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이어진 생명물의 은혜
(지난호에 이어)
신앙촌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생명물을 축복해 주실 때면,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집무실 앞마당에 물을 받아 놓곤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3층 창가에서 마당을 향해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 집무실 건너편 건물에서 야간 작업을 하며 밤을 지새울 때도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모두 잠든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그때 들었던 축복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합니다. 밤새 이어지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해 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밤새 끊이지 않던 하나님의 축복 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1974년, 군산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받은 생명물을 챙겨 곧바로 군산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집에 있던 생명물로 이미 깨끗하게 피어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제가 가져간 생명물을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를 석관으로 옮겨 모실 때도 그 위에 생명물을 부어드렸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얼마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꿈에 아버지께서 나타나셔서 당신의 발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깨끗해 보였는데, 제가 얼른 알아보지 못하자 아버지께서는 그 꿈속에서 몇 번이나 발을 보라고 하시며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잘 보이지 않던 반점 몇 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아 어머니께 아버지 산소를 한번 살펴봐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알아보니 생전에 아버지와 함께 일하시던 분이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산소를 찾아와 술을 부으며 하소연을 하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께서는 곧바로 산소로 달려가 생명물을 흠뻑 부어 드리고 오셨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업무차 하나님 집무실에 갔을 때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물통에 물을 담아 오라 하시며 생명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축복받은 생명물을 아버지 묘소에 정성껏 부어 드리고 돌아오며,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1980년대에는 하나님께서 합창을 많이 장려하셨습니다. 덕소와 소사신앙촌 합창단도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장신앙촌으로 내려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합창 경연을 벌이곤 했습니다. 1985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기연주회를 준비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단원들의 식사와 생활까지 하나하나 살펴 주셨습니다. 연주회 당일 무대 옆에서 순서에 맞춰 단원들의 무대 입장을 돕고, 하나님과 단원들이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1990년 2월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뒤, 생명물의 권능이 예전과 같을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무렵 기장 죽성에 사시던 한 분이 사고로 험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명물로 고인을 씻겨 드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생명물에 하나님의 신이 변함없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생명물의 권능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70세에 신앙촌에 입주하셔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양로원에 들어가신 지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저는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생명물로 씻겨 드린 어머니의 모습은 살아 계실 때보다도 몸이 더 부드럽고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명물의 은혜 가운데 어머니를 편안히 보내드릴 수 있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1994년 저는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촌상회를 개업하기 위해 점포 자리를 찾아다녔는데, 한 달 동안 어디를 가든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곁에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소비조합 활동은 5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다해 일할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1999년 2월, 저는 진주 제단으로 첫 교역자 발령을 받았습니다. 소비조합을 거쳐 교역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학창 시절 군산전도관에서 하나님께서 ‘나가서 제단을 살펴보라’고 하셨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교역자가 되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제게 앞으로 걸어갈 길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임 첫날 밤에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밤새 열기가 가시지 않았고,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린 후에는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체험한 뜨거운 은혜가 불성신의 은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2015년경 천안제단에 처음 부임하던 날, 이미 말라 죽은 커다란 고목이 제단 안쪽을 가로막고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자칫 쓰러지면 아래쪽 주택이나 제단 건물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한 나무였습니다. 그 후 나무를 없애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워낙 크고 위험해 중장비 기사조차 작업을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제단으로 올라오는 길에 여느 때처럼 그 나무를 올려다보고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아랫집 부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나무 어디 갔어요?”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 보니 정말 나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올라와 있던 아랫집 부부를 보며 저도 모르게 “나무 어디 갔어요?” 하고 되묻자, 부부는 “우리가 물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제야 셋이서 함께 화단 쪽을 살펴보니, 거대한 고목은 썩은 뿌리 위에서 꺾여 다른 가지들과 세 갈래로 나란히 겹쳐진 채 이웃집 담과 접시꽃 사이에 누워 있었습니다. 담과의 거리는 불과 10cm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랫집 부부는 “하나님 믿는 교회라 다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역시 하나님께서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지켜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제단의 고목이 쓰러졌지만, 이웃집 담과 불과 10cm를 남겨두고
안전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느껴
교역자가 된 뒤에는 신기하게도 입안에 늘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입안에 단물이 고이곤 했는데, 특히 새교인들과 함께 찬송을 부를 때면 그 맛이 더욱 진해졌습니다. 천안에서 시무할 때는 그것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천안제단에는 매주 새교인들이 전도되어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은 몇 주 동안 예배 시간 내내 생글생글 웃으시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무엇이 그렇게 기쁘신지 여쭈어보니, “사진 속에 있는 분이 우릴 보고 웃고 계세요. 제단에 다녀가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장례가 나면 늘 곁에서 돕기만 하다가, 2025년 6월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서귀포 교인의 장례를 처음으로 직접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밤 12시쯤 요양병원에 계시던 언니가 운명하셨다며 동생분이 천부교식 장례를 부탁해 오셨습니다. 생전에 천부교식 장례를 원하셨던 고인의 뜻을 따르겠다는 유가족의 연락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처음으로 직접 주관하는 장례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저는 입관하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그려보았습니다.
저녁 무렵 서귀포에 도착해 제주 관장님과 교인분들과 함께 입관을 진행했습니다. 신앙촌에서 가져간 생명물을 수건에 적셔 고인의 얼굴을 덮어 드린 뒤 잠시 후 수건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피부가 부드럽게 풀려 뽀얗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고, 곁에 있던 분들도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제주 관장님은 유가족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부드럽게 풀린 고인의 팔을 직접 들어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한쪽 다리가 ‘ㄱ’ 자로 심하게 굽어 있어 관에 모시기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생명물로 씻겨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굽었던 다리가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원 직원이 “조금 전에 가져온 그 물로 이렇게 된 겁니까?” 하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장례를 돕던 다른 직원들도 반듯하게 펴진 다리를 보고
“도대체 무슨 물입니까?” 하고 거듭 물었습니다. 제주 관장님은 “신앙촌에서 가져온 생명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이라 아무리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장례를 직접 주관하면서 생명물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금 마음 깊이 느꼈고, 고인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귀포제단에서 처음 장례를 주관하며 생명물로 고인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굽었던 다리가 펴지는 모습을 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느낀 일은 장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귀포제단에서 소비조합 일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2년 동안 저는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과 설렘, 행복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이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저 천국 들어가는 날 주 앞에 가리라”였습니다. 그 가사처럼 하나님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겸손이라 여겼던 행동 속에도 제 고집이 있었고, 게으르게 살아온 순간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도 제 뜻을 앞세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럼에도 부족한 저를 교역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생명물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이 은혜를 간직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