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신뢰로 이어오는 신앙촌 소비조합

정직과 신뢰로 이어오는 신앙촌 소비조합

신앙인의 곧은 신념으로 만든 우수한 제품 판매하는 사람들 7월 10일, 신앙촌에서 ‘소비조합 합창단 발대식’이 있었다. 우수 소비조합원들로 구성된 합창단은 시온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 연주를 준비하게 된다. 최성례 서부 총무는 “정직과 신뢰로 이어온 신앙촌 소비조합의 곧은 정신으로 합창 또한 최선을 다해 준비합시다”라고 했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신앙촌 기업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며 신앙촌 기업과 고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오랜 세월 올바른 신념을 가진 신앙인의 자세로 고객들에게 신용을 쌓아온 신앙촌 소비조합은 양심 바른 제품을 전하는 자부심과 기쁨으로 달리는 분들이다. 65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신앙촌 소비조합은 그 오랜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남겼는데 1960년 6월 20일 자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사에는 “1960년 5월 15일 신앙촌 사업부에서는 확장되어 가는 각 공장 생산품을 외부에 적극 소비함과 동시에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시온특별소비조합’이라는 것을 조직하였다. 교인에게는 직업을 주선해 줌과 아울러 조합원들의 저축을 통해 구제와 부조(扶助) 등을 활발히 하였다.” 라고 보도하였다. 이때 신앙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소비조합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판매 활동에 박차를 가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조합은 초창기 방문판매 위주에서 보다 효과적인 판매를 위해 직매점 운영을 겸하게 되었는데, 1970년 9월 27일 주간조선의 보도에 의하면 “신앙촌 제품은 직매점과 소비조합을 통해 경향 각지의 시장에서 판매되며 특히 간장과 형광등, 캐시밀론 이불 등은 인기가 있어 소비조합이 오기를 기다릴 정도”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비조합이 운영하는 직매점은 ‘시온센타’, ‘시온쇼핑‘을 거쳐 현재는 ‘신앙촌상회’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서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초창기 세대는 물론 오늘날의 30~40대 젊은 소비조합들도 우수한 신앙촌제품을 판매하는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며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불경기 속에서도 신규 신앙촌상회 9개 지점이 지난 6월에 문을 열었으며 7월에도 9개의 신앙촌상회가 신규 오픈할 예정이다. (관련기사 7면)

구원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

구원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

6월 남성회 축복일 정규예배 사업 시상식, 신축위원 시상 등 지난 6월 27일, 신앙촌에서 남성회 축복일 예배가 있었다. 이날 2/4분기 소비조합 사업시상식, 100% 목표 달성 시상식, 신축위원 시상식, 경주 추모예배 행사 지원자 공로상 시상식 등이 있었다. 예배를 인도한 정주현 관장(부산교회, 남부총무)은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을 진리의 길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전도의 결실을 맺어 구원을 얻기 위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때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드리며, 은혜를 받아 구원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해 질주해야 하겠습니다.”라고 설교했다. 2/4분기 사업시상식에서는 최우수상에 이용식 사장(서대문교회), 김선출 사장(소사교회), 이경수 사장(덕소교회), 우수상에 김석주 사장(서대문교회), 김장열 사장(청주교회), 장려상에 윤경수 사장 (서대문교회), 이대원 사장(인천교회), 노력상에 조용춘 사장(서대문교회) 외 5명, 격려상에 김승주 사장(홍성교회) 외 12명이 수상했다. 100% 목표 달성 중앙상은 서대문, 덕소, 춘천, 대전, 목포, 부산이 받았다. 또 지난 6월 초에 있었던 ‘추모의 날’ 행사지원에 힘쓴 양성철 권사(소사교회), 최현동 권사(광주교회)에게 공로상이 수여됐다. 마지막으로 신축위원 시상이 있었다. 소사교회 신축위원 임형모 권사(수원교회) 외 21명, 청주교회 신축위원 이영진(청주교회)외 9명이 수상했다.

