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에서 어버이날 기념 행사 열려

신앙촌에서 어버이날 기념 행사 열려

다양한 이벤트 등 행사 풍성 “어르신들 얼굴에 웃음꽃 활짝” 지난 5일, 천부교는 신앙촌에서 어버이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시온입사생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비한 카네이션을 신앙촌 여성회 어르신들께 직접 달아드리며 인사를 드렸다. 식전 행사로 시온식품여고 학생 중창,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 등이 있었다. 또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버이 은혜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날 주민정 씨(대1)는 감사 글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신앙촌의 든든한 일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종합식당에서는 행사 전일부터 갈비구이, 한치 숙회, 코코넛 새우튀김, 떡, 과일 등을 정성껏 준비해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식사 후,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신앙촌 분수대에서는 풍선 터트리기, 대형 주사위 던지기, 즉석카메라로 사진찍기 등 다양한 게임이 마련되었고 신앙촌 맛길에서는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기도 했다. 김신자 권사(기장신앙촌)는 “매년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럿이 모여 맛있게 식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재미있는 게임도 해보니 더 젊어지는 기분이 듭니다”라고 했다. 한편 신앙촌 남성회에서도 샘터식당에서 어버이날 기념행사를 가졌다. 청년회에서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어르신들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아껴주신 마음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또 청년회 중창, 관악단의 연주 등 음악회와 만찬회를 마련하여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기승 씨(기장신앙촌)는 “어르신들께서 식사하시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니 무척 기뻤습니다. 어르신들이 항상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런, 제주 어린이날 행사에서 인기

런, 제주 어린이날 행사에서 인기

‘해피! 아이사랑 큰 잔치’에서 어린이 건강 식품으로 큰 관심  신앙촌식품은 제97회 어린이날을 맞이해 5일, 제주월드컵경기장 광장에서 열린 “해피! 아이사랑 큰 잔치” 한마당에서 프리미엄 요구르트 런(Run) 체험 부스를 운영하여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2만 5천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서는 먹거리 마당, 어린이 합창, 왕관 만들기, 비즈 공예 등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그 가운데 어린이들의 면역력을 높여줄 요구르트 런 체험 부스가 학부모들의 눈길을 끌었다. 요구르트 런에 함유된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라프티L10은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생균으로, 체내 유익균을 증가시키고 유해균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B2와 칼슘,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균형 잡힌 영양소의 섭취를 도와주며, 친환경 재질의 페트병 용기를 사용해 환경호르몬 걱정 없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 요구르트 런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하는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까지 획득하여 더욱 신뢰할 수 있다. 제주지역 이경순 사장은 “제주지역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소개하고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특히 제주어린이집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런이 아이들을 위한 건강 간식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계기가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라고 했다.

탁구대회, 보물찾기 등 이벤트

탁구대회, 보물찾기 등 이벤트

4월 28일, 신앙촌에서 남성회 파트별 모임이 열렸다. 장년회에서는 전도시상식과 새교인 환영회가 있었다. 특별 순서로 서대문교회 성가대의 중창도 있었다. 이어 열린 건강 세미나에서는 광석 제품 사례담이 발표되었다. 온 몸에 철심이 박혀 있어 늘 고통이 심하다는 이용식 사장은 “광석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니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며 “광석의 다양한 기능을 고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했다. 청년회에서는 청년들의 친목을 돈독히 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신앙생활에 충실을 기하자는 취지로 탁구대회를 개최했다. 토너먼트로 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기쁨과 아쉬움의 모습이 교차했다. 이날 경기에서 류태선 집사(서대문교회)와 이동훈 집사(기장신앙촌) 팀이 1등을 차지했다. 김영수 집사(일광교회)는 “신앙생활도 탁구 복식 경기처럼 서로 타인을 배려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화합하는 협동정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유년회에서는 ‘신앙촌 보물찾기’ 이벤트를 개최했다. 녹음이 펼쳐진 신앙촌 군락지에서 어린이들은 통닭, 새우튀김 등이 쓰인 보물 쪽지를 찾으러 뛰어다녔다. 행사 후 새단장한 맛길에서 음식으로 교환한 보물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온 가족 건강 음료로 제격”

“온 가족 건강 음료로 제격”

신앙촌식품(주)이 5월 9일에서부터 12일까지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인천 베이비&키즈페어’에 참가해 체험 부스를 운영하며 프리미엄 요구르트 ‘런’을 소개했다. 요구르트 런은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라프티L10과 비타민B2 가 함유되어 있어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 또 무지방에 당성분이 적은 데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해썹(HACCP)’과 ‘어린이기호식품 품질인증’을 획득해 온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음료로 제격이다. 신앙촌식품 관계자는 “고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더 많은 베이비페어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소비자들이 다양한 루트로 요구르트 런을 접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신앙촌식품(주)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요구르트 생산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식품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슬성신절을 준비하는 자세

