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천부교 추모의 날’ 열려

‘2026 천부교 추모의 날’ 열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유가족들 천부교추모공원 찾아 고인을 기려 푸른 하늘과 찬송 소리 속 평화로운 추모의 시간 6월 6일 토요일, 천부교추모공원에서 ‘2026 천부교 추모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천부교추모공원은 매해 6월 첫째 주에 행사를 마련해 왔으며, 올해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유가족들이 공원을 찾았다. 유가족들은 정성껏 가꾸어진 묘소를 돌아보며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추모공원을 처음 찾은 한 유가족은 “첫 방문이라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추모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날씨와 바람도 너무 좋았고, 푸른 하늘과 산등성이의 풍차발전소, 아득히 멀리 보이는 바다까지 마치 오늘을 기다린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문득 이곳에 계신 분들이 정말 기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성스럽게 준비해 주신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동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유가족은 “금계국이 노랗게 반겨주는 추모공원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평화로움이 밀려왔고, 곳곳에 찬송 소리가 들려 마음이 한층 더 잔잔해졌습니다. 비석마다 놓인 꽃들도 더욱 화사하고 예쁘게 느껴져 가족들이 이곳에 계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오랜만에 만난 가족 간의 반가움이 어우러져서 미소가 흐르는 모습들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차양막이 설치된 넓은 쉼터에서 맛있는 도시락도 먹고, 추모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고 돌아올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의 ‘기무라 연구회’ 연구원 26명, 신앙촌 식품단지 견학

일본의 ‘기무라 연구회’ 연구원 26명, 신앙촌 식품단지 견학

6월 19일 오전, 일본의 간장 제조 기술 연구단체인 ‘기무라연구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신앙촌 식품단지를 방문했다. 이번 견학에는 일본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간장 제조 및 품질관리 분야 전문가 26명이 참여했다. 연구회원들은 신앙촌 음료공장과 두부공장에서 제품을 시식한 뒤 장유공장을 찾아 생산 현장과 주요 설비를 둘러보며 제조 과정을 견학했다. 견학 동안 회원들이 가장 인상 깊게 꼽은 것은 공장의 청결한 환경이었다. 기후현 간장협업조합 아오키 도시미쓰 (青木 利充) 이사장은 “우리 조합의 설비 규모는 신앙촌과 비슷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공장의 청결함”이라며 공장의 뛰어난 위생 관리 수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어떻게 이처럼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표하며 거듭 찬사를 보냈다. 그는 “원료 처리부터 제국(製麴), 압착 공정까지 둘러봤는데 곰팡이나 찌꺼기가 전혀 없었고 악취도 나지 않았다”며 “간장 공장은 원래 청결을 유지하기 어려운 곳인데 어느 곳에서도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고 감탄했다. 이어 “깨끗한 환경은 간장의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신앙촌 간장은 정말 맛있었고, 무엇보다 깨끗한 맛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견학에는 일본간장기술센터 기술부의 세키네 유타 (関根 悠太) 씨도 참석했다. 일본간장기술센터는 일본간장(醬油) 분야의 JAS 인증기관으로, 품질 기준과 생산기술 전반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다. 세키네 씨는 “공장 곳곳에서 직원들이 정성을 다해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청결함이 가장 인상 깊었고, 훌륭한 제조 환경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음료공장과 두부공장도 함께 둘러본 뒤 “장유공장은 물론, 음료공장과 두부공장까지 모두 청결하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며 기업 전체에 청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방문을 이끈 노다 요시하루(野田 義治) 회장은 “기무라연구회(간장 양조기술의 거장인 고(故) 기무라 엔지로(木村延二郎) 선생이 설립)는 일본의 간장 제조업체 및 관련 업종의 기술자를 비롯하여, 일본간장기술센터 등 정보·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올해 창립 50주년과 100회 연구회를 맞았다”며 “기념 해외 연수로 신앙촌 공장을 견학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7년 된 공장이라고는 전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며 “간장 공장은 물론 위스키나 식초 공장도 곰팡이가 생기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시설이 낡고 변색되는 경우가 많은데, 신앙촌 공장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지 매우 신기하고 놀랍다”고 전했다. 또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과 좋은 물, 그리고 제품을 정성껏 만들고자 하는 사원들의 성실함이 공장 운영 전반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며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공장으로, 매우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경전’ 공부 함께해요