Since1957 신앙촌 소비조합

Since1957 신앙촌 소비조합

신앙촌 소비조합이 운영하는 직매점은 시온센타-시온쇼핑-신앙촌상회로 그 모습을 바꾸며 고객들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1950년대 6‧25 전쟁 직후 변변한 국산품 하나 없던 그 시절, 신앙인의 정직한 양심으로 만들어진 신앙촌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그 품질을 인정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신앙촌에서 생산된 우수한 제품들을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신앙촌 소비조합의 역할이었다. 초창기 소비조합들은 방문 판매 형식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엑슬란 내의, 이불, 밍크 담요, 양말, 스타킹 등은 소비조합들이 제품을 펼쳐놓기가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방문 판매와 더불어 직매점으로 판매 방식을 다변화한 소비조합들은 1960년대 시온센타를 시작으로 1990년대 시온쇼핑을 거쳐, 2009년부터는 신앙촌상회로 소비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현재 신앙촌상회에서는 요구르트 런, 생명물간장, 생명물 두부 등 식품 위주의 판매와 배달을 함께 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은 섬유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우수한 제품을 생산해 기업의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다해 온 신앙촌 기업, 정직과 양심으로 고객과 오랜 신뢰 관계를 쌓아온 신앙촌 소비조합의 모습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며 일하는 기쁨을 쌓아 온 선배 소비조합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유순자 권사 (전주교회) 저는 1968년 33세의 나이로 신앙촌상회를 시작해 53년 동안 소비조합으로 활동했습니다. 100평이라는 큰 가게를 열었을 때 정말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고 그 큰 매장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고 정말 신나게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바쁘면 바쁠수록, 기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신앙촌상회를 새롭게 열게 된 후배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귀한 이 길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김장예 사장 (부산 안락시장점) 신앙촌 사원으로 일하다 정년을 맞아 은퇴를 하고 안락하게 지내던 저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과 정성으로 만든 신앙촌 제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 목표를 가지고 1995년도에 소비조합을 시작해 지금까지 즐겁게 신앙촌상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니 두려움이 없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상회 손님들 중에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보기 좋다.’며 칭찬하시는 분도 계시고, ‘어쩜 이렇게 건강하냐’고 묻는 분들께는 요구르트 런이 그 비결이라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진정한 품위를 잃지 않으려면 하루하루 일을 하며 열심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앙촌상회는 제 삶의 에너지이자 활력소입니다. 지난 축복일에 신앙촌상회를 개업한 분들을 보며 정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 또한 더 값지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며 소비조합의 이름으로 나가겠습니다. 7월 11일, 여성회 축복일에 신앙촌상회를 신규 개업한 소비조합원들에게 오픈 선물과 꽃다발을 수여 하고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6월에 이어 7월에도 9곳의 신규 오픈이 이어져서 더욱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소비조합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가슴 뛰는 일’ ‘벅차도록 감사한 일’ ‘신앙촌의 브랜드 파워를 알게 되는 일’이라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소비조합 사장님들, 신앙촌상회 오픈과 더불어 한 단계 도약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서울 여의도점 조명순 사장 신앙촌상회를 오픈하며 우리 제품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지고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더욱 간절해집니다. 상회가 오픈되고 고객분들이 ‘상회가 생겨서 너무 좋다’, ‘예전에 많이 봤다’, ‘제품이 좋다’고 하셔서 더욱 힘이 납니다. 상회를 오픈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서울 중곡점 송선희 사장 몇 년 동안 영업과 납품 위주로 활동하며 신앙촌상회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때가 되면 저에게도 신앙촌상회를 다시 운영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다 올해 상회를 재오픈하게 되었고 그 기쁨과 감사함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2008년 소비조합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잃지 말고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힘껏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올바르고 의롭게 살아갈 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바른 방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늘 감사 기도드리며 야무지게 신앙촌상회를 운영하겠습니다. 서울 동부시장점 심봉숙 사장 마트에서 판촉하다 상회를 직접 차려 보니 이게 기회구나 생각했습니다. 고객님들이 상회를 보시고 너무 좋다고 하시고 기다렸다고 하십니다.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제품을 더 알리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서울 장곡시장점 홍순자 사장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중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신앙촌상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상회를 오픈했습니다. 신앙촌상회에서 사업뿐 아니라 진정한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기장 한신점 주희영 사장 찬송가 가사처럼 ‘내가 매일 기쁘게 의의 길을 행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하고 있던 저에게 감사하게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삼아보자.’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또 관장님과 교인분들의 따뜻한 격려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두려움 없이 힘껏 달려가는 신앙촌 소비조합이 되겠습니다. 기장 일광점 오성애 사장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딸과 함께 상회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저보다 딸이 더 앞장서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를 한 명 한 명 하며 열매를 맺고 사업에도 열심을 다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딸들과 2호점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읍 상동점 김지숙 팀장 신앙촌상회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시는 분들 모두 신앙촌 제품은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라고 반가워하셔서 매우 기쁘고 힘이 납니다. 상회를 찾는 고객분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경기 부천점 유윤아 팀장 상회를 들어오시는 분들의 표정이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신앙촌 제품을 애용해주신 분들이 생각보다 참 많으셨으며 이구동성으로 신앙촌 제품의 우수성을 칭찬해주셨습니다. 어두운 저녁에 신앙촌상회를 봤을 때 환하게 빛나는 신앙촌 로고와 함께 런, 두부, 간장까지 빛나 보여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도로변에 위치한 만큼 많은 사람에게 신앙촌을 전하겠습니다. 전주 모래내점 김선희 팀장 신앙촌상회를 오픈하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상회를 찾아와 주시고, 주변 상인들도 신앙촌상회에 들어와 보시고 좋다고 하시며 주변이 환해졌다고 칭찬해 주십니다. 이런 말을 들으니 힘이 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널리 알리고 싶고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도 생깁니다. 신앙촌 상회를 직접 운영하며 ‘신앙촌상회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어 감사드립니다.

신앙촌 간장 선물 세트로 마음을 전하세요

신앙촌 간장 선물 세트로 마음을 전하세요

신앙촌 간장이 새롭게 구성된 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이번 선물세트에는 새우, 소고기, 표고버섯 등 건강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건조시킨 천연조미료와 청정 해역에서 자란 기장미역 등이 구성품으로 함께 포함되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신앙촌 양조간장은 국내 최초로 특허받은 땅속 발효 제조 시스템으로 생산된 제품으로 간장 특유의 감칠맛과 깊은 향을 그대로 살렸다. 또한 최근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비건 인증을 획득하여 친환경 가치 실현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신앙촌 간장 선물세트는 전국 신앙촌상회와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

“고민할 것 있나요? 당연 신앙촌간장이죠”

“고민할 것 있나요? 당연 신앙촌간장이죠”

