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여학생 뮤직캠프

전국 여학생 뮤직캠프

뮤직캠프, 신앙촌에서 2박 3일간 열려 신앙강좌, 요리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 2월 21일부터 23일까지 2박 3일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여학생들이 신앙촌에서 ‘전국 여학생 뮤직캠프’에 참여했다. 이번 캠프는 오는 5월에 있을 이슬성신절의 합창 연습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음정을 익히는 기초 단계부터 차근차근 연습을 이어갔고, 반복된 연습을 통해 하나의 소리로 마음을 모아갔다. 22일 오후에는 신앙촌의 건설 과정과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터전으로서 신앙촌이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으며 참가자들은 신앙촌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진행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만들기’에서 직접 만들고 맛보는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최고의 떡볶이를 찾아라–흑백요리사’에서는 개성을 살린 조별 요리 대결의 열기로 캠프가 한층 활기를 띠었다. 참가자들은 재료를 고르고 조리하며 서로의 떡볶이를 맛보고 평가했고, 즉석에서 진행된 심사 위원들의 심사 평까지 더해져 웃음과 긴장감이 함께하는 시간이 됐다. 이어진 신앙강좌는 ‘죄를 구분하는 맑은 여학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생활 속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이어진 합창단 오디션 ‘빌드업! 크레셴도 서바이벌’에서는 조별 합창 대결이 펼쳐져, 그동안 연습해 온 실력을 무대에서 선보였다. ‘캠프축제’ 시간에는 각종 게임이 이어지며 학생들의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합창단 전체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그동안의 연습을 점검하며, 이슬성신절 무대를 더욱 정성껏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이어 신앙촌 식품 단지에서 런, 두부, 간장의 생산 과정을 견학하며 2박 3일간의 전국 여학생 뮤직캠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월대보름 밤하늘을 물들인 개기월식

정월대보름 밤하늘을 물들인 개기월식

지난 3월 3일 정월대보름 밤, 하늘에서는 달이 붉게 물드는 개기월식이 관측됐다.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월대보름과 보름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천문 현상이 겹치면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이번 월식은 동아시아와 호주, 태평양, 아메리카 지역에서 관측됐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달이 평소보다 크게 보이는 시기와도 맞물리면서 이른바 ‘블러드문(Blood Moon)’이라 불리는 붉은 달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개기월식의 원리 개기월식은 태양과 지구, 달이 우주 공간에서 거의 일직선상에 놓일 때 나타난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해 밝게 빛나는 달이, 태양과 달 사이에 위치한 지구의 본그림자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면서 빛이 차단되는 것이다. 이때 달의 일부만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는 경우를 부분월식이라 하고, 달 전체가 본그림자 속으로 들어갈 때를 개기월식이라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달이 완전히 가려져도 사라지지 않고 붉은빛을 띤 채 관측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태양빛이 지구 대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파장이 짧은 푸른빛은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빛은 굴절되어 달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빛이 달 표면에서 반사되어 달이 붉게 물든다. 관측 기록과 향후 일정 이번 개기월식은 부분월식으로 시작해 달이 점차 지구의 본그림자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진행됐다. 최대식은 오후 8시 33분 42초에 나타났으며, 약 1시간 동안 붉게 물든 달을 관측할 수 있었다. 월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달의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어두워지며 붉게 변해가는 모습이 단계적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시간에 따라 달의 색과 밝기가 변화하는 과정은 월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달의 색과 밝기는 지구 대기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대기 중 먼지나 입자가 많을수록 더 어둡고 탁한 붉은빛을 띠고, 대기가 맑을수록 밝은 오렌지빛에 가까운 색을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지구 환경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개기월식은 보름달일 때만 발생하지만 매달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달의 공전 궤도가 지구의 공전 궤도면과 약 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세 천체가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이번과 같은 개기월식의 전 과정을 다시 관측할 수 있는 시기는 2028년 12월 31일이 될 전망이다.

전통 발효, 시간이 빚은 맛 양조간장

전통 발효, 시간이 빚은 맛 양조간장

◆ 간장의 종류와 제조 방식 간장은 오랜 세월 한국 식탁에서 두루 쓰여 온 대표적인 발효 조미료다. 제조 방식에 따라 한식간장, 양조간장, 산분해간장으로 나뉘며, 이밖에 효소분해간장과 혼합간장도 있다. 그중 한식간장은 전통 메주를 띄운 뒤 소금물을 부어 발효·숙성해 만드는 간장으로, 조선간장이나 국간장이라고도 불린다. 양조간장은 콩과 밀 등을 원료로 누룩을 만들어 발효·숙성하는 간장이며, 산분해간장은 단백질 원료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만드는 방식의 간장이다. ◆ 발효로 완성되는 양조간장 이 가운데 양조간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맛과 향이 형성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양조간장의 제조는 먼저 콩을 찌고 밀을 볶아 섞은 뒤, 종균을 접종해 발효균을 배양한 원료인 코지(koji)를 만들고, 여기에 소금물을 더해 발효 중인 간장 원액인 모로미(moromi)를 형성하면 발효와 숙성이 진행된다. 이때 미생물은 원료 속 단백질과 전분을 분해하며 아미노산과 향 성분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변화는 짧은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1년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이후 발효가 끝난 원료는 압착 과정을 거쳐 액체와 찌꺼기로 나뉘고, 여과와 살균 등의 단계를 지나 하나의 간장으로 완성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양조간장은 발효 과정에서 형성된 향과 맛을 지닌다. 구수한 향과 감칠맛이 어우러지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으로 꼽히며, 짠맛이 두드러지기보다 음식과 자연스럽게 섞여 조림과 볶음, 무침은 물론 국물 요리와 양념장 등 여러 음식에 폭넓게 활용된다. ◆ 전통이 만든 장맛의 원리 예부터 장을 담그는 일은 단순히 재료를 섞어 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같은 콩과 같은 소금을 사용하더라도 계절의 기온과 공기의 흐름, 숙성 환경에 따라 장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오래전 장을 담그던 집에서 “장맛은 하늘이 좌우한다”는 말을 전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지 살피고, 장독의 상태를 살펴 공기가 잘 통하도록 관리하는 일도 장을 익히는 과정의 중요한 일부로 여겨졌다. ◆ 신앙촌간장의 발효 기술 1957년 처음 생산된 신앙촌간장은 2011년부터 콩과 밀을 장기간 발효·숙성해 만든 100% 양조간장을 생산해 오고 있다. 오랜 세월 이어진 발효의 원리는 신앙촌간장의 땅속 발효실이라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땅속은 외부 기온 변화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공간이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기 쉬운 발효 환경을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미생물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준다. 제조 과정에서는 국내 최초 특허 등록된 땅속 발효실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며, 원료로는 Non-GMO 대두와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사용한다. 또한 발효실에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환경을 운영하고 있으며, 바이오제닉 아민 저감 종균 적용과 비건 인증 획득 등 제조 및 품질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발효 식품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는 바이오제닉 아민은 과도하게 생성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오제닉 아민 저감 종균 적용은 이를 줄이기 위한 품질 관리 기술이다. 신앙촌간장은 바이오제닉 아민 생성을 억제하는 종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특허를 받은 바가 있다.

