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창조의 근본을 밝히신 하나님

인간 창조의 근본을 밝히신 하나님

학생 축복일, 오케스트라와 합창 창의력 키우는 쿠킹 시간 가져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축복일을 맞은 신앙촌은 학생들의 밝은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활기가 가득했다. 9월 8일 학생축복일에는 11월 추수감사절 합창 무대를 위해 그동안 지역별로 연습에 매진해 온 여학생들이 시온오케스트라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베이커리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 만들기’ 시간이 마련되어, 각자의 상상력과 개성을 담아 작품을 완성하며 성취감을 느꼈다. 이날 축복일 예배는 방성희 관장(서면교회, 남부총무)의 인도로 진행되었다. 방 관장은 설교에서 “물질만능 시대의 우리 사회는 심각한 범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갖지 못한 자들은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거침없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반면에 노력하기도 전에 물질의 풍요를 얻은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잃고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더 큰 범죄와 고통에 노출되어 있으며, 물질적 풍요나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질병, 빈곤, 관계 단절, 외로움의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현 사회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방 관장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기 전에는 이런 고통의 세계가 왜 만들어졌는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것을 벗어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헤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그 해답을 알려주시고, 이슬성신과 생명물 권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새기며, 저희 모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시간,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 만들기!

눈과 입이 즐거워지는 시간,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 만들기!

9월 학생축복일 프로그램으로 <슈가 크래프트 케이크 만들기> 시간이 있었다. ‘슈가 크래프트’는 가공한 설탕을 재료로 여러 형태의 장식물을 만드는 공예를 뜻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머핀 케이크와 색색의 설탕 반죽으로 각자의 아이디어와 개성이 담긴 나만의 멋진 케이크를 완성했다. 정지연(초5, 진해교회) 양은 “교회에서 케이크 만들기를 여러 번 해봤지만 슈가 크래프트는 처음인데 재미있었어요. 보자마자 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쁘게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요구르트 런, 공식 인스타그램 개설

요구르트 런, 공식 인스타그램 개설

젊은 세대 사로잡은 ‘요구르트 런’ 인스타그램, 빠르게 성장 중 ‘요구르트 런’이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https://www.instagram.com/yoghurt.run/)을 개설하며 20~30대 젊은 소비자층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계정은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와 실시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구르트 런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강화하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특히, 다양한 레시피와 건강 정보를 공유하여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제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유익한 콘텐츠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20~30대 젊은 층은 SNS를 통한 소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요구르트 런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이러한 트렌드에 맞추어 실시간으로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계정을 팔로우하는 소비자들에게는 특별 쿠폰을 제공하거나 참여형 이벤트를 통해 제품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구르트 런 관계자는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2024년 6월 11일 계정이 개설된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팔로워 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긍정적인 반응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브랜드의 성장과 인지도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https://www.instagram.com/yoghurt.run/

