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신앙촌 봄꽃 축제 스케치

2026 신앙촌 봄꽃 축제 스케치

군락지에서 찍은 벚꽃 사진이 구름과 어우러져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처럼 예쁘게 담겨 기분이 좋았습니다. 찍는 사진마다 봄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김순옥 사장/기장신앙촌 소비조합 봄인데도 군락지에 빨간 단풍이 있어 신기했어요. 행사에 볼거리, 먹거리, 살거리가 많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고, 평소 갖고 싶던 물건들을 쇼핑할 수 있어서 흡족한 시간이었습니다. 김민솔(초5)/대전교회 해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참 좋습니다. 작년에 받은 병아리 머리핀을 행운목 화분에 달아 두었는데, 올해도 미션을 통과해 하나 더 받았습니다. 모든 게임이 하나같이 재미있어서 더욱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홍순남 권사/기장교회 비 온 뒤 산책로를 걸으며 먼지 없는 맑은 공기와 풀잎 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앙 권사님들과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놀다 왔습니다. 몸도 마음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전서인 권사/부평교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봄꽃 축제를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유년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김주희 관장/서산교회 매달 축복일에 신앙촌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특히 이번 봄꽃 축제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즐거운 행사가 앞으로도 계속 있으면 좋겠습니다. 임유의(초6)/소사교회 풍선 터트리기에서 풍선이 ‘빵’ 하고 터질 때마다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두더지 잡기 게임도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마쳤습니다. 홍미영 집사/소사교회 미니언즈 에어바운스를 10번이나 탔어요! 높이 올라갔을 때도 신났는데, 빨리 내려올 때는 더 신났어요. 다음에도 또 타고 싶어요. 박다솜(초2)/김해교회 실내 에어바운스와 야외에서 한 우유 컬링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컬링에서 우유 상자가 가운데에 쏙 들어갔을 때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우지민(초4)/기장교회

행복을 담은 4월의 선물

행복을 담은 4월의 선물

개성과 열기 가득한 봄꽃 축제에 생동감 넘쳐나 4월 12일, 신앙촌 군락지와 농구장 일대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봄꽃 축제가 열렸다. 이번 축제는 학생들의 취향을 반영한 개성 넘치는 코너들로 구성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맛있는 즐거움이 가득했던 ‘사월분식’에서는 추억의 과자와 마시멜로 등을 구워 먹는 꾸이존이 인기를 끌었고,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운영한 ‘팝업스토어’에서는 키캡 꾸미기 체험과 함께 시원한 딸기라떼, 한라봉 에이드를 직접 만들어 선보였다. 특히 우유 컬링, 교과서 챌린지, 릴스 파티 등 흥미로운 미션이 펼쳐진 ‘쉬는 시간 배틀존’ 코너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외에도 ‘꾸미기 문방구’와 ‘굿즈 문방구’에서는 나만의 아이템을 직접 꾸미며 개성을 뽐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축제에 참여한 학생들은 벚꽃 나무와 에어바운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4월의 특별한 순간을 남겼다.

