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부교 경주교회 개축 예배 드려

한국천부교 경주교회 개축 예배 드려

교인들 한마음으로 개축에 힘써 풍성한 결실 맺는 교회 되길 평소보다 포근한 날씨 속에서 2월 11일 한국천부교 경주교회 개축 예배가 있었다. 예배에서는 남부지역 학생관장, 경주 여성회 교인들의 특순이 있었다. 장서영 남부총무(기장교회)는 “아름답게 개축된 경주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어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한없는 축복이 함께하시는 경주교회가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백성현 관장(경주교회)은 경과보고에서 “공사 기간은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개축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기를 기도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완공 후 기뻐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니 늘 주관해주시는 하나님께 더욱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교인들과 마음을 모아 전도와 사업에 더욱 노력하여 발전하는 경주교회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경주교회 여성회장 이순용 권사는 “미적으로도 훌륭하고 공간 활용도 실용적인 교회로 완성된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척 애쓰고 수고해주신 관장님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경주 천부교회는 1993년 개축에 이어 올해 또 한 번 새롭게 개축공사를 완료하며 사업과 전도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우리 함께” 신앙촌 캠페인 UCC 공모전 시상식 열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우리 함께” 신앙촌 캠페인 UCC 공모전 시상식 열려

우리가 바라는 신앙촌 주제로 신선한 시각의 영상물 출품돼 1월 23일, 신앙촌에서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 함께, 신앙촌 캠페인 UCC 공모전” 시상식이 있었다. 이번 공모전은 우리가 바라는 신앙촌의 모습을 5분가량의 짧은 동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모전은 1월 3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됐다. 시상식은 각 조별로 제작한 동영상을 선보인 후 영상의 콘셉트와 준비과정, 소감을 발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심사가 진행되었다. 작품성, 활용성, 창의성, 완성도를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신앙촌의 환경 캠페인과 OX 퀴즈’를 주제로 한 2조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2조의 전현진 양은 “UCC를 만들면서 신앙촌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을 돌아보게 되어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라고 했고, 같은 팀 안성은 양도 “친구와 함께 영상을 촬영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관계자는 “콘텐츠 제작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9 연간 전도 시상식과 여성회 임원 임명식

2019 연간 전도 시상식과 여성회 임원 임명식

각 중앙, 도관 임원 발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할 것 1월 7일, 신앙촌에서 2019년 여성회 연간 전도 시상식이 열렸다. 홍윤옥 중부 총무는 격려사에서 “전도의 해를 맞아 더욱더 힘차게 전도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시상식은 개인전도 시상과 우수중앙시상 순으로 진행되었다. 개인전도 1, 2, 3등은 송성복 권사(광안교회), 지성숙 권사(기장교회), 송은아 권사(기장교회) 순으로 수여 되었다. 전도 우수 중앙 대상은 기장교회, 최우수상은 광안교회, 우수상은 안양교회와 구로교회가 받았다. 예배 후 임원임명식에 앞서 전국에 있는 각 교회 사진과 새롭게 임명된 임원들의 모습이 화면으로 소개되었다. 이어서 2020년 전국 여성회 임원임명식이 진행되었다. 임명은 중, 서, 남부 연합회, 전도추진 위원회, 기장신앙촌 연합회, 도관 임원, 각 중앙 여성회장 순으로 호명되었다. 최성례 총무는 “올 한해 전국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하며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임원들이 임명받는 시간입니다. 경자년 올해는 이전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중부지역 연합회장 김순덕 권사(덕소교회)는 “어딘들 못 가며 무엇 못하리까 이 생명을 다하여 힘을 써야 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합니다. 감람나무 가지 여러분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힘을 모아 정진합시다”라고 했다. 서부지역 연합회장 송정선 권사(수원교회)는“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직분에 맞게 전도와 사업에 힘쓰겠습니다”라고 했다. 남부지역 연합회장 주미자 권사(서동교회)는 “올해는 진실한 기도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감과 책임을 다해 구원을 향해 힘껏 뛰겠습니다”라고 했다.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하는 신나는 겨울방학!”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하는 신나는 겨울방학!”

어린이, 여학생들의 유익한 방학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준비해 신앙강좌, 말씀 퀴즈대회, 분반공부 등으로 체계 말씀 배우고 레크리에이션, 음악 레슨,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체험할 수 있어 방학을 맞은 천부교 어린이·여학생을 위한 “Music&Dessert 겨울 캠프”가 1월 11일부터 1박 2일간 열렸다. 어린이와 여학생들은 각각 ‘하나님 성신 받아 말씀으로 자라는 천부 어린이’, ‘하나님 말씀 깨달아 전하는 여학생’이라는 주제 아래 캠프에 참가하여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여학생들은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를 주제로 한 신앙강좌와 분반공부를 통해 가톨릭이 저지른 역사적 악행에 대해 배웠다. 또 팔씨름, 피구, 풍선을 지켜라 등 흥미진진한 대항전을 펼친 ‘레트로 게임’, 합창단 여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열린 ‘마카롱&디저트 샵’, 나만의 레시피로 즉석 떡볶이를 만들어 보는 ‘신상 출시 앙~스토랑’,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하는 ‘히든 보이스 시즌2’ 등 다양하고 참신한 프로그램이 여학생들의 오감을 만족시켰다.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는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의 엘사와 안나 공주가 되어볼 수 있는 체험도 있었다. 엘사와 안나 코스프레 샵에는 다양한 의상이 준비되어 어린이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공주 의상을 골라 입어볼 수 있었다. 올라프가 숨어있는 이글루 에어바운스에서는 관장님과 함께하는 술래잡기 게임도 있었다. 겨울왕국 2의 OST를 부를 수 있는 어린이 노래방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캠프 일정을 마치고 진행된 앙케이트 조사 결과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은 ‘펭하~ 퀴즈야 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야외게임, 겨울왕국 어드벤처, 신앙강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신앙강좌를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악행을 저지른 가톨릭의 실체’를 가장 많은 학생이 꼽았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원주민 학살’, 하나님은 기쁨의 신’ 등의 응답도 있었다. 캠프에 참가한 노은빈 양(구로교회, 초5)은 “캠프를 마치고 나니 2020년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더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신앙촌의 청결한 생산 공정에 놀라”