이슬성신절을 준비하는 자세

5월 소비조합 축복일 예배가 남부지역은 2일 신앙촌, 서부지역은 7일 소사교회, 중부지역은 9일 덕소교회에서 각각 있었다. 이달에는 인류 구원을 위해 내려주시는 이슬성신 은혜에 한없는 영광을 드리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하나님 말씀이 방영되었다. 남부지역 김영애 관장(울산교회)은 이슬성신을 내려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자격자가 되기를 바라셨다며 “하나님 말씀을 두렵게 알고 그 말씀대로 지키고자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했다. 이재경 관장(노량진교회)은 서부지역 예배에서 “천부교 최대 절기, 이슬성신절에 정성과 마음을 기울여 많은 새교인과 쉬고 있던 교인들까지 귀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전도에 마음을 모으자”고 했다. 중부지역 한창우 관장(의정부교회)은 “이슬성신절을 앞두고 기도로 은혜가 담길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새교인을 많이 전도하여 이슬성신의 가치를 널리 알리자”고 설교했다.

소사교회, 신축 설명회 가져

소사교회, 신축 설명회 가져

교회 신축의 의미 되새겨 부천 옥길동에 새 부지 마련 한국천부교 소사교회 신축위원회는 지난 12일 신앙촌에서 교회 신축을 위한 설명회를 가졌다. 정주현 관장(소사교회)은 이날 설명회에서 교회 신축부지 구입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신축위원의 많은 관심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이번에 새롭게 지어질 교회가 소사 교인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전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교회 신축의 의미를 전했다. 소사교회 양성철 장년회장은 “오늘 모임을 통해 전도를 위한 교회 신축의 의미와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관장님과 모든 교인이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소사교회는 지난 10월,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에 새 부지를 선정했고, 앞으로 신축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슬성신이 담긴 물, 생명물의 권능

실천하고 노력하고 인내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어

알쏭달쏭 ‘숨은 그림 찾기’

얌얌 딸기 페스티벌

2019년 5월 19일 제39회 이슬성신절

신앙신보 정기구독 신청기간

교역자 인사

신앙촌식품(주), 런 공식 카페 개설

신앙체험기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축복해 주셔”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축복해 주셔”

