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가득한 추수감사절

기쁨이 가득한 추수감사절

“마음과 정성 모아 전도에 힘쓰겠습니다” 2019 추수감사절 예배를 위해 신앙촌에 온 미주교인들을 위한 행사가 11월 11일 신앙촌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도의 방향’을 주제로 한 특강, 뉴욕 천부교회 임원 특순, 레크리에이션, 기념촬영 등 다양한 순서가 있었다. 고숙자 권사(뉴욕교회)는 “천부교 체육대회 사진전을 보고 그날의 기쁨과 환희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다음에는 저도 함께 참석해서 선수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미주교인 행사 특강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됐어요. 특히 자유율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아 전도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앞으로 미주교인들도 마음을 모아 전도에 힘쓰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박춘실 권사(워싱턴교회)는 “늘 그립고 고향 같은 신앙촌에 오니까 기쁘고 감사합니다. 미주교인 행사 때 싱글벙글 노래 부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지금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귀한 모임을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 예배 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온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 예배 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추수감사절을 맞아 신앙촌을 찾은 교인들의 가족이 많았다. 3대 가족이 모인 양금준 승사(신앙촌)는 미국 LA에서 20년 만에 한국에 온 손녀딸 오지은 씨가 이번 추수감사절에 함께해서 더욱 특별하다고 했다. “올해 90세인데 아들, 딸, 손녀딸까지 3대가 다 모여서 내 평생 가장 감사한 절기입니다.” 장남 박창균 씨는 “신앙촌에 오면 매번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에서 행복하게 신앙 생활하시는 어머님 모습에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라고 했다. 막내딸 박혜진 씨도 “올곧게 신앙 생활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저희들의 생각이나 행동도 그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어머니의 삶에서 행복이 느껴져서 더욱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손녀딸 오지은 씨는 “추수감사절 절기에 맞춰 20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할머니가 잘 지내시는 것 같아 기뻐요. 또 신앙촌이 현대적으로 더 아름답게 발전한 것 같아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미국에 가서도 엄마와 함께 예배에 잘 참석하겠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양금준 승사는 “3남매와 손녀딸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이 길을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소사교회 유재영 승사(80세)도 이번 추수감사절에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신앙촌을 방문했다. 아들 유승호 씨는 신앙촌의 다양한 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현재 소사매장에 근무하고 있다. 며느리 김순실 씨는 결혼 후 시부모님으로부터 천부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천부교 교리가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시온고 교사인 김순실 씨는 “시부모님께서 말씀해주신 천부교 교리 자유율법에 관한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면이 자유율법을 알고 난 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하는 지금이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신앙촌에 오면 늘 즐겁고 기쁘다는 두 손자 유영찬(중1), 영제(초5)군 역시 소사교회 학생회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신앙을 키우고 있다. 유재영 승사는 “3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가족들과 함께 신앙촌에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동두천교회의 손능옥 권사는 이번 추수감사절 그 바람을 이루었다. 아들, 손녀와 함께 절기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30여 년 만에 신앙촌에 와서 설레고 반가운 마음이라는 아들 박영수 씨는 “어렸을 때 교회에 가면 큰 종이에 찬송가 가사를 써서 한 장씩 넘기며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많이 발전한 신앙촌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어머니가 교회에서 즐겁게 활동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우리 가족은 어머니 건강이 신앙생활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손 권사는 “앞으로 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신앙촌의 모든 것이 축복이네요”

“신앙촌의 모든 것이 축복이네요”

신앙촌 더욱 발전하길 바라 시인이자 수필가, 대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은자 작가가 이길숙 사장(신앙촌상회 삼선교점)의 초대로 신앙촌을 방문했다. 평소 요구르트 런을 즐겨마신다는 김 작가는 “작품 집필 기간에는 신경을 많이 써서 위 상태가 예민해지는데 요구르트 런을 먹으면 속이 무척 편안해지더라고요”라고 했다. 신앙촌에 도착해 물류부 매장을 둘러보던 김 작가는 이길숙 사장에게 어떻게 하면 제품을 이토록 꼼꼼하게 만들 수 있냐고 질문했다가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신앙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하셔서 무척 놀랐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신앙촌에 사람들이 모이는 큰 힘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에 영감을 얻을까 해서 신앙촌에 왔다가 그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는 김 작가는 “아름다운 산책로와 시온 여성 합창단의 영혼을 울리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축복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체육대회의 감동 잊지 못해 또 왔어요”

“체육대회의 감동 잊지 못해 또 왔어요”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지난달에 열린 천부교 체육대회 때 참석한 새교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인천교회 이인순 권사가 전도한 새교인 장연숙 씨는 “체육대회 때 400명이 나와서 체조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어요. 계주 달리기도 열심히 응원했어요. 그때의 놀라움과 감동을 잊지 못해 다시 한번 추수감사절에 왔습니다”라고 했다. 이 권사는 “새교인들이 천부교 체육대회에서 제가 체조 선수로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꼭 가서 응원하겠다’고 하셔서 더 열심히 체조 연습을 했어요. 후보 선수였다가 정식 선수로 뽑혀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며 웃었다. 신혜숙 씨는 “이번이 신앙촌 방문 세 번째 방문인데 올 때마다 교인들, 손님들을 위해 얼마나 정성껏 준비하고 대접하는지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신앙촌에서 느낀 기쁨, 알리고 싶어