짜지 않고 감칠맛이 나는 간장 신앙촌 두부도 믿고 쓰게 돼 부산시 수영구에 있는 도시락 배달 전문점 ‘맛있는 도시락’.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에 행복하고 건강한 포만감을 전하고 싶다는 이곳에서는 반찬을 만들 때 신앙촌 간장을 사용하고 있다. ‘맛있는 도시락’의 책임자 김은숙 씨는 “생선조림, 어묵 볶음, 곤약 볶음, 불고기 등 간장이 들어가는 반찬은 신앙촌 간장만 사용해요. 다른 간장과 달리 깊은 감칠맛이 나고, 짜지 않고 슴슴해서 맛있거든요.”라고 했다. 김은숙 씨에 의하면 2011년 도시락 전문점을 오픈하면서부터 신앙촌 간장을 사용해왔다고 한다. “아들이 도시락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해서 신앙촌간장을 써보자고 했어요. 도시락은 반찬이 맛있어야 하잖아요. 그때 신앙촌 간장으로 반찬 만들면 정말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집에서도 신앙촌 간장만 먹는다는 김 씨는 어언 40년째 신앙촌 간장을 사용해오고 있다. “간장은 고민할 것도 없이 신앙촌이죠. 아주 젊었을 때부터 이 제품만 썼어요. 누가 콕 집어서 써보라고 추천한 것도 아닌데 이미 신앙촌 간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맛있기로 입소문타서 유명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맛있어요. 우리 주방 직원들도 다 칭찬 일색입니다.” 옆에 있던 이곳의 주방장 박미애 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도 집에서 신앙촌 간장을 써요. 맛은 당연히 좋고, 요리하면 색도 예쁘게 나오니까요. 신앙촌에서 나오는 요구르트 런이랑 두부도 먹어봤는데 정말 맛이 좋더라고요.” ‘맛있는 도시락’에서는 반찬에 신앙촌 두부도 사용한다. 간장이 맛있어서, 두부도 신앙촌 제품으로 믿고 바꿨는데 주변 반응이 아주 좋다고. 김은숙 씨는 “두부는 두부조림, 된장찌개, 마파두부 등에 사용되는데, 그중 마파두부가 특히나 고객들에게 인기가 무척 많은데요. 신앙촌 두부로 바꾸고 나니 식감도 부드럽고 더 맛있어졌다는 평이 많았습니다.”라고 했다. 좋은 식재료로 맛있게 만들어지는 이 곳의 도시락들은 회사나 업체, 병원 등으로 배달된다. 관공서에서 행사용으로 단체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단체주문이 들어오는 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또 신선도 유지를 위해 모든 반찬은 매일 새벽에 만들고 있으며, 남는 재료나 도시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당일 만든 도시락은 당일에만 한정 판매한다. 직원들의 빠른 손놀림으로 착착 만들어지는 도시락들을 보니 구성도 알차고 무엇보다 푸짐했다. 아낌없이 눌러 담은 반찬들을 보니 과연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한 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맛있는 도시락’ 직원들은 건강하고 맛있는 간장이 만들어지는 신앙촌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직원들은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가봤는데, 신앙촌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식품단지가 그렇게 아름답고 깨끗하다던데…. 초대해 주시면 다음에 우리 모두 꼭 같이 갈게요.”

음악을 사랑하는  시온인들의 열정과 노력

음악을 사랑하는 시온인들의 열정과 노력

다양한 곡 배우며 연주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 음악인들의 무대 경험과 실력 향상을 위해 마련돼 2021년도 제2회 향상음악회가 6월 27일 신앙촌 레스토랑에서 개최됐다. 악기를 배운 지 1, 2년 되는 고등학생부터 신앙촌 사원들로 구성된 시온 오케스트라 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자들이 참가하는 신앙촌의 향상음악회는 음악을 사랑하는 시온인들의 무대 경험과 다면적인 실력 향상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총 12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7팀이 현악 4중주를 포함해 바이올린과 첼로 독주 등 폭넓은 연주를 선보였다. 현악 4중주에서 비올라를 연주한 오정민 씨는 “어떻게 하면 좋은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을까 팀원들과 많이 고민했습니다. 활을 작게 쓸지, 아니면 느리게 쓸지, 호흡은 어떻게 맞추면 좋을지 작은 것 하나까지도 함께 의논하며 연습에 임하였습니다. 연습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더욱 울림 있는 소리가 만들어짐을 느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기회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향상음악회 주최 측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다양한 곡을 배움으로써 연주의 폭을 넓히고, 갖고 있는 음악적 재능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와 환경을 꾸준히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연주회에는 연주자들을 응원하는 동료와 친구들부터 젊은 세대를 격려하는 신앙촌의 어른들도 초대되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했다. 신록의 신앙촌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한 향상음악회였다. 올해 제2회 향상음악회에서는 총 12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7팀이 현악 4중주를 포함해 바이올린과 첼로 독주 등 폭넓은 연주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파트별 축복일 예배와 시상식

B2B(기업 간 거래) 영업 교육을 통한 방향 설정

‘나의 꿈을 디자인하다’

