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고, 직접 찾아가며, 꾸준히 알리다

미리 준비하고, 직접 찾아가며, 꾸준히 알리다

추석 장유 판매 시상에서 1·2·3위를 차지한 소비조합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영업 활동을 이어왔다. 거래처를 개척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성실한 방문과 꾸준한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상자 세 사람을 만나 영업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배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긍정적인 에너지와 실행력의 힘 -대전 전화영 사장 저는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오래 고민하기보다 일단 실행에 옮기는 편입니다. 영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즌을 앞두고 한 달 반 정도 집중적으로 영업해야 할 때는 중간에 다른 일로 영업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사소한 일들을 미리 해두고, 정해진 기간에는 영업에 최대한 몰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방법을 몰라 무작정 다녔습니다. 꾸준히 거래처를 방문하다 보니 조금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 찾아가 인사하고, 명절 전에는 꼭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매년 찾아가다 보니 처음에는 작은 주문으로 시작했던 곳에서 점점 주문량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영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한 번 거래를 시작한 곳과는 꾸준히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한번 거래를 시작하면 계속 이용하시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믿고 맡긴 만큼 약속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려고 합니다. 저는 영업할 때 제 자신의 ‘에너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기분이 좋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가면 상대방도 그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가 지치고 힘든 상태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알아차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업을 나갈 때는 되도록 좋은 기분과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나가려고 합니다. 체력을 기르는 것도 영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달리기를 하면서 기초 체력이 좋아졌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예전에는 힘든 일이 생기면 그 일 자체가 크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일단 하나씩 해보자’는 마음으로 움직이게 됐습니다. 영업이 잘되지 않을 때도 저는 머리로만 고민하기보다 일단 밖으로 나가 발로 뛰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영업을 이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체력을 더 키우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영업을 하고 싶습니다. ◇ 밭을 가꾸듯 정성으로, 성실하게 -기장신앙촌 이영선 사장 저는 제가 맡은 거래처를 하나의 ‘밭’이라고 생각합니다. 밭을 잘 가꾸려면 꾸준히 살피고 정성을 들여야 하듯, 거래처도 한 곳 한 곳 찾아가 홍보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큰 거래처만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제가 다닐 수 있는 곳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거래처를 늘려왔고, 계절과 시기에 맞춰 다시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주문이 많든 적든, 규모가 크든 작든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시즌을 앞두고는 미리 방문할 곳을 정하고 순서를 정해 집중적으로 다녔습니다. 시즌이 시작되면 정해진 기간 안에 최대한 많은 거래처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큰 거래처부터 차례로 방문하고, 그다음에는 지역별로 빠짐없이 찾아갔습니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정성껏 인사하고, 주문 여부와 관계없이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몸이 힘들거나 혼자 다니기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맡은 거래처를 빠짐없이 관리하려고 했습니다. 정성껏 관리한 거래처도 꾸준히 살펴야 다음 시즌에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업을 하다 보면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찾아가고 홍보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문으로 이어지고, 또 새로운 거래처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간장이나 두부, 런 등 어떤 제품으로 영업을 하든 고객 한 분 한 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붙잡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에 받은 상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가꾸어 온 거래처를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 꾸준히 홍보하고 정성을 들인 결과가 모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맡은 거래처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내 밭은 내가 가꾼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꾸준한 홍보와 성실한 거래처 관리가 영업을 이어가고 성장하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 1년 365일, 매일이 시즌 -대전 정지숙 사장 약 15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역 활동을 하는 분을 알게 되면서 선물세트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분께 다른 곳도 소개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고, 흔쾌히 여러 지인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소개받은 곳에서 선물세트를 주문받으면서 거래가 시작됐고, 거래처를 하나씩 늘려갈 수 있었습니다. 거래처를 관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주 찾아가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길에도 들러 인사를 드리고, 두부를 배달하면서 어르신들이 두부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두부도 자연스럽게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쌓다 보니 제품을 다시 찾아주시거나 다른 곳을 소개해 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할 때는 담당자를 먼저 찾아가 직접 인사를 나눕니다. 바쁜 시간을 피해 방문하고 필요한 제품이 있는지 살피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객들이 제품을 재주문하는 모습을 보면서,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신뢰를 쌓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명절이나 특정 기간에만 영업하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이 시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거래처 100곳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직접 발로 뛰며 한 곳 한 곳 정성을 다해 찾아가겠습니다.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는 일에도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영업 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걷고, 찾고, 웃으며 만난 가을

걷고, 찾고, 웃으며 만난 가을

편한 신발을 준비하지 못해서 맨발로 걸었는데 오히려 발걸음이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가을을 즐기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수원교회 안금덕 권사 아이들과 함께 걸으니 처음에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았지만, 걷다 보니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가을 풍경도 즐기고 보물찾기도 하며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전주교회 임혜원 관장 평소 신앙촌에서 많이 걸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운동도 하고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분수대 쪽으로 미션을 수행하러 올라가는 길에 간장과 두부, 런 공장을 보았는데, 규모가 커서 놀랐습니다. – 전농교회 신수연 양 축복일에 올 때마다 신앙촌을 한 바퀴씩 걸으려고 합니다. 걷다 보면 맑은 공기도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걷기가 건강에 좋은데, 신앙촌에서 즐겁게 걸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성동교회 박덕수 권사 신정문 길의 배롱나무에서 보물을 찾고, 식품단지에 올라가서 분수대도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비록 행운권 추첨은 놓쳤지만, 맑은 공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활력을 되찾은 시간이었습니다. – 김천교회 양지은 권사