콩과 물이 빚어낸 담백한 음식, 두부

콩과 물이 빚어낸 담백한 음식, 두부

단백질과 무기질을 갖춘 대표적인 식물성 식품 두부 제조 방식과 수분 차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뉘어 ▲ 두부는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두부의 기원은 대체로 중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처음 두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지만, 오래전부터 콩을 가공해 식품으로 활용해 두부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공통으로 인정된다. 우리나라에 두부가 언제 전해 내려왔는지는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목은집』의 「대사구두부래향」에 ‘두부’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고려 말 원나라와의 교류 과정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두부 제조법은 점차 정리되고 널리 보급됐다. 『세종실록』에는 조선에서 온 여인이 두부를 잘 만든다고 명 황제가 언급한 기록도 있어, 당시 두부 제조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 콩은 어떻게 두부가 될까 두부는 콩을 가공해 만드는 식품이다. 먼저 마른 콩을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다. 이 과정에서 콩은 수분을 흡수해 부피가 커지고 부드러워진다. 이후 불린 콩을 곱게 갈아 콩물을 만든다. 간 콩물을 끓이면 단백질이 응고될 준비를 하게 되며, 이 상태에서 콩 찌꺼기인 비지를 걸러낸다. 남은 콩물에 굳히는 과정을 거치면 단백질이 뭉치면서 서서히 굳기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를 틀에 담아 눌러 물기를 빼면 일정한 모양의 두부가 완성된다. 이 과정들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온도와 시간, 수분 조절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 물기와 압착에 따라 달라지는 두부 두부는 같은 콩을 사용하더라도 제조 과정에서의 수분 함량과 압착 정도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다. 물기를 많이 남기면 순두부나 연두부처럼 부드러운 형태가 되고, 더 오래 눌러 수분을 제거하면 단단한 두부가 된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두부는 찌개용, 생식용, 부침용 등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수분이 많은 두부는 찌개나 국에 넣어 사용하기에 적합하고, 단단한 두부는 굽거나 부쳐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조리에 사용된다. 같은 재료라도 제조 과정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음식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담백하지만 영양은 알차다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콩을 원료로 해 단백질 함량이 비교적 높으며, 지방 함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농촌진흥청과 식품영양성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두부는 100g당 약 7~10g 정도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철분 등 무기질도 포함돼 있어 영양 공급에 도움이 된다. 특히 두부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은 뼈 건강에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고 뼈의 손상을 줄이는 데도 관여한다. 또한 콜레스테롤이 없고 포화지방 함량이 낮아 식단 구성 시 활용도가 높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역시 콩 식품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소개하며, 두부를 붉은 고기나 가공육을 대신할 수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비교적 소화가 쉬운 식품으로 알려져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서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두부는 가정식은 물론 단체 급식과 외식업에서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 함께 섭취하면 좋은 식품 두부는 함께 곁들이는 재료에 따라 영양을 고루 보충할 수 있다. 먼저 두부와 양배추의 조합이다. 양배추는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위를 보호하고 장 건강을 돕는다. 이 둘이 만나면 단백질과 비타민, 식이섬유가 고루 갖춰져 속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영양 균형이 잘 맞는 조합이 된다. 특히 양배추의 식이섬유는 두부의 소화를 돕고, 포만감을 높여 과식을 막는 데에도 기여한다. 다음으로 두부와 감자의 조합이다. 감자는 탄수화물이 풍부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두부와 함께 먹으면 ‘단백질 + 탄수화물’ 구조가 형성되어 한 끼 식사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특히 활동량이 많은 날이나 성장기에는 부족할 수 있는 열량을 보충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감자는 혈당을 비교적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식품이므로, 양을 과하게 섭취하기보다는 채소를 곁들이거나 조리법을 담백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 전통과 신선함을 담은 신앙촌 생명물두부 신앙촌의 ‘생명물두부’는 국내산 콩과 함께 원형 상태의 콩을 기준으로 Non-GMO 검사가 완료된 엄선한 수입 콩을 사용한다. 모든 제조 과정에는 맑고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콩을 가는 과정에는 전통적인 맷돌 방식을 현대 설비에 적용했다. 또한 소포제와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은 무첨가 포장두부로 생산된다. 생산 시설은 HACCP 인증 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저온살균 후 냉각하는 공정을 적용해 유통 과정에서의 위생과 보관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원료 선택부터 제조, 포장까지의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두부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가정용은 물론 다양한 조리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

1만 5천 년 전 점토 장신구, 초기 인류의 창의적 활동 보여줘

1만 5천 년 전 점토 장신구, 초기 인류의 창의적 활동 보여줘

아이와 어른이 함께 만든 흙 장식품, 공동체 속 제작 활동 기존 학설 뒤집은 발견, 점토의 상징적 사용 시기 수천 년 앞당겨 약 1만 5천 년 전 제작된 점토 장신구를 통해 상징적 표현이 농경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장신구에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참여한 흔적도 남아 있어, 초기 사회와 문화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고고학연구소 연구팀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현재 이스라엘 지역의 나투피안 유적지 4곳(엘-와드, 나할 오렌, 하요님, 에이난-말라하)에서 살았던 나투피안 수렵채집인들이 약 1만 5천 년 전에 만든 점토 장신구 142점을 발견했다. 이 유물들은 3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이 거주했던 흔적을 보여준다. 발견된 장신구는 구슬과 펜던트 형태로, 굽지 않은 점토를 이용해 원통형, 원반형, 타원형 등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일부는 붉은 황토를 얇게 바르는 ‘엔고베 기법’으로 표면을 코팅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이 채색 기법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사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장신구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19가지 종류의 구슬을 확인했으며, 그중 다수는 야생 보리, 외알밀, 렌틸콩, 완두콩 등 당시 사람들이 채집하던 식물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또한 일부 구슬에서는 식물 섬유의 흔적이 발견돼, 장신구가 실제로 꿰어져 착용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잘 보존되지 않는 유기물의 사용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제작자의 흔적이다. 장신구 표면에서 확인된 약 50개의 지문을 분석한 결과,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연령대가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석기 시대 장신구 제작자를 직접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이 시기의 지문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자료이다. 특히 일부 작은 점토 반지 형태의 장신구는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장신구 제작이 공동체 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기술 습득, 모방 장려, 그리고 세대 간 사회적 가치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는 점토의 상징적 사용이 농업과 신석기 시대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연구는 이러한 시기가 훨씬 앞선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에도 이미 정착 생활과 함께 상징적 표현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인간이 사물을 통해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기 시작한 시점을 다시 보게 한다고 설명하며 “신석기 시대의 뿌리는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다”고 말했다. 그들은 점토를 사용하여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전달했다.