(지난호에 이어서) 요즘 신앙신보에서 이만제단 특전대 기사가 나오면 반갑고 기뻐서 열심히 보게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특전대로 활동하던 때가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 일이 뭉뚱그려져서 떠오르는데 어떤 분이 목사하고 성경 토론할 때 주고받은 말까지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맞아! 그랬지!” 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수요일이면 특전대원끼리 조를 짜서 기성교회를 찾아다니며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경상의 감람나무가 누구인지 질문하면 목사가 답변을 못해 허둥지둥 도망치거나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는 광경을 자주 봤습니다. 한번은 진짜 은혜가 있는 길로 가야 구원이 있는데 목사님은 받은 은혜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목사가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불덩이가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하게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불도 없고 햇볕도 뜨겁지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너무 뜨거워서 한참 쩔쩔매다 보니 차츰차츰 뜨거움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불성신을 받으면 온몸이 뜨거워진다던 말이 떠올라 내가 불성신을 받았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때 토론하고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특전대원으로서 목사와 성경토론을 하는데 목사가 딱 부러지게 대답 못하고 얼버무려 그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하게 뜨거워져 이렇게 토론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불성신의 은혜를 주시는구나 깨달아 저녁마다 특전대원들이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면 간식으로 빵을 먹는 재미가 컸습니다. 부드럽고 고소한 빵은 원효로 구제단에 기계를 들여서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그 빵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제과공장에서 카스텔라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을 보고는 신앙촌을 세우시기 전에 시범적으로 원효로에서 빵을 생산해 보셨구나 싶었습니다. 소사신앙촌 하면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1958년 무렵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한창 건설될 때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건설대로 들어간 특전대 친구가 귀한 거라며 손수건 한 장을 건네주는데, 받자마자 향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손수건에서 나는 향취가 온몸을 감싸고 도는 것 같았습니다. 웬 향취가 이렇게 진동하냐고 깜짝 놀랐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강하게 축복해 주신 손수건이라 했습니다. 소중히 간직하며 저녁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아직 제단이 지어지지 않아 유치원을 임시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촌 건설대만 1,000명이 넘는 데다 저처럼 외부에서 찾아간 교인도 많아 예배실은 콩나물시루였고,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며 예배드릴 수 있는 자리를 잡은 것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쉭!”하고 축복하시는 순간 향취가 강한 바람처럼 불어와 진동하고 뽀얀 안개같은 것이 내리더니 바로 옆에 사람들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짙어져 그런데 한창 찬송을 인도하시던 하나님께서 창문 쪽을 바라보시며 “쉭!” 하고 축복하시는 순간 향취가 강한 바람처럼 불어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리더니 바로 옆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짙어졌습니다.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축복해 주시는구나!’ 하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손수건은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당시는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기 전이었고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라 하실 때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은혜를 체험하다 보니 감람나무는 은혜를 주시는 존재라는 것이 마음 깊이 각인됐습니다. 훗날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그렇지!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해할 수준이 안 되니 감람나무로 가르쳐 주셨구나.’ 싶었습니다. 특전대 친구가 귀한 거라며 건넨 손수건 받자마자 향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온몸 감싸고 도는 것 같아 깜짝 놀라자 축복해 주신 손수건이라고 친구가 말해 저는 1962년 성동지관에서 주일학교 부장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특전대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이 지방에 전도사로 발령 받아 나가고, 특전대 출신들이 동네마다 세워진 작은 전도관인 ‘지관’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맡던 때였습니다. 특전대 시절 길가에서 북을 치며 노방 전도하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곧잘 어울렸는데, 그런 경험 덕분인지 수줍음 많은 성격이지만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교회에 잘 나오고 바르게 자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150명 남짓한 주일학생들 집을 구역별로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전도관에 나오지 않는 가정이 많았기 때문에 직접 찾아뵙고 예배드리면서 부모님과 친해지려고 했습니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는데 제가 주일학생 집을 다닌다 하니 성동지관 어른 분들이 애들 옷을 가져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작아져서 입히지 않지만 아직 새것 같은 옷을 들고 가니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교회 선생님이 오셨다며 과자도 내 놓고 과일도 내 놓으시며 반겨 주셨습니다. 아이들도 구역예배를 좋아해서 오늘 어느 구역에 간다 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여름신앙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찬송과 합창을 가르치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 또 바르게 예배드리는 자세를 익히게 하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일학교에서 제일 큰 행사는 여름신앙학교였습니다. 저는 근무하는 회사에다가 오후에 출근한다고 미리 알려 두고, 오전에 신앙학교를 마치고 나면 블라우스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서 새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신앙학교에서 찬송과 합창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여름 햇볕에 그을린 아이들이 두 눈을 빛내며 찬송을 따라 부르는 모습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고, 저는 종로서적에서 새로운 합창곡집을 구해다 신나게 가르쳤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예배드리는 자세를 익히게 하고 싶어서 예배 시간이면 장난치지 말고 설교 말씀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지금 중년이 된 교인들이 그때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잔소리 많이 해서 혼났다.”며 웃곤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보람 있었던 때를 꼽으라고 하면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일했던 시간을 말하고 싶습니다. 1995년 오십대 초반에 소비조합을 시작하며 나름 각오가 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신앙 안에서 살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른 소비조합 분들처럼 나도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물건을 꾸려 판매를 나가던 날은 겨울인데도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감사하게도 신앙촌 물건을 꼭 사고 싶었다는 사람들을 줄줄이 만나게 됐습니다. 그동안 서울 살아도 가 보지 못했던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다 2년쯤 지나 이문동에 아담한 신앙촌 상회를 차렸습니다. 제품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신앙촌을 반가워하는 사람도 많아서 상회에 나가면 재미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지 그때 알 수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활동했던 소비조합을 정리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죄송한 일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어제를 돌아보고 스스로 가다듬으며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신 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아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지난 호에 이어서)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 짧은 시간인데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제과 공장에서 새하얀 유니폼 입고 달콤한 냄새 풍기는 캐러멜을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포장하다 보면 한쪽에서 신나게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질세라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연신 웃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씩 외국 사람들이 공장에 견학 오면 빠른 손놀림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포장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과공장에서 만든 카스텔라는 얼마나 맛있는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맛이 안 잊혀지고 한 번만 먹어 봤으면 하고 그리울 정도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처음 맛본 카스텔라여서 특별하게 기억되기도 할 것이고, 기쁘게 일하던 시절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하고 같이 떠올라서 더 그립습니다. 소사신앙촌 제과 공장에서 캐러멜을 포장하는데 곳곳에서 사원들이 찬송을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 웃으며 일했던 그 시절이 기억에 남아 소사신앙촌에서 마냥 기쁘고 즐겁게 살 줄 알았지만 부모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지 않아서 열일곱 살만 되도 시집가서 쪽찐머리 하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 스무 살 넘어 과년한 딸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충청북도 충주 주덕읍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은 농사일밖에 모르는 시골이었습니다. 저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시어머니와 남편하고 같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어 드리고 찬송가도 불러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냐 하시기에 전도관에 다니고 신앙촌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재미있게 들으니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성경과 찬송을 알려 드렸는데, 저녁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소문이 나서 저 집은 재미나게 산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가 전도관에 나가 보자 하셨습니다. 집에서 10리를 걸어 주덕읍 탑돌전도관에 나갔더니 예배실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신앙촌에서 지냈던 일이 눈앞에서 필름을 돌려 보여 주는 것처럼 생생히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웠고, 아무리 그치고 싶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울다 울다 겨우 눈을 떠 보니 시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는데,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구박하기를 했냐, 시집살이시키기를 했냐. 딸처럼 여기고 귀애했는데 왜 그리 서럽게 우느냐?”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한참을 우는 데는 섭섭한 게 있는 모양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촌이 그리워 울었다고 말하다 말고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신앙촌은 마음으로부터 그리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신앙촌에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읍내와 가까운 논밭을 사게 되어 이사하고 보니 코앞에 주덕전도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전도관이 가까우니 매일 새벽예배 나가자 했더니 다들 순순히 따라나섰습니다. 나중에는 농사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전도관에 살다시피하며 전도사님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합해 드디어 1965년 다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3남매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부산에 기장신앙촌이 세워지고 한 달에 한 번 축복일에는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예배드렸는데, 1985년 무렵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축복일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때 구역장을 맡아 축복일에 가는 교인들을 챙기고 차를 대절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축복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축복일에 참석한 것은 제 신앙이 자라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축복일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 살살 불어와 맡아져서 한없는 축복을 주시는구나 깨달아 어느 축복일이었습니다. 신발 벗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향취가 진동하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향취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싸며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 마치고 소사신앙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서 살살 불어와 계속 맡아지니 ‘은혜의 창파라더니 한없이 부어 주시는구나! 진짜 축복을 주시는 축복일이구나!’ 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향취 속에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다 울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열심히 살아 보자는 각오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생각만 해오던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축복일에 열심히 참석하는 교인들을 보면 소비조합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팔고 알리다 보니 전도를 많이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도 소비조합을 해야지 하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신앙촌 옷을 들고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성격이 활달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났지만 신앙촌 물건이라면 반색하며 이웃들까지 불러 모아 주니 물건 파는 재미도 컸습니다. 고객들 취향에 맞춰서 옷이나 내복을 골라가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고 신앙촌 물건은 역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릴 때면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 4시쯤이면 준비해 간 물건이 다 팔려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구역 연로하신 교인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 드렸는데, 초창기부터 따라오신 그분들께 은혜 체험담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찾아뵙다가 임종하실 때가 다가오면 정성껏 몸을 닦아 드리고 생명물을 먹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을 챙겼던 것이 계기가 돼 1994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는 장례반을 맡아 연로하신 분들을 보살펴 드리고 장례예배 때 고인의 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이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자  자주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해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겨드리자 얼굴이 뽀얗게 피고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져 15년 넘게 장례반을 하며 있었던 일을 다 쓰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생명물로 씻기고 나면 한결같이 아름답고 곱게 피어나니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다 체험담인데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김옥춘 권사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권사님을 처음 뵀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은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혈액순환이 안 돼서인지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사람 피부색이 그런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또렷하셔서 제가 가서 보살펴 드리면 무척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권사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문을 열심히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김 권사님께도 하루에 기도문 1,440번을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실에 매듭을 묶어 기도문 할 때마다 매듭을 짚으며 숫자를 셀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권사님 끈기가 대단하셔서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셨고, 자줏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기도문을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겼을 때는 얼굴이 뽀얗게 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덕더덕 많이 있던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드린 후에도 콧잔등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닦아 드리고 다시 보면 또 맺혀 있었습니다.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니 유족들이 다들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입관까지 마친 후 멀리 사는 유족이 도착해서 고인을 뵐 수 있게 관 뚜껑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뚜껑을 여는 제 손에 시원한 바람이 선들선들 와 닿아 저도 모르게 “이럴 수가!” 하고 탄복을 했습니다. 8월이라 한창 더울 때였는데 뚜껑을 덮어 둔 관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도 성신의 바람으로 고인을 계속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분을 생각하면 나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같고 눈 깜빡할 새 다 지나온 것도 같습니다. 어려운 일 닥칠 때면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올곧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은혜 받아 기쁠 때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처럼 천국을 맛보게 됐습니다. 오늘도 은혜 주시는 길을 따라가니 이보다 값진 시간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귀한 은혜 간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최고의 은혜는 이슬성신과 생명물