신앙촌 생명물간장 글로벌 홈페이지 오픈

신앙촌 생명물간장 글로벌 홈페이지 오픈

북미 시장에 신앙촌의 가치 철학, 생명물간장의 우수성 등 정확한 제품 정보 전달로 글로벌 브랜드 강화 기대 신앙촌 생명물간장이 글로벌 홈페이지를 새롭게 오픈하며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홈페이지 구축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생명물간장의 우수성을 알리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북미 지역의 아마존 구매 고객들이 신앙촌 제품을 검색할 때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신앙촌의 철학과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이 글로벌 홈페이지는 생명물간장의 차별화된 품질을 강조함으로써 해외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외 영업에서 각국의 바이어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현지 시장에 맞춘 마케팅 전략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도 글로벌 홈페이지가 핵심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앙촌 생명물간장은 글로벌 시장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과 확장을 위한 다각적인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재정으로 인해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나?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재정으로 인해 패닉에 빠지기 시작했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단에 보낸 서한에서 교황청의 비용 절감에 대한 새로운 노력을 촉구했으며, 바티칸 각 부서가 자원을 공유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교황청 공보실이 발표한 9월 16일 자 서한은 바티칸이 직면한 지속적인 재정적 압박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10년간 추진해 온 개혁 프로그램을 강조하면서 “적자 없는” 지출을 요구했다. 수년간의 바티칸 고용 동결, 고위직 급여 삭감, 로마 추기경들의 임대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선교회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지출 통제를 위한 “추가 노력”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바티칸을 지켜보는 일부 사람들은 교황의 재정 개혁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수년 동안 경고해 왔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콘클라베에서 선출되었을 때, 베네딕토 16세때 드러난 바티칸 재정 스캔들로 인해 추기경들 사이에서 바티칸 재정 개혁이 주요 우선 순위로 논의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교황은 “이제 ‘적자 제로(0)’가 이론적인 목표가 아니라 진정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되도록 모든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했다. 바티칸 관찰자들이 오랫동안 지적했듯이, 재정적 부패를 근절하는 것은 교황청 예산 위기에 대한 부분적 해결책일 뿐이다. 그리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비용 절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바티칸 재정 문제의 전반적인 상황은 수년간 암울했다. 더 필러가 입수하여 이전에 보도한 바티칸 부서 간 메모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기 개혁이 한창일 때에도 연간 베드로 성금 모금액은 거의 전액이 바티칸 관료주의에 쓰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성직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메모는 또한 “위험할 정도로 중앙 집중화된 투자 프로세스와 불투명한 포트폴리오 관리 운영으로 인해 비리가 발생하고 사기에 대한 상당한 노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부는 이전에 연례 임무 예산을 발표했지만 2022년 이후로는 발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발표된 예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교황청 운영 비용은 연간 7억 9,600만 유로(한화 약 1조 1,869억)로 예상되며, 베드로 성금 등의 예상 부금을 제외하면 3,340만 유로(한화 약 497억)의 운영 손실이 예상된다. 2023년 10월, 사무국의 현 국무원장 막시미노 카발레로 레도는 수년간의 비용 절감 조치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연간 5천만에서 6천만 유로의 구조적인 예산 적자”를 겪고 있다고 말하면서 바티칸의 재정 위기의 규모를 설명한 바 있다. 국무원장은 “이 적자를 비용 절감으로만 충당하려면 로마 교황청에 속한 53개 기관 중 43개를 폐쇄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연례 모금인 베드로 성금의 관리에 대한 별도의 보고서는 재앙적인 상황을 그려냈다. 2023년에 자발적 기부금이 증가했지만 총수익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고, 기금 또한 전년도에 로마 교황청의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수백만 유로의 부동산 자산을 공매로 처분했다. 교황청, 연간 5천만~6천만 유로의 구조적인 예산 적자 겪고 있어 비용 절감 촉구하고, 바티칸 각 부서의 자원 공유할 수 있음 시사 지난 2월, 경제 사무국과 가까운 한 고위 관리는 더 필러에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셨지만, 그 보장에는 연금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고 했다. “모두들 지속 불가능한 상황에서 여기저기 조금씩 개선되는 작은 승리를 환호하지만,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결국 타이타닉호의 케이터링 예산을 줄이는 꼴이죠. 물론 비용 절감을 하고는 있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건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겁니다.” 재앙적인 고액 투자(때로는 부도덕하고 심지어 범죄에 가까운)를 제외하더라도, 바티칸 재무 담당자들은 수익 극대화에 대한 문화적 반대가 그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오랫동안 불평해 왔다. 바티칸은 기업이 아니지만, 수입의 대부분(약 65%)은 로마시와 전 세계에서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및 투자 수익에서 상업적으로 창출된다. 그러나 2022년 기준 바티칸의 부동산 중 실제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과거 바티칸 소식통은 더 필러에 프란치스코의 개혁 초기에 경제 사무국이 사용하지 않는 토지와 건물을 파악하여 교황청의 새롭고 보다 안정적인 장기 수입원을 창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계획에는 산업, 주거 또는 복합 용도의 대규모 부지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고, 수십 년에 걸친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하면서 부지 및 토지 개발을 위한 외부 파트너십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반발이 심해 계획은 승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제 그때의 제안을 서랍에서 꺼내 다시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는 부동산을 지속 가능한 수입원으로 재구성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고 상당한 초기 비용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부서의 자산 소유 구조를 해체할 것임을 추기경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교황청의 각 기관은 다른 모든 기관과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으므로 … 흑자를 내는 기관은 일반적인 적자를 충당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독립적이고 역사적으로 부유한 교황청이 다른 부서를 위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제안은 바티칸의 일부에서는 상당한 당혹감을, 다른 일부에서는 노골적인 공황을 야기할 수 있다. 일부 부서에서는 예산 및 회계 조사에서 느슨한 내부 재무 통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자금만큼이나 재무 정보 공유에 대한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사무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더 필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바티칸이 ‘실패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상상하길 좋아합니다. 특히 바티칸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경고했다.

6살때 부터 가톨릭 수녀에게 성학대 당해온 피해 여성 “수녀들도 사제만큼 나쁠 수 있어”

6살때 부터 가톨릭 수녀에게 성학대 당해온 피해 여성 “수녀들도 사제만큼 나쁠 수 있어”

어린 시절 수녀들에게 성학대를 당한 여성이 어린 소녀들도 가톨릭 수도회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학교의 수녀 교사들도 남학생들에게 성학대를 저지른 사제들만큼이나 나쁠 수 있다고 했다. 수녀에게 성학대 당한 나이, 여섯 살 학대를 당할 당시 겨우 여섯 살이었던 이 여성은 아이리시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한 수녀가 제 체육복에 손을 넣으면서 시작되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1970년대 중반 저는 수줍음이 많고 자신감이 없었는데 수녀 중 한 명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수녀님은 종종 제 손을 잡고 마당을 거닐었고, 저를 위해 작은 스피어민트 토피 바를 가지고 다니셨어요. 저는 우리가 특별한 사이라고 느꼈고 그 후 1년 정도는 부적절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녀가 사무실에서 제 토피 바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서 둘이 함께 찾으러 갔어요. 그녀는 저에게 바를 건네주면서 다른 손은 제 운동복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제가 당황스러워하며 화를 내자 그녀는 제게 교실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지만 선생님은 제가 끔찍한 소녀라고 소리치며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나무 자로 양손을 때렸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여성은 어머니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성수로 축복을 내려줬다. 결국 학대는 계속 이어졌다. 또 다른 수녀에게도 성학대 당해 “영성체를 받은 후 뜨개질하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는 한동안 괜찮아 보였습니다. 뜨개질이 어려웠던 저는 다른 수녀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수녀님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수녀님이 제게 다리를 감으라고 소리치면서 악마가 다리를 타고 올라갈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 수녀는 저를 학대하기 시작했어요. 그 수녀 말로는 다른 수녀가 제가 아주 착한 아이라고 말했다고 했어요.” 수녀에게 계속해서 학대를 당하던 여성은 고해성사할 때 사제에게 수녀님들이 자신을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제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고 대신 성모송을 몇 번 외치라고 했다. 수녀에 의한 소녀 성학대도 알려지길 여성은 언론에 성직자 성학대가 보도될 때 항상 남자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며 “저는 제가 괴물 같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유일한 여자아이인 저 혼자만 당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학대가 의심되는 학교의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다른 여학생들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여전히 수치심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다른 피해자가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학교의 과거 성학대 스코핑(Scoping) 보고서가 9월 1일에 발표되었다. 308개 종단 소속 학교의 가해자 884명, 2,395건의 성학대 혐의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사제에게 학대당한 남성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보고서에는 수녀가 여학교에서 가르쳤던 40개 종단의 수도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 40건은 16개의 수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63개 학교의 학대 가해자 134명에 대한 172건의 고발에 관한 것이다. 디아무드 마틴 전 더블린 대주교는 보고서가 발표된 후 보고서의 숫자가 실제 공포의 규모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소아 성애자 조직이 성학대를 조직했는지에 관해 더 많은 사람이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자유율법을 지켜 양심에 어긋남이 없어야”

