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여성회 축복일 정규예배 열려

1월 여성회 축복일 정규예배 열려

새해 첫 여성회 축복일 정규 예배가 1월 9일 신앙촌에서 있었다. 안전한 행사를 위해 백신 접종 완료자 또는 PCR검사 음성 확인서 소지자만 예배에 참석하였다. 예배에서 장서영 관장(기장교회)은 “저희는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이슬성신과 생명물의 권능을 수도 없이 많이 체험하며 이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을 체험한 자라면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는 은혜받은 자의 사명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전도를 향한 각오와 다짐이 가득 차 있어야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올해는 전도의 기쁨을 충만히 느끼는 한 해가 되도록 용맹한 마음과 자세로 있는 힘껏 전도합시다”라고 설교했다. 이어 2022년 여성회 임원발대식이 있었다. 이향미 관장(기장신앙촌)은 격려사를 통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직분을 받은 저희는 이 소중한 길을 놓치지 않도록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시작으로 더 힘차게 질주하실 임원분들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박수를 보냅니다”라고 했다. 발대식에서는 중, 서, 남부 연합회와 기장신앙촌 연합회, 도관, 각 중앙 임원들이 임명되었다. 임원들은 시온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찬송가 549장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를 부르며 한 해 동안 맡은 직분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 또한 축복일을 맞아 소비조합 세미나, 소비조합 경진대회 등 식품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프로그램도 준비되었다. 세미나 시간에는 식품사업 우수자 발표 및 특순, 식품사업 목표 달성 지역 시상, 신규 신앙촌상회 소개 등이 있었다. 소비조합 경진대회에서는 조별로 사업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고, 올해의 목표를 설정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상회가 되겠습니다”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상회가 되겠습니다”

8일, 신앙촌에서 열린 사업시상식에서 신앙촌상회를 오픈한 소비조합 사장들에게 꽃다발과 소정의 선물이 수여되었다. 소망과 각오를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신앙촌상회 사장들의 소감을 들어본다. 올해 저는 신앙촌상회 2호점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상회를 찾아오시는 고객분들이 많이 기뻐해 주시는 것을 보면 힘이 나서 더욱 열심을 내게 됩니다. 어떤 고객은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다고 하시고, 어떤 고객은 가까운 곳에 신앙촌상회가 열려 언제든지 들릴 수 있으니 안심이라고도 하십니다. 2022년 신앙촌상회를 열게 되면서 더 많은 일을 계획하게 되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며 하루하루 기쁜 마음으로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2호점을 열게 되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몇 번의 수술을 하고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좀 약해지게 되었고 곧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여러 어려움이 닥쳐와 더욱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촌 소비조합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사는 생활이 얼마나 가치있고 보람된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어려움이 올수록 더욱 의지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기울이는 시간이 더해지던 어느 날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행에 선물세트 영업을 하러 갔는데 담당자가 바쁜 일이 생겨서 1시간 넘게 기다리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업 자금을 융통할 기회가 생기게 되고, 1호점 근처에 경쟁 업체가 들어와 마음이 쓰여 고민하면 또 다른 좋은 장소가 눈에 들어와 2호점까지 마음먹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 2호점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아들이 신앙촌상회를 돕겠다며 나서줘 감사한 일이 가득해졌습니다. 신앙촌 소비조합이라는 귀한 일 속에서 순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앞으로도 신앙촌 소비조합분으로서 힘차게 나아가는 제가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항상 바라고 있던 신앙촌상회를 열게 돼서 정말 행복합니다. 마음이 기쁘니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기쁨이 떠나지 않습니다. 찾아오시는 고객분들이 “신앙촌 물건 좋지”, “간장이 참 맛있어”라고 해주실 때도 좋지만 “그렇게 웃으며 맞아주니 덩달아 기뻐진다”라고 해주실 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반가운 마음에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해 드린 것을 알아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신앙촌상회를 열기 전에 마트에 신앙촌 제품 입고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저에게 신앙촌상회를 차려보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심 고맙고 기특했지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신앙촌상회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또 한번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하기를 신앙촌상회는 단지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겸손하게 대하며 은혜가 담긴 제품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부족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권유해 주는데 관장님께 여쭈어라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씀드리니 마침 인천에 신앙촌상회를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로 신앙촌상회 개업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이렇게 기쁜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상회에서 일을 하며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 노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속에 복이 있다는 말씀을 새기며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소비조합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개업날 축하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친구들까지 불러서 와준 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2년을 신앙촌상회를 통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안성 시장점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신앙촌 제품을 사용하셨던 분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오시는 분마다 “시장 안에 있어 오가기 편해서 좋다”, “신앙촌 제품은 아주 좋아”라고 하시며 격려해 주시고 기뻐하십니다. 또 옆 복지시설 건물에서 노인회 회장 일을 보시는 분이 진열된 생명물 간장을 보시고는 오래 전에 위장이 너무 안 좋아 다른 반찬은 전혀 못 드셨는데 신앙촌 간장만 몇 년간 드셨다고 하시며 노인회 설 선물로 주문까지 해 주셨습니다. 정직하고 바른 양심으로 만든 제품을 아껴주시는 분들이 가까운 곳에서 편안하게 찾으실 수 있도록 신앙촌상회를 곳곳에 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객이 오시면 신앙촌 제품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신앙촌상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 자꾸 오고 싶은 신앙촌상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뜻깊은 신앙촌상회를 열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신앙촌상회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 광주 월산점/김영수 팀장, 임덕자 점장 맛의 고장 광주! 자칭 ‘입맛이 청와대’라고 할 정도로 광주 분들은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는 최상급으로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6차선 대로변에 상회를 열고 정면에 진열해둔 신앙촌 간장을 지나가던 고객들이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들어오셔서 바로 사서 갈 정도로 저희 간장을 좋아하십니다. 상회 앞에 공용주차장이 있어 차를 세워 놓고 바로 들어오셔서 간장부터 찾기도 하시고 어린 학생이 들어와 “우리 할머니 좋아하는 마법 간장 주세요”라고 말하며 사가기도 합니다. 어떤 음식에 넣어도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만능 생명물간장을’마법 간장이라고 표현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며 뿌듯했던 기억도 납니다. 월산점을 열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신앙촌상회 개업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부족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개선하고 보완해서 상회를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그중 매출 부분이 가장 많이 신경이 쓰였는데, 그래서 상회 판매뿐 아니라 영업의 중요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상회 운영을 하시는 분들은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이곳 역시 상회에서의 판매와 판촉을 반 정도의 비율로 판매 목표를 세우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광주 월산점 신앙촌상회는 직원 4명이 파트타임으로 상회에서 손님 응대와 판촉을 병행합니다. 주변 상가, 마트, 백화점, 은행 등 다양한 곳에 납품 및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손님만 기다리지 않고 외부에서 매출이 이루어지니 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고객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앙촌상회를 열기 전에 그 주변 영업을 해보면서 고객을 늘려 놓고 상회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고객이 좀 생긴 상황에서 상회를 여니 고객과 유대관계가 훨씬 돈독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역색을 파악해 상품 진열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광주는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식품을 앞으로 진열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광주는 정육점이 발달해 있어 고객들이 정육점에서 다양한 식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두부, 간장을 납품해 판매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누구나 신앙촌 상회를 준비하며 고민되는 부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움직이고 고민하는 만큼 답도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허락해 주신 소중한 공간에서 기쁜 일이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앞으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그리고 임덕자 점장님 이하 모든 직원들과 마음모아 힘껏 나아가겠습니다.