종교적 권위를 악용한 성범죄

종교적 권위를 악용한 성범죄

퇴마 빙자 미성년자 학대·기만 사제와 어머니 공모로 무너진 삶 아동 성추행 혐의로 수감된 스페인 신부가 무죄를 주장해 온 가운데 교회로부터 금전 지원을 받아 온 사실이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가 입수한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사건의 가해자인 호세 루이스 갈란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톨레도의 한 학교에서 영적 지도자로 재직하던 중, 10대 청소년을 학대했다. 그는 2010년 산티아고 순례길 학교 여행 중 해당 미성년자를 처음 만났으며, 1년 뒤 해당 학교의 영적 지도자로 임명되어 ‘제2의 아버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16세 소녀의 어머니는 딸이 갈란 신부에게 조언을 구하도록 권했고, 이에 소녀는 산 일데폰소 성당에 있는 갈란 신부의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그를 만나기 시작했다. 갈란은 이곳에서 3년 동안 소녀에게 성적·신체적·정신적 폭력을 반복적으로 가했다. 특히 대법원 문서에 따르면 해당 신부는 미성년자를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의사가 진단한 섭식장애를 완화할 수 있다며 세 차례에 걸쳐 퇴마 의식을 받도록 속였다. 첫 번째 구마 의식이 진행된 날, 소녀는 해당 신부의 사무실에서 가해자와 다른 신부, 그리고 어머니를 만났다.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는 갈란 신부와의 연인 관계로 인해 이혼 소송 중이었으며, 소녀는 이를 알지 못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의 어머니는 딸의 병이 악마의 영향이라며 속옷과 티셔츠만 남기고 옷을 벗은 채 퇴마 의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딸은 그대로 따랐고, 현장에 있던 다른 사제가 의식을 시작했다. 교회법에 따르면 이 의식은 주교의 승인과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2019년 해당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대주교는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도된 퇴마 의식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갈란은 이러한 범죄와 학대 행위로 인해 2021년 체포되었으며,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2024년 복역을 시작했다. 갈란은 법정 심리에서 피해자가 어머니와 자신의 연인 관계에 대한 질투심으로 신고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스페인 대법원은 피고 측이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했다’는 주장을 비판하며 10만 유로의 배상금과 소송 비용 지불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갈란의 행위가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수년간의 학대 동안 이 10대 소녀는 거식증에 걸렸고 자살을 시도하여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엘 파이스에 따르면 갈란은 복역을 시작한 이후에도 톨레도 교회로부터 계속 금전 지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톨레도 대교구 재무 담당자인 아나스타시아 고메스는 “수감 사제에게 급여는 지급하지 않지만, 배상금 등 재정적 의무를 충당할 수 있도록 기본 생활비는 지원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엘 파이스가 입수한 문서에는 해당 금액이 ‘급여’로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갈란은 교회 내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아 사제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재판은 2017년 피해자가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며 시작되었음에도, 톨레도 대주교는 최종적으로 해당 사제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섭리 명분으로 행해진 성학대 대를 이어 자행된 인륜 파괴 종교적 권위를 앞세운 성범죄는 최근 공개된 영국 프라임 비디오 다큐멘터리 〈더 문니스: 컬트와의 결혼(The Moonies: Married to the Cult)〉에서도 드러났다. 문선명의 사생아로 알려진 샘은 해당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통일교 내부의 조직적 성착취와 은폐 실상을 폭로했다. 샘의 증언에 따르면, 문선명은 자신의 세력을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샘은 문 목사가 이른바 ‘여섯 마리아’로 불리는 첩을 거느렸으며, 제자라고 여겼던 여성들과 난잡한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문선명의 측근인 박보희의 아들로 길러졌던 샘은 13세 무렵 꿈을 계기로 자신의 친부모가 문선명과 ‘애니 이모’로 불리던 고위 회원 애니 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샘은 5세 때부터 친모인 애니로부터 학대를 받아왔으며, 15세 무렵부터 성적 학대가 지속되었다고 증언했다. 애니는 아들과의 성관계를 “차기 ‘참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는 섭리적인 일”이자 문 목사의 사명이 실패한 뒤 이를 회복하기 위한 ‘천상의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샘은 문 목사의 아들로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었기에 이러한 설명이 합리적으로 들렸다고 회상했다. 샘은 어머니를 찾아가 이 문제를 치유하자고 제안했으나, 애니는 “이미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샘은 이에 대해 통일교의 실체를 “빛으로 위장한 어둠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들이 숨긴 사악함의 산물이고, 그것이 제 인생을 파괴했기 때문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폭로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나이트클럽에서 설교하는 사제

나이트클럽에서 설교하는 사제

호스티스가 환영, 성경과 술병 공존 댄스 무대가 설교의 장으로 변모 최근 케냐 키탈레 교구의 성공회 사제인 마이클 와텐가가 나이트클럽에서 설교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와텐가가 클럽에 입장하면 종종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그가 파티의 중심부로 향할 때면 ‘도레미 걸’로 불리는 클럽 호스티스들이 그를 반갑게 맞이하기도 한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면 DJ는 세속적인 음악을 멈추고 복음성가를 틀기 시작하며, 참석자들은 파티를 멈추고 경청한다. 성경과 술병이 한 공간에 놓인 채 댄스 무대가 설교의 장으로 변모하고, 일부 손님들은 금전적인 기부까지 하기도 한다. 와텐가는 시티즌 TV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선량한 사람들이 많지만, 교회와 부모, 사회로부터 판단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활동에 대해 비판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소외된 이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이 자신의 접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원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그곳에 가면 그들은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제가 클럽에 가면 ‘하느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전해지기 때문에 그들은 저에게 더 편안하게 다가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포르투갈에서는 기예르메 페이쇼토 사제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과 결합한 형태로 활동을 이어가며, 바티칸의 지원을 받아 주요 종교 행사에서 테크노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진리를 묻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 장치인가?

