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내리는 신앙촌 산책로를 거닐다

가을비 내리는 신앙촌 산책로를 거닐다

9월 2일, 힐링 산책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회 교인들. 참가자들은 저녁 식사 후 신앙촌 신정문길에서 출발하여 식품단지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었다. 힐링 산책은 비 내리는 신앙촌의 운치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전파하는 감람나무 가지의 사명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전파하는 감람나무 가지의 사명

남성회 축복일…장년회 모임, 사업시상식 “거짓 종교의 악행 밝히고 참 종교의 가치 전하며 매 순간 의미있게 채워야” 지난 8월 20일 신앙촌에서 남성회 축복일 예배가 있었다. 이날 예배를 인도한 정주현 관장(부산교회, 남부총무)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은혜를 많이 허락하시는 것이 전도입니다. 신앙신보의 내용을 보면 참과 거짓 종교를 구별할 수 있고, 천부교의 가치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 사제와 신부들의 지속적, 체계적, 조직적인 성범죄와 아동성학대에 대한 추악하고 악랄한 악행들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종교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교의 역사적 종교사기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이때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주는 은혜를 입은 사람은 죄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돌이켜야 한다. 이 진리를 전파하여 그들을 깨우쳐서 의의 길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자의 전도의 사명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꾸준하게 전도에 힘쓰며 1초 1초 순간들을 나의 구원을 위해 가장 가치 있는 날로 채우는 감람나무 가지들이 되어야겠습니다”라고 설교했다. 축복일 예배를 마친 후 가진 장년회 모임에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심정으로 일에 임했을 때 사업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김봉호 권사(부산교회)의 사례담이 발표되었다. (관련 기사 6면) 이어서 김종일 관장(서대문교회, 중부총무)은 “축복일 예배에 참석하는 목적은 단 하나, 하나님의 귀한 이슬성신 은혜를 받아 죄를 씻고 구원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일 안에서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계속 연결받을 수 있도록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라고 전했다. 2분기 사업시상식에서는 이용식 권사(서대문교회)가 최우수상을 차지했으며, 김석주 권사(서대문교회), 김선출 권사(소사교회), 이경수 승사(덕소교회)가 우수상을 받았다. 한편, 학생회 예배에서 이시온 관장(홍성교회)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주제로, 성경 이사야서에 한국 땅에 동방의 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과 호세아서에 이슬성신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감람나무 하나님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예배 후 학생들은 키즈랜드와 맛길에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세계 곳곳에서 쏟아진 물폭탄, 재산·인명 피해 심각”

“세계 곳곳에서 쏟아진 물폭탄, 재산·인명 피해 심각”

최근 몇 달간 EU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과 싸우고 있는 그리스에 또 다른 재앙이 닥쳤다. 9월 5일 (현지시각) AP,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폭풍 ‘다니엘’의 영향으로 폭우가 발생해 건물 외벽이 무너지고, 사람이 다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별난세상] 러시아 돈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영향 미쳤다

[별난세상] 러시아 돈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영향 미쳤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수석 고문은 교황을 “친러시아적”이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난하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바티칸의 중재 역할에 대해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또한 전쟁의 교황 노선이 바티칸 은행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8월 28일 우크라이나 채널24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포돌랴크 수석 고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날 그가 친러시아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으며”, “어떤 사람이 다른 주권 영토에서 다른 나라의 시민을 죽일 수 있는 러시아의 권리를 분명히 주장한다면 그는 전쟁을 조장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바티칸은 어떤 중재 역할도 할 수 없다”며 “이는 우크라이나를 기만하는 것이며 정의를 기만하는 것” 이라고 했다. 포돌랴크는 재정적 고려가 전쟁에 대한 교황의 메시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우리는 러시아가 바티칸 은행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바티칸이라는 나라가 왜 이렇게 이상한 입장을 취하는 걸까요? 이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바티칸 은행은 “러시아 돈을 받거나 투자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 은행은 기본 정책에 따라 “교황청 및 가톨릭 교회와 긴밀한 관계가 없는 고객, 기관 또는 자연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티칸 시국에는 개인 과세가 없기 때문에 바티칸 은행 계좌는 오랫동안 자금 세탁업자나 조세 피난처로 이용하려는 개인들의 표적이 되어 왔으며, 이 은행은 역사상 여러 금융 스캔들의 중심에 있었는데, 특히 1980년대의 방코 암브로시아노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멕시코 대법원, “낙태죄 처벌은 위헌” 판결

멕시코 대법원, “낙태죄 처벌은 위헌” 판결

9월 6일 현지시각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대법원이 낙태에 대한 모든 연방 형사 처벌을 기각하고,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국내법이 위헌이며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고등법원은 연방 형법에서 낙태를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는 낙태를 요구하는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정부 의료 제공자는 연방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구의 80%가 가톨릭 신자인 멕시코에서 일어난 이 획기적인 변화는 중남미 국가들의 낙태 합법화 노력에 힘을 실어 줄 전망이다. 그러나 멕시코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주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주 의회와 주 법률에 따라 법의 적용 범위가 제한되는 멕시코는 현재 32개 주(州) 가운데 20개 주에서 여전히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다. 해당 주의 판사는 법원의 결정을 따라야 하지만 모든 처벌을 없애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법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멕시코에서는 낙태가 범죄로 기소되지는 않지만, 많은 의사들이 법을 이유로 낙태 제공을 거부하고 있어 수백만 명의 여성이 판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멕시코 관측통들은 이번 판결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가 2007년 가장 먼저 낙태를 합법화했고, 지난달 중부 아과스칼리엔테스 주가 낙태 형사 처벌을 폐지한 12번째 주가 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톨릭 인구가 많은 멕시코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중남미 여성 인권 운동인 ‘녹색 물결’의 영향이 크다. 녹색 물결은 가톨릭의 영향으로 임신중지를 금기시해 오던 중남미 국가에서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며 시위 때 초록색 스카프와 손수건을 사용해 붙여졌다. 이들의 노력 끝에 아르헨티나는 2020년에 임신중지 절차를 합법화했고, 보수국가인 콜롬비아도 2022년에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중남미 국가의 변화는 미국 일부 지역에서 낙태에 대한 제한이 강화되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미국 대법원은 1973년 전국적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고 임신중지권 폐기 판결을 내렸다. 그 이후로 보수적인 주지사가 이끄는 대부분의 주에서는 임신중지 금지 또는 더 엄격한 제한을 채택했고, 자유정부 주에서는 낙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NASA, 외계인 존재 가능성 열어두고 UFO 연구