‘경전’ 공부 함께해요

#새로운 다짐 주관식 문제에서 많이 틀렸던 것은 평소 말씀을 듣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는 경전을 읽을 때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포교회 윤경수 권사 #다음 목표는 100점입니다 완벽한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경전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아쉬움을 발판 삼아 다음 대회에서는 100점을 목표로 꾸준히 경전을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소사교회 김선영 씨 #자신 있게 전하겠습니다 경전 제2부 4장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를 읽으며 말씀을 더욱 정확히 이해하고 잘 익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회에 오시는 손님들이 천부교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실 때, 경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인천교회 김지은 집사 #반복해서 읽은 경전 정답을 생각보다 많이 맞힌 것 같아요. 퀴즈대회를 준비하면서 경전을 반복해서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말씀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요. -덕소교회 김나영 씨

갈릴레오, 종교적 압력에 굴복하다

갈릴레오, 종교적 압력에 굴복하다

가톨릭 이단 혐의로 재판 받아 종교적·정치적 압력에 신념 철회 미국 과학 매체 노틸러스는 6월 22일자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4세기 전의 오늘인 1633년 6월 22일,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종교적·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고 자신의 과학적 견해를 철회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교리에 반하는 책을 쓰고 가르쳤다는 이유로 ‘이단 혐의’를 받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1632년, 그가 출간한 저서 《두 주요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였다. 이 책에서 갈릴레오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과 교회가 지지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 중심설’을 비교했다. 앞서 가톨릭교회는 1616년,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성경에 묘사된 대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리에 도전하는 모든 이론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갈릴레오는 수십 년간 망원경 관측을 바탕으로 지동설을 주장하며 교회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소환된 그는 결국 사형의 위협에 못 이겼고, 마침내 고발자들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공식 서면으로 입장을 철회해야 했다. 그는 서약서를 통해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며 움직이지 않고,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움직인다는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밝히며, 앞으로 이 견해를 말로든 글로든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교회에 대한 의심을 없애고자 진실한 마음과 믿음으로 앞서 언급한 오류와 이단, 교회에 반하는 모든 종파를 부인하고 저주하며 혐오한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같은 견해를 옹호하는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겠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끝으로 그는 “교회법과 기타 일반 및 특별 법령에 따라 그러한 범죄자들에게 부과되고 공포된 모든 고통과 처벌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재판 이후 해당 도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사본들이 불태워졌고, 갈릴레오는 남은 생애 9년을 가택 연금 상태로 보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축적됐다. 한때 이단으로 여겨졌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주장은 이제 반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산우수식품 선정 신앙촌식품(주), ‘서울푸드 2026’ 참가

부산우수식품 선정 신앙촌식품(주), ‘서울푸드 2026’ 참가

신앙촌식품이 부산광역시와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식품 전문 전시회인 서울푸드 2026에 부산을 대표하는 식품 브랜드들과 함께 참가해 국내외 소비자와 바이어를 만났다. 서울푸드는 1983년 처음 개최된 이후 국내 식품 산업의 성장과 함께해 온 대표 식품 전시회로, 올해 44회를 맞았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49개국 1,800여 개 식품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어 식품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로 주목받았다. 신앙촌식품은 이번 박람회에서 부산광역시 공동브랜드인 Be-F와 함께 참가했다. Be-F는 부산 지역 우수 식품의 경쟁력을 알리고 지역 식품 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는 공동브랜드로, 신앙촌식품은 부산광역시의 지원으로 홍보 쇼핑백과 제품 안내 자료 등을 활용해 현장을 찾은 방문객과 바이어들에게 브랜드와 제품을 소개했다. 특히 신앙촌식품은 부산우수식품에 선정된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행사에 참여해 지역 식품 산업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내외 식품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일반 소비자와의 만남은 물론 글로벌 B2B 상담도 이뤄졌다. 신앙촌식품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현장 분위기와 제품을 소개했으며, 바이어들과 상담을 진행하며 오랜 기간 이어온 제조 환경과 품질 관리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확인했다.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신앙촌식품의 제품을 직접 살펴보고 브랜드 이야기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했고, 소비자와 바이어, 업계 관계자 등 다양한 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앙촌식품 관계자는 “부산우수식품 선정에 이어 서울푸드 2026까지 참가할 수 있어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정직한 원료와 위생적인 생산 환경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황, ‘정의로운 전쟁’ 부인

