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교인 초대의 날

새교인 초대의 날

종교 바로 알기 코너 음악순서, 특강, 퀴즈 등  2019년 첫 번째 새교인 초대의 날 행사가 3월 4일 신앙촌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최근의 이슈를 통해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특강, 퀴즈, 다함께 노래부르기 시간 등이 마련되었다. 황순정 씨의 아름다운 피아노 독주가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광신(狂信)의 역사’라는 주제로 기존 종교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특강이 있었다. 역사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을 바꾸는 시간이었다. S라인 스트레칭 시간에는 강사의 구호에 맞춰 몸을 풀며 봄날의 나른함을 시원하게 날렸고, 특강을 바탕으로 한 퀴즈 시간에는 지역별로 조를 나누어 긴장감 넘치는 퀴즈를 풀었다. 끝으로 가곡 ‘가고파’를 다 함께 부르며 새교인 초대의 날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김영애 씨(광안교회)는 “오늘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퀴즈를 풀 때는 너무 흥미진진해서 온몸이 짜릿했어요. 벌써 다음 초대의 날이 기다려집니다”라고 했다. 이병란 씨(노량진교회)는 “밀떡과 포도주를 먹으며 테오파기같은 원시 신앙을 아직도 이어오고 있는 종교가 있어 놀랐습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매우 흥미롭고 신선한 특강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 외의 참석 소감으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종교라면 그것이 지나친 광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같이 모여 스트레칭도 하고 퀴즈도 푸니 정말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음악 순서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등이 있었다.

인천 송도 베이비 페어

인천 송도 베이비 페어

2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 25회 코베 베이비페어’에 신앙촌식품(주)이 참가하여 고급 농후발효유 ‘요구르트 런’을 선보였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해썹(HACCP)과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까지 획득한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요구르트 런은 달지 않고 깔끔한 맛으로 이미 많은 고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이다. 또 친환경 재질의 페트병을 사용하여 자녀들의 환경호르몬 노출을 염려하는 부모들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앙촌식품 관계자는 “고객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요구르트 런을 만날 기회를 자주 마련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요구르트 런은 3월 부산 ‘벡스코 베이비페어’와 대구 ‘베이비&키즈페어’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

6개 지역 교회 신축 위원 임명 2월 24일, 남성회 축복일 예배가 신앙촌에서 있었다. 청장년 예배에서 강병수 관장(일광교회)은 하나님께서 최고로 기뻐하시는 것이 전도임을 강조하며 올해 ‘교인 1명이 1명씩 전도하자’는 전교인 전도 운동에 모두가 동참하자고 설교했다. 이어 2019년 교회 신축을 준비 중인 소사, 덕소, 인천, 구리, 청주, 울산 6개 지역 교회 신축위원 임명식이 있었다. 유년 예배에서는 어린이들이 ‘은혜받을 준비’와 ‘자유율법’에 관한 하나님 말씀을 배웠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빈칸에 핵심 단어 채우기, 궁금한 사항 질문하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말씀 배우기 시간이 진행되었는데 모든 어린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세미나, 환영회, 견학 등

세미나, 환영회, 견학 등

지난 2월 24일, 신앙촌에서 남성회 파트별 모임이 열렸다. 장년회에서는 신앙촌 신광물질 건강제품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신앙촌에서는 세계 최초로 천연의 생명에너지(원적외선, 음이온, 산소)가 가장 많이 방사되는 특수 준보석광물을 원료로 신광물질을 개발하여 국내외 22종의 특허를 받았고 1997년 8월 미국 국제발명품 전시회에서 2개 분야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청년회에서는 신입 청년회원 환영회에 이어 새벽예배, 기도생활 등 신앙생활의 기본을 잘 지키는 청년이 되자고 의견을 모았다. 학생회에서는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를 주제로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찬송을 배우기 시간을 가졌고 신앙촌 식품단지를 견학했다.