신앙촌에서 느낀 기쁨, 알리고 싶어

“신앙촌에 지인들 한 번 모시고 가면 다들 너무 좋다면서 다음에도 초대해달라고하세요. 그럴 땐 제가 다 뿌듯하죠.” 진해교회 새교인 임순전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촌 알림이 역할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도 15명을 초대하여 추수감사절 예배에 함께 참석했다. “일단 신앙촌 제품 좋다는 것을 모두에게 소문내고 싶었어요. 간장, 두부, 요구르트는 물론 속옷, 이불까지 정말 훌륭하잖아요. 한 번 써보면 신앙촌 제품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다들 놀래요” 또 신앙촌은 공기도 맑고, 경관이 아름다운 데다가 식사까지 정성껏 마련해주셔서 지인들이 무척 고마워한다고 했다. 지난달 천부교 체육대회 건강 체조 선수로 참가할 만큼 적극적으로 신앙촌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임순전 씨는 “앞으로도 항상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인들과 신앙촌에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사진전으로 보는 2019 천부교 체육대회

사진전으로 보는 2019 천부교 체육대회

신앙촌 맛길 로비 전시장에서는 ‘2019 천부교 체육대회 사진전’이 열려 추수감사절에 온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사진 전시회에서는 체육대회 기간 동안 체력 단련에 힘쓰는 청백군 선수들의 모습부터 흥미진진했던 응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선수들의 모습까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당시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전시회는 천부교 체육대회가 청,백군 양팀 모두 최선을 다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기회이자 선의의 경쟁을 통해 하나 되는 기쁨의 축제임을 알렸다. 부산에서 온 김영혜 씨는 “저도 체육대회 때 선수로 참가했는데 어쩜 사진을 이리도 잘 찍었는지 선수들의 표정에서 기쁨, 환희, 아쉬움, 긴장이 그대로 전해져서 관람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라고 했다. 400명 체조 선수 가운데 본인을 찾았다며기뻐한 이남례 권사(인천교회)는 “아! 여기 있잖아. 나야! 이 많은 체조선수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이 감사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들 건강해졌다고 모일 때마다 이야기하며 웃음꽃이 피어요”라고 했다. 또 행사장 입구에는 1956년부터 ‘전국 전도관 대항 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전도관 체육대회 당시의 영상이 방영되어 눈길을 끌었다. 최복희 권사(전농교회)는 “오재미라고 아세요? 콩주머니를 말하는데 그걸 던져서 박을 터뜨리는 거예요. 박 안에는 색실이나 색종이를 넣고 ‘우승’같은 글씨도 들어있었죠. 또 밀가루가 가득한 접시에 사탕을 놓고 손 안 대고 먹는 경기도 있었는데… 우리 어린 시절엔 저런 경기를 많이 했어요. 영상을 보니까 옛 추억이 생각나네요”라고 했다.

전국에서 교회 신축 계속 이어져

창조는 없는 중에서 만물을 있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

구원을 주시는 감람나무 하나님

전도 활성화 교육과 토론

11월 10일, 2019 추수감사절 예배

교역자 인사

신앙촌식품(주), 런 공식 카페 개설

신앙체험기

“이것이 바로 감람나무가 주시는 은혜로구나!”

“이것이 바로 감람나무가 주시는 은혜로구나!”