NASA, 외계인 존재 가능성 열어두고 UFO 연구

미확인 비행물체, 즉 UFO를 1년 동안 추적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중간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우주 어딘가에는 UFO나 외계인이 있을 수도 있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9월 14일(현지시각) 이러한 내용이 담긴 ‘미확인 비행 현상(UAP) 독립 연구팀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으로서는 UAP가 외계에서 왔다고 말할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UAP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고품질의 관측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빌 넬슨 나사 국장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UFO를 봤다는 경험자들로부터 극히 적은 정보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검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UFO 현상 중 일부는 태양계를 통과해 지구로 온 물체가 확실하다면서, 외계인과 UFO의 실존 가능성을 열어뒀다. 특히 빌 넬슨 나사 국장은 개인적으로 자신은 외계인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외계인이 있냐고 묻는다면) 제 개인적인 대답은 그렇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적어도 1조 개 별에 생명체가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미확인 비행 현상 독립 연구팀은 “NASA가 전문 지식을 활용해 엄격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며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을 포함한 정교한 데이터 분석 기법도 체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NASA는 연구팀의 권고대로 향후 일반인이나 민간 기업들과 협력해 더 광범위하고 신뢰할 수 있는 UAP 데이터를 구축하고 분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9월 여성회 축복일

소비조합 축복일 예배

지난 30년 간 50세 미만 암 환자 전 세계서 79% 증가

가톨릭 주교가 가톨릭 성학대 조사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

2024 신앙촌 풍경 달력사진 공모전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1937년생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전도관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교회나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감리교인이던 누나들이 교회에 가자고 할 때도 “하나님이 어디에 있나? 보여주면 믿겠다”며 거절하곤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전도관을 다니게 된 것은 친구 종국이 덕분이었습니다. 종국이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종국이네 집에 가던 중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구들이 “종국이는 전도관 지붕을 고치러 갔다더라. 걔가 요새 전도관에 빠져있는 것 같으니 너도 당분간 연락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항간에 전도관은 이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터라 저도 이에 동조하여 정신 좀 차리라는 뜻으로 한동안 종국이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종국이와 소원해졌던 그 시기에 저는 파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파가 많이 자라서 햇볕 좋은 날에 밭에서 파를 수확하고 있었는데 종국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종국이는 별말 없이 옆에 와서 함께 파를 매주었고, 한참 파를 매고 일어서니 저희 둘의 얼굴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가까운 남대천에 가서 멱을 감고 물가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도관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종국이는 전도관은 나쁜 곳이 아니라며 “전도관에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 기분도 좋고 묵묵히 일을 도와준 종국이에게 고마움을 느껴 알겠다고 했습니다. 주말이 되어 종국이와 함께 강릉전도관에 갔는데 전도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저를 반기며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찬송을 하고, 설교를 듣는 일 모두 처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즐겁고 기뻐지는 것을 느껴 전도관에 꾸준히 다녀보고 싶어졌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며 여러 번 예배를 드리다 보니 이슬 같은 성신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저도 그 은혜를 직접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예배실 안에 이슬비 같은 것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단 안에 가득히 내리는 광경이 어찌나 성스럽고 경이롭던지 저는 그것이 말로만 듣던 이슬 같은 성신임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일은 평생에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관장님께서 생명물을 컵에 따라 주신 적이 있었는데, 물에서 너무나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설명해 주셨고, 향취는 물을 마시고 난 이후에도 계속 맡아져서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코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불현듯 머릿속에 제가 싫어하는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평소에 비겁한 행동을 자주 하는 친구여서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미워하는 감정이 들었는데, 그 순간 향취가 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때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끊어졌던 그 순간 깊이 회개하며 다시 은혜를 구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것을 잘 몰랐습니다. 또한 그 친구에게 못된 마음을 가졌던 것을 지금까지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이후로 전도관에 더욱 열심히 다니게 되었는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강릉전도관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전국을 순회하시며 예배를 인도해 주셨는데 강릉에도 몸소 와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뵙는 것은 처음이라 매우 설렜고, 설교하시는 동안 하나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마치신 후 교인 한 명 한 명 차례로 안찰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이나 배에 가볍게 손을 대시는 것 같은데 앞에 사람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아파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도 막상 하나님께서 눈과 배를 안찰해주실 때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내 속의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에 안찰을 받을 때 고통을 느낀다는 말을 듣고 저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강릉전도관을 다녀가신 후 저를 포함한 강릉 전도관 청년들은 마음을 모아 교회를 신축하였습니다. 교회 신축을 마치자마자 저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휴가를 모아서 1958년 6월에 노구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사실 집회가 있는지 모르고 하나님께서 계신 소사신앙촌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휴가를 낸 것이었는데 운 좋게도 집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집회에는 산을 온통 뒤덮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고, 집회 기간에는 전국적인 가뭄 끝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은혜를 받고자 모인 수많은 인파, 그 인파 속에서도 또렷이 들리던 하나님 음성, 비가 내려도 자리를 지키며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던 그날의 기억은 군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후 1968년 덕소신앙촌에 들어가 건설대로 일했습니다. 덕소신앙촌 건설이 많이 진행된 시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건물은 대부분 지어져 있었지만 슬레이트 지붕 설치, 자갈 운반 등 제가 할 일이 많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늦게 신앙촌에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하고 안타까워서 잠들기 전에 은혜를 많이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 자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오셔서 안찰해 주시는 꿈을 꿨는데, 안찰을 받으니 겪어본 적 없는 큰 기쁨이 마음에 넘쳐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정신이 맑고, 꿈에서 받았던 마음의 기쁨이 유지되어서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기장신앙촌이 지어지고 나서는 나염 공장에서 나염기사로 일했습니다. 이불을 만드는 천에 무늬를 찍어내는 일이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같이 일하는 기술자에게 배워가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무늬가 예쁘게 찍혀 나온 천으로 당시 인기 많았던 신앙촌 수예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한참 열중해서 일하는데 키가 크신 분이 제 옆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하나님이셨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공장을 직접 돌아보시면서 일의 진행 상황도 확인하시고, 직원들도 많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뵙고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제 신앙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한 마음에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날 밝게 인사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또 어느 날은 무릎을 다쳐서 절룩거리며 다니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하나님께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정한 음성으로 “어디가 아파?”하셔서 “무릎 관절이 아픕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무릎을 쉭 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무릎의 통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곧바로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축복받은 그 무릎은 아픈 적 없이 건강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이후의 일이었는데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잠시 후에는 몸 전체가 포근하게 감싸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마음이 너무나 평온해져서 머릿속에 다른 잡념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하는 찬송가 가사와도 같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며 오만하게 큰소리쳤던 철없는 시절의 제게 보여주신 귀한 은혜를 떠올려 봅니다.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아 지금껏 이 길을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은혜받기만을 바라며 간직하지 못한 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럽지만 저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귀한 뜻을 생각하며 오늘도 은혜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죄짓지 말라’ 안타까이 바라셨던 하나님 말씀대로 하루하루 맑게 살아 한 걸음 더 구원에 가까워지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미움 많은 세상 속에서도 아름답고 선한 마음으로 참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선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선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어

