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함께 배우고 성장한 입사생들,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 다짐 지난 8월 30일 ‘하나님 권능을 힘입어 죄의 권세 이기네’라는 주제 아래 입사 39주년 예배가 열렸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1987년부터 입사생들은 맑은 신앙생활을 위해 신앙촌에서 함께 성장해 왔다. 이날 예배에서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그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앞으로도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은미 관장(입사생 담당)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의미를 되새기며, 구원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인간은 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구원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로 죄를 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기회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믿음이고, 믿음의 기본이 되는 것은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비치는 거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면 교만이 자리 잡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채워 나가는 입사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입사 10주년과 20주년을 맞은 입사생들의 특순과 소감 발표도 있었다. 10주년을 맞은 박수영 씨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곁에서 도와주신 많은 분들과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은 김소중 씨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사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부에서는 여성협회 송미애 관장의 특강이 진행됐다. 송 관장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전했다. 이어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입사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시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구원의 길을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입사생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추석 선물로 만나는 신앙촌 간장

추석 선물로 만나는 신앙촌 간장

롯데호텔앤리조트 라운지 ‘추석 선물 코너’ 입점… 명절 선물 선보여 롯데홈쇼핑 ‘엘라이브’ 생방송 진행… 소비자와 실시간 소통 신앙촌식품이 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맞아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신앙촌 간장 선물세트를 선보이고 있다. 신앙촌식품은 매년 명절을 앞두고 진행되는 롯데호텔앤리조트 추석 선물 행사에 올해도 참여했다. 9월 1일부터 추석 연휴 직전까지 전국 롯데호텔앤리조트에서 신앙촌 간장 선물세트를 만날 수 있다. 한우, LA갈비, 와인 등 다양한 명절 선물과 함께 제품을 진열하고, 호텔에 따라 자체 브로슈어를 통해 제품을 소개한다. 한편, 9월 1일에는 롯데홈쇼핑의 라이브 커머스 채널 엘라이브(L.live)를 통해 신앙촌 간장 라이브 방송도 진행됐다. 온정 5호와 온정 4호를 중심으로 제품을 직접 개봉해 선물세트의 구성과 특징을 살펴보고, 좋은 원료와 오랜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신앙촌 간장의 특징도 함께 소개했다. 실시간 채팅창에는 “우리 집도 이 간장 써요”, “어릴 때 먹던 그 맛이에요” 등 오랜 소비자들의 반가운 후기가 이어졌으며, 명절 음식에 활용할 수 있는 요리 팁도 소개했다. 신앙촌 간장 선물세트는 전국 신앙촌상회,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SANC Mall 등에서도 판매된다. 신앙촌식품 관계자는 “명절을 맞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분들이 다양한 선물세트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며 “신앙촌 간장과 함께 소중한 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풍성한 추석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함께할수록 커지는 힘

함께할수록 커지는 힘

서로의 상회 찾아가 함께 움직이며 힘을 얻는 대구지역 소비조합원 판매 경험 나누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경인3지역 사장단 ◇대구지역의 특별한 런데이, 함께라서 더 즐거워 요구르트 ‘런’ 판매에 힘을 모으고 있는 대구지역 소비조합원들이 ‘런데이’를 통해 새로운 판매 방식을 시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런데이는 날짜를 정해 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신앙촌상회에서 집중적인 홍보와 판매 활동을 펼치는 날이다. 대구지역 오현숙 사장은 신정미 소장의 제안으로 상회 전체가 함께하는 런데이를 시작했다. 오 사장은 “처음에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반신반의했지만, 여럿이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뜻을 모았다”고 했다. 행사는 주변 상회 사장들이 한 상회에 모여 함께 활동하고, 다음 날에는 해당 상회 사장이 행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정해진 날짜에 다시 다른 상회에 모여 판매 활동을 펼쳤다. 런데이는 첫날부터 상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상회 밖에 추첨함을 마련하고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행운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상회 안으로 들어왔다. 상회 안에서는 신앙촌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추첨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했다. 런 한 통을 사러 왔다가 다른 제품까지 구매하고 선물까지 받아 기뻐하며 돌아가는 고객들이 많았다. 오 사장은 “상회 안에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활기찬 분위기가 또 다른 손님을 불러오는 효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배달을 마치고 합류한 사장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시장을 돌며 손님들을 상회로 안내했고, 상회를 운영하지 않는 소비조합원들은 더위에 지친 동료에게 미숫가루와 얼음을 건네며 서로를 챙겼다. 오 사장은 “날씨가 뜨거운데도 다른 사장님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밖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한마음으로 판매를 도우며 이불 진열까지 새롭게 해줄 때 너무나 고마웠다”며 “혼자 노력할 때와 달리 서로 잘하는 일을 나누니 같은 시간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전체가 하나로 뭉칠 때 하나님께서 기쁨을 확확 주신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이렇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고 전했다. 오 사장은 “그날 고생은 그날 족하다는 말씀처럼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나가겠다”며 “대구중앙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함께 발전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경인3지역의 매일 기록, 서로를 응원해 경인 3지역 신앙촌상회 소비조합원들이 상회 사장 간의 소통과 런 판매 경험을 소소하게 나누는 ‘소소・SoSo 모임’을 통해 판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따로 모여 이야기할 기회가 적었던 사장단이 부담 없이 만나 각자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8월 10일부터는 사장 10명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매일 런 판매량을 공유하고 있다. 또 각자 목표를 정하고 현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면서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있다. 현재 모임은 1기와 2기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1기는 매일 판매 기록을 올리며 활동하고 있으며, 아직 매일 인증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2기 별도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앞으로 2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1기와 함께 경험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9월 5일에는 신앙촌에서 1기 사장단 모임이 있었다. 이날 자리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런을 판매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누구였는지’, ‘반가운 손님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등 10가지 가벼운 질문을 준비했다. 판매 과정에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대화거리가 되었고, 사장단이 저마다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사장단이 주인공이 되어 소통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상회에서 겪은 어려움과 판매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좋은 방법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동두천 이지영 소장은 “소장님들이 앞에 나서면 사장님들은 듣는 입장이 되기 쉽다”며 “사장님들이 주인공이 되어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들을 편하게 털어놓고, 서로 기운을 얻어 다시 상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매일 이어지는 기록 공유는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실적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가 성실히 기록을 올리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주고받고 있다. 이 소장은 매일 올라오는 기록을 정리해 공유하면서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오늘도 힘내세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응원도 전하고 있다. 이 소장은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모임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한반도 바다 수온, 전 세계보다 2배 상승