지구 5,000년 주기로 기후 변화

지구 5,000년 주기로 기후 변화

백악기 퇴적물 분석 결과 습윤·건조 환경 반복적 교차 최근 과학자들이 고대 지구 기후의 새로운 변동 리듬을 찾아냈다. 연구에 따르면 지구는 약 5천 년 간격으로 기후가 변동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지질과학대학(베이징)의 왕청산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약 8,300만 년 전 백악기 후기의 퇴적물을 바탕으로, 지구화학적 데이터와 광물 조성, 생물교란 시뮬레이션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당시 기후가 약 4천~5천 년 주기로 습윤한 환경과 건조한 환경을 반복적으로 오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가 주로 거대한 빙상의 형성과 붕괴 등 이른바 ‘빙상 활동’에 의해 발생한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빙하가 거의 없던 시기에도 이와 비슷한 규모의 급격한 기후 변동이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지구 자전축의 느린 흔들림, 즉 ‘세차 운동’을 지목했다. 세차 운동은 약 2만~2만 6천 년 주기로 일어나지만, 이 변화가 한 번에 나타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나뉘어 나타나면서 실제 기후는 약 5천 년 간격으로 변동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구는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해지더라도 자전축의 흔들림이라는 천문학적인 힘으로 언제든 급격한 기후 변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인류가 마주할 미래 온난화 시대의 기후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하고 역동적으로 요동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카지노 쇼룸에서 가톨릭 미사

카지노 쇼룸에서 가톨릭 미사

카지노 한복판 미사, 30년간 이어져 슬롯머신 소리와 기도 소리 공존 많은 사람들이 카지노에서 밤을 새운 후 교회에 가지만, 라플린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카지노에 간다. 성 요한 세례자 가톨릭교회는 리버사이드 카지노 쇼룸에서 일요일 미사를 집전하며, 슬롯머신 소리와 잭팟 알림음이 찬송가와 기도 소리와 섞인다. 리버사이드 카지노에서 사목 활동을 해온 찰리 어닉 신부는 “카지노 직원들이 그냥 걸어서 여기로 와서 교회에 올 수 있어요. 어쩌면 운이 좋아지길 기도하러 올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다. 어닉 신부는 1991년 라플린을 처음 방문했으며, 이 지역에 가톨릭 교회가 생기기 전에 리버사이드 카지노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그는 리버사이드에서 30년 동안 이 관계를 유지했으며 매우 소중히 여겨왔다고 밝혔다. 예배에는 신도 500명 이상이 참석하기도 한다. 어닉 신부는 쇼룸이 일반 신도와 방문객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고 말하며, “오랫동안 교회에 가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곳이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방문객들이 ‘내가 카지노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겁니다. 몇 년 전 우리 교구 신자 한 분이 방문객에게 ‘문을 닫는 순간, 당신은 교회에 들어온 겁니다’라고 말했죠”라고 했다. 미국 언론 KVVU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방문객들이 교회에 오는 것이 좋은 경험이었고, 교회에 갔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방문객들이 이러한 경험이 기억에 남아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초기 인류, 오래전부터 기록과 표현을 남겼다

초기 인류, 오래전부터 기록과 표현을 남겼다

사냥과 물품 수량, 의식 관련 기록 추정…초기 인류의 집단생활 흔적 가능성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에서 발견된 손 스텐실 벽화, 약 6만 7,800년 전 제작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약 5천 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 4만 년 전에도 인류가 기호를 이용해 정보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독일 자를란트 대학교의 언어학자 크리스티안 벤츠 교수와 베를린 선사시대 및 초기 역사 박물관의 고고학자 에바 두트키에비치 연구팀은 구석기 시대 유물 260점에 새겨진 3,000개 이상의 기호를 컴퓨터 분석으로 조사했다. 빙하기 시대 사람들은 도구나 상아로 만든 작은 조각상에 점과 선, 십자 모양의 기호를 반복해 새겼다. 분석 결과, 이 표식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가진 배열로 확인됐다. 특히 정보량, 즉 정보 밀도가 기원전 3,000년경 등장한 원시 쐐기문자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 기호들은 주로 독일 남서부 슈바벤 쥐라 지역의 동굴에서 발견됐다. 약 3만 8천 년 전 제작된 ‘경배자’ 상아 명판에는 사람 형상과 함께 점과 홈이 줄지어 새겨져 있으며, 포겔헤르트 동굴의 매머드 상아 조각과 ‘사자 인간’ 조각상에서도 일정한 간격의 표식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의도적인 기호 체계로 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초기 문자 체계에 가까운 구조를 지닌 이 기호들은 같은 모양이 반복되지만, 말소리를 직접 나타내는 문자는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기록된 내용은 사냥이나 물품 수, 의식과 관련된 정보 등 집단생활에 필요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인근 무나섬의 석회암 동굴에서는 약 6만 7,800년 전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가 발견됐다. 손을 벽에 대고 색을 뿌려 윤곽을 남긴 손 스텐실 형태로, 과학자들은 ‘우라늄 계열 연대 측정법’을 이용해 제작 시기를 확인했다. 이전에 알려진 동굴 벽화보다 최소 1만 5천 년 이상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다. 동굴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의 그림들도 발견돼, 사람들이 오랜 기간 같은 장소를 찾아 그림을 남겼음을 보여 준다. 특히 이번 손 그림은 손가락 끝이 갈고리나 발톱처럼 표현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을 반영했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번 발견은 초기 인류가 그림과 기호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정보를 기록한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술라웨시 동굴 벽화는 인류가 6만 5천 년 이전 이미 이 지역에 존재했음을 시사하며, 북쪽 경로를 통해 뉴기니로 확산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수만 년 전 남긴 손 그림과 기호는 인류가 기록과 표현 문화를 오랜 시간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흔적이다.