[나침반] 美 미시간 교구, 사제 성학대 관련 문서

[나침반] 美 미시간 교구, 사제 성학대 관련 문서

*美 미시간 교구, 사제 성학대 관련 문서 400만 건 검토, 50만건 이상 여전히 검토 중… 드러난 것만 검토하기에도 좀 벅찬 듯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獨 뮌헨 대주교 시절 4년간 성학대 단 4건. 그 단체로선 기적적. 교황 즉위해보니 역시 그때가 기적. *멕시코, 동물의 보호자 성 안토니 축일, 성당에 개, 닭, 새 데려와 성수 뿌려.. 신종 인수(人獸)공통 성수인가…?

‘마녀사냥법’으로 처형당해야 했던  중세시대 여성들  수백 년 만에 누명  벗을 수 있을까?

‘마녀사냥법’으로 처형당해야 했던 중세시대 여성들 수백 년 만에 누명 벗을 수 있을까?

마녀사냥 극심했던 스코틀랜드서 무고한 피해자 사면하는 법안 추진 수백 년 전 마녀재판에서 억울하게 처형당한 피해자들이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영국 가디언지, 선데이타임스 등 외신은 12월 19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정부가 마녀사냥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피해자들을 사면하는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영국 최초로 마녀사냥 피해자들의 유죄 기록이 없어지게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563년 ‘마녀사냥법’이 제정돼 1736년까지 극심한 마녀사냥이 이뤄졌다. 마녀로 몰린 대상은 주로 지위가 낮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왕의 배를 저주하거나, 악마를 만났거나, 이웃에게 숙취를 유발하는 주문을 건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1629년 에든버러 성에서 처형된 이소벨 영은 올빼미로 변신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됐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마녀로 몰린 사람이 마녀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문을 했다. 피가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늘로 피부를 찌르고, 손톱을 부수고 뽑기도 했다. 고문을 버티지 못한 피해자들은 자신이 마녀라고 거짓 자백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마녀재판을 받은 사람은 3,837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84%가 여성이었다. 이들의 2/3은 화형을 당했다. 마녀사냥의 시작은 15세기 이후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열된 상황에서 시작됐다. 종교 전쟁, 전염병 창궐, 기근 등을 ‘탓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마녀사냥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와 악마와의 싸움을 과시함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비극적인 역사의 청산은 ‘스코틀랜드 마녀(Witches of Scotland)’라는 단체에 의해 시작됐다. 이 단체는 마녀사냥에 의해 처형된 희생자들에 대한 법적 사면과 사과, 국가적 차원의 추모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앞서 미국 메사추세츠주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마녀사냥 피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물고문에 몽둥이 폭행까지… “그 보육원은 지옥이었다”

물고문에 몽둥이 폭행까지… “그 보육원은 지옥이었다”