한반도 바다 수온, 전 세계보다 2배 상승

최근 10년 해수면 온도 0.7℃ 상승, 해양열파 발생 일수 평년보다 3.7배 증가 강한 엘니뇨 올겨울까지 지속 전망…따뜻하고 비·눈 잦은 날씨 예상 한반도 주변 바다가 빠르게 따뜻해지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7℃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전 세계 바다의 수온 상승 폭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기상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1991년 이후 10년마다 평균 0.3℃씩 상승해 왔는데, 최근에는 상승 속도가 더 빨라져 10년당 1.2℃의 상승 추세를 보였다.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해양열파도 잦아졌다. 해양열파는 바닷물 온도가 평소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상태가 며칠에서 수개월 동안 이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10년 동안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해양열파가 발생한 날은 연평균 83.3일로, 평년의 22.6일보다 약 3.7배 많았다. 특히 동해에서는 연평균 96.1일이나 발생해 서해와 남해보다 증가 폭이 컸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바다가 따뜻해지는 가운데, 열대 태평양에서도 해수면 온도가 크게 올라가 강한 엘니뇨가 발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바다의 온도가 달라지면 대기의 흐름도 변하기 때문에 세계 여러 지역의 날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상청과 세계기상기구(WMO)는 현재 발생한 엘니뇨가 가을철에 더 강해져 올해 말 가장 강한 상태에 이른 뒤 내년 2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엘니뇨가 올가을과 겨울까지 계속될 확률은 100%로 분석됐다. 올겨울 우리나라에는 엘니뇨의 영향으로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자주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평년보다 기온이 높고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파는 줄어들 수 있지만, 물기를 많이 머금은 무거운 눈이나 겨울철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온이 크게 오르내리는 날씨가 나타날 수 있어 건강관리와 시설물 안전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현재 엘니뇨 감시구역의 해수면 온도는 이미 평년보다 2.6℃ 높은 상태다. 강한 엘니뇨로 판단하는 기준인 1.5℃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기상청의 기후예측모델은 올가을 수온이 평년보다 3.0℃ 이상 높아질 가능성도 내다봤다. 한편, 미래에도 한반도 주변 바다는 계속 따뜻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이는 경우에도 21세기 말 해수면 온도는 최근 10년보다 1.5℃ 높아지고, 탄소 감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2.2℃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히말라야 빙하 붕괴가 불러온 초대형 홍수

히말라야 빙하 붕괴가 불러온 초대형 홍수

지난 8월 26일 네팔 북부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네팔과 중국 티베트 지역에 걸쳐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재난은 단순히 많은 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난 홍수가 아니었다. 히말라야의 랑탕 리룽(Langtang Lirung) 산 일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대규모로 붕괴하면서 발생한 산사태가 계곡으로 쏟아져 들어간 것이 직접적인 시작이었다. 이후 물과 얼음, 바위와 토사가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약 100㎞에 걸쳐 하류 지역을 휩쓸었다. ◆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며 시작된 재난 사고는 8월 26일 오전 랑탕 리룽 산 북쪽 사면에서 발생했다. 대규모 빙하와 그 아래 암석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가면서 거대한 암석·빙하 사태(rock-ice avalanche)가 발생했다. 무너진 물질은 높은 산에서 계곡 바닥으로 빠르게 내려오면서 주변의 암석과 흙까지 휩쓸었다. 이 과정에서 랑탕 지역의 지류인 렌데 콜라(Lhende Khola)의 물길을 막았다가 붕괴시키면서 강력한 홍수파가 하류로 퍼져 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빙하와 암석이 계곡 바닥으로 충돌할 때 발생한 충격은 매우 컸다. 유럽우주국(ESA)은 위성 자료 분석을 통해 당시 충격이 규모 5.2의 지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진이 발생해 산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면서 지진과 비슷한 진동이 발생한 것이다. ◆ 물만이 아닌 ‘얼음·바위·토사’가 밀려왔다 이번 홍수가 일반적인 하천 범람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던 이유는 물과 함께 엄청난 양의 얼음과 암석, 토사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붕괴한 빙하와 암석은 하천을 따라 내려오면서 주변의 흙과 돌을 추가로 끌어모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물과 토사의 흐름은 하천 주변의 마을과 도로, 교량, 국경 시설, 수력발전소 등을 차례로 휩쓸었다. 홍수파는 약 100㎞를 이동하면서 더 많은 물과 토사를 끌어들여 피해 규모를 키웠다. 특히 트리슐리강 계곡에는 여러 수력발전 시설이 들어서 있어 피해가 컸다. 당시 약 900명의 수력발전소 근로자가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으며, 일부 근로자들은 갑작스럽게 밀려든 토사에 막힌 터널 안에 고립됐다. 터널 일부는 15~30m 깊이의 토사와 암석에 묻힌 것으로 조사됐다. ◆ 왜 피해를 피하기 어려웠을까? 이번 재난은 발생 속도가 매우 빨랐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요인이다. 산사태로 발생한 홍수파가 계곡을 따라 빠르게 내려오면서 하류 지역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더욱이 히말라야의 깊은 산악 지역은 도로와 통신시설이 제한적이어서 재난 발생 직후 구조대가 현장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홍수에 휩쓸린 도로와 교량이 추가로 파괴되면서 구조와 수색 작업은 더욱 늦어졌다. ◆ 기후변화가 원인일까? 이번 재난을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번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은 랑탕 리룽 일대에서 발생한 빙하·암석 붕괴와 그에 따른 산사태 및 돌발홍수다. 다만 기후변화는 히말라야에서 이 같은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장기적인 위험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 빙하가 녹고 산악 지역의 얼음과 암석을 지탱하던 환경이 변하면서 산사면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 역시 급격한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히말라야 지역에서 빙하와 산악 지형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재난을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 사망 1,400명 육박…실종자 수색 계속 현지 시각 9월 13일 기준, 네팔에서는 1,357명이 숨지고 5,326명이 실종됐다. 13,583명이 구조됐으며 6,827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티베트에서도 43명이 사망하고 519명이 실종돼 네팔과 티베트를 합치면 약 1,400명이 숨지고 5,845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 기후변화 피해에 국제사회 보상 요구 네팔 정부는 이번 대홍수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보고 국제사회에 보상과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중국·미국·인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의 책임을 언급하며 국제적인 기후재정 체계를 통한 지원을 촉구했다. 이번 홍수로 인한 물리적 피해액은 약 2조 4천억 원, 복구·재건에는 약 6조 4천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다. 또한 수력발전시설 피해로 전력 부족이 발생하자 인도는 12월 31일까지 하루 최대 654MW의 전력을 네팔에 공급하기로 했다.