연단 속에서 굳건해지는 신앙

혼혈 아동 강제입양 인권유린

시흥 J교회 목사, ‘가스라이팅’ 성착취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1936년생인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세 되던 1955년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공장조차 드물던 시절, 영등포 경성방직에서 기술을 배우던 중 같이 일하던 친구가 다급히 저를 불렀습니다. 지금 서울 남산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부흥집회를 하시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결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막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터라 열흘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받고 나니 가슴이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전차표 한 장 값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그 설렘을 안고 저는 건빵 한 봉지를 손에 든 채 전차에 올랐습니다. 남산공원에 도착하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집회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저도 사람들 틈에 앉아 찬송을 따라 불렀습니다. 얼마 후 박 장로님이 등단하셔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찬송을 부르는 내내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저는 하루이틀이 지나도 집에 갈 생각조차 들지 않아 준비해 간 건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집회장에는 내무장관을 지낸 윤치영 씨와 국방부 장관 부인인 홍은혜 여사 등 당대 유명 인사들도 참석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은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 찬송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영등포까지 먼 길을 걸어 돌아오면서도 전혀 힘든 줄 몰랐고,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여의도 백사장 근처에서 영등포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저 좋은 낙원 이르니 그 쾌락 내 쾌락일세”라는 찬송을 부르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외치시자, 그 아가씨가 앞으로 나와 서툴지만 분명한 곡조로 찬송을 불렀고, 그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가슴 뭉클했습니다. 훗날 그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았을 때, 당시 은혜의 현장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초, 한강에서 다시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넓은 백사장의 천막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고, 자리를 놓칠까 봐 며칠씩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 단을 중심으로 이슬 같은 성신이 뽀얗게 내렸고, 말씀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 때면 세상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취의 은혜가 진동했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저는 더욱 힘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밤이면 은혜받은 사람들이 단 앞으로 나와 저마다 체험을 생생하게 증거했고, 아침이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신 후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겹겹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시며, 한 명 한 명에게 빠짐없이 축복해 주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저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무척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기운이 없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앞뒤로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시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제 머리 위에 한참 동안 손을 얹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던 모습과 달리 눈에 띄게 기력을 회복했고, 지금까지 그 은혜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찬송을 부르고, 생명물로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 권능을 확신해 무더기 심방 때 안수 받는 순간 기침이 즉시 멈추고, 쇠약했던 몸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해 집회를 다녀온 뒤 저는 더 이상 성결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집회 소식을 전해주었던 친구는 교회 목사들이 박 장로님을 비방한다며 저에게도 발길을 끊으라고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직접 보고 체험한 저로서는 그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로 기성교회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전부터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연한 구원의 길을 찾고 싶어 교회에 나간 것인데 마음 한구석은 늘 답답했습니다. 어떤 때는 예수의 형상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에 하나님께서 “예수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은혜는 예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지난 집회 현장에서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에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으나, 한동안 소식이 끊겼습니다. 어디서 집회가 열리는지 알 길이 없었던 저는 답답한 마음에 수소문하며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원효로 구제단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원효로 구제단을 찾아가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 말씀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계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따뜻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셨는데, 그 인자한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제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서울 시내에서 무더기 심방을 자주 다니셨습니다. 한 집에 10~20명씩 모여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안수와 안찰을 해주셨는데, 이를 ‘무더기 심방’이라 불렀습니다. 안수 후에는 귀한 말씀도 들려주셨고, 어떤 사람들은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집으로 이동하시면 저희도 그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무더기 심방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평소 겨울만 되면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밤새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기침이 심해 전날 밤에도 한숨도 못 자고 심방에 참석했다가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그 즉시 기침이 멈췄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런 기침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옆집 아이의 다리를 물어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라 급한 마음에 생명물을 찾아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습니다. 얼마 후 아이어머니가 돌아와 상처를 확인해 보니, 조금 전까지 피가 맺혔던 자리가 어느새 아물어 흔적도 없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 어린아이가 숨을 거두었을 때 생명물로 씻기자, 뽀얗게 피어 잠든 듯한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명물에 담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57년, 저는 이만제단이 세워지면서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한강 변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만제단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일요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언덕을 오르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앞서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뒤에서 등을 밀어드리며 그 길을 오르곤 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열린 장로장립식과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전도관 체육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며,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냥 기쁘고 좋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전하기 위해 의정부, 속초 등 먼 지역까지 찾아다녔습니다. 한번은 포천 송우리에서 전도하던 중, 기성교회 청년회장이 운영하던 타이어 수리점에서 그와 며칠에 걸쳐 성경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과 하나님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는 선뜻 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가 난 목사가 그를 서울로 보내 6개월간 특별 교육까지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은 두 번째 토론에서도 역시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결국 며칠 뒤 그 목사가 저를 찾아와 “우리 청년회장을 6개월이나 따로 교육해 보냈는데도 답을 하지 못하니,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경찰이나 군인들이 전도를 막으려다 오히려 전도되는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전도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기사이적을 직접 목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일은 제 인생의 가장 큰 복이었습니다. 그 모든 역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죄를 벗어 그 세계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시며 의인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귀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죄에서 벗어나 맑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세계에 합당한 자격자가 되어 하나님 뵈옵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