천주교 보육원서 지속적인 학대 시민 단체, 정부에 진상 조사 요구 서울 은평구 소재의 천주교 보육원에서 원생을 무자비하게 학대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고아권익연대는 14일 해당 보육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성폭력·노동 착취·고문 학대 사건의 민관합동 진상조사와 진정 있는 사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이 보육원 출신 박지훈(22·가명)씨는 현장에 나와 피해 경험을 증언했다. 그는 지난해 9월 가해 교사 3명을 아동복지법·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박 씨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12년부터 6년간 보육원에서 학대를 당했다. 보육교사는 박 씨의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샤워장에서 수십 분간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 뿌렸다. 화장실에 하루 종일 가둔 채로 밥을 먹게 하거나, 10인분의 라면과 밥을 먹게 하고 결국 토하자 토사물까지 먹였다. 이외에도 교사들은 무릎을 꿇고 10시간 묵주기도 또는 종일 기도를 시키기도 했다. 다른 아동들에게 박 씨의 팔다리를 붙잡게 한 뒤 바지와 속옷을 벗겨 엉덩이를 몽둥이로 200대 가까이 때리기도 했다는 것이 박 씨의 진술이다. 사건이 보도되자 관련 기사에는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하네요. 수녀회가 운영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이네요”, “악마들이 수녀복 입고 내 정신 육체를 망가뜨린 곳”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보육교사는 박 씨와의 통화에서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고 한 일이었다고 변명했다. 박 씨는 “보육원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 성장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보육원 관리자들한테 모두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떤 조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고아권익연대는 “박 씨의 고소 외에도 과거 해당 천주교 보육원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며 “수녀가 발바닥에 피가 맺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폭행하거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여중생을 속옷까지 벗긴 채 보는 앞에서 옷을 가위로 다 자르기도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박 씨 이외에도 같은 보육원 출신의 5명이 비슷한 학대를 당했다며 고소에 동참하기로 했다. 해당 보육원을 운영했던 재단법인 마리아 수녀회는 졸업생들의 연이은 폭로로 논란이 크게 확산되자 60년간 이어온 아동복지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풍 강타한 필리핀, 사망자 375명으로 급증

태풍 강타한 필리핀, 사망자 375명으로 급증

최대 풍속 시속 259㎞ 슈퍼급 ‘완전한 학살’이라고 표현돼 필리핀을 강타한 슈퍼 태풍 ‘라이’로 인한 사상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12월 20일(현지시간) AP통신은 태풍 ‘라이’로 인해 최소 37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실종자는 56명, 부상자는 500여명으로 늘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바람에 쓰러진 나무에 깔리거나 익사한 채 발견됐다. 붕괴된 건물에 매몰되거나, 바람에 뜯겨나간 철제 지붕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라이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가옥이 침수되는 등 필리핀 전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최소227개의 도시와 마을의 전기 공급이 중단됐으며, 현재 이 중 21개의 지역에서만 전기가 복구된 상태다. 필리핀 정부는 라이로 인해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를 포함해 78만 명의 주민들이 태풍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은 지역은 연료 고갈, 식수와 식량 부족에 직면한 상황이다. 현재 통신 두절로 정확한 피해 집계가 어려운 만큼, 통신망이 복구된 뒤 실제 피해 규모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태풍 라이는 지난12월 16일 필리핀에 상륙해 남부·중부지방을 관통하며 큰 피해를 입혔다. 라이는 평균 풍속 시속 195㎞의 강풍과 최대 풍속 시속 270㎞의 돌풍을 동반해 슈퍼 태풍으로 분류됐다. 라이가 최초 상륙한 필리핀 남동부 디나가트섬의 알렌 바가오 주지사는 “이전 태풍이 세탁기 같았다면, 이번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거대한 괴물 같았다”며 “바람이 6시간 동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고 했다. 필리핀 적십자는 태풍 ‘라이’가 집과 병원, 학교 등을 모두 붕괴해버렸다며 ‘완전한 대학살’이라고 표현했다. 필리핀은 환태평양 ‘불의 고리’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과 태풍 등 각종 자연재해에 취약하다. 매년 평균 20여개의 태풍이 필리핀을 지나면서 농식물 유실과 가옥파손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11월에는 태풍 ‘하이옌’으로 73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구원을 주시는 최고의 은혜는 이슬성신

여 교역자 시무식 “귀한 은혜 받아 힘껏 달리자”

2022년,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희망의 문을 열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벼운 장을 위한 요구르트 런!

신앙신보 구독신청은 각 교회별로 1월 24일까지 받습니다.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하나님 은혜 속에서 심령이 새롭게 깨어나  깨닫게 된 진리”

“하나님 은혜 속에서 심령이 새롭게 깨어나 깨닫게 된 진리”