(지난 호에 이어) 이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고 노구산 집회가 열렸습니다. 1958년 6월 30일, 노구산 정상에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하나님 모습은 또렷이 보였고, 설교하시는 목소리도 아주 잘 들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집회하는 동안 매우 많은 양의 비가 내렸는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던 시기에 내린 단비여서 사람들이 무척이나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집회 이후 노구산에는 오만제단이 지어졌으며, 그즈음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눈이나 배 안찰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처음 안찰을 받을 때는 하나님의 손이 살짝만 닿아도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찰을 받고 조금 지나면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마음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워져서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기쁘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홍제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아직 전도관이 지어지기 전이어서 임시로 저희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천장에서 비가 새서 남동생에게 지붕 수리를 부탁했는데, 지붕에 올라간 남동생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남동생은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몹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남동생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저희 집에 오신 관장님께서는 택시를 불러 동생을 태우고 급히 덕소신앙촌으로 가셨습니다. 몇 시간 후 남동생이 집에 돌아왔는데 멀쩡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덕소신앙촌에 도착해 너무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을 바로 뵐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의 다친 부위를 손으로 탁 쳐주셨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고통스럽더니 아픔이 점점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움직여 보니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제 발로 걸어서 집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여러 번 목격하였지만 다시 봐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이었습니다. 남동생은 그 일로 전도되어 덕소신앙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홍제전도관에 다닐 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아저씨 한 분을 전도하였는데, 그분은 간암에 걸려 복수가 차오르고 몸이 계속해서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관장님께서는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안타까우셨는지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우연히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는데 복수가 차서 불룩했던 배가 사라지고 안색도 매우 좋아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저씨는 밝은 목소리로 이제 몸이 아프지 않다고 기뻐하며,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안찰 받으러 오라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몸이 다 나았다고 생각한 아저씨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얼마 뒤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의 부고 소식을 들은 홍제전도관 교인들은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닦고, 입에도 생명물을 넣어드렸는데 그렇게 환하게 잘 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고인을 모신 방 안에서 향취가 강하게 진동하여, 집 밖에서까지 향취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교인들은 몹시 감동하였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망 확인을 하러 온 의사가 방안에 들어와 아저씨의 얼굴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돌아갔는데, 의사가 손을 댄 부분이 새카맣게 되면서 시신이 뻣뻣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의사는 기성교회에서 장로로 활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놀란 교인들이 까매진 부위에 생명물을 바르고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자, 잠시 후 새까매졌던 얼굴이 다시 뽀얗게 피어나서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생명물의 권능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다시 한번 체험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저로 인해 전도되셨는데, 처음에는 어머니가 교회 다니는 걸 반대하시던 아버지도 전보다 더욱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변화한 어머니를 보시고는 “얘, 너도 믿으려면 네 어머니처럼 믿어라”라고 하실 정도로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신앙생활을 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 눈에 생명물을 넣어달라고 하신 뒤 주무시는 듯 편하게 생을 마감하셨는데, 입관 예배를 마친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편안하고 환해 보여서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은혜로 지켜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1970년대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도 하나님은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계속해서 안찰을 해주셨는데,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깊이 남은 일화가 있습니다. 기장신앙촌에서 하나님께 줄지어 안찰을 받고 있었는데, 저를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은혜를 좀 더 부어줄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송한 마음이 앞서서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한 것이 참 죄송스럽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은혜를 주시려던 하나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음성은 제 가슴에 깊이 새겨져 지금까지도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 뒤로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며 2010년에는 꿈에 그리던 신앙촌상회도 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따로 신앙촌 양말을 판매하는 정도였는데 번듯한 매장을 열고 나니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품질 좋은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재미로 살던 저는 현재 일선에서 물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제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원효로 제단에 다닌 이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귀한 성신의 은혜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옳지 못한 생각과 마음을 분별할 수 있도록 양심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또한 합당하지 못한 곳에는 하나님의 신이 거할 수 없음을 보여주셨기에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도 정직하고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곁에서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추악한 세상에서도 선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바른 방향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남은 시간 또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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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구원의 역사, 그 놀라운 은혜의 기록들