신앙촌 가을 산책

신앙촌 가을 산책

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신앙촌에서 참가자들은 함께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미션을 즐기며 웃음꽃을 피웠다. 보물을 찾기 위해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식품단지 호숫가에 마련된 등나무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기며 가을날의 추억을 기록했다. 산책의 마지막에는 행운권 뽑기가 이어졌다.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며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이 감돌았고, 당첨 번호가 불릴 때마다 곳곳에서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함께 걸으며 나눈 즐거움은 가을날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원적외선으로 행성과 은하의 탄생 비밀 밝힌다

원적외선으로 행성과 은하의 탄생 비밀 밝힌다

차세대 망원경 ‘프리마’…제임스 웹이 관측하기 어려운 원적외선 영역을 탐색 기존 우주 관측의 한계를 넓힌다, 2033년 발사 목표로 한국도 참여 우주에는 아직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비밀이 남아 있다. 별과 행성은 어떻게 태어날까? 은하는 어떻게 성장하고, 거대한 블랙홀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차세대 우주망원경 ‘프리마(PRIMA)’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프리마는 기존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기 어려웠던 원적외선을 포착하는 망원경이다. NASA는 2033년 발사를 목표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발사 후 5년간 우주를 관측할 계획이다. ◆ 빛을 모아 우주의 모습을 알아내는 망원경 망원경은 멀리 있는 천체에서 오는 빛을 모아 관측하는 장비다. 천체가 내보내거나 반사하는 빛에는 그 천체의 온도와 구성 물질, 움직임 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망원경은 이 빛을 모으고 분석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까지 알아낸다. 빛은 파장에 따라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X선 등으로 나뉜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도 우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적외선은 먼지에 가려진 별의 탄생 현장이나 차가운 가스와 먼지에서 나오는 빛을 관측하는 데 유용하다. 프리마는 적외선 가운데서도 파장이 긴 원적외선을 관측한다. 지름 1.8m의 망원경으로 우주에서 오는 희미한 원적외선을 모으고, 이를 분석해 천체를 둘러싼 물질과 그 움직임을 연구한다. ◆ 제임스 웹과 무엇이 다를까? 2021년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은 우주의 초기 은하부터 별과 행성의 탄생 과정까지 다양한 천체를 관측하며 우주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왔다. 주로 근적외선과 중적외선 영역을 관측하도록 설계됐다. 프리마는 제임스 웹이 관측하기 어려운 더 긴 파장의 원적외선을 집중적으로 살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두 망원경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기보다 각기 다른 파장의 빛을 관측해 우주를 더 폭넓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별과 행성이 만들어지는 곳에는 가스와 먼지가 많이 모여 있다. 이 먼지는 별빛을 가리기도 하지만, 차가운 먼지와 가스 자체에서 적외선이 나온다. 원적외선을 관측하면 별과 행성이 탄생하는 공간에 어떤 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제임스 웹이 관측하는 파장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물질의 양과 성분을 프리마가 밝혀내면, 두 망원경의 관측 자료를 함께 분석해 행성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더욱 자세히 연구할 수 있다. ◆ 행성과 은하의 탄생 비밀을 찾는다 프리마가 집중적으로 연구할 분야는 행성의 탄생, 은하의 성장, 블랙홀의 진화다. 행성은 별 주위에 모인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원반에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어디에 얼마나 분포하는지 알아내면 행성이 어떤 환경에서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프리마는 원적외선으로 관측할 수 있는 특정한 빛의 신호를 분석해 원반 속 가스의 양과 탄소·산소의 함량을 측정할 예정이다. 은하의 성장 과정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은하 중심에는 태양보다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 무거운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하기도 한다. 프리마는 은하에서 빠져나오는 강력한 가스의 흐름을 관측해 이러한 현상이 은하의 별 형성과 블랙홀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이처럼 프리마는 원적외선 관측을 통해 별과 행성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거대한 은하와 블랙홀의 진화까지 우주의 다양한 현상을 살펴볼 예정이다. ◆ 새로운 우주 탐사 시대를 여는 프리마 프리마는 NASA가 추진하는 새로운 유형의 우주망원경 임무인 ‘탐사선 탐사 임무(Probe Explorer)’의 첫 번째 사업이다. 제임스 웹과 같은 대형 우주망원경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일반적인 소형 탐사 임무보다는 큰 규모로 개발된다. 사업비는 발사 비용 등을 제외하고 최대 12억 달러로 책정됐다. NASA는 프리마와 첨단 X선 영상 위성(AXIS) 등 두 가지 망원경 개념을 검토한 끝에 과학적 가치와 개발 가능성 등을 평가해 프리마를 최종 개발 대상으로 선정했다. 현재 예비 설계와 기술 개발 단계에 있으며, 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사업을 관리한다. 한국천문연구원도 국제 협력 파트너로 프리마 개발과 연구에 참여한다. 이번 협력을 통해 국내 연구진은 우주망원경 관련 기술과 과학 연구 경험을 넓히고, 국제적인 우주 관측 임무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2033년 발사를 목표로 개발 중인 프리마가 우주로 향하면, 인류는 기존 망원경으로는 자세히 살펴보기 어려웠던 우주의 모습을 새로운 눈으로 관측하게 된다. 원적외선에 담긴 정보를 통해 행성과 은하가 탄생한 과정을 얼마나 새롭게 밝혀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예수 동정녀 탄생 안 믿는다”