“신앙촌의 청결한 생산 공정에 놀라”

(주)크로바 임직원 신앙촌 방문 12월 20일, 급식 식자재 전문 유통업체 (주)크로바 임직원들이 신앙촌을 방문했다. 크로바는 현재 서울, 수도권의 200여 학교급식 입찰 참여 업체와 지방 34개 대리점을 통해 전국 5,000여 학교에 직간접적으로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직원들은 신앙촌 식품단지 내 요구르트 런과 생명물 두부, 간장 등 생산 현장을 견학하며 신앙촌 식품의 청결한 위생관리 시스템과 정성스러운 제조 과정을 직접 확인했다. 크로바 홍보마케팅이사 홍승희 씨는 “자연 친화적인 넓은 부지와 무인 무균화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을 보며건강한 먹거리뿐 아니라 친환경까지 지향하는 신앙촌의 생산 공정에 무척 놀랐습니다. 특히 요구르트 런은 맛과 영양 면에서도 훌륭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으로 전국에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식품단지를 둘러본 소감을 밝혔다.

요구르트 런, 부산베이비페어 성료

요구르트 런, 부산베이비페어 성료

면역력 증진 요구르트 런 육아 맘들에게 큰 인기 신앙촌식품(주)이 ‘2019 부산 드림 베이비 페어’에 고급 농후발효유 ‘요구르트 런’을 선보였다. 드림 베이비페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유아 박람회로 매년 규모를 키우고 있다.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행사 기간 동안 23,000명이 요구르트 런 부스를 방문해 시음 행사와 다양한 사은품 증정이 있었다. 특히 현장 계약 고객들에게는 사은품으로 ‘자연발효숙성 생명물 캠핑간장’, 100% 국내산 콩으로 만든 웰빙 ‘생명물 미니두부’와 ‘무독성 빨대캡’ 등이 증정되어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요구르트 런은 장 건강 및 면역력 증진뿐 아니라 무지방에 깔끔한 맛으로 전 연령층에 사랑을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런은 안전하고 영양을 고루 갖춘 식품이다. 더불어 환경호르몬을 유발하는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하고 친환경 재질의 페트병 용기를 사용해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앙촌식품 관계자는 “앞으로 요구르트 런 고객들을 더 가까이서 만나볼 기회를 자주 마련하겠다”고 했다.

코로나 맞서는 ‘시민들의 힘’

소비조합에 격려의 메세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되자”

신앙의 목표 세우고 결실 맺는 한해 되자

실천하고 노력하고 인내함으로써 알찬 열매 맺을 수 있음을 깊이 새겨야

교역자 인사

신앙촌식품(주), 런 공식 카페 개설

신앙체험기

“이것이 바로 감람나무가 주시는 은혜로구나!”

“이것이 바로 감람나무가 주시는 은혜로구나!”