애르트 데 겔더 作 예수 세례

신앙신보 구독신청은 각 교회별로 1월 24일까지 받습니다.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은혜로 세워 주신 신앙촌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은혜로 세워 주신 신앙촌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소사, 덕소에 이어진 기장신앙촌 건설 덕소신앙촌 제강공장에서 일하던 저는 직조공장으로 옮겨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나이 35세가 되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3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세 곳의 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계획은 처음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실 때부터 말씀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1970년 2월 28일. 현재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일원의 드넓은 대지에 정지(整地) 작업을 필두로 기장신앙촌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20일. 장세호 집사님과 주택 건설대 30명, 토목 및 도면 담당자가 기장신앙촌에 도착했고 이후 각 공장에서 자원한 백여 명의 사람들이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소사, 덕소신앙촌을 건설할 때 함께했던 건설대원들은 4월 5일 기장신앙촌으로 출발했는데, 저도 그때 다른 대원들과 함께 기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기장신앙촌에 도착한 저희를 하나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시며 건설 현장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또 한 번 건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건설 현장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 먼저 도착한 건설대원들이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저희들도 6명씩 조를 이루어 기초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건설 현장은 하천이 흐르고 논과 산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땅이 갯벌로 이루어져 건설하기에 지극히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남자 키 6배 정도의 깊이를 파 내려가야 반석이 나올 정도로 땅이 질어 목수들이 사각 틀을 짜서 지지대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철근 8개를 넣고 시멘트, 모래와 자갈을 3자루씩 부어 이틀 정도 굳히면 기둥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건설 현장이 갯벌로 이루어진 데다 건설 기간 동안 비까지 자주 내려서 하루에 기초를 2개 파기도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땅을 팔수록 물이 솟아올라 기초 하나에 보통 4~5시간씩 물을 퍼내는데, 하나님께서도 저희와 함께 작업을 하셨습니다. 한번은 콘크리트 작업에 필요한 자갈을 사들여 왔을 때였습니다. 자갈이 모래와 진흙투성이여서 도저히 그냥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직경 15cm 정도 되는 호스를 직접 잡으시고 물을 뿌려 자갈을 씻는 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달 동안 하루도 빼 놓지 않고 호스를 잡으셨는데, 하루는 작업을 마친 후 제가 그 호스를 잡아 보니 수압이 워낙 센 데다 호스는 물렁물렁해서 잡자마자 호스를 놓치고 뒤로 넘어갈 정도였습니다. 저는 힘이 세서 동료들이 황소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고된 작업을 종일토록 하셨는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진 신앙촌 1동 공사가 마무리될 때쯤 2동, 3동의 대형 공장 건물과 기숙사, 주택, 아파트 등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3동 공사를 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리어카에 시멘트를 부어주시면 두 명이 운반했는데, 하루는 저와 같이 리어카를 옮기던 팀원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저 혼자 옮기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아까운 시멘트를 바닥에 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별명을 불러 주시며 “황소가 넘어졌네.” 하고 웃으시며 말씀하셔서 같이 있던 동료들과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3동을 완공할 때쯤 지금의 수예공장 입구에서부터 오리엔스 공장까지 긴 도로에 콘크리트 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철근 여러 개를 철사로 묶어가며 철근 구조물을 만든 후 그 구조물 위에 모래와 자갈을 부어 단단하고 튼튼한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중에 이 길로 차가 수백 대가 다니게 되니 튼튼하게 하자.”라고 하셨는데 그 후 각 공장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을 비롯해서 신앙촌을 찾아온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이 딱 맞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1970년 건설이 시작되고 1972년 6월경까지 1동, 2동, 3동의 대형 공장건물 및 각 공장 건물, 기숙사, 주택 등의 건설이 완공되었으니 총 공사 기간은 약 2년 4개월이 걸린 셈이었습니다. 소사, 덕소신앙촌 건설에 비해 공사 기간이 길었으나 기장신앙촌 규모로 볼 때 이 또한 짧은 시간에 또 하나의 신앙촌이 건설된 것이었습니다. 그 귀한 시간을 함께하며 건설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일생에 가장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장신앙촌 곳곳을 둘러볼 때마다 작업복을 입으시고 저희와 함께 일하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늦은 밤까지 일하시며 구슬 같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셨던 하나님,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작업을 진두지휘하시던 하나님. 축복의 손길을 허락하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던 하나님… 신앙촌의 기둥 하나, 담 하나, 벽돌 하나, 어디를 둘러봐도 하나님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난 어머니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후 저는 만나 식당을 거쳐 한일슈퍼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1977년 어느 날 고향에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3년이 넘게 병상에 계셨던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축복받은 생명물을 가지고 인천 덕적도 고향집으로 향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은혜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인천에서 덕적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전에 집에 전화를 드려서 어머니를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대해 가족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큰오빠가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하며 빨리 와서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손인 큰오빠가 힘을 실어주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장례예배를 드리기 위해 인천전도관 전도사님을 모시고 교인 30명과 덕적도 집으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장신앙촌에서 출발해서 덕적도에 갈 때까지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서 마음속으로 걱정이 되었는데, 덕적도 항구에 도착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쾌청하게 맑아지는 것을 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뵈니 오랫동안 병환에 시달리신 어머니는 장작개비처럼 마른 몸에 입마저 비뚤어져 보기에 안타깝고 안쓰러운 모습이셨습니다. 권사님 한 분과 함께 생명물로 어머니의 몸을 닦아 드렸는데 30분쯤 지났을까 어머니를 보니 비뚤어졌던 입이 어느새 반듯하게 되어 빙그레 미소를 짓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다 씻겨 드리고 나니 푹 꺼져 있던 양볼에 예쁘게 살이 오르고 장작개비같이 뻣뻣하던 몸이 노긋노긋 부드럽게 되어 무척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셨지만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무엇으로도 그 감사함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어머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그때부터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전도관에 호의적이었던 큰오빠는 물론이고 반대하던 작은 오빠와 조카, 그리고 조카의 시어머니까지 그때 전도되어 지금도 천부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카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전도관식으로 장례예배를 드려서 시어머니가 곱고 예쁘게 피셨는데, 전도관을 심하게 반대하던 조카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180도로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조카의 남편이 돌이켜서 전도관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물론 아들딸과 친척들까지 전도해서 지금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전도관은 아름답게 핀 시신을 보고 전도된 수가 많다.’고 하는데 저도 그렇고 조카의 경우에도 딱 들어맞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계시니 누구에게든 이 권능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올해로 86세가 된 저는 구원의 소망을 날마다 마음에 새겨 봅니다. 하나님 일을 할 때 마음속에 벅차올랐던 하늘의 기쁨이 지금도 생생하기에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온전히 그 뜻대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힘을 주셨던 덕소신앙촌 건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힘을 주셨던 덕소신앙촌 건설

