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의 그날까지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우승의 그날까지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우승의 그날까지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오는 10월 9일 열리는 2022년 천부교 체육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양 팀 선수들은 한층 파랗고 높아진 가을 하늘 아래 막바지 연습에 돌입했다. 이에 양 팀 치어단이 선수들에게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청군 치어단은 “우승을 향해 달려온 청군 선수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청군 치어가 되겠습니다. 최강청군 화이팅!”이라고 하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백군 치어단은 “저희 백군 치어는 백군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우승으로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적백군 화이팅!” 이라고 하며 체육대회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2022 추석 장유 판매 시상식

2022 추석 장유 판매 시상식

신앙촌식품 품질의 우수성 믿고 찾는 분들에게 감사드려 9월 여성회 축복일이 있었던 지난 9월 18일, 2022 추석 장유 판매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개인 판매 부문 1위는 정지숙 사장(대전 산성점), 2위는 김표정 사장(청주 소비조합), 3위는 이영선 사장(기장 현대점)이 수상했고, 백화점 판매 부문에서는 1위 롯데백화점 마산점(마산), 2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기장), 3위 롯데백화점 창원점(진해)이 수상했다. 롯데백화점 마산점 류영희 팀장은 “평소 꾸준히 영업활동을 해 온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신앙촌 장유 선물세트를 받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기쁘고 감사합니다. 신앙촌식품의 우수성을 신뢰하고 찾아주시는 분들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열심히 뛰겠습니다.” 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신앙촌상회 서울 행당점 오픈

신앙촌상회 서울 행당점 오픈

신앙촌상회를 반드시 열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그동안의 많은 방황을 끝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촌상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오며 가며 눈여겨보던 장소가 있었는데, 마침 자리가 비어 놓쳐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요새는 가게 인테리어, 제품 구입, 제품 홍보, 체육대회 연습까지 매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피곤은커녕 갑갑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렇게 알차게 사는 삶이 올바르게 가는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앞으로도 선한 사업에 힘쓰며, 건강하게 일하겠습니다. 신앙촌상회 오픈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日본토 강타한 ‘난마돌’… 최대 1000mm 물폭탄

日본토 강타한 ‘난마돌’… 최대 1000mm 물폭탄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일본 본토를 강타하면서 2명이 숨지고 최소 110명이 다쳤다고 일본 NHK가 19일 보도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1000mm에 가까운 폭우와 강풍으로 산사태가 발생하고 절개지가 붕괴되는 등 일본 전역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또 80만 가구, 166만여 명에 대해 피난 지시 또한 내려졌다. 이로 인해 이날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역시 하루 뒤로 출국을 연기하고 상황을 살폈다. 19일 오후 9시 난마돌은 남서부 규슈 지역을 관통한 뒤 혼슈 서부 돗토리현에 상륙했다. 중심 기압 980hPa(헥토파스칼), 최대 풍속 초속 30m, 최대 순간 풍속 40m이며 시속 35km의 속도로 북동쪽으로 이동했다. 이번 태풍으로 15일부터 19일 오전 11시까지 미야자키현 미사토 내 일부 지역에 985mm, 미야코노조에 678.5mm의 비가 내렸다. 당국은 집중호우로 인한 강물 범람을 막기 위해 규슈와 시코쿠를 중심으로 전국 18개 광역자치단체에 있는 댐 105개의 사전 방류를 실시했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사전 방류를 한 2020년 이후 단일 태풍에 대한 대응으로는 이번에 가장 많은 댐에서 물을 미리 방류한 것이다. 일본 우주 로켓 발사 시설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는 외벽 일부가 뜯겨 나갔다. NHK에 따르면 19일 미야코노조 하천 제방 옆의 차량에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미야자키현 미마타에서도 작업장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40대 남성이 숨졌다. 히로시마현에서도 82세 남성이 행방불명됐다. 후쿠오카∼가고시마, 후쿠오카∼히로시마를 운행하는 신칸센은 이날 전면 중단됐고 도쿄행 신칸센도 일부 감편됐다. 일본항공(JAL) 등은 항공편 800편 이상의 운항을 중지했다. ‘난마돌’은 20일 오전 9시쯤 일본 센다이 북동쪽 약 230㎞ 부근 해상에서 온대저기압으로 변했다.

대만‧일본‧멕시코‧러시아까지 강진… 심상치 않은 불의 고리

대만‧일본‧멕시코‧러시아까지 강진… 심상치 않은 불의 고리

최근 지진과 화산 분화가 활발해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한 국가들에서 지진이 잇따르면서 대지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지질조사국(USGS)은 이날 오후 1시 5분께 멕시코 서부 미초아칸주 인근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진원지와 가까운 지역 쇼핑몰 외벽이 붕괴돼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미초아칸주의 병원 건물이 파손됐다. 또 멕시코 중서부 전역에서 건물이 흔들리고 전력이 끊기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랐다. 지진 직후에는 쓰나미 경보도 발령됐다. 이날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는 멕시코 해안 일부 지역에서 최대 3m의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불의 고리에 속하는 대만에서도 9월 17일과 18일에 규모 6.8 강진과 함께 73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다. 강진으로 인해 1명이 숨지고 14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다리와 도로가 끊겨 수백 명이 고립되기도 했다. 일본 오키나와현 서쪽 해역에서도 18일에 규모 6.1, 규모 5.5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관계 당국이 쓰나미 주의보를 내렸다. 21일 새벽에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동남쪽 353km 해역에서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했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환태평양 조산대에는 전 세계 활화산의 75%가 밀집해 있으며, 전 세계 지진의 90%가 이 지역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아동 성학대가 아니다. 청소년을 성학대 한 것이다”