지난 3월 학생축복일에 신앙촌에서 아이들이 참새떼처럼 종알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예배 마치고 2부 행사로 딸기 축제를 열었는데, 제법 야무지게 딸기 자르고 생크림을 올려 조물조물 간식 만들고 열중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통방통했습니다. 저는 권사님들과 같이 주변을 치워 주고 의자 정리해 주면서 자꾸만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리 예쁜데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나 예쁠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이들처럼 열 살 안팎일 때 “꼬불꼬불 산길 나 혼자 걸어도 하나님과 같이 가면 무섭지 않네~” 찬송을 부르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6·25 전정 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얼마 안 가 젖먹이 동생도 죽었을 때 어린 마음에도 너무 슬프고 아파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싶은 마음 생겨 엄한 아버지 심부름으로 혼자서 산을 넘어 다니다 무섬증이 들면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를 산골이 떠나가라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학교에 저를 업어다 주고 데려오실 만큼 아끼고 사랑해 주셨지만 6 · 25 전쟁 때 공산당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그때 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젖먹이 동생은 살아남아 애처롭게 울어댔는데 얼마 안 가 그 동생마저 죽었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슬프고 아팠습니다. 그 후 집에 들어온 새엄마를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됐습니다. 찬송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께서 같이 계신다고 생각하면 혼자 가는 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을 뵙고 처음으로 은혜를 알게 된 것은 소사신앙촌에서 예배드렸던 때였습니다. 그때가 1960년, 제 나이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박태선 장로님에 대해 이야기만 많이 들었지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전도관이라는 교회를 전국에 세우시고 신앙촌을 건설하셨다는 것을 집안 중에 제일 먼저 전도관 교인이 된 큰집 식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신태인에 살던 큰집 식구들은 원래 열성 장로교인이었지만 큰아버지가 전도관에 나가시게 되면서 증조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온 식구가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서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은 자꾸 들어도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전도관 식으로 장례를 치른 후 아기 살결처럼 뽀얗게 피어나 장로교인들이 조문하고 돌아가자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고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 다시 전도관 교인들이 예배드리자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다시 환하게 피어 증조할머니는 생전에 오랫동안 장로교회 다니셨지만 전도관 교인이 되셨으니 전도관 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하셨답니다. 입관식 때 신태인전도관 교인들이 집에 와 예배드리면서 할머니를 깨끗이 씻겨 드렸다고 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무릎이 많이 구부러지셔서 반듯하게 눕지 못하고 무릎을 세우고 계시는 할머니를 어떻게 관에 넣고 뚜껑을 덮을지 걱정이었는데, 다 씻기고 나니 다리가 반듯하게 펴져서 식구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했습니다. 전도관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돌아가신 분이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노긋노긋 부드러워진다면서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랄 일은 다음이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마친 후 신태인 장로교회 교인 몇 사람이 조문을 왔답니다. 큰집은 농사를 크게 짓고 여유가 있어 장로교회 기둥 역할을 도맡아 했는데 온 식구가 전도관으로 돌아서니 장로교회에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증조할머니가 워낙 오랫동안 장로교회에 다녀서 인사차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로교인들이 할머니를 모신 방에서 잠깐 조문하고 돌아가자 시신이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고 아기 살결처럼 뽀얗던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식구들이 놀라고 당황해서 다시 전도관 교인들을 붙들고 예배를 드려 달라고 했는데, 한참 동안 예배드리고 나니 굳었던 몸도 다시 노긋노긋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환하게 피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셨던 작은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온 가족을 이끌고 전도관으로 나가시게 됐다 했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젖먹이 동생이 죽는 것을 봤던 저는 죽음이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은 무엇이 있기에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아기처럼 뽀얗고 예뻐지는지, 살아 계실 때도 뻣뻣하던 무릎이 어떻게 돌아가신 후에 부드러워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기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박태선 장로님은 참 신기한 능력을 갖고 계신가 보다고 여겼는데 그보다 제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 집에서 가까운 전도관에 나가게 돼 마흔 명 넘는 식구와 함께 전도관 다녀 큰아버지 말씀이, 박태선 장로님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이시고 우리 마음을 모두 알고 계시는 영모님이라 하셨습니다. 영모님은 영적인 어머니라는 뜻인데 그 말이 왜 그리마음에 남는지 하루종일 ‘영모님, 내 마음을 다 아시는 분’ 하고 되뇌었습니다. 장로교회 친구들한테 “얘들아, 세상에 영모님이 계신대. 우리 마음을 다 알고 계신대. 나는 그분을 따르고 싶어.” 하고 얘기했더니 친구들은 다니는 교회나 잘 나오지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고 핀잔만 주었습니다. 그러든 말든 저는 은혜를 주시고 마음을 살피시는 존재가 바로 옆에 계시는 듯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집과 가까운 함평전도관에 나가게 됐습니다. 큰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네까지 마흔 명 넘는 집안 식구가 전도관에 다니니 어머니도 자연히 따라 나오셨고 농사일에 바쁜 아버지는 예배에 오지 못하셔도 전도사님과 교인들 드리라고 밤이며 과일을 넉넉히 싸 주셨습니다. 그 후 큰집 식구들이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면서 저도 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말로만 들었던 박태선 장로님을 직접 뵙는 날을 고대하고 고대했습니다. 드디어 1960년 3월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하나님을 처음 뵈었던 날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머리를 짚어주시자 말로 다 못할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해 상쾌하고 좋은 향기가 계속 불어와 이게 바로 은혜인가보다 감격스러워 오만제단은 신발 벗는 입구에서 보면 앞쪽의 단상이 아주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넓었는데, 거기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붙어 앉다 못해 다른 사람 무릎 위에 올라앉는 모양이었습니다. 힘차게 찬송하시는 하나님 음성은 오만제단을 울리고 소사신앙촌 전체를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그 많은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해 주셨습니다. 와이셔츠가 흠뻑 젖을 정도로 구슬 같은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뵙기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두 손으로 제 머리를 짚어 주시고 지나가시자 그때부터 말로 다 못할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꽃향기라고 해야 할지 과일 향기라고 해야 할지, 상쾌하고 좋은 향기가 바람처럼 불어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다시 또 불어와 맡아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은혜 주시는 감람나무라 하시더니 이게 바로 은혜인가 보다!’ 하며 저도 모르게 감격해 울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저는 1935년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만주로 건너가 살았습니다. 독실한 감리교인이신 큰아버지가 집 마당에 교회를 세우셔서 어려서부터 거기 다녔습니다. 큰아버지는 만주에 사는 동안 교회를 여러 개 세우셨고 해방 후 서울 용산에 와서도 한성 감리교회를 세워 주동 장로로 일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큰아버지 식구와 같이 살면서 그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수도여고 3학년일 때였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도원동 장로교회 집회에 간다 하셔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도원동교회는 예배당을 새로 짓는 중에 건축 자금을 모으려고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을 모셔와 집회를 연다 했습니다. 저희 식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예배실 맨 뒤에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언니는 돌 지난 조카딸을 데려갔는데 어린애가 어른들처럼 손뼉 치며 찬송하는 것을 따라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쉬지 않고 힘차게 찬송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예배에 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따라서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남산 공원 집회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아 찬송을 부르면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도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롭고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마음 속에 새겨지며 가슴에는 기쁨이 차고 넘쳐 도원동교회 집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남산 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가 열렸습니다. 