지난 3월 학생축복일에 신앙촌에서 아이들이 참새떼처럼 종알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배 마치고 2부 행사로 딸기 축제를 열었는데, 제법 야무지게 딸기 자르고 생크림을 올려 조물조물 간식 만들고 열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통방통했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같이 주변을 치워 주고 의자 정리해 주면서 자꾸만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리 예쁜데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예쁠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들처럼 열 살 안팎일 때 “꼬불꼬불 산길 나 혼자 걸어도 하나님과 같이 가면 무섭지 않네~” 찬송을 부르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6·25 전정 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 안 가 젖먹이 동생도 죽었을 때 어린 마음에도 너무 슬프고 아파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 생겨 엄한 아버지 심부름으로 혼자서 산을 넘어 다니다 무섬증이 들면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를 산골이 떠나가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학교에 저를 업어다 주고 데려오실 만큼 아끼고 사랑해 주셨지만 6 · 25 전쟁 때 공산당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때 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젖먹이 동생은 살아남아 애처롭게 울어댔는데 얼마 안 가 그 동생마저 죽었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슬프고 아팠습니다. 그 후 집에 들어온 새엄마를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됐습니다. 찬송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혼자 가는 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을 뵙고 처음으로 은혜를 알게 된 것은 소사신앙촌에서 예배드렸던 때였습니다. 그때가 1960년, 제 나이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박태선 장로님에 대해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전도관이라는 교회를 전국에 세우시고 신앙촌을 건설하셨다는 것을 집안 중에 제일 먼저 전도관 교인이 된 큰집 식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신태인에 살던 큰집 식구들은 원래 열성 장로교인이었지만 큰아버지가 전도관에 나가시게 되면서 증조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온 식구가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서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은 자꾸 들어도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전도관 식으로 장례를 치른 후 아기 살결처럼 뽀얗게 피어나 장로교인들이 조문하고 돌아가자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고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 다시 전도관 교인들이 예배드리자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다시 환하게 피어 증조할머니는 생전에 오랫동안 장로교회 다니셨지만 전도관 교인이 되셨으니 전도관 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하셨답니다. 입관식 때 신태인전도관 교인들이 집에 와 예배드리면서 할머니를 깨끗이 씻겨 드렸다고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무릎이 많이 구부러지셔서 반듯하게 눕지 못하고 무릎을 세우고 계시는 할머니를 어떻게 관에 넣고 뚜껑을 덮을지 걱정이었는데, 다 씻기고 나니 다리가 반듯하게 펴져서 식구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했습니다. 전도관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돌아가신 분이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노긋노긋 부드러워진다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랄 일은 다음이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마친 후 신태인 장로교회 교인 몇 사람이 조문을 왔답니다. 큰집은 농사를 크게 짓고 여유가 있어 장로교회 기둥 역할을 도맡아 했는데 온 식구가 전도관으로 돌아서니 장로교회에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증조할머니가 워낙 오랫동안 장로교회에 다녀서 인사차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인들이 할머니를 모신 방에서 잠깐 조문하고 돌아가자 시신이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고 아기 살결처럼 뽀얗던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놀라고 당황해서 다시 전도관 교인들을 붙들고 예배를 드려 달라고 했는데, 한참 동안 예배드리고 나니 굳었던 몸도 다시 노긋노긋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환하게 피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던 작은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온 가족을 이끌고 전도관으로 나가시게 됐다 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젖먹이 동생이 죽는 것을 봤던 저는 죽음이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은 무엇이 있기에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아기처럼 뽀얗고 예뻐지는지, 살아 계실 때도 뻣뻣하던 무릎이 어떻게 돌아가신 후에 부드러워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기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박태선 장로님은 참 신기한 능력을 갖고 계신가 보다고 여겼는데 그보다 제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 집에서 가까운 전도관에 나가게 돼 마흔 명 넘는 식구와 함께 전도관 다녀 큰아버지 말씀이,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이시고 우리 마음을 모두 알고 계시는 영모님이라 하셨습니다. 영모님은 영적인 어머니라는 뜻인데 그 말이 왜 그리마음에 남는지 하루종일 ‘영모님, 내 마음을 다 아시는 분’ 하고 되뇌었습니다. 장로교회 친구들한테 “얘들아, 세상에 영모님이 계신대.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신대. 나는 그분을 따르고 싶어.” 하고 얘기했더니 친구들은 다니는 교회나 잘 나오지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고 핀잔만 주었습니다. 그러든 말든 저는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존재가 바로 옆에 계시는 듯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집과 가까운 함평전도관에 나가게 됐습니다.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네까지 마흔 명 넘는 집안 식구가 전도관에 다니니 어머니도 자연히 따라 나오셨고 농사일에 바쁜 아버지는 예배에 오지 못하셔도 전도사님과 교인들 드리라고 밤이며 과일을 넉넉히 싸 주셨습니다. 그 후 큰집 식구들이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면서 저도 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박태선 장로님을 직접 뵙는 날을 고대하고 고대했습니다. 드디어 1960년 3월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하나님을 처음 뵈었던 날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머리를 짚어주시자 말로 다 못할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해 상쾌하고 좋은 향기가 계속 불어와 이게 바로 은혜인가보다 감격스러워 오만제단은 신발 벗는 입구에서 보면 앞쪽의 단상이 아주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넓었는데, 거기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붙어 앉다 못해 다른 사람 무릎 위에 올라앉는 모양이었습니다. 힘차게 찬송하시는 하나님 음성은 오만제단을 울리고 소사신앙촌 전체를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그 많은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와이셔츠가 흠뻑 젖을 정도로 구슬 같은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뵙기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두 손으로 제 머리를 짚어 주시고 지나가시자 그때부터 말로 다 못할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꽃향기라고 해야 할지 과일 향기라고 해야 할지, 상쾌하고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불어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다시 또 불어와 맡아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은혜 주시는 감람나무라 하시더니 이게 바로 은혜인가 보다!’ 하며 저도 모르게 감격해 울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저는 1935년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만주로 건너가 살았습니다. 독실한 감리교인이신 큰아버지가 집 마당에 교회를 세우셔서 어려서부터 거기 다녔습니다. 큰아버지는 만주에 사는 동안 교회를 여러 개 세우셨고 해방 후 서울 용산에 와서도 한성 감리교회를 세워 주동 장로로 일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큰아버지 식구와 같이 살면서 그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수도여고 3학년일 때였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도원동 장로교회 집회에 간다 하셔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도원동교회는 예배당을 새로 짓는 중에 건축 자금을 모으려고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을 모셔와 집회를 연다 했습니다. 저희 식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예배실 맨 뒤에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언니는 돌 지난 조카딸을 데려갔는데 어린애가 어른들처럼 손뼉 치며 찬송하는 것을 따라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쉬지 않고 힘차게 찬송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예배에 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따라서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남산 공원 집회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아 찬송을 부르면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도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롭고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마음 속에 새겨지며 가슴에는 기쁨이 차고 넘쳐 도원동교회 집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남산 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가 열렸습니다. 