천부교 역사의 시작은 1955년 1월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은혜가 내린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몰려오고 건물에 사람들이 다 들어오지 못해서 넓은 지역에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을 천막집회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3월에는 남산 공원, 5월에는 한강(영등포), 10월에는 부산 공설운동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도시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넓은 곳에서 집회를 하셨고, 가는 곳마다 이슬성신 은혜 체험이 계속되었습니다. 1955년 한 해 동안 연인원 500만 명이라는 많은 수가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임영신 총장은 향취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집회하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자신의 체험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고, 최창순 박사는 사고로 다리가 세 동강으로 부러졌는데 안찰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끊어졌던 뼈가 붙은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병자들이 낫게 하는 기사이적을 보여주신 것은 육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생명물을 축복해주셨습니다. 성경에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너희 배 속에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리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생수는 곧 생명물입니다. 일반 물에 하나님의 성신, 즉 이슬성신 은혜를 내려주시면 이슬성신의 물로 화하는데 그것을 생명물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물은 오래 두면 썩는 게 이치이지만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은 몇 십 년을 놔두어도 썩지 않는 물로 되는 것입니다.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핀다는 것은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이슬성신의 권능이 담겨 있기에 가능해 또한 생명물에는 죽은 사람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하는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핀다는 것은 사후경직된 시신에 생명물을 넣어주게 되면 딱딱했던 시신이 부드럽게 움직여지고 혈액순환의 멈춤으로 검게 변한 피부색이 뽀얗게 변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시신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핀다는 것은 생명물로 죄가 씻어지는 것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생명물에는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이슬성신의 권능이 담겨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목사들은 이런 귀한 은혜를 어떻게든 방해하기 위해 생명물을 발 씻은 물, 코 푼 물이라고 나쁜 소문을 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 많은 물에 발을 씻고 코를 푼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물을 먹게 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이슬성신이 담기면 생명물이 됩니다. 사방 100m 두께의 강철판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물병을 두어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성신이 강철판을 뚫고 들어가 생명물이 되고 그 생명물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게 됩니다. 신앙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는 곳이기 때문에 지금도 변함없이 이슬성신이 내리고 생명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슬성신과 생명물은 최고의 은혜이기 때문에 마귀가 그것을 막으려고 온갖 중상 모략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줄 수 있는 귀한 은혜이기 때문에 온갖 비방이 있어도 쉬지 않으시고 축복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에 물 같은 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누구도 말한 자가 없습니다. 예수가 알지 못하니 많은 설교자, 목사, 신학자 모두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니 생명물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가 알았다면 기성교회에 생명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천부교회를 목욕탕이라고 비유하면 은혜가 없는 기성교회는 물이 없는 목욕탕과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백합꽃같이 아름답게 피게 할 수 있는 은혜, 그것은 이슬성신과 생명물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최고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천부교에만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기획
“죄의 근본 뿌리가 빠져야 해요”