공원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았는데 얼마나 넓은지 집회장 끝이 보이지 않았고 모여드는 인파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집에서 밥을 날라다 먹으며 밤을 새울 정도로 집회 열기가 굉장했습니다. 저도 언니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집회장에 있다가 책가방을 베개 삼아 눈을 붙인 후 학교에 갔습니다. 누가 집회장에 있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 장로님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을 부르면 같은 찬송을 수십 번 연거푸 불러도 지겹지 않았고 오히려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새겨졌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은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정말 기쁨이 가슴에 차고 넘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안수해 주실 때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안수하셨는데, 저는 안수 받는 순간 불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온 것처럼 후끈후끈하며 몹시 뜨거웠습니다.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부채질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도 부채질을 계속했더니 친구들이 아직 쌀쌀한 3월인데 왜 그러냐고 했습니다. 저는 온몸이 후끈후끈해서 밤중에 집회장에서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왜 이렇게 뜨거운지 영문을 몰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박 장로님 말씀을 들으며 그 뜨거운 불이 불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이 집회에서 하나님의 성신이 불과 같이 내리는 것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체험한다 하셨습니다. 집회장에는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벙어리가 말문이 트였다며 감격해 눈물을 흘렸고 들것에 실려 온 중환자가 일어나 뛰면서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생기니 날이 갈수록 집회장에 오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우리 동네 어른들도 남산 집회에 많이 참석하시더니 그 후로 박 장로님의 영등포 집회와 한강 집회에 따라다니셨습니다. 저도 박 장로님 집회가 있다 하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갔습니다. 그해 가을 무렵 원효로 박 장로님 댁 뒷마당에 예배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렸는데 그곳을 원효로 전도관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와 저, 언니는 원래 나가던 감리교회와 전도관을 같이 다니다가 나중에 온전히 전도관 교인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감리교 집안에서 전도관으로 가게 된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박 장로님께서 서울 시내 목사와 장로들에게 안찰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성교회 장로인 큰아버지도 안찰을 받으셨는데, 그날 박 장로님을 처음 뵈었고 누가 말씀드린 사람도 없는데 박 장로님께서 “고집이 센 분이지요. 그래서 교회를 여러 개 세웠지요.” 하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하셨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장로님들도 저 양반 고집 센 것을 어떻게 아시냐며 놀랐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안찰 받을 때 박 장로님의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몹시 아팠는데, 성신으로 죄를 사해 주실 때 그런 통증을 느낀다 하시더라며 신기해하셨습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으셨는지 큰아버지는 박 장로님께서 성신을 주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축복솜으로 닦자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이고 얼굴도 곱고 환하게 핀 것 분명히 보고 온가족이 함께 전도관을 다니게 돼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웃에 사는 전도관 교인들이 한 식구처럼 장례를 도와주며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다녔던 교회의 전도부인은 조문하러 와서는 전도관 교인을 보고 이단이라며 몹시 못마땅해했고, 큰아버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수의를 입히려면 옷을 잘라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도부인이 돌아간 후 저희 식구는 전도관 교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 몇 분이 솜에 물을 적셔서 큰아버지를 깨끗이 닦아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닦은 후 수의를 입힐 때 보니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여서 살아 계신 분한테 옷을 입히는 것 같았습니다. 입관하려고 큰아버지를 들었을 때도 온몸이 부드러워 허리가 축 처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분이 얼른 받혀 드렸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얼굴도 곱고 환하게 피어서 생전보다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그 주 일요일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 박 장로님께서 “며칠 전 장로님 한 분이 피어서 갔습니다. 성신이 임하면 돌아가신 분도 생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성신을 주셔서 큰아버지가 환하게 피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고 저희 가족은 전도관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저는 원효로전도관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사들이 은혜를 받아야 주일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 하시며 안수와 안찰을 자주 해 주셨고, 소풍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는 반사들끼리 모여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안수를 받는 순간 배 속까지 시원한 물줄기가 쏵 내려오는 것처럼 시원해지더니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달콤한 물이 목으로 넘어와 꿀꺽꿀꺽 삼킬 정도였는데 예배 마친 후에도 단물이 계속 마셔졌습니다. 반사들 모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저처럼 시원한 물이 흐르고 달콤한 물이 마셔진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그것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안수를 받고 나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1957년 이만제단이 지어진 후라고 기억되는데, 원효로전도관이 있던 곳에 양말 기계를 들여와 반사들이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기술을 배워 다른 반사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작업을 둘러보시고 안수해 주실 때면 좋은 향취가 건물에 가득 찬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장은 소사신앙촌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범적으로 운영한 곳이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양말공장이 옮겨 가게 되었고 다른 공장들도 세워졌습니다. 질 좋은 제품이 없던 시절에 신앙촌에서 좋은 원사로 만든 양말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무렵 동두천에서 신앙촌 간장을 판매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빈 병에 간장을 따라주며 판매했는데 한번 신앙촌 간장 맛을 본 사람들은 다른 간장을 못 먹겠다며 제가 갈 때까지 병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장사를 해 보지 않았고 큰 밑천도 없었지만 신앙촌 간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 장사 규모가 커지게 됐습니다. 당시 어려웠던 생계를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며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조합을 시작할 때부터 만난 단골들은 제가 신앙촌 간장 덕분에 부자 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소비조합을 하는 동안 영과 육이 아울러 복을 받는 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지런히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쁘고 보람될 수가 없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될 때 입주했던 어머니는 2008년경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렸는데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 보니 어머니 모습이 참 곱고 예뻤습니다. 원래 검은 편인 피부가 뽀얗게 피어 분을 발라 놓은 것 같았고 입술에는 어린아이 같은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얼굴 주름도 언제 펴졌는지 100세 가까운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일편단심 한길을 따라오신 어머니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요즘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하나님의 은혜일세” 하는 찬송과 같이 이 길을 따라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셨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돌아보면 하나님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받으며 열심히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해 주시는 귀한 시간 동안 은혜를 간구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루하루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수은 중독과 매독, 탐욕이 부른 질병에 대하여