1,700년 전 두개골에 왕관 씌우고 입맞춤

1,700년 전 두개골에 왕관 씌우고 입맞춤

‘성인 유물’이라며 실존 인물의 두개골 공개 … ‘죽음 숭배’ 비난 이어져 최근 이탈리아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 열린 의식에서 성 아가타의 두개골이 드러난 채 숭배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에 퍼져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8월 17일 레오 14세 교황 특사 자격으로 참석한 피에트로 파롤린 바티칸 국무장관과 루이지 렌나 대주교를 비롯한 지역 사제들이 참여한 가운데, 1,700년 전 성 아가타의 두개골을 공개했다. 사제들은 이 두개골을 직접 들고 왕관을 씌운 뒤 절하고 입맞췄다. 해당 두개골은 전통적으로 1급 유물로 분류되는 실존 인물의 뼈이며, 루이지 렌나 대주교가 유물함의 흉상 머리 부분에 두개골을 다시 넣기 전 직접 들고 있는 모습 등이 포착됐다. 이 행사는 아가타의 유물이 시칠리아 도시로 반환된 지 9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성 아가타는 3세기 로마 황제 데키우스의 박해 시기 고문을 받다 251년경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카타니아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녀의 유해는 1040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86년 만인 1126년 8월 17일 시칠리아로 돌아온 이후 현지에 보관돼 왔다. 이 의식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해당 영상이 확산되자 이를 접한 사람들은 사람의 해골이 공개적으로 운반되고, 입맞춤을 받고, 화려한 금빛 유물함 안에 넣어지는 모습에 “섬뜩하다”, “기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는 인간의 유해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을 두고 ‘우상 숭배’, ‘이교도 행위’, ‘죽음 숭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신앙체험기

“삶의 고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삶의 고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1944년생으로,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영암과 진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광주로 올라온 저는 자취를 하며 계림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뒷집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는데, 그때마다 친구의 외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시던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왜 기성교회에 다니냐”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1962년, 제가 자취하던 곳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였습니다. 친구의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가 오신 것을 아시고 친구 집으로 부르셨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전도관에서 심방을 나오신 장시춘 관장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들려주셨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나눠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생명물을 한 컵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저에게 천국에 가려면 전도관에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와 어머니는 광주 계림지관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향취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면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백합꽃 향기와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였습니다. “엄마, 좋은 냄새가 나요”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도 “글쎄 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향취는 예배 시간뿐 아니라 길을 걸을 때도 맡아졌습니다. 신앙촌에 갔을 때나 신축·개축 예배에 참석했을 때도 향취를 맡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나 모임이 있는 곳에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집회를 여시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집회 소식이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단 안은 2층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고, 뒤쪽에는 아픈 몸으로 들것에 실려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하나님께서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집회 때 기회가 닿아 몇 차례 안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눈 안찰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손가락을 잠깐 대셨을 뿐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무겁고 아픈지 깜짝 놀랐지만, 안찰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목포와 광주 제단에서 배 안찰을 두 번 받기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내가 이런 귀한 은혜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969년 결혼한 뒤에는 전남 무안에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조산 위험이 크니 즉시 입원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휴직을 하고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치료와 안정을 취하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 충분히 몸조리를 하지 못한 채 다시 교단에 서야만 했습니다.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에는 신우신염을 앓게 되었습니다. 큰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왼쪽 옆구리가 칼로 도려내는 듯 심하게 아팠습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렇게 고통 속에 살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기장신앙촌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는데, 그날 하나님께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저도 차례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 신장이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래?” 하시더니 아픈 부위를 손등으로 가볍게 툭 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고 나니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후 통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신장 약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안수나 안찰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신우신염 앓을 때 약도 소용없었으나 하나님의 손길에 통증이 씻은 듯 사라져 뇌종양 진단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았지만 수술 없이 건강 되찾아 하나님께 감사드려 생명물로 입관한 아버지 빙그레 미소 짓던 마지막 모습 잊지 못해 그런데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몸에 이상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처음 찾은 병원에서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전남대병원으로 향했고, 정밀 검사 결과 뇌종양 진단을 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보았던 터라 두려움이 더욱 컸습니다. 그 후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매일 약을 복용하고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수술 직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다시 찍었는데,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께서 “약이 아주 잘 들었으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수술 날짜까지 잡았던 상황에서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내다가 경과를 확인하러 몇 년 만에 다시 전남대병원을 찾았습니다. CT 촬영을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사진을 확인하시더니 아주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병에 대한 걱정 없이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일을 겪고 몇 년이 지나, 1995년에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소 마음이 고우셨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집 안에 있는 생명물을 보시고는 “벽장에 놔둬도 여름철에 변하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는 주변 제단 관장님들이 찾아오셔서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입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관을 마치고 수의를 입혀 드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도 “교장 선생님께서 웃고 가신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비록 전도관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마지막 순간 환하게 핀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2000년에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어머니는 목포제단 회장 직분을 맡으시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기성교회에 다니는 동생과 장례 절차를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아들이 나서서 외할머니가 평생 전도관에서 신앙생활을 해오셨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한 덕분에 천부교식 장례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몸이 굳어 팔을 들어 올리면 몸통까지 따라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생명물로 정성껏 씻겨드리자마자 온몸이 노글노글할 정도로 부드럽게 풀렸습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신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생명물로 모실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시어머니께도 제단에 한 번 나와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새벽마다 법문을 외우시던 분이었지만, 제 권유를 받아들이시고 계림제단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제단에 다니신 뒤로는 “그동안 네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내가 직접 다녀보니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함께 생명물로 닦아드린 후 입관을 해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뒤 마주한 시어머니의 얼굴은 생전보다 훨씬 뽀얗게 피어 잠드신 듯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명물의 권능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지금 제 곁에는 기장신앙촌에서 소비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큰딸과 가까이에서 저를 돌봐주며 광주제단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신앙촌에 가면 딸이 반겨주어 즐겁고, 집에서는 같은 길을 가는 아들이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이제 제게 남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막내딸도 하나님을 깨닫고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처럼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나온 시간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진 생명물의 은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진 생명물의 은혜