1994년 1월 ‘박혜정 승사 편’을 시작으로 신앙신보에 꾸준히 게재되어 온 ‘신앙체험기’가 어느덧 500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신앙체험기는 초창기 집회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귀한 은혜의 체험을 싣고 있습니다. 이슬처럼 내리는 성신, 향기로운 향취 은혜, 놀라운 생명물의 권능, 마음에 넘치는 은혜의 기쁨. 그 귀한 체험을 들려주신 모든 분들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시간을 내어 ‘신앙체험기 500회 기념 리서치’에 응해주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이어져온 천부교 구원의 역사. 지금까지 그 은혜가 변함없이 계속되기에 신앙체험기는 소중한 기록을 이어갈 것입니다. 신앙체험기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 신앙체험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Best 4 기장신앙촌 안음전 승사 6·25 전쟁 중 1·4 후퇴 때 저와 저희 아이들 넷은 기차 안에 짐과 리어카를 싣고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키가 크고 귀하게 생기신 신사분이 다가오시더니 “애기 어머니! 애기 어머니!” 하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제 말을 좀 들으세요. 이 차 타면 안 됩니다. 안 돼요.” 하고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기차 위로 올라오셔서 저희 아이들과 리어카를 내려 주셨습니다. …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철로 옆의 빈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지친 몸을 쉬는데 갑자기 폭격 소리가 들리더니 마을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희가 타려고 했던 기차가 폭격을 맞아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몰살됐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밖에 나와 보니 멀리서 불타는 것이 보였습니다. … 그 후 1955년 3월 남산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 분이 단상으로 걸어 나오셔서 그분을 쳐다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 통에 저희 가족 모두를 살려 주신 신사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집회를 인도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분을 다시 뵙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장신앙촌 공덕렬 집사 1945년 해방 후 먹고 살려고 과일 장사를 했는데, 몇 사람과 함께 도매상에 물건 하러 가면 그들은 이미 계산한 과일들을 주인이 보지 않는 사이에 좀 더 좋은 것으로 몰래 바꾸기에 바빴고, 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차마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사를 어떻게 하려느냐고 핀잔을 듣고 원망을 사면서도 차라리 굶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어디선가 너무나 향기로운 냄새가 날아와 코에 맡아졌습니다. … 1955년 부산 영주동 반석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가 열려 참석했는데 박 장로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실 때 매우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아! 이 향기는 그동안 내가 여러 번 맡았던 냄새다.’ … 박 장로님께서는 “죄를 지을까 봐 두려워 울면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을 때 향취를 맡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좋은 냄새를 맡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오늘은 내가 이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한다.” 하시며 단상을 치셨습니다. 그러자 불덩이가 사방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고, 그 순간 제 목에서부터 무엇인가 시원한 것이 가슴으로 내려가 몸 전체가 시원해졌습니다. 기장신앙촌 홍창홍 승사 1980년 12월 24일 밤이었습니다. 제강 공장에 파도가 심하게 들이치고 있다고 해서 현장에 가 보니 거센 파도가 밀려와서 압연 공장은 도로까지 씻겨 내려가고 기둥 밑이 심하게 패어 허공에 뜰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처럼 파도가 심하게 들이치는데도 불구하고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 다시 제강 앞바다에 가 보니 이번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부는데도 파도는 바람과 반대 방향인 육지를 향해 들이쳤습니다. 급하게 하나님께 보고를 드리니 “그래. 걱정하지 마. 조금 있으면 알 거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해일은 점차 잦아들었고, 바다가 완전히 잔잔해지는 것을 보고 “이제 완전히 잦았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1981년 1월 3일 하나님께서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임을 발표하신 후, 제강 공장 앞 바다에서 일어났던 해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조화의 권능을 보여 주신 것이며, ‘하나님임을 발표하기 위해 행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해일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저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인천교회 강문형 권사 원효로 제단으로 달려간 저는 창문을 통해 예배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꼭 하나같이 박자를 맞춰 손뼉을 치면서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그 우렁찬 소리에 제 마음까지 벅차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 예배드리는 모습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뒤에서 등을 탁 하고 쳤습니다. 깜짝 놀라서 돌아다보니 제복 차림의 남자 분이 저를 보고는 “여기서 불이 났다는데 어디서 불이 났는 줄 아니?”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지 30분이 넘었는데 불 안 났어요.” … 그날 용산소방서의 소방망루에서 근무하던 소방관이 원효로 3가에 있는 전도관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른다고 하여 용산소방서에서 급히 출동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한참 동안 제단 주위를 돌면서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갔습니다. … 주일 예배가 끝난 후에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장로님께서 그러시는데 어젯밤에 제단에 불성신이 내렸대요. 그런데 불이 난 줄 알고 소방관이 왔다 갔다는 거예요.” 