가톨릭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빈자의 날”을 제정해 해마다 빈곤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때마다 노숙자와 실업자를 베드로 성당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교황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작년 11월 빈자의 날에 교황은 베드로 성당 미사에서 “소수의 탐욕으로 다수가 빈곤해진다.”며 탐욕의 세력 때문에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강조했다.<자료1> 탐욕이 수많은 사람을 빈곤에 빠뜨리는 일은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다. 스페인에게 300년간 착취당한 잉카 사람들이 대표적인데, 스페인이 마치 흡혈귀처럼 잉카의 자원을 빨아들여 잉카는 돌이킬 수 없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스페인이 잉카를 지배하도록 허가해 준 사람이 교황 알렉산드르 6세였다. 스페인이 잉카에서 마음껏 탐욕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교황의 허가 덕분이었다. 스페인의 탐욕은 잉카를 빈곤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수은 중독이라는 불치병까지 안겨 주었다. 수많은 잉카 사람들이 광산에 끌려가 착취를 당하다 수은 중독으로 죽어 갔지만 탐욕에 눈이 먼 스페인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같은 시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유럽 사람들은 매독을 퍼뜨리는 슈퍼 전파자가 되었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는 끝없는 탐욕이 어떻게 질병을 불러왔는지, 그 질병의 전파 경로를 따라가 본다. 15세기 당시 잉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493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스페인에게 아메리카를 지배하라고 허가해 줄 때(토르데시야스 조약) 교황도 스페인도 잉카라는 나라를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슨 땅이든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의 대리자인 교황은 온 세상을 마음대로 나눠 줄 수 있고, 교황에 복종하지 않으면 누구든 노예로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통고문 “레케리미엔토”) 잉카 사람들은 다 함께 농사 지으며 식량을 배분했기 때문에 강제 노동을 알지 못했고, 잉여 농산물을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주었기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점령한 뒤부터 잉카는 노동 착취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 원주민을 노예이자 동물로 취급했다. 잉카 원주민이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 없는 하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잉카 사람들은 라마(낙타과에 속하는 포유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기 때문에 하역용 가축으로 이용당했고, 노새보다 더 오랫동안 광산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광산에서 착취당했다. 아메리카 포토시(Potosi, 현재의 볼리비아)에는 순도 높은 은이 풍부하게 매장된 은광이 있었다. 스페인 지배자들은 은광에 세로 리코(Cerro Rico, 부유한 산)라는 이름을 붙이고 원주민 노예를 끌고 와서 은을 캐내기 시작했는데, 손으로 광물을 캐낸 후 그것을 등에 지고 희미한 촛불에 의지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자료2> 노예들은 광산으로 기어 들어갔다가 일주일도 못 되어 머리나 다리가 부서져서 밖으로 끌려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E.갈레아노, 『수탈된 대지』, 범우사, 2016, 104p.) 4만 톤이 넘는 은을 캐내는 동안 800만 명의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장 지글러, 『빼앗긴 대지의 꿈』, 갈라파고스, 2018, 202p) 설상가상으로 은을 분리하는 데 수은을 사용하면서 이 죽음의 행렬은 수은 광산에까지 번지게 되었다. 광산에서 캐낸 은은 다른 광물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은과 잘 뭉치는 수은을 이용해 분리하면서 수은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수은을 생산했던 우앙카벨리카(현재의 페루)에도 원주민 노예들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수은 광산에 가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그곳을 ‘공립 도살장’이라 불렀고, 어머니들은 자식이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불구로 만드는 일까지 있었다. 그토록 극단적인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수은 중독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있었다. 수은 중독에 걸린 사람은 정신이 혼란해지고 몸이 점점 쇠약해지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 노예들은 수은이 섞인 독한 공기를 마셨는데, 수은은 쉽게 기화하기 때문에 공기에 섞여 폐에 들어가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수은 중독에 걸리면 우울증과 기억 상실이 찾아왔고 치아가 빠지며 말의 높낮이를 바꿀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흔한 증상은 근육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노예들은 떨리는 몸을 질질 끌면서 죽을 때까지 일하다가 동료들의 무덤 옆에 영원히 잠들었다. 얼마나 많은 원주민이 수은 중독으로 고통 받고 죽어 갔는지는 기록은 소실되어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캐낸 은의 양이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85%를 차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숀 윌리엄 밀러, 『오래된 신세계』, 너머북스, 2013, 167p) 볼리비아의 한 작가가 “스페인이 가져간 은을 합치면 대서양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할 만큼 스페인이 유출해 간 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만큼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은 원주민의 숫자도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아메리카에서 강탈해 간 은은 자금난에 시달리던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으로도 흘러 들어갔다.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화려하게 재건축하기 위해 독일의 전설적인 고리대금업자 야코프 푸거에게 자금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 푸거의 손에 아메리카 은이 들어갔다. 스페인은 교황이 허가해 준 덕분에 아메리카에서 부를 거머쥘 수 있었고 교황은 스페인 덕분에 빚을 갚게 되었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에 대해 가톨릭의 하느님과 예수에게 감사하는 표시로 수많은 성당을 지었다. 은광이 위치했던 포토시에만 86개의 성당이 세워져 십자가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은을 캐내다 스러져간 수많은 노예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원주민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교(異敎)를 숭배한 그들의 죄가 예수를 진노하게 했기 때문이다.”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 스페인의 가톨릭 신학자 / 출처: 장 클로드 카리에르, 『바야돌리드의 논쟁』) “상당히 많은 원주민의 생명을 광산이 빼앗아 간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광산에서 했던 강제 노동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방종한 생활 때문에 죽은 것이다.”(알론소 카리오 데 라 판데라, 스페인의 관리) 광산에서 일하다 죽어 간 원주민 노예들은 예수를 진노하게 만든 죄 때문에 죽었을까. 아니면 방종한 생활 때문에 죽었을까. 그들의 시신은 수은 중독으로 하얗게 변한 뼈가 썩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서 착취한 자들을 고발하는 법의학적 증거가 되고 있다. 끝없는 물질적 탐욕이 수은 중독을 불러 왔다면 매독은 방탕한 육체적 탐욕이 불러온 질병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에서 수은 중독을 전파시키며 원주민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고 있을 때, 비슷한 시기 유럽 사람들은 끔찍한 매독의 슈퍼 전파자가 되었다. 매독의 전파로 유명한 사건은 1495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있었다.<자료3> 당시 프랑스 황제 샤를 8세는 5만 명의 용병으로 나폴리를 포위했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에서 모여든 대군에는 800명의 매춘부가 딸려 있었다. 나폴리가 함락되고 나자 이들은 방탕한 생활에 몰두했고 전투가 끝난 후 용병과 매춘부는 온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불과 몇 개월 후 매독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에서 급속히 번져 나갔고 5년 후에는 덴마크, 스웨덴, 영국, 그리스, 폴란드, 러시아까지 전파되었다. 성 매개 질병이라 불리는 매독은 전신에 고름 덩어리를 만들었으며 심한 경우 궤양이 뼈를 파고 들어가 코와 입술 등이 녹아 내렸다. 성행위를 매개로 전염된다는 사실과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증상 때문에 사람들은 매독을 죄악의 징표라 생각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병” 이탈리아에서는 “프랑스병”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터키에서는 “가톨릭병”이라 부르며 서로 상대방에게서 옮았다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아노 카렌, 『전염병의 문화사』,사 이언스북스, 2001,190p) 그렇다면 매독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매독의 기원을 둘러싸고 유럽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옮아 왔다고 생각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부터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을 성 노예로 삼았고 이후에도 탐험가들이 원주민 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492년 이전에 매독에 감염된 유골이 영국에서 발견되면서 매독이 유럽에도 존재했으며 다른 감염병과 혼돈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자료4> 여러 주장에서 공통적인 것은 15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매독이 ‘악성 매독’이라 불릴 만큼 독성이 강했으며 빠른 시간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와 아프리카에도 매독과 비슷한 전염병이 존재했지만 유럽만큼 강력하지 않았고 급속도로 전파되지도 않았다. 유럽이 매독의 1번 확진자는 아니라도 슈퍼 전파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매독으로 코가 녹아내린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매독 환자들은 코의 피부가 점점 괴사하면서 코 밑의 연골이나 뼈 조직까지 약해져 코가 내려앉게 되었고 심하면 코뼈가 얼굴에 파고들어 살이 썩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외과 교수였던 가스파레 탈리아코치는 코 재건술을 시도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은 그의 재건술을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인간의 외모를 고치는 것은 창조자 즉 가톨릭의 하느님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가톨릭 성직자들은 매독에 걸려도 코 재건 수술을 받지 않았다. 당시 성직자들은 첩을 거느리고 살았기 때문에 매독이 창궐하는 환경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성직자들은 교황에게 축첩세만 내면 아무 불편 없이 첩을 데리고 살 수 있었고, 신도들 앞에서는 독신 생활을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할 수 있었지만 매독에 걸려 코가 녹아 버리자 더 이상 거룩한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매독으로 코가 찌그러진 추기경을 조롱하는 풍자시가 유행해서 민중들은 “그 코는 현자(賢者)의 코. 다음에는 그 코가 교황에게 내려지겠지.”(Eduard Fuchs, 「Illustrierte Sittengeschichte vom Mittelalter bis zur Gegenwart」)하고 노래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교황 율리우스 2세와 알렉산드르 6세도 모두 매독에 걸린 것으로 유명했다. 율리우스 2세를 보좌했던 의전관 그라시스의 보고에 따르면, 예수의 수난일이 되었을 때 교황은 매독에 걸려 발이 엉망인 상태였다. 예수의 수난일에는 관례로 신도들이 교황의 발에 입을 맞췄는데 그때 교황은 누구에게도 발 키스를 허락하지 않았다.<자료5> 교황 알렉산드르 6세는 자신의 친딸인 루크레치아를 첩으로 삼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알렉산드르 6세가 매독에 걸리자 불과 2개월 만에 가족과 첩들까지 17명에게 매독이 전염되었다. 16세기 매독이 퍼지던 무렵 독일의 민중들은 “교황 성하”를 “음란 성하”라 부르고, “추기경”을 “수캐”라 불렀는데 이 비유는 가톨릭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 시대를 연구한 독일의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이렇게 적었다.<자료6> “당시 유럽에서 교황과 가톨릭 교회는 모든 가톨릭 신도 위에 군림한 최고 권력자였고,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타락은 파괴적인 독기를 내뿜었다. 성직자들의 퇴폐적 음란 풍조는 유럽 시민들의 풍기 문란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전염병은 적절한 숙주를 만났을 때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숙주는 생물학적인 조건이지만 그 조건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신적인 요소도 맞아야 한다. 육체적 탐욕을 좇았던 가톨릭의 풍토와 정신은 악성 매독균이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 이상적인 숙주였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팬데믹 공포에 빠져 있는 지금, 어떤 정신적 요소가 숙주를 만들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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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울산교회 신축하며 하나님 찾는 시간 늘어