소사에 이어 덕소신앙촌 건설에 참여 첫 번째 신앙촌인 소사신앙촌이 건설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아 더 큰 규모의 덕소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1957년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실 때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음이 없이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부분을 설계하시고 감찰하시면서 진두지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히 사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건설대로 일하는 내내 직접 눈으로 보며 절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사신앙촌 건설 당시는 6⋅25 전쟁이 휴전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살림살이가 어려웠고, 지금처럼 계절에 맞게 옷이며 신발이며 갖춰 신지 못하고 사계절을 검정 고무신만 신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천주교인은 성당을 지을 돈이 없어 외국에서 원조받은 것으로 지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어렵고 가난한 중에 신앙촌을 손수 건설하셨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덕소신앙촌 건설은 1962년 7월 20일.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서울에서 약 20Km가량 떨어진 북한강 주변에 위치한 덕소신앙촌은 주위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는 달리 건설 부지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와 진흙으로 된 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난공사가 예상되는 이곳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팀은 소사신앙촌 주택 건설 대장인 장세호 집사님과 34명의 건설대였습니다. 일은 은혜 받을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 은혜받아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힘든 일은 내가 먼저, 누구보다 많이 일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한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덕소신앙촌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마침 장세호 집사님이 ‘덕소신앙촌으로 가서 일해보겠냐’며 친구를 통해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가겠노라’고 답신을 전하며 ‘나 같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주시는구나, 또 한 번 죄 씻을 기회를 주셨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일주일 뒤에 드디어 저도 건설대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안찰을 통해 은혜 주신 하나님 그때 제 나이 26살, 무더운 여름이 찾아온 덕소신앙촌으로 친구 3명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저희들 4명 모두에게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 세 번째로 안찰을 받으러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지손가락 두 개를 제 눈 위에 살짝 대시자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저의 두 눈에서 손을 떼시고는 “내일 한 번 더 안찰 받으러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나가는데도 토악질이 날 정도로 아파서 기어가다시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시면 내 속에 있는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에 안찰받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임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토록 아픈 것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소사 오만제단 건설 당시 오만제단 건설대 반장이었던 저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이 큰 죄임을 가르쳐 주시며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진 겸손한 사람이 되길 바라셨는데 저는 반장으로 남들을 이끄는 일을 하면서 겸손하지 못했고 저도 모르게 교만한 마음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너무나 부끄러웠고 또다시 안찰을 받기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안찰을 통해 교만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해 주셨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음 날이 되어 ‘오늘 언제 안찰을 받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때 마침 친구가 찾아와 하나님께서 안찰 받으러 오라 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안찰을 받으러 가니 하나님께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눈을 안찰해 주시는데 여전히 몸이 펄쩍펄쩍 뛸 정도로 너무나 아팠습니다. 안찰을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내일은 생명물을 강하게 축복해 줄 테니 마시고 눈을 닦아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커다란 통에 가득 담긴 물을 향해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신 후 건설 대원 한 명 한 명에게 손수 생명물을 떠서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 모습을 뵈니 ‘죄를씻어 주시려고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구나’ 하며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물을 받아 마시고 눈을 닦았더니 그렇게 아팠던 눈이 금세 아프지 않게 되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제하고 절제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 안에 하나가 될 때, 그 놀라운 힘 날이 갈수록 덕소신앙촌 건설 대원이 늘어나 350여 명이 되니 A, B반으로 나누어 일했습니다. 각 반의 사람들이 은혜 안에서 주어진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하니 한마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가 되어 일하는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그때 생각이 떠오를 때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한번은 건설에 쓰일 모래를 한강 건너 모래사장에서 운반해 올 때였습니다. 맨 처음에는 모터 배가 아니라 노를 저어서 가는 배로 모래를 옮겼는데 후에 모터 배를 2대 구입해 더 빠르게 모래를 나를 수 있었습니다. 한강 건너편에 있는 모래를 배에 싣고 와서 많이 쌓아 놓는 팀이 이기는 시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 팀 다 한마음으로 정신을 모으니 엄청난 기세로 일을 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선의의 경쟁 속에서 노력을 다한 후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아파트를 지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유독 더운 날이었는데 8인치 블록이 가득 실린 8t 트럭이 들어와 그 많은 블록을 트럭에서 내리는 작업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들어서 우리에게 직접 주셨습니다. 8인치 블록은 굉장히 무거워서 웬만한 사람은 2장 들기도 힘든데,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니 절로 힘이 솟아나 신나게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레미콘 차량이 없던 때라 시멘트 한 포대를 개자면 물이 두 초롱씩 필요했습니다. 하루에 시멘트 1천 4백 포대를 썼는데 그에 필요한 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부어 주셨습니다. 저희 물 운반팀이 물 초롱을 가져다 대면 통에 딱 맞게 부어 주셨는데 홀로 2천 8백 초롱의 물을 부어 주시면서 힘차게 진두지휘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힘을 불어 넣어 주신 건설 현장은 밤늦게까지 이어져도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덕소신앙촌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하룻밤에 주택이 20채가 넘게 지어지는 건설 광경을 목격하며 그저 놀라워했습니다. 가을쯤 되었을 무렵 덕소신앙촌과는 차로 2시간 거리였던 구로리(구로구 구로동의 이전 명칭)에 제단을 짓자고 하셨습니다. 뜻밖의 말씀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에도 매일 소사에서 덕소로 출퇴근 하셨고 새벽부터 밤까지 건설대와 일하셨는데 그 바쁘신 중에 덕소신앙촌과 멀고 아무것도 없던 곳에 제단을 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쉽지 않은 건설이었지만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 50명이 건설에 참여해 구로리제단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개관집회를 열었을 때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는데 안수를 받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붕붕 뜨는 듯했으며 마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제강 공장 1962년 12월 말경 하나님께서는 덕소신앙촌에 제강 공장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는 제강 공장을 지을 만한 기술자는 물론 참고 서적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때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제강 공장은 강철을 생산하는 곳으로 조남준 권사님을 책임자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제강 기계를 만드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강 공장의 공정을 알려주시며 공정별로 사람들을 배치하셨는데 저는 고철에서 불순물을 분리하는 고철반의 반장으로 안진옥, 이순덕, 최기자, 안종윤, 안복남 등 10명과 함께 일했습니다. 제강 공장의 철근 만드는 공정에서 일했던 것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먼저 고철이 트럭이나 기차에 실려서 들어오면 하차반이 내려주고 고철반에서 그것을 받아 고철에서 불순물을 분리해 냈습니다. 분리한 고철을 용광로 용기에 넣으면 쇳물이 될 때까지 녹여서 단단한 철근으로 만들어집니다. 용광로 용기가 녹아내리지 않게 관리하는 반도 있었고 용광로에 불을 때는 작업반 등 여러 공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정 하나하나를 세심히 체크하시며 솔선수범하는 직원들에게 안찰을 통해 힘을 주셨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일을 통해 은혜를 받고 신앙이 한층 자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마음을 변화시키는 이슬성신