1942년 저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크게 지었던 저희 집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어서 저와 형제들은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스무 살 때였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졸업 후에도 연무읍 강경에서 유도를 배우며 체육관 운영을 하는 것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김영재라는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터라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도시였던 공주로 가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찾아와주니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극심한 두통으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두통을 고치려고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박태선 장로님 집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집회에서는 병자들의 병이 낫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등 기사 이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전도관을 찾아 모여들었고 친구도 그곳에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박 장로님께서 축복해주신 “생명물”을 마시고 깨질듯한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을 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저에게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희 마을에는 큰 장로교회가 있어 동네 사람들 절반 정도가 다니고 있었지만, 저뿐 아니라 가족 모두 아무 종교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주에 바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슬같은 은혜가 향기로 맡아지는 경이로움 전도관은 저희 집에서 4킬로미터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걸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갔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연무대 전도관이었습니다. 예배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고 저도 그 틈에 들어가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종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곳에서 하는 모든 것이 참 좋게 느껴져 그 이후에도 계속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세 번째로 전도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단상 바로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상 쪽에서 제가 있는 곳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주변을 둘러보며 ‘예배실 문이며 창이 다 닫혀 있어 바람이 불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어느새 예배가 시작되고 전도사님의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주 좋은 꽃향기가 진하게 맡아지더니 소낙비가 내리듯이 향기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좋은 향기가 배 속까지 들어오다가도 일부러 맡으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어느새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다 다시 향기가 나타나 맡아지다가 또 깊게 들이마시면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주변에 꽃도 없고 향기가 날 만한 것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기쁨이 차올라 딴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예배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계속 향기를 맡으려고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던 친구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서 저는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하면서 성경 호세아 14장 5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하는 구절을 말하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이슬같이 내리는 은혜를 볼 수 있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성경 구절 속의 그 향기를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신의 차원의 세계가, 제 눈앞에 나타나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깨어나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도관에 놀라운 권능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변화를 일으켜 그 후 저는 매일 새벽예배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논길을 따라 찬송을 부르며 전도관을 오가던 그 길에는 향취가 진동해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어떤 날은 향기를 보자기에 담고 있다가 쏟아 부어주는 것 같아 깜짝 놀라기도 했고, 사과 향 같은 향취가 가슴속에서 배까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몸까지 가벼워져 그 먼 길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니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생활하는 중에도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져서 공부하면서도 화장실을 가면서도 쉼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은혜체험을 전하고 싶어 친구나 가족 등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받아 기쁨이 가득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저희 동생들을 전도해서 일요일 예배에 함께 가게 된 날은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화가 나는 순간 은혜가 떠나버리고 마음이 답답해져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지 않으셨던 부모님께서 갑자기 전도관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동네 장로교회 사람들이 저희 부모님께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보내면 안 된다고 비방을 하니 그 말만 믿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전도관이 나쁘다고만 하시며 더는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잘 모르시면서 동네 사람들 말만 듣고 반대만 하시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속으로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저러시는구나’ 하며 솟구치는 화를 꾹 억누르려고 했습니다. 그때 은혜가 쑥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하나님 은혜가 떠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부모님께서 저를 믿으실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전도관에 대해서도 이해하실 수 있게 조금씩 설명해 드렸더니 점차 부모님 마음이 수그러지셨습니다. 안찰을 통해 성신의 놀라운 권능을 깨닫게 돼 얼마 후 공주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공주 전도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전도관에는 맨 뒤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고 늦게 도착했는지 예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단상 쪽을 바라보니 단에 서 계시던 박 장로님께서 사람들에게 안찰해 주신다고 하시며 단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단상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몇 사람은 박 장로님 옆에서 안내를 했습니다. 안찰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마냥 궁금한 마음에 멋모르고 맨 앞으로 가서 박 장로님께서 안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안찰을 받았는데 박 장로님께서 배에다가 손을 살짝 얹어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아픈듯이 보이다가 괜찮아졌는지 얼굴이 평온해져서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혀 아파하지도 않고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젊은 남자가 박 장로님께 안찰 받을 때였습니다. 그 사람 배에 박 장로님께서 두 손을 대시려는 순간 청년은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분명 바로 옆에서 보았는데 박 장로님 손이 배에 닿지도 않았고 10센티미터 정도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배에서 갑자기 무언가 불뚝불뚝 솟아오르는데 마치 팥죽을 끓일 때 새알이 올라오듯 여기저기에서 주먹만 한 것이 튀어 올라왔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아파하며 발버둥을 쳤고 박 장로님의 손길이 옮겨 가려고 하면 불뚝불뚝 솟아오르던 것들이 도망가듯 피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사람이 배에 힘을 준다고 한들 어떻게 볼록볼록 올라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박 장로님이 권능을 행하시는 분이고 그 놀라운 권능으로 참된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전도사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고 안찰 받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은 인간 속에 있는 마귀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안찰을 받고 나서 아침 햇살처럼 평안해져 그 후 대전에서도 박 장로님께서 집회를 여신다고 하셔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공주보다 더 먼 거리에 있었던 대전 전도관에 가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예배실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앞자리에 가고 싶은 마음에 중간쯤까지 들어가 앉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는 찬송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신 주” 찬송가 64장을 뜻에 맞춰 기도하시듯 부르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어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192장 찬송을 하실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오신 분처럼 고귀하게 보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예배가 끝나고 박 장로님께서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배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길을 따라 모두 줄을 서서 차례대로 안찰을 받았습니다. 난생처음 안찰 받게 된 저는 기도를 드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 받을 때 박 장로님의 손이 제 배에 닿자마자 배 속을 쥐어 짜내는 것처럼 아파서 고함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는 “이 고집, 고집, 고집”이라고 세 번을 지적하시면서 고집이 다 빠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걸어 나올 때는 제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져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팠던 배는 시원해지면서 말할 수 없이 상쾌해졌고 또 마음은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안해졌습니다. 처음 안찰 받고 나서의 그 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며 평안한 마음이 다시 찾아오는 듯해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음 호에 계속)

“은혜받으며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돼”

“은혜받으며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돼”