하며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 어제 소방관 아저씨가 보았다는 불이 바로 불성신이구나!’ 하면서, 제단에 불성신이 내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신앙체험기와 관련된 나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신앙체험기는 저의 신앙이 약해졌을 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신앙체험기를 통해 다시금 느낍니다. • 신앙의 선배님들의 체험기는 언제 읽어도 힘이 됩니다. 체험기를 읽으면 저도 그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신앙체험기는 간접 은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새 친구를 캠프에 초대했는데, 친구가 신앙체험기를 보고 ‘우와! 신기하다’ 하면서 다음에도 신앙촌에 온다고 해서 기분이 좋고 큰 힘이 되었어요. •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한 편씩 체험기를 읽고 내용을 요약하고 느낀 점을 정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체험기 1권부터 9권까지 모두 읽는 동안 신앙생활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많은 것을 느낀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 체험기에 나오는 것과 같이 입관예배에 갈 때마다 돌아가신 분들이 아름답게 피어서 가시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 은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신앙체험기 책이나 신앙신보를 보여주며 생명물로 시신이 피어난다는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전해주었는데 그때는 친척들 중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뽀얗게 피어난 외할머니 모습을 본 친척들은 무척 놀라워 하며 생명물의 권능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키신 권사님들의 체험기를 읽게 된 것이 더욱 강인한 마음으로 교회에 꾸준히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저는 신앙촌상회에 오신 손님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의 신앙 체험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신앙체험기 속 체험과 같은 체험도 해보았고, 체험기를 읽으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하나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습니다. • 10년 전쯤, 축복일 예배를 드릴 때 절절한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배실에 뽀얀 은혜가 내리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 이렇게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드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 신앙체험기를 통해 제가 몰랐던 하나님의 모습, 듣지 못했던 귀한 말씀을 알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 하나님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권사님들의 신앙체험기를 들려주면서 하나님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해줍니다. 전도에 큰 힘이 됩니다. • 신앙체험기를 읽고 제가 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습니다. 체험기 속 진실된 이야기를 읽으면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신앙체험기에서 기억에 남는 은혜 체험은? 신앙체험기 500회를 맞아 축하의 한마디 신앙체험기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말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같이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앙체험기는 모두에게 하나님 은혜를 깨닫게 해주는 고맙고 감사한 매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들의 체험이지만 여러 체험기를 읽다 보면 그 내용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 속의 모든 체험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500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진정 성결한 마음으로 자유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간다면 저희들도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 생명물의 권능에 감사드리며 한 걸음씩 신앙이 앞으로 전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체험기 500회를 축하드리며, 온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구원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신앙신보가 선봉장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설문지를 받고 좀 더 정확히 쓰고 싶어서 6권의 신앙체험기 책을 다시 열어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은혜 체험을 읽으며 우리 곁에 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그리워합니다. 벌써 500회라니! 신앙신보에서 놓치지 않고 보고 있는 체험기입니다! 늘 감사하고 축하드립니다. 500회라는 시간 동안 그만큼의 증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더 우리 종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눈물 없이 읽은 적이 별로 없는 신앙체험기.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어 주는 감사한 신앙체험기의 500회 맞이를 축하드립니다. 권사님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더해져서 신앙체험기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신앙체험기는 한 회 한 회가 너무나도 소중한 글입니다. 모든 문장마다 감동이 담겨있고, 신앙의 밑거름이 됩니다. 신앙체험기를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신앙체험기는 일상에서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리는 가장 신속하고 쉬운 방법이에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정확하고 모범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신앙인들의 체험기를 계속 기다립니다. 소중하고 귀한 체험기를 하나씩 모으고 기록하며 배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만의 역사의 기록으로 벌써 500회가 되었다니 감동입니다. 앞으로도 이 귀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널리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6) 용산 군인교회 집회

