백신 접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SCMP에 따르면 중국도 통상 연간 전체 인구의 2%에 해당하는 3,000만 명분의 독감 백신을 공급해왔으나, 올해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코로나19의 가파른 재확산세는 독감 시즌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자료를 보면 11일 기준 글로벌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31만692명을 기록해 4일 세운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특히 인도와 유럽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인도는 전 세계 신규 확진자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에서도 프랑스의 일일 확진자가 1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여름 휴가철 이후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백신 개발이 시급한 상황인데,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는 당국의 안전 승인을 받아 영국과 브라질에서 지난 8일 중단했던 임상시험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시온입사생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시온입사생

시온입사생회가 입사 33주년을 맞이했다. 1987년 8월 7일,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더 맑은 신앙생활을 하자는 취지로 발족된 시온입사생회는 지금도 신앙촌 기업 등에서 일익을 담당하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입사생들은 33주년을 맞아 “크신 사랑 주의 은혜 속에 기쁨으로 길이 살게 합소서”라는 슬로건 아래 신앙촌에서 생활하는 기쁨과 감사함을 되새기며 구원을 향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또 시온여청회에서는 입사 33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화환을 입사생회에 전달하였다. 올해 입사 20주년을 맞은 최선희 씨는 “신앙생활과 일, 소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소희 씨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후회와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고, 김현지 씨도 “신앙촌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값진 보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견고한 모습으로 전진하는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라고 입사 1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온입사생회는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자는 취지로 함께 가는 우리, MBTI 성격유형 알아보기 테스트도 SNS로 진행했다. 이재동 관장(시온입사생 담당)은 “입사생은 신앙촌의 귀한 가치를 알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속에서 항상 기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입사생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성경의 주인공은 감람나무 하나님

성경의 주인공은 감람나무 하나님

7월 25일, 학생축복일을 하루 앞두고 신앙촌에 천부교 어린이와 학생들이 도착했다. 어린이와 학생들은 ‘SUMMER 어드벤처’에 참가하여 워터림보 등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관련 기사 8면) 오후에는 여청·대학생을 대상으로 경전 퀴즈대회와 특강이 열렸다. 퀴즈대회를 앞두고 신앙촌 내 휴게 공간 곳곳에서 경전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관련 기사 6면) 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한 드림캠프도 마련되었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26일, 축복일 예배에서 유명숙 관장 (마산교회)은 “성경에는 자유율법과 이슬성신, 감람나무가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시기 전까지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이슬성신의 권능을 보여주시니 우리는 성경의 주인공이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라고 설교했다. 예배 후에는 추수감사절 음악순서를 위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함께하는 주니어 합창단 연습이 있었다. 또 샛별부 디저트 만들기, 엘리트 여청 모임 등 파트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마무리하고 6일부터는 일상과 방역의 조화를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를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천부교 학생회는 이와 같은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한편,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을 통해 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다. 2월 초부터 천부교 측은 입구 체온측정, 손 소독제 비치, 2m 좌석 간격 유지, 참석자 동선 체크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예배를 드려왔다.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천부교회의 교육 방식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지금까지 교육 방식이 교회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면 교육이 주를 이뤘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육 받는 학생들이 온라인 상의 활동에 익숙한 세대들인 만큼 온라인을 통한 대화와 피드백이 활발히 이루어져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카카오 라이브톡으로 진행되며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1부 예배에 이어 2부는 하나님 말씀퀴즈, 3부는 다양한 비대면 놀이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온라인예배에 참여한 김민경 양(중1, 목동교회)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새로웠어요. 또 요즘 유행하는 수란 도시락 만들기, ASMR을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같이 해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 1단계로 하향 조정

20-50 신앙촌 소비조합 세미나

2020년 2/3분기 사업시상식

伊, 가톨릭 사제 노숙자에 피살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싶어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은혜 속에 살아가고 싶어