“아동 성학대가 아니다. 청소년을 성학대 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 이슈를 다루는 웹사이트 원켓(Wonkette)에 미국 가톨릭 연맹 회장 빌 도노휴를 비판하는 스티븐 로빈스의 글이 올라왔다. 다음은 원켓에 올라온 글을 번역한 것이다.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지명된 조쉬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 법무장관은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일어난 성추행과 이를 은폐시켜온 가톨릭의 혐오스러운 역사를 폭로했다. 가톨릭 주교와 지도자들은 300명이 넘는 가톨릭 사제들이 수십 년간 수천 명의 어린이를 성학대했다는 보고서를 은폐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이 입을 못 열게 압박하고, 법 집행기관의 눈을 가렸다. 그들은 쓰레기들이었다. 가톨릭 연맹의 빌 도노휴 회장은 이 사실을 반박하고 싶어한다. 그는 조쉬 샤피로가 가톨릭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비난했다. 도노휴는 가톨릭 연맹 웹사이트에 “조쉬 샤피로가 사제들에게 한 행동은 불명예스럽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사제들이 피해자라고 한다. 도노휴는 이렇게 말했다. “샤피로는 70년 동안 1000명 이상의 어린이를 학대한 성직자 301명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언론에 말했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틀린 점이 있다. 첫째로 성범죄 혐의자들이 모두 성직자인 것은 아니며, 둘째로 피해자의 대부분은 아동이 아니라 청소년이다. 셋째로 그 보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피소된 사제들에게 자신의 혐의를 반박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도노휴는 마을을 이룰 정도로 많은 아이들을 학대한 범죄자들이 모두 사제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들 중 몇 명은 교육 중이거나 견습 사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벼락을 맞지 않고서야 “피해자들은 대부분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이다.” 라는 경멸적인 발언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일 수 없다. 청소년기의 대부분은 말 그대로 어린 시절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개자식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배심은 조쉬 샤피로가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은 어린 소녀를 병원에서 강간한 신부, 피해자를 가죽 끈으로 묶고 채찍질한 신부, 어린 소녀를 임신시키고 낙태까지 하게 했음에도 사역활동을 계속한 신부” 등 가톨릭의 끔찍한 아동 학대 사례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보도했다. 엄밀히 말해 피해자들이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이라고 해도 별반 차이는 없다. 또한 엄밀히 말해 소아성애자는 13세 이하의 아동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뜻하지만, “가톨릭의 보호를 받는 아동 성학대범들”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피해자들이 끔찍한 성폭행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소아성애 사제들이라는 단어 없이 살 수 있었다. 도노휴는 계속해서 우리를 구역질 나게 만든다. 도노휴는 “중요한 것은 어차피 범죄자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피고인들이 죽거나 사제직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샤피로는 단 두명의 사제만 기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샤피로는 공소시효를 중지시키기 위해 굳이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라고 했다. 가톨릭교회가 너무 오랫동안 범죄를 은폐하여 피해자들이 법적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은 샤피로의 잘못이 아니다. 샤피로는 2018년에 이렇게 말했다. “가톨릭교회가 학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정교하고 조직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아동 성범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오랫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두는 방법을 썼다. 이는 사건이 묻히기를 기다리며, 법 집행기관이 범죄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샤피로는 아동 성학대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지지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건부터만 해당된다. 도노휴는 조쉬 샤피로가 공립학교 성추행범을 기소하는 데는 관심이 없으면서, 정치적 목적을 갖고 가톨릭 교회만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어디에서든지 아동성추행범이 발견되면 그들을 기소하는 것은 훌륭한 정치이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아동학대가 아니다. 도노휴에게 말한다. 아동학대의 개념을 헷갈린다면 조쉬 샤피로의 대배심 보고서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합동하여 유익하게 되자”