장 누수 증후군과 런의 우수성

장 누수 증후군과 런의 우수성

4일, 신앙촌에서 소비조합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달 소비조합 세미나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장 건강 이론 ‘장 누수 증후군’과 런의 우수성이 소개되었다. 신앙촌식품(주) 관계자는 “장 누수 증후군은 장 점막에 구멍이 생겨 유해한 것들이 혈액으로 유입되는 현상으로 장누수가 유발하는 질병으로는 비염, 아토피, 당뇨병, 치매, 암 등이 있습니다. 장이 건강하면 면역의 중심 역할을 하지만 장이 안 좋으면 만병의 근원이 되므로 장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강조했다. 한편, 판매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목표달성중앙상은 영천, 태백, 제주, 두부 사업 우수 지역은 진해, 기장신앙촌 소비조합, 부산 대신 지역이 받았다. 또 전국 25개 지역이 도전 시음 행사 목표를 달성했고 강원, 덕소가 우수 지역으로 선정됐다.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도약하자”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도약하자”

3월 5일 신앙촌에서 2019 생명물두부 우수판매자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는 시상식, 영업 방향 발표, 사례담 등이 있었다. 2018 두부판매 우수자 1등은 노량진 이선옥 사장 , 2등은 소사 기정심 사장, 3등은 덕소 민길자 사장이 차지했다. 본사 급식 영업 방향 발표시간에는 기업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여 제품의 가치를 전하고 제안까지 하는 B2B 영업을 지역별로 진행 중이라고 했다. 사례발표 시간에는 체인점 영업, 급식 영업, 식당 영업을 주제로 신촌지역 김정희 팀장, 부산 가야지역 이주희 팀장, 울산 이윤경 사장의 사례담이 소개되었다. 또 신앙촌상회 지점별 두부 행사 때 고객들을 대상으로 두부 유부초밥 시식회를 열어 좋은 성과를 낸 민소연 두부영업팀장의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

새교인 초대의 날 행사 열려

‘상품의 가치를 전달하려면?’

‘학생 전도’를 주제로 심층 토론

꿈을 향해 도전하는 멋진 여학생

2019년 3월 17일 유년 전도의 날

2019년 3월 24일 중고생 전도의 날

떼굴떼굴 ‘다른 그림 찾기’