교황, ‘정의로운 전쟁’ 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론 거부, 미 사관학교 현행 군사 교육 초석 파장 회칙 「Magnifica Humanitas」의 또 다른 핵심은 가톨릭교회가 수 세기 동안 유지해 온 전통적 ‘정의로운 전쟁(Just War)’ 이론에 대한 공식 부인이다. 교황 레오 14세는 회칙을 통해 “5세기부터 교회가 사용해 온 이 이론이 온갖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며, 현대 사회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 해결을 위해 인류에게는 대화와 외교, 용서 등 더 효과적인 도구가 있다고 말했다. ‘정의로운 전쟁론’은 서기 430년 사망한 초기 교회의 핵심 인물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한 이론으로, 가톨릭교회는 이를 오랜 기간 전쟁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해 왔다. 이 원칙은 현재 전 세계 주요 군사학교 교육과정의 초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교황 레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설립된 아우구스티누스회 소속이며,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고 밝힌 적이 있어 이번 선언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선언은 이란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교황청 간의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가톨릭 신자인 J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은 방어적 전쟁을 명목으로 이 이론을 인용하며 이란 전쟁을 옹호해 왔다. 지난 4월 교황청 X계정에 “하느님은 결코 칼을 휘둘렀던 자의 편이 아니다”라는 글이 게시되자, 밴스 부통령은 레오 교황을 향해 “신학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신앙체험기