기획
세계 종교 탐구 <36> 왜 여전히 미신을 믿는가 -②

세계 종교 탐구 <36> 왜 여전히 미신을 믿는가 -②

오피니언
[나침반] 우크라이나 대통령 수석 고문,  “러시아가 바티칸 은행에 투자하는 것이 교황의 평화중재에 영향 미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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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나침반] 교황, 러시아의 흑해곡물수출 방해는 “신에 대한 범죄”라고 外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은혜가 내리는 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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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나의 일, 오래도록 하고 싶어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나의 일, 오래도록 하고 싶어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했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였던 그가 회사의 만류에도 사직서를 내고 훌쩍 떠난 것은 2019년의 일이었다. 새로 뽑은 스타렉스 한 대와 함께 그는 신앙촌 소비조합으로서의 새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김봉호 사장의 이야기다. “젊었을 때부터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소비조합이었어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그는 집과 가까운 경기도 수원에서 소비조합을 시작하기로 했고, 거기서 유기성 팀장을 만나게 됐다. 유 팀장은 연간 사업시상식에서 개인 판매 부문 최우수상을 여러 번 수상한 이력이 있었다. 그런데 김봉호 사장을 만난 유 팀장이 예상보다 더욱 그를 반겨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당시 유기성 팀장님은 수술한 지 얼마 안 돼서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마침 의욕 넘치는 제가 나타난 거예요. 유 팀장님은 영업, 배달을 같이할 사람이 필요했고, 저 또한 행운이었죠. 유기성 팀장님 옆에서 일대일 과외 받듯이 일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김봉호 사장은 지금까지도 유기성 팀장이 늘 강조했던 ‘친절하고 많이 베풀어라, 놀아도 일터에서 놀아라, 고객과의 약속은 꼭 지켜라’ 하는 세 가지 원칙을 가슴에 새기며 일한다고 했다. 유기성 팀장과 함께 일하는 1년 6개월 동안 김봉호 사장은 소비조합으로서 조금씩 성장해갔다. 이후 독립해서 활동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김 사장은 부산으로 활동 지역을 옮겼지만, 그 무렵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그의 순조로운 행보도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김봉호 사장은 날개라도 단 듯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영업에 시동을 건 곳은 자갈치 시장이었다. “자갈치 시장 내에 횟집이 18군데가 있는데, 그중 신앙촌 간장을 쓰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참 의외였죠. 이곳에 우리 간장을 납품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첫 영업. 용기 내어 샘플 간장을 들고 자갈치 시장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횟집을 방문했다. “횟집 사장님께 신앙촌 간장을 소개해드리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알았다 하시며 작은 그릇 두 개를 가져오셨어요. 그러더니 그릇에 원래 쓰던 간장과 신앙촌 간장을 따라서 바로 맛을 비교해 보시더라고요. 맛을 본 사장님이 우리 간장을 가리키며 이게 바로 회 간장이라며, 회를 찍어 먹는 간장은 짜지 않으면서도 맛있어야 하는데 신앙촌 간장이 아주 딱 이라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바로 간장을 구입한 횟집 사장님은 다른 곳으로 홍보하러 가는 김 사장의 뒤를 따라나섰다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횟집 사장님을 대동한 채 다른 횟집에 들어간 김 사장. 궁금증은 곧 풀렸다. “아마 같은 지역에서 오래도록 장사하다 보니 횟집 사장님들끼리 서로 막역한 사이였나 봐요. 그 사장님이 다른 횟집에 들어가자마자 ‘동생! 이분이 가져온 간장 한번 먹어봐! 진짜 맛있어!’ 하시더라고요. 두 번째 방문한 횟집 사장님도 간장을 드셔보시더니 너무 맛있다며 바로 신앙촌 간장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난 횟집 사장님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총 다섯 군데 횟집에 신앙촌 간장 납품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자갈치 시장 내 18곳 중 14곳 횟집에 신앙촌 간장을 납품하고 있다고 한다. 김봉호 사장은 “신앙촌 제품이 우수한 덕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례를 들려줬다. “제가 송도 해수욕장을 지나가는데 아주 크고 근사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어요. 속으로 ‘저렇게 멋진 곳에는 신앙촌 간장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하고 생각하며 간장을 들고 홍보하러 갔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고요.”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결과는 허탕이었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김 사장에게 미안했던 식당 관계자가 “간장을 바꾸면 음식맛이 달라질 수 있어서 새로운 간장을 쓸 계획이 없다”며 앞으로는 방문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때 김 사장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식당에 우리 간장을 꼭 넣고 싶었는데 속이 쓰렸죠.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번만 더 가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놀랍게도 그 식당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요구르트랑 두부까지 가져와 보라 하시더군요.” 식당에 가보니 늘 만나던 식당 관계자 외에도 처음 보는 분이 계셨다고.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제 손을 꼭 잡으며 환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운 눈으로 옆에 있던 식당 관계자분을 쳐다봤어요. 알고 보니 제 손을 꼭 잡은 그 분이 식당 대표님이시래요.” 자초지종은 이랬다. 김 사장은 식당에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과 함께 드시라고 요구르트 런을 한 통씩 들고 갔는데, 식당 관계자가 이를 대표에게 전달한 것이다. 대표는 우연찮게 요구르트를 먹게 되었고, 세 통을 모두 비워갈 때쯤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장염이 사라진 것을 느낀 것이다. “대표님은 그동안 심한 장염으로 지긋지긋하게 고생해왔는데 런을 먹고 싹 나았대요. 신앙촌 제품에 믿음이 생긴 대표님께서 우리 두부와 간장을 식당에서도 사용하기로 결정하신 거였어요. 뛸 듯이 기뻤죠. 그리고 대표님은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런을 주문 배달해서 드시고 계십니다.” 요구르트 런 덕분에 간장과 두부까지 납품하게 된 케이스였다. 김봉호 사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길을 열어주신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김 사장은 나이가 들어도 지금과 같이 건강하게 일하는 꿈을 꾼다. “이제는 횟집 사장님들과도 정말 친밀해졌어요. 제가 지나가면 ‘신앙촌 간장~’하며 손 흔들어 인사하시고, 만나면 감자든 떡이든 뭐든 주려고 하세요.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요. 저는 소비조합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해서 오래도록 일하고 싶어요.”

“생명물 두부 정말 맛있다고 자신 있게 추천드려요”

“생명물 두부 정말 맛있다고 자신 있게 추천드려요”