9월 소비조합 축복일

추석까지 폭염, 다음날부터 물폭탄…“기상이변의 일상화”

이주민 지원하지 않는 것이 중대한 죄라면… 바티칸은 왜?

2024 Summer Camp 어린이, 여학생 여름 캠프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성신과 악신의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지어 주신 하나님”

“성신과 악신의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지어 주신 하나님”

1940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에서 태어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도관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해면에는 전도관이 없었는데 가까운 영덕전도관 사람들이 찾아와 전도 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중에는 서울에서 전도관을 다니던 영해면 출신 김차정 언니(現소사교회)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영덕 전도사님과 반사들, 그리고 차정언니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서 앞으로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리자 했고, 그 자리에 있던 저와 친구들은 흥미가 생겨 전도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예배드릴 공간이 없어서 학교 건물의 창고를 빌려 예배를 드렸는데, 왠지 모르게 예배시간이 너무나 즐거워서 저와 친구들은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와 같은 찬송을 소리 높여 불렀습니다. 조용하던 빈 창고에서 주말마다 찬송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전도관을 못마땅해하던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하기도 했지만, 찬송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고 나중에는 부지를 마련해 영해전도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저는 서울 이만제단 개관집회(1957.4.25.~5.1.)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동안 전도사님을 통해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박 장로님께서 서울 이만제단 개관집회를 여신다고 하니 저와 친구들은 호기심이 생겨 전도사님을 따라 서울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지어진 이만제단은 3층으로 된 건물이었는데 모든 층이 사람들로 빼곡해 보였습니다. 저희는 1층에 앉았고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오르셨습니다. 그날 처음 뵌 박 장로님은 얼굴이 환하고 키가 훤칠하셔서 수천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바로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귀한 모습이셨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어 한참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어디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지? 도대체 무슨 냄샐까?’ 궁금해하고 있는데 조금 지나자 개털을 태우는 것처럼 지독한 누린내가 났습니다.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또다시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박 장로님이 계신 단상 아래에 뽀얀 안개가 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하고 눈을 비벼봤지만 단상 아래 앉은 사람들의 머리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게 내렸습니다. 그때는 향취, 죄 타는 냄새, 이슬 같은 은혜를 알지 못할 때여서 제가 겪은 일들이 은혜 체험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개관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박 장로님은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외치시자 집회장 이곳저곳에서 벙어리였던 사람, 앉은뱅이였던 사람 등 수많은 사람이 일어나 자신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기뻐하며 증거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한 저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이만제단 개관집회 때는 서울운동장에서 제2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 (1957.4.25.~27.)도 같이 열렸습니다. 그때 농구 경기도 있었는데 박 장로님께서 직접 참가하셔서 모두의 관심이 쏠렸던 경기였습니다. 한창 재미있게 경기를 관람하는데 함께 온 언니, 오빠들이 밖에 좀 보라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농구 경기가 진행 중인 운동장에는 비가 오지 않는데, 운동장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운동장에 도착한 사람들도 밖은 비가 오는데 운동장에만 안 온다면서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녀온 저는 박 장로님께서 보통 분이 아니심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으며,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박 장로님 집회에는 꼭 참석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안동전도관 집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안동전도관은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전도관 식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로 이어지는 길목에 줄지어 서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하나님의 검은색 세단이 도착하자 사람들은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고, 세단이 지나가자마자 예배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너도나도 예배실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 인도하시는 예배가 시작된 후 저는 이만제단에서 맡았던 향취를 안동전도관에서도 다시 맡을 수 있었습니다. 향취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은 향이어서 아무리 비싼 향수가 있다 한들 그만큼 진귀한 향은 없을 것이라 지금도 생각합니다. 가끔씩 길에서도 향취가 맡아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허락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영주집회에 갔을 때는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던 방언의 실체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영주집회 당시 한참 예배를 인도하시던 하나님께서 갑자기 찬송을 멈추시더니 “거기 새카만 거 나가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새카만 거 나가라”고 단상을 치시며 크게 꾸짖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색 스웨터를 입은 60대 여성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마에 시커먼 혹이 뿔처럼 튀어나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혹은 피멍이 든 것처럼 검붉은색이었고, 크기가 주먹만해서 얼핏 보기에도 무척 흉했습니다. 여자는 당황스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리다가 사람들 손에 이끌려 이내 예배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기성교회에 다니며 방언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전부터 방언은 악신을 받은 것이라 매우 좋지 않은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방언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저는 그날 처음으로 방언의 실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듣기로는 방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면 시커먼 혹이 툭툭 튀어나오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놀랍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성신과 악신의 역사를 분명하게 구별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후 결혼하여 경북 울진군 후포면에 살게 된 저는 포항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포항교회의 권사님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입관예배에 참석했는데, 고인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니 너무나 잘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목으로 물 한 모금 안 넘어가는 것이 상식인데 생명물은 넣어드리는 족족 들어가니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또한 생명물을 묻힌 수건으로 고인을 깨끗이 닦아드리자 굳어있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온몸이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특히 고인의 가슴 부근부터 피부에 혈색이 돌면서 피어나는가 싶었는데 찬송을 다 부르고 나니 어느새 얼굴까지 환하게 피어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기장신앙촌에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에 손을 살짝 대시기만 했는데도 배 속의 장기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당기고 저릿저릿하면서 무척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아픔이 사라지고 배가 시원해질 때쯤 하나님께서 온화하신 목소리로 “죄지으면 안 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시듯 죄짓지 말라고 안타깝게 당부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008년 영덕제단이 신축되면서 저는 영덕 천부교회로 소속을 옮겨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향취를 맡은 적이 있는데, 2014년 2월 축복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축복일을 맞아 신앙촌에 온 저는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셨던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리며 길을 걷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강한 향취가 코를 확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변함없이 함께해 주시는 은혜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깨달아 많이 행복했습니다. 임원으로서 만찬회에 불러주셨을 때 들려주신 귀한 말씀은 제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매 주일 예배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면 ‘부족한 내가 어떻게 이 귀한 은혜를 알게 되어 이런 행복을 누리나’ 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 말씀을 따라 맑고 성결한 자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자유율법을 지켜 죄에서 벗어나라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매 순간 저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며 살아가겠습니다. 구원의 길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어”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어”