(지난 호에 이어) 송정리에서 듣게 된 신앙촌 소식은 기쁨 광주개관집회(1956. 9. 10~16)에서 은혜를 받고 산후풍으로 인한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진 어머니(故차말녀 권사)는 저를 데리고 송정리 전도관으로 새벽예배를 매일 다니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옆에 계시던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신앙촌”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 하셨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1957년 11월이 될 무렵 소사신앙촌 건설이 시작되고 여러 공장도 지어지면서 다양한 신앙촌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부터 어머니는 메리야스와 캐러멜 등을 하나둘 구입해 사용하시더니 물건이 좋다고 하시며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드리기도 하고 조금씩 판매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물건을 가지고 나가신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시면서 들어오셨습니다. 교통의 요충지였던 송정리역 근처에는 제법 가게가 많았는데 그날따라 들어가는 가게마다 반겨주셨고 신앙촌 제품을 써 본 분들은 참 좋다고 하며 메리야스, 양말을 내놓기가 무섭게 너도나도 사 갔다고 했습니다. 은혜가 담긴 물건을 가지고 나가서 그런지 온종일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붕붕 뜨는 듯해 힘이 들기는커녕 기쁜 마음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의 새로운 시작 1960년 12월 10일. 소사신앙촌으로 이사할 준비를 마치신 어머니는 저희 형제들을 데리고 신앙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와 공장, 각종 상점이 늘어선 소사신앙촌은 깨끗하게 잘 정돈된 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양옥 건물의 주택단지는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소사신앙촌에 송정리 전도관 식구 40세대 정도가 먼저 들어와 있어 서로 반가워하며 이웃사촌으로 즐겁게 지냈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소비조합들은 가족의 생계만이 아닌 은혜가 담긴 물건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소비조합을 하시게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앙촌에서는 주민들 모두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생활을 했기에 어디를 가도 활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그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학생 모임에 참석한 저는 오만제단에서 활동하는 안내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저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자원하여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크고 웅장한 소사 오만제단 건너편 건물에 안내부원을 위한 회의실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계획을 세우고 회의도 진행했습니다. 저는 새벽예배 때 오르막길로 올라오시는 권사님을 도와 드리는 일과 예배실을 청소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내부원들이 쫙 줄지어 서서 넓은 예배실을 쓸어 나갈 때면 힘도 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안내부원들의 적극적이고 마음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든 것에 열심히 하고자 노력하게 되었고, 함께 일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슬성신 은혜가 내리는 예배 시간의 소중함 한번은 새벽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소사 오만제단 예배실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하나님께서 등단하셔서 힘차게 찬송을 인도해 주셨고 소사신앙촌 주민들도 한마음으로 따라 불렀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나님이 계시던 단상 왼쪽에 안개같이 뽀얀 이슬성신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 어느 예배 시간에는 사람들 머리 위로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 신기해 옷을 만져 봤지만, 전혀 젖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슬성신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예배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그때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일하며 은혜받은 시간 잊지 못해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고 수십 개의 공장과 주택 등 여러 시설이 지어지면서 입주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을 하시던 어머니는 1967년 1월 즈음에 아파트를 구입해 저희 형제들을 데리고 덕소신앙촌으로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아름다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며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었습니다. 스물두 살이던 저는 한복부에서 자재 서무로 일했고 셋째 언니는(박순덕 권사/덕소교회) 소사에 이어 덕소에서도 제과부에서 근무하며 사내 배구부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동생들도 신앙촌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해 어머니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한복부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복부 공장에 오셔서 직원들에게 안찰해 주셨습니다. 모두 줄지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 앞에서 안찰 받던 한 청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에 손을 살짝 얹으실 뿐이었는데 발버둥을 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청년의 배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가 불뚝불뚝 솟아올라 하나님 손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겁이 나서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실 때 아픔을 느끼는 것은 속에 있던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셔서 알고 있었지만 저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더욱 두려웠던 것입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두 손을 제 눈에 대시는 순간 눈이 빠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손이 배에 닿자마자 참기 힘든 고통에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안찰을 받은 후 어느새 아픔은 사라지고 제 몸과 마음에 힘이 솟아나 무엇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는 죄가 그대로 드러나게도 하시고 이슬성신 은혜로 그 죄를 씻어주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기 위해 세워주신 곳 1970년 기장신앙촌 건설이 시작되고 이듬해 봄인 4월 14일에 저는 동료들과 함께 신앙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촌을 건설하신 의미를 다시 한번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자유율법을 지키는 데 있다고 하시며 눈길로도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아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신앙촌은 자유율법을 지키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자유율법을 지켜 죄와는 상관없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저는 ̒어떻게 하면 죄를 멀리하고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되도록 생활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장신앙촌에 도착해 타올 공장 원서무로 일하게 된 저는 사무실 업무를 마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다니며 바쁘게 생활을 하게 되었고, 내 것이 아닌 것을 쓸 때는 더욱 주의하고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말과 행동도 조심했습니다. 이렇게 은혜 안에서 일할 때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셨고 바른 마음으로 행해야 함도 알게 해 주셨기에 그 시간은 저에게 좋은 교훈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신앙촌 소비조합이라는 직분의 귀중함을 깨달아 신앙촌 사원으로 일하던 저도 1980년 4월부터 소비조합을 시작해 신앙촌 제품을 하나라도 쓰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전해진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판매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기장신앙촌에서도 소비조합으로 활동하시다가 2004년에 은퇴하시고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넘어지시는 바람에 거동하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여러 검사를 받던 중 뜻밖에도 대장에 암이 진행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연로하신 상태라 수술을 권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도 원하지 않으셔서 사고로 인한 치료만 마치고 신앙촌으로 다시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계시는 내내 신앙촌에 가고 싶다고 하셨기에 너무나 편안해 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2011년 8월 4일 90세의 연세로 어머니는 큰 고통 없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귀한 생명물로 씻겨드리고 아름답게 피어나신 어머니 모습을 저희 형제들 모두 참석해서 보았습니다. 고령에 병환으로 누워계시면서 점점 여위어 가시고 어두워졌던 피부가 생명물로 씻겨드리자 병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환하게 피어났고 주무시듯 편안한 얼굴이 되셨습니다. 맨 앞자리에서 어머니를 보게 된 남동생과 형부는 뻣뻣하게 굳어있어야 할 팔의 뼈마디가 노근노근해진 것을 보고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귀한 생명물의 권능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간질병이 낫게 된 제가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깨닫게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많은 시간이 지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받을 줄만 알았지 간직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이런 무지몽매한 저에게 자유율법을 알려주시고 일 속에서 마음의 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함을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성도들아 곧 깨어서 열심을 내어라”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앞으로도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끝>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성경 인물