의정부는 부대찌개가 유명하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의정부 시내에 부대찌개 거리가 있을 정도다. 이 지역에서 부대찌개가 발달한 이유는 미군 부대와 가까워서 햄과 소시지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햄, 소시지를 부대고기라 불렀는데, 거기에 고추장, 김치를 넣어 함께 끓여낸 것이 바로 부대찌개인 것이다. 의정부 민락동 ‘송산 부대찌개’는 골목에 있어 눈에 띄는 곳은 아니지만 식사 시간만 되면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단골들이 찾는 맛집이다. 송산 부대찌개의 인기 이유를 조성자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본다. -의정부에 수많은 부대찌개집 중 송산 부대찌개가 맛집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음식이 맛있어야 해요. 음식점은 맛이 기본이잖아요. 우리 가게는 골목에 있어서 지나가다가 들어오는 손님이 드물어요. 한 번 오신 손님이 맛있다고 다른 분을 모시고 오고, 또 모시고 오고 이런 식으로 단골이 점점 늘어난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대찌개 맛이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의정부는 부대찌개 전문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송산 부대찌개만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부대찌개집은 사골육수를 쓰는데요. 저희는 야채 육수를 써요. 무, 파뿌리 등을 넣어서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내죠. 또 다른 집과는 차별화된 소시지를 직접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부대찌개집에서 치즈떡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대부분의 가게에서 가래떡을 넣고 있을 때였는데, 의정부에서 부대찌개에 치즈떡을 가장 먼저 넣은 곳이 저희 집이에요. 십여 년 전에 치즈떡이 출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겨우 구입해서 넣었거든요. 그런데 치즈떡을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자 너도 나도 치즈떡을 사용하더라고요. -최근 들어 두부도 신앙촌 두부로 바꾸셨다고 들었어요. 그전까지 두부가 너무 맛이 없어서 걱정이었거든요. 부대찌개 전문점을 시작한 이래로 늘 고민하던 거였어요. 맛없는 두부는 딱딱하고 시큼하잖아요. 괜찮은 두부를 찾아봤지만 제 맘에 쏙 드는 제품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신앙촌 사장님이 오셔서 두부를 추천하시길래 먹어보니까 고소한데다가 부드러워서 너무 맛있는 거예요. 가격도 합리적이고요. 그래서 바로 바꿨어요. -손님들도 바뀐 두부를 좋아하시던가요? 네. 손님들도 좋아하시고요. 우리 직원들도 좋아해요. 사실 저는 두부를 원래 안 좋아했는데요. 신앙촌 두부는 제 입맛에도 정말 맛있어요. 고소하고 갓 만들어진 맛이 나니까요. 신앙촌 두부로 바꾼 후부터는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두부보다 저랑 직원들이 굽고, 튀기고, 생으로 먹은 두부가 더 많은 것 같아요. 하하하. 그전까지는 두부 맛있다고 어디가서 말 못 했는데 이제는 손님들께도 두부도 맛있으니까 드셔보시라고 자신 있게 추천드려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항상 손님들에게 새로운 것, 더 맛있고 좋은 것을 드리려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요. 저는 손님들이 “너무 맛있게 잘 먹고 가요” 하시는 한마디가 정말 힘이 되거든요. 맛있게 먹었어도 그냥 가시는 분도 많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시는 손님들이 계시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 좋더라고요. 피로도 싹 풀리고. 저는 늘 하는 일인데 칭찬받으니까요. 그게 일할 때 가장 보람이 돼요. 그래서 더 맛있고 좋은 것만 드리고 싶고, 또 기분 좋게 가실 수 있도록 매사에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또 오고 싶은 부대찌개 전문점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해야죠.

베풀 줄 아는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베풀 줄 아는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입사 10주년을 맞아 입사 첫날을 떠올려봅니다. 기숙사 1층 방마다 붙어있는 신입생 명단을 보며 어떤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될까 무척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만큼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였고, 신앙촌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입사생이란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촌에서 지내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그 이름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신앙촌에서 지내면서 저도 몰랐던 부족한 제 모습이 보였고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단점을 마주하고 그것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당시에는 몹시 힘들게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그 시간은 신앙인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바라시는 대로 가지 못하며 늘 안타까움만 안겨드렸던 저를 놓지 않으시고, 매번 어려울 때마다 새로 이겨낼 힘과 기회를 주시며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 주년마다 이 자리에 서는 언니들을 보며 제게는 아직도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란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너무도 짧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다듬어 가야 할 것이 많습니다. 또한 이 길은 내가 그 가치를 알고 기울이지 않으면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입사 초에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았지만 해가 갈수록 하나님께 기울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신앙의 울타리 신앙촌에서 좀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맑게 살 수 있기를 소망했던 처음 입사한 날의 순수했던 마음. 그 마음을 다시 찾아봅니다. 앞으로 매일 새로이 주어지는 시간을 감사히 여기며 제가 받은 은혜와 이끌어주시고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의 온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도 제가 받은 따뜻한 마음을 베풀 줄 아는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의지하면 못할 것이 없어

하나님 의지하면 못할 것이 없어

담대한 자세로 일 헤쳐 나가며 뜨겁고 신나게 전도하고 싶어 전도활동 중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던 한 학생이 말하길, 학교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 앞에서 우리 종교에 대해 부적절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듣고 저도 물론 화가 났지만, 천부교회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거나 상처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교회를 당당히 다닐 수 있도록 해결해야 하는 것이 관장이 해야 할 일이기에 들었던 내용을 상세히 적어 학교 교장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이런 발언을 해도 되는지 교장 선생님께 정중히 묻자, 교장 선생님은 바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또한, 천부교회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이 일로 인해 그 아이들이 차별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답을 주셨고 즉시 조치해 주셨습니다.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어서 그날 이후로도 아이들은 꾸준히 교회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걱정이 먼저 앞서지만, 당당하고 담대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역 생활은 개인이 어떻게 일을 꾸려 나가느냐가 관건입니다. 자칫 반복되는 생활이 될 수도 있는데, 평상시 교회에 아이들이 많이 온다고 해서 안주하거나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열매를 맺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간혹 아이들 때문에 속상하고 답답해 낙심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마음을 조금만 바꾸어 움직이면 하나님께서 큰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이러면 안되겠다, 빨리 아이들을 만나러 다녀야겠다’ 하고 초대장을 급하게 만들어 심방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주 일요일, 제가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니 우연히 다른 사람들을 통해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아이들이 교회에 와 ‘마음만 바꿔 먹었을 뿐인데 이런 나에게도 힘을 주시려고 아이들을 보내주시는구나’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안된다고 낙심할 필요도, 잘 된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으며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코로나 때는 전도가 쉽지 않아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러던 중 새벽예배 때 하나님 앞에 많이 구해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조금씩이라도 실천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떠올리며 어려운 전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도드렸습니다. 새벽 예배드리기 전 1시간, 새벽 예배 시간 30분, 심방 가기 전 30분, 다니면서 찬송 드리는 시간 30분 등을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시간을 정하고 실천하려고 하니 하루가 짧았지만 이제야 깨닫고 움직이게 된다는 죄송한 마음으로 열심히 구하며 다니다 보니 코로나라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전도는 남을 위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나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며 사는 교역자는 참으로 귀한 직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닌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도전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뜨겁고 신나게 전도하겠습니다.