“죄의 근본 뿌리가 빠져야 해요”

오피니언
하노이 결렬 이후 엄중해진 한반도 정세

하노이 결렬 이후 엄중해진 한반도 정세

시온춘추

위대한 정복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남산집회 편(3.끝)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오늘 하루도 나는 전했는가?’를 늘 생각해

‘오늘 하루도 나는 전했는가?’를 늘 생각해

천부교 최대의 절기인 5월 이슬성신절을 앞둔 요즘, 축복일 전도에 대한 열의와 사명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중애 권사(기장신앙촌)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두 달 전부터 지인들 만나 초대해 인중애 권사는 천부교 절기 예배가 있기 두 달 전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고 했다. “지인들에게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해요. 또 만날 수 있는 분들은 직접 찾아가서 초대장을 건네며 행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안부를 물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신앙촌에 오고 싶어 하세요.” 연락하는 대상은 주로 친척과 신앙촌 제품을 애용하는 고객, 오랫동안 쉬고 있는 교인들이다. 인 권사의 연락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까지 초대해 신앙촌에 방문한다. 이렇듯 손님이 손님을 모시고 오는 일이 많다고 했다.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한 손님들은 명단을 만들어 꼼꼼히 챙기고, 신앙촌에서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다음 절기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촌에 올 수 있도록 항상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전해야겠다는 사명감 인중애 권사에게 어떻게 전도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묻자 “전도는 은혜 받은 사람의 사명”이라고 답했다. 1950년대 초창기 하나님 천막집회에서 향취를 체험한 인 권사는 너무 기뻐서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또 어머니의 시신이 생명물로 환하게 피어나 동네 사람들은 물론 기성교회 목사까지 놀라게 했던 일은 인 권사가 더욱 자신 있게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전도할 때 사람들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해요. 생명물로 시신이 뽀얗게 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히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신앙촌과 천부교에 대해 호감을 갖고 궁금해 한다고 했다. 손님들에게 미리 행사 알리고 첨석목록 만들어 꼼꼼히 챙겨 평소에도 맑게 살기 위해 노력 왜 이제서야 불러주셨냐는 손님 신앙촌에 모시고 온 손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고 인 권사는 말했다. “제가 초대한 손님이 모시고 온 분이었어요. 절기 예배가 끝나고 그분이 제 손님한테 ‘진작 불러주시지 왜 이제야 불러주셨나’고 하면서 ‘이렇게 좋은 말씀을 그동안 혼자서만 들었냐’고 하시더래요. 그 후로 그분은 절기 때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예배에 참석하고 계세요.” 인중애 권사는 그 일로 전도의 기쁨과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한다. 성결한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해 인중애 권사는 전도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 말씀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전도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신이 하는거야’라고 하신 말씀을 늘 새겨요. 성신이 제 마음속에 임하셔야 전도가 가능하다는 뜻이기에 아름답고 성결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는 전했는가?’를 매일 생각해본다는 인중애 권사는 앞으로도 계속 전도에 힘을 쏟고 싶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제게 건강을 허락해주셨으니 더 열심히 전도해야죠. 언제나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기쁨의 은혜를 알리겠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기쁨의 은혜를 알리겠습니다”