저는 1933년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삼대가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집과 교회밖에 모르고 자랐습니다. 스무 살에 미신을 섬기는 집으로 시집가서는 교회에 못 나갔는데, 집 근처 새로 생긴 교회에 동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 같았고 예배 시간이면 “감람나무 이겼네~” 하는 찬송이 들려왔습니다. 처음 듣는 찬송이라 궁금해서 가고 싶었지만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 후 1960년 즈음으로 기억됩니다. 남편 직장을 따라 경기도 김포로 분가했을 때였습니다. 세 살 난 둘째 아들이 아침마다 눈이 아프다며 보채는 것이었습니다. 해가 지면 잠잠해졌다가 날이 밝으면 아프다며 울고불고 야단이었고,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앞집 사는 이영숙 씨가 그 모습을 보고는 부흥집회에 가면 병자들이 많이 낫더라며 아이를 데려가 보자 했습니다. 저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듯 뭐라도 해 보고 싶어서 그 주 일요일 아이를 데리고 이영숙 씨를 따라나섰습니다. 소사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산으로 올라가니 정상에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영숙 씨가 쪽문을 열고 들어가기에 뒤따라가니 바로 단상이 나왔는데 예배실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실이 얼마나 넓은지 끝이 안 보일 정도였고 사람들이 머리만 새카맣게 보일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습니다. 단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키가 훤칠하신 신사 분이 나오셨습니다. 이 교회를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이라 했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교인들이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는데 그 소리와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자꾸만 가고 싶어 단상 앞으로 뽀얀 것이 내려 물어보니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거라고 해 예배 마친 후에는 박 장로님께서 아이에게 안찰을 해 주셨습니다. 안찰이 뭔지 잘 모르면서도 박 장로님께 안찰 받고 병이 나은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아픈 사정을 말씀드려서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아이를 눕혀 놓고 배에 손을 대시자마자 아이가 도르르 몸을 말면서 아프다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인자하신 음성으로“낫게 해 줄 테니 편안히 다리를 뻗으라.” 하며 손을 가만히 대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차츰차츰 몸을 펴더니 다리를 뻗었습니다. 눈을 안찰하실 때도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중에는 편안한 얼굴이었습니다. 안찰을 받고 예배실 밖으로 나와“엄마!”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데 눈동자가 샛별같이 반짝거렸습니다. 햇살만 비치면 눈살을 찡그리며 울던 아이가 활짝 웃는 게 얼마 만인가 싶었습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산길을 깡충깡충 뛰며 내려갔습니다. 산 아래 동네로 내려와 보니 멋진 주택과 공장, 학교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소사신앙촌이라는 곳으로 박 장로님께서 세우셨으며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산다고 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 세우신 ‘전도관’이 전국에 있다는 것과 예전에 들었던 ‘감람나무’ 찬송이 전도관에서 부르는 찬송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박 장로님께 안찰 받은 후로 둘째는 깨끗이 나았고, 병원에서 못 고치던 병이 안찰 한 번에 낫게 되니 참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집과 가까운 김포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일예배만 드리다가 매일 새벽예배까지 드리게 됐습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자꾸만 가고 싶었습니다. 또 소사신앙촌에도 자주 가서 예배드렸는데 단상 앞으로 뽀얀 것이 내려 박 장로님 모습이 잘 안 보이는 때가 많았습니다. 교인들한테 물어봤더니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호세아서에 보면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와 같다고 돼 있는데, 박태선 장로님께서 바로 그 은혜를 내리신다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봤어도 감람나무나 이슬 은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금방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서 전도관은 감람나무 찬송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인들이 물통을 놓아두면 하나님께서 “쉭! 쉭!”하시며 축복해 주셔 생명물을 받아와서 옷장에 넣어 두고 잊어버려 8년이 지난 후 열었는데 처음 받아 왔을 때와 똑같이 맑고 깨끗해서 참 놀랍고 신기해 원래 남편은 종교에 관심이 없었는데 남편이 전도관에 나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저녁밥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사이에 돌 지난 셋째가 기어오다 국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 아이를 꺼내 보니 온몸에 화상을 입어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저녁이라 문이 닫혀 있어서 다시 전도관으로 내달렸습니다. 둘째가 안찰 받고 눈이 나았을 뿐 아니라 전도관에서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은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에 다급한 마음에 생명물을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저녁예배를 드리던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아이를 보고 얼른 생명물을 가져와 온몸에 발라 줬습니다. 아이는 보채지도 않고 가만있더니 스르르 잠들었는데, 그때 남편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예배실에 들어섰습니다. 퇴근해서 아이가 데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누워 있던 아이가 말소리를 듣고는“아빠!” 하며 일어나 보르르 기어서 남편 무릎에 앉았습니다. 그제야 남편은 안심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어려서 사촌동생이 데었을 때 말도 못하게 보채고 울었는데 그러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온몸에 축복솜을 붙여 주고 솜이 마르지 않도록 생명물을 계속 적셔 주었습니다. 밤낮으로 생명물을 적셔 주며 일주일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가 좋은 약을 구해 왔다며 솜을 떼고 약을 발라 주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붙인 솜을 떼고 보니 뽀얀 피부에 발그스름한 빛이 감도는 것이었습니다. 보드라운 연분홍 꽃잎처럼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습니다. 솜을 다 떼보니 온몸에 새살이 돋아나 흉터 자국조차 없었습니다. 시어머니도 아이를 보고 어떻게 국솥에 빠졌는데 흉터 하나 없느냐며 놀라워했습니다. 보들보들한 아이 얼굴에 제 볼을 대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주 일요일에 남편은 감사헌금이라 쓴 봉투를 들고 저보다 먼저 예배에 가더니 김포전도관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플 때 생명물로 나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평택에 사는 시누이가 한 번씩 집에 와서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하다고 하기에 생명물에는 하나님 은혜가 담겨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시누이는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 평택전도관에 스스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생명물로 고인을 깨끗이 씻기고 나니 얼굴이 맑고 뽀얗게 핀 데다 입술이 루주를 바른 것처럼 발그스름해서 사람들이 화장한 것 아니냐며 만져봐 이듬해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고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는 덕소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신앙촌에 있는 공장에서 갖가지 제품이 생산됐는데 신앙촌 물건은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소비조합원들이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부지런히 사는 것이 좋아 보여서 저도 서른세 살 때부터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만 살아 지리를 모르고 말주변도 없었는데 신앙촌 이불을 가져가면 사람들이 반색하며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는 집에 신앙촌 이불을 장만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가도 사람들이 서로 이불을 갖다 달라 하니 주문대로 가져다주기도 바빴습니다. 고객들을 만나며 바쁘게 다니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는 생명물 축복하시는 모습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제단 앞 광장에 물통을 놓아두면 하나님께서 “쉭! 쉭!” 하시며 물통을 향해 축복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생명물을 받아와서 옷장에 넣어 뒀다가 그 옷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한참 후 옷장을 열었는데 생명물이 처음 받아 왔을 때와 똑같이 맑고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햇수를 세어 보니 8년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생명물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게 되니 참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생활하며 입관예배를 드릴 때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보다 더 곱고 환하게 피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입관예배가 있다 하면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이웃에 사시던 권사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생명물로 씻겨 드리고 나자 얼굴이 맑고 뽀얗게 핀 데다 입술이 루주를 바른 것처럼 발그스름해서 사람들이 화장한 것 아니냐며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당뇨병을 앓던 남편이 1983년 숨을 거뒀을 때는 입관예배를 드린 후에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제단에서 예배 시간에 향취를 맡고 그것이 하나님 은혜라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입관예배를 드릴 때도 향취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아들이 “아빠 계신 방에 향수 뿌렸어요? 자꾸 향기가 나요.” 하기에 은혜를 주신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 남편은 생시의 병색이 사라지고 환하게 핀 모습이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마다 놀라워했습니다. 그 후 저는 1990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해 소비조합을 계속했습니다. 젊은이도 못 따라올 정도로 활기차게 다니며 나이를 잊고 지냈는데 어느새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기쁘고 즐거웠던 일이 많이 떠오릅니다. 예배 시간이면 기쁨이 넘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찬송을 불렀고, 좋은 향취가 진동할 때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겠습니까. 말씀대로 행하고 은혜 속에 살 수 있다면 그 마음이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마음의 천국을 이루며 아름답게 살아서 그날에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박만조 집사님 신앙체험기)