(지난호에 이어) 신앙촌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생명물을 축복해 주실 때면,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집무실 앞마당에 물을 받아 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3층 창가에서 마당을 향해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 집무실 건너편 건물에서 야간 작업을 하며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모두 잠든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그때 들었던 축복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합니다. 밤새 이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해 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밤새 끊이지 않던 하나님의 축복 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1974년, 군산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받은 생명물을 챙겨 곧바로 군산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집에 있던 생명물로 이미 깨끗하게 피어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제가 가져간 생명물을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를 석관으로 옮겨 모실 때도 그 위에 생명물을 부어드렸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얼마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꿈에 아버지께서 나타나셔서 당신의 발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깨끗해 보였는데, 제가 얼른 알아보지 못하자 아버지께서는 그 꿈속에서 몇 번이나 발을 보라고 하시며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잘 보이지 않던 반점 몇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 어머니께 아버지 산소를 한번 살펴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알아보니 생전에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던 분이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산소를 찾아와 술을 부으며 하소연을 하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산소로 달려가 생명물을 흠뻑 부어 드리고 오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업무차 하나님 집무실에 갔을 때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물통에 물을 담아 오라 하시며 생명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축복받은 생명물을 아버지 묘소에 정성껏 부어 드리고 돌아오며,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1980년대에는 하나님께서 합창을 많이 장려하셨습니다. 덕소와 소사신앙촌 합창단도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장신앙촌으로 내려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합창 경연을 벌이곤 했습니다. 198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기연주회를 준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단원들의 식사와 생활까지 하나하나 살펴 주셨습니다. 연주회 당일 무대 옆에서 순서에 맞춰 단원들의 무대 입장을 돕고, 하나님과 단원들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1990년 2월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뒤, 생명물의 권능이 예전과 같을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무렵 기장 죽성에 사시던 한 분이 사고로 험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명물로 고인을 씻겨 드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생명물에 하나님의 신이 변함없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생명물의 권능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70세에 신앙촌에 입주하셔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양로원에 들어가신 지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생명물로 씻겨 드린 어머니의 모습은 살아 계실 때보다도 몸이 더 부드럽고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명물의 은혜 가운데 어머니를 편안히 보내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1994년 저는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촌상회를 개업하기 위해 점포 자리를 찾아다녔는데, 한 달 동안 어디를 가든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곁에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소비조합 활동은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다해 일할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1999년 2월, 저는 진주 제단으로 첫 교역자 발령을 받았습니다. 소비조합을 거쳐 교역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학창 시절 군산전도관에서 하나님께서 ‘나가서 제단을 살펴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교역자가 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제게 앞으로 걸어갈 길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임 첫날 밤에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밤새 열기가 가시지 않았고,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는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체험한 뜨거운 은혜가 불성신의 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2015년경 천안제단에 처음 부임하던 날, 이미 말라 죽은 커다란 고목이 제단 안쪽을 가로막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자칫 쓰러지면 아래쪽 주택이나 제단 건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한 나무였습니다. 그 후 나무를 없애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워낙 크고 위험해 중장비 기사조차 작업을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제단으로 올라오는 길에 여느 때처럼 그 나무를 올려다보고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랫집 부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나무 어디 갔어요?”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 보니 정말 나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올라와 있던 아랫집 부부를 보며 저도 모르게 “나무 어디 갔어요?” 하고 되묻자, 부부는 “우리가 물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셋이서 함께 화단 쪽을 살펴보니, 거대한 고목은 썩은 뿌리 위에서 꺾여 다른 가지들과 세 갈래로 나란히 겹쳐진 채 이웃집 담과 접시꽃 사이에 누워 있었습니다. 담과의 거리는 불과 10cm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랫집 부부는 “하나님 믿는 교회라 다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역시 하나님께서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지켜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제단의 고목이 쓰러졌지만, 이웃집 담과 불과 10cm를 남겨두고 안전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느껴 교역자가 된 뒤에는 신기하게도 입안에 늘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입안에 단물이 고이곤 했는데, 특히 새교인들과 함께 찬송을 부를 때면 그 맛이 더욱 진해졌습니다. 천안에서 시무할 때는 그것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천안제단에는 매주 새교인들이 전도되어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몇 주 동안 예배 시간 내내 생글생글 웃으시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이 그렇게 기쁘신지 여쭈어보니, “사진 속에 있는 분이 우릴 보고 웃고 계세요. 제단에 다녀가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장례가 나면 늘 곁에서 돕기만 하다가, 2025년 6월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서귀포 교인의 장례를 처음으로 직접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밤 12시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언니가 운명하셨다며 동생분이 천부교식 장례를 부탁해 오셨습니다. 생전에 천부교식 장례를 원하셨던 고인의 뜻을 따르겠다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처음으로 직접 주관하는 장례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저는 입관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려보았습니다. 저녁 무렵 서귀포에 도착해 제주 관장님과 교인분들과 함께 입관을 진행했습니다. 신앙촌에서 가져간 생명물을 수건에 적셔 고인의 얼굴을 덮어 드린 뒤 잠시 후 수건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피부가 부드럽게 풀려 뽀얗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고, 곁에 있던 분들도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제주 관장님은 유가족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부드럽게 풀린 고인의 팔을 직접 들어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한쪽 다리가 ‘ㄱ’ 자로 심하게 굽어 있어 관에 모시기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생명물로 씻겨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굽었던 다리가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원 직원이 “조금 전에 가져온 그 물로 이렇게 된 겁니까?” 하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장례를 돕던 다른 직원들도 반듯하게 펴진 다리를 보고 “도대체 무슨 물입니까?” 하고 거듭 물었습니다. 제주 관장님은 “신앙촌에서 가져온 생명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이라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장례를 직접 주관하면서 생명물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금 마음 깊이 느꼈고, 고인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귀포제단에서 처음 장례를 주관하며 생명물로 고인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굽었던 다리가 펴지는 모습을 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 일은 장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귀포제단에서 소비조합 일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2년 동안 저는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과 설렘,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이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저 천국 들어가는 날 주 앞에 가리라”였습니다. 그 가사처럼 하나님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겸손이라 여겼던 행동 속에도 제 고집이 있었고, 게으르게 살아온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도 제 뜻을 앞세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저를 교역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생명물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은혜를 간직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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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집회에서 수백만이 은혜 입어