신앙촌식품(주), 런 공식 카페 개설

신앙체험기

언제나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살고 싶어

언제나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살고 싶어

<지난 호에 이어서>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하고 인천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만제단에 다녔고 인천 살면서부터 인천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웅장한 인천전도관은 숭의동 산언덕에 있어 시내 어디서나 보였는데, 남편에게 전도관에 같이 가자 했더니 일요일마다 따라나서긴 하면서도 싫은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연배가 비슷한 인천전도관 전도사님과 자주 대화하며 가까워지더니 심방하시는 전도사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축현동에 새로 전도관을 지을 때도 매일같이 나가서 도와 드리고 장례예배 가실 때도 곧잘 따라가는 눈치였습니다. 싫은 표정으로 전도관 따라왔던 남편 장례예배에서 생명물로 핀 시신 보더니 새벽예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 얼마 후 교육을 받고 전도사 발령받아 한번은 남편이 집에 와서 장례예배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얼굴이 까만 편이었던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피부가 너무 환하고 뽀얗게 피었다며 신기하다고 연신 감탄했습니다. 그때부터 나가자는 말을 안 해도 새벽예배에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갔습니다. 그 후 전도사 수강생을 모집할 때 꼭 해 보고 싶다고 자원하더니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전도사로 발령받게 됐습니다. 일요일예배 때면 전도사님이 등단하기 전에 교인들이 돌아가며 준비 찬송을 인도하거나 주일학생에게 찬송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찬송을 인도해 보라 했지만 워낙 수줍음이 많아 한 번도 앞에 나서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 교역자로 추천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여러 모로 부족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막상 추천을 받고 보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예비 교역자들이 서울과 부산으로 나눠져서 정식으로 교육받을 때 저도 부산에서 참여했습니다. 설교와 예배 등의 교육과 함께 선배 교역자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은혜 주시는 귀한 직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 교역자들을 불러서 안찰을 해주시는데 “끝까지 열심히 해” 하시며 손을 떼시자 아주 좋은 향취 진동하여 마음에서 기쁨과 용기 솟아 교육 마지막 날은 하나님께서 기장신앙촌으로 부르셔서 안찰해 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됐을 때 두 눈에 손을 얹으신 후 부드러운 음성으로 “교역자 나가지? 끝까지 열심히 해.” 하셨습니다. 제 눈에서 손을 떼시자마자 아주 좋은 향취가 진동하며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는지 하나님 은혜 주시는데 무엇을 못하랴 하며 마음이 아주 든든해졌습니다. 울진 천부교회로 첫 발령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저는 원효로 구제단 주일학생 시절부터 마흔 살이던 그때까지 꾸준하게 교회에 다니며 계속 말씀을 들었는데 교역자로 발령 받은 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역자가 되기 전에도 축복일예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되어 제단에서 하나님 말씀 테이프를 계속 듣다 보니 ‘이런 말씀도 하셨구나!’ 하며 놀라는 때가 많았습니다. 지구 창조부터 구원과 심판까지 세밀히 짚어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찬송이 딱 맞았습니다. 특히 초창기부터 체험해 온 은혜와 풀어 주시는 말씀이 딱딱 맞을 때는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 창조부터 구원과 심판까지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세밀히 짚어 주시는 말씀 재미있어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는 것 실감 초창기 원효로 구제단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겨울 창문이 꽁꽁 얼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창문 녹는 것을 보여 주겠다 말씀하시면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문은 꽝꽝 얼어 있는데도 그늘진 창문에 하얗게 얼어붙어 있던 성에가 스르르 녹아 내렸습니다. 예배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그것을 보며 신기하다고 손뼉 치며 기뻐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말씀하시며 그때 이미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 주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 하나님!’ 하고 속으로 외치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직접 보고 느꼈던 일이 말씀과 연결되니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권능으로 보여 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효로 구제단 시절, 꽁꽁 얼어붙은 창문이 녹는 것을 보여주시겠다 하신 하나님 햇살이 비치는 창문은 그대로 얼어있는데, 그늘진 쪽 창문의 성에는 스르르 녹아 내려 그때 이미 창조주임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깨닫게 돼 또 교역자로 입관예배를 인도하면서 여러 모로 깨닫는 점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았고, 허전하고 슬펐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뻐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입관예배에 정성을 기울이며 귀한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1990년 논산 천부교회에서 시무할 때 직접 고인을 생명물로 씻겼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권사님은 연세가 높으셔서 교회에 거의 못 나오셨기 때문에 유족들은 천부교회와 상관없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인의 막내 아드님이 어머니 살아생전에 천부교회 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던 것을 기억하고 교회로 연락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미 염을 끝낸 상태라는 말에 급히 생명물을 챙겨서 교인들과 함께 그 댁으로 갔습니다. 마침 장례반 권사님들이 안 계셔서 제가 고인을 씻기게 됐습니다. 삼베로 꽁꽁 묶어 놓은 매듭을 풀고 생명물로 고인을 씻겨 드리자 팔다리가 부들부들해져서 나이든 할머니가 아니라 유연한 아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졌습니다. 입술에 자글자글했던 주름이 곱게 펴지고 피부 또한 뽀얗고 환하게 피어서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를 부탁했던 막내 아드님은 깊이 허리 숙이며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권사님을 생명물로 씻기자 팔다리가 유연해지고 입술은 주름이 펴지고 피부도 뽀얗고 환하게 피어서  막내 아들이 허리 숙여 고맙다 인사해 당시는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시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직접 뵙고 은혜 받으며 따라왔는데, 낙원 가신 후에도 변함없이 은혜 주시며 함께하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물로 씻어서 곱고 예쁘게 핀 권사님을 보며 ‘권능으로 함께하시는구나! 우리 곁에 계시는구나!’ 하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눈물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서울과 청주, 춘천 등지에서 시무하다가 올해 34년 간의 교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교역자로서 교인들과 한마음으로 준비하고 애쓰고 정성을 기울인 만큼 은혜 주신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은혜가 있고 분명한 하나님 말씀이 있으신데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제 신앙촌에서 지내면서 제2의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산다면 그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신앙인이 되어서 그날에 구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항상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에 지친 몸으로 시부모님 저녁상까지 치우고 나면 저는 사랑채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충북 보은으로 시집가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냈습니다. 내 손으로 물 한 그릇 떠 본 일 없이 컸는데 시집에서 밀어닥치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버거웠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하고 농사일에서 벗어나면서 살기가 수월해졌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4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무렵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을 때였습니다. “거기는 찬송이 들리는 집이에요.” 