1.아브라함(Abraham)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이다. 유대인의 육체적 정신적 조상이자 기독교의‘믿음의 조상’으로 신약에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계보를 열거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이브라힘이라 부르며 그 자손으로 자처한다.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지금의 이라크 남부)에서 태어났으며 가나안으로 가라는 신의 명령을 받고 그때부터 유일신을 섬기게 되었다고 한다. 자손이 번성케 되리라는 신의 음성을 들은 후 아브라함은 하녀인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본처인 사라와의 사이에서 이삭을 낳았다. 이삭이 바로 유대인들의 조상이며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믿는다. 에 의하면 “유대인과 무슬림이 대결한 오랜 폭력의 역사는 양측이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 그 뿌리가 있다.”고 한다. 2.롯(Lot) 아브라함의 조카. 성경에 따르면 롯과 그 가족은 죄악의 도시 소돔에서 신이 구하기로 선택한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창세기 19장) 베드로는 ‘의로운 롯’이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자(베드로후 2:7)라고 했다. 에 의하면“신이 보낸 방문객들은 색욕에 빠진 소돔 주민들의 눈을 멀게 만들고 롯에게 이 저주받은 도시를 떠나라고 말한다. 롯의 가족이 탈출하자 신은 소돔에 불과 유황(아마 화산 폭발일 것이다)을 쏟아부었다. 롯의 의로움을 감안하면 이후 그의 이야기는 예상 밖이다. 그는 인적이 끊어진 동굴 속에서 두 딸과 함께 살았다. 딸들은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한 뒤 동침해 각각 아이를 하나씩 낳았다. 이 두 아이의 후손들은 훗날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힌 모압족과 암몬족을 이루었다. 고고학자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현재 사해 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사해는 롯의 바다, 소돔의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무슬림들은 롯을 루트(Luth)라고 부르며 선지자로 간주한다.”라고 한다. 3. 다윗(David) 고대 이스라엘의 제2대 왕.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확립하고 구약 시편의 상당부분을 지었다고 한다. 성경은 다윗을 가리켜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사무엘상 13:14)이라고 하며 예수가 다윗의 후손(마태 1:1 등)이라는 계보를 나열하고 있다. 에 의하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간통의 사례는 이스라엘 왕 다윗이 저지른 것이다. 그는 아내와 후궁을 몇 명이나 거느리고 있었지만, 용맹스런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비열한 책략을 부렸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통하고 우리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앞으로 그의 가족은 영원히 폭력에 시달릴 것이며 그 아이는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다윗은 치세 내내 반란에 시달렸다. 다윗과 밧세바의 이야기에는 욕망, 폭력, 음모, 감춰진 비밀의 폭로, 징벌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무슬림들은 다윗을 선지자 다우드(Daud)라고 부른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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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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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13> 인간 창조의 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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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차기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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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신앙촌 건설은 가장 좋은 전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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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새로운 각오로 마음을 가꾸어  결실을 거두길 소망해”

“새로운 각오로 마음을 가꾸어 결실을 거두길 소망해”