일하는 자에게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

[진리를 묻다]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다

사제 아동 성학대, 가톨릭교회 책임 판결

투암 모자 보호소 사건 재조명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지난호에 이어) 저는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제단 근처에 사시는 문삼섭 권사님 댁에 머물며 살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의 어린 딸을 등에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구역장 직분을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사신앙촌 1차 건설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문 권사님께서는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집회에서 큰 은혜를 체험한 저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라 꼭 가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소사신앙촌에 도착해 보니, 노구산에 오만제단이 세워지기 전 예배를 드리던 구제단은 이미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주택 A·B동은 일부만 완성된 채 한창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순천, 구례, 광양에서 올라온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일했는데, 그 시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안찰을 해 주시면 그 자리에 함께한 저희 모두에게서 향취가 진동했고, 안찰을 받고 돌아설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을 마시자 향취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가고 기쁨 넘쳐 어느 날은 팀별로 벽돌 찍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단합이 잘 되는 서울과 인천팀은 앞서 나갔지만, 저희 광주팀 12명은 자꾸 뒤처져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축복해 주시겠다 하시며 저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물을 뜰 만한 곳이 없어 저는 건설대를 지휘하시던 장세호 집사님의 오두막까지 급히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그릇이 눈에 띄지 않아, 다급한 마음에 넓적하고 얕은 옴박지에 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데, 혹시나 하나님께서 가버리실까 봐 마음이 몹시 조급했습니다. 한시바삐 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뛰어오다 보니 물은 자꾸 쏟아지고 옷은 어느새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겨우 남은 물을 들고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다가 물도 쏟고 옷도 다 젖었구나” 하시며 몇 걸음 다가와 맞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을 향해 축복해 주시자 진한 향취가 맡아졌고, 한 모금 마실 때는 향취가 덩어리째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저희 팀원 모두가 그 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며 기뻐하던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건설대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체구가 작은 제가 지게를 지고 일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셨는지, 앞으로는 지게를 지는 일 대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든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아쉬웠지만 이후 수예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 틈틈이 현장 일을 거들며 신앙촌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는 곳을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안찰이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늦게라도 찾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던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얼마 후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받은 은혜를 가슴에 간직한 채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울로 나왔습니다. 마포 이만제단과 을구 지관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지만, 1967년 결혼과 함께 정읍으로 내려가면서 한동안 제단과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동생의 권유로 성남 제단에 나가면서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원으로 안찰을 받으러 갈 때면, 하나님께서는 늘 “죄짓지 마”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면 주변에서 제 목소리와 행동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할 만큼 제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정성을 다하게 되고, 제가 받은 은혜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노량진교회에 오시는 날이면, 저는 성남의 초등학교 교사 20명과 함께 택시 5대에 나눠 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예배실 2층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때 단에서 “이슬성신이 내리니 여기 온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아이들도 교회에 데려오면 은혜를 받으니 모두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제 마음에는 마치 출발 신호를 받은 운동선수처럼 힘껏 달려야겠다는 다짐이 일었습니다. 당시 기성교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저는 제가 직접 은혜를 받고 겪은 일들이 분명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해 주시면 그 물이 썩지 않는 생명물이 되고, 그 물로 고인의 몸을 닦아 드리면 입술이 붉어지고 얼굴이 환하게 피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부(弟夫)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오신 분들이 고인을 생명물로 정성껏 닦아 드리자, 가족들이 모두 놀랄 만큼 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환한 모습으로 피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에서 19년 동안 소비조합 활동을 하던 중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물건을 팔고 청량리에서 막차를 탔다가 깜빡 잠이 들어 덕소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놀라 급히 내렸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산속이었습니다. 적막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 순간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안의 신사분이 저를 보고 “귀신이요, 사람이요?” 하고 외쳤습니다. 제가 사람이라고 소리쳤지만 차는 곧 달아나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풀밭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리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다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아까 그 차였습니다.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로 나가 차를 막아섰습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는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며 태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를 차에 태워 주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덕소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그분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오늘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그날 새 차를 뽑아 가족과 피서를 왔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 나타나 “지금 당장 양수리 쪽으로 가라”고 재촉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놀란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깜깜한 길에서 겁이 나 돌아갔는데, 차 안에 앉아 있자 같은 분이 또 나타나 “누군가를 만나거든 차에 태워 덕소 정문에 내려주고 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오십부장님께 밤사이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전해 들은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갔어. 내가 거기 찾아갔어. 들판에서 짐을 잔뜩 짊어지고 떨고 있길래 사람을 보냈어. 그런데 안 가길래 두 번이나 가서 보냈어.” 그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칠흑 같은 들판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제 곁에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앙촌 이불 네 채를 버스에 싣고 노량진에서 성남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오던 중,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늘 곁에 있으니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따라와’ 하며 다독여 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진한 향취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소비조합 활동을 하는 동안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일요일이면 신앙촌 고객분들을 덕소교회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그 가운데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분들도 생겼는데, 현재 덕소교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성순 집사님도 그때 인연이 닿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되어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모든 일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그 벅찬 기쁨 속에 ‘하나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찬송이 절로 입가에 맴돌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축복일에 참석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신앙촌을 찾게 되었는데, 후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취에 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저 왔습니다” 하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저를 기다려 주신 것만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19살 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밀려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할 때 귀 기울여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켜주시고 낙원 가신 뒤에도 향취 은혜 주시며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려 하늘 세계를 소망 삼아 살아갈 힘을 주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소망은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에 모시고, 허락해 주신 건강을 잘 지켜 끝까지 소비조합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남은 생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구원의 손길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은혜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꿈에서 뵌 분을 광주공원 집회에서 만나 안수 받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은혜를 체험해 지산 전도관에서 집회 30분 전 향취 맡고 앉아 있는지 