<지난호에 이어> 10년 가까이 전도관에 가지 못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은 저는 서울로 상경해 동대문구 이문동에 정착하여 1970년도 후반부터 이문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문전도관에 다니면서 저는 삶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은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 마음에 걸려서 이제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교회에 갔는데 우연히 어떤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예전에는 은혜가 많이 내렸는데 요새는 은혜가 안 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고 다음 날 새벽예배에 갔습니다. 예배실에서 눈을 감고 기도드리는데 어느 순간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더니, 그 시원한 것이 배속까지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입맛을 다셔보니 달콤한 맛이 느껴져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 주 수요일 예배 시간에는 향취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말도 못 하게 좋은 향취가 바람처럼 불어와 코끝을 싹 지나가고, 조금 있다가 또다시 싹 지나가며 끊임없이 맡아지니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근심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듯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으니 앞으로는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그 은혜를 간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일요일 오전에 서울 5중앙(전농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각자 자신의 제단에 돌아가 예배를 드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옆집에 사는 학생 한 명을 전도해서 함께 5중앙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병 환자였는데, 교회에 다닌 이후로 간질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본인도 신기해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은 그 학생이 제게 하는 말이 “아줌마! 이상해요. 단상에 자꾸 안개가 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에게 그것이 바로 이슬 은혜라고 알려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마나 놀라워하며 기뻐하던지 아직도 그 얼굴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5중앙에 직접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예배실 안은 향취로 가득했고, 그 향취를 맡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향취를 맡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실 안에 향취가 진동했기에 저는 모든 사람이 다 맡았을 것이라 여기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 사람은 물론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저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은혜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병에 걸려 숨을 거둔 7살 난 어린아이의 입관예배에 갔습니다. 교인들은 먼저 아이가 누워있는 관 주변에 모여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아이의 발 쪽에 서 있었고, 한참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관 주변을 한 바퀴 휙 돌아 나가고, 또다시 휙 돌아 나가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온 바람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아! 하나님께서 성신의 바람으로 보호해 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쁜 일이 있어서 찬송만 부르고 자리를 떠나야 했는데, 이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생명물로 너무나 뽀얗게 잘 피어서 다들 놀랄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5중앙 다니던 시절의 기억 중 또 하나 잊지 못할 은혜 체험이 있습니다. 그날은 예배실 1층에 사람이 꽉 차서 2층으로 올라가 예배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한참 예배를 드리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눈물이 멈추고 마음에 기쁨이 확확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몸이 훨훨 날아갈 듯한 기쁨에 신기해하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잠시 예배를 멈추고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내신 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지금 기쁨의 은혜를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 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은혜를 받으신 분이 계십니까?”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손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에 겪었던 마음에 차고 넘치는 기쁨이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은혜라고 하시니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이후 서울지역 소비조합이 되어 질 좋은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2005년 신앙촌 요구르트 런이 출시되었는데, 신제품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고객들에게 홍보도 많이 하고, 저 역시 요구르트 런을 즐겨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런이 출시되고 1년쯤 지났을까 단골 고객이 저에게 하는 말이 ‘아줌마는 요구르트 나오고 사람 됐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색도 안 좋고 병원에도 자주 다니더니 요새는 안색도 훨씬 좋아지고 병원도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줌마가 요구르트를 마시더니 몸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간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병원에 들락거리는 일이 많았는데 요구르트를 마신 후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몸이 건강해지면서 저는 더욱 신나게 일했습니다. 상회에 오는 고객들을 맞이하고, 업체에 신앙촌 식품을 납품하고, 마트에서 홍보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소비조합 은퇴 후 장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기도시간에 ‘죄짓지 않고 마음이 성결한 자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동안 선명히 보여주셨던 하늘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75장에 있는 ‘이슬성신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기니 성신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라는 가사처럼 귀한 성신의 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며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건강과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