연단을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되어야

독일 국민의 67%가 교회세 폐지에 찬성

캐나다 성학대 피해자, 가톨릭 사제와 교회 고소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하나님의 은혜는 이토록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이토록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구나’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나니 뱃속이 시원해지면서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껴 예배 시간 내내 진동하는 향취 은혜와 단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내리는 은혜를 체험하기도 생명물로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가족의 시신을 보고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 드려 제가 살던 충남 서산군 대산면 오지리에는 오지전도관이 있었습니다. 1962년쯤 당시 국민학생이던 두 아들이 일요일마다 전도관에 다닌다고 할 때도, 동네 교회에 다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전도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후부터였습니다. 아주머니들이 말하길 전도관에 가면 병자들의 병이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폐병을 앓아 수시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는 남편을 둔 저는 그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낮에 있었던 대화를 전했고, 오랫동안 객혈에 시달려온 남편은 반가운 기색을 보이더니 바로 다음 날부터 오지전도관으로 새벽예배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열심히 새벽예배를 다니던 남편은 어느 날부터는 본인이 새벽종을 울리기로 했다며 더욱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활기차 보이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전도관이 더욱 궁금해져서 저도 새벽예배를 따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막상 남편을 따라나섰지만, 예배를 드리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던 저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고, 찬송가도 잘 몰라서 어설프게 따라 불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전도사님은 교인들에게 물을 한 컵씩 따라주셨는데, 그 물은 하나님께 축복받은 귀한 물이라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객혈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전도관을 다닌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남편은 축복받은 물을 매일 마신 덕분이라며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 뒤로 남편은 물론 저까지 전도관에 더욱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전도사님이 하나님께서 안찰을 해주신다며 신앙촌에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소사신앙촌에 이어 덕소신앙촌도 완공된 시기였는데, 그날 하나님께 안찰을 받기 위해서는 덕소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도착한 덕소신앙촌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대규모 공장단지는 물론 새로 지어진 아름다운 주택이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천천히 덕소신앙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안찰을 받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안찰을 받으러 간 장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쳐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하나님께서 제 머리도 쳐주셨는데, 분명 손만 대시는 듯했음에도 세게 맞은 것처럼 아픔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도 잠시 뱃속이 시원해지면서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 몸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가벼워서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느낌이어서 전도사님께 말씀을 드리니 안찰을 통해 제 속의 죄가 씻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신기한 체험을 하고 나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고,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은혜의 울타리 신앙촌에서 살 수만 있다면 참으로 복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가족들과 상의하여 1967년에 첫번째 신앙촌인 소사신앙촌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소사로 이사한 후 새벽예배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제단에 도착해 예배실 문을 열었는데 참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깨소금 냄새 같기도 한 고소한 향이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예배를 드리는 내내 지속되었고, 나중에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향취라고 했습니다. 향취는 꽃이나 박하사탕 냄새 같기도 하고, 참기름 냄새처럼 고소한 향으로 맡아지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귀한 하늘의 은혜를 허락해주셨음이 너무도 감사했고, 그 귀한 은혜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더욱 맑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는 부지런히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소비조합원들이 유독 제 눈에 띄었습니다. 활기차게 움직이며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들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져서 저도 소비조합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으로 생명물 간장을 들고 소비조합 버스에 오른 날이었습니다. 버스는 종로를 지나고 청계천을 지나 남대문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시온 식당이라고 신앙촌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는데 버스에서 내린 소비조합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각자 고객을 만나러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남대문 정류장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신앙촌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조합이 된 첫날 저도 시온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지만 저는 만나러 갈 고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남대문과 가까운 회현동, 후암동 일대를 돌며 고객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서울 지리도 잘 몰랐던 저는 혹여나 길을 잃을까 봐 주변 지형물을 외워가면서 한 집 한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호기롭게 대문이 큰 집들만 골라서 두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오면 “안녕하세요? 신앙촌에서 나왔는데 혹시 신앙촌간장 써보셨나요?”하고 물었습니다. 제 인생의 첫 번째 고객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 분은 “신앙촌 간장이요? 맛있다는 소문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하고 반색하기에, 저도 반가워서 신앙촌간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던 고객은 간장을 구입했고, 처음으로 제품을 판매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홍보한 결과, 저는 그날 가지고 간 간장을 모두 판매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찾아갈 수 있는 고객이 생긴 저는 다음날부터 간장은 물론 속옷, 엑슬란 치마, 이불까지 하나둘 품목을 늘려가면서 더 많은 단골 고객을 만들었습니다. 단추 하나까지도 꼼꼼히 박음질 된 신앙촌 제품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저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새로 가지고 간 신앙촌 제품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며 하나하나 설명할 때의 즐거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몇 해 뒤 저는 덕소신앙촌으로 거처를 옮기고 더욱 활발하게 소비조합 활동을 했고, 1972년에는 기장신앙촌이 완공되어 그곳으로 축복일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되었습니다. 축복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다가 잠시 눈을 떴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실에 안개가 자욱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계신 단상 쪽은 뽀얀 안개로 뒤덮여서 하나님 얼굴도 겨우 보일 정도였습니다. 새벽도 아닌 대낮에, 그것도 실내에 안개가 껴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린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향기로도 맡아지고,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구나!’ 하고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저는 인천에서 사시던 어머니를 덕소신앙촌으로 모셔와서 함께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신앙촌에서 10년 넘게 지내시다가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굳어버린 왼쪽 팔이었습니다. 어머니는 1934년에 저를 낳으신 후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다가 잘못되어 왼팔이 제대로 안 움직이는 바람에 평생을 한쪽 팔로만 살아오셨습니다. 특히 왼손의 손가락 세 개는 심하게 오그라들어서 두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후 입관 예배를 드리며 생명물로 깨끗이 씻겨드리자 생전에 뻣뻣했던 어머니의 왼쪽 팔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오그라들었던 손가락 세 개도 모두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저는 너무 신기해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오므렸다 폈다 움직여보며 귀한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이토록 놀라운 생명물의 권능은 2014년 남편이 숨을 거뒀을 때에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생명물로 객혈이 완치된 남편은 그 이후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살다가 85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습니다. 남편의 입관 예배는 덕소 남자교회에서 진행했는데, 입관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잘 피었다고 신기해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얼굴은 뽀얗게 피어나 환해 보였고, 입술과 볼에는 혈색이 돌아 마치 깨끗이 씻고 잠이 든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생전보다 더욱 편안해 보이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저는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덕소에서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처음 소비조합을 시작하며 알게 된 단골 고객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와서 예전 이야기를 하며 소소하게 웃기도 합니다. 전화를 끊고 문득 처음 전도관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깨닫고, 소비조합으로 지내왔던 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전도관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제 삶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원래 잘 웃는 편이 아니었지만, 전도관을 다니고부터는 만나는 사람마다 “김 권사님은 뭐가 그리 기뻐서 노다지 웃고 다니세요?”하고 물을 정도로 웃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입가에는 찬송이 맴돌았고, 찬송가 가사가 마음에 와닿아 감동받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왜 그리 기쁘고 감동받았는지 잘 몰랐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은혜로 지켜주시는 하나님이 계셔서 제 삶이 늘 안전하고 평안했습니다. 세상의 풍파에서 벗어나 구원의 길을 걷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게 소망이 있다면 남은 시간 동안 허락해주신 귀한 하늘의 은혜를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다는 찬송가 가사처럼, 다가오는 날들이 맑고 성결한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구원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잊을 수 없어”

“구원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잊을 수 없어”