거칠고 메마른 마음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백합과 같이 피는 것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이건 참 어렵더라’ 하는 거 있으셨나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기 잘못을 고치는 일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나에게 왜 그렇게 화를 내지? 왜 그렇게 나쁜 마음을 갖는 거지? 아무리 말을 해 주어도 나 스스로 인식하기 전에는 절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설령 자기 스스로 깨닫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두운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밝고 환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학교나 강의를 통해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천국을 가기 위한 목적이 있으므로 착하게, 선하게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으면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합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종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도 한 집 건너 교회가 보이는데 세상에는 범죄가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종교로 인해 세상은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을 부추겨왔습니다.‘우리가 믿는 신이 진짜다’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전쟁을 해 왔습니다.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 스페인 정벌 전쟁, 영국 청교도 혁명, 프랑스 위그노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9·11 테러 등 종교로 인한 전쟁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 학문과 종교는 잘 다듬어진 현학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주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즉 잘못된 것을 진리로 믿게끔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신이 원하신다’는 잘못된 진리를 믿게 함으로써 일어난 십자군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믿기만 하면 구원이다’ 는 주장으로 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기독교에 실망한 나머지 자비, 비폭력, 금욕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독교를 제창했다고 합니다. 종교를 선택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종교란 어때야 할까요? 진정한 종교라면 어둡고 악한 사람의 마음을 돌이켜 밝고, 선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천부교는 최고의 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다 하신 것은 맑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맑은 마음으로 선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천부교인들은 자유율법. 양심의 법을 지키며 나쁜 마음조차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것이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쁜 마음을 씻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것이 곧 이슬성신입니다. 이슬성신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기뻐지고 편안해집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며, 기쁨의 신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집회에 참석한 박현숙 장관님도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냉정하고 쌀쌀하다고 했으나, 은혜를 받은 후에는 온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신을 받으므로 그 마음에 변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성신을 받으면 복잡다단하던 마음의 풍랑이 안정되고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게 된다. 황무지와 같이 거칠고 메마른 마음이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백합화같이 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깊이 생각해보면 진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가르쳐도 마음이 맑고 아름답게 변화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짜 신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을 밝게 바꿔놓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갖게 해 줍니다.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 천부교. 천부교는 율법만 알려주는 곳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며 은혜를 내려주시는 곳입니다. 맑게 살라고 가르쳐 주신 하나님 말씀 안에서 기쁨과 평안함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건강과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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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일 속에서 매일 깨닫는 요즘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일 속에서 매일 깨닫는 요즘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천부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느 학생들처럼 진로를 고민할 때, 관장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쪽으로 진로를 생각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하나님 일을 할 자격이 있을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관장님께서는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셨지만 하나님 일 쪽으로 온전히 진로를 정한다는 것이 여전히 마음속에 부담 아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저는 특별히 전도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더 큰 걸림돌은 세상으로 가는 길과 의로운 길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에 신앙촌에서 열린 여청 세미나에 참석해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강은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내가 맑게 살기 위해 노력한 만큼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 수많은 선택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도 있고, 안타까워하실 수도 있지만, 결과는 오롯이 나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맑게 살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을 걸으며 나를 성장시키고파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마음먹으니 저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의 부족’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은혜 속에서 일을 하며 나를 성장시킬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너의 길을 열심히 달려왔구나’라는 칭찬을 하나님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반사 활동을 하던 중 어느 순간 하나님일 하는 것에 대해 ‘나는 자격이 되지 않아 못할 것 같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겸손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함을 채우고 자격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간구하는 자세가 아니라 부족함을 내세워 아예 노력하지 않으려는 것은 오히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보니 이제 정말 자격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저는 진해 천부교회를 거쳐 마산 천부교회에서 실습을 하며 인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한번은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날따라 아이들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 보여서 이 아이들이 끝까지 하나님을 잘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 ‘아! 하나님께서도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고 은혜로 붙들어주셨구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껏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습니다. 또 한참 늦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이라도 깨닫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남은 실습 기간 동안 많이 보고 듣고 배워서 성장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은혜받는 생활이 되길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은혜받는 생활이 되길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셨고, 입시 불안감까지 겹쳐지다 보니 교회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멀리할수록 몸과 마음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어느덧 입시가 끝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천부교회를 좋아하면서도, 부모님을 설득하지 못했던 저 자신. 제 삶의 가장 큰 위안이었던 교회에 가지 못하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선택했던 저를 더 이상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자기 전에 하나님께 주일예배와 축복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도드린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새벽예배를 가면 예배를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가좌교회 김유림 에세이 새벽예배는 성장하는 계기가 돼 하나님 일의 가치와 중요성 느껴 기쁘게 일하며 신앙을 키우고파 그렇게 찾아간 새벽예배 시간은 저에게 기쁨과 안도감을 주었고, 하나님 찬송과 말씀이 그동안의 지친 마음과 몸에 위로를 해주시듯 느껴져서 뜨거운 눈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너무도 개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집에 돌아가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 뒤로 꾸준히 새벽예배를 드리며, 기도 생활도 늘려나갔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일들이 긍정적으로 풀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의 생각과 마음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저를 보게 된 것입니다. 또 마음의 불안과 불평, 불만이 사라지니 새벽예배 시간이 더욱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은 평소처럼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시작 전에 기도하시는 관장님과 소비조합 권사님들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은혜받는 생활을 하시는 그분들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습니다. 동시에 저도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기도 제목은 “하나님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허락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던 중 참석하게 된 여청, 대학생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고, 꼭 하나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굳혔습니다. 현재 저는 신앙촌 사원을 지원해 소사신앙촌에서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장님들과 손님들을 응대하고 판매도 하며, 상품을 구매하고 만족해하시는 손님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새벽부터 움직이시는 신앙촌상회 사장님들과 관장님들에 비하면 아직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신앙을 키우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노력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전도가 가장 즐거운 곳 구로 천부교회입니다”