“예수 동정녀 탄생 안 믿는다”

美 성인 과반 ‘동정녀 탄생’ 불신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신념 약화 미국 성인 가운데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했다는 성경적 사실을 믿는 비율이 조사 역사상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성경공회(ABS)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리아의 수태와 예수의 탄생을 구체적으로 신뢰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사회 내에서 기독교적 전통 교리에 대한 신념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이러한 결과는 세대교체와 세속화에 따른 전통 교리 신뢰도의 급격한 감소세를 보여준다.

강해지는 엘니뇨, 세계 식량시장 흔든다

강해지는 엘니뇨, 세계 식량시장 흔든다

가뭄·폭우에 주요 작물 생산 차질…세계 농업과 식량 안보 비상 기후변화로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는 가운데 강한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세계 식량 생산에 비상이 걸렸다. 가뭄과 폭우, 폭염 등 기상이변이 주요 농작물 생산과 유통에 영향을 주면서 쌀과 설탕 등의 가격 상승과 식량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지면 대기의 흐름과 강수 패턴이 달라지면서 세계 여러 지역에 가뭄이나 폭우, 폭염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현재의 엘니뇨가 올해 말 매우 강한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있으며, 2027년 초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엘니뇨의 영향은 동남아시아의 쌀 생산에서 나타나고 있다. 주요 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짧아진 우기와 가뭄의 영향으로 올해 쌀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8%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9월 현지 쌀 소매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농민단체는 관개시설이 부족한 농지가 많아 가뭄이 계속될 경우 2027년 쌀 생산량도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리핀에서도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밑돌 것으로 전망되면서 식량 수급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설탕 생산도 기상이변의 영향을 받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주요 사탕수수 재배 지역에 폭우가 이어지면서 수확과 가공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인도와 태국에서는 강수량 부족으로 사탕수수 수확량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설탕 생산 감소는 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설탕은 음료와 빵, 과자 등 다양한 식품에 사용되는 원료이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세계 식량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설탕 가격도 오름세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엘니뇨의 영향은 농작물 생산뿐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시카고대 기후영향연구소는 올해 9월부터 내년 2월 사이 엘니뇨로 인한 극심한 더위로 약 45만 1,000명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기후와 사회 기반 시설이 취약한 지역에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엘니뇨로 인해 2027년 말까지 심각한 식량 불안정 상태에 놓이는 사람이 약 4,900만 명 추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앙체험기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며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며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