“성신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성신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1963년 제 나이 스물 세 살 무렵,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는 인적 드문 시골이었습니다. 한참을 가야 집이 한 채씩 나오니 이웃들과 왕래가 별로 없었는데 언제부턴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전도관에 나와 보라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잠깐 장로교회 다녔을 때 목사가 전도관만은 절대 가지 말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전도관이 나쁜 곳인 줄 알고 속으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찾아와 말씀하시는 것을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원통전도관에 따라가 봤습니다. 흙벽돌로 지어진 전도관에는 어른과 청년, 아이들까지 꽤 많은 교인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몇 명씩 짝을 이뤄 집집마다 전도하러 다녔고 청년들은 아이들 가르치는 반사 활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전도관 교인들은 진실하게 믿으려고 애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도관 권사님들은 저에게 마음 문을 열고 자세히 알아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들 권유로 소사신앙촌에 갔습니다. 소사신앙촌은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고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께서 건설하셨다 했습니다.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처음으로 박 장로님을 뵙게 됐습니다. 제단이 하도 넓어서 단상에 서신 박 장로님이 어렴풋하게 보였지만 힘차게 찬송 인도하시는 음성과 그 많은 사람들이 우렁차게 찬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찌된 일인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참 이상하다.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지?’ 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연기 나는 곳도 없고 태우는 것도 없는데 지독한 냄새가 났습니다. 권사님들에게 물어보니 죄 타는 냄새를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 속에 있는 죄를 소멸해 주시기 때문에 죄 타는 냄새를 맡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는 죄를 태워 주시고 그 냄새를 실제로 맡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전도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권사님들은 그런 저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해 물어보니 하나님 은혜로 내 속의 죄가 소멸되면 죄 타는 냄새 맡게 된다고 해서 신기해 그즈음 교인 한 분이 돌아가시자 권사님들이 장례예배에 가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며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고인을 모신 방에 전도사님이 먼저 들어가시고 저는 무서워 멀리서 봤는데, 할머니이신 고인은 얼굴색이 시커멓고 입술은 검은 자주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습니다. 전도사님은 먼저 솜에다 물을 묻혀 고인의 얼굴에 덮어 주시며 박태선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축복솜과 생명물이라 했습니다. 교인들과 같이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는데 얼마쯤 지나자 방 안 공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불쾌한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져서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날까? 이때까지 안 좋은 냄새였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생처음 맡아 보는 향기가 너무 좋아서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른 후 전도사님이 고인의 얼굴을 보여 주셨는데, 시커멓던 피부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환하게 피고 검자주색으로 죽어 가던 입술도 분홍색으로 곱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나쁜 냄새도 사라지고 흉한 모습도 없어졌구나!’ 하며 참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바깥이 소란스러워 방문을 열어 보니 고인의 큰아들이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고인의 작은아들은 전도관에 다니고 큰아들은 다니지 않았는데, 큰아들이 막무가내로 장례예배를 드리지 말라면서 작은아들이 아무리 예배를 종용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배를 못 드리게 되어 일어서서 나오는데 문득 ‘향기가 다 어디 갔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 안 가득 진동하던 향기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좋은 향기가 없어지고 나니 저는 귀중한 것을 잃은 것처럼 몹시 아쉽고 허전했습니다. 같이 간 권사님들에게 물어보니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좋은 향취를 맡게 되지만 그 은혜가 떠나시면 향취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하셨습니다. 장례예배에서 은혜 받는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겪고 나니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고 전도관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예배에 빠지지 않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관에 꾸준히 나가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의구심이 차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시는 자유율법을 들으면서 참 바르고 옳은 길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들었고, 목사 말만 듣고 색안경을 꼈던 것이 몹시 후회스러웠습니다. 고인을 모신 방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났고 고인의 얼굴은 시커멓고 입술도 검붉어 축복솜에 생명물을 묻혀 고인의 얼굴을 덮어드리고 교인들과 찬송을 부르자 방 안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지고 고인의 얼굴은 맑고 환하게 피어나 그러던 중 장례예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은혜 받을 기회라는 생각에 누가 권유하지 않아도 참석하게 됐습니다. 무서운 마음도 사라져 고인의 모습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옷을 갈아입힐 때 보니 고인은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다리를 움직이면 머리까지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팔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굳어 있어서 옷을 가위로 잘라서 벗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물로 씻긴 후에 고인을 보니 그렇게 뻣뻣하던 몸이 완전히 노긋노긋해져서 팔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살아 계신 분처럼 앉혀 놓고 수의를 입힌 후 입관했는데 누워 계신 모습이 달게 주무시는 듯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밤을 새우며 관을 장식할 꽃을 만들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관 주위로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한겨울이라 창문을 꼭꼭 닫아 놓았고 만약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면 위에서 내려와야 할 텐데 그 바람은 관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바람이 너무나 기분 좋게 산들산들 불어 왔습니다. 그것이 성신의 바람이라 하시기에 돌아가신 분을 성신으로 지켜 주시는구나 하며 그래서 저리도 평온해 보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 마치고 돌아가니 집에서는 야단이 났습니다. 완고한 부모님은 왜 남의 장례식에 가느냐며 싫어하셨고 전도관에 가는 것도 반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확고한 결심이 생겼습니다. 성신이 계신 곳으로 가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며 돌아가신 분도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성신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며 제 또래들과 같이 반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교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신앙촌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1966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동료들과 같이 일하며 즐겁게 찬송을 부를 때면 좋은 향취가 진하게 맡아지며 몸이 날아오를 것 같아 신앙의 동료 있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해 덕소신앙촌에 들어간 날 하나님께 처음으로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안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가 지은 죄를 안찰로 소멸해 주실 때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안찰받을 때 하나님께서 제 눈에 손을 살짝 얹기만 하셨는데도 후벼 파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거 다 빠져야 구원 얻지.” 하시며 안찰해 주셨고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고 시원해지자 손을 떼셨습니다. 그때부터 죄가 다 빠져야 구원 얻는다 하시던 말씀을 항상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신으로 죄를 씻음 받고 마음이 성결하고 아름답게 피어서 천국에 꼭 가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은 한강 변에 들어선 그림 같은 마을이었습니다. 공장들이 활발히 돌아가고 주택과 제단, 학교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저는 슬레이트 공장에서 일하며 참 재미있었습니다. 신앙촌 슬레이트는 품질이 좋아 전국적으로 안 나가는 데가 없었고 물건을 가지러 오는 거래처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습니다. 동료들과 일하며 즐겁게 찬송을 부를 때면 좋은 향취가 진하게 맡아지며 몸이 날아오를 듯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신앙의 동료가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 후 1981년 하나님께서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저는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고 향기를 주시는 감람나무라 하셨는데, 성신을 주시고 죄를 씻어 주시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이미 다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며 한 단계 한 단계 밝히셨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구원을 주시려고 그토록 긴 세월을 참으시고 애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1997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해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와 만나면 서로 도우며 즐겁게 일했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공장에 오셔서 안수해 주셨던 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돌아보면 신앙촌에서 지내 온 하루하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귀한 곳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요즘은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하나님! 저한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요?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 계신 아름다운 세계에 가고 싶습니다.’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허락해 주신 시간 동안 말씀대로 바르고 맑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김용례 집사 신앙체험기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야스쿠니 신사의 비밀… 성스러운 피와 죽음을 숭배하는 집단에 대하여