공원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았는데 얼마나 넓은지 집회장 끝이 보이지 않았고 모여드는 인파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집에서 밥을 날라다 먹으며 밤을 새울 정도로 집회 열기가 굉장했습니다. 저도 언니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집회장에 있다가 책가방을 베개 삼아 눈을 붙인 후 학교에 갔습니다. 누가 집회장에 있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 장로님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을 부르면 같은 찬송을 수십 번 연거푸 불러도 지겹지 않았고 오히려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새겨졌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은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정말 기쁨이 가슴에 차고 넘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안수해 주실 때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안수하셨는데, 저는 안수 받는 순간 불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온 것처럼 후끈후끈하며 몹시 뜨거웠습니다.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부채질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도 부채질을 계속했더니 친구들이 아직 쌀쌀한 3월인데 왜 그러냐고 했습니다. 저는 온몸이 후끈후끈해서 밤중에 집회장에서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왜 이렇게 뜨거운지 영문을 몰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박 장로님 말씀을 들으며 그 뜨거운 불이 불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이 집회에서 하나님의 성신이 불과 같이 내리는 것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체험한다 하셨습니다. 집회장에는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벙어리가 말문이 트였다며 감격해 눈물을 흘렸고 들것에 실려 온 중환자가 일어나 뛰면서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생기니 날이 갈수록 집회장에 오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우리 동네 어른들도 남산 집회에 많이 참석하시더니 그 후로 박 장로님의 영등포 집회와 한강 집회에 따라다니셨습니다. 저도 박 장로님 집회가 있다 하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갔습니다. 그해 가을 무렵 원효로 박 장로님 댁 뒷마당에 예배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렸는데 그곳을 원효로 전도관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와 저, 언니는 원래 나가던 감리교회와 전도관을 같이 다니다가 나중에 온전히 전도관 교인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감리교 집안에서 전도관으로 가게 된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박 장로님께서 서울 시내 목사와 장로들에게 안찰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성교회 장로인 큰아버지도 안찰을 받으셨는데, 그날 박 장로님을 처음 뵈었고 누가 말씀드린 사람도 없는데 박 장로님께서 “고집이 센 분이지요. 그래서 교회를 여러 개 세웠지요.” 하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하셨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장로님들도 저 양반 고집 센 것을 어떻게 아시냐며 놀랐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안찰 받을 때 박 장로님의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몹시 아팠는데, 성신으로 죄를 사해 주실 때 그런 통증을 느낀다 하시더라며 신기해하셨습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으셨는지 큰아버지는 박 장로님께서 성신을 주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축복솜으로 닦자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이고 얼굴도 곱고 환하게 핀 것 분명히 보고 온가족이 함께 전도관을 다니게 돼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웃에 사는 전도관 교인들이 한 식구처럼 장례를 도와주며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다녔던 교회의 전도부인은 조문하러 와서는 전도관 교인을 보고 이단이라며 몹시 못마땅해했고, 큰아버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수의를 입히려면 옷을 잘라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도부인이 돌아간 후 저희 식구는 전도관 교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 몇 분이 솜에 물을 적셔서 큰아버지를 깨끗이 닦아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닦은 후 수의를 입힐 때 보니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여서 살아 계신 분한테 옷을 입히는 것 같았습니다. 입관하려고 큰아버지를 들었을 때도 온몸이 부드러워 허리가 축 처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분이 얼른 받혀 드렸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얼굴도 곱고 환하게 피어서 생전보다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그 주 일요일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 박 장로님께서 “며칠 전 장로님 한 분이 피어서 갔습니다. 성신이 임하면 돌아가신 분도 생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성신을 주셔서 큰아버지가 환하게 피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고 저희 가족은 전도관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저는 원효로전도관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사들이 은혜를 받아야 주일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 하시며 안수와 안찰을 자주 해 주셨고, 소풍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는 반사들끼리 모여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안수를 받는 순간 배 속까지 시원한 물줄기가 쏵 내려오는 것처럼 시원해지더니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달콤한 물이 목으로 넘어와 꿀꺽꿀꺽 삼킬 정도였는데 예배 마친 후에도 단물이 계속 마셔졌습니다. 반사들 모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저처럼 시원한 물이 흐르고 달콤한 물이 마셔진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그것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안수를 받고 나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1957년 이만제단이 지어진 후라고 기억되는데, 원효로전도관이 있던 곳에 양말 기계를 들여와 반사들이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기술을 배워 다른 반사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작업을 둘러보시고 안수해 주실 때면 좋은 향취가 건물에 가득 찬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장은 소사신앙촌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범적으로 운영한 곳이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양말공장이 옮겨 가게 되었고 다른 공장들도 세워졌습니다. 질 좋은 제품이 없던 시절에 신앙촌에서 좋은 원사로 만든 양말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무렵 동두천에서 신앙촌 간장을 판매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빈 병에 간장을 따라주며 판매했는데 한번 신앙촌 간장 맛을 본 사람들은 다른 간장을 못 먹겠다며 제가 갈 때까지 병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장사를 해 보지 않았고 큰 밑천도 없었지만 신앙촌 간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 장사 규모가 커지게 됐습니다. 당시 어려웠던 생계를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며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조합을 시작할 때부터 만난 단골들은 제가 신앙촌 간장 덕분에 부자 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소비조합을 하는 동안 영과 육이 아울러 복을 받는 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지런히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쁘고 보람될 수가 없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될 때 입주했던 어머니는 2008년경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렸는데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 보니 어머니 모습이 참 곱고 예뻤습니다. 원래 검은 편인 피부가 뽀얗게 피어 분을 발라 놓은 것 같았고 입술에는 어린아이 같은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얼굴 주름도 언제 펴졌는지 100세 가까운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일편단심 한길을 따라오신 어머니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요즘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하나님의 은혜일세” 하는 찬송과 같이 이 길을 따라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셨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돌아보면 하나님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받으며 열심히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해 주시는 귀한 시간 동안 은혜를 간구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루하루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가톨릭이 세운 나라, 세계 정복에 나서다