저는 1948년 전남 화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에게 처음 하나님을 알려 주신 분은 외숙모님이셨습니다. 원래 기성교회에 다니시던 외숙모님께서는 어느 날 하나님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으신 후 전도관에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마침 저희 집 앞에도 천막 전도관이 들어서면서 저도 열다섯 남짓한 나이에 새벽예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읍내에 화순전도관이 새로 지어지면서 일요일마다 십 리 길을 혼자 걸어 다녔는데, 다리는 아팠지만 예배드리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만큼은 늘 가벼웠습니다. 그 무렵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신 외숙모님의 초대로 어머니와 함께 신앙촌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주인이 없어도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고 스스로 돈을 놓아두고 간다는 ‘주인 없는 상점’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까’ 싶어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공장 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광주 광천전도관에 다니던 친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동생이 혹여나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염려했던 언니는 덕소신앙촌에 가서 생활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뜻밖의 이야기였지만, 어릴 적 전도관에 다니던 기억과 언니의 권유에 마음이 움직인 저는 망설이지 않고 덕소신앙촌에 가기로 했습니다. 덕소신앙촌 수예공장에 입사한 저는 2~3년 동안 기술을 익히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공장과 시설을 기장으로 옮긴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얼마 뒤 몇몇 분들과 함께 기장신앙촌으로 내려와 수예공장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기장신앙촌에서 지내며 기억에 남는 체험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았던 일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안찰을 해 주셨는데, 생전 처음 받아 본 눈 안찰은 생각보다 아팠습니다. 눈이 빠질 듯한 고통에 ‘이렇게 손으로 누르시는데 어찌 안 아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던 분은 하나님께서 세게 누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죄가 다르기 때문에 손을 살짝 대시기만 해도 느껴지는 아픔이 다르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안찰을 받으면서 통증이 점차 줄어들었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씻어 주시는 분임을 조금씩 깨달아 갔습니다. 한 번은 혼자 길을 걷는데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 없는 향기가 순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향기를 다시 맡아보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신기한 일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흘러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은혜의 향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촌에서의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체중이 줄어들고 몸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어떻게든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결국 신앙촌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광주에 있는 외숙모님 댁으로 가서 근처 병원을 찾았고, 늑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외숙모님 댁에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어서 어머니가 계신 고향 집으로 내려가 약을 먹으며 몸을 돌보았습니다. 다행히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신앙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던 순간 붙들어 주신 음성과 신앙촌에서 뵌 하나님 모습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생명물의 권능으로 돌아가신 형부의 얼굴이 피어나고 굳은 권사님의 몸이 펴진 모습에 참 하나님이심을 확신해 그러던 어느 날 밤, 잠결에 귓가를 울리는 벼락같은 음성에 놀라 깨어났습니다. “육은 성해 가는데 영은 죽어 간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음성이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몸을 회복하는 데만 마음을 쓰느라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참이 지나도 그 음성이 귓가에 맴돌아 당장 제단에 나가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탓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광주로 나와 수예 일을 하며 지내던 중, 언니를 통해 광천전도관 교인들과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그리웠던 제단에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지내던 중 형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니 집으로 가서 형부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을 돕던 중 형부의 손에 제 손이 닿았는데, 얼음장처럼 차가워 깜짝 놀란 나머지 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전도관에 다니지 않으셨던 형부였지만, 잠시 후 남자 관장님들이 오셔서 축복비누로 몸을 씻겨 드리고 생명물을 입에 넣어 드렸습니다. 잠시 뒤 방에 다시 들어가 보니, 굳게 다물려 있던 형부의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져 있었고 얼굴도 뽀얗고 깨끗하게 피어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처음 느꼈던 두려움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생명물로 고인의 얼굴이 그렇게 피어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던 1981년,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자 형부의 입관 때 모습과 신앙촌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고, ‘이분이 정말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확신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결혼 후 서울로 올라온 저는 도봉제단과 미아제단을 거쳐 의정부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이어 가기는 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살지 못해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는데, 그런 저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신 분이 미아제단의 신용연 권사님이셨습니다. 축복일이 다가올 때마다 권사님께서는 “이번에는 이러한 축복을 해 주신단다”, “이번에는 이런 귀한 말씀을 들려주신단다” 하시며 함께 신앙촌에 가자고 늘 다정하게 챙겨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자주 신앙촌에 가서 축복도 받고 말씀을 들으며 신앙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축복받는 자리마다 저를 이끌어 주신 권사님께 지금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번은 신앙촌에 축복을 받으러 갔을 때,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하나님과 함께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주로 찬송가 269장 ‘내 주와 맺은 언약은’을 불렀지만, 저는 은혜를 받아 죄를 벗고 싶은 마음에 ‘내 영혼이 은혜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를 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함께 불렀던 그 순간의 벅찬 감격은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전야 밤하늘에 수십 줄기 빛으로 내린 이슬성신 전국 교인들이 함께 목격해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뜻을 깨닫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느끼며 바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해 1996년 추수감사절 전야에 있었던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교인들이 신앙촌에 모인 그날 저녁, 숙소에서 쉬던 중 축복이 내린다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서둘러 슈퍼 쪽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니 수십 줄기의 빛이 길게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슬성신이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생명물의 권능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의정부의 한 권사님께서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는데, 머리와 무릎이 가까이 붙어 마치 공 위에 천을 덮어 놓은 것처럼 몸이 굽어 있었습니다. 관장님과 교인들이 생명물을 먹여 드리고 온몸을 씻겨 드린 뒤 몸을 주물러 드리는 동안, 다른 교인들은 한마음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몸이 심하게 굽어 있어 어떻게 관에 모실 수 있을지 모두 걱정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부드러워지며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마침내 관에 모실 수 있게 된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기장신앙촌에서 지낼 때 작업복 차림으로 공사 현장을 살피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진흙투성이였던 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진 지금의 신앙촌을 바라볼 때면, 세월의 흐름과 함께 깊은 감회가 밀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체험을 통해 부족한 저를 한 걸음씩 이끌어 주셨습니다. 