하나님의 손길과 생명물의 권능에 감사드려

하나님의 손길과 생명물의 권능에 감사드려

1939년 11월생인 저는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 자라며 장로교회를 다니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특별히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7년 6월 무렵이었습니다.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고향에 내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문득 제게 “천국이 있다고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확신이 없다고 답하자, 친구는 자신이 전주전도관에 다니며 직접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도관 장례예배에 참석해 밤을 지새우며 지켜보았는데,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환하게 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박태선 장로님께서 한 달에 한 번 전주전도관에 오셔서 생명물을 축복해 주시는데, 그 물에는 많은 이적이 나타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 전도관에 가면 그 생명물을 직접 받아올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환하고 평온할 수 있다면, 나도 한번 그 신앙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까지의 거리가 멀어 당장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때부터 전도관과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직장 때문에 남원에 가게 된 또 다른 친구가 주일에 남원전도관을 찾았다가 전도사님께 제 이야기를 꺼낸 모양이었습니다. 전도관에 가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오수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전도사님은 그길로 친구와 함께 바로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당시에 그 전도사님은 남원 지역에서 개척 전도를 하고 계셨는데, 오수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자신도 과거에 기성교회 목사였으나,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고 전도관 전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생명물은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으며, 돌아가신 분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도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을수록 과연 어떤 분이시기에 그런 권능을 베푸실까 하는 생각이 들며, 꼭 한번 뵙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박 장로님께서 전주전도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호리병을 준비해 전주로 향했습니다. 당시 태평동의 한 공장 건물을 임시 예배처로 사용하던 전주전도관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군산 집회를 마치시고 다음 날 새벽 단에 서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사람들 틈에 앉아 철야를 했습니다. 마침내 새벽이 되어 박 장로님께서 예배를 시작하시자, 예배실 안은 안개가 낀 듯 자욱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아 생긴 현상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청년회장이 “오늘 은혜가 많이 내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당시에는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안개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였다는 사실은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박 장로님께서는 안내 봉사를 맡은 학생들에게 안수를 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안내를 하지는 않았지만, 염치 불고하고 안수를 받기 위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기 전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고,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박 장로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안수를 해주시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고 격려하셨고, 그 틈에서 제 차례가 되어 저도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마치신 뒤에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그곳에는 큰 항아리 여러 개에 물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이 신기해 어떻게 하시는지 처음부터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성신께서 함께하시고 성신의 불담으로 지켜 주신다는 말씀을 하시며 물을 향해 축복하셨습니다. 축복이 끝나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생명물을 받기 시작했고, 저도 미리 준비해 간 호리병에 생명물을 받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박 장로님께서 전주에 오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주전도관을 찾았고, 평소에는 집에서 약 10리 떨어진 오수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밤길을 걸어 제단으로 가는 길에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다 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한 향취 은혜를 자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1958년 초에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2차 건설대에 지원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신앙촌에서 약 20리 떨어진 곳에서 벽돌 생산에 필요한 백토 캐는 작업을 맡았는데, 힘들다는 생각보다 신앙촌 건설에 힘을 보탠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설 현장을 자주 찾아오셔서 여러 차례 안찰도 해주셨습니다. 한번은 기와공장에서 작업하던 중 안찰을 해주시러 오셨는데, 저희가 서둘러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다는 죄송함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하루는 안찰을 받으러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준비하고 움직였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게으르면 내 가지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신앙생활은 물론 일상에서도 늘 부지런해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또 배를 안찰해 주실 때는 하나님의 손이 닿는 순간 몸속에서 무언가가 위로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스르르 가라앉으면 안찰을 마치셨는데, 신기하게도 아픔은 전혀 없었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주신다는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고, 이후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15m 거리에서 축복하시자 하나님 손끝에서 나온 물줄기가 물통 속으로 들어가 또 한 번은 식당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오후에 공장을 둘러보시며 축복해 주실 때, 저도 생명물 축복을 받으려고 큰 통에 물을 받아 하나님 쪽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과는 15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축복해 주시는 순간 손끝에서 뻗어 나온 굵은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제가 들고 있던 물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저는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크신지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에서 생활하다가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1963년 제대 후 개척 전도사 발령을 받아 전주 마령제단에서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나오던 아주머니가 아픈 딸을 데리고 제단을 찾아왔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아이의 몸에 생명물을 발라 주었더니, 아파서 울며 보채던 아이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도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틀 뒤 아이가 깨끗이 나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전도된 청년들과 함께 제단 건축에 한창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종각을 쌓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몸을 부딪히며 떨어졌는데 복부 쪽이 심하게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맹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별다른 치료 없이 나왔고, 5~6일이 지난 뒤 안찰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는 덕소신앙촌으로 향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하나님 집무실까지 올라가니 하나님께서 문 앞에 나와 계셨습니다. 안찰을 받으러 들어서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시며 웃으시더니 “급성이면 이미 갔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안찰을 해주시며 이제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아파서 절룩거리며 들어갔던 저는 안찰을 받고 언제 아팠냐는 듯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장례 때 생명물로 굳은 턱이 풀리고 팔다리가 부드럽게 펴져 1965년 오수전도관에 다니시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덕소신앙촌 축복일 예배에 참석한 뒤 마령제단으로 돌아가던 길에 집에 들렀는데, 어머니께서 위독하신 상태였고 결국 그날 밤 숨을 거두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고 턱이 단단히 물려 있었습니다. 저는 축복일에 받아온 생명물을 수저에 떠서 입에 넣어드리려 했으나 대부분 얼굴로 흘러내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흘러내린 생명물로 얼굴을 닦아드리자, 놀랍게도 굳게 다물렸던 턱이 풀리며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생명물을 넉넉히 떠 넣어드리고 얼굴과 손마디, 발끝까지 온몸을 정성껏 닦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굳어 있던 팔다리가 부드럽게 펴졌고, 어머니의 얼굴은 생전보다 더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얼마 후 찾아온 동료 교역자들도 어머니의 모습이 곱게 잘 피었다고 했습니다. 평소 전도관에 냉소적이던 아버지조차 아름답다고 인정하셨고, 문상을 온 동네 사람들도 신기해하며 놀라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전도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친구가 말해 주었던 장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아름답게 핀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을 찾아갔던 제가, 이제는 어머니의 장례를 통해 그 권능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형편상 교역을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오수전도관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2009년 전주제단이 새롭게 건축될 때에는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일에 힘을 보탰으며, 경주 천부교추모공원 조성 현장에서도 5개월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하나님께 축복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 부어줄까?”