지난 4월 28일, 소사교회 신축추진위원장으로 임명받은 오현종 권사. 그의 일성은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은혜를 전하겠습니다” 이다. 교회 신축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오현종 권사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요즘 소사 천부교회 신축 준비가 한창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신축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이 되는 일이고 교인으로서 축복받을 수 있는 큰 기회입니다. 그동안 다른 천부교회 신축 예배를 다녀올 때마다 우리 교회도 아름답게 지었으면 하는 소망이 컸습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지어 하나님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 천부교회는 처음 어떻게 나오셨나요? -1982년 고교 2학년 때 1년 선배를 통해 익산 천부교회에 나오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다닌 전북기계공고는 모든 학생이 국비로 숙식과 학업을 함께하던 학교여서 선후배 관계가 유달리 돈독했습니다. 선배를 따라서 간 천부교회에서 들은 하나님 말씀은 들을수록 무척 새로웠고 점점 이 길이 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회 신축은 하나님 은혜를 전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 소사교회 전교인과 꼭 해낼 것 ▶ 현재 세무사로 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도움이 될 때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천부교에 나온 이후 자유율법을 지키려는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양심적으로 일하고 고객의 입장을 배려하며 성실하게 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의 신뢰를 얻게 되어 안정적인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 소사교회 관장님과 교인들, 원로들이 교회 신축에 가장 많이 애쓰는 오 권사님을 신축추진위원장으로 추천했습니다. 끝으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1957년 건설하신 첫 번째 신앙의 울타리, 소사신앙촌은 천부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앞으로 아름답게 지어질 성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은혜를 전할 수 있도록 관장님과 소사교회 전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요”

“신앙생활의 기쁨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요”

전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렇기에 전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사 생활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전도한다는 김영미 씨를 만나보았다. 김영미 씨는 2018년 연간전도시상식에서 우수반사상을 받은 바 있다. # 처음 시작한 아이들 전도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까지 전도하여 함께 교회에 오는 영미 씨의 모습을 지켜본 관장님은 함께 초등학생을 전도 해보자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교복을 입은 채로 초등학교 앞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복을 입은 언니가 와서 말을 거니까 아이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 꾸준히 만나고 세심하게 신경 써야 조금씩 전도의 기쁨을 느낀 김영미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반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교회에 오는 아이들은 늘어나는데 꾸준히 오는 아이 만들기가 쉽지 않았던 것. 그래서 아이들을 알찬 열매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고. “우선 제가 맡은 반 아이들을 자주 만나기 시작했어요. 초대장은 꼭 만나서 얼굴을 보고 주고, 일요일에 안 온 아이는 다음 주에 학교 앞에서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옆에 있는 친구들까지 살뜰히 챙겼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마음을 열고 꼬박꼬박 교회에 오는 친구들이 생기더라고요. 작은 관심에도 마음을 열어주니 정말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영미 씨는 주중에 아이들을 만나고, 여의치 않을 때는 문자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면 대화거리가 풍성해진다고 영미 씨는 말했다. 전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부모님과 친해지는 것도 필요해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많이 느껴 # 어린이집 교사로 일 할 때도 도움 돼 또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자주 연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신앙촌에 가는 날은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 꼭 부모님께 문자를 드려요. 또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사진도 찍어서 보내드리면 무척 고마워하세요.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바로바로 확인이 되니까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교회에 보낸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반사로 일하며 부모님들과 연락을 했던 것이 현재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며 학부모를 응대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어린이집에서 쌓은 경험이 반사 생활에 도움을 준 경우도 있다. “어떻게하면 축복일에 가는 버스안에서 아이들이 즐거워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했던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게임들이 생각났어요.” 어린이집에서 했던 게임을 응용하기도 하고, 직접 새로운 게임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고, 게임 시간이 재미있어서 축복일에 가겠다고 약속하는 아이가 있을 정도라고 했다. # 성장하는 아이들 모습에 감사해 아이들의 마음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김영미 씨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의정부교회 아이들은 ‘영미쌤’이 입에 붙었다. 영미 씨 또한 아이들에게 애정이 많다. “지금 중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쭉 나온 아이들이에요. 처음에는 마냥 어리기만 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는 놀이터에 가서 같이 전도를 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시간이 흐른 만큼 더욱 신뢰하고 돈독한 관계가 된 것 같고,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요.” 소중한 아이들이기에 더욱 신앙생활의 기쁨과 감사함을 함께 느끼고 싶다는 김영미 씨다. # 전도하며 기도의 중요성 느껴 영미 씨는 반사를 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하나님께 ‘예쁜 아이들 많이 보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신기하게도 항상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일을 하면서도 기도 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영미 씨는 “우리 애들이요. 제가 인터뷰한다니까 절대로 의정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오글거린대요. 그러니 그 표현은 꼭 빼주세요”라고 웃으며 당부했다. 하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영미 씨의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닭발 요리 처음 배울 때부터 신앙촌간장 썼어요!”