일본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베 신조가 한 달 사이 두 번이나 참배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평소 야스쿠니 신사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찾아 소원을 비는 곳이다. <자료1,2> 두 손을 모으고 대학원 합격이나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종교 시설과 다를 바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피와 죽음이 뒤엉킨 괴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국제 재판에서 사형을 당한 A급 전범(戰犯)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신으로서 숭배받을 뿐 아니라,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까지 하나의 신으로 합사(合祀)되어 불가분의 관계로 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괴이한 것은, 전범을 신으로 숭배하고 전쟁을 찬양하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 후에도 여전히 존속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면 패전국에서 전쟁의 상징물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불태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에서 가장 노골적인 전쟁의 상징이었던 야스쿠니 신사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이 이야기는 두 명의 가톨릭 신부로부터 시작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망한 일본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최고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국 최고 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통치 기간 동안 일본의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GHQ는 야스쿠니 신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GHQ는 야스쿠니 신사가 전쟁과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함으로써 자살 특공대와 같은 가공할 살인 병기를 양산하는 정신적인 토대가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실제로 가미카제(かみかぜ, 神風)라 불렸던 일본의 자살 특공대원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라는 말로 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자료3,4> GHQ 내부에서는 야스쿠니가 전쟁을 조장하는 원흉이므로 남김없이 불태워야 한다는 의견과 종교적인 시설로 보아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이들은 종교계 인사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었고, 일본에서 활동 중인 가톨릭 신부에게 의견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독일 예수회 소속의 브루노 비테르(Bruno Bitter, SJ, 1898~1987)와 미국 메리놀회 소속의 패트릭 번( Fr.Patrick J Byrne, 1888~1950)이었다. 브루노 신부는 예수회가 일본에 세운 상지 대학교의 주임 사제로 근무하면서 전쟁 기간 동안 교황청 대사직을 대리했으며, 패트릭 신부는 교토 지역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종전 직후에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안심하라는 내용의 연설을 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이었다. <자료5,6> 두 신부는 ‘야스쿠니 파괴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요청하는 GHQ에게 “야스쿠니 신사를 파괴하면 일본인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 가톨릭은 야스쿠니 파괴에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선언했다. 이에 대해 맥아더 장군은 “가톨릭이 야스쿠니 신사를 옹호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파괴로 상처를 입게 되는 일본인의 감정이란, 전범국으로서 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했던 감정이며 이러한 전쟁의 광기는 전후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신부들이 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모습에 맥아더 장군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사실 가톨릭이 전범국인 일본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그때뿐이 아니라 오히려 시종일관 반복된 행태였다. 일본이 중국을 침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오르던 1937년 10월, 교황청은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향하여 일본이 중국에서 벌이는 성전(聖戰)에 협력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1937.10.14. 교황청 지령 5개조) 이를 보도한 도쿄 아사히 신문(1937.10.17.자)은 “백만 대군보다 더 든든하다.”고 평했는데, 교황청이 일본의 잔혹한 전쟁에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명분을 실어 주고 전 세계 협력까지 촉구하고 나섰으니 그만큼 든든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료7> 가톨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일본은 그해 12월 중국의 주요 도시인 난징(南京)을 함락시켰고, 단 6주 동안 최소 26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을 도륙하고 학살했다. 난징에 주재하던 외국인들과 신문 기자들에 의해 난징 대학살은 전 세계 곳곳에 알려졌으나 그 참상이 낱낱이 밝혀진 후에도 가톨릭은 일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다. 도쿄 가톨릭 교구장이었던 도이 타츠오는 “일본이 무기를 들게 된 것은 신의 깊은 배려에 근거한 것이므로, 세계의 3억 5천만 가톨릭 신자들은 일본의 행동에 찬동을 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1943년 8월호 『성(聲)』 잡지) 이 발언대로라면 일본은 가톨릭의 신이 깊이 배려한 덕분에 무기를 들게 된 것인데 일본은 그 무기로 갖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난징 대학살만 해도 일본군은 이 유서 깊은 도시를 점령한 후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일본군은 중국인의 심장과 간을 꺼내 먹었고 거리에는 고환이 잘린 중국 남성의 시체가 즐비했는데, 사람의 고환을 먹으면 남성다워진다고 믿은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었다. 또한 목 베기 시합을 벌여 먼저 100인의 목을 베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쟁했으며, 일본 신문들은 100인 목 베기를 초과 달성한 일본군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사나운 독일산 셰퍼트를 풀어 놓아 중국인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은 다반사였고 거리에는 셰퍼트가 사람의 내장을 물고 돌아다녔다.