<지난호에 이어> 어느 날, 오전 내내 세탁소에서 일한 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처음 보는 젊은 신사 두 분이 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제주에 사는 장명이 씨가 맞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답하니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들은 제주도에 전도관을 개척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두 전도사님들은 막상 제주에 교회를 개척하러 왔으나 연고도 없고, 제주 지리도 몰라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넓은 공터에 천막이라도 치고 예배를 드리자고 의견을 모아가던 찰나 부산 당감동 전도사님이 저를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주에도 전도관을 지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나 기쁘고 설레서 최선을 다해 전도사님들을 돕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날부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식으로 전도관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예배 드릴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도사님들께 길을 안내하고,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제주 사투리를 통역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는 교통편도 좋지 않아서 멀고 험한 길을 걸어 다녀야 했지만, 저는 제주 전도관이 생긴다는 기대감으로 즐겁기만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가는 곳마다 임시 제단이 쉽게 구해졌다는 것입니다. 제주 시내에서는 전도관에 다니는 동생을 둔 할머니가 본인의 집을 흔쾌히 내어주셨고, 애월읍에서는 저희 고모가 살던 집의 아래층 전체를 빌려주며 거처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천읍에서는 큰 길가에 있는 집을 수월하게 임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총 3개의 임시 전도관이 제주도에 생겼고, 저희는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이루어 주신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드렸습니다. 이제 막 생겨난 제주 전도관에서는 활발한 전도 활동이 펼쳐졌고, 저는 3개의 임시 전도관을 돌며 부족한 일손을 도왔습니다. 조금 지나니 주일학생도 생기고 여청들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반면, 제가 세탁소보다 전도관에 가는 시간이 많아지자 오빠는 전도관에 가지 말라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구원의 진리가 전도관에 있음을 깨달은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을 따라가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1967년, 제가 스물두 살의 나이로 제주도를 떠나 덕소신앙촌으로 가게 된 이유였습니다. 덕소신앙촌에 가보니 메리야스, 담요, 이불, 양재, 슬레이트, 피아노, 제강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많았습니다. 저는 직조공장에 입사하였는데, 당시 신앙촌 이불의 인기가 높아서 제가 일하는 직조공장도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베를 짜는 방법을 배웠는데, 원단이 착착 짜여지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살며, 신앙을 지키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샘물 솟듯 하니 즐겁게 웃으며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직조 공장이 확장 이전하게 되면서 저는 그 사이에 건설대로 지원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건물을 짓던 도중 쇠 파이프가 제 머리 위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의식을 잃었고, 건설대 언니들은 리어카에 저를 싣고 급하게 하나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쓰러진 저를 본 하나님께서는 한참 동안 안찰을 해주셨고, 잠시 후 저는 의식을 되찾고 깨어났습니다. 겨우 정신은 차렸는데 머리는 계속 어지러웠고, 코와 입안에서 피 냄새가 났습니다. 그 뒤로도 며칠간 하나님께 강한 안찰을 받았는데, 정확히 3일이 지나자 어지러움은 사라지고 피 냄새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빠르게 회복되어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하는 저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즈음, 오빠가 둘째 동생과 저를 보러 덕소신앙촌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혼나지는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덕소신앙촌 이곳저곳을 둘러본 오빠는 의외로 별말 없이 잘 지내라는 인사만 남기고 제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외신에 소개될 정도로 아름다운 덕소신앙촌과 즐겁게 지내는 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여서 안심하고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오빠는 전과 달리 전도관과 신앙촌 이야기가 나와도 크게 반대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1970년에는 기장신앙촌 건설을 위해 기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기장은 땅이 매우 질어서 기둥 하나 세우는 일도 쉽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현장을 진두지휘하시며 함께해 주시니 항상 든든하고 힘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도중 실수로 시멘트에 다리가 깊이 빠져서 정강이에 시멘트가 묻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계속 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멘트가 묻었던 자리에 상처가 생기면서 심하게 진물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상처가 생기니 쉽게 낫지 않아 고민이 되었는데, 건설대 언니가 하나님께 제 사정을 말씀드려서 축복을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언니와 함께 하나님 댁을 찾아가 상처를 보여드리니 “왜 이렇게 됐어.” 하시며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진물이 줄줄 흐르던 상처는 다른 사람이 봐도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아물었습니다. 그 후 저는 개인 사정으로 1970년대 후반에 다시 제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의 정체를 벗기시고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던 놀라운 그 은혜가 하나님이 아니시면 보여주실 수 없는 하늘의 권능이었음을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로 몸이 구부러진 채 불편한 자세로 돌아가신 권사님 생명물을 입에 넣어드리고,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몸을 깨끗이 씻겨드리자 굳어있던 권사님의 팔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굽었던 몸도 곧게 펴져 아름답게 피어난 권사님을 보며 하나님 은혜에 더욱 깊이 감사드려 2000년에는 제주 일도 천부교회가 신축되었습니다. 처음 제주도에 전도관을 세우기 위해 내려오셨던 전도사님들과 여기저기 교회 건물을 알아보러 다니던 기억이 떠올라 감회가 무척 새로웠습니다. 도배 기술을 배운 적이 있던 저는 새로 건물을 신축할 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교회 내부 곳곳의 벽지를 직접 시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도교회에 전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도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지어진 일도교회는 당시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져 제주 제민일보에 아름다운 건축물로 소개된 적도 있고,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이 공부를 위해 사진을 찍어 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일도 천부교회는 저의 기쁨이자 자랑이기에, 매주 교회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금 깨달은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4월 서귀포 천부교회의 권사님이 돌아가셔서 입관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오랜 투병 생활로 몸이 몹시 말라 있었고, 몸을 구부린 채 불편한 자세로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입관예배가 시작되어 관장님께서 생명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고인의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생명물이 어찌나 잘 들어가던지 ‘권사님이 투병 생활을 하며 그동안 못 드셨던 생명물을 원 없이 드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또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권사님의 몸을 깨끗하게 씻겨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굳어있던 권사님의 팔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이고, 굽었던 몸도 곧게 펴졌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까맣고 말라있던 권사님의 얼굴은 뽀얗게 피어났고, 입술과 뺨에는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미소를 띤 채 잠이 든 듯한 모습은 무척 편안해 보였습니다. 가장 신기한 것은 권사님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이슬이었습니다. 천부교식으로 입관 예배를 드리면 돌아가신 분의 얼굴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름답게 피어난 권사님으로 인해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크게 감격하며 하나님 은혜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신앙촌에 올 때마다 건설대로 일하던 시절 다정한 음성으로 “제주에서 왔지?” 하시며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한없이 베풀어주시며 감람나무 가지들이 구원 얻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저의 남은 시간들은 성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라 하셨던 그 뜻을 따라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건강한 도전, 함께 뛰는 기쁨이 시작되다