소사리 큰길 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사리전도관이라는 곳이 바로 위에 있어서 새벽마다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과연 새벽부터 찬송이 들리는데 왠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전도관에 가게 된 것은 매일 집에 들르시던 전도관 권사님 때문이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은 신앙촌 메리야스와 속치마를 판매하셨는데 시중에 파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서 애용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간장도 맛있어서 제가 이웃들한테 다니며 대신 팔아 드리니 자연히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권사님이 전도관에 같이 가 보자 하셔도 “저는 신앙촌 물건만 팔아 드릴게요. 전도는 하지 마세요.” 하며 가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셨을 때 거절을 못 하고 따라나선 것이 전도관에 나간 계기였습니다. 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예배실 가득히 모여 있었고, 다들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좋아서 새벽예배와 수요일예배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섯 살짜리 작은아들을 데리고 수요일예배에 갔을 때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아…” 하는 찬송을 부르는데 처음 듣는 찬송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울고 나니 입고 있던 치마 한 폭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다 큰 아들이 “그때 엄마 치맛자락이 흥건하도록 우셨어요.” 하고 기억하는 걸 보면 많이 울기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눈물에 씻겨 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교인들 권유로 예배실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지만 그 후로 누가 뭐라지 않아도 예배에 안 빠지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저를 보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은혜일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확실하게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 센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고 계속 맡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서울 동대문에 있는 신앙촌 센타에 갖가지 신앙촌 제품이 진열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을 도와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던 저는 센타에 처음 가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서 물건 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하며 향기를 맡았는데, 건물 어딜 가나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사러 온 분들이 예쁜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기에 화장품 냄새인가 했지만, 그분들 곁을 지나가 보니 그 향기는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리 맡아도 더 맡고 싶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물건을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인들이 이야기하던 ‘향취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되는데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농동전도관 예배 때 멀리 계신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눈 마주치는 느낌 들어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나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운 불이 사라지더니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서울 오류동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생명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하필 그때 소사리전도관에 생명물이 없어 몹시 안타까웠는데 대신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신앙촌 간장이 있어서 딸아이가 받아 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축복받은 간장을 타서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옆구리가 터지는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도 저를 보고 방금 전까지 허리를 못 펴고 아파 하더니 이제 괜찮으시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이, 처음 왔을 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낫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퇴원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전농동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날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니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제일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어 단상을 올려다 봤을 때 하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배실이 워낙 넓고 단상이 3층에 있어서 저 멀리 계신데도 그 순간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며 눈이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활활 타는 불이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자 그 불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올 때는 몸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언제 복막염을 앓아서 그렇게 아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몹시 약해서 몸져눕는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잘 못 먹고 약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늘 골골하며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큰딸이 엄마가 안 아픈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복막염이 깨끗이 나은 뒤로 병원과 약을 모르고 살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건강해진 몸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나 믿어 주고 반겨 주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즐거웠고,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보름에 한 번씩 소비조합 축복일이 있어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85년 무렵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얹으시자 그리 아플 수 없어 손 떼시자 눈부터 가슴까지 시원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연신 웃음이 나 그날은 눈안찰을 해 주시는 날로 안찰 받기 전 예배실에서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눈을 감고 찬송하다가 갑자기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찬송에 열중하는 사람들뿐이고 그렇게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너무 떨려서 계속 순서를 양보하다가 제일 끝으로 가게 됐습니다. 안찰 받으면 내가 죄지은 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씻어 주시는 기회이니 꼭 안찰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자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그리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손을 떼셨는데 그 순간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부터 머리,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가 씻어지면 이렇게 좋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직접 안찰을 받고 보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1998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일하며 신앙촌 사람들과 축복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 거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휴게실에 찾아오던 아이들이 20년이 지나 어엿한 신앙촌 사원이 된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따라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까 싶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맙고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 영광된 날에 기쁨으로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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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율법을 지키는 마을, 신앙촌