<자료8,9,10,11,12> 이러한 일본군의 만행은 가톨릭이 전 세계 전쟁에서 저지른 것과 유사했다.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를 함락시켰던 가톨릭 십자군은 식인 행위를 벌여 어른들을 솥에 넣어 삶고 아이들은 불에 구워 먹었으며, 히스파니올라 섬을 장악한 가톨릭 세력은 원주민을 남김없이 도륙하면서 한 칼에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을 놓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일 때 가톨릭 세력은 사나운 군견에게 90킬로그램짜리 갑옷을 입혀 앞장세웠고, 그 군견들의 먹이로 살아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던져 주었다. <자료13,14> 그러나 살인과 폭력의 광기가 아무리 유사하다고 해도 종교 집단이 전범 국가를 옹호하고 지지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가톨릭이 야스쿠니 신사를 보호하고 나선 것에는 더욱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피가 지닌 의의를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자랑 중 하나다. 피에서 최고의 의의를 발견하고 신으로 찬양하는 정신은 일본 외에는 없다. 기독교 또한 피의 의의를 자각한 종교로서 예수의 피는 구원의 근원이다. 기독교와 일본인은 이러한 공통점이 내면에 가득 차 있다. 예수의 피로 순결하게 된 기독교인이 야스쿠니의 호국 영령의 피에 감동받는 것은 그러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尊い血の意義の深酷な意義の自覚こそ、我国の誇るべき一つであろう。…この血に再興の意義を見、祭神と讃える精神は、我が日本をおいて外にはない。… 基督教は血の意義を最も深く自覚した宗教である。…即ちキリストの血こそ救拯の根元であるからである。… キリストの血に潔められた日本基督者が、護国の英霊の血に深く心打たれるのは血の精神的意義に共通のものがあるからである。血の意義の深い自覚に共通なものが潜み湛へられているからである”-기사 원문 중에서 발췌) 이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열리는 대제(大祭)를 앞두고 일본 기독교 신보가 게재한 ‘야스쿠니의 영령’이라는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1944. 4. 11. 자) 예수의 피가 구원을 준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호국 영령의 피가 신으로서 숭배를 받는다는 야스쿠니의 주장은 근본부터 동일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을 찬양하는 기독교와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죽은 것을 찬양하는 야스쿠니는 죽음을 숭배한다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정신은 가톨릭에서 ‘순교’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되었고 가톨릭 신도들은 순교 전설을 반복해 들으며 ‘예수를 따라 죽는’ 순교를 갈망하게 되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가톨릭의 ‘순교’ 정신이 일본에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보고 가톨릭을 철저히 금지했으나, 이후 들어선 메이지 정부는 가톨릭과 같이 죽음을 숭배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천황은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극렬한 전쟁을 벌였고 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천황을 위한 죽음’을 찬양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건립한 것이다. 야스쿠니가 죽음을 숭배하는 행태는 차츰 일본인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고, 일본인들은 가미카제와 같은 살인 무기가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더욱 섬뜩한 것은 이러한 죽음의 숭배가 가톨릭과 야스쿠니 신사 모두에게서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전쟁 후 불태워질 위기에서 가톨릭의 수호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야스쿠니는 이제 전 현직 일본 총리가 직접 참배하거나 공물을 바칠 만큼 그 위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과거 일본이 강대국으로서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인을 학살하던 때는 ‘일본은 신의 배려로 무기를 든 것’이라며 지지를 보냈던 종교 집단이 이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향해 ‘성모 마리아가 중국의 수호자’라며 사랑과 화해의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이 강자에 편승하는 교활한 역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섬뜩한 사실을 보여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선(善)이 무너지는 위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악랄한 죄악이라는 발언(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을 자주 했다. 악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그 침묵하는 자가 악을 행한 자보다 더욱 악하다는 것이다. 이 침묵을 깨야 할 책임은 못 배운 자보다 배운 자에게, 힘없는 자보다 힘 있는 자에게 더욱 클 것인데, 미국 명문가의 엘리트였던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가톨릭 신자였어도 정직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피와 죽음을 숭배해 온 집단은 인간을 사육하고 생각을 지배한 역사를 가졌다. 종교 사칭 집단은 피와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사기술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오늘도 전 세계 신도들이 미사에서 ‘예수의 피’를 마실 때 그들의 신이 내려주는 것은 영원한 생명일까? 죽음의 광기일까?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살인자로 단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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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순교(殉敎)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죽음을 불사하는 신앙인가? 죽음을 숭배하는 사교(邪敎)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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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로운 협치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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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종교의 진화(進化)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자유율법을 지키는 마을, 신앙촌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일할수록 더욱 커지는 기쁨, 소비조합