천부교 체육대회는 1998년 이후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천부교인들의 건강 축제다. 본지는 그동안 체육대회를 통해 건강을 되찾거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어왔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체육대회로 건강 찾아 2004년 어깨 통증이 너무 심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머리로 올라가는 혈관이 막힐 수 있으니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2004 천부교 체육대회 일정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건강해져야지.” 단단히 각오를 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강으로 나가 연습을 했습니다. 서서히 체중이 줄면서 어깨와 등살이 빠지고 아프던 어깨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체육대회 이후로 건강해진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인사말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예뻐진 거야.” 양순심 권사 / 면목교회 ▶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생겨 2007 천부교 체육대회가 발표되고 우연히 운동 연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아 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보라는 권유에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함께하다 보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추억의 고무줄’ 선수와 테마응원전 선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전도로 교회에 나오게 된 저는 사실 체육대회에 참여하기 전에는 교회에 나와도 마음이 냉랭했습니다. 그런데 체육대회 연습을 함께 하면서 감사한 점이 참 많이 생겼습니다. 마라톤 5㎞를 완주하여 건강해지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신앙이 아닌 내 신앙을 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영희 집사 / 노량진교회 ▶ 미소를 찾게 해준 운동 저는 갑자기 높아진 당 수치에 몸이 무거워져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천장만 바라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간신히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2016 천부교 체육대회 스마일 생활체조 선수들의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체조 동영상 속 동작을 따라 하다가 틀리면 서로 마주 보며 깔깔거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흥미를 느낀 저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 해 보았습니다. 얼마 후 저는 체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 몸도 힘드신데 쉬세요.” 저의 몸상태를 아시는 몇몇 관장님들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체조선수를 포기하는 것은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생활체조 연습이 너무 재미있는 데다가,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더더욱 열심히 연습에 임했습니다. 안 올라가던 팔도, 비틀거리던 걸음걸이도 이제는 제가 봐도 체조선수 같구나 할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6070 스마일 생활 체조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경기 이름에 걸맞게 밝은 미소를 되찾게 해준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김종임 권사 / 덕소교회 ▶ 잊지 못할 그날의 기쁨 1998년 체육대회가 있다고 연습을 하러 한번 소사신앙촌에 가보긴 했으나 별 기대가 없었기에 체육대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청주 집에 내려갔다가 집에 있던 98 천부교 체육대회 비디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놓친 기회가 안타까웠습니다. 다음번 체육대회 때는 무엇이라도 꼭 참여해야겠다고 혼자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여름방학. 체육대회를 앞두고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모였는데 담당 관장님이 저에게 응원을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기다리던 체육대회, 저는 기쁜 마음으로 선뜻 대답했습니다. 함께 응원 연습을 하며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연습하는 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잠이 많은 편인데도 연습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체육대회 날, 쉬지 않고 응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훈련된 미소가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기쁨에 얼굴에는 계속해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찍힌 사진 속의 저는 다 웃고 있었습니다. 테마 응원전을 하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하나님 안의 일은 이렇게 기쁜 거구나!’ 그날 확실히 느꼈습니다. 체육대회 때 느꼈던 그 기쁨은 지금도 힘을 주는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이은영 관장 / 미아교회 ▶ 체육대회로 전도되어 1998년, 당시 고3이던 저는 친구의 전도로 천부교 체육대회가 열리는 신앙촌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대학생이 되어 3년마다 열리는 천부교 체육대회에 선수로 참가하기 위해 2001년 다시 신앙촌을 방문했습니다. 체육대회 규모에도 놀랐지만 그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운동하는 신앙촌 사람들의 단합된 모습과 열정에 더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001년 천부교 체육대회가 끝난 후 저는 부산 서면 천부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위해 노력하는 반사들과 관장님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주일학생 차량 운전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다시 3년이 지나 맞이한 2004년 체육대회는 그 전의 두 번의 체육대회와 달랐습니다. 천부교인이 되어 처음 참가하는 체육대회였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나이 드신 어떤 권사님이 오시더니 저한테 운동 연습을 한 후부터 까만 머리카락이 자란다며 보여주셨습니다. 체육대회가 단순히 경기의 승패만을 따지는 대회가 아닌 교인들의 건강은 물론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2007년 3월 교역자 발령을 받았습니다.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신앙인도 운동선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제 자신을 늘 이기면서 힘차게 달려가고 싶습니다. 정미옥 관장 / 기장교회 ▶ 다시 찾은 신앙 저는 1998년 체육대회를 계기로 다시 천부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살며 큰 기쁨이나 즐거움도 없었고 신경성 위장병이 심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에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시온쇼핑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는 않아도 가끔 그곳에 들려 물건도 사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루는 시온쇼핑 주인인 김정수 권사님이 꼭 오라고 해서 갔더니 관장님이 오셔서 심방 예배를 드리는 자리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니 제 마음이 조금 열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며칠 후 권사님은 체육대회가 있으니 가자고 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신앙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곳에서 진한 향취를 맡았습니다. 오랫동안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던 저는 그날 몸도 마음도 가뿐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새벽예배를 드리며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에는 마라톤 선수로 뛰어 50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연습할 때도 즐겁게 연습을 했고, 경기 당일에는 신기하게도 나는 것 같이 몸이 가벼웠습니다. 역시 체육대회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제가 체육대회에 가서 기쁨의 은혜를 받았듯이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가서 은혜의 자리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길숙 권사 / 충무교회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초창기 천막집회와 생명물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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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24> 종교와 매춘의 공생관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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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프란치스코 교황이 재직하던 가톨릭 운영학교서 학생 42명 성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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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논단

탄소중립과 친환경 정책 심각하게 인식해야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입사 35주년 기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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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10주년 에세이> 조윤선 씨 많은 보호와 사랑 속에서 성장해 신앙촌에서의 10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 위해 입사생이란 이름으로 신앙촌에 들어와 즐겁고 감사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힘든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졌던 그 시간마저도 여러모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곳에서 살아온 모든 날들은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었고,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도움을 받으며 지내왔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늘 보호해주셨기에 지금까지 부족함 없이 신앙촌에서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닦아주신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 일을 하며 사는 것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생활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에 ‘이 길은 너희가 노력해서 가는 길이고, 내가 도와주는 것이다.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해서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신앙촌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허락해주신 귀한 은혜 속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입사 20주년 에세이> 박혜영 씨 하나님 말씀 안에서 분별력 있는 신앙생활 하고파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 친언니가 시온실고에 먼저 입학하면서 입사생이 되었습니다. 축복일 예배가 끝나면 몇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집에 가야하는 저와 달리 신앙촌에서 생활하는 언니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빨리 졸업하고 시온실고에 입학해서 신앙촌에서 살고 싶다.’ 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간절한 소망대로 입사생이 된 저는 신앙촌에서 더 깊이 있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입사생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점점 깨달아갔습니다. 그러다 확실히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된 것은 할머니 장례식 때였습니다. 신앙촌에서도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 모습을 여러 번 보았지만, 할머니 장례식 때는 모든 장례 절차를 함께하며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할머니를 영안실에서 꺼냈을 때 나무 인형같이 딱딱한 할머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며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을 적신 수건을 할머니 얼굴에 덮어드리고,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닦아주셨습니다. 그 사이 저희는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는데, 찬송이 끝나고 할머니 얼굴을 덮었던 수건을 걷으니 할머니 코에서부터 뽀얗게 피어난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수의를 입히려고 할머니 손목을 들었는데, 손목이 너무 부드럽게 움직여서 수의도 쉽게 입혀드릴 수 있었습니다. 편안한 모습으로 주무시는 듯한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저는 생명물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입사생으로 지낸 지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앙촌에 살면서 배운 것은, 신앙촌에 오래 산다고 해서 구원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만큼 많은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 하나님 말씀 안에서 분별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며 노력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진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길이 보여요”

“진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길이 보여요”