70년 전,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크신 은혜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시며 내려주신 그 은혜는 인간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특집 기사에서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의 순간들을 되새기며, 그 속에서 펼쳐진 놀라운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955. 1.1. 하나님 초청집회 ■ 하나님 초청집회에서 시작된 은혜 1955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 땅에서 시작된 첫 집회였다. 이후 서울 삼청동 감리교회, 마산 문창교회, 소사 중앙교회, 서울 동대문 창신교회, 청주 외덕교회, 서울 용산 도원동교회 등에서도 집회가 이어졌다. 이때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깊은 감동과 은혜를 체험하며, 병자들이 치유되는 기적과 이사를 직접 목격했다. 왕십리 장로교회에 다니던 조온순 승사(기장신앙촌)는 목사로부터 무학 장로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박태선 장로님 집회 소식을 들었다. 성신의 역사가 불일 듯하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뜬다는 이야기에 조 승사는 곧바로 집회에 참석했다. “교회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맨 앞자리로 가서 찬송을 부를 때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나더니 이내 백합꽃 향기가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그 향기를 맡는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조 승사는 예배를 마치고 안찰을 받을 때도 기쁨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안찰을 받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며 기쁨이 가득 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몸 전체가 둥실 떠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1955년은 6.25 전쟁 직후로 변변한 교회 건물이 없던 시절이었다. 서울 청량리에 정착한 승운표 퇴임관장은 보린장로교회에 다니며 교회 확장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들어 교회를 확장하려 했지만, 신축 비용 마련이 어려웠습니다. 부흥 강사를 초청해 집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아 헌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직회에서 당시 유명하신 박태선 장로님을 초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 집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임옥산 집사(기장신앙촌)는 창신동 장로교회와 도원동 장로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연이어 참석하며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다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하셨을 때, 꼽추의 등이 펴지고 벙어리의 말문이 열리는 것을 봤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른 봄 추위 속에서도 몸이 뜨겁다며 불성신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 집사는 이 모든 일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박말임 승사(마산교회)는 마산 문창 장로교회에 출석하던 중, 김석찬 목사가 서울에서 박태선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신경통이 나았다며 강단 위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후 박 승사는 문창교회에서 열린 박 장로님 초청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직접 체험했다. “찬송을 부를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르고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뒤에는 마산에 있는 중앙 장로교회, 신마산 장로교회에서도 박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열었습니다.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 때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의 말문이 트이는 등의 기사이적을 보고 은혜를 체험한 각 교회의 교인들은 박 장로님의 부흥집회로 몰려들었습니다.” 1955.3.26. 전국 순회집회 ■ 1955년 전국으로 퍼진 순회집회 1955년 3월 2일, HLKA(서울중앙방송국, KBS 전신) 뉴스는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 놀라운 기사와 이적 소식을 전했다.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서 꼽추, 앉은뱅이, 장님, 조막손 등 불구자들이 완치되었다는 보도였다. 또한, 고름투성이 환자들로 가득한 집회장이 오히려 기막힌 향취로 가득 차고, 하늘에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집회장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더 이상 건물 안에서 집회를 열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천막을 동원해 전국 순회집회를 시작하셨다. 남산집회를 시작으로 8개월 동안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린 15회의 집회에는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참석했다. 남산집회, 첫 순회집회의 시작 어느 날 전봇대에 붙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 집회’ 포스터를 본 신성선 승사(덕소교회)는 시어머니와 함께 남산으로 향했다.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시며 찬송가 받침대를 내리치실 때마다 뽀얀 것이 풀썩풀썩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참을 찬송하시다가 받침대를 치시니 이번에는 빨간 불덩이 같은 것이 튀어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 저렇게 불을 많이 뿜어내시니까 사람들이 불의 사자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공설운동장집회, 기성교회의 변화 1955년 5월, 김영애 권사(대신교회)는 부산 공설운동장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체험했다. “이웃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해 형언할 수 없는 좋은 향기를 맡았고, 병이 나았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동일교회 목사가 박 장로님을 비난하며, 앞으로 박 장로님 집회에 가는 사람들을 교적부에서 제명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신광교회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집회 후 저는 하나님을 중상 모략하는 동일교회에 발을 끊었고, 동일교회는 교인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용산 군인교회집회, 향취의 은혜 집회 참석자들은 병자들이 낫고 향취를 맡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되었다. 정봉학 승사(기장신앙촌)는 용산 군인교회집회에서 잊지 못할 은혜를 체험했다. “예배 시작 전, 윤치영 장관은 암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부인이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그 자리에서 편육 한 사발을 다 먹었으며, 자신도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향기가 확 하고 코로 들어오더니 다시 맡으려고 했지만 사라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설교와 찬송 인도 중에도 향취가 났었는데, 집에 돌아가 기도를 드릴 때도 그 향취가 다시 진동했습니다.” 한강 모래사장집회, 병자들이 치유돼 한강 모래사장집회에 참석한 함복득 권사(기장신앙촌)는 들것에 실려 온 관절염 환자와 문둥병 환자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박 장로님께서 힘차게 찬송을 인도하신 후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시자, 집회장은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의 감사와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특히 하얀 저고리를 입은 꼽추 아가씨는 저고리가 불룩할 정도로 등뼈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펴진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박양진 승사(기장신앙촌)는 서울 성남중학교 재학시절,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 소식을 듣고 한강집회에 참석했다. “당시 학교에서 학생들의 주된 화젯거리는 자신들의 이웃에 살던 벙어리, 앉은뱅이, 장님, 귀머거리 등의 환자들이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 참석해 완쾌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친구와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자 여기저기서 병자들이 일어나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직접 보았습니다. 벙어리가 단상으로 올라와 찬송을 부를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인천 동산중학교집회, 믿음의 전환점 정인화 권사(인천교회)는 어릴 적 목사가 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라 믿으며 성경학교에 열심히 다녔지만, 인천 동산중학교집회에 참석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하루는 목사가, 전날 인천의 동산중학교 교정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갔던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며 ‘박태선 장로는 집회에서 죄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죄가 어떻게 탈 수 있다는 말이냐? 죄가 타는 물체냐? 혹 물체라 하더라도 불이 있어야 타는데, 물체도 불도 없는데 어떻게 탄단 말이냐?’라며 박 장로님을 비난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오히려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박 장로님의 말씀은 은혜롭고 신비로웠습니다. 비가 와 질퍽한 땅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는 기성교회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엄청난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광주공원집회, 이슬 같은 은혜와 향취 박정순 권사(덕소교회)는 광주공원집회에서 놀라운 체험을 했다. “박 장로님께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인도하시자,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아주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향기로운 냄새는 하나님이 주시는 향기라고 하시며 은혜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음 날 집회에서는 안개처럼 뽀얀 것이 집회장을 덮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광경을 보던 중, 박 장로님께서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은혜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1955. 12. 24. 원효로전도관 ■ 천부교 최초의 교회, 원효로전도관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몰려들자, 기성교회에서는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기독교연합회는 하나님의 천막집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목사들은 교인들이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이로 인해 집회장을 가득 메웠던 수많은 사람들은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회에서 체험한 은혜와 기쁨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그 은혜를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1955년 12월,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원효로에 천부교 최초의 교회인 전도관을 세우셨다. 조남준 권사(기장신앙촌)는 원효로전도관이 세워지게 된 과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교인들이 하나님 은혜에 갈급한 나머지 수소문하여 원효로에 수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조그만 기도처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짓게 된 곳이 원효로 전도관이었습니다.” 김춘산 권사(소사교회)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여러 집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체험했다. 박 장로님이 가시는 곳마다 은혜가 내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기성교회를 떠나 원효로 구제단을 찾게 되었다. “원효로 구제단은 집회에서 받은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마음속 기쁨이 끝없이 샘솟아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어느 주일 예배 때는 온몸이 뜨거워졌다가 시원해지며 몸의 무게가 사라지는 듯한 체험도 했습니다. 이것이 불성신의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55년은 하나님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며 천부교의 역사가 펼쳐진 시기였다. 은혜의 발자취가 된 여러 집회와 원효로전도관은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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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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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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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묻다] 비현실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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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핍박의 고장에 은혜의 집회…하나님이 기뻐하심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행복한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행복한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10년 전 이맘때, 저희끼리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10주년, 20주년 되는 언니들은 다 엄청난 선배님으로 보였는데 왜 우리가 벌써 10주년일까?” 그리고 20주년 때는 다를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더욱 성숙해져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20주년이 된 오늘, 여전히 어릴 때 상상해 온 의젓한 어른이 되진 못했지만,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벌써 20주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놓지 않으시고,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셨던 많은 순간이 떠오릅니다.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매 순간까지, 귀한 시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삶의 고단한 여정에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지주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는 이바구 2주년 호의 축사를 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지주는 있을 수 있지만 저희의 지주는 최고의 신인 하나님임을 되새기면서, 저희는 진짜 하나님을 따르기에 행복된 자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들은 죄만 안 지으면 행복된 자야. 올바른 길에 섰어. 진짜 하나님을 따라. 죄를 걸머져 주는 어린양을 따라.” 너희는 죄만 안 지으면 행복된 자라는 하나님 말씀을 떠올리며 앞으로 더욱 행복한 입사생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더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더