“전도가 가장 즐거운 곳 구로 천부교회입니다”

<비대면 인터뷰> 긍적적으로 변하는 새교인들 보며 더 큰 사명감 갖고 전도에 힘쓸 것 예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와서 조용히 앉아 기도드리는 사람들. 지인을 전도해 교회에 함께 오는 사람들. 은혜 받으러 천부교회 온다는 사람들. 매우 모범적인 모습의 이들은 모태신앙도 아니고, 기존 교인도 아니다. 구로교회 새교인들이다. 구로교회의 강수향 관장은 “새교인분들이 한 시간 전부터 예배실에 앉아 계시기에 혹 힘드시진 않을까 말을 걸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좋아서 일찍 오시는 거래요. 천부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하셔서 일부러 일찍 오신다고 하시더라고요.”라고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그 말대로 구로교회 새교인들은 하나 같이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새교인 이옥희 씨는 “여기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정숙해지고 편안해져요. 올 때마다 항상 그걸 느껴서 꾸준히 교회에 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새교인 신원자 씨도 “천부교회의 기도문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길을 걸으면서도 계속하게 되요. 어떤 때는 누워서 자는데 갑자기 기도문 생각이 나서 기도한 적도 있어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천부교회에 다니며 본인의 마음과 행동이 달라졌다는 새교인 최영자 씨는 “천부교회를 잘 몰랐어요. 가까운 동네에 살아도 그냥 지나치기만 했는데 와 보니까 다른 교회하고는 달라요. 마음으로도 죄를 짓지 말라 하시고, 죄를 씻어 주시는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 말씀을 듣고 저도 평소에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자유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하며 진정한 천부교인이 되어가는 새교인들. 그 뒤에는 전도 방법을 고민하는 강수향 관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새교인 분들을 직접 만나 소소한 선물을 드리기도 했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대화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작년 발생한 코로나로 새교인들이 교회에 자주 못 오게 되자 강수향 관장은 새로운 전도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분들이 교회에 못 오시는 동안 신앙의 맥이 이어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하나님 주신 기도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새교인들에게 매일 기도문 하는 미션을 드렸는데 생각보다 정말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정말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다는 새교인 정학자 씨는 “기도문을 하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또 꾸준히 하니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천부교회는 정말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어요. 안 좋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했다.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새교인들의 모습이 자랑스럽다는 구로교회의 이금선 권사는 “제가 전도한 어떤 분은 이제 힘과 용기를 얻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그래서 전도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했다. 강수향 관장은 “구로교회 교인분들은 전도를 즐거워하시고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앞으로도 교인들과 다 같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 말씀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여 알찬 열매 맺는 구로교회가 되도록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힘을 합쳐 전도한 기쁨 못 잊어