요구르트 런, 신앙촌간장, 생명물두부는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신앙촌식품이다. 2005년 요구르트 런이 출시되면서 신앙촌식품의 본격적인 홍보와 판매에 활력을 더한 이들이 바로 ‘신앙촌 소비조합’이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천부교 교인으로, 1957년 건설된 소사신앙촌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60여 년 오랜 세월 동안 양심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소비자에게 정직과 신용을 전해왔다. ○ “신앙촌이라면 믿을 수 있다” 1970년대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영등포시장에 가게를 마련해 신앙촌 간장과 비누, 담요 등의 제품을 구비한 후 오랫동안 거래했던 상인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소비조합을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분들은 “신앙촌이라면 틀림없다. 믿을 수 있다.”라며 선뜻 대량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신용이 바탕이 되어서 신나게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기가 좋았던 신앙촌 담요는 상인들이 먼저 가져가기 위해 트럭을 대 놓고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저는 신앙촌 제품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부지런히 판매하는 것이 무척 보람되었습니다. <377회 박정순 권사 신앙체험기 中> ○ 소비조합을 하면서 윤택해진 생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기 전부터 신앙촌 물건을 판매했던 저는 신앙촌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객에게 소사신앙촌에는 ‘주인 없는 상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상점은 돈을 받는 사람이 없이 물건을 산 후 각자 계산하는 곳으로, 나간 물건과 들어온 돈을 맞춰 보면 1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는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그분이 세상에 정말 그런 곳이 있느냐며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소사신앙촌에 모시고 왔습니다. 그 고객은 인천 신흥동에서 가구 공장을 크게 하며 부유하게 살았는데, 소사신앙촌에 반듯반듯하게 서 있는 예쁜 양옥집들을 보면서 “여기는 정말 별천지군요.”라며 놀라워했습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하여 소비조합을 계속했습니다. 큰 밑천도 없이 시작한 장사였지만 하나님 가르쳐 주신 대로 정직하게 장사하면서 고객들에게 신용을 얻게 되었고, 이불, 양재 등 다른 품목도 고객들이 찾으면서 점점 장사가 커졌습니다. 그렇게 소비조합을 하면서 5남매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오기 전 작은 집에서 비좁게 살았던 저희 가족은 덕소신앙촌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331회 방한열 권사 신앙체험기 中> 초창기 방문판매 위주였던 소비조합은 판매 방식의 변화와 함께 현재 전국 곳곳의 신앙촌상회에서 고객들에게 건강과 기쁨을 전하고 있다. 초창기 세대와 같이 30~40대 젊은 소비조합들도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소비조합의 꿈을 키워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며 활기차고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소비조합의 꿈을 키워왔다는 김춘희 사장. 2009년 신앙촌상회(인천용남시장점)를 이전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촌상회를 이어받게 되었다. “신앙촌 소비조합원이 되었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 날아가는 것 같았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우수한 신앙촌 제품을 알린다는 보람이 무척 컸어요.” ○ 신앙촌 소비조합으로서 자부심 정복선 사장은 2014년 선배 소비조합원의 상회를 인수하고 정식으로 소비조합이 되었다. 처음에는 신앙촌식품 사원으로 리더스 팀에 선발되어 지금의 신앙촌상회 일산서구점에서 홍보 활동을 했다가 고객에게 건강을 전한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소비조합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고객들이 먼저 좋은 제품을 알아봐 주시고 ‘역시 신앙촌이지!’라고 할 때 정말 기뻐요. 이런 기쁨과 감사함,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촌 소비조합으로서 복이 아닌가 싶어요.”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기획
세계 종교 탐구<43>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②

세계 종교 탐구<43> 마약이 증명하는 것들-②

오피니언
[나침반] 토리노 수의 거짓 드러났으나 교황, “예수의 죽음 묵상하도록 도움 준다”고. 삼위일체 재현, 쓰리섹스한 루프니크 신부 작품도 시간 지나면 근거도 없애고 영적 성찰 도구로 미화되겠네 外

[나침반] 토리노 수의 거짓 드러났으나 교황, “예수의 죽음 묵상하도록 도움 준다”고. 삼위일체 재현, 쓰리섹스한 루프니크 신부 작품도 시간 지나면 근거도 없애고 영적 성찰 도구로 미화되겠네 外