지금부터 600년 전인 1419년은 세계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포르투갈이 항해를 위한 기반 시설을 세우고 대항해시대라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돛을 올린 그들의 항해는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거대한 폐해를 남겼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포르투갈은 12세기 가톨릭 십자군이 세운 나라였다. 초대 군주인 아폰수 1세는 십자군이었고 이슬람 세력과 수백 년 전쟁을 벌인 끝에 그들을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를 빼앗았다. 영토를 뺏긴 입장에서는 명백한 강도짓이었지만 가톨릭은 이 땅에 가톨릭 신도들이 살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것(영토회복운동, Reconquista)이라고 믿었다. 남의 집을 뺏은 날강도가 내가 원래 집 주인이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믿는 격이었는데, 교황 알렉산드르 2세는 그들이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한다며 가톨릭 신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었다. 가톨릭에게 있어 신의 명령으로 벌이는 전쟁은 정당한 폭력이었고, 비 가톨릭의 영토를 빼앗는 것은 신의 명령이었다. 이것은 5세기 가톨릭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정신적 뿌리였으며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은 성스러운 폭력을 축복하고 부추겼다. 교황 레오 4세(790~855)는 이교도를 퇴치하는 폭력은 천국을 보장 받는 성전(聖戰)이라고 선언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20?~1085)는 성전에 합류하라고 서유럽 군주들을 독촉했다. 급기야 교황 우르바누스 2세(1042?~1099)는 가톨릭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아야 한다며 직접 민중 앞에 나서서 십자군 전쟁을 촉발시켰다. 1419년 항해를 위한 기반 시설을 세우고 망망한 바다로 떠난 포르투갈은 십자군의 칼을 세계로 겨누기 시작했다. 가슴에 붉은 십자가를 새기고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십자군의 전통대로 돛에 붉은 십자가를 새겼다. 육지의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빼앗으려고 길을 떠났다면 바다의 십자군은 미지의 가톨릭 왕국을 찾으려고 항해를 떠났다. 이 항해를 시작한 장본인 엔리케 왕자는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이었고, 가톨릭 왕국을 찾아 전설 속의 가톨릭 통치자 ‘프레스터 존’을 만날 것이라는 열망에 들떠 있었다. 동방에 대 영토를 가진 왕이라는 프레스터 존은 수백 년간 구전된 허구에 불과했지만, 그가 통치하는 왕국을 직접 확인하려는 호기심과 기대감은 가톨릭 신도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포르투갈 선박은 아프리카와 인도의 위치도 모르고 막연히 상상만 하던 당시에 상상의 산물인 프레스터 존을 찾아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넜다. 가상현실을 좇아 실제 눈앞에 닥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항해 기술도 미개하고 지리적인 지식도 부족했으나 그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특출난 한 가지가 있다면 가톨릭 특유의 광신이었다. 예컨대 폭풍이 불어오는 밤이면 돛대 끝에 파란색 불꽃이 나타났는데, 이를 보고 선원들은 ‘세인트 엘모의 불’이라고 불렀다. 뼛속까지 가톨릭 신자인 선원들은 뱃사람의 수호성인 엘모(Elmo, 뱃사람의 수호성인 에라스무스(St. Erasmus)가 와전된 이름)가 불꽃으로 인도해 준다며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번개 구름의 영향으로 대기 속에 전기가 방출되는 과정에서 불꽃이 보이는 방전 현상이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광신의 눈으로 보면 망망대해를 인도하는 신의 가호였다. 바다의 십자군은 가톨릭 신이 함께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신의 뜻이며 어떤 행동을 하든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다.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1469~1524)는 그리스도 기사단의 일원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1499년 포르투갈이 염원하던 인도 항해를 성공시켜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포르투갈이 인도로 가는 길을 갈망했던 것은 인도산 향신료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날로 인기가 치솟았던 향신료를 인도에서 독점해 들여온다면 막대한 부를 쌓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따라서 바닷길을 밝힌 후에는 무역을 성공시키는 것이 바스코 다 가마의 사명이 되었다. 당시 인도양은 무역 질서가 정착돼 폭력으로 물자를 갈취하는 일이 없었고 선박들도 무장하지 않았다. 일정한 관세를 지불하면 누구나 무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도 정상적인 거래로 향신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코 다 가마는 평화로운 무역 질서에 참여하지 않았다. 두 번째 항해를 떠난 바스코 다 가마는 교역 중이던 이슬람 배를 향해 무력 공격을 감행했다. 십자군의 배는 20척에 불과했지만 대포를 이용해 비무장인 이슬람 선박 180척을 깨뜨렸다. 비 가톨릭 세력을 몰아내고 그 지역을 빼앗는 것이 가톨릭 신의 뜻이었고, 그 뜻을 따르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우세한 화력으로 승리를 거둔 바스코 다 가마는 800명의 이슬람 포로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신의 도우심으로 얻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썼다. 포로의 귀와 코를 잘라 이슬람 지도자에게 보내면서 카레라이스를 해 먹으라고 권유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바스코 다 가마는 계속해서 선박을 침몰시키고 약탈했으며 살아 있는 포로를 과녁으로 써서 석궁을 연습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포로의 귀와 코를 자른 후에 선박과 함께 불태우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십자가의 돛을 높이 세운 선박이 가는 곳마다 약탈과 방화가 일어났고 귀 베이고 코 베인 시신들이 악취를 풍겼다. 잔인한 폭력으로 교역 항구를 점령한 그들은 자신들 외에 누구와도 거래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값비싼 향신료를 선박마다 가득 실을 수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향신료를 가지고 포르투갈로 돌아갔을 때 국왕인 마누엘 1세는 크게 기뻐하며 가톨릭 신의 도우심으로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국왕은 바스코 다 가마의 무사 귀환을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지었다.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이 수도원은 포르투갈이 독점 무역에서 얻은 이익으로 세워졌으며 바스코 다 가마는 사후에 이 수도원에 묻혔다. 무덤 위에 설치된 그의 조각상은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무덤 옆면에는 배와 십자가가 나란히 조각되어 가톨릭 신의 뜻대로 바닷길을 헤쳐 갔던 그의 인생을 보여 준다. 비록 무덤에는 조각되지 않았지만 그가 휘둘렀던 대포와 칼 또한 빠질 수 없는 상징물이다. 평화로운 질서를 무자비하게 날려 버린 대포, 산 사람의 귀와 코를 잘라버린 십자군의 칼을 무덤 한편에 더한다면 어떨까. 그들이 믿는 신이 인류에게 어떤 것을 선사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다. 인구 100만 명에 불과하던 작은 나라, 유럽의 변방에 머물렀던 포르투갈이 단기간에 광대한 무역망을 구축한 것은 지금도 역사의 미스터리로 꼽힌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이르는 세 대륙의 서로 다른 문명권을 포르투갈은 어떻게 뚫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 핵심 비결은 바로 가공할 폭력이었다. 강력한 대포로 무장한 채 세계의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포르투갈 선박은 떠돌아다니는 폭력 그 자체였다. 항해 기술과 화약 개발은 아시아도 발전돼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정신 자세였다. 비 가톨릭 국가의 땅과 교역 물자, 무고한 생명마저 ‘신의 이름으로’ 정당하게 강탈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정신은 가공할 폭력을 불러왔고 그 폭력으로 세계를 압도할 수 있었다. 십자가 돛을 앞세운 가톨릭 신도들이 항해를 통해 전 세계에 수출한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 이로 인해 정복당하고 식민지배를 받는 대륙이 생겨났고, 그 거대한 폐해는 역사에 남아 현재까지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가톨릭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였던 폭력과 약탈의 역사를 살펴본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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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로마 교황청의 신묘한 경제 능력, 가톨릭의 특출한 수입 창출과 위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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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한의 지속적 도발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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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종교의 진화(進化)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기성교회 부흥집회(상) 무학장로교회(195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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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기쁨과 감사함이 넘쳤던 추수감사절”