<장유 판매 우수사례> 신앙촌상회 대전 산성점 정지숙 사장 미리부터 꾸준히 거래처 확보해야, 뭐든지 노력하면 해낼 수 있어 대전에서 활동하는 소비조합 정지숙 사장. 얼마 전부터 장유 선물 세트 판매 성적이 꾸준히 오르더니 결국 올해 추석 시즌에 개인 판매 부문 1등을 하게 되었다. 수상의 기쁨을 안은 정지숙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이번에 2022년 추석 장유 선물 세트 개인판매 1등을 하게 되셨어요. 혹시 특별한 판매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비시즌에도 꾸준히 거래처를 찾아갔어요. 많게는 한 달에 3~4번 정도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찾아가 만날 때마다 밝게 인사를 건네며 꾸준히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물 세트 판매 시즌이 돌아왔을 때 신앙촌간장을 떠올려주시더라고요. 농사를 할 때도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곡식을 추수하듯이 미리부터 거래처를 다니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 평소에 거래처를 꾸준히 자주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객으로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해요. 작은 소리라도 고객의 의견은 귀 기울여서 듣고, 저의 편의보다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고객들이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어떤 분이 제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는다. 언제나 진심으로 대해 줘서 고맙다.” 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제가 더 감동받았습니다. 노력을 알아봐 주시니 제 입장에서도 너무 감사했어요. # 말로 하지 않아도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요. 그렇죠.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신앙촌 제품의 품질이에요. 제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홍보한다 한들 제품력이 별로면 아무도 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신앙촌 제품의 우수성은 모두가 알아주잖아요. 우선적으로 좋은 제품이 있기에 진심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촌 제품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간장이 너무 맛있어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선물이예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훌륭한 간장을 만들어주신 본사에 감사드리게 됩니다. # 항상 좋은 판매성적을 유지하시는데 원래 판매에 소질이 있으셨나요? 원래 성격은 소극적이었어요. 그런데 소비조합하면서 성격도 바뀌고,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대형마트에서 런 판촉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CS(Customer Satisfaction) 교육을 받으면서 친절과 미소의 중요성을 깨달았거든요. 제가 웃으면서 고객을 대하면, 고객도 저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을 직접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웃으며 인사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뭐든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소비조합으로 일하며 만났던 고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가요? 2013년 신앙촌상회를 오픈하고 처음 만난 고객이에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홍보해 보자고 결심하고 학교 급식으로 요구르트 런을 홍보하러 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소심하고 간이 작았었던 것 같아요. 영양사 선생님을 만나 런을 홍보하는데 반응이 너무 차가운 거예요. 큰맘먹고 홍보하러 왔는데 냉랭하니까 속상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소심했던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을 무조건 내 편으로 만들어야겠다.’ 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 여러 번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생님도 점점 마음을 열고 결국 친해지게 됐어요. 지금은 적극적으로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 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됐습니다. 이제는 서로 더없이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제 막 소비조합을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일단 적극적으로 움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 이런 거 못하는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밖에 나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잖아요. 그 사람이 미래의 단골 고객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거절을 두려워 마시고 말을 걸어보세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을 거예요. 또 주변에 판매 잘하는 소비조합 선배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과 조언을 요청하세요. 진심을 다해 고민해 주고 조언해주실 분들이니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필요한 정보를 얻으셔도 좋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중에 내가 자격이 되면’ 이런 생각으로 뒤에 후보 선수처럼 남아있기보다는,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해 달리는 주전 선수가 되면 좋겠어요.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면 런(Run) 데이 같은 본사의 미션부터 도전해 보세요. 시작이 반이라고 했습니다. 미션을 달성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과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요!”

뮤지컬 의상과 인형 탈 만드는 샛별부 반사 백선영 씨 인터뷰 신앙촌에 온 아이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고자 노력하는 샛별부 반사들. 이들은 몇 달 전에도 뮤지컬 <피터팬>을 선보이며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대목. “도대체 뮤지컬에서 쓰이는 저 의상과 인형탈은 누가 준비했을까?”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때 앙드레 백으로 불렸으며, 백가이버, 연금술사 등 다양한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샛별부 반사 백선영 씨다. ■ 다양한 뮤지컬 의상 직접 만들어 전에 샛별부 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뮤지컬 의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물은 적이 있었다. 라인이 살아있는 후크선장의 붉은 코트와 나뭇잎 디테일이 돋보이는 피터팬의 초록 옷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사들에게 들은 대답은 백선영 씨가 천에 쓱쓱 그림을 그린 뒤, 뚝딱뚝딱 옷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선영 씨는 “예전에 신앙촌 한복부와 양재부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 미싱하는 법도 배우고, 옷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하면서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져서 옷 패턴뜨기를 배운 적이 있어요. 패턴 뜨기는 옷 만드는 기초라고 보시면 돼요. 그때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부족하지만 옷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샛별부 반사들도 옷에 관한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준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피터팬 옷을 만드는데, 배역을 맡은 유경이가 ‘언니 나뭇잎을 붙여보면 어떨까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뭇잎을 달아봤는데 훨씬 멋진 거예요. 각자 맡은 배역에 애정이 있다 보니,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캐치해서 좋은 아이디어를 주니까 고마워요.” ■ 대형 인형탈도 뚝딱뚝딱 선영 씨는 축복일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형탈도 여러 개 제작했다. 할머니, 딸기 캐릭터에서부터 자두, 뽀로로, 라이언까지 다양한 인형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탈 만드는 법은 언제 또 배웠을까?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대신 중학교 때 소조라고 찰흙으로 인물 두상을 빚어내는 걸 배웠거든요. 그때 입체 모형에 대한 이해가 생겼던 것 같아요. 조소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빚어나가는 반면, 인형탈은 네모난 스펀지를 밖에서 안으로 깎아 나가는 거라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요. 전체적인 모양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입체로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는 같아요.” 백선영 씨가 처음 인형을 만든 것은 2003년쯤 샛별부에서 기존에 하던 연극 대신 새롭게 손 인형극을 기획하면서 부터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선영 씨가 실력을 발휘해 손 인형을 만들었고,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이번에는 사람이 쓸 대형탈을 만들자는 거예요.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서 거절했죠. 솔직히 말하면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샛별부 관장님께서 할 수 있다고 힘을 북돋아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도 찾아보고, 책으로도 공부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만들었어요.” 그렇게 공연 전날 밤까지 실로 만든 인형 머리카락을 본드로 붙여가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인형탈은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장아장 꼬마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학생 반사들의 반응이 더 뜨겁더라고요.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고 보람됐습니다.” ■ 기뻐할 아이들 생각하면 힘이 솟아 늦은 시각, 샛별부 동아리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백선영 씨가 퇴근 후 인형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영 씨는 요즘 새로운 탈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천부교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습만화 ‘단비야 천부교회 가자’의 주인공 수정이와 단비 캐릭터다. 늦은 시간까지 스펀지를 다듬고 있는 선영 씨에게 힘들지는 않은지 물었다. “가끔 몰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면 체력이 떨어져서 피곤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이 새로운 캐릭터 탈을 보고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어느새 다시 힘이 나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샛별부 반사들이 그럴거예요. 아이들에게 축복일에 신앙촌에 오면 즐겁고 행복하다는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요. ‘정말 축복일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공부였다면 이렇게 열심히 못 했을 거라며, 샛별부 일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백선영 씨의 미소가 누구보다 환했다.