2005년 제가 처음 교역자 발령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요구르트 런 출시와 함께 시작하게 된 저는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전도와 사업에 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저는 작년 말에 교역자로 다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마음을 가꾸어 나가며 결실을 거둘 수 있기 바라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올해 열린 관장 시무식에 참석해 전도와 사업, 교회 건축 등 모든 것의 실마리는 심방을 통해 풀릴 수 있다는 선배 관장님들의 경험담을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은혜를 전하기 위해 비대면 방식으로라도 교인들의 마음을 보살피ㅛ 더욱 노력해야 하고, 모든 일에 앞서 기도로써 준비한다면 길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앙은 재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애써야 가능한 것이기에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하셨습니다. 신앙의 기본인 기도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계획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 유익했습니다. 시무식을 마치고 생각해 보니 처음 교역 기간은 사업 부분에서 경험 축적을 하며 개인 역량 위주로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재발령을 받은 지금은 조직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경험 위주로 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초기 교역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학습하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역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교역자로서 나아갈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은혜를 받을 조건을 갖춘 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신규 학생관장 신년을 맞아> 2021년은 저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한 해였습니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던 3월에 교역자의 길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 해 동안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함께 하면서 저의 생각과 마음가짐이 더 넓어져야 하고 신앙이 깊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을 대하며 그 아이들마다 세밀히 살펴서 올바른 방법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 저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선물해 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은 아주 좋아하지만, 말씀의 뜻을 잘 몰랐던 아이였습니다. 말씀 공부 시간에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 못하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 늘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런 고민은 기도로 이어졌고 점점 간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시간이 끝나고 저에게 살며시 다가온 그 아이는 ‘초창기 천막집회 때 은혜를 받고 병이 나았던 이야기가 무척 놀라웠고 마음에 와닿았다’고 하며 느낀 점을 자세히 말해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변화된 모습이 저에게 큰 울림이 되어 마음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겉으로는 진전이 없어 보여도 아이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은혜의 싹이 피어난다는 것을 이 아이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주신 일을 통해, 저를 돌아보고 저의 그릇됨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새로운 길과 방향을 열어주신 하나님. 허락해주신 이 직분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닫게 해주셨기에, 맑은 생활로 은혜를 전하는 신념 있는 교역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의미를 전하는 진정한 가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2년에는 언제 어디서나 아이들과 함께하며 저 또한 도약하는 한 해가 되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과 저의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가득 채울 수 있도록 그리고 반드시 새로운 열매가 맺어질 수 있도록 밝게 움직이는 학생관장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품고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품고

<신규 학생관장 신년을 맞아>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탐색합니다.” 며칠 전에도 들었던 내비게이션의 그 상투적인 안내가, 문득 제 인생경로에서 울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십 대 초반에 교역자 제의를 받게 되었지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벽으로 느껴졌던 저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학교에서 십여 년 교단에 서며, 다른 경로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진실로 섬길 수 있는 교역자의 경로로 다시 한번 이끌어 주심에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난해 8월 중순, 서울 상계교회로 발령받아 교역자로 시무한 지 현재 넉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참 새로웠던 것은 매번 근 30분을 차를 몰고 가야 했던 교회가 이제는 매우 가까워졌다는 사실이었고,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비가 오는 날이면, 저만을 위한 걱정이 아니라 새벽에 교인분들을 위해 우산 통을 미리 내어놓고, 마른 걸레를 깔아 놓는 등 사소하지만 제단의 살림을 챙기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첫 주일이 다가와, 예배를 준비하는 동안 말씀 책자를 읽어보던 순간도 감사했습니다. 여청 시절에는 새벽 예배 때 노트를 주머니 속에 넣고 필기를 잠깐 해 두거나, 축복일 때에 적어 두어야만 볼 수 있었던 하나님 말씀을 언제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감사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중부 학생관장 모임에서 준비해 주시는 말씀들도 예전에 접하지 못했던 말씀이라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또 코로나로 전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도관의 관장님들과 전도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나누는 시간 동안 혼자 가는 길이 아님에 마음이 따스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스며들게 하는 교역의 일은 교과 지식의 원리를 명쾌히 전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오는 학생들의 한 주간의 생활과 저와의 소통, 천부교회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아이의 이해도를 고려해 유연하게 말씀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방역단계 강화로 인해 전도하는 데 있어 여러 가지 제약과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노력을 찾아 열심히 움직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아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알릴 방법에 대해 준비하는 시간을 더 가질 계획입니다. 세상일에 몰두했던 때 보다 더 큰 지혜와 열심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교역자로 맞이하는 2022년 새해는 저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시간으로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품고 교역에 대한 계획을 하나씩 실천하며 차근히 나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없이는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믿음을 굳건히 하며, 지혜와 힘을 주시옵기를 늘 기도드립니다.

“시간을 아껴서  기도드리고 간구하면  그 시간은 자기 소유가 되어 가장 귀한 것을 얻는 것이다 ”

“시간을 아껴서 기도드리고 간구하면 그 시간은 자기 소유가 되어 가장 귀한 것을 얻는 것이다 ”

눈 깜짝할 새에 또 어느덧 한 해가 지나가 버리고 새로운 해가 다가왔습니다. 연말이 되면서 신년에는 어떤 목표를 세울지, 어떤 것을 개선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던 중에 어느 날 뉴스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전기 자동차로 유명한 회사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50세의 젊은 나이에 세계 부자 1위로 등극한 엘론 머스크는 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일한다고 합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을 5분 단위로 실천하는 굉장한 사람이더군요. 저는 엘론 머스크처럼 5분 단위는 아니어도 금 같은 저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더 기울일 수 있는 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아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그 시간은 자기의 소유가 되어 가장 귀한 것을 얻는 것이다.”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가장 기본인, 하지만 한동안 소홀했던, 영의 호흡인 기도를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경전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가 젖고 젖어서 꿈속에서도 계속되어 24시간 지속할 수 있다면 그는 죄에서 완전히 떠나 의인의 자격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지요. 곧 있을 경전 퀴즈 덕분에 열공을 하고 있는데요,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행동 설계연구소장인 BJ포그의 “습관의 디테일”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행동을 정해서 작게 쪼개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을 곳을 찾고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작게 시작하는 게 좋다.” 최근에 여청으로서 책임 있게 해야 할 일들을 소홀히 하는 저 자신을 반성하면서, 신앙생활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저도 은혜를 받아 더욱 하나님께 향할 수 있는 일꾼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많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열심히 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명윤, 여청(부천교회)