“기쁨과 감사함이 넘쳤던 추수감사절”

○ 예수의 피로는 구원 없다는 말씀 놀라워 추수감사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무척 놀라웠습니다. 특히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예수의 말이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허풍이라는 지적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다른 교회도 가봤지만 신앙촌에 와서 들은 하나님 말씀은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참으로 옳은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미아교회 새교인 배청자 씨 ○ 진심이 가득한 신앙촌 10여 년 전 교직생활 할 때 후배 교사가 신앙촌에 가보자고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못 가고 세월이 흘러 이번 추수감사절에 방문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규모, 식품단지의 자동화시스템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정성껏 대하는 이곳의 기업 정신에 감탄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다녀와서 신앙촌에서 주신 도시락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교인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정성을 베푸는 곳에 다녀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아름답고 좋은 신앙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천부교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인천에서 온 정진경 퇴임교사 ○ 건강한 제품 생산하는 곳은 달라 제가 근무하는 회사 조리사님이 신앙촌에서 나오는 식품들이 정말 좋다고 소개를 해주시면서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같이 가보자고 해서 왔습니다. 요구르트 런은 위가 안 좋았던 제게 편안함을 주었고, 신앙촌간장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주는 담백함까지 있어서 늘 애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촌에 와보니 역시 건강한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라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집니다. -부산환경공단 해운대사업소 윤이정 씨 ○ 마음을 열게한 음악 순서 추수감사절 음악순서 연주가 정말 우아하고 감동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여성 합창단의 고운 음색이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하는 것 같았어요. -서면교회 새교인 박기순 씨 ○ 30년만에 온 신앙촌 30년만에 온 신앙촌, 절친했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포근하고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름답게 단장된 신앙촌의 환경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감사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하겠습니다. -광양교회 장재영 씨 ○ 봉사의 기쁨 사람들에게 나눠드릴 군밤, 군고구마를 봉투에 담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봉사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보람됐습니다. -덕소교회 여청 윤정연 씨

함께 하는 건강한 도전

함께 하는 건강한 도전

2019년 천부교 체육대회. 그날의 하늘이 저는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맛길에 전시된 사진전을 보며 그날의 기쁨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선수단 입장을 위해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찌나 예쁘던지 컴퓨터로 만들어도 이렇게 멋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상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던 아름다운 하늘 아래 경기장으로 입장하며 줄넘기 선수인 딸과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처음 건강 체조 연습을 할 때만 해도 이렇게 큰 감동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침마다 전기 밥솥에 밥을 앉혀놓고 다 되길 기다리는 동안 체조 영상을 보며 따라했습니다. 하루에 한 번 하는 연습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참한 딸아이 덕분에 더욱 즐거웠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체육대회를 통해 우리 가족이 더욱 건강해졌다는 것입니다. 평소 팔이 아파서 어깨 위로 올리는 것이 힘들었는데 체조를 하며 팔이 부드럽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또 체력이 약했던 딸은 줄넘기 연습을 하며 근력이 좋아진 것 같다며 신나했습니다. 엄마도 활기차게 응원 연습을 하며 더욱 밝아진 얼굴로 웃으시니 더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딸아이에게 “엄마는 너랑 할머니랑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어. 우리 다음 체육대회에도 같이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당연하지!”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더 잘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야무진 대답에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우리 딸의 목표를 위해 저와 엄마도 그때까지 몸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3년 후 지금보다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져 있을 우리 세 사람을 생각하니 벌써 부터 다음 천부교 체육대회가 기다려집니다.

알찬 열매 되어가는 새교인들, “천부교회가 좋아요”

알찬 열매 되어가는 새교인들, “천부교회가 좋아요”