(지난호에 이어) 저는 새벽 제단을 쌓기 위해 제단 근처에 사시는 문삼섭 권사님 댁에 머물며 살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의 어린 딸을 등에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구역장 직분을 맡아 예배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소사신앙촌 1차 건설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지원하겠다고 나서자, 문 권사님께서는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미 집회에서 큰 은혜를 체험한 저는 하나님께서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굳게 다짐한 터라 꼭 가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소사신앙촌에 도착해 보니, 노구산에 오만제단이 세워지기 전 예배를 드리던 구제단은 이미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주택 A·B동은 일부만 완성된 채 한창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순천, 구례, 광양에서 올라온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함께 일했는데, 그 시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히 아침저녁으로 안찰을 해 주시면 그 자리에 함께한 저희 모두에게서 향취가 진동했고, 안찰을 받고 돌아설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라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물을 마시자 향취 덩어리가 목으로 넘어가고 기쁨 넘쳐 어느 날은 팀별로 벽돌 찍기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단합이 잘 되는 서울과 인천팀은 앞서 나갔지만, 저희 광주팀 12명은 자꾸 뒤처져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축복해 주시겠다 하시며 저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에는 물을 뜰 만한 곳이 없어 저는 건설대를 지휘하시던 장세호 집사님의 오두막까지 급히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그릇이 눈에 띄지 않아, 다급한 마음에 넓적하고 얕은 옴박지에 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데, 혹시나 하나님께서 가버리실까 봐 마음이 몹시 조급했습니다. 한시바삐 가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뛰어오다 보니 물은 자꾸 쏟아지고 옷은 어느새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겨우 남은 물을 들고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오다가 물도 쏟고 옷도 다 젖었구나” 하시며 몇 걸음 다가와 맞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물을 향해 축복해 주시자 진한 향취가 맡아졌고, 한 모금 마실 때는 향취가 덩어리째 목으로 넘어가는 듯했습니다. 저희 팀원 모두가 그 물을 함께 나누어 마시며 기뻐하던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건설대에서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는 체구가 작은 제가 지게를 지고 일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보셨는지, 앞으로는 지게를 지는 일 대신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든 현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게 되어 아쉬웠지만 이후 수예부에서 일하게 되었고,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 틈틈이 현장 일을 거들며 신앙촌에서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 무렵 저는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는 곳을 부지런히 쫓아다녔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안찰이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은혜를 받고 싶은 마음에 늦게라도 찾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웃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던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얼마 후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받은 은혜를 가슴에 간직한 채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울로 나왔습니다. 마포 이만제단과 을구 지관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지만, 1967년 결혼과 함께 정읍으로 내려가면서 한동안 제단과 발길이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동생의 권유로 성남 제단에 나가면서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비조합원으로 안찰을 받으러 갈 때면, 하나님께서는 늘 “죄짓지 마”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오면 주변에서 제 목소리와 행동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할 만큼 제 자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정성을 다하게 되고, 제가 받은 은혜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노량진교회에 오시는 날이면, 저는 성남의 초등학교 교사 20명과 함께 택시 5대에 나눠 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저희가 도착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척 반가워하시며 예배실 2층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때 단에서 “이슬성신이 내리니 여기 온 사람들은 은혜를 받습니다. 아이들도 교회에 데려오면 은혜를 받으니 모두 데리고 오세요”라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980년,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제 마음에는 마치 출발 신호를 받은 운동선수처럼 힘껏 달려야겠다는 다짐이 일었습니다. 당시 기성교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저는 제가 직접 은혜를 받고 겪은 일들이 분명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해 주시면 그 물이 썩지 않는 생명물이 되고, 그 물로 고인의 몸을 닦아 드리면 입술이 붉어지고 얼굴이 환하게 피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부(弟夫)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오신 분들이 고인을 생명물로 정성껏 닦아 드리자, 가족들이 모두 놀랄 만큼 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환한 모습으로 피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에서 19년 동안 소비조합 활동을 하던 중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물건을 팔고 청량리에서 막차를 탔다가 깜빡 잠이 들어 덕소를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놀라 급히 내렸지만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산속이었습니다. 적막 속에 개구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 순간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차 안의 신사분이 저를 보고 “귀신이요, 사람이요?” 하고 외쳤습니다. 제가 사람이라고 소리쳤지만 차는 곧 달아나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풀밭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리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다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아까 그 차였습니다.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로 나가 차를 막아섰습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저는 차분히 사정을 설명하며 태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저를 차에 태워 주셨습니다.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덕소 근처에 이르렀을 무렵, 그분이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오늘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그날 새 차를 뽑아 가족과 피서를 왔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가 크고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분이 나타나 “지금 당장 양수리 쪽으로 가라”고 재촉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놀란 마음에 차를 몰고 나왔다가 깜깜한 길에서 겁이 나 돌아갔는데, 차 안에 앉아 있자 같은 분이 또 나타나 “누군가를 만나거든 차에 태워 덕소 정문에 내려주고 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집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오십부장님께 밤사이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전해 들은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갔어. 내가 거기 찾아갔어. 들판에서 짐을 잔뜩 짊어지고 떨고 있길래 사람을 보냈어. 그런데 안 가길래 두 번이나 가서 보냈어.” 