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 은혜 체험 거듭되며 마음속에 분명한 확신 자리 잡아 저는 1937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맞물린 격변의 시대라 나라 안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 고흥의 한 섬에 미리 거처와 식량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저희 가족은 그 섬으로 피란을 떠났고, 아버지의 준비 덕분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란살이가 길어지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어린 마음으로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배울 기회를 찾아 시내로 나가야겠다는 뜻을 아버지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고심 끝에 아버지는 제 뜻을 받아들여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시내로 나왔지만 형편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는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저는 열아홉 살 되던 해, 홀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양장 기술을 배우면 스스로 가게를 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촌 오빠 집에 머물며 양재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공부하며 제 힘으로 앞날을 열어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시내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 오십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전단에는 며칠 뒤 광주공원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은 없었지만, 평소 교회 옆을 지날 때마다 들리던 찬송가 소리에 마음이 끌려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광주 지리에 밝은 사촌 오빠에게 집회 장소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뒤 집회 날이 되어 오빠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집회 장소에 다다르자, 이미 아래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넓게 세워진 천막을 보며 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강대상 근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자리에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제 옆에 앉아 있던 다리가 불편한 분은 박 장로님이 오시면 이쪽이 잘 보인다며 제게 자리를 조금 내주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속죄함’ 가사가 담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찬송이 잦아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니,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체 어떤 분이 오시기에 저토록 마음을 다해 기도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잠시 후 머리 위로 “마음 문 여세요” 하시는 쟁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본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단상 위에 서 계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무척 환해 보였고, 그 주변으로 밝은 빛이 감돌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옳다, 찾았다!” 하는 소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1~2년 전 꿈속에서 똑같은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꿈에서 그분은 환한 빛에 둘러싸인 채 저희 집을 한참 바라보시고 떠나셨는데, 그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아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뵙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을 이곳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놀라움에 한동안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에 집중했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로 한참 동안 찬송이 이어졌고, 저도 어느새 찬송을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예배 중 박 장로님께서 쉭쉭 축복하시며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곁에 있던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벙어리 아가씨가 앞으로 나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예배를 마친 박 장로님께서 단상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하며 지나가시던 장로님께서는 제게 세 번이나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 손길이 닿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기함과 경건함에 사로잡혀 그 순간 장로님의 얼굴은 감히 제대로 뵐 수 없었지만,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니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단상 위에서 뵙던 환한 모습과는 달리,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날, 집회가 끝났지만 돌아서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저는 하루 더 그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철야 기도에도 참여했습니다. 다음 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저는 지프차를 타고 떠나시는 박 장로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지프차를 바라보며 이분을 다시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곁에 계시던 다른 장로님께 여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서울에 계신다는 대답을 듣자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따라가 뵙고 싶은 간절함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아쉬운 마음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한동안 양재 학원에서 디자인 공부를 이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그날의 기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큰오빠가 전단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집 근처 지산동에 전도관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뵙기를 간절히 바랐던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집회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느껴질 만큼 제 마음은 온통 집회를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큰오빠에게 지난번 집회에서 뵌 분이 보통 분이 아니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땅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말씀처럼 느껴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빠들에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꼭 알려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지산동 집회로 향했습니다. 오후 6시부터 맨 앞자리 단상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지난번 집회에서 뵀던 그분을 다시 뵈러 왔으니, 결코 헛된 걸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간절한 마음 하나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이 오시기 약 30분 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창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향이었습니다. 혹시 누가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나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몸이 시원해지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오르시더니 지난번처럼 “마음 문을 여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은혜는 마음 문을 연 사람에게는 폭포수같이 임하지만, 마음 문을 닫은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다시 한번 마음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이어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부족한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라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 박 장로님께서는 “내가 여기 오기 30분 전에 은혜를 부어주었는데, 그때 향취를 맡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저요!” 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바라보시며 일어나 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30분 전쯤 몸이 아주 시원해지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다시 한번 30분 전에 향취를 맡은 사람이 또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차례로 단상으로 올라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체험담을 들으며 저는 제가 받은 은혜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수요일마다 지산동에서의 집회는 계속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날이면 안수를 해주시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과 향취가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체험들이 쌓여가면서 제 마음에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훗날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을 때도, 제가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법의 판결로 증명된 진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기성교단의 조직적 음해와 언론 왜곡 이슬성신 사진, 코닥사 감정으로 진실 확인 1999년 MBC 왜곡 방송 법원, “허위사실, 명예훼손” 판결 2000년대 이후 온라인 허위 유포, 잇단 승소 신앙촌 방문자들의 정반대 평가 법의 심판으로 드러난 진실 왜곡은 결코 진실을 가릴 수 없어 끊이지 않은 왜곡과 핍박 1990년대는 천부교 역사에서 새로운 도약의 시기였다. 전국 곳곳에 성전이 새로 세워지고, 생명물두부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경제적 기반이 한층 강화됐다. 시온오케스트라 창단과 천부교 소비조합 체육대회 개최 등 문화 활동도 활발히 이어졌다. 그러나 성장의 발걸음 뒤에는 언제나 거센 왜곡과 핍박이 뒤따랐다. 사실 천부교를 향한 음해는 초창기부터 시작되었다. 1955년 이 땅에서 하나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기성교회는 끊임없는 허위 날조와 비방을 퍼뜨리며 많은 고통을 안겼다. 1950년대 하나님 집회에서 2,000여 명의 목사들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를 증거했다. 그러나 천부교의 급격한 확산을 경계한 기성교단은 곧 이단으로 규정하며 은혜받은 사람들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이후 언론과 결탁한 조직적 모함이 이어졌고, 온갖 더러운 죄목이 조작되어 하나님께 덮어씌워졌다. 그들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언론에 퍼뜨림으로써 사회 전반에 천부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으려 했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주장들을 사실 확인도 없이 그대로 보도해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렸다. 대표적 사례가 1957년 이만제단에서 촬영된 이슬성신 사진에 대한 조작 의혹이었다. 