구원은 단순히 믿는다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죄를 씻어 구원 얻을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슬성신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내가 이슬과 같으리니’ 이것은 하나님이 이슬같이 임하신다는 것이고,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은 그 은혜를 내리는 분이 감람나무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이슬성신을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이며 그분이 곧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이사야 41장에 기록된 ‘동쪽의 해 돋는 곳, 땅 끝 땅 모퉁이’는 이스라엘에서 볼 때 동쪽 해돋는 곳이고, 땅 끝이면 그 다음엔 바다가 있는 곳이며, 땅 모퉁이는 반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섬들아 잠잠하라’라고 했으니 섬나라인 일본이 아닌, 바로 한국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방의 한 사람은 인간의 몸을 입고 한국 땅에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2546호 천부교 소개 10 ‘하나님이신 증거’ 참고>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라고 하나님께서는 신앙인의 마을 신앙촌을 건설해 주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슬성신을 창조하여 내려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여기 귀한 물건 하나가 있습니다. 제것이 아닙니다. 이 물건이 탐나지만 훔치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저를 도둑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이것을 갖고 싶다’ 하는 탐내는 마음이 생겼을 때, 이미 하나님의 법에는 어긋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법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자유율법, 즉 양심의 법입니다. 자유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슬성신을 받아 죄를 씻음 받는 것과 동시에, 자유율법대로 죄를 짓지 않아야지만, 마지막 심판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율법을 지키며 한 순간 한 순간 예민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자유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산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천부교 교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신앙인의 마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신앙촌입니다. 첫 번째 신앙의 울타리 소사신앙촌. 1957년 11월, 황무지에 첫 삽을 꽂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여 명의 교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완벽한 복지마을이 건설됩니다. 담이 없고 미움이 없는 이곳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100여 종의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며 당시 한국 경제를 일으키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던 제1신앙촌에 이어, 1962년 7월, 한강 줄기를 따라 건설이 시작된 덕소신앙촌은 당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1970년 2월, 신앙의 울타리는 기장으로 옮겨지고, 현재 ‘신앙촌’은 기장신앙촌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의 선한 생산 활동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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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바울의 죄상을 밝히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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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반도 운전자론의 역할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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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천국의 발명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남산집회(1955.3.26.~4.5.)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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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천부교의 장엄한 역사와 규모에 놀라고 자유율법이 가장 인상적”