그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칠흑 같은 들판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뒤에도 제 곁에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신앙촌 이불 네 채를 버스에 싣고 노량진에서 성남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 오던 중, 이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늘 곁에 있으니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따라와’ 하며 다독여 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진한 향취는 한동안 이어지다가 집 근처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소비조합 활동을 하는 동안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시니,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일요일이면 신앙촌 고객분들을 덕소교회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그 가운데 꾸준히 예배에 나오는 분들도 생겼는데, 현재 덕소교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성순 집사님도 그때 인연이 닿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되어 은혜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모든 일이 감사하게 느껴졌고, 그 벅찬 기쁨 속에 ‘하나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되고’라는 찬송이 절로 입가에 맴돌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몸이 좋지 않아 한동안 축복일에 참석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다시 신앙촌을 찾게 되었는데, 후문 다리를 건너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취에 저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 저 왔습니다” 하고 나직이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저를 기다려 주신 것만 같은 따스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19살 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늘 제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 마음 깊이 밀려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할 때 귀 기울여 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지켜주시고 낙원 가신 뒤에도 향취 은혜 주시며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려 하늘 세계를 소망 삼아 살아갈 힘을 주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소망은 하나님을 온전히 마음에 모시고, 허락해 주신 건강을 잘 지켜 끝까지 소비조합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남은 생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하오니, 구원의 손길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은혜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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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2000년대 천부교는 안팎으로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성전이 국내외 곳곳에 세워지고, 천부교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가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신앙촌이 조성되어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진실을 바로 세운 ‘MBC 사건’ 승소 2000년대의 시작은 천부교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9년 6월, MBC가 기획 시리즈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를 방영하며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이에 천부교단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0월 27일 서울지법은 MBC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 교단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바로 세운 사건이었다. 이는 천부교를 올바르게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내외에 세워진 신‧개축 천부교회 2000년대 들어 천부교는 전국 각지에서 새 제단을 세우거나 개축하며 신앙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 나갔다. 부산 광안교회, 제주 일도교회, 인천 숭의교회를 시작으로 울산, 동두천, 원주 등지에 성전이 세워졌고, 2001년 12월 23일에는 미국 뉴욕 퀸즈 지역의 뉴욕교회가 개축되었다. 1978년 뉴욕전도관으로 개관한 뉴욕교회는 개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며, 한국을 떠나 생활하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신축의 열기가 이어져 기장, 전농, 가야, 영주, 청평, 순창, 서마산교회 등에서도 새 제단이 완공되었다. 2008년 10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 워싱턴교회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신축예배를 드렸다. 국내외에서 새롭게 단장한 성전들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널리 전하며, 진리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천부교를 알리는 홈페이지 개설 2004년 4월 20일, 천부교 공식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천부교와 신앙촌에 대한 소개와 정보, 천부교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관, 예배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온방송국,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된 어린이 코너 등 다양한 채널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천부교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 코너는 학습과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18년에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커뮤니티와 신앙신보 코너를 추가하고 소통과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천부교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천부교 홈페이지는 천부교를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 다큐멘터리 상영 2005년 추수감사절 전야 샘터공원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이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고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 집회,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은혜를 받는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 큰 감동을 주었다. 영상은 또한 정치·종교계와 언론의 핍박 속에서도 신앙촌 건설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하며,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죄 안 짓고 깨끗이 생활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신앙인의 마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큐에는 유엔 한국 재건단 콜터 단장이 소사신앙촌을 방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라고 감탄한 증언도 담겼다. 또한 1998년 9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천부교인의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본 카르멘 코토 여사의 증언도 수록되었다. 코토 여사는 “장의사로 8년 반을 일했지만, 천부교 장례식에서 고인의 손과 몸이 제 살보다 더 부드럽게 변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코닥사의 축복 사진 감정서도 영상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역사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았던 이경태 감독은 “천부교인들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정말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라면 인생이겠지만,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마다 이어진 천부교 체육대회 1998년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체육대회가 자리 잡았다. 2001년 10월 7일, 신앙촌 제강운동장에서 ‘건강한 시온인 달리는 시온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부와 남부지역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5km 건강 마라톤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뛰며 서로를 응원해 활기를 더했고, 각 팀이 준비한 화려한 응원전은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2004년 10월 3일에는 ‘희망찬 도전, 아름다운 화합’을 주제로 또 한 번의 체육대회가 열렸고, 2007년 10월 7일 신앙촌 대운동장에서는 ‘힘찬 도약, 함께 뛰는 시온인’을 슬로건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림과 글씨, 다양한 동작으로 ‘신앙촌’을 표현하는 테마 응원전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지금도 천부교 체육대회에서는 경기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기르고, 응원을 통해 하나 된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촌 조성 2006년 신앙촌에 대규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군락지와 식당 앞 분수대가 조성되었다. 사원들의 휴식처이자 축복일에는 교인들의 산책길로, 견학생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로 활용되는 두 공간은 신앙촌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7년 5월에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신앙촌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며, 사원과 교인 모두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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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56>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사기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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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  한 가정집 뒷마당 간이 수영장에서 ‘침수식 세례’ 진행, 세례받던 남성 사망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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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심리적 장치인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4. 권능의 집회마다 기성교회의 방해 공작 치열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안 짜고 깔끔한 맛” 손님이 먼저 알아