특히 꿈속에서 들려주셨던 “육은 성해 가는데 영은 죽어 간다”는 음성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하나님 말씀을 읽는 시간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말씀도 다시 읽다 보면 새로이 마음에 와닿아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더 깊이 깨닫게 되고, 그 엄위하심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도 말씀을 가까이하며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가꾸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의 고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삶의 고비마다 지켜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1944년생으로,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밑에서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영암과 진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광주로 올라온 저는 자취를 하며 계림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뒷집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는데, 그때마다 친구의 외할머니를 뵈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시던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왜 기성교회에 다니냐”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1962년, 제가 자취하던 곳에 어머니가 오셨을 때였습니다. 친구의 외할머니께서 어머니가 오신 것을 아시고 친구 집으로 부르셨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전도관에서 심방을 나오신 장시춘 관장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들려주셨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나눠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생명물을 한 컵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저에게 천국에 가려면 전도관에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와 어머니는 광주 계림지관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향취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면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났습니다. 백합꽃 향기와 비슷하면서도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기였습니다. “엄마, 좋은 냄새가 나요”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도 “글쎄 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향취는 예배 시간뿐 아니라 길을 걸을 때도 맡아졌습니다. 신앙촌에 갔을 때나 신축·개축 예배에 참석했을 때도 향취를 맡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나 모임이 있는 곳에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집회를 여시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집회 소식이 전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제단 안은 2층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고, 뒤쪽에는 아픈 몸으로 들것에 실려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하나님께서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집회 때 기회가 닿아 몇 차례 안수를 받을 수 있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눈 안찰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손가락을 잠깐 대셨을 뿐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무겁고 아픈지 깜짝 놀랐지만, 안찰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시원해졌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목포와 광주 제단에서 배 안찰을 두 번 받기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할 수도 없었는데 ‘내가 이런 귀한 은혜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1969년 결혼한 뒤에는 전남 무안에서 교편생활을 했습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조산 위험이 크니 즉시 입원하지 않으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휴직을 하고 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치료와 안정을 취하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 충분히 몸조리를 하지 못한 채 다시 교단에 서야만 했습니다.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에는 신우신염을 앓게 되었습니다. 큰 병원을 전전하며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왼쪽 옆구리가 칼로 도려내는 듯 심하게 아팠습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이렇게 고통 속에 살다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기장신앙촌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했는데, 그날 하나님께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저도 차례가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님, 신장이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래?” 하시더니 아픈 부위를 손등으로 가볍게 툭 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고 나니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했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후 통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신장 약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안수나 안찰 소식이 들리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신우신염 앓을 때 약도 소용없었으나 하나님의 손길에 통증이 씻은 듯 사라져 뇌종양 진단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았지만 수술 없이 건강 되찾아 하나님께 감사드려 생명물로 입관한 아버지 빙그레 미소 짓던 마지막 모습 잊지 못해 그런데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몸에 이상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는데, 처음 찾은 병원에서 뇌종양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곧바로 전남대병원으로 향했고, 정밀 검사 결과 뇌종양 진단을 받아 수술 날짜까지 잡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보았던 터라 두려움이 더욱 컸습니다. 그 후 수술 날짜를 기다리며 매일 약을 복용하고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수술 직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다시 찍었는데,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께서 “약이 아주 잘 들었으니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수술 날짜까지 잡았던 상황에서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내다가 경과를 확인하러 몇 년 만에 다시 전남대병원을 찾았습니다. CT 촬영을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사진을 확인하시더니 아주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병에 대한 걱정 없이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 일을 겪고 몇 년이 지나, 1995년에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소 마음이 고우셨던 아버지께서는 제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고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집 안에 있는 생명물을 보시고는 “벽장에 놔둬도 여름철에 변하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는 주변 제단 관장님들이 찾아오셔서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입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관을 마치고 수의를 입혀 드린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도 “교장 선생님께서 웃고 가신다”며 입을 모았습니다. 비록 전도관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마지막 순간 환하게 핀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2000년에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어머니는 목포제단 회장 직분을 맡으시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기성교회에 다니는 동생과 장례 절차를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아들이 나서서 외할머니가 평생 전도관에서 신앙생활을 해오셨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한 덕분에 천부교식 장례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몸이 굳어 팔을 들어 올리면 몸통까지 따라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생명물로 정성껏 씻겨드리자마자 온몸이 노글노글할 정도로 부드럽게 풀렸습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신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생명물로 모실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시어머니께도 제단에 한 번 나와 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새벽마다 법문을 외우시던 분이었지만, 제 권유를 받아들이시고 계림제단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제단에 다니신 뒤로는 “그동안 네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내가 직접 다녀보니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다”며 고마워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함께 생명물로 닦아드린 후 입관을 해 드렸는데, 예배를 마친 뒤 마주한 시어머니의 얼굴은 생전보다 훨씬 뽀얗게 피어 잠드신 듯 평온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생명물의 권능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지금 제 곁에는 기장신앙촌에서 소비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큰딸과 가까이에서 저를 돌봐주며 광주제단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아들이 있습니다. 신앙촌에 가면 딸이 반겨주어 즐겁고, 집에서는 같은 길을 가는 아들이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이제 제게 남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막내딸도 하나님을 깨닫고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처럼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나온 시간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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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