라고 물으시며, “죄짓지 말고 그 세계에 같이 가자”라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세월이 흘러도 제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앞으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저는 부모님 두 분 모두 감리교 교인인 가정에서 태어나, 1964년 결혼 전까지 왕십리 감리교회를 다녔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제가 전도관 교인이셨던 시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신앙의 토대가 바뀌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져 나중에는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것이라며 신앙촌 캐러멜을 정성껏 끓여 주셨고, 전도관 교인들도 찾아와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한 끝에 차츰 기운을 차린 저는 몸이 조금 나아지자 문득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밖으로 나가 감리교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가까운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께서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교회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께서는 곧 하나님께서 이만제단에 오시니 함께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녔던 터라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시어머니 말씀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에 그 주 일요일 처음으로 이만제단을 찾았습니다. 저와 시어머니는 예배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단상 쪽을 바라보니 하나님 뒤로 환한 빛이 둘러 있는 신기한 광경이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설교 말씀은 아직 생소해서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날 이후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어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신앙의 토대가 바뀌고 진정한 구원의 길 찾아 그렇게 이만제단에 출석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종암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이삿짐을 채 풀기도 전에 종암동 제단의 전도사님을 집으로 모셔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에 이전 제단의 전도사님도 동행하셨는데, 제가 기성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새로운 곳에서 제단 일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종암동 전도사님께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시어머니를 따라 제단에만 나갔을 뿐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종암동 전도사님께서는 부탁을 받으신 뒤 저에게 장례 예배에 함께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당시 전도관에서는 전도관 교인이나 그와 연고가 있는 친척의 경우, 상주의 뜻에 따라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면 그 모습이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났는데, 전도관에서는 이렇게 변화되는 과정을 누구든 직접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죽은 쥐만 봐도 무서워 길을 돌아갈 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장례를 치르는 곳에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생명물로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제단에 나오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장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장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제단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고 궂은 일도 도맡으셨던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씻겨 드린 고인의 모습이 살아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특히 굳어있던 몸이 산 사람처럼 노긋노긋해진 것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생명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한번은 인근 제단 양금준 권사님의 시어머니 장례 예배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놀라울 정도로 진한 향취를 체험했습니다. 전도사님이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생명물을 적신 수건을 몸에 덮어두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앞에서 꽃을 흔드는 것보다 더 진한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향취를 모두가 똑같이 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뒤에 물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맡지 못한 반면, 정성을 다해 앞자리에서 예배드린 사람들은 진한 향취를 맡았습니다. 그 후 종암제단의 어느 집사님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남 공주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들어섰을 때는 한여름 무더운 날씨 탓에 이미 시신이 부패해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리고 정성을 다해 함께 예배드리자, 그 냄새가 순식간에 걷히고 고인의 모습이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당시 집 아래쪽에는 평소 생명물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해오던 감리교회 전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방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입관을 마친 후 우리 전도사님께서 그에게 생명물로 고인이 피어난 모습을 똑똑히 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굳어있던 몸이 노긋노긋해지고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 장례 예배에서 목격하며 생명물의 권능 깨달아 하지만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시누이의 장례 때 있었습니다. 시누이가 한때 기성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 그쪽 사람들이 몰려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으나, 시어머니께서는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며 단호히 만류하셨습니다. 결국 입관은 시어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장위동, 보문동, 안암동 제단의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때 입관을 마친 시누이의 모습이 얼마나 고왔던지 조문객들이 아가씨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입관 후에 일어났습니다.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한 고모부가 고인의 손을 잡자 그 자리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저는 하나님의 은혜는 성결하고 깨끗한 곳에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제단마다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도 경쟁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1981년에 전농제단으로 옮겨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1986년 7월 24일 오랜 시간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생전의 시어머니께서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계셨기에 바닥과 닿는 피부는 하루만 지나도 하얗게 물집이 잡히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상조회사에 연락하자 곧 직원들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중복 무더위라 사후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며 어머니 코에 솜을 막으려 했습니다. 제가 절대로 신체에 손대지 말라고 당부하자, 직원들은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느냐며 걱정 어린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마침 저희 집에는 세종문화회관 합창에 참여했던 딸들이 받아온 생명물이 있었습니다. 상조회사 사람들이 돌아간 뒤 시어머니께 생명물을 컵으로 먹여드렸는데, 놀랍게도 한 대접이나 되는 많은 양이 입안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덕소교회 장례반 권사님들이 도착해서 어머니를 확인해 보시더니 너무나 예쁘게 피었다며 놀라워하셨습니다. 생명물을 먹여드렸을 뿐인데 생전의 깊은 주름은 펴져 있었고, 하얀 물집 자국들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한여름 집에서 치르는 장례였음에도 집안 공기가 어찌나 시원하고 쾌적했던지, 사람들이 에어컨을 새로 들여놓았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장례 내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장지 이동 시에만 멈추고 모든 절차 후에 다시 쏟아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신앙이 깊지 않았던 제가 확신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수많은 장례 예배를 직접 지켜보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늘 뒤편에 서 있던 제가 고인이 살아생전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고 싶을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이토록 귀한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죄의 근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저 자비로운 하느님께 용서받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과 마음,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구원의 길이 이 귀한 진리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안찰을 받던 날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저의 죄를 지적해주셨고, 축복을 마치신 후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세계에 같이 가자”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슬성신과 생명물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은혜에 감사드려 저는 그동안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며 소비조합원으로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세월 생명물과 이슬성신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 체험들은 오늘까지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생명물로 죄를 씻어주시고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구원을 향해 이 귀한 은혜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20년을 달려온 요구르트 ‘런’