“닭발 요리 처음 배울 때부터 신앙촌간장 썼어요!”

거제시, 우리나라 최대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곳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시내는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근로자와 오토바이, 자동차로 넘쳐나며 활기를 띤다. “거제 시내에서는 작업복에 워커화까지 신고 다니는 근로자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처음 음식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신경 썼던 게 주 고객층인 근로자들이 퇴근해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워커화를 신은 채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였어요.” 전략이 통했던 것일까. 닭발 생김새 때문에 호불호가 확실한 음식인데도 거제시 고현 시내에 위치한 참숯닭발집은 거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집, 불경기에도 손님이 줄을 서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이미옥 사장은 “지금은 닭발에 대한 수요도 늘고 체인점도 많이 생겨서 시장이 넓어졌지만 2007년 처음 가게를 오픈할 당시만 해도 닭발은 10명 중 7명은 싫다는 음식이었어요”라고 했다. “‘세상에 닭발을 숯불에 구워 먹다니’, ‘닭발은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데…’ 대부분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었어요. 그런데도 ‘이건 반드시 꼭 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왜냐, 맛있으니까요.” 뼈있는 닭발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이미옥 사장은 닭발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무뼈 닭발을 사용했다. 또 생 닭발을 그대로 숯불에 구워 닭발에 은은한 불향을 입히고 쫄깃함을 살려냈다. “저희집은 초벌 없이 생 닭발을 그대로 양념해서 숯불에 구워 먹어요. 왜냐하면 한번 삶으면 콜라겐이 빠져나가 영양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닭발의 콜라겐은 관절, 피부 미용,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라고 이미옥 사장은 설명했다. 신앙촌간장 맛, 깔끔하고 좋아 닭발 소스로 13년째 쓰고 있어 새 메뉴에도 간장 써볼 생각 ▶ “간장 소스, 비법이 뭐예요?” 평범한 직장인이던 이미옥 씨가 음식 사업에 도전한 것은 13년 전이다. “친정이 있는 광양에 갈 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꼭 들르는 맛집이 있었어요. 닭발집이었는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그걸 먹으면서 ‘아, 나도 이 사업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지요. 그래서 닭발 요리를 배우게 됐는데 요리를 가르쳐주신 분이 닭발 찍어 먹는 소스로 신앙촌간장을 쓰시더라고요. 간장 맛이 좋아서 저도 자연히 쓰게 됐어요.” 닭발의 맛을 더 감칠 나게 해주는데 간장 소스의 역할이 크다고 말하는 이미옥 사장은 지금도 종종 간장 소스 비법이 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그동안 영업 비밀이라 안 가르쳐준다고 했었는데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다 들통이 났네요”라며 웃었다. “손님들이 간장에 뭘 더 넣은 줄 알고 물어보시는 건데 신앙촌간장 자체가 워낙 맛있고 깔끔하기 때문에 뭘 더 넣을 필요가 없어요.” ▶ 기본을 잘 지켜야 기자가 찾아간 날은 참숯닭발집이 확장이전한지 한 달되는 날이었다. 조선 사업의 불황으로 거제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오히려 참숯닭발집은 매장 규모도 직원도 더 늘었다. 참숯불닭발집의 맛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말도 없이 이전했냐며 서운하다는 말로 축하 인사를 건네는 단골들의 발걸음도 여전하다. “저희는 사업 초기에 인연을 맺은 거래처와 지금도 거래를 해요. 서로 믿는 거죠. 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사이 두 배 이상 원가가 올랐지만 가격도 10년 전 천 원 올린 그대로예요. 음식은 국내산 재료로 당일에 만들어서 당일에만 쓰는 원칙도 변함없고요. 기본을 잘 지켜나갈 때 변함없는 맛을 유지할 수 있고 손님들도 그걸 믿고 찾아와주시는 것 같아요.” 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이미옥 사장. 요즘은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먹을 수 있는 새 메뉴 개발에 한창이라고 설명했다. “닭 육수를 이용해서 얼큰하고 칼칼한 국물 요리를 만들어 볼 생각인데 신앙촌 국간장으로 맛을 내 봐서 괜찮으면 앞으로 더 써볼 생각입니다. 우리도 손님들을 위한 한결같은 음식을 만들 겁니다. 신앙촌 회사에서도 늘 건강하고 맛있는 간장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주니어