주일인 지난 27일 오전, 대방 천부교회에서는 하나님 말씀 퀴즈대회가 열렸다. 퀴즈가 나갈 때마다 답을 맞춘 새교인들의 기쁨의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퀴즈대회에서 1등을 한 이정임 씨는 “매주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마다 수첩에 메모하고 퀴즈대회가 있는 날에는 교회에 오기 전 집에서 신앙신보를 읽고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기뻐했다. “다음주 추수감사절 예배 때는 천부교 체육대회 건강 체조, 한마음 경기에 참여한 새교인 찬송 특순이 있을 예정입니다.” 강수정 관장의 추수감사절 예배 광고를 끝으로 주일예배가 끝나자, 새교인들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천부교 체육대회 선수로 참가한 후 교회 오는 즐거움이 배로 커졌다는 이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전도 행사에 새교인 참여율 높아 대방 천부교회 새교인들은 매주 교회에서 진행되는 주일 프로그램이나 신앙촌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신앙생활의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이슬시장, 말씀퀴즈대회, 시상식, 합창특순과 같은 다양한 전도 프로그램은 새교인이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또 신앙촌에서 열리는 체육대회나 새교인 합창대회는 연습을 위해 교회에 더 자주 오는 계기가 되었다. “체육대회를 계기로 새벽예배도 나오게 됐어요. 새벽예배 후 교인들과 체조 연습을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여름 내내 무척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새벽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더 많을 것 같아요.” (황혜영 씨) “작년 추수감사절 때 전도돼 교회 나온 지 1년이 됐어요. 그동안 즐거운 행사가 많았지만 이번 체육대회 싱글벙글 건강 체조를 배우면서 쌓은 추억과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거예요.”(권명자 씨) “400명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체조를 하다니, 아직도 놀랍습니다. 어디 가서 해보겠습니까. 정말 영광이었습니다.”(장희순 씨) “교회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게 즐거워요. 이제는 매주 교회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김정자 씨) “천부교회 정말 좋아요. 여기만 오면 기쁨이 마음에 넘쳐요!” (박순자 씨) “12월에 열릴 말씀퀴즈 대회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퀴즈대회 1등한 이정임 씨 비결대로 저도 앞으로 수첩을 준비해오려고요.(웃음)” (박정숙 씨) 이처럼 교회와 신앙촌에서 열리는 행사에 새교인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다. ■ 따뜻함과 친절함에 마음이 열려 천부교회가 좋아서 이순례 씨를 전도했다는 이정숙 씨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좋은 일이 있으면 소문을 내게 돼 있어요.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와서 보고 느낀 천부교회가 좋고, 신앙촌이 좋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같이 가자고 하게 돼요”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전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천부교인들의 따뜻함, 친절함, 밝은 미소도 교회에 오고 싶어지는 이유라고 이순례 씨는 말했다. “처음 나오셨나봐요”, “또 오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식사하고 가세요” 등 간단한 인사지만 새교인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격려가 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고 했다. ■ 하나님 말씀 지키고자 노력하고 싶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 천부교회에 다닌 새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달라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더 알고 싶어졌어요. 특히 자유율법 말씀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에요.”(강경희 씨) “주일마다 오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기다려지고 언제부턴가 찬송도 의미를 생각하면서 부르게 돼요.”(이묘자 씨) “말씀을 듣고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유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이정임 씨) “신앙촌 제품을 통해서 천부교를 알게 됐는데,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어요.”(박양임 씨) “오늘 교회에 다니면서 느낀 소감을 들으면서 나도 저런 마음인데 많은 공감이 됐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교회에 다녀보고 싶습니다.”(배춘숙 씨) 이날 대방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꾸준히 나오시는 새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을 넘어서 자유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먼저 하나님을 안 우리들의 모습을 더 돌아보게 된다”며 “알찬 열매가 되어가는 새교인들의 모습을 보니까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소비조합원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습니다”

“소비조합원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습니다”

아침 7시 반, 덕소에 위치한 한일물산(주) 중부 매장에 사가(社歌)가 울려 퍼지면 문재연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문재연 씨는 이곳에서 제품 포장 및 택배 발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그가 정년퇴직 후 새로 찾은 직업이다. “퇴직 후 집에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중부 매장에서 택배 업무를 맡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다시 한 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너무나 감사했고,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사장님들 수고 덜어드리려 노력 그가 하는 일은 소비조합 사장님들을 대신해서 택배목록을 받아 포장 발송하는 것이다. 전에는 물건을 구매한 소비조합들이 직접 택배 송장을 작성해야만 발송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었는데, 문재연 씨가 온 이후로 더욱 편리해졌다. “개인적으로 차를 타고 포천에 갈 일이 있었어요. 덕소에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더군요. 그런데 소비조합원들 중에서 포천, 이천에서도 택배발송을 위해 덕소까지 오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의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어서 전화로도 택배 발송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포천, 이천, 동두천 지역 소비조합의 신청만 받았지만 이제는 의정부, 성남, 서울 일부 지역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사려 깊은 문재연 씨 덕분에 일하기 한결 수월해졌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소비조합들도 많다. 항상 꼼꼼하게 택배 발송을 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어느 소비조합의 진심 어린 문자를 보여주며, 그는 이럴 때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소비좋잡을 지원하는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어 무척 감사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 ■ 더욱 힘차고 즐겁게 일하는 방법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튼다. 그가 들려주는 음원 파일에서 천부교 남성 합창단이 힘찬 목소리로 부르는 찬송가가 들려왔다. “어때요? 참 듣기 좋지요? 제가 특별히 서대문교회 지인에게 부탁해서 받은 음원이에요. 일을 하며 찬송가를 들으면 마음이 즐겁고 힘이 나거든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문재연 씨는 소사 신앙촌 메리아스 공장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너도 나도 찬송을 부르며 힘든 줄 모르고 일했던 그때를 상기시키며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열심을 낸다고. 그가 힘이 날 때는 또 있다. 틈틈이 덕소 교인들이 작업을 도와주러 택배실을 찾아올 때다. “덕소교회 분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보니 제가 택배실에서 일하는 것을 알고 많이들 찾아오세요. 오시면 다들 작업을 거들어주시니 힘든 일도 금방 끝나요. 또 함께 이야기하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거든요. 그 재미에 자주 찾아오시죠. 제 입장에서는 참 기쁘고 고마운 일입니다.” ■ 사명감을 가지고 오래 일하고 싶어 문재연 씨는 일 욕심이 많은 편이라 했다. 일은 집중해서 하다 보면 더욱 재미있고, 하면 할수록 즐겁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문재연 씨는 덕소매장 주변에 울창하게 우거진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일도 자원해서 하고 있다. “나무가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줘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편해요. 사람들이 우리 매장 주변을 지날 때 편안하고 쾌적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매사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문재연 씨. 그는 “제가 맡은 일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달리는 신앙촌 소비조합들을 지원하는 보람된 일이라 생각하며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라며 미소지었다.