동아일보는 이슬성신이 내리는 장면을 조작이라고 대서특필했으며, 하나님께서 정치적 탄압을 받으셨을 때도 같은 주장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허가해 직접 촬영해 보면 진위가 드러날 것”이라며 공개 검증을 제안하셨지만, 기성교회의 압력 속에 집회 허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 신앙촌 하늘에 내린 이슬성신 사진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듬해 이슬성신 사진을 공식 감정한 미국 코닥사는 “이 현상은 사실이며, 사진에 조작 흔적이 없고,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고 있다고 보입니다”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왜곡과 비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이처럼 1950년대부터 이어진 왜곡과 음해는 1990년대에도 멈추지 않았다. 1999년 MBC 사건, 천부교 명예훼손 그러던 중 1999년, 천부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 MBC가 새천년을 앞두고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한 종교들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는 천부교를 억지로 포함시킨 것이다. 백백교, 용화교, 동방교, 휴거론자 등 실제 종말론적 성향을 보인 종교 집단과 나란히 배열하면서, 천부교가 마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집단인 것처럼 왜곡했다. 방송 제작 과정에서 당사자인 교단 측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된 채, ‘신흥종교연구소’의 탁명환과 일부 배교자들의 거짓 진술만이 근거로 사용되었다. 천부교는 방송 전 사실 확인과 방영 보류를 요청했으나, MBC는 이를 묵살하고 1999년 6월 3일 ‘2000년은 없다-혹세무민 종말론’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강행했다. 이에 천부교는 이번 사건이 교단 전체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만큼,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역사적 승소 판결, 법정에서 확인된 허위 주장 2000년 10월 27일, 법원은 천부교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문은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천부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했음을 명확히 인정했다. 이 판결은 천부교 역사상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한 첫 승소 사례이자, 오랜 왜곡이 허위였음을 사법부가 공식 확인한 역사적 기록으로 남았다. 법원은 방송 내용 중 다수가 허위임을 밝혔다. 신앙촌 근로자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보도, 생명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판매했다고 한 주장, 신앙촌 입주 신도들의 주택 구입을 재산 헌납으로 왜곡한 내용, 전도관 창시 이전에 생긴 동방교가 전도관을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거나, 격암유록을 하나님의 근거로 삼았다는 내용 역시 진실성이 없다고 했다. MBC는 방송에서 ‘천부교’라는 명칭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름이나 명칭이 직접 언급되지 않더라도 방송 전반의 맥락과 ‘신앙촌’, ‘전도관’ 등의 명칭을 종합하면, 시청자 대다수가 천부교를 지칭한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는 천부교 및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특정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살인·간음 사건 등으로 물의를 빚은 다른 종교와 천부교를 동일 선상에 놓아 방영한 MBC의 보도는, 시청자들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방송 그대로 천부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MBC는 사회 혼란 속 종말론적 종교를 경고하는 공익 목적이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아무리 의도가 공익적이라 하더라도 허위사실이라면 위법성을 면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전국적 파급력이 큰 종교 보도의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방영 전 철저한 사실 확인이 필수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법원은 MBC가 허위사실에 근거한 보도로 천부교와 신도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고, 정신적 손해배상 2,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속된 법적 대응과 연이은 승소 MBC 사건 이후에도 악의적인 허위 게시물과 유포는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천부교는 적극적인 법적 대응을 통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나갔다. 2013년에는 한 인터넷 블로거가 천부교를 비방하는 20여 건의 글을 게시하며 입에 담기 어려운 허위사실을 적시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재판 내내 범죄사실을 부인하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1999년 MBC 보도 사건 판결을 인용하며 해당 글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임을 명확히 했다. 결국 블로거는 명예훼손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신앙촌 재개발 과정에 불법 매각과 폭력배 동원, 강제 철거가 있었다는 거짓 글을 퍼뜨리거나, 천부교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종교와 연관 짓는 허위 내용을 유포한 이들 역시 벌금형을 받았다. 일부 작성자는 이러한 행동이 종교적 편향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교단에 사과문을 전달했다. 2020년에는 한 가톨릭 신부가 천부교를 비방하는 영상을 제작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신천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시기, 황 신부는 ‘신천지 낱낱이 파헤치기’라는 영상에서 천부교를 근거 없이 비난하며, 신천지의 교리와 행태가 대부분 천부교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영상에는 노동력 착취, 성적 유린, 발 씻은 물 판매 등 상식 이하의 내용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영상 속 주장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판시하고, 판결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모든 영상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향후 같은 주장을 담은 강연·설교·영상·서적 발간 시마다 각 1,000만 원을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에 지급하도록 조건을 부과했다. 이와 더불어, 2021년 1월 13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와 묘지 관리인,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허 목사 등 피고 전원에게 배상을 명령했다. 이들은 2014년 천부교 추모공원에 암매장이 있다는 허위 주장을 퍼뜨리며 세 차례 무단 침입해 분묘를 파헤치고, MBC에 거짓 제보와 인터뷰를 제공해 방송까지 내보냈다. 그 과정에서 묘지 관리인에게 상해를 입히고, 유족들에게 깊은 정신적 피해를 주었으며, 천부교의 사회적 평가를 크게 훼손했다. 이에 법원은 피고들이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에 3,000만 원, 묘지 관리인 2명에게 각 150만 원과 250만 원, 유족 6명에게 각 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는 허 목사 외에도 기독교국제뉴스 최 대표, 경찰일보 현 기자, 총신대 서 교수, 그리고 MBC <추적사건25시> 류 기자 등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허위 주장은 2016년 11월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서도 방영되어, 2018년 1월 법원에서 명예훼손 판결을 받았다. MBC는 천부교와 신도연합회에게 각 1억 2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정정보도 조건의 조정이 성립되어 사실을 바로잡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편견을 깨뜨린 사람들의 평가 언론의 부정적 보도와 달리, 신앙촌을 직접 와 본 사람들의 평가는 전혀 달랐다. 1960년대 덕소신앙촌을 방문한 국내 최초 여성 기자인 최은희 씨는 “듣던 말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규모와 아름다운 신도들의 근로정신에 놀랐습니다.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에는 신앙촌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으면 합니다. 신앙촌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의 보배입니다”라고 감탄했다. 또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도 신앙촌을 방문한 뒤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망을 보았습니다. 우리 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촌을 건설한 것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온 세계를 다 돌아보았지만, 신앙촌 같은 곳은 없었습니다. 국민 전체가 감사할 일입니다”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99년 6월, MBC 방송에 패널로 출연했던 서울대 종교학과 정진홍 교수는 “6·25 직후 구호물자 나눠 먹기 싸움에 바빴던 기성교회는 신앙촌을 비방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직언했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학자적 양심에 따랐을 뿐”이라며, 직접 신앙촌을 방문해 본 경험을 근거로 폐허 속에서 건설된 창조성과 순수성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의 증언도 다르지 않다. 신앙촌을 방문했던 한 참석자는 “신앙촌에 와보니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신앙촌 사람들에게서 평화로운 마음을 느끼게 되었고,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나님의 세계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신앙촌을 안 좋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접 와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편견을 깨뜨려야 하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왜곡을 넘어선 법의 심판 시대와 매체는 바뀌었더라도 허위와 왜곡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법정에서 결론 난 사실조차 되풀이되어 유포되고, 그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며 확대 재생산하는 행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법의 심판으로 사람들은 점차 그 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 속에 어떤 진실이 가려져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1999년 MBC 사건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법적 승소는 수십 년간 퍼져온 왜곡과 비방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는 동시에 진실은 결코 왜곡으로 가려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숱한 왜곡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걸어온 천부교 역사가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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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세계적 모범임을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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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55>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거짓이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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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 미국 코미디언 테일러 톰린슨, 넷플릭스 ‘탕녀(Prodigal Daughter)’에서 성모 마리아 소재로 코믹 풍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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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허상이 실체를 집어삼키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4. 권능의 집회마다 기성교회의 방해 공작 치열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안 짜고 깔끔한 맛” 손님이 먼저 알아