자유율법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목표

자유율법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목표

새벽예배에 나와 전도 다짐해 해마다 알찬 열매 맺고 싶어 생활하는 중에 전도를 마음에 새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전도에 대한 목표가 있으니 천부교인으로서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언제 어디서든 전도하고자 한다.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대문교회 정태영 권사. 8월 축복일 신앙촌에서 정권사와 그가 전도한 정정길 씨를 함께 만나 보았다. 정태영 권사는 어릴 때부터 천부교회를 다니는 집안에서 자랐다. 57년도에 어머니 등에 업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예배에 참석한 이후 꾸준히 교회를 다니며 은혜 체험도 많이 했다고 한다. “실제로 제가 체험한 은혜가 있으니 우리 종교에 확신이 있지요. 할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예쁘게 피어 가시는 걸 보고 더욱 확고한 믿음이 생겼어요. 너무도 확실한 증거가 있기에 꾸준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도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새벽예배에 나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부터였다. 전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자 그의 머릿속에 정정길 씨가 떠올랐다고 한다. 건축설계사인 정권사가 20여 년 전 공사와 관련해 소개받은 사람이 바로 시공업체 사장인 정정길 씨였던 것이다. “둘다 건설 일을 하다보니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는데, 공사를 같이 맡게 되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천부교회에 나와볼 것을 권하며 경전을 드렸어요. 새벽예배에 다녀와서 이 사람을 꼭 전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화가 잘 통했고 조금씩 전도의 길이 열리게 되었어요.” 그동안 정권사로부터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받았던 정정길 씨가 작년 추수감사절, 드디어 신앙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신앙촌에 오고서야 신앙촌이 신앙인의 마을이라는 것을 알았지 그전까지는 단지 마을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으며 천부교는 처음 들어 봤다고 했다. “나와보니 편안하고 다른 종교에 비해 허상이 없다고 할까요. 숭상을 모시지 않더라고요. 마리아니 예수니 앞에 그런 게 없고 오직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어요. 다른 종교보다 깨끗하다는 느낌도 있고요.” 정정길 씨는 그날 이후로 동탄 집에서 정권사가 다니는 서대문교회까지 매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으며, 축복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있다.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그는 지금이 인생의 전환기라고 설명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말에도 여러 모임이 있잖아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마다 가족 모임도 있고요. 오늘도 역시 모임이 있지만 그것을 마다하고 신앙촌에 온 것은 그만큼 저에게 중요한 곳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예배에 빠지는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쉽지만은 않아요. 시간을 요하는 것이지요. 저 자신도 나와의 싸움을 하고 있어요.” 한번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정정길 씨의 이런 성격이 정권사는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전도를 하더라도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 신용관계에서나 맺고 끊음이 정확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정길 씨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렇다면 신앙인으로서 또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권사는 어떤 모습일까. “너무 착해요. 설계를 하면서도 신앙 또한 꾸준히 가지고 가고 있는 것 같고 전도할 때 올인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서 믿음이 강하다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길을 알려준 이 친구에게 감사해요.” 교회 나와서 지금까지 잘하고 있지만 정권사는 정정길 씨에게 바람이 있다고 했다. “집과 거리가 멀긴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새벽예배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차원 깊은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꾸준히 잘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정권사의 목표는 한 해 한 해 꾸준히 알찬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다. “천부교회에 나와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고 교인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면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느껴질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저희는 자유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니까요. 추수감사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유율법을 지킬만한 사람들을 꼭 전도해서 공로도 쌓고, 은혜받는 제가 되겠습니다.”

주니어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요!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요!

지난 6월 학생축복일,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이 공연된 무대에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샛별부 반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피터팬 팀은 공연을 위해 오랫동안 연습해왔다고 한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을 반납하고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면서도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했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피터팬>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제작 과정이 궁금해요. 이유경: 작년에 했던 뮤지컬 <행복한 베이커리>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 줬어요. 그래서 샛별반 모임에서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그중 <피터팬>으로 결정돼서 그때부터 대본과 노래, 안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민정: 기숙사 1층에 ‘리락쿠마 방’이라고 있어요. 처음에는 대본과 안무 짜기, 노래 개사 작업의 대부분이 그 방에서 이뤄졌어요. 다들 퇴근 후에 모이다 보니 대본 회의를 조금만 해도 밤 9시, 10시 인거에요. 그런데 오히려 그 시간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어요. 약간 피곤한 상태에서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대화하다 보니 평소였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기발한 웃음 포인트가 나온 것 같아요.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도 웃으며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박지영: 배경음악을 검색하는 일은 각 장면마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예를 들어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BGM’, ‘장엄한 음악’ 등으로 유튜브에 검색해서 어울리는 음악을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전보다 출연진이 많이 늘었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했나요? 이유경: <행복한 베이커리>보다 많은 수의 배우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입사생 언니, 동생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캐스팅했습니다. 식품여고 출신이라면 대부분 뮤지컬 공연 경험이 있거든요. 그때 즐거움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분명 같이 해줄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가장 인기 많았던 후크 선장 지은 언니는 원래 노래만 부탁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노래는 물론 연기도 너무 잘하셔서 고심 끝에 후크 역을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진짜 기뻤습니다. 각자 맡은 일이 달랐을 텐데, 공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이지은: 여러 피터팬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목소리와 제스쳐가 중요하더라고요. 누가 봐도 ‘이 사람은 후크선장이구나’ 할 정도로 보이게 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가 나오니까 ‘나쁜 후크 선장이 나왔다!’ 하는 소리가 들려서 ‘아 내가 후크로 보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연습할 땐 힘들었지만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수진: 저는 무대 바깥에서 성우를 했어요. 배우의 연기 타이밍에 맞추어 소리 내는 것을 가장 신경 썼습니다. 또 몰입감 있게 각각의 캐릭터와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뮤지컬이다 보니 노래도 하게 되었는데요. 박자가 틀릴까 봐 많이 떨렸습니다. 제가 어릴 때 뮤지컬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어서 <피터팬>을 본 아이들도 마음에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끝으로 <피터팬>에는 처음 뮤지컬을 하는 새내기부터 오랫동안 샛별부를 지켜온 맏언니까지 함께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안해림: 연습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무대에 선 당일날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저한테 ‘토끼야 안녕’하면서 인사하는 모습도 정말 귀엽고. 그동안 걱정했던 많은 것들이 아이들 웃음소리와 함께 싹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강성실: 오래 샛별반을 해왔지만 뮤지컬 공연은 항상 새롭고 즐거워요. 축복일에 오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한다고 늦은 시간까지 땀 흘려 연습한 어린 입사생 친구들이 너무 예쁘고 대견했어요. 또 무대 밖에서 최선을 다해준 성우들, 소품팀, 의상 담당, 메이크업 담당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마음을 모아 더 좋은 공연과 콘텐츠를 준비하는 샛별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81. 천부교 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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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를 운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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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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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숙 권사님 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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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세계인의 주목 받는 K-푸드 뉴욕타임스 SNS, ‘간장계란밥’ 소개