동울산교회 신축하며 하나님 찾는 시간 늘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일산 해수욕장이 위치한 울산 동구. 유동 인구가 많이 몰리는 이곳에 한국천부교 동울산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초 신축을 마친 동울산교회는 세련된 구조가 돋보인다. 신축을 위해 많은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김성곤 관장과 김기환 권사를 만났다. ◆ 모두의 바람이었던 신축 수년 전부터 동울산교회 교인들의 바람은 교회신축이었다. 신축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2017년 김성곤 관장 부임 후 모두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김 관장은 “교인 모두가 신축에 뜻을 모으셨어요. 이후 전도 집회도 열리고, 신축 추진위원회까지 발표되고 나니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공사가 시작되자 교인들은 기뻐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장년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환 권사였다. ◆ 제강공장에서 단련한 기술로 김기환 권사는 과거 기장신앙촌 제강공장 용접부를 거쳐 현대 중공업 기술직으로 근무한 바 있다. 금속을 다루는 모든 작업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부교의 상징인 비둘기 종각 설치까지 손수 시공했다고 한다. “육십평생 하나님 일을 많이 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신축을 계기로 은혜로운 일을 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인부들이 퇴근할 때까지 현장에 머물렀다. 현장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어떻게 해야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까 많이 고심했다. 김 권사는 “시공을 직접 진행하다 보니 인건비도 절약되고, 불필요한 공사는 과감히 축소해서 비용 절감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공사에 직접 참여해 보람 느껴 밝고 힘이 넘치는 교회 만들 것 ◆ 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신축을 진행하면서 김성곤 관장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교회를 짓는데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사 기간 동안 맘 편히 잠자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는 가끔 밖으로 나가서 지어지고 있는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떠올렸어요. ‘하나님, 꼭 잘 해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왔어요.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지어진 동울산교회는 실용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구조로 탈바꿈하였다. 외관에서부터 밝고 힘찬 이미지의 교회를 구상했다는 김성곤 관장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한번 쯤은 들어와 보고 싶은 교회를 염두에 두었어요. 여러 차례 원하는 모습으로 가설계를 하면서 현장 소장님이나 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 앞으로의 바람 이제 새롭게 거듭난 교회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는 김성곤 관장과 김기환 권사. 두 사람의 바람을 들어보았다. “교역자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간절히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신축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또 성전을 지었으니 하나님 은혜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 목표는 지금보다 교인이 두 배 세배 늘어난 동울산교회입니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성곤 관장)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를 보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노력한 것보다 더 크고 값진 결과를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며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고 싶습니다.”(김기환 권사)