주니어

생생~ 신앙체험기 속으로

생생~ 신앙체험기 속으로

지난 8일 개인위생 및 기본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신앙촌 세미나실에서 유년학생들을 위한 “생생~ 신앙체험기” 첫 번째 시간이 있었다. 천부교 역사와 함께 걸어오신 분들의 은혜 체험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듯 천부교의 미래인 학생들에게 천부교 역사를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앙신보에 연재되고 있는 400여 편의 신앙체험기와 만화로 보는 신앙체험기 등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지만, 학생들이 조금 더 공감하고 소통하며 천부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은혜 체험하신 분들을 직접 모시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고 한다. 천부교 역사 순서에 맞춰 인상 깊은 체험담의 주인공을 선정했는데 천막집회에 관한 내용을 전해 줄 정순실 권사(안양교회)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6⋅25전쟁을 직접 겪으며 무섭고 참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영상과 함께 설명해 주었고, 전쟁이 끝나고 암울했던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된 하나님과 집회 현장에서의 은혜 체험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기쁨으로 가득 하게 해주었다고 정순실 권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깨달아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체험담을 전했던 정순실 권사가 프로그램을 마친 후 소감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똘망똘망 한 눈으로 경청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고, 초창기 천막집회 때의 은혜 체험을 아이들에게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순실 권사와 어린 학생들의 뜻깊은 만남을 위해 생생~체험기 팀은 인터뷰, 대본 작성과 PPT 자료 만들기, 스피치 연습 등을 분담해 준비했다. 그중 정순실 권사를 만나 스피치 연습을 함께 했던 이성희 관장(안양교회)은 준비 시간이 짧아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성희 관장은 “권사님께서 은혜받을 당시를 정말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체험기에서 이미 내용을 읽고 대본까지 만들며 여러 번 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체험하신 일들을 직접 들으니 더욱 와닿으면서, 마치 제가 그 시대에 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초창기 때의 은혜를 나도 한번 체험해 봤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해졌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며 열심히 연습하시던 권사님 모습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일엔 조금 긴장하신 듯했지만, 끝까지 하나라도 더 전달해 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졌고, 그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잘 전해진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라고 했다. #공감 메시지 생생~ 신앙체험기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반 공부를 통해 느낀 점과 하나님께서 천막집회를 하시게 된 의미를 이야기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김문선, 초6/군산교회 권사님이 이야기해 주신 거 다 기억이 나는데요. 그중에서 영등포 집회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피난길에 보았던 조명탄 같은 불덩어리가 천막 안에서 사람들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갔는데 그게 성신의 불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이은서, 초3/가야교회 권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받고 벙어리가 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진짜 신기했어요. 천명선, 초6/가야교회 천막집회 안에서 있었던 일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다음에 또 듣고 싶어요. 이유진, 초6/부천교회 만화체험기로 보던 이야기를 권사님한테 직접 들으니 신기했어요. 다음에 또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Our Original Home, the 1st Kingdom of Heaven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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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에요”

“가장 귀한 것은 마음의 성결이에요”

떼굴떼굴 ‘다른 그림찾기’  <당첨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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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권사님 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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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추운 겨울에 하는 운동, 건강에 도움이 될까?

추운 겨울에 하는 운동, 건강에 도움이 될까?

추워지는 날씨 탓에 운동에 소홀해지기 쉬운 겨울이다. 하지만 겨울철 운동을 꾸준히 하면 다른 계절보다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운동은 안전사고와 부상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한다. ■ 낮은 기온이 체중 감량에 유리 우리 몸에는 백색 지방과 갈색 지방의 두 종류가 있는데, 찬 공기를 쐬면 갈색 지방이 연소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상당한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다. 또한 몸의 온도가 내려가면 칼로리 소모가 많아지고 열을 발산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몸이 정상 체온을 유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초 대사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즉 같은 양의 운동을 하더라도 겨울에 하면 훨씬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는 것이다. ■ 계절 우울증 극복에도 도움 겨울이 되면 우울감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때 달리기가 우울증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기온이 낮아지면서 신경 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감소해 우울해지기 쉽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겨울에 계절성 정서 장애가 가장 많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 세로토닌의 분비가 촉진되고 엔도르핀 등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신경 물질이 활발히 분비돼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된다. ■ 겨울 운동 시 주의해야 할 사항 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운 날씨에 갑작스럽게 운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급성 심근경색이나 부정맥 등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관절염이 있는 사람들도 기온이 낮아지면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기 등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겨울에 더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다고 해서 운동량을 무리하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안전하고 올바른 겨울 운동법 추운 날씨에는 근육이나 관절의 유연성이 저하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움직이면 부상의 위험이 생길 수 있으므로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킨 후에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야외 운동 시에는 두꺼운 옷 한 벌보다는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옷 여러 벌을 입고 운동해야 한다. 운동 후 땀이 식으면 큰 폭으로 체온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체온 변화에 따라 옷을 벗거나 입어가면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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