“안 짜고 깔끔한 맛” 손님이 먼저 알아

모든 요리에 신앙촌 ‘염도 낮춘 양조간장 골드’ 사용 오랫동안 다시 찾게 되는 음식의 깊은 맛 지향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장운산 꽃게’는 꽃게 요리가 맛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운영하는 오미연 사장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간장을 신앙촌의 ‘염도 낮춘 양조간장 골드’로 통일해 쓰고 있다. 간장게장은 물론 양념게장, 꽃게찜 등의 요리와 각종 반찬과 소스까지 간장이 들어가는 음식에는 모두 신앙촌간장이 쓰인다. 오 사장이 처음부터 신앙촌간장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앙촌간장을 몰랐어요. 다른 브랜드 간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는 소비조합사장님이 식당에 찾아와 샘플을 권유한 것을 계기로 직접 써 보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말통으로 구매해서 계속 쓰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간장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간장 하나만 달라져도 음식 전체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간장게장처럼 간장 맛이 중심이 되는 메뉴는 맛의 변화가 더 크게 드러난다. “신앙촌간장으로 요리를 해보니까 달라요. 안 짜고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요. 다른 간장은 진하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맑은 느낌이 있어요. 맛이 진한데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신앙촌에서 간장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변화는 손님 반응에서 먼저 나타났다. 장운산 꽃게의 대표 메뉴인 간장게장을 먹은 손님들은 “짜지 않은데 맛이 진하다”, “깔끔하고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장운산 꽃게에는 오랫동안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다. 그 손님들은 한 번 먹고 지나가는 이들이 아니라,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는 사람들이다. “잠시 하다 말 거면 대충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어갈 일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죠. 좋은 재료로 손님들한테 대접하면 손님이 잊지 않고 또 찾아 주세요.” 개인 손님뿐 아니라 단체 손님들의 발길도 꾸준하다. 주변의 오래된 회사들이 회식 자리를 위해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번 맛본 뒤 다시 여럿이 함께 와서 간장게장과 꽃게탕을 곁들여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오 사장은 “손님들 가운데는 식사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부모님께 드린다며 따로 포장해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집에 아픈 가족이 있다며 챙겨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더 정성을 들이게 돼요”라고 말했다. 이어 “간장게장을 드시고 남은 소스를 따로 포장해 달라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걸 집에 가져가서 생선 조릴 때 쓰기도 하고, 깻잎 졸여 먹을 때도 사용하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간장게장에 쓰인 소스가 별도로 활용할 만큼 맛을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손님 반응이 좋다 보니 한때는 간장 소스를 따로 만들어 판매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오 사장은 “간장 소스만 따로 팔아보자고 제안받은 적도 있어요. 신앙촌간장을 사용한 저만의 레시피로 판매 제안을 받았었죠”라고 말했다. 지금의 식당에 전념하고 싶어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소스 자체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 사장은 “모든 간장은 신앙촌간장을 쓰고 있어요. 양념을 섞어도 간장 자체가 맛이 있으니까, 음식이 짜지 않고 더 깔끔해졌어요.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짜지 않게 먹으니까, 손님들이 더 좋아하세요”라고 말했다. 간장을 바꾼 뒤에는 두부도 함께 신앙촌두부로 바꿨다. “간장을 바꾸면서 두부도 신앙촌두부로 바꿨어요. 부드럽고 고소해서 찌개에 사용하면 맛이 좋아요.” 오 사장이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좋은 걸로 해야 오래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깐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죠. 양심적으로도 좋지 않은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이어 “저는 양념을 아끼지 않는 편이에요. 고춧가루나 참기름도 좋은 걸 써야 맛이 나더라고요”라고 했다. 꽃게 역시 좋은 것을 쓰고, 과일도 아끼지 않고 갈아서 양념에 넣는다. “싼 걸 쓰면 싼 것만큼의 맛이 나고, 비싼 걸 쓰면 비싼 것만큼의 맛이 나요.” 결국 신앙촌간장을 쓰는 이유도 좋은 재료를 써야 음식의 수준이 유지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앙촌식품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상태로도 좋아요. 두부도 좋고 간장도 좋고요”라고 말했다. 오 사장은 마지막으로 “큰 계획을 세워 놓고 조급해하기보다, 지금처럼 좋은 재료로 손님상을 정성껏 차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 거예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다시는 죄 짓지 마” 하신 말씀 마음에 새겨