“천부교의 장엄한 역사와 규모에 놀라고 자유율법이 가장 인상적”

지난해 5월 오픈한 천부교 홈페이지가 오픈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스튜디오 제이티에서 제작한 천부교 홈페이지는 지난해 2018 웹어워드와 앤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홈페이지 제작에 이어 최근 유지보수 관리까지 맡게 된 스튜디오 제이티의 정재철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 먼저 천부교 앤어워드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2018 웹어워드와 앤어워드, 국내 양대 어워드에서 각 분야별 대상을 수상해 기쁘고 믿고 맡겨주신 천부교 관계자분들이 계셔서 이룰 수 있었던 성과라 생각해 감사한 마음입니다. 천부교 홈페이지에 대하여 ◇ 천부교 홈페이지를 만들며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직접 신앙촌을 방문하고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의 천부교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 방문에서 느낀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게 왜곡되어 있다 생각했고 그 부분을 바로 잡고 싶었습니다. ◇ 천부교 홈페이지 처음 맡으셨을 때 인터넷 세계에서 천부교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요? -처음 제작 당시 천부교에 대한 부정적인 글들만 검색되고 긍정적인 글들은 검색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는 소통이 부족한 홈페이지였습니다. 지금은 소통과 접근성을 강화하고 검색엔진 최적화 작업을 통해 긍정적인 정보도 많이 검색되도록 했습니다. ◇ 천부교뿐 아니라 신앙신보 홈페이지를 작업하셨는데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 -종교 관련 신문이라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지적 수준이 높으신 분들의 좋은 칼럼도 많고 일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정보도 많았습니다. 스튜디오 제이티에 대하여 ◇ 스튜디오 제이티는 어떤 회사인가요? -스튜디오 제이티는 2012년 창업 이후 워드프레스와 반응형웹에 전문성을 두고 다양한 디지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에이전시입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포트폴리오 제작을 위해 프레임워크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워드프레스를 알게 되었고 디테일에 매력을 느껴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 스튜디오 제이티의 강점, 장점, 개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스튜디오 제이티는 깨알 같은 디테일을 모아 남들과 조금 다른 퀄리티를 내는 회사입니다.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은 스튜디오 제이티의 강점이자 장점이며 개성입니다. ◇ 제이티가 추구하는 방향이 궁금합니다. -아름답고 유용하며 의미있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의미부여에만 집착한 예술도 아니고, 유용하게 기능만 동작하는 엔지니어링도 아닌, 목적에 맞게 잘 설계된 아름답고 유용하며 의미있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 홈페이지 제작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은 디자인과 그것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디테일한 개발, 그리고 잘 만든 프로젝트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드는 검색엔진 최적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앤어워드 수상경력이 많던데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요? -구성원 모두가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최대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일을 즐기다 보니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부교와 종교에 대하여 ◇ 평소 종교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개인적으로는 무교이지만 주변인들은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각자의 믿음과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는 모습을 봐왔고 저 또한 종교의 자유와 개개인의 믿음을 존중합니다. ◇ 천부교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했고, 홈페이지 작업을 하면서 천부교에 대해 느낀 점이 궁금합니다. -첫인상은 새로운 소수종교라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를 작업하면서 천부교의 오래된 장엄한 역사와 규모를 보고 많이 놀랐었습니다. 만나본 천부교인들 모두 온화한 미소를 품고 있었으며 심성이 착하다 느꼈습니다. 천부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과거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걸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부교가 첫 종교 관련 프로젝트, 가장 기억에 남아 왜곡된 천부교 이미지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 ◇ 천부교 교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그릇됨과 잘못함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자유율법”이 가장 인상 깊었으며 타 종교인들도 배웠으면 하는 교리라 생각합니다. ◇ 천부교인들이 체험한 생명물의 권능이나 이슬성신 은혜 체험이 사실이라고 생각되는지요? -제3자 관점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고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제가 만나본 천부교인들을 봤을 때 그분들이 거짓을 말하진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 신앙촌을 둘러본 느낌은 어떠했나요? -한겨울 방문했던 신앙촌의 첫인상은 “크고 깨끗하고 조용하다”였습니다. 6개월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봄, 여름, 가을 방문했던 신앙촌은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신앙촌 기업의 기업가 정신과 장인정신에 본받을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 신앙촌 제품을 써보셨나요? -네, 간장, 두부, 요구르트 등 신앙촌의 제품은 직접 사용해 보고 너무 높은 만족도를 느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어른분들에게 추천을 많이 해드렸는데 그분들도 이미 신앙촌 제품 좋은 건 알고 계셔서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 천부교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외부와 더 활발한 소통을 해서 천부교의 긍정적인 부분과 역사를 많은 사람에게 알렸으면 합니다. ◇ 홈페이지 제작에 이어 최근 유지 보수 관리까지 맡으셨습니다.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이며 작업의 목표와 방향성은 어떤 것인지요? -천부교의 주요 행사와 보도자료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10년 이상 웹에이전시에 몸담으면서 해왔던 프로젝트 중 천부교 홈페이지는 첫 종교 관련 프로젝트이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더 잘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앞으로 유지보수를 통해 천부교에 많은 도움이 되어 믿음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 끝으로 스튜디오 제이티의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규모적인 성장보다는 임직원 모두 행복하게 일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전도를 위해 힘차게 달리는 반사가 되겠습니다”

“전도를 위해 힘차게 달리는 반사가 되겠습니다”

작년 초, 2017 연간 학생 전도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반사들을 보던 제 마음속에는 작은 소망 하나가 피어났습니다. 이름이 호명된 반사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고 그 순간 ‘나도 전도를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3월 전도의 날에는 전도 목표를 꼭 달성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목표가 생기면서 새벽예배에도 참석했습니다. 고요한 새벽길을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혼자였으나 혼자가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예배 전에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하니 무척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오늘은 어떤 아이가 올지 기대되었습니다. 아이들 이름과 얼굴 외우는 것을 유달리 못하던 저였지만, 예쁜 아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려 많이 애썼습니다. 반사 활동을 하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제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3월 전도의 날을 시작으로 제가 맡은 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아이들을 챙기는 데 더 집중하게 되었고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 지 즐거운 고민을 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저를 반겨주거나 작은 손으로 맛있는 간식을 내밀 때, 천부교회에 가면 즐겁다며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볼 때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또 전도한 아이가 축복일에 가게 되었을 때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전도한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 느껴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전도를 위해 노력하는 반사 되고 싶어 가끔은 제주도에서 축복일에 가는 길이 쉽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폭설에 비행기가 뜨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고, 없는 비행기 표를 구하려 애쓰기도 했습니다. 가슴을 졸였던 축복일이지만 오히려 애타는 상황 속에서도 신앙촌에 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축복일의 귀한 가치를 더욱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면서 학교생활, 아르바이트, 반사 활동까지 동시에 소화하다 보니 몸이 점점 피곤해졌습니다. 또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마음까지도 점점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던 중 말씀 공부 시간에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에 소홀해지는 사람들을 보며 무척 안타까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교회와 멀어진 아이들 때문에 반사인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앞으로는 정말 하나님 말씀을 따라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어느새 2019년이 밝았습니다. 작년을 돌아보니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도의 날에 많은 아이를 전도하고, 이슬성신절 합창 무대에도 섰던 감사한 해였습니다. 올해의 제 목표는 신앙의 기본을 잘 지키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고생 전도에도 더욱 힘쓸 예정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달리는 반사가 되겠습니다.