우종화 권사님 편(5,끝)

우종화 권사님 편(5,끝)

음식은 조리할 때부터 적당히…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지켜요”

음식은 조리할 때부터 적당히…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지켜요”

“봄이 피어나는 신앙촌”

“봄이 피어나는 신앙촌”

“진심을 다해 찬송을 부르면 은혜를 주세요”

“진심을 다해 찬송을 부르면 은혜를 주세요”

교양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은 오페라극장에서  반주 음악을 하던 빌제 관현악단이 주 무대를 이뤄 콘서트 하는 형식이 인기 얻자 새로 만들어진 관현악단 전자제품 하면 삼성과 LG, 운동화 하면 나이키가 떠오르 듯, 오케스트라 하면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Berliner Philharmonisches Orchester)이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클래식 관현악단 가운데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베를린 필하모닉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1878년에 벤야민 빌제라는 작곡가 겸 지휘자가 자신의 성을 따 ‘빌제 관현악단’으로 시작했던 때입니다. 그 당시 관현악단은 오페라극장 같은 곳에서 반주 음악을 연주해 온 사람들이었는데, 빌제는 자신의 관현악단이 주 무대를 이루어 콘서트를 이루어내는 형식의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이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져 발제의 콘서트는 차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즈음 발제는 금전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단원들의 스케줄과 상관없이 독일 각지에서 무리한 연주회를 감행했고 그 때문에 단원들은 열악한 교통수단과 숙식, 낮은 봉급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발제 관현악단에서 탈퇴하게 되었는데 그 단원들이 모여 새롭게 만들어진 관현악단이 바로 지금의 베를린 필하모닉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초대 상임 지휘자 한스 폰 뷜러를 비롯하여 훌륭한 지휘자와 음악가들이 지휘봉을 들었는데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비롯하여 푸르트벵글러, 지휘의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든 지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 통증 잡는 스트레칭

‘밭에서 나는 고기’로 만든 두부스테이크

청년실업

바람만 스쳐도 고통스러운 ‘통풍’ 주의

바람만 스쳐도 고통스러운 ‘통풍’ 주의

통풍은 바람만 스쳐도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다. 통증의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통풍은 동의보감에도 ‘백 마리 호랑이가 관절을 물어뜯는 듯한 아픔’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 통풍은 부자만 걸리는 병? 통풍은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거나 퓨린 대상에 이상이 생겨 혈액 속에 요산이 지나치게 많아져서 생기는 질환이다. 배출되지 못하고 체내에 쌓인 요산은 결정화되어 관절에 염증을 유발하고 극심한 통증을 발생시킨다. 과거에는 단백질 섭취가 많은 부유한 사람들에게 주로 발생해 ‘부자병’이라고 불렸지만, 요즘은 고칼로리, 고단백 음식이 많아진 데다가 과당이 많은 탄산음료, 과도한 음주문화로 인해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다. ■ 극심한 통증에 결절 생기기도 통풍에 걸리면 대개 엄지발가락, 발등, 발목에 극심한 통증이 생긴다. 갑작스레 통증이 시작해 수일간 지속되다가 호전된다. 만약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으로 진행되면 요산 결정이 덩어리를 이루어서 혹처럼 보이는 통풍결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통풍은 치명적인 질환은 아니므로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경과를 볼 수 있다. ■ 통풍에는 생활 습관이 가장 중요 통풍 치료에서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퓨린 함량이 높은 소고기, 돼지고기, 꽁치, 고등어 등의 섭취를 피하고, 과당이 많이 함유된 맥주, 과일주스, 탄산음료도 자제해야 한다. 비만을 줄일 수 있는 체중조절도 병행되어야 한다. 또 통풍이 완화되었다고 치료약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봄철 A형 간염 기승, 20·30대도 발병 주의

콩팥병, 단순 피로증세로 오해하기 쉬워

피곤 탓에 입안이 계속 헌다? ‘두경부암’ 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