감람나무를 증거하시기 위해 내려주신 은혜 1955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이슬 같은 은혜와 향취를 내려 주심으로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하셨다. 이 모든 은혜는 감람나무를 증거하시기 위함이었다.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수가 수백만에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내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감람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 눈으로 이슬성신을 보고, 향취를 맡으며 체험했기에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당시 기성 교단은 이러한 은혜가 성경 교리에 어긋난다며 이단 성명을 발표하고 하나님 집회에 참석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들에게 은혜가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이슬성신을 내려 주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더욱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이후에는 전국 각지에 이슬 같은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도관 건축이 본격화되었고, 1957년부터 1970년까지 소사, 덕소, 기장 신앙촌이 건설되어 신앙과 생활이 함께하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감람나무라는 이름으로 은혜를 베푸셨던 분이 바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본격적으로 밝히셨다. 예수와 성경의 거짓을 밝혀주신 하나님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 밝히셔 1980년, 예수의 정체 밝혀주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구원의 길 열어주신 하나님 1980년,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히셨다. 예수는 죄를 해결하는 법도 알지 못한 채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하며, 마치 자신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것처럼 가르쳤다. 그러나 이 말은 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만들어 사람들을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가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끈 장본인임을 밝히시며, ‘왕마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한 성경의 거짓도 하나하나 드러내 주셨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 온 성경의 98%가 사실은 마귀의 글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거짓에 대해 말씀해 주신 후부터 예수의 허구를 파헤친 책과 문헌들이 세상에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밝혀 주시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후 예수의 부활과 심판의 허구, 사복음의 모순, 예수의 행적 속에서 드러난 실체, 그리고 구원을 모른 성경 속 인물들까지 조목조목 짚어 주셨다. 이 모든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이 밝히실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허구를 곧바로 밝히기에는 사람들의 신앙 상태가 준비되지 않았기에 8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우쳐 주신 것이다. 해일을 통해 보여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해일로 보여주신 창조주의 권능 바람 없이 일어난 해일과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몰아친 파도 자연의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1980년 12월 24일 자정, 기장신앙촌 제강 앞바다에 전례 없는 해일이 일어났다. 바람 한 점 없던 고요한 밤에 거대한 파도가 공장을 삼킬 듯 들이쳤고, 이 상황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평온하게 “다시 가보라”고 하셨다. 현장으로 다시 나간 사람들은 더욱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바람은 반대 방향에서 불고 있었지만, 파도는 오히려 육지를 향해 거세게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파도가 다시 잦아든 상황은 자연의 이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없는 가운데 거센 파도가 치고, 다시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파도가 움직이는 현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신 사건이었다. 이는 해일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심판과 구원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드러내신 일이었다. 그로부터 열흘 후,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셨다. 제1회 이슬성신절과 하나님 발표 이슬성신과 생명물의 권능 증거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고 시신을 아름답게 피게 하는 생명물 죄를 씻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이슬성신 1981년 1월 3일,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셨다. 이날은 제1회 이슬성신절로, 박계윤 권사(성동교회)는 그날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1981년 하나님께서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가 곧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심을 밝혀 주셨습니다. ‘내가 사람과 같은 몸으로 왔지만, 이 안에 성신이 생산되는 구조를 가져왔다’고 말씀하실 때, 저는 떠오르는 하나님 모습이 있었습니다. 소사신앙촌 건설대에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저만큼 오시면 강한 향취가 진동했고, 예배 중에는 손끝에서 뽀얀 안개처럼 이슬성신이 쏟아졌습니다. 인간의 모습이시지만 성신을 내리시는 존재라는 말씀이 실감 났고,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는데 한 단계씩 깨우쳐 주시며 이제야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 구원은 이미 있는 죄를 씻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만 가능하다고 하시며, 그 죄를 씻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성신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슬성신은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하나님의 신이다. 호세아서 14장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라고 기록된 대로, 이슬성신은 감람나무를 통해 임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성신을 받으면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고, 복잡했던 마음이 평안해지며, 거칠고 메말랐던 심령이 백합화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를 시작하시던 초창기부터 이슬성신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예수의 실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그 은혜를 예수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만일 예수가 이슬성신을 알았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이슬성신에 대한 뜻과 능력을 전했어야 했지만, 그는 알지 못하였기에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이슬성신은 오직 감람나무 하나님께서만 내리실 수 있는 은혜이다. 생명물을 통한 이슬성신의 권능 이슬성신으로 가능케 하신 구원의 길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구원을 이슬성신 은혜로 가능케 하신 감람나무 하나님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하시면 그 물은 생명물로 화하여 수십 년이 지나도 맑고 깨끗하게 유지되며 썩지 않는다. 심지어 사방이 100미터 두께의 철판으로 막혀 있어도 하나님의 신은 그대로 통과하여 그 안의 물을 생명물로 변화시키는 권능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물의 권능은 시신의 변화를 통해 분명히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에는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에 삼킨 바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죄로 인해 반드시 죽고 썩어서 흉하게 변하게 되어 있는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때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바르면 시신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환하게 피어나고, 굳어 있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또한 죽은 사람이 물을 삼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생명물은 위 속에 공간이 있는 대로 들어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은 죄가 씻어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를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에는 구원을 얻는 일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할 만큼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슬성신의 은혜로 그 불가능한 구원의 길을 가능케 해 주셨다. 1980년대는 하나님께서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밝히시고, 오직 이슬성신의 은혜로써만 죄를 씻고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히 하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신 시기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도 예수의 이름에 갇혀 성경의 거짓에 속아 구원의 길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을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이제 곧 45회 이슬성신절이 다가온다. 하나님께서는 1980년 11월 29일 축복일에 “이 다음에 이슬성신절을 정했어요. 그동안 이슬성신의 귀한 것과 생명물의 귀한 것을 그대로 벗기지 못하다가, 이제 여러분들에게 구원을 완전히 알게 해 주면서 누구든지 깨닫고 그대로 따르면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고로 나는 기뻐요”라고 말씀하셨다. 죄를 짓지 않으려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다고 하시며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이슬성신절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 운동의 원동력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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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62> 대한민국의 독립을 방해한 죄, 말뿐인 사과로 충분한가<2>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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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 프랑스 마르세유, 양손에 기관총을 든 붉은 예수상이 공공장소에 등장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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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종교는 왜 언어를 바꾸려 하는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3. 핍박의 고장에 은혜의 집회…하나님이 기뻐하심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맛 그대로”…신앙촌 두부를 선택한 이유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맛 그대로”…신앙촌 두부를 선택한 이유