“전도를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된 것 없다는 것 깨달아”

“전도를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된 것 없다는 것 깨달아”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가 11시인데 한 시간 전에 오신 새교인에게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네, 일요일이면 이렇게 교회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이지요. 좋은 말씀도 듣고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뭉클했습니다. ‘새교인들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구나. 우리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감사한 마음과 함께 힘이 났습니다. 그동안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집안 동생을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전도의 날에 참석시키곤 했었는데, 이제 매월 전도의 날이 되면 즐겁게 교회에 오는 동생의 달라진 모습 역시 감사했습니다. 주일마다 동생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올해 저의 전도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도부장이 세 명입니다. 새교인을 기쁨반, 은혜반, 미소반으로 나누어 각 반의 전도부장들이 새교인 중에서 부반장을 정하여서 반별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교인들에게 안부 전화도 드리고 다양한 행사 소식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정성 다해 열매 맺는 해 되도록 관장님과 교인들이 한마음 되어 새교인 위한 반별 모임으로 젊은 세대 전도에 주력할 계획 또 전도의 날에는 예배를 마치고 새교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새교인들과 평소 그분들이 궁금해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새교인들을 전도할 때 어떤 면을 더 신경 써야 할지, 어떤 것을 더 준비해야 할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무척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는 관장님과 전교인이 마음을 모아 새교인을 위한 반별 모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새교인들과 친목 도모는 물론 말씀 공부를 통해 젊은 세대를 전도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또 전교인이 전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고 합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교인들이 마음을 열어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명 한 명 정성을 다하여 알찬 전도를 위해 주력할 것입니다. 2019년 전교인 전도의 해에 교인들과 한마음이 되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을 찾아 전도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매달 신앙촌에서 만나자~”

“매달 신앙촌에서 만나자~”

2000년 초, 축복일 예배 때 신앙촌에 오는 학생들을 잘 챙겨주는 것도 ‘전도’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송탄, 안성교회 어린이와 학생들을 챙기면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매달 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출석 체크도 하고, 새로운 아이들이 더 많이 올 수 있도록 생일도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도 챙겨주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에 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니 기쁨과 보람이 느껴졌고 웃음이 가득한 축복일이 매달 기다려졌습니다. 그 후 2012년 신앙촌 샘터식당 책임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새로 전도된 송탄교회 여청 한 명이 매달 축복일에 참석했습니다. 그 여청은 신앙촌에 올 때마다 평소 궁금했던 천부교 역사나 하나님 말씀에 대해 많이 물어보곤 했습니다. 신앙촌에 온 아이들을 위해 간식부터 생일까지 매달 챙겨 아이들이 좋아하니 보람돼 웃음 가득한 축복일 기다려져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청이 “언니, 나 학생 관장님으로 발령받았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기뻤던 저는 지금도 일선에서 열심히 전도하고 계시는 그 학생 관장님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몇 년 전, 통나무집에서 근무할 때는 학생축복일마다 김해교회 학생들이 우동을 먹으러 자주 왔습니다. 마침 유년 전도의 날 김해교회 봉사 도우미로 갈 예정이라 김해교회 아이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우고 “우리, 다음 주 전도의 날에 또 만나자”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의 날 활동이 계기가 되어 그 후로 매달 김해교회 아이들도 만나고 있습니다. 신앙촌에 온 아이들을 챙겨주는 것을 본 친한 언니도 함께 마음을 모으고 싶다고 하셔서 지금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이렇게나마 전도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늘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입사생이 되고 학생 관장님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주니어