시온포럼

글로벌 경기 침체, 어떻게 끝내나?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부산 가덕도 집회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늘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늘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글> 입사 20주년 곽소연 씨 17살 어렸을 적부터 꿈꿔 왔던 입사생이 되기 위해 신앙촌에 입사하였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든 일들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신앙촌에서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꿈 중에서도 기도하라는 말씀에 기도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려움과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오면서 처음 입사했을 때의 감사한 마음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먼저 생겨났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게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은 아닌지, 구원을 위해 나는 무엇을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 20년이 된 지금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을 때마다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입사생 선배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선배님들처럼 그 사랑을 후배들에게 나눠주려 합니다. 입사 32주년 영상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주셨고, 길러주셨고, 사랑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기다리고 계십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렇게 신앙촌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입사생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신앙촌에서 살아온 날들에 감사드립니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생각해 보니 이제 저도 입사생이라는 이름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데 연단 없이는 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주어진 일에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한층 더 성숙한 신앙인 되고 싶어

한층 더 성숙한 신앙인 되고 싶어

<하나님께 드리는 글> 입사 10주년 이유라 씨 먼저 10주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년 주년을 맞이하는 선배님들을 보며 존경의 마음과 뭉클한 마음이 들었는데 막상 제가 이 자리에 서보니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입사를 앞둔 저를 앉혀놓고 관장님께서 “좋은 일, 쉬운 일만 있지는 않을꺼야”라고 하셨을 때 저는 “충분히 이겨낼 자신이 있어요”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마음에 호기롭게 했던 대답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신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입사하여 생활하다보니 그때 관장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관장님께서 이런 질문을 제게 하셨습니다. “유라야. 어릴 적에 수요일 말씀 공부하면서 관장님이 너희에게 왜 진짜 하나님이신 것 같냐고 질문했던 기억나니? 지금이라면 뭐라고 답할래?” 제가 잠시 머뭇거리자 관장님께서 “다른 아이들은 교회에서 말씀 공부시간에 배운 내용을 이야기했지만 너는 그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니까요’ 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 머리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의 머뭇거림이 제 신앙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잊고 지냈던 중요한 것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지혜를 구했던 그때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동안 입사생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가운데 타율적으로만 움직였던 것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아직도 깎여야 할 모난 부분이 많은 저이지만, 10주년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하나님 앞에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잘 커 줘서 고마워”, 신앙촌 교육의 시작이 된 신앙촌 유치원

“잘 커 줘서 고마워”, 신앙촌 교육의 시작이 된 신앙촌 유치원

1950년대부터 어린이들의 미래를 밝혀 주었던 신앙촌 유치원 신앙촌 교육의 시작은 1950년대 소사신앙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사신앙촌에는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교육기관이 운영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시면서 교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세우신 것이었다. 소사신앙촌 유치원 1회 졸업생인 故전한나 권사는 생전에 “전쟁 직후 모두가 먹고살기 바빴던 때였는데, 신앙촌에서 유치원 교육까지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어요”라며, 어려운 시절에도 교육을 중요시했던 신앙촌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도 유치원은 계속 운영되었다. 당시 신앙촌 내 공장들이 활발히 돌아가면서 사원과 소비조합원의 수가 증가하자, 부모들이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1974년, 아이들을 좋아했던 강영숙 권사는 유치원 교사로 자원하여 일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소사와 덕소신앙촌에서 아이들을 교육했던 선우혜국 승사가 기장신앙촌 유치원 원장을 맡게 되었다. 강영숙 권사는 “당시 유치원에는 많게는 80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앙촌이 기장군에 속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양산군이었거든요. 군청에서 문을 닫지 말아 달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큰 유치원이었습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황순정 관장(대전교회)은 어린 시절 신앙촌 유치원에서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신앙촌 아이들 대부분이 선우혜국 원장님의 지도를 받았어요. 원장님께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는데, 저 역시 원장님께 처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옆집이 원장님 댁이어서 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원장님께서도 제 연습 소리를 다 들으시고는, 어느 날 피아노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황순정 관장은 선우혜국 원장을 단순히 유치원 원장님으로만 알고 지내다가, 커가면서 그가 천부교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제가 유치원에 입학했을 때부터 교복을 입고 다닐 때의 모습, 신앙촌의 크고 작은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모습을 모두 지켜보시고 ‘잘 커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라며, 항상 밝게 웃어주었던 선우혜국 원장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은 현재 신앙촌 사원 식당 2층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영숙 권사는 식당 앞 분수대 자리에 놀이터와 등나무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수영장이 있어서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했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순하고 싸우는 일이 없었어요. 신앙촌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덕분인지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가끔 유치원에 오셔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지켜보시고, 축복도 해 주셨어요. 그때는 작은 상처가 나도 생명물을 발라주면 금방 나았어요.” 강 권사는 유치원에서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 교재를 만들고, 1년에 두 번 교사 연수를 받으며 따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연말에는 재롱잔치 준비로 바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기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촌에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자란 아이들은 시간이 흘러 신앙촌의 든든한 기둥으로 성장했다. 현재 교역자, 소비조합, 신앙촌 사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고 했다. 유치원 5회 졸업생 김영문 씨(신앙촌 여청)는 “유치원에서 생일 파티도 하고, 간식시간에 선우혜국 원장님께서 피아노를 연주해 주시면 저희는 줄을 서서 빵과 우유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담임선생님이셨던 강영숙 선생님께서 제 머리를 묶어 주셨던 일도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강 선생님은 저에게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래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시온고등학교