저는 요즘 추석을 앞두고 간장 선물세트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판매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열심히 영업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예전처럼 주문이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기보다 직접 발로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영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 먼저 전단지부터 준비했습니다. 이후 7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전단지를 나눠드리고 샘플도 함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가 영업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당하게 나서는 것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고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밝게 인사하고, 제품을 짧고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상대방이 바쁘다고 하면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5분만 시간 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짧은 시간이 인연이 되고 판매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은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전단지만 건네기보다 명함을 함께 부착해 정성껏 준비하고, 필요하면 샘플도 함께 드립니다. 고객이 부담 없이 제품을 직접 접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전단지를 배부할 때도 무작정 많은 사람에게 주기보다 제품이 필요한 곳을 찾아갑니다. 보험회사에 가면 팀장이나 지점장, 총무처럼 물품을 결정할 수 있는 분들을 먼저 찾아갑니다. 기관도 작은 곳만 찾아가기보다 규모가 있는 곳부터 찾아갑니다. 큰 곳에서 주문을 받으면 또 다른 곳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문이 생각만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계속 움직이다 보니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장 가격이 인상된다는 소식을 듣고 신앙촌 간장을 사용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연락했습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신앙촌 간장은 고객들의 부담을 생각해 인상 폭을 크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고객들도 가격이 그 정도면 괜찮다며 이해해 주셨고, 필요한 물량을 미리 주문하는 곳도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큰 주문을 기다리기보다 작은 주문이라도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전단지를 배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체국에 전단지를 두고 왔는데, 나중에 한 업체에서 주문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알고 전화하셨느냐고 물었더니 우체국 보험에 갔다가 전단지를 보고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간 곳도 아니었는데 전단지 한 장이 다른 곳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때 ‘정말 뿌리는 자가 거두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단지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꾸준히 알려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속한 지역의 소장님께서 직접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영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힘을 얻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제 그만 배부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소장님께서 여전히 전단지를 배부하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렇게 직접 부딪혀 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일단 움직이면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걱정하기보다 먼저 찾아가겠습니다. 안 뿌린 사람은 하나도 거둘 수 없습니다.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뿌리다 보면 또 다른 결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내일도 힘내서 영업하겠습니다.