일할수록 더욱 커지는 기쁨, 소비조합

10월 12일, 20-50 소비조합 세미나가 열렸다. 젊은 세대가 더욱 적극적이고 활기찬 각오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이날 프로그램이었던 소비조합 11년 차 김지은, 1년 차 김동이 사장의 대담 내용을 짧게 간추려서 싣는다. ▶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한 계기 김지은: 어릴 때 교회를 다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교회에 안 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천부교인이셨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데, 하나님 찬송이 흘러나올 때 향취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해 후 할머니 추도 예배를 드리다 그 향취체험의 기억이 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다시 새벽예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 신앙촌상회까지 열게 된 것입니다. 김동이: 신앙촌 양재부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그때 무척이나 애쓰고, 노력하시는 소비조합 사장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의 뜨거운 마음과 움직임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분들을 안 예뻐하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언젠가 나도 꼭 신앙촌상회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제게도 소비조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소비조합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 김지은: 거래처 사장님들이 해주신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번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골드간장 한 통을 샘플로 드리고 3년 후에 찾아간 일이 있어요. 그때 그 개발팀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나는 지난 3년 동안 신앙촌간장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날로 바로 계약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좋은 간장으로 바꾸고 나서 마음이 편하다 하시더라고요. 또 다른 거래처 팀장님은 신앙촌간장과 다른 간장 사이에서 고민하시다 테스트를 해보셨대요. 나중에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신앙촌간장은 최고의 품질, 최고의 향, 최고의 색, 모든 것이 최고입니다.’ 거래처 팀장님들의 그 말씀이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김동이: 저는 어느 날 간장 영업을 갔는데 어떤 음식점 사장님이 왜 이제야 왔냐고 반기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사장님은 40년 이상 신앙촌간장을 썼는데, 고정 거래처가 없었대요.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간장을 배달해 줄 수 없겠냐 하셔서 그러겠다 약속하고 계약을 하게 됐어요. 또 한 번은 신앙촌상회에 직접 오시겠다고 미리 전화를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여기에 신앙촌상회가 있게 해줘서 본인이 더 감사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신앙촌이라고 하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반기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제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잖아요. 소비조합을, 신앙촌상회를 안했으면 어디서 내가 이런 분을 만날까 싶어요. 정말 귀하고 감사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 본인만의 슬럼프 극복방법 김지은: 어떤 때는 마음이 부진할 때가 있더라고요.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아서 일단 영업을 나가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거절당하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속 업체를 찾아다녔어요. 그럼 신기하게도 담당자와 미팅이 성사되곤 해요. 미팅이 끝나고 뒤돌아 나올 때의 기쁨이 말로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홍보할 업체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더라고요. 그 기쁨의 맛을 다시 보고 싶어서요. 김동이: 저도 고객이 상회에 많이 안 온다 싶으면 영업을 나가요. 어느 곳이라도 일단 홍보해 놓으면 나중에라도 연락이 오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나가서 건져오는 것밖에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도 생기고요. 전단지를 들고 다니다가 신앙촌을 찾고 싶은데 못 찾았던 분들도 여러 명 만났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홍보를 일이라 생각 안하고 삼시 세끼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각하려 해요. ▶ 앞으로의 목표 김지은: 식품 고객들이 우리 간장의 맛을 봤잖아요. 앞으로는 식품단지에 와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신앙촌 기업을 제대로 알게 해서 그 가치를 정확히 인식시키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이: 큰 계획이 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분들이 있기에 더욱 힘을 낼 수 있단 생각을 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영업 비결은 바로 ‘꾸준함’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영업 비결은 바로 ‘꾸준함’