미래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시온고등학교

시온고의 혁신과 도전 학교와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 올해로 71회 졸업생을 배출한 경기도 부천의 시온고등학교는 급변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춰 미래형 인재 양성에 주력해 오고 있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학교 경영을 통해 경기도를 대표하는 학교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오원준 교장의 열정적인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 9월 4일, 오 교장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부천시 시민대상’ 교육학술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시온고등학교의 교육적 성과와 미래 교육에 대한 비전을 오 교장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시온고등학교에서의 교육 철학과 주요 활동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중앙대부속고등학교에서 20년간 재직하다가 2011년 시온고등학교로 부임해 2021년부터 교장으로 재임 중입니다. 소사신앙촌에서 태어나 시온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에게 시온고등학교는 매우 특별합니다. 소사신앙촌에서 경험한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건전한 가치관과 미래 사회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시온고를 발전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부임 초부터 국내 최초로 도시농촌 학교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 중국 학생들과의 역사문화교류,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예절준법교실, 아버지 학교 등 학생들이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추진해 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시온고의 교육 과정이 주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원격수업이 처음 도입될 무렵 신속하게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시작해 경기도 내 다른 학교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실시간 대면 화상 원격수업’을 전면 실시해 교육부 지정 ‘온라인 교과서 선도학교’로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교육부 주관 에듀테크활용 미래혁신교육 선도 전국 10대 고등학교로 선정되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학생 건강관리 및 안전지도, 에듀테크 기반 e-learning 수업·평가·자기주도학습 지원, 메타버스를 이용한 가상현실 교육 등 학생들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지식·기술·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발판을 구축했습니다. 최근 학교 평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거둔 성과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흥미·적성·잠재력을 바탕으로 진로를 설계하는 고교학점제에 대비해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편성했습니다. 인문, 자연, 체육, 공연예술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학생들이 폭넓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대학 진학률에서도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한 학교평가결과 ‘학생 핵심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과정 운영’과 ‘세계 시민교육 활성화’ 2개 부문에서 모범사례 학교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경기도 전체 2,500여 개 학교 중 70개 학교가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미래형 인재 양성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신가요? 시온고등학교에서는 ‘가치 공방’과 ‘늘해랑’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국가의 학생들과 소통하며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2년에는 캄보디아(Hun Sen Angsnoul High School), 2023년에 태국(PCSHSCR), 베트남(Vinschool)과 온라인 국제교류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부천미래교육센터․크레앙트레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창업 체험활동을 통한 청소년 진로기획단을 구성해, 학생들이 직접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 및 직접 펀딩, 판매까지 하는 프로젝트를 펼쳤습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 대응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해 제14회 전국 청소년 자원순환 리더십 공모전에서 고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 활동도 활발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다채로운 공연예술행사, 열린과학실험교실, 세계 시민교육 협력학교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참여 동아리는 적극적인 정책 제안 활동으로 제11회 전국청소년 사회참여 발표대회에서 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부천시의 ‘열린시장실’에 초대되어 기후위기 대응 관련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창업 프로그램 ‘챌린지 네트워크’ 활동으로 시니어 친화 사회를 위한 비즈니스 아이템을 개발하여 지역사회 어르신들과 교류함은 물론, 지역 아동 초청 교육나눔 ‘작은 미래학교’를 운영해 지역사회 네트워크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천 관내에서 유일하게 교육부 인가를 받은 사회적 협동조합(매점)을 학생, 학부모, 교직원,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실질적인 경제 활동과 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수익은 장학금이나 축제 지원금 등으로 환원되고 있습니다. 최근 학교 환경도 크게 개선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2021년부터 교육청과 지자체로부터 약 1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유치하여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결과, 방문객들께서 신축학교로 인식할 정도입니다. 내진 보강, 석면 해체제거, 이중창 설치, 냉난방시설․운동장․화장실․주차장 현대화, 외벽 교체, 학교 숲 조성 등을 통해 안전하고 쾌적한 학교로 탈바꿈해 지역 내에서 가장 선호되는 학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앞으로 시온고등학교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강화와 AI 수업 활성화’를 비롯한 미래 교육을 선도하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변화, 도전, 창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온고등학교를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주니어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SANC식품여고 학생들이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회를 관람했다. 전시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 143점을 선보인 것으로 서양 미술사 400년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황금기 미술, 낭만주의, 인상파, 컨템퍼러리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섹션별로 구성되었다. 또한 클로드 모네, 반 고흐, 마티스, 앤디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 현대 미술의 거장인 윌리엄 켄트리지를 비롯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남아프리카 미술 거장들의 작품 25점도 전시되어 있었다. 동화 속 삽화 같은 포근함 느껴 전시회장에 들어서면서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시대 작품들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과 묘사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프랑스풍의 역광’이었다. 색연필 같은 질감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색을 칠하지 않고 선을 교차시켜 그려서 명암과 밝기를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과 마치 동화 속 삽화 같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전시를 보며 책이나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작품의 실제 크기나 섬세한 묘사, 전체적인 느낌을 알게 되어 더욱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식품여고 2학년 강진주 나에게 가장 의미있고 빛나는 작품 폴 시냑의 라로쉘은 멀리서 봤을 땐 그냥 스쳐 지나갈 뻔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고, 멈춰서 또다시 보기를 5번은 반복했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어떤 기법이 사용되었는지 몰랐는데 불완전한 가운데 완전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특정한 패턴이 있고, 일정한 점들의 나열들이 모두 뜻하는 바가 있어 보였다. 이 작품으로 나는 모든 작품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붓 터치나 점의 위치 하나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생각을 나타내주는 것 같았다. 라로쉘은 다른 유명한 작품들보다도 나에게는 가장 빛나는 작품이었다. 식품여고 3학년 조가온