“안 짜고 깔끔한 맛” 손님이 먼저 알아

모든 요리에 신앙촌 ‘염도 낮춘 양조간장 골드’ 사용 오랫동안 다시 찾게 되는 음식의 깊은 맛 지향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장운산 꽃게’는 꽃게 요리가 맛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운영하는 오미연 사장은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간장을 신앙촌의 ‘염도 낮춘 양조간장 골드’로 통일해 쓰고 있다. 간장게장은 물론 양념게장, 꽃게찜 등의 요리와 각종 반찬과 소스까지 간장이 들어가는 음식에는 모두 신앙촌간장이 쓰인다. 오 사장이 처음부터 신앙촌간장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앙촌간장을 몰랐어요. 다른 브랜드 간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는 소비조합사장님이 식당에 찾아와 샘플을 권유한 것을 계기로 직접 써 보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말통으로 구매해서 계속 쓰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간장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간장 하나만 달라져도 음식 전체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간장게장처럼 간장 맛이 중심이 되는 메뉴는 맛의 변화가 더 크게 드러난다. “신앙촌간장으로 요리를 해보니까 달라요. 안 짜고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요. 다른 간장은 진하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맑은 느낌이 있어요. 맛이 진한데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신앙촌에서 간장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변화는 손님 반응에서 먼저 나타났다. 장운산 꽃게의 대표 메뉴인 간장게장을 먹은 손님들은 “짜지 않은데 맛이 진하다”, “깔끔하고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장운산 꽃게에는 오랫동안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많다. 그 손님들은 한 번 먹고 지나가는 이들이 아니라,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는 사람들이다. “잠시 하다 말 거면 대충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어갈 일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죠. 좋은 재료로 손님들한테 대접하면 손님이 잊지 않고 또 찾아 주세요.” 개인 손님뿐 아니라 단체 손님들의 발길도 꾸준하다. 주변의 오래된 회사들이 회식 자리를 위해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번 맛본 뒤 다시 여럿이 함께 와서 간장게장과 꽃게탕을 곁들여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오 사장은 “손님들 가운데는 식사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부모님께 드린다며 따로 포장해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집에 아픈 가족이 있다며 챙겨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더 정성을 들이게 돼요”라고 말했다. 이어 “간장게장을 드시고 남은 소스를 따로 포장해 달라고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걸 집에 가져가서 생선 조릴 때 쓰기도 하고, 깻잎 졸여 먹을 때도 사용하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간장게장에 쓰인 소스가 별도로 활용할 만큼 맛을 인정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손님 반응이 좋다 보니 한때는 간장 소스를 따로 만들어 판매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오 사장은 “간장 소스만 따로 팔아보자고 제안받은 적도 있어요. 신앙촌간장을 사용한 저만의 레시피로 판매 제안을 받았었죠”라고 말했다. 지금의 식당에 전념하고 싶어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소스 자체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 사장은 “모든 간장은 신앙촌간장을 쓰고 있어요. 양념을 섞어도 간장 자체가 맛이 있으니까, 음식이 짜지 않고 더 깔끔해졌어요.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짜지 않게 먹으니까, 손님들이 더 좋아하세요”라고 말했다. 간장을 바꾼 뒤에는 두부도 함께 신앙촌두부로 바꿨다. “간장을 바꾸면서 두부도 신앙촌두부로 바꿨어요. 부드럽고 고소해서 찌개에 사용하면 맛이 좋아요.” 오 사장이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좋은 걸로 해야 오래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깐은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렵죠. 양심적으로도 좋지 않은 음식을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이어 “저는 양념을 아끼지 않는 편이에요. 고춧가루나 참기름도 좋은 걸 써야 맛이 나더라고요”라고 했다. 꽃게 역시 좋은 것을 쓰고, 과일도 아끼지 않고 갈아서 양념에 넣는다. “싼 걸 쓰면 싼 것만큼의 맛이 나고, 비싼 걸 쓰면 비싼 것만큼의 맛이 나요.” 결국 신앙촌간장을 쓰는 이유도 좋은 재료를 써야 음식의 수준이 유지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앙촌식품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상태로도 좋아요. 두부도 좋고 간장도 좋고요”라고 말했다. 오 사장은 마지막으로 “큰 계획을 세워 놓고 조급해하기보다, 지금처럼 좋은 재료로 손님상을 정성껏 차리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 거예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신앙신보를 통해 전도돼