주니어

9월 학생축복일 ‘드림스튜디오’ 운영

9월 학생축복일 ‘드림스튜디오’ 운영

직업체험, 운동, 합창, 경전퀴즈대회 학년별 다양한 체험활동 실시 학생축복일인 9월 9일 신앙촌에서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드림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드림스튜디오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관심 있는 직업 분야의 이해도를 높이도록 돕는 직업체험 프로그램이다. 이날 학생들은 선호도가 가장 높은 5가지 직업 중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 기초 지식을 배우고 미래 직업을 체험했다. 스크린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과 ‘인사이드 아웃’에 맞춰 더빙을 해보는 애니메이션 성우, 일일 요리사가 되어 피자를 만들어 보는 이탈리안 쉐프,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아서 내려보고 타피오카 펄로 버블티를 만드는 바리스타, 드라이기를 이용해 머리 손질법을 배워보는 헤어 디자이너, 만화 캐릭터나 풍경 등 자유롭게 작품을 그려보는 화가 체험이 각 장소에서 진행되었고, 체험 후에는 결과물과 함께 수료증이 수여되었다. 천호교회 김유빈 양(중1)은 “성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음향시설도 신기했고, 겨울왕국 주인공 안나가 되어 재미있게 녹음했어요”라며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농구장에서는 08년생 학생들과 신앙촌 운동부의 플라잉 디스크 경기가 열띤 응원 속에 펼쳐졌다. 경기 결과는 4:3으로 신앙촌 운동부가 우승을 차지하며 6월부터 연습해 온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원주교회 안지연 양(중3)은 “운동을 통해 친구들과 단합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신앙촌 운동부 언니들을 이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즐겁고 뿌듯했어요. 다음에는 다른 종목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여청 파트에서는 11월 추수감사절 합창 연습이 이어졌다. 10일에는 김영희 관장(수원교회)의 인도로 축복일 예배가 있었다. 인간이 왜 태어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설교를 시작한 김 관장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1차 천국과 마귀의 기원, 그리고 이 지구에 인간이 왜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인간 창조의 근본을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1차 천국에서 범죄 한 인간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창조하여 그 인간들을 3조 년에 걸쳐 지구로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끝없는 희생과 사랑으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다는 구원의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죄를 지어 이 땅에 오게 된 저희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죄 씻을 기회를 얻었으니, 하나님 일을 통해 죄를 씻음을 받고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해 나아가길 간절히 구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배 후에는 3, 6, 9월마다 열리는 369 경전 퀴즈 마지막 대회가 개최되어 중고등부 학생들이 그동안 쌓아온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이날 1등은 구로교회 최수빈 양(중1)이 차지했다.

90. 천부교 역사 5. 원효로 전도관과 생명물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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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겨야 가는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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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 ‘연상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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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옥 권사님 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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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1. 망원경의 시작-우주를 보다

1. 망원경의 시작-우주를 보다

‘스파이글라스(Spyglass)’ 여러분들은 무엇이 연상 되는가? 이 이름의 주인공은 오늘날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망원경(telescope)의 발명 당시 이름이다. 망원경이 처음 발명된 건 1608년 네덜란드의 한 안경 업자에 의해서 였다. 그 소식은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에게도 전해졌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설명서를 구해 자신이 직접 망원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보낸 편지에도 당시 상황이 잘 나와있다. 약 2개월 전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에서, 2000m 거리에 있는 사람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매우 멀리 있는 물체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훌륭한 망원경이 모리스 백작에게 헌납되었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습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현상을 보고 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망원경은 원근의 법칙에 근거하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그것을 만들 궁리를 했습니다. 결국 나는 완벽하게 이 목표를 성취하여 플랑드르 망원경의 성능을 능가하는 망원경을 제작했습니다. 편지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갈릴레오의 손을 거친 망원경은 처음 3배 정도 확대해서 보는 수준에서 9배 20배 30배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30배율의 망원경을 통해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저서 ‘시데레우스눈치우스(Sidereus nuncius:별의 전령사)’에서는 망원경 관측을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달에도 산과 계곡이 있고, 우윳빛으로 뿌옇게 보이는 은하수의 정체는 수많은 별들의 모임이며, 특히 목성 주위에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4개의 ‘떠돌이별’이 돌고 있다.” 지금껏 맨눈을 통해서만 보며, 상상했던 우주의 모습에서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그는 달의 모습과 태양의 흑점, 금성의 모양 변화 등에 대해서도 발표하였다. ‘스파이글라스’라는, 주로 전쟁 시 적들의 배를 관측하기 위한 발명품이 ‘갈릴레오’의 손을 거쳐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새로운 눈 ‘망원경’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교향곡! 베토벤 ‘합창’

천상의 소리 ‘호른’

“빌바오 효과란 무엇일까?”

지난 30년 간 50세 미만 암 환자 전 세계서 79% 증가

치매·뇌질환 걱정되면…장 건강부터 챙기세요

여름철 갑작스런 고강도 운동, 주의할 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