70년 전통의 신앙촌식품에서 만든 런(Run), 천혜의 자연 환경과 신앙인의 양심으로 출시 이후 20년간 칼로리 낮춘 무지방 발효유로 국민 건강 지켜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이 불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 인스턴트식품과 고지방 식단의 열풍이 불며, 안전하면서도 균형 잡힌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요구 또한 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앙촌식품은 발효유 분야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5년 1월 14일, 신앙촌식품은 건강을 생각한 발효유 ‘런(RUN)’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지방으로 칼로리를 대폭 줄이고 가볍고 부드러운 맛을 강조해 기존 발효유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름 그대로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서 달려간다는 의미와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함께 열어가겠다는 포부가 담겼다. 처음에는 생소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소비조합을 통해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점차 알려졌고, 20년이 지난 지금 런은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런의 20년은 신앙촌 제품의 경쟁력을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 2006년 HACCP 인증으로 위생과 안전성을 입증했고, 2014년에는 업계 최초로 ‘어린이기호식품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 어린이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균형 잡힌 발효유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올해 8월 28일에는 자동화 설비와 PLC·센서·HMI 시스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해썹(Smart HACCP)’ 인증을 획득, 제조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발효 기술과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런의 차별성은 ‘살아 있는 유산균’에 있다. 런 한 병에는 유산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와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5종의 프로바이오틱스가 1,000억 CFU이상 들어 있다. 여기에 칼로리 역시 개선해 처음 70kcal였던 것이 현재는 120ml에 54kcal로 낮아졌다. 무지방에 당은 줄이고, 영양 밸런스를 고려하여 칼슘과 비타민B₂를 풍부하게 담아 ‘부담 없이 매일 마시는 발효유’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포장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 2005년 노란색과 파란색 그라데이션 로고로 출발해 원재료 개선과 표시 제도 변화에 맞춰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쳤다. 그러나 핵심은 언제나 ‘무지방, 칼로리·당 Down’이라는 일관된 메시지였다. 특히 업계 최초로 알루미늄 덮개를 없애고, 신앙촌에서 자체 생산한 친환경 투명 페트병을 사용해 100% 재활용할 수 있게 해 환경까지 고려했다. 런 공장은 매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견학 오는 아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급식에서 보던 런을 실제 공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하고, 교사와 학부모들도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라며 반가워한다. 그동안 런은 전국 가정과 학교 급식, 어린이집, 단체 행사에서 꾸준히 사랑받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안심하고 마시는 발효유”라는 신뢰를 쌓아왔다. 현재 런은 전국의 신앙촌상회와 대형마트, 온라인몰, 자사몰인 ‘SANC몰’ 등을 통해 공급되고 있으며, 20주년을 맞아 브랜드 캐릭터와 홍보 영상을 선보이며 젊은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혀가고 있다. 런이 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앙촌의 철학이 있다. 1950년 후반, 서울의 한 양장점 주인은 “신앙촌 사람에게 옷을 맡기면 땀수를 속이지 않는다”며 정직과 양심을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정신은 식품 생산에도 깃들어, 소사신앙촌 시절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던 때에도 카스텔라 한 개에 계란 한 개를 꼭 넣어 하루 10만 개를 생산해도 모자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직과 신용, 최고의 품질로 반세기를 지켜온 신앙촌 기업 정신은 오늘날 런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신앙촌 식품이 곧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신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앞으로 런은 발효유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공지능을 접목해 발효 균주의 활성을 안정화하고, 신앙촌 고유의 균주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신앙촌식품(주) 한은정 공장장은 “런은 정직과 양심으로 지켜온 철학의 산물”이라며 “앞으로도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런의 20년은 곧 신앙촌이 걸어온 정직과 신뢰의 20년이었다. 요구르트 런은 앞으로도 이름 그대로 끊임없이 달려가며 소비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땀과 노력, 그리고 도전… 마라톤 주인공은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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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58>가톨릭이 축복한 죽음의 항해, 악마의 노역,  그리고 교황의 사과 선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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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 파티마 성지 인근에서 허가받지 않은 퇴마 의식이 열려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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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신의 뜻, 진리라 할 수 있는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천부교 고흥교회 신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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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싱그러운 오디밭에서