변함없는 소망

변함없는 소망

입사생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신앙촌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설렘과 감사는 지금도 제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만 따라가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의 마음도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처음의 마음을 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익숙해졌고, 처음에는 감사했던 일들도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걱정 같은 현실의 일들이 조금씩 마음을 채우면서, 하나님을 향했던 처음의 감사와 간절함도 어느 순간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랑 속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구원의 소망을 품고 함께 걸어온 언니들과 동생들, 친구들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에도 다시 힘을 낼 수 있었고, 여러 경험과 배움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올 수 있었습니다.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뿐만 아니라 힘들고 흔들렸던 시간까지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과정이기에, 지나온 모든 시간이 지금도 제게는 참 감사하고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돌아보며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 하나님을 향했던 마음을 조금씩 잊어갈 때 어느새 멀어져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저를 이 길로 불러 주셨는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고 기뻤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도 참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제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같은 구원의 소망을 품고 함께 걸어온 시간이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 10년은 단지 지나온 세월을 나타내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제 모습을 돌아보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날, 그때의 저도 변함없이 구원의 소망을 품고 이 길을 걷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흔들리고 힘든 순간이 있더라도 처음 하나님을 향했던 마음을 다시 떠올리며, 끝까지 구원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저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며,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생대담]아이들의 웃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한 따뜻한 기억

[생생대담]아이들의 웃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한 따뜻한 기억

1957년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신 이후 신앙촌에는 교육 환경도 함께 마련되었다. 소사신앙촌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세워졌으며,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서도 탁아소와 유치원이 운영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성장했다. 이번 생생대담은 신앙촌 유치원 마지막 졸업생인 황순정 관장의 사회로 당시에 아이들을 돌봐 주었던 강영숙 권사와 윤정자 권사를 초청해 신앙촌 유치원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황순정 관장: 권사님들께서는 어떻게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시게 되셨나요? 윤정자 권사: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살다가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 왔습니다. 1974년 탁아소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해서 지원했습니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서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강영숙 권사: 저는 덕소신앙촌에 살다가 기장신앙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기장신앙촌에 유치원이 생기면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맡은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황순정 관장: 당시 유치원 아이들을 지금도 기억하시나요? 강영숙 권사: 거의 기억하는 편입니다. 사회자인 황순정 관장님을 비롯해 변성아, 정효진, 임혜원, 권정일, 김혜영 관장님 등 많은 학생관장님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황순정 관장: 당시 신앙촌 유치원은 어느 정도의 규모였나요? 강영숙 권사: 1980년대 당시 기장은 양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신앙촌 유치원은 양산군에서 두 번째로 큰 유치원이었습니다. 원생이 약 130명 정도였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유치원협회 관계자들이 방문하면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황순정 관장: 선생님의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강영숙 권사: 부모님들이 출근하면서 아침 7시부터 아이들을 맡기셨기 때문에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부터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모두 믿는 가정의 아이들이라 서로 잘 어울렸고, 착하고 순해서 생활지도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황순정 관장: 요즘 표현으로 ‘금쪽이’ 같은 아이들은 없었나요? 강영숙 권사: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돌봐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순하고 서로 잘 지내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황순정 관장: 식사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강영숙 권사: 신앙촌 유치원에는 자체 주방이 있어서 급식을 직접 했습니다. 간식도 모두 직접 준비했고, 아이들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급식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황순정 관장: 당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치원은 반일제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점심도 먹지 않고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앙촌은 자체 급식과 종일 보육을 운영했다는 점이 시대를 앞서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순정 관장: 하나님께서는 유치원에 자주 오셨나요? 강영숙 권사: 여러 번 오셔서 아이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유치원의 방마다 다니시며 아이들을 보시고 “예쁘다, 곱다”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율동도 보여 드렸고, 아이들을 잘 돌보라고 하시며 하사금과 운영비도 내려 주셨습니다. 황순정 관장: 신앙촌에서 생활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은혜 체험이 있으신가요? 윤정자 권사: 지금의 신설세미나실 앞쪽에 우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물을 마셔 보라고 하셨습니다. 바다와 가까이 있어 우물이 짜서 먹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뒤 다시 마셔 보니 전혀 짜지 않았습니다. 여러 곳의 물을 축복하셔서 생명물로 만들어 주셨던 일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황순정 관장: 신앙촌에서 자유율법을 지키며 살아오시면서 가장 감사한 점은 무엇인가요? 강영숙 권사: 신앙촌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평안하게 살아온 것이 가장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학생 여러분도 자유율법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늘 기억하며 하나님을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황순정 관장: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윤정자 권사: 요즘 신앙촌에 오는 학생들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신앙촌에 자주 오게 되면 하나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끝까지 하나님을 잘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영숙 권사: 사춘기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흔들릴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유율법을 꼭 지켜서 하나님께서 예뻐하시는 학생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하고, 단정한 생활과 바른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가까이했으면 합니다. 학생관장들이 들려주는 신앙촌 유치원의 추억 임혜원 학생관장 “저는 여섯 살 때 24시간 유치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를 많이 찾을 나이였지만 이상하게 엄마가 보고 싶어서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그 빈자리를 채워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성아 학생관장 “어릴 때는 늘 밝게 뛰어놀았고 친구들과도 크게 다투지 않으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기쁨과 평안으로 지켜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의 빈자리가 은혜와 기쁨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효진 학생관장 “유치원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오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만나러 자주 오셨는데, 오실 때마다 토마토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하나님께서는 얼굴만 한 커다란 토마토를 하나씩 쥐어 주셨습니다. 그 토마토를 받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주니어