‘만희네 가마솥밥’ 박만희 사장…두부 시작으로 간장도 신앙촌 제품 사용 가마솥밥과 갈치요리를 중심으로 손님에게 따뜻한 한 끼 차려내 울산 외곽 두현저수지 인근에 자리한 ‘만희네 가마솥밥’은 가마솥밥과 갈치요리를 중심으로 한 한식당이다. 박만희 사장은 아침 일찍부터 생선을 손질하고 반찬을 준비하며 손님에게 따뜻한 밥상을 내고 있다. 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그는 2년 전부터 신앙촌 두부와 간장을 사용하고 있다. 박 사장이 신앙촌 제품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지인의 추천이었다. 평소 손두부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두부가 쉽게 굳고 색이 변하는 점이 아쉬웠다. 이에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사용하고 있던 신앙촌 두부를 소개받았다. “기존에 쓰던 손두부는 따뜻한 물에 데워 놓아도 30~40분 정도 지나면 딱딱해지고 색깔도 변했어요. 그런데 신앙촌 두부는 한두 시간이 지나도 부드러운 상태가 유지되는 점이 좋았습니다.” 현재 신앙촌 두부는 된장찌개와 두부김치 등에 사용한다. 특히 손님상에 따뜻하게 데워 내는 두부김치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했다. 두부 자체의 맛과 식감이 중요한 메뉴로 손님이 추가로 리필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박 사장은 “제가 두부를 좋아해서 부쳐 먹거나 구워 먹기도 하는데, 신앙촌 두부는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다”며 “시중의 일반 팩 두부와 비교해도 차이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두부를 사용하면서 간장도 신앙촌 제품으로 바꾸게 됐다. 양조 진간장과 국간장을 조림 양념장과 각종 반찬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조림 양념에는 두 종류의 간장을 적절히 섞어 간을 맞춘다. “양념장을 만들거나 조림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버섯이나 멸치 같은 반찬을 볶을 때도 들어가고요. 여러 재료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박 사장은 신앙촌이라는 이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했다. 과거에는 간장과 이불 등 신앙촌 제품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제품을 직접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제품 자체의 품질이 뛰어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품을 사용하는 데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직접 써보고 제품이 좋은지, 제가 만족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제품을 사용하는 데 있어 원활한 공급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끔 두부가 급히 필요할 때는 담당자가 별도의 물량을 마련해 공급 공백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신앙촌 사장님이 저한테 노력을 보여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제품도 좋지만 필요한 시기에 공급이 잘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앙촌 제품의 가격에 대해서도 특별히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원재료와 인건비 등 식당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함께 오르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 역시 일정 부분 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실제 사용했을 때 만족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이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손님한테 욕먹지 말자”는 것이다. “돈을 내고 와서 밥을 먹었는데 음식이 짜다, 비싸다, 돈이 아깝다는 말을 듣지 말자는 생각으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원산지 표시 등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만족해서 돌아가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가끔 생각나는 식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식당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 집 괜찮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하게 새로 지은 밥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만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지금처럼 좋은 품질의 신앙촌 제품을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가 써보고 좋은 제품이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되면 알려주고 싶습니다. 두부나 간장처럼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은 결국 맛과 품질이 중요하니까요.”