싱그러운 오디밭에서

#처음 따본 오디 오디를 직접 따본 건 처음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맛있는 오디를 먹으며 싱그러운 오디밭을 둘러보니 마음까지 즐거워졌습니다. 이런 좋은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전교회 새교인 이양님 씨 #못 오신 분들과 나눠 먹을 거예요 오기 전에는 오디 따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즐거웠어요. 안 왔으면 정말 서운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성껏 딴 오디를 못 오신 분들께 나눠주고 싶어요. -소사교회 정승만 권사 #자연의 풍성함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오디가 크고 달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직접 따보는 재미도 있었고, 탐스럽게 열린 오디를 보며 자연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욕심내지 않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천교회 박동희 권사 #얼굴에 오디물이 들어도 즐거워요 오디를 직접 따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맛도 좋아서 더 즐거웠고, 얼굴과 손에 오디물이 묻은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기념사진도 찍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였어요. -화곡교회 윤영자 권사

<故조계수 권사> 유가족 인터뷰

<故조계수 권사> 유가족 인터뷰

지난 5월 27일, 신앙촌에서는 故조계수(101세) 권사의 입관예배가 있었다. 당시 입관예배에 참석했던 기자는 고인의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연신 “엄마 너무 예쁘다”라고 말하는 큰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장례 절차와 추모공원에서의 하관을 모두 마친 뒤, 유가족은 신앙촌에 감사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전해왔다. 장례 후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 고인의 장녀 박복희 씨는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도 신앙촌에 계시는 동안 얼굴빛이 좋으셨는데, 돌아가신 뒤 천부교식으로 입관 예배를 마친 모습을 보니 얼굴이 마치 아기 피부처럼 고와지셨어요. 아기 피부 같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 천부교회에 다닐 때 생명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근래에는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일반적으로 물을 삼킬 수 없는데도 생명물이 어머니 입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신기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천부교추모공원에 대해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정갈하게 조성된 조경과 잔디를 보며 유족으로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전했다. 박 씨의 여동생 역시 “어머니께서 생전에 생명물이 들어가면 돌아가신 분도 예쁘게 핀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생명물이 어머니 입안으로 계속 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신기함과 놀라움이 컸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추모공원의 규모와 정돈된 환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하관하는 동안 울려 퍼진 찬송 소리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소리는 무척 은혜롭고 경건하게 다가왔습니다. 장례의 모든 과정을 정성껏 준비해 주신 덕분에 그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합창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합창

전국 중등부 회장 인천교회 김예빈 처음 합창곡을 듣게 되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합창 무대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빠르게 지나간 시간이 아쉽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음악을 좋아했던 저는 합창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렇게 합창 연습이 시작되었지만 학교 공부와 동아리 등 여러 활동과 일정이 겹치게 되자, 조금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일정이 매번 겹치게 되니 어떤 날은 합창 연습에 가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참석해서 합창 연습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음을 정확히 내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걱정과 잡생각들이 사라졌고, 연습이 끝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았습니다.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니 합창곡의 음이나 가사를 헷갈리지 않게 되었고 무사히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합창을 하던 중 합창곡 ‘목마른 자들아’ 마지막 소절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화음이 고조될 때는 그 화음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고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번에 합창을 하게 된 경험은 앞으로의 저의 신앙생활과 삶 속에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귀한 자리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하나님 은혜 안에 신앙을 키워나가는 제가 되겠습니다.

이슬성신절 무대 빛낸 여학생들 “찬송의 기쁨 느꼈어요”

이슬성신절 무대 빛낸 여학생들 “찬송의 기쁨 느꼈어요”

이번 이슬성신절 음악 순서에는 맑고 순수한 음색으로 감동을 준 여학생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공연을 마친 부산지역 학생들과 가족의 소감을 들어봤다. 광안교회 이윤아 양(고1)은 이번 합창을 계기로 교회 친구들과 친해진 것은 물론 발성 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무대 올라가기 전 오케스트라 선생님들의 연주로 준비 찬송이 시작되었을 때 저희끼리 찬송을 불렀어요. 그때 ‘이 시간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시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예배 때보다 더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합창 무대 나가기 몇 분 전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하율 양(초6)도 “함께 한마음으로 찬송을 드리다 보니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이번 합창을 통해 찬송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라고 했다. 서면교회 진예림 양(중1)의 초대로 이슬성신절 예배에 참석한 어머니 박선영 씨는 “학교에서 하는 작은 합창쯤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큰 규모와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림이가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해 보내고 있었는데, 오늘 직접 와서 보니 분위기가 좋아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다”라고 흐뭇해했다. 서면교회 지희영 양(중3)은 늘 동경하던 합창단 무대에 직접 서게 되어 꿈만 같다고 했다. “처음엔 긴장됐지만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니 마음이 진정되었고, 한마음으로 화음을 맞추니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관객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더 열정적으로 불렀습니다. 늘 화면으로만 보던 멋진 합창단에 제가 소속이 됐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합창을 통해 여느 축복일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고 싶습니다.”