세계인의 주목 받는 K-푸드 뉴욕타임스 SNS, ‘간장계란밥’ 소개

K-푸드, K-뷰티, K-드라마, K-팝 등 한국 문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전세계적으로 한국에서 유행이거나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UK는 올해 1월 ‘숙취에 좋은 전 세계 9가지 음식’ 중 하나로 전주 콩나물국밥을 소개했다. 로렌 쇼키 음식평론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해장국으로 파, 고추 등을 썰어 넣은 전주 콩나물국밥은 매우 인기 있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CNN에서는 지난 3월 ‘리커넥트 사우스 코리아’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달고나 커피’, ‘차박(차로 하는 캠핑)’ 트렌드를 조명하기도 했다. 7월에는 미국 스팸이 부대찌개를 ‘클래식 부대찌개 아미 스튜’(Classic Budae Jjigae Army Stew)라며 한국 음식으로 공식홈페이지에 소개했다. 뉴욕 타임즈는 SNS를 통해 한국인의 간장계란밥을 소개했다. (사진) 18일 뉴욕타임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간장계란밥은 한국인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식사로, 계란프라이를 흰 밥에 올려 먹는 메뉴다”라며 “간장을 두르고, 김가루를 뿌려 완성한다”고 레시피를 설명했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참기름과 함께 비비면 더욱 맛있다”는 꿀팁도 이어졌다. 한편, 국내 네티즌 사이에서는 생명물간장이 간장계란밥에 곁들이면 맛있는 간장으로 언급되고 있다.

생명물두부를 넣은 볶음밥, 칼로리 낮은 한끼 식사로 추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솔솔~ 신앙촌 간장 비빔국수

깊고 부드러운 맛 버섯 순두부 들깨탕 만들기

하루 10분 체조로 건강 지켜요!

하루 10분 체조로 건강 지켜요!

나이가 들면 근육이 줄어 팔다리가 가늘어진다. 근육에 혈액 공급이 잘 안되고, 근육이 녹아 없어지는 것을 막아 주는 인슐린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육 손실 막는 운동 영국 노팅엄대학교 임상생리학과 연구팀은 60대 후반 노인과 25세 젊은 남녀 그룹을 대상으로 다리 근육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단백질을 측정했다. 아침 공복에 한 번, 이어 아침식사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정도의 인슐린을 주사하고 이 단백질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젊은이들의 몸에서는 밤새 근육이 자연적으로 일부 녹아내리는 것을 인슐린이 잘 막아내 근육 손실이 적었다. 그러나 노인들에게선 인슐린이 제 활약을 못하면서 근육 손실을 막지 못했다. 잠을 잘 때마다 노인의 근육은 자연적으로 소실된다는 결론이었다. 또한 식사 뒤 다리에 공급되는 혈액량을 측정했는데 노인에게선 젊은이만큼 혈액 공급이 원활치 않았다. 혈액을 통해 다리 근육에 영양분과 호르몬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서 근육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운동을 정기적으로 해 근육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내 줘야 한다. ◇하루 10분 체조로 건강 지키기 건강을 위해 운동을 결심했지만 아직 딱 맞는 운동을 찾지 못했다면, 체조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야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팔을 뻗고 다리를 드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모든 근육을 효과적으로 자극해 주는 운동이 바로 체조다. 체조는 느리고 단순해 보이지만, 하루에 10분만 꾸준히 해도 충분히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체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학교 다닐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봤던 국민체조다. 국민 체조를 예로 들면, 1분당 6.3kcal가 소모돼 에어로빅이나 속보만큼 운동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시작 1분 뒤부터는 지방 소모율이 가장 높은 최대 심박수의 60~70%에 도달해 체중 감량 효과도 볼 수 있다. 한 번에 5분쯤 소요되는 체조를 두 번씩 10분만 매일 투자한다면, 평균 65kcal를 소모해 성인이 하루에 필요한 운동량의 10%를 해결하고 유연성과 근력도 강화할 수 있다. 매일 10분 자신에게 맞는 체조를 생활화하는 것, 균형 잡힌 건강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체조의 효과 첫째, 몸을 고르고 균형 있게 발달시킨다. 인간의 신체는 적당히 사용하면 발달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만다. 체조는 발달하지 않은 부위의 근육은 강하게, 약하거나 지방이 많은 부위는 지방을 제거해 강한 근육으로 만든다. 둘째,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몸을 가뿐하게 하고 몸이 활성화돼 마음을 쾌적하게 만든다. 특히 음악 체조는 신체에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산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해 심장과 폐의 지구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또한 리듬과 템포에 근육이 반사적으로 움직이게 돼 피로를 잊게 만들고 빨리 회복시켜 준다. 셋째, 신체의 각 부위에 신선한 자극을 줘 신체기능의 퇴화와 노화를 방지한다. 특히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음악 체조는 치매예방 효과도 있다. 넷째, 질병과 상해를 예방한다. 운동을 하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해소시켜 줄 뿐 아니라 몸의 저항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체조를 규칙적으로 하게 되면 질병 및 부상 위험이 줄어든다. ◇체조 시 유의사항 모든 운동에서와 마찬가지로 근육을 풀어 주거나 관절을 움직여 가볍게 준비운동으로 시작하고 무리가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동작부터 시작해 점차 어려운 동작으로 넓혀간다. 마무리 시에도 맥박수와 신체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갈 수 있도록 가벼운 동작으로 정리해야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으니 정리운동도 잊지 말자.

축축하고 끈적이는 땀, 도대체 땀은 왜 나는 걸까?

단 음식을 먹으면 1시간 내에 일어나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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