찬송가로 여는 아침 ①

찬송가로 여는 아침 ①

함께할수록 커지는 힘

함께할수록 커지는 힘

서로의 상회 찾아가 함께 움직이며 힘을 얻는 대구지역 소비조합원 판매 경험 나누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경인3지역 사장단 ◇대구지역의 특별한 런데이, 함께라서 더 즐거워 요구르트 ‘런’ 판매에 힘을 모으고 있는 대구지역 소비조합원들이 ‘런데이’를 통해 새로운 판매 방식을 시도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런데이는 날짜를 정해 그날의 목표를 세우고, 신앙촌상회에서 집중적인 홍보와 판매 활동을 펼치는 날이다. 대구지역 오현숙 사장은 신정미 소장의 제안으로 상회 전체가 함께하는 런데이를 시작했다. 오 사장은 “처음에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반신반의했지만, 여럿이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격려에 힘입어 뜻을 모았다”고 했다. 행사는 주변 상회 사장들이 한 상회에 모여 함께 활동하고, 다음 날에는 해당 상회 사장이 행사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정해진 날짜에 다시 다른 상회에 모여 판매 활동을 펼쳤다. 런데이는 첫날부터 상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상회 밖에 추첨함을 마련하고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행운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상회 안으로 들어왔다. 상회 안에서는 신앙촌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추첨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했다. 런 한 통을 사러 왔다가 다른 제품까지 구매하고 선물까지 받아 기뻐하며 돌아가는 고객들이 많았다. 오 사장은 “상회 안에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활기찬 분위기가 또 다른 손님을 불러오는 효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배달을 마치고 합류한 사장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시장을 돌며 손님들을 상회로 안내했고, 상회를 운영하지 않는 소비조합원들은 더위에 지친 동료에게 미숫가루와 얼음을 건네며 서로를 챙겼다. 오 사장은 “날씨가 뜨거운데도 다른 사장님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밖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한마음으로 판매를 도우며 이불 진열까지 새롭게 해줄 때 너무나 고마웠다”며 “혼자 노력할 때와 달리 서로 잘하는 일을 나누니 같은 시간에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전체가 하나로 뭉칠 때 하나님께서 기쁨을 확확 주신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이렇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고 전했다. 오 사장은 “그날 고생은 그날 족하다는 말씀처럼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나가겠다”며 “대구중앙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 함께 발전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경인3지역의 매일 기록, 서로를 응원해 경인 3지역 신앙촌상회 소비조합원들이 상회 사장 간의 소통과 런 판매 경험을 소소하게 나누는 ‘소소・SoSo 모임’을 통해 판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평소 따로 모여 이야기할 기회가 적었던 사장단이 부담 없이 만나 각자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8월 10일부터는 사장 10명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을 개설해 매일 런 판매량을 공유하고 있다. 또 각자 목표를 정하고 현재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면서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있다. 현재 모임은 1기와 2기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1기는 매일 판매 기록을 올리며 활동하고 있으며, 아직 매일 인증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2기 별도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앞으로 2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1기와 함께 경험을 나누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9월 5일에는 신앙촌에서 1기 사장단 모임이 있었다. 이날 자리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런을 판매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누구였는지’, ‘반가운 손님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등 10가지 가벼운 질문을 준비했다. 판매 과정에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대화거리가 되었고, 사장단이 저마다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사장단이 주인공이 되어 소통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상회에서 겪은 어려움과 판매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좋은 방법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양평 이지영 소장은 “소장님들이 앞에 나서면 사장님들은 듣는 입장이 되기 쉽다”며 “사장님들이 주인공이 되어 좋았던 일과 힘들었던 일들을 편하게 털어놓고, 서로 기운을 얻어 다시 상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매일 이어지는 기록 공유는 서로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다. 실적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가 성실히 기록을 올리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주고받고 있다. 이 소장은 매일 올라오는 기록을 정리해 공유하면서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오늘도 힘내세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응원도 전하고 있다. 이 소장은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모임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입사 39주년, 함께 걸어온 구원의 길

함께 배우고 성장한 입사생들, 감사한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 다짐 지난 8월 30일 ‘하나님 권능을 힘입어 죄의 권세 이기네’라는 주제 아래 입사 39주년 예배가 열렸다.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1987년부터 입사생들은 맑은 신앙생활을 위해 신앙촌에서 함께 성장해 왔다. 이날 예배에서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그동안 받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앞으로도 구원의 소망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은미 관장(입사생 담당)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의미를 되새기며, 구원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인간은 죄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구원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이슬 같은 은혜로 죄를 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기회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믿음이고, 믿음의 기본이 되는 것은 기도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비치는 거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면 교만이 자리 잡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채워 나가는 입사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입사 10주년과 20주년을 맞은 입사생들의 특순과 소감 발표도 있었다. 10주년을 맞은 박수영 씨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쁜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곁에서 도와주신 많은 분들과 지금까지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은 김소중 씨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이 아닌 만큼 지나온 시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입사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2부에서는 여성협회 송미애 관장의 특강이 진행됐다. 송 관장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전했다. 이어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입사생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시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기회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기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구원의 길을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입사생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라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교양

시간 지나면 허기 사라지는 이유

시간 지나면 허기 사라지는 이유

허기 사라져도 필요한 에너지는 그대로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배가 고프다. 그런데 제때 식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허기가 줄어들기도 한다. 배는 여전히 비어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허기를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은 ‘그렐린’이다. 주로 위에서 분비되는 그렐린은 뇌에 배고픔 신호를 보내 음식 섭취를 유도한다.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농도가 높아지고 음식을 먹으면 낮아진다. 그러나 그렐린이 음식을 먹을 때까지 계속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학술지 ‘유럽내분비학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는 건강한 성인 6명이 24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평소 식사 시간 무렵 그렐린이 증가했다가 약 2시간 뒤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연구 후반부에는 참가자들이 느끼는 허기도 줄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배가 고파지는 데는 평소 식사 습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 몸은 일정하게 반복되는 식사 시간에 맞춰 그렐린 분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평소 끼니때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허기를 느낄 수 있다. 국제학술지 ‘미국생리학저널’에 실린 연구에서는 평소 아침과 점심 사이의 간격이 짧은 사람과 긴 사람을 비교했다. 그 결과 두 집단 모두 자신이 평소 점심을 먹던 시간에 가까워지자, 그렐린 농도가 가장 높아졌다. 연구진은 그렐린이 단순히 위가 비어 있는 정도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식사 시간을 예상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강했던 허기가 줄어든 것은 배고픔을 일으키는 신호가 약해진 것이지, 음식을 먹어 에너지와 영양소가 보충됐다는 뜻은 아니다. 식사를 계속 미루면 사람에 따라 기운이 떨어지거나 두통과 어지럼증,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허기가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끼니를 계속 거르지 말고 적절한 때에 식사하는 것이 좋다.

폐 건강 지키는 녹색 잎채소

‘제2의 심장’ 종아리 근육

움직여야 관절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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