“다시는 죄 짓지 마” 하신 말씀 마음에 새겨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 만나 은혜 간직하며 성결한 삶 다짐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제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 은혜는 저의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몸이 몹시 편찮으셨습니다. 병원 문턱조차 넘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굿을 해보기도 하고 좋다는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의 권유로 수원에 있는 교회를 나가게 되셨고, 얼마 후 하나님의 부흥집회 소식을 접한 뒤 교인들과 함께 서울운동장 집회에 다녀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회 이후 어머니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어머니께서는 동네 교인의 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셨고, 저도 어머니를 따라 나가면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1962년 수원전도관에 정식으로 입교했습니다. 소사신앙촌 오만제단 집회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다가 처음으로 안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배를 살살 쓰다듬으시는 것 같았는데도 어찌나 아프던지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안찰을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다시는 죄 짓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죄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고, 제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집회 때는 안찰받는 곳 밖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 너머로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습니다. 불성신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목도하며, 저는 하나님이심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시내버스 차장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원효로에서 효자동으로 가는 노선이었는데, 일요일이면 이만제단으로 향하는 교인들로 버스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정거장마다 전도관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구나’ 하고 실감했습니다. 고된 직장 생활 속에서도 같은 길을 향해 가는 분들의 밝은 표정은 제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안찰과 안수를 받았던 기억도 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안찰은 처음보다 아픔이 덜했지만, 안수를 받을 때는 머리를 살짝 짚으셨을 뿐인데도 마치 벌에 쏘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주시지만, 은혜를 간직하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은 결국 저의 몫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죄를 씻어주시며 “다시는 죄 짓지 마”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전도의 사명, 기쁘게 전하겠습니다

전도의 사명, 기쁘게 전하겠습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는 3월이 찾아왔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3월은 어느 때보다 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할 전도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전도의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건네자,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아버지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저를 집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버님께 정중히 말씀드려 승낙을 받았고, 놀이터에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 교회로 와 정말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그때 전도된 아이는 지금까지도 언니 동생으로 지내며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올 때마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지만,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전도를 하려면 그 아이를 생각하며 70번 이상 만나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실제로 한 아이를 마음에 두고 70번 넘게 만난 끝에, 그 아이가 교회에 나오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절대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이였기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셨다는 확신이 들며 감사했습니다. 전도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난 한 해 맡은 직분을 열심히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2026년에는 허락하신 직분에 감사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올해 슬로건인 “은혜로 하나 되어 구원의 말씀 기쁘게 전하겠습니다”라는 다짐처럼 아이들과 하나 되어 구원의 말씀을 기쁘게 전하고 싶습니다. 전도의 사명을 잊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임원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전도

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함께 나누는 전도

안녕하세요. 서울 가좌교회에 다니고 있는 구담희입니다. 저는 올해 전국 유년부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 귀한 직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보람되고 은혜 받는 일이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를 하면 참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와 전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것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전도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외할머니를 전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가오는 전도의 날 할머니를 초대해 함께 교회에 가자고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혹시 할머니께서 전도의 날에 오시지 못하더라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이슬성신절에 다시 초대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천부교회에 초대하고 싶었던 사람이나 아직 천부교회에 다니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전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이슬성신 은혜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며, 언제나 죄 안 짓는 맑은 생활을 하는 천부교 여학생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 귀한 직분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니어

재잘재잘 우리들의 뮤직캠프

재잘재잘 우리들의 뮤직캠프

#작은 습관도 다시 보기 신앙 강좌에서 ‘죄짓지 않는 여학생’이라는 주제를 들었어요. 평소 생활하면서 양심에 찔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강의를 들으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습관적인 행동들도 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캠프를 통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어 좋았고, 하나님 말씀처럼 죄를 짓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면목교회 신수연(중3) #두 번째 합창, 더 즐겁게 중1 때에 이어 두 번째로 합창에 참여했어요. 예전 합창은 친구들의 권유로 하게 됐지만, 이번에는 은혜받고 싶어서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연습도 더 즐겁게 하고 있어요. ‘들장미’를 부를 때 특히 신나고 좋아요. 앞으로 합창도 잘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면서 은혜도 받고 싶어요. -진주교회 정지혜(중2) #짠맛과 고소함 런, 두부, 간장 공장 견학을 했는데 저는 간장 공장이 제일 인상 깊었어요. 신앙촌 간장과 다른 간장을 맛보고 신앙촌 간장이 어떤 것인지 맞히는 게임도 했고, 공장 안에 신기한 것들도 많았어요. 원래는 콩이 고소하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짠맛과 고소함이 둘 다 느껴져서 신기했어요. -천호교회 손아린(초4) #구경하고 마시니 꿀맛 런이 만들어지는 걸 구경하는 것과 런을 마시는 게 제일 즐거웠어요. 평소에는 런을 잘 안 마셨는데,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나서 먹으니까 맛있었어요. 오늘은 벌써 다 마셨는데 또 먹고 싶어요. -수원교회 소윤슬(초1) #함께 걸어가는 신앙촌 신앙촌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신앙촌에서 지내면서 합창단과 뮤지컬도 해보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습니다. -광안교회 석상아(중1) #함께 만들어 더 보람 있었어요 ‘흑백요리사’에 참여하면서 팀원들과 협동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함께하다 보니 원래 없던 요리 실력도 키우게 되어 정말 즐겁고 보람찬 시간이었어요. -인천교회 김지안(초5) #만드는 걸 보니 더 맛있어요 세 곳의 식품 공장을 가봤는데, 런 공장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요구르트가 담기고 포장되는 걸 직접 봐서 정말 신기했어요. 평소에도 런을 많이 먹는데, 오늘은 직접 보고 나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어요. -전농교회 신서경(초5)