주니어

“신앙촌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즐거운 행사 열려”

“신앙촌 곳곳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즐거운 행사 열려”

어린이 눈높이 맞춤 프로그램으로 인기만점 11월 9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신앙촌에 온 어린이들을 위해 “놀라운 토요일! 키즈 탐험대” 행사가 열렸다. 어린이들은 키즈 탐험대 미션지에 적힌 미션을 수행해서 탐험을 완료하면 기념품을 받았다. 지구젤리, 몰티져스, 왁스 캔디, 먹는 색종이 등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인 간식을 먹고 소리를 측정해서 30데시벨이 넘으면 성공인 ASMR존과 함께 선생님을 이겨라 가위바위보, 도전 랭킹 노래방, 2단 콤보 림보, 우정 테스트 하이파이브, 과자 이름 초성 퀴즈 등 다양한 게임이 미션으로 등장했다. 또 키즈 게임 랜드에서는 에어바운스와 에어 벨크로, 대형 하노이 탑 쌓기 게임이 진행되었다. 김예은 양(초4, 울산교회)은 “유투브에서 몰티져스 먹는 영상을 보고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요. 초코가 생각보다 더 달콤하고 맛있어요”라고 했다. 허승미 양(초6, 마산교회)은 “에어 벨크로는 처음 해봐요. 찍찍이 옷을 입고 폴짝 뛰어서 벽에 붙으니까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같은 날, 2019 천부교 체육대회 오프닝 공연 축하모임도 있었다. 모임에서는 오프닝 공연 영상 시청, 스피치, 오프닝 담당 관장님 인사, 행운권 추첨, 특별 시상식, 기념품 증정 등이 있었다. 외기를 담당했던 이경민 관장(노량진교회)은 “멋진 공연을 위해 애쓰고 노력해준 여러분께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했다. 스피치 시간에는 반서윤 양(초5, 충주교회)과 정예린 학생(중3, 익산교회)이 공연에 참가한 소감을 발표했다. 정예린 학생은 “체육대회 오프닝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노력과 끈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무척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가톨릭의 타락과 개신교의 시작

가톨릭의 타락과 개신교의 시작

알쏭달쏭 ‘숨은 그림 찾기’

알쏭달쏭 ‘숨은 그림 찾기’

하나된 열정, 하나된 깃발 “함께 달리자! 천부교 체육대회!”

하나된 열정, 하나된 깃발 “함께 달리자! 천부교 체육대회!”

교양

21세기 바이올린의 여제 ‘힐러리 한’

21세기 바이올린의 여제 ‘힐러리 한’

바흐를 한창 연주하던 17세 때  정교한 테크닉, 품격있는 해석으로  많은 비평가들을 놀라게 해 2001년 타임매거진이 ‘미국 최고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 2003년 ‘브람스와 스트라비스키의 콘체르토’ 앨범으로 첫 번째 그래미상 수상 2009년 ‘쇤베르크와 시벨리우스’ 앨범으로 두 번째 그래미상 수상 2015년 ‘앙코르 27개의 소품’ 앨범으로 세 번째 그래미상 수상까지 3번의 그래미상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녀는 전문가나 클래식 마니아들에게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미상이란? 미국의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통틀어 그해의 부문별 최우수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1979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하였고, 불과 12살의 나이로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데뷔합니다. 또 8살 때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흐를 연주했으며, 바흐의 작품이 자신의 연주가 정직해질 수 있도록 만든 주춧돌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세계 최고의 바흐 연주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바흐를 한창 연주하던 무렵 17세 때, 나이에 비해 정교한 테크닉과 해석에 관한 품격있는 접근에 비평가들이 놀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녀의 특이점은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보통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네리 등 명품악기를 사용하는 반면에 그녀는 파가니니가 썼다고 하는 악기인 뷔욤의 1854년산 악기를 주로 사용하며, 바이올린 현 또한 입문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도미넌트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돌돌 말아 말아~ 생크림 롤케익

팔꿈치 통증 잡는 스트레칭

여름의 끝자락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만나다

조용한 뼈도둑, 골다공증 예방하기

조용한 뼈도둑, 골다공증 예방하기

골다공증이란 뼈에서 칼슘과 무기질 등이 빠져나가 골밀도가 약해져 부러지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성인의 골다공증성 골절은 2008년 14만 건에서 2012년 21만 건으로 50%가량 급증했다. 인구 고령화로 골다공증 환자의 증가추세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 증상이 없는 조용한 뼈도둑 골다공증은 그 자체로는 증상이 없어 뼈가 부러지면서 골다공증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골다공증에 의해 쉽게 골절되는 부위는 손목, 척추, 대퇴골 등이다. 특히 척추, 고관절 등이 골절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다. ▣ 노화가 가장 큰 원인 골다공증은 노화에 의해 생기기도 하며 질환이나 약물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특히 폐경기 여성에게서 골다공증 위험이 높은데,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뼈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스테로이드 복용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 골다공증을 만드는 생활 습관 칼슘의 섭취보다 손실이 더 빠를 때 골다공증이 생긴다. 생활습관 중 짜게먹는 식습관은 칼슘이 신장에서 배출되도록 만들기때문에 피해야 한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이뇨작용이 있어 수분과 함께 칼슘도 많이 빠져나간다. 또 동물성 단백질보다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 ▣ 칼슘과 비타민D 섭취, 그리고 운동 그러므로 골다공증 예방은 생활습관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칼슘과 비타민D섭취를 늘려야 한다. 또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운동을 하며 햇빛을 쬐면 비타민 D가 생성되고, 근력이 높아져 골다공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

야외 활동하기 좋은 계절, 나에게 맞는 운동은?

바람만 스쳐도 고통스러운 ‘통풍’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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