힘을 합쳐 전도한 기쁨 못 잊어

최말분 새교인(죽성교회) 저는 사회생활을 오래해서 아는 사람이 좀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천부교회로 많이 모시고 왔지만 조금 오다가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도를 하다 보니 9명 정도가 꾸준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요일 9시 반까지 만나자”고 하면 딱 그 시간에 나오고 약속을 못 지킬 때는 “문자를 넣어두라” 하니 딱 연락이 옵니다. 이제는 체계가 잡혀 착착 한 팀으로 잘 돌아간다고 할까요. 그리고 전도를 하면서 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원래 예배 시간에 찬송을 부르면 찬송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찬송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이슬성신절 예배 시간에 부를 찬송가를 배우던 중 “성신이 오셨네”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부산 사투리로 “와 이리 느낌이 오노”라고 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 신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미정 권사(죽성교회)가 제41회 이슬성신절을 맞아 전도 1등을 목표로 해보자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우리 팀 9명에게 “우리가 신앙촌 한두 번 가봤나! 코로나19 걱정하지 말고 각자 10명씩 전도해보자”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초저녁부터 잠을 자던 제가 매일 명단을 받고 관리하느라 잘 시간이 없었습니다. 매일 저녁 숫자를 파악해서 새벽에는 김미정 권사님과 점검해 나갔습니다. 드디어 당일이 되어 비가 오는 중에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우리 팀 9명이 100명을 넘게 전도했습니다. 제 인생에 남길 만큼 보람 있고 즐겁고 신나는 날이었습니다. 웃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며 전도한 이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니어

The Olive Tree and  the Chunbukyo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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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맞춤법 … 맞춤법 바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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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낱말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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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맹례 권사님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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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획기사 속 책 소개

기획기사 속 책 소개

세계의 종교 이야기 (폴 발타 著)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 개인의 정신 생활과 사회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종교다. 이 책은 종교와 신앙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종교의 개념, 기원과 체계, 교리 등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각 종교의 위치와 종교마다 지니고 있는 특수성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각종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에서부터 시작하여, 세계 3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 교의 기원과 붓다, 마호메트, 예수 등 각 종교의 창시자, 성장 과정, 그 밖에 도교와 유교, 신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신앙을 다루었다. 종교는 생명의 기원과 삶의 의미, 신의 존재, 죽음과 사후 세계, 선과 악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통일된 대답을 제시한다고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다양한 기호와 상징을 통해 나타내 주고 삶의 미스테리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그는 종교를 갖고 살아가게 마련이며, 따라서 종교의 기원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종교의 종류와 형태도 민족과 지역에 따라 다양해졌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인간과 종교의 발자취를 더듬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종교 안내서라고 할 수있다. 책을 읽은 후에는 동서양의 각 종교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동서양의 각 종교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 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아스텍 제국 그 영광과 몰락 (세르주 그뤼진스키 著) 강력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지배했던 아스텍 제국. 그들은 강력하고 찬란하고 잔인한 문명을 일구어 냈다. 아스텍 제국의 토대를 만든 왕은 목테수마였는데, 그는 여러 곳에 전쟁을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동맹을 맺으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아스텍에서는 재앙이 발생하면 이를 신의 노여움이라 생각하고 신에게 공양물을 바쳐 재앙을 피하고자 하였다. 신에게 공양물로 바칠 포로가 필요해서 계속 전쟁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기 아스텍은 신분과 계급이 나눠져 있었고, 이에 따라 옷과 치장이 달랐다. 귀족 계급은 화려한 깃털, 팔찌, 황금 머리장식 등 사치스러운 치장을 통해 그들의 신분을 과시했다. 철저한 계급사회였지만 사회통합과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 했던 아스텍은 고유의 사법제도와 법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포로들에게는 끔찍한 공포정치를 실현했다. 전쟁에서 진 포로들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데, 바로 살아있는 포로의 가슴을 칼로 열어서, 아직 뛰고 있는 심장을 꺼내 신에게 재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아스텍에서 행해진 인간 희생제식은 인간에게 소중한 소유물인 피를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었다 스페인이 가장 놀랐던 식인제식은 사실 영적인 것에 접근하는 방식이었으며, 또 하나의 성찬식이었다. 스페인은 닥치는 대로 아스텍의 문명을 파괴했고 유럽 종교와 언어, 문화를 이식했다. 유럽의 식민지가 된 이후로 여러 근대사를 겪으며 지금의 멕시코가 된 아스텍 문명. 이 책은 비록 멸망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멕시코 역사 속에 남아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는 아스텍 문명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美 전역서 ‘콜럼버스 동상 수난시대’

리처드 도킨스 신작 《신, 만들어진 위험》 출간

도대체 비트코인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