“지난 6년간의 여정 마치고 새로운 꿈 향해”

“지난 6년간의 여정 마치고 새로운 꿈 향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졸업이라는 순간이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14학번으로 입학해 올해 졸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이버대학교 영어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시온오케스트라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서 휴학했습니다. 휴학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겨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졌음에도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벌어진 시간 틈새로 무언가 새어나간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복학하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바삐 움직이며 생활해야 마음속에 진정한 기쁨이 솟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늘어졌던 마음에 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할 때 커다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자격증 공부로 매일 감사해 물론 공부하며 힘든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연습하랴 공부하랴 정신없는 때도 있었고, 중간에 체육대회가 겹쳐 강의가 밀린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다 보니 스스로 계획을 짜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친구들, 존경하는 선생님이 힘을 북돋아 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제게 대학생활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스스로 성장하고, 함께해주는 이들에게 깊이 감사함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졸업하긴 했지만 요즘은 다른 공부를 하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앙촌 양로원 권사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관련 자격증을 배워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꿈이 생기니 매일 새롭고 즐겁습니다. 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휴학하지 말고 곧장 졸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졸업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졸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꿈을 향해 부지런히 매일 달려서, 제가 배우고 공부한 것들이 신앙촌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혜영 관장편 ① 이슬성신이 담긴 물, 생명물의 권능

김혜영 관장편 ① 이슬성신이 담긴 물, 생명물의 권능

아이들에게 생명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때마다 제가 학생 때 보았던 일이 먼저 기억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축복해주신 생명물도 많이 받았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대학생 때였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여 같은 교회 학생들과 난생처음으로 시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무릎이 아파 한쪽 무릎을 세운 체로 돌아가셔서 시신을 씻기는 과정에서 권사님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하셨습니다. 목 아래로 통나무같이 온몸이 한꺼번에 들리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찬송과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입에 넣어드리니 고인은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입관할 수 있었습니다. 교역자로 나오고 몇 년 안 되었을 때, 안 믿으시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니 처음엔 흘렀지만 나중엔 다 넘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는 모습이셨는데 수건에 생명물을 적셔서 깨끗이 닦아 드리고 난 후에 다시 보니 비쩍 말랐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이 예쁘게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권능이 담긴 생명물체험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설명해 교역 생활을 하며 여러 번의 장례에 참석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입관 예배는 작년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평소 겁이 없는 편인데 보통 봐왔던 시신과는 달리 처음으로 섬뜩함이 느껴졌습니다. 같이 참석한 분들도 다 그런 느낌이었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관장님들과 교인들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노긋노긋해지며 처음 느꼈던 섬뜩함이 없어지고 예쁘게 피셨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믿지 않는 유가족들과 친지들이 들어오셔서 “어머, 세상에…” 하며 곱게 핀 모습에 연신 기뻐했습니다. 입관 예배를 드리며 생명물의 놀라운 권능을 목격할 때마다, 아직 어려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 아이들에게 잘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씀 공부 시간마다 생명물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 줍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든 가족이든, 누구나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바라지 비참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종교나 천국에 간다, 좋은 곳에 간다고 하지만 그 증거가 없다. 하지만 천부교는 이렇게 확실하신 하나님의 생명물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누구든지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체험의 종교다” 라고 자신 있게 설명합니다. 장난기 가득했던 눈빛이 제법 진지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들 마음속에 새겨짐을 보며 감사드립니다.

“더 밝고 희망찬 구리교회를 만들겠습니다”

“더 밝고 희망찬 구리교회를 만들겠습니다”