신앙촌간장은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과 정성을 담아 선물하기에 손색없는 제품이자, 고객들에게 가장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제품이다. 또 명절 특수로 소비조합들의 매출을 올려주는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제는 얼어붙은 가운데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낸 소비조합도 있다. 신앙촌상회 주례점 오수영 사장과 주안 용남시장점 김시윤 사장이다. # 영업에는 왕도가 없다 이들은 작년대비 장유선물세트 성적이 눈에 띄게 향상한 케이스다. 김시윤 사장은 “2018년 영업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무턱대고 업체를 찾아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니 시행착오도 겪었죠. 거절도 많이 당하고, 당황해서 인사만 하고 나온 날도 있어요. 노력에 비해 결과가 없어서 처음 1~2년은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올해부터 사람들 반응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라고 했다. 냉랭한 반응만 보였던 사람들이 부드러워지고, 설명을 할 때도 즐거운 대화가 오간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무수히 거절당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내공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 같았다. 오수영 사장의 대답도 김 사장의 대답과 결이 같았다. “사실 그동안은 제가 할 수 있는 선보다 더 노력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안주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왜인지 용기가 생기면서,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은 업체를 방문해서 홍보했습니다. 예전에 이십 군데 다녔다면, 이번에는 오십 군데를 갔으니까요. 계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다녔어요.” 영업에 왕도는 없단 말이 있다. 더 많이, 더 꾸준히 하는 사람이 유리하단 뜻이다. 두 사람이 그랬다. 그들의 공통점은 꾸준함으로 승부한다는 점이었다. # 장유 선물세트 판매를 위해 김시윤 사장은 선물세트 영업을 가면 일단 미니 간장 뚜껑을 열어 향도 맡고, 맛도 보라고 권유한다. “우리 간장은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신앙촌간장을 밥에 비벼 먹으면 정말 맛있잖아요. 또 간장계란밥도 좋고, 콩나물비빔밥에도 잘 어울리고, 치즈랑 밥에 비벼 먹어도 일품이죠. 입맛없는 어르신도 신앙촌간장 하나면 밥 한 그릇 뚝딱 한다고 해요. 그러면 솔깃해하세요. 정말 그 정도로 맛있냐고 되묻는 분도 있었어요.” 맛깔나는 레시피 설명과 직접 맛보라고 간장 뚜껑까지 열어주는 김 사장의 자신감에 안 넘어갈 고객이 있을까 싶었다. 올해는 평소보다 높게 목표를 잡았다는 오수영 사장은 결심이 무뎌질까 봐 친구들에게 넌지시 말을 던져놨다고 했다. “그냥 농담처럼 ‘나 이번엔 얼만큼 할 거다’하고 말했어요. 일단 선언하고 나니 내가 한 말이니까 지켜야겠단 생각도 들고, 친구들에게 놀림거리 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어요. 효과가 아주 좋더라고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리 선전포고한 덕에 결국 오 사장은 목표달성에 성공해 모두의 축하를 받게 되었다. 영업으로 쌓아온 경험이 자산 홍보는 많이 할 수록 많이 거둬 # 장유 영업 통해 깨달은 것 많아 올해를 겪으며 김시윤 사장은 과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꾸준히 쌓은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올해는 판매가 잘되니까 자존감도 높아지더라고요. ‘이제부터 날개를 펴고 날아다녀야겠구나’ 생각했어요. 자신감이 생기니까 앞으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자 하고 계획도 세우게 됐어요. 내년에는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뛰어볼 예정입니다.” 신앙촌 사원으로 장기 근속했던 오수영 사장은 소비조합이 되며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게 됐다고 했다. “삶의 터전이 되어준 신앙촌 기업의 가치와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됐어요. 또 신앙촌 소비조합이 된 책임감도 생기고요. 아무래도 신앙촌 사원이었기 때문에 신앙촌기업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계획입니다.”

“일도, 음악도, 신앙생활도 진심을 다할 것입니다”

“일도, 음악도, 신앙생활도 진심을 다할 것입니다”

어릴 때 맺은 음악과의 인연이 신앙촌 생활에 도움 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밑바탕 돼 초등학교 5학년, 바이올린을 배운 때입니다. 당시는 하나님께서 악기를 장려하시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갔는데 바이올린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악기를 배웠습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신앙촌에 입사했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녔던 언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아 맞아! 나도 어릴 때 바이올린 배웠었지!’ 하며 오랜만에 다시 활을 잡았습니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사람들과 한데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제가 신앙촌에서 잘 적응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비올라로 전향 후 소비조합이 된 지금은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습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더욱 노력합니다. 함께 하는 시온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가는 저를 많이 기다려주고 배려해주고 있음을 알기에 선후배들의 그 따뜻한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요즘은 합주 연습이 한창입니다. 모두들 하나 된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후배들이 밤늦게까지 또는 새벽부터 연습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대견합니다. 시온오케스트라로서 무대에 서는 일은 여러 해가 지나도 여전히 떨리고 긴장됩니다. 가장 많은 은혜를 주시는 귀한 절기예배에 실수하는 일이 있을까 계속 점검하고 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스스로를 예민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 신앙촌상회 고객들의 반응입니다. 비올라를 연주한다고 하면 ‘사장님 대단하네~’ 하며 신기해하고 칭찬하시기도 합니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여가생활도 건전하게 즐긴다며 좋게 평가해주셨습니다. 절기때 신앙촌에 오셔서도 ‘악기 하느라 우리 못 봤지?’ 하고 웃으시는 모습에 죄송했고 또 제 상황을 이해해주시니 고맙기도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그러십니다. 어릴 때 만진 악기와의 인연이 지금처럼 나이 들어서도 이어질 줄 알았겠냐고. 이제 제 삶은 신앙생활과 소비조합, 비올라가 맞물려서 생활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삼박자를 이루는 것들 중 하나도 놓치지 말자는 마음,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음악에 있어서 진심을 다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따라가는 밑바탕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항상 잊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2020년 위기를 기회로!  전도의 결실 위해 노력하는 우리