주니어

SANC식품여자고등학교 입학설명회 개최

SANC식품여자고등학교 입학설명회 개최

다양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미리 경험해 보는 알찬 학교생활 5월 25일 2027학년도 SANC식품여자고등학교 입학설명회가 신앙촌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설명회는 중학교 2,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학교의 교육목표인 ‘바른 품성과 창의적 유연성을 지닌 식품과학 인재 양성’을 중심으로 학교와 학과, 산학 협력 기업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참가 학생들은 식품산업 분야의 진로와 교육과정, 실습 중심 수업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학교생활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이어진 스페셜 클래스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다. 프로그램은 영어 회화를 배우는 ‘스피킹 클래스’와 자신만의 캐릭터를 제작해 보는 ‘캐릭터AI메이커’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학생들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스피킹 클래스에 참가한 서면교회 지희영 양(중2)은 “영어 수업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 발음이 원어민처럼 너무 좋으셨어요. 대화 내용에 알맞은 답을 고르고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는데, 평소에도 영어를 좋아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캐릭터AI메이커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캐릭터를 직접 구상하고 제작하며 창의력을 발휘했다. 설명회 마지막 순서로는 참가 학생들이 함께하는 ‘K푸드 파스타&리조또 페스타’ 요리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팀별로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며 다양한 파스타와 리조또 요리를 완성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메뉴를 완성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완성된 요리는 맛과 창의성, 플레이팅 등을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됐으며, 우수 참가자들에게는 시상과 함께 상금이 전달됐다. 요리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광안교회 석상아 양(중2)은 “요리대회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상을 받을 줄 몰랐는데 받게 돼서 정말 놀랐고, 평소에도 요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진로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기회가 된다면 꼭 SANC식품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움과 즐거움이 함께한 학생 축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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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기쁨, 친구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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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반쪽 ‘대칭그림 완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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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화 권사님 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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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200만 년 전 인류의 불 사용 시기, 더 앞당겨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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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서 발견된 오래된 불, 자연의 불을 생활로 가져오다 불에 탄 뼈로 밝힌 불 사용 시기의 새로운 증거 초기 인류는 약 20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약 107만~179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원더워크 동굴에 살았던 올빼미들이 남긴 수백 개의 작은 화석 뼈를 조사했다. 이 뼈들은 한때 동굴에 살았던 올빼미가 먹이를 먹은 뒤 배설물과 함께 남긴 것으로, 오랜 세월 동굴 바닥에 자연스럽게 쌓여 형성됐다. 연구진이 이 뼈에 주목한 이유는 인류 조상이 먹고 버린 음식물 찌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뼈에 남은 흔적은 인간 활동에 의해 뒤섞이지 않은, 당시 동굴 환경을 보여주는 ‘시간의 기록’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뼈에 특정한 빛을 비춰 불에 탄 흔적을 찾아내는 발광 분석법과 열에 의해 변한 뼈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는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법(FTIR)을 함께 사용했다. 그 결과, 약 107만~179만 년 전 동굴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불이 사용됐다는 증거를 확인했다. 특히 불에 탄 뼈는 동굴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연구진은 자연 산불이 우연히 동굴 안까지 번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초기 인류가 자연에서 얻은 불을 동굴 안으로 가져와 꺼지지 않도록 유지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초기 인류가 직접 불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초기 인류가 번개나 산불 등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는 인류가 언제부터 불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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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움직일수록 질병 멀어져 운동, 양과 강도의 균형이 중요 그동안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덜 앉고 더 움직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두 개의 연구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 얼마나 많이 움직이느냐 뿐 아니라, 얼마나 강하게 움직이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는 약 10만 명 규모의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데이터를 활용했다. 참가자들은 웨어러블 기기로 활동량을 7~8년간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총 운동량이 비슷하더라도 ‘숨이 찰 정도’의 고강도 운동 비율이 높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8가지 주요 만성질환 위험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치매 약 63%, 제2형 당뇨병 60%, 주요 간질환 위험 48%, 전체 사망 46%, 만성 신장 질환 41%, 면역 매개 염증성 질환(IMIDs) 39%, 주요 심혈관 사건(MACE) 31%, 심방세동 29% 등의 위험 감소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연구에서 의미 있는 효과가 확인된 고강도 운동량은 주당 약 15~20분, 하루로 환산하면 2~3분 수준에 불과했다. 4월 1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메디슨(Communications Medicine)’에 게재된 다른 연구는 더욱 넓은 개념인 ‘중등도~고강도 신체활동(MVPA)’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신체 활동량이 가장 적은 그룹(주 65분 이하의 하위 10%)과 비교해 주 150분의 MVPA를 수행한 그룹은 총사망 위험이 48% 낮았고, 300분까지 늘린 그룹은 5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계단 오르기, 빠르게 걷기 같은 짧은 중등도~고강도 신체활동을 하루 중 여러 번 나눠서 누적해도 사망 위험이 의미 있게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발견했다. 단순히 2~3분의 짧은 MVPA를 여러 번 하는 것보다, 20~30분 이상 이어서 하는 운동(연속 활동)을 병행할 경우 건강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두 연구를 종합하면 운동은 ‘양’과 ‘강도’를 조합하는 게 수명 연장과 질병 예방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고강도 운동이라고 해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점심 식사 후 산책할 때 1분간 가볍게 뛰기, 계단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오르기, 집 근처 슈퍼마켓 갈 때 걷지 말고 뛰기 등이다. 핵심은 짧게라도 ‘숨이 차는 움직임’을 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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