[성경아삭] 구름을 타고 올라간 예수

[성경아삭] 구름을 타고 올라간 예수

<어린이 설교> 생각의 날씨를 맑게 해요

<어린이 설교> 생각의 날씨를 맑게 해요

가로세로 ‘사칙연산 퀴즈’

가로세로 ‘사칙연산 퀴즈’

비공개: 김정자 권사님 편(1)

비공개: 김정자 권사님 편(1)

교양

<도서추천>  “발전하는 삶을 지향한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

<도서추천> “발전하는 삶을 지향한다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

럭셔리 브랜드에서 패스트패션, 디자인 도용에서 소각장 폐기물까지 옷의 생태계와 경제에 관한 종합 보고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 돌고래 | 2023.11.01. 5년째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을 몸소 실천하며 해양환경단체에서도 활동 중인 저자는 옷이 생산·유통·폐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악영향을 여과 없이 고발한다. 하지만 자기 혼자 옷을 사지 않는다 한들 옷으로 인해 벌어지는 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여전히 예쁜 옷을 보면 시선을 빼앗기는 자신을 고백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 책에는 패션업계의 현실에 대한 고발뿐 아니라 저자의 딜레마와 노하우까지 담겨 있어 거창한 결심이나 배경지식 없이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않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일이 와 있는 삶을 살았다. 인생은 순간이다 김성근 | 다산북스 | 2023.11.22. 3번의 우승을 이룩하고 통산 1384승을 올려 대한민국 야구 감독 중 승수 2위에 오른 김성근 감독. 그는 자신의 지난 시간을 ‘평생 비상식으로 싸워온 모퉁이 인생’이라고 회고한다. 돈도 연줄도, 가진 것 하나 없이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무수히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도전하는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담담한 응원을 전하고 있다. 패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승자는 시스템을 만든다. 거의 모든 일에 실패하던 자가 결국 큰 성공을 이루어낸 방법 더 시스템(The System) 스콧 애덤스 | 베리북 | 2020.07.17. 전 세계 65개국 2,000여개 신문사에 실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 ‘딜버트’의 작가 스콧 애덤스. 그는 성공에 이르려면 ‘목표’가 아니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한다.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건강과 커리어에는 신경 쓰되, 불필요한 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실패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패배감에 빠져 살지 않고, 나 자신을 토닥여 가며 나아가는 것. 성공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명물두부를 넣은 볶음밥, 칼로리 낮은 한끼 식사로 추천

도대체 비트코인이 뭐길래

난징 대학살의 진실

장내 유익균이 노화 방지 등 건강 수명에도 도움돼

장내 유익균이 노화 방지 등 건강 수명에도 도움돼

유익균이 장 건강, 근육, 면역체계 개선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돼 우리 몸 면역세포의 약 70%가 장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라는 미생물 군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유익균이 설사·변비 등 장 트러블을 개선시키며, 면역기능을 개선하여 각종 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 건강은 물론 전신염증, 노화 같은 다양한 질병과 장내 미생물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장내 유익균이 노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생쥐 모델을 통해 규명했다. 노화와 유익균의 상관관계 조병관 KAIST 교수, 이철호·김병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 연구팀은 공동으로 노령 실험 쥐에 장내 유익균을 투여한 결과, 건강 수명 연장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지난 1월 2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노화가 진행되면서 장 기능 저하로 인해 만성염증을 일으킨다. 특히 노화 진행에 따라 장내 미생물 구성도 변화해 건강과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노화 생쥐 모델과 회춘 생쥐모델을 구축하고, 장내 유익균 중 하나인 ‘아카먼시아 미생물’을 경구 투입해 장내 미생물 군집 변화를 분석했다. 노령 쥐에서는 유해 미생물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으나, ‘아카먼시아 미생물’을 경구 투입한 회춘 모델에서는 노령 쥐에서 많이 발견됐던 유해 미생물은 감소하고, 아카먼시아 미생물은 증가했다. 조병관 KAIST 교수는 “아커먼시아 미생물과 같은 유익균이 노화 쥐의 장 건강, 근육 기능, 면역체계를 개선해 건강 수명 연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규명했다는 데 연구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장내 유익균과 미생물 군집에 관한 연구는 최근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노화는 물론 자폐, 치매, 암 치료에도 높은 상관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에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을 공략한 다양한 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장내 유익균을 늘리려면? 그렇다면 내 몸의 장내 유익균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된다, 가공하거나 도정하지 않은 통곡류와 채소, 과일, 콩류, 견과류 등을 충분히 섭취하면 유익균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식이섬유에 풍부한 폴리페놀은 건강한 유익균의 생장을 돕고 장의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프로바이오틱스 섭취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요구르트, 김치, 청국장 등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이 함유된 발효식품을 먹으면 장 건강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생활습관은 도리어 유익균이 아닌 유해균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식사를 불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은 유익균의 생체 리듬을 깨뜨려 몸에 무력감을 가져올 수 있다. 패스트푸드나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 지방은 유해균의 먹이가 된다. 즉,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유해균이 증가하는 것이다. 풍부한 식이섬유 섭취와 규칙적인 식습관, 충분한 수면이 장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운동 시작! 걸을까? 달릴까? 고민 말고 둘 다 하세요!

이제는 4세대 유산균? 뭐가 다른가요?

당신이 치실을 꼭 사용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