2020년 위기를 기회로! 전도의 결실 위해 노력하는 우리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시작된 2020년은 전도 활동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람을 만나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는 전도에서 대면 자체가 불가능해진 코로나 사태는 큰 위기일 수밖에 없지만 그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도 했다. 전국의 천부교회에서는 온라인 교육과 SNS를 활용한 전도가 활성화되었고, 축복일에 있었던 대규모 세미나가 소규모 파트별 교육으로 바뀌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한 해의 결실을 거두어야 하는 지금, 전도 지원을 담당한 직원들이 모임을 가지고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선희 책임관장은 “부족하고 채워야 할 것이 많지만 그 공간을 하나님께 구하고 더 마음을 모아 결실을 거두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전도 행사를 진행하는 부서 중에 대표적인 전도부, 음악실, 사진실, 영상팀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편집자주 # 하나하나 알찬 열매로 … 전도부 올해만큼 신앙촌에서 교인들을 만나는 것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교인들이 한 단계 성장하고 새로운 교인들이 더욱 알찬 열매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신앙촌에 오시는 모든 교인들이 기쁨의 은혜를 받고 마음의 힘을 얻어 더욱 열심히 달릴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보살피고 챙기겠습니다. #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사를… 음악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기에 내일을 준비하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온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비롯해 시온의 음악인들이 음악을 통해서 신앙의 마음이 더욱 맑아지고 성숙해져서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 순간이 역사가 되기에… 사진부 감동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사진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다시 보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촌의 사계와 아름다운 풍경, 여러 가지 행사들을 사진에 담으며 이 순간이 역사가 된다는 것을 팀원들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 좋은 영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영상부 올해를 돌아보니 신앙촌의 풍경과 행사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좋은 영상을 찍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가장 기쁘고 은혜 받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간이 나를 위한 성장이 되기에 항상 감사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주니어

아하! 맞춤법 … 일상 속 맞춤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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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기엔 너무 피곤한가요? 안 먹어서 피곤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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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성경박물관 최고(最古) 성경사본 ‘사해문서’ 알고보니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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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화 권사님 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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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난징 대학살의 진실

난징 대학살의 진실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중일전쟁이 벌어지던 1937년 12월 13일, 중국의 수도 난징이 점령됐다. 그리고 6주 동안 근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만행이 벌어졌다. 최대 35만의 중국인이 살해되고, 8만 이상의 노소를 불문한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것이다. 당시 세계 각국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던 이 사건은 전쟁이 끝나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묻혀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조차 그 잔혹함에 몸서리를 치던 ‘난징대학살’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가졌던 책의 저자 아이리스 장은 진실을 향한 집념으로 사건을 조사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난징안전지대’를 만들었던 서양인들의 기록과 사진을 확보했으며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생생한 증언을 비디오에 담았다. 그렇게 해서 1997년에 <The Rape of Nanking>를 발표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숨겨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과 정당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진실을 바탕으로 경각심을 갖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 아이리스 장:1976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서 미국 국적의 중국인 2세로 태어나 일리노이주에서 자랐다.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AP>와 <시카고트리뷴>에서 잠깐 기자로 일한 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탔다. 어린 시절부터 난징에서 일본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들으며 자라난 그녀는 이 거대한 범죄가 잊혀진 역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The Rape of Nanking>(한국판 제목: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을 썼다. 이 책은 1937년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만행의 참상을 생생히 되살려, 영어로 쓰여진 난징대학살에 대한 훌륭한 첫 번째 보고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일본 학자들과 우익 세력들은 “사실 왜곡과 날조”라고 반박하며 아이리스 장에게 전화와 메일, 시위 등의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한편 이 책을 일본의 한 출판사가 번역출판하려고 했으나 일본 우익세력의 대규모 규탄 집회로 무산되었고, 출판조차 못 한 이 책의 비판서가 등장해 일본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취재 과정에서 얻은 우울증과 일본 극우세력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200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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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협 ‘코로나 변종’ ,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고전

새로운 위협 ‘코로나 변종’ ,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고전

한 가닥 염기서열로 된 ‘RNA 유전자’ 바이러스는 증식 과정에서 수많은 변종이 빠른 주기로 나타난다. 설계도가 엉클어져 불량이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발 빠르게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사스, 메르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에볼라, 스페인독감, 인플루엔자 등이 모두 RNA 바이러스인데 이들보다 더 빠르고 변칙적으로 변종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코로나19다. ▷ 요즘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등장했던 코로나19와는 크게 다르다. 코로나19는 유전자 염기서열 차이에 따라 크게 S, V, L, G, GR, GH형으로 분류된다. L은 우한에서 처음 등장한 원형이고 S, V는 약간 변이된 수준이다. G계열 세 유형은 중국에서 미국·유럽·아프리카 등으로 건너간 뒤 크게 변이된 것인데 70%가량이 GH형이다. 한국도 4월 경북 예천의 성지순례단 집단 감염, 5월 초 이태원 클럽 이후 최근 광주와 대전의 집단감염까지 GH형이 주종을 이룬다. ▷ 중국 연구팀이 최근 완치자 41명의 혈액에서 항체를 추출해 변종 코로나19에 투여한 결과 3명의 항체는 바이러스 무력화에 실패하고 한 항체의 대응력은 거의 ‘0’으로 나타났다. 완치자 혈청이 약발이 듣지 않을 정도로 변이가 이뤄진 이 바이러스가 바로 GH형이다. GH형은 세포 침투력이 2배 이상 높고, 전파력은 10배 이상 늘었다. 한국도 GH형이 많은 지역은 확진자 한 사람이 전파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재생산지수(R0)’가 1.34로 전국 평균 1.06보다 월등히 높았다. ▷ 지금 나타나는 변이는 자가 복제 과정상의 오류에 의한 것이어서 변이 정도가 제한적이지만 코로나19가 다른 코로나와의 ‘재조합’까지 이뤄지면 완전히 다른 변종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이혁민 연세대 의대 교수). 현재도 변종 코로나19는 세포를 뚫고 들어가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이 전보다 4, 5배 많다. 공성전(攻城戰)에서 성에 걸치는 갈고리가 많고 끝이 뾰족해 침투가 쉬워진 격이다. 무증상 감염이라는 ‘스텔스 기능’에 이어 조준 사격할 ‘타깃’마저 수시로 변신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서 고전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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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손 씻을까 말까 망설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