즐거운 체험과 따뜻한 만남이 함께한 학생축복일

즐거운 체험과 따뜻한 만남이 함께한 학생축복일

학생들의 관심과 재능을 살린 동아리 활동으로 즐거운 시간 가져 중3 학생들, 입사생 멘토들과 소통하며 진로와 신앙에 대한 궁금증 풀어 9월 학생축복일을 맞아 학생들이 각자의 관심 분야를 경험하고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월 5일 오후에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직접 체험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DIY 연구소에서는 ‘디폼블럭 토마토&거북이 클리커 만들기’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알록달록한 블록을 하나씩 맞추며 클리커를 완성했고, 디저트 연구소에서는 ‘왁뿌빵 만들기’ 체험이 있었다. 학생들은 생크림과 초코 시럽을 활용해 원하는 모양으로 빵을 꾸미며 자신만의 디저트를 완성했다. 별빛치어단에서는 직접 의상과 음악을 선택하며 12월의 공연을 준비했고, 오디션을 통해 실력을 쌓아갔다. 음악 해설회에서는 작은별 변주곡 등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음악을 가까이 접했다. 중1, 2 학생들은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3 학생들은 별도로 마련된 캠프에 참여해 입사생 멘토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진로와 신앙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가영 양(김천교회)은 “평소 신앙체험기를 읽어도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언니들이 생명물과 이슬성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줘서 궁금했던 점이 풀렸어요. 앞으로 체험기를 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예빈 양(소사교회)은 “중3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데, 오늘은 SANC식품여고에 다녔던 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식품고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멘토로 참여한 입사생 이유경 씨와 조가온 씨는 “중3 학생들이 순수하고 밝아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오히려 제가 힐링을 받고 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정말 착하고 이야기를 하면 생각보다 잘 받아들여 줘서 좋았어요.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저도 함께하면서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6일 학생축복일 예배에서 류수정 관장(노량진교회)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았다. 류수정 관장은 “하나님께서는 1955년 3월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면서 이슬성신의 은혜를 내려 사람들이 직접 보고, 향취를 맡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초창기 집회에서는 은혜받은 많은 사람이 병이 낫거나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등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경험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체험하게 하신 후, 이것이 성경 호세아서 14장 5절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이며 하나님의 신이라는 사실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을 내리는 존재가 바로 성경에 예언된 감람나무이며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류 관장은 “우리는 이슬성신의 권능과 하나님 말씀을 통해 참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막연한 믿음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참하나님을 기쁘게 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설교했다.

관세는 왜 계속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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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1초 말씀을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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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칭그림 완성하기’ 정답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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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화 권사님 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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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0만 년 전 인류의 불 사용 시기, 더 앞당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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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발견된 오래된 불, 자연의 불을 생활로 가져오다 불에 탄 뼈로 밝힌 불 사용 시기의 새로운 증거 초기 인류는 약 20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약 107만~179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원더워크 동굴에 살았던 올빼미들이 남긴 수백 개의 작은 화석 뼈를 조사했다. 이 뼈들은 한때 동굴에 살았던 올빼미가 먹이를 먹은 뒤 배설물과 함께 남긴 것으로, 오랜 세월 동굴 바닥에 자연스럽게 쌓여 형성됐다. 연구진이 이 뼈에 주목한 이유는 인류 조상이 먹고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뼈에 남은 흔적은 인간 활동에 의해 뒤섞이지 않은, 당시 동굴 환경을 보여주는 ‘시간의 기록’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뼈에 특정한 빛을 비춰 불에 탄 흔적을 찾아내는 발광 분석법과 열에 의해 변한 뼈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는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법(FTIR)을 함께 사용했다. 그 결과, 약 107만~179만 년 전 동굴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불이 사용됐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특히 불에 탄 뼈는 동굴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연구진은 자연 산불이 우연히 동굴 안까지 번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초기 인류가 자연에서 얻은 불을 동굴 안으로 가져와 꺼지지 않도록 유지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초기 인류가 직접 불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초기 인류가 번개나 산불 등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인류가 언제부터 불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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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웃음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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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을 때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별로 재미있지 않은데도 분위기에 맞춰 “하하하…” 하고 웃어본 적은 없을까? 우리는 두 웃음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뇌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웃음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다. 재미있거나 즐거워서 저절로 나오는 ‘자발적 웃음’과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어색한 분위기를 넘기려고 일부러 짓는 ‘의도적 웃음’이다. 그렇다면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목소리다. 진짜로 웃을 때는 평소 말할 때보다 혀와 성대가 편안하게 풀리면서 웃음소리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반대로 일부러 웃을 때는 말을 할 때처럼 혀와 성대를 움직이기 때문에 평소 목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뇌의 움직임도 다르다. 그 결과 감정에서 시작되는 웃음과 일부러 만들어 내는 웃음은 출발하는 뇌 회로 자체가 달랐다. 재미있는 것을 보고 웃을 때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먼저 움직인다. ‘재미있다’, ‘즐겁다’는 감정이 생긴 뒤 그 신호가 뇌간으로 전달되고, 얼굴 근육과 입, 성대가 움직이면서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웃을 때는 ‘지금 웃어야겠다’고 판단한 뒤 웃는 동작을 직접 만들어 내는 뇌 회로가 움직인다. 그래서 연구팀은 의도적 웃음을 감정이라기보다 ‘운동’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정말 재미있어서 웃을 때는 감정이 몸을 움직이고, 재미있지 않아도 웃어야 할 때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 셈이다.

왜 모기는 나만 무는 것 같을까?

뇌의 또 다른 기준

알록달록 파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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