“마음이 예쁜 친구들을 더 많이 전도할래요”

“마음이 예쁜 친구들을 더 많이 전도할래요”

2018년 연간 전도시상식 수상자들은 어떻게 전도했을까? 개인전도 수상자 어린이들의 전도 이야기를 들어보자. ▶ 전도는 언제부터 하였나요? 김시현 (초3, 서면교회) : 학교 앞에서 관장님의 초대장을 받고 천부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교회에 가는 것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친구들과 같이 다니고 싶어서 전도하게 되었어요. 전유진 (초5, 군산교회) : 작년 전도의 날에 저도 친구를 꼭 전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도를 시작했어요. ▶ 어떤 방법으로 전도했나요? 윤소원 (초3, 양산교회) :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들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함께 교회에 갔어요. 김시현 : 학교에 가서 친한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보여주고 설명했어요. 문채흠 (초4, 대방교회) :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주거나 전화로 교회에 같이 가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전화나 문자보다 친구를 직접 만나서 초대장을 주는 게 더 전도하기 좋은 것 같아요. ▶ 전도하면서 가장 기뻤을 때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전유진 : 성격이 소심한 편이어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지만 용기내어 교회에 초대했어요. 그런데 제가 초대한 친구가 일요일에 왔을 때 정말 기뻤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지금도 교회에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윤소원 : 제가 전도한 동생들과 함께 캠프에 갔을 때요. 통나무집에서 우동도 같이 먹고 키즈랜드에서 놀 때 정말 즐거웠어요. 또 전도시상식에서 특순도 하고 전도상을 받게 된 일도 정말 뿌듯했어요. 홍세나 (초6, 서면교회) : 다른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천부교회는 나쁘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천부교회에 다녀보니 그런 교회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우리 교회를 제대로 설명해주어서 오해를 풀게 되었어요. ▶ 2019년에는 어떻게 전도하고 싶나요? 홍세나 : 올해는 마음이 예쁜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주면서 교회에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고, 작년보다 더 열심히 전도하고 싶어요. 윤소원 : 새학기가 되면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서 교회에 함께 오고 싶고, 캠프에도 같이 가고 싶어요. 문채흠 : 올해는 제가 전도한 친구들과 캠프에 같이 가는 것이 목표예요. 그리고 더 많은 친구를 전도할래요.

우종화 권사님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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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이 입안에서 사르르, 기분까지 즐거워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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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40대 이후 늘어나는 여성형 탈모의 관리법

40대 이후 늘어나는 여성형 탈모의 관리법

40대가 된 이후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고민인 여성들이 많다. 남성형 탈모와는 다른 여성형 탈모에 대해 알아보자. ■ 여성형 탈모 자가진단 리스트 – 하루에 빠지는 모발의 개수가 100개 이상이다. – 모발이 가늘어지고, 전보다 가르마가 넓어졌다. – 윗머리 볼륨감이 줄고, 두피 속이 눈에 띄게 보인다. – 모발이 건조하고 푸석푸석하다. ■ 남성형 탈모와 다른 점 남성형 탈모는 이마가 M자로 벗겨지거나 아예 전체가 벗겨지면서 대머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여성형 탈모는 앞이마가 벗겨지거나 아예 대머리가 되는 경우는 없다. 대신 정수리 부분에서 탈모가 발생해 속머리가 빠지게 된다. ■ 여성형 탈모의 원인은? 아직 탈모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인 경우가 많으며 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서구식 식습관, 지나친 다이어트 등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 여성의 경우 출산 후 탈모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임신 중 정상적으로 빠져야 할 모발이 호르몬 변화로 빠지지 않고 있다가 출산 후 한꺼번에 빠지기 때문이다. ■ 생활 속 탈모 관리법 고지방, 고단백 중심의 서구식 식생활을 바꿔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탈모에 좋은 이소플라노보이드 성분이 많은 콩, 두부, 된장, 채소를 섭취하는 것도 좋다. 또 두피의 청결함을 유지하고 머리를 세게, 오래 묶는 것은 피한다. 모발과 두피에 손상을 주는 염색과 파마는 최대한 줄이고, 너무 높은 온도로 헤어드라이기를 사용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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