[과학관 탐방] 약은 우리 몸에서 어디로 갈까?

[과학관 탐방] 약은 우리 몸에서 어디로 갈까?

떼굴떼굴 ‘다른 그림찾기’ 정답 발표

떼굴떼굴 ‘다른 그림찾기’ 정답 발표

내 마음에도 깨진 유리창이 있을까?

내 마음에도 깨진 유리창이 있을까?

손정숙 권사님 편(3)

손정숙 권사님 편(3)

교양

플라스틱 식품 용기의 올바른 사용법

플라스틱 식품 용기의 올바른 사용법

플라스틱으로 만든 식품 용기는 가볍고 쉽게 깨지지 않아 두루 쓰인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편리해도 건강을 위협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일회용 배달 용기에서는 무조건 환경호르몬이나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해이다. 잘못된 플라스틱 용기 사용법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가 나왔다. ▲ 일회용 배달 용기 과도한 불안 금물, 1회 사용 문제없어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배달 용기는 그 자체로 해로운 환경 물질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 용기는 대부분 소재가 PP라서 해로운 환경 물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일회용 용기가 아깝다고 여러 번 재사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오래 쓰다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조직이 약해지고 틈이 생기고 거기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여러 번 씻고 다시 사용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틈 사이로 주방세제가 들어가면, 잔류 세제를 섭취할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버리기가 아깝다면 음식을 담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 배달 용기와 반찬통은 대체로 PP, PE 소재. 사용만 잘하면 안전 전문가들은 “배달 용기와 반찬통에는 PP, PE 소재 플라스틱이 사용된다”고 언급했다. 이런 소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PP는 폴리프로필렌으로 가볍고 열에도 잘 견디는 소재다. 음식 보관에 적합하며 재사용도 가능하다. HDPE는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100℃ 열까지 견딜 수 있다.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 사용도 가능하다. 아이들 젖병이나 장난감, 세제류 용기에 주로 사용된다. LDPE는 비닐봉지나 비닐장갑 등을 만드는 소재로,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 소재보다 더 중요한 사용법, 한눈에 봐도 낡았다면 당장 버려야 흠집이 많거나 제품이 누렇게 변색됐다면 당장 버려야 한다. 제품에 변형이 없더라도 너무 여러 번 재사용하면 코팅이 벗겨져 미세플라스틱이 나올 수 있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도 플라스틱과 반응할 수 있어 일회용 용기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 것을 권고한다. 또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는 용기 바닥의 재질 표시와 사용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결국 플라스틱 용기의 안전성은 소재 자체보다도, 소비자가 용도와 상태를 살펴 올바르게 사용하는 습관에 달려 있다.

태양계의 구조와 형성, 외곽의 풍경

지구온난화, 북극의 땅과 바다가 동시에 요동친다

철저한 계획이 성취를 만든다

‘제2의 심장’ 종아리 근육

‘제2의 심장’ 종아리 근육

종아리 근육만 따로 단련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여성의 경우, 날씬해 보이기 위해 종아리 근육을 싫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아리는 ‘제2의 심장’으로, 중년의 건강수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다. 특히, 종아리는 심장에서 발로 내려온 혈액을 다시 심장으로 올려주는 혈액순환의 펌프 역할을 담당한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하지정맥류나 부종을 예방하는 기능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법이 있다. ➀ 종아리 강화, ‘까치발 운동’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쉬운 종아리 운동은 바로 ‘까치발(발뒤꿈치 들기) 운동’이다. 먼저 양손을 벽 혹은 의자에 의지하고 몸은 수직으로 세운 후 발뒤꿈치를 들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뒤꿈치를 들 때는 최대로 들며, 뒤꿈치 부분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뒤꿈치를 수직으로 똑바로 드는 게 중요하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는 까치발 동작을 20회 3세트 정도 하면,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➁ 하체 단련, ‘스쾃 운동’ 앉았다 일어서는 스쾃 운동은 종아리와 허벅지 등 하체 전반의 근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 뒤 허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를 뒤로 빼며 천천히 앉았다가 일어서면 된다. 처음에는 10~15회씩 1~2세트부터 시작해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늘리는 것이 좋다. 이때 무릎이 발끝보다 지나치게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통증이 있거나 무릎 관절이 약한 경우에는 무리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한 뒤 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➂ 운동 전, ‘종아리 스트레칭’ 종아리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종아리 스트레칭은 필수이다. 근육이 제대로 이완되지 않으면 통증이 발생하거나, 심한 경우엔 근육이 다칠 수도 있다. 간단한 수건 스트레칭으로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면 좋다. 발끝을 수건으로 감싸고 당겨주는 동작으로 이완을 충분히 해주는 운동이다. 한 쪽씩 15~30초 정도 유지하고, 3세트 정도 진행하면 좋다. ➃ 일상 운동, ‘계단 오르기’ 종아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손쉬운 계단 오르기가 효과적이다. 계단을 오르기는 장소와 시간에 제약 없이 종아리 포함 하체 단련에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특히 계단 오르기는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는 데 효과적이다.

알록달록 파프리카

뇌의 또 다른 기준

겨울철 대표 과일 귤, 껍질마저 버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