간절히 구하고 기도드리면 복잡한 일도 순조롭게 풀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 느껴 지난 12월 28일, 구리교회 신축 예배가 있었다. 이날 구리교회 교인들은 특순시간에 찬송을 부르며 힘찬 새 출발을 다짐했다. 구리교회 김용환 관장과 신귀철, 김상겸, 강대천 권사를 만나 교회가 완공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구리교회를 신축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김용환 관장: 2017년 구리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교회 계단이 생각보다 가파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안전하고 넓은 곳으로 교회를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교인분들도 신축에 뜻을 모아주셔서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귀철 권사: 예배실과 다용도실이 넓고 효율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장님께서 신축 이야기를 하셨을 때 정말이지 반가웠습니다. 김용환 관장: 신 권사님께서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관장님, 제가 기쁜 마음으로 돕겠습니다”라고 하셔서 정말 큰 힘과 용기가 났습니다. ◆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도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용환 관장: 네. 신축이 결정된 이후로 신 권사님과 함께 매일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무사히 교회가 완성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기도하면 할수록 복잡하고 막막했던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귀철 권사: 내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기도를 게을리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매일 간절히 기도드리는 정성이 가족들 마음에도 전해졌나 봅니다. 온 가족이 저를 응원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믿지 않는 며느리가 “아버님 하시는 일에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하며 재정적 지원을 해준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한마음이 되었구나 싶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 많은 구리교회 교인분들이 정성껏 신축에 힘써주셨다고요. 김용환 관장: 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교인분들이 심혈을 기울여주셨습니다. 특히 김상겸 권사님과 강대천 권사님은 공사현장에 직접 가셔서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해주셨습니다. 교회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며 헌신하시는 모습에 무척 감사했고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김상겸 권사: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참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 공사현장을 지켜보니 자잘하게 손가는 일이 참 많았어요. 자재도 옮겨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목공 부스러기도 치워야 하고요. 그래서 눈치껏 인부들에게 물어 필요한 일을 찾아서 했습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교인으로서 당연히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도와야지요. 강대천 권사: 교회에 다시 나온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교단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보탬이 되고 싶어서 한 일이었어요. 멋지게 완공된 구리교회의 모습을 보니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눈물이 납니다. ◆ 앞으로의 각오 김용환 관장: 앞으로 전도에 더욱 집중할 계획입니다. 특히 주일 학생들을 많이 전도해서 더 밝고 희망찬 구리교회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신귀철 권사: 새로운 구리교회에서 변치 않는 뜨거운 마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교양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여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여는

우리는 역사라는 창고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역사는 사람의 흔적과 발자취라고 본다. 그래서 그때 그 당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3.1운동이 101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생각해본다. 위기때마다 취했던 선조들의 태도는 어떠했을까? 고조선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끊임없이 외세 침략을 받을 때마다 내 힘으로 내 고을, 내 가족, 내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던 것은 민초와 의병으로 기록되었다. 국난의 위기 속에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름도 빛도 없는 들꽃과 같은 이웃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남아있을 작지만 위대한 DNA를 일깨워 미래를 설계해 나가자. 운동은 근대 100년 사상 최초, 최대로 조선 민중이 일치된 행동을 보였던 기미년 만세 운동의 기록이며 그 자체가 역사인 기념물이다. 한반도에서만 2,000회,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참여했으며, 지식인과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했다. 「팔각정에서는 “조선독립선언문!”이라고 큰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모자를 날리고 발을 구르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삼일 운동 당사자 좌담’, 1969.3.1 ‘중앙일보’) <독립선언서는 국권 침탈 무효와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우리의 할 일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두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코로나, 어디서 왔나?

손목 통증 잡는 스트레칭

아직도 손 씻을까 말까 망설이고 계신가요?

아직도 손 씻을까 말까 망설이고 계신가요?

‘손 씻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믿을까. 안 믿는다. 손 씻기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사실 손을 매번 씻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이번 한 번쯤 하며 씻지 않은 경험이 누구나 있는 이유다. 망설이지 않고 반드시 손을 씻게 할 방법은 없을까. 제도와 시스템의 변화는 뒤로하자. 집에서 가족들이 당장 변할 방법들을 짚어보겠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세계 손 씻기의 날(10.15)을 계기로 손 씻기 실태조사를 했다. 공중화장실에서 1천 39명을 관찰했다. 그 결과, 3명 중 1명은 화장실 이용 후 손을 씻지 않았고, 물로만 씻은 경우는 43%(447명)였고, 권장하는 손 씻기를 실천한 사람은 단 2% (21명) 로 나타났다. # 백문이 불여일견 손에 세균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여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준비물은 식빵 3조각, 지퍼백 3장이다. 실험조건은 한 식빵은 전혀 손대지 않고 지퍼백에 넣기, 한 식빵은 안 씻은 손으로 만진 후 지퍼백에 넣는다. 마지막 식빵은 따뜻한 물과 비누로 30초 이상 씻은 후 물기를 닦고 만져서 지퍼백에 넣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빵의 부패 정도를 확인해 보자. 손 씻는 습관만큼이나 올바른 손 씻기도 중요하다. #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만약 손을 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소독제도 없다면, 상황에 따라 손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손 씻기를 포함해 위생용품별 세균 감소율을 확인해서 다각도로 노력하자. # 언제, 어디서나 망설이지 말자 병원균이 서식할 가능성이 높은 화장실 이용 후나 음식을 준비할 때, 식사하기 전, 그리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를 병간호할 때에는 반드시 손 씻기가 필요하다. 상처를 만졌을 때, 코를 풀거나 기침, 재채기를 한 후, 쓰레기 버리고 난 뒤, 동물 관련 접촉 후에도 신경 쓰자. # 깨알 꿀팁! ① 손 씻기가 즐거운 경험이라고 인식하고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노래를 2번 부르며 손을 씻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30초동안 손을 씻게 된다. ② 찬물보다 따뜻한 물에서 병원균이 놀랍도록 많이 줄어든다. ③ 손 씻은 후 관리도 중요하다. 손의 물기를 닦지 않으면 세균이 사라지지 않는다. 핸드타월 사용, 손을 비비지 않고 핸드 드라이어로 건조 시 세균 수가 감소한다. 그러나 손을 비비면서 핸드 드라이어에 말리면 오히려 세균수가 증가한 연구 결과가 있다. ④ 자주 손을 씻으면 손 건조증이 올 수 있다. 예방을 위해서는 손을 씻은 뒤 3분 이내에 핸드크림을 발라주자. 아주 작은 습관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건강하고 평범하게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데, 더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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