신앙신보를 통해 전도돼

어릴 때 교회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저는 20대에 친구가 전해 준 신앙신보를 통해 천부교회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유난히 약했던 제게 하나님 말씀과 체험담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체험담 속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저 역시 그 은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부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 나와 생명물을 마시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면서 몸은 점차 좋아졌습니다. 직장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제가 지금은 신앙촌상회 사장이 되어 일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도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신앙신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신앙신보를 통해 제가 전도되었고,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혼자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이 길로 이끌고 싶어, 오늘도 저는 신앙신보를 건네고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전도의 시작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전도의 시작

황수남 관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SANC식품여고 졸업생과 재학생, 입학생을 배출했다. 전도에 대해 묻자 황 관장은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답했다.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아이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해요. 겉으로는 밝아 보이는 아이들도 저마다 말 못 할 고민을 안고 있거든요. 특히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아이들의 진심도 보였다. 약속을 지키려는 마음,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려는 자세, 베풀 줄 아는 모습 속에서 황 관장은 이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 알찬 열매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여러 관장님들께서 정성으로 키워오신 귀한 아이들이잖아요. 잘 자라 구원의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기도를 많이 드렸습니다.” 전도의 준비와 실천 평소 계획과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황 관장은 학생들의 입학 과정에서도 무엇을 도와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1~2주 단위로 아이들에 대한 계획표를 작성해 엑셀 파일에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의 고민에 맞춰 어느 시점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바탕으로 들려 줄 말씀과 체험기를 선정했어요. 시각적인 자료가 필요할 때면 PPT를 만들어 활용했고, 식사와 간식도 무엇을 준비할지 미리 생각해 두었습니다.” 특히 방학 기간은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쌓는 소중한 기회였다. 거의 매일 아이들을 만나 함께 요리하고, 말씀과 체험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속마음을 나눴다. “친해져야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필요하면 주변에 물어보고 자료도 찾아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친분이 없더라도 직접 섭외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적재적소에 연결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황 관장은 입학설명회에 오지 못한 학부모들을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해 학교 생활과 진로를 상세히 안내하고, 아이들에게는 먼저 입학한 선배 언니들과 직접 대화하며 궁금증을 풀 수 있도록 했다. 간절한 기도 식품고 입학을 간절히 원하던 한 학생의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여러 현실적인 제약으로 입학 허락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교회에 들러 기도했다. 황 관장도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안타까워하며 함께 기도했다. “아이가 정말 가고 싶어 했어요. 기도할 때마다 그 아이의 간절함이 떠올라 저도 노트에 아이 이름을 적으며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접수 마감이 다가오는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솔직히 여기까지인가 싶은 마음이 살짝 스치기도 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감 하루 전날 밤,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허락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밝았는지 몰라요. 그다음 날 신기하게도 모든 절차가 술술 풀리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길을 열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의 시간을 다 알고 이날을 준비해 두신 것 같았어요.” 황 관장은 그 일을 통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고 했다. 은혜 속에 함께 성장하는 시간 입학이 결정된 후, 황 관장은 입학까지 남은 두 달 반 동안 아이와 거의 매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낯선 기숙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업과 생활 습관을 함께 점검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를 만나는 일이 사실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모아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참 기쁘고 즐거웠어요.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기억해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황 관장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 또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입학한 아이들은 이제 후배를 살뜰히 챙기는 든든한 선배가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오면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돕고 그 마음은 다시 다음 후배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에 입학해 밝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견합니다. 아직 어리고 신앙이 약하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키워 주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학생관장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바로 그런 때다. “입학한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바르게 잘 살고 싶다고 말해 줄 때, 그리고 축복일이 되면 저를 먼저 챙겨주며 마음을 써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큰 힘을 얻습니다.” 졸업생 조미희 씨는 “관장님은 제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 같은 분이세요. 중학생 때부터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졸업한 지금도 변함없이 저를 챙겨 주고 계세요.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시는 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좋은 재료로 채운 한 끼

좋은 재료로 채운 한 끼

하루 600~700인분을 만드는 점심 도시락 업체 “매일 먹는 한 끼, 좋은 식재료로 정성을 담아요” 공장과 회사 등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토담골’은 점심시간에 맞춰 한식 위주의 도시락을 만드는 업체다. 하루 600~700인분의 도시락을 준비해 각 거래처에 보내고 있으며, 꾸준한 납품과 안정적인 맛으로 거래처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음식의 맛이 좋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주문 물량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많은 물량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보내야 하는 만큼 일과는 빠듯하게 돌아간다. 토담골 박영철 사장은 “전날 저녁에는 다음 날 사용할 식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새벽부터는 재료 손질과 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조리된 음식은 위생적으로 포장된 뒤 점심시간에 맞춰 각 사업장으로 신속하게 배송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토담골 도시락은 요일마다 반찬 구성을 달리한다. 기본 반찬 다섯 가지에 국이나 찌개가 더 해지며, 무생채, 생선튀김, 가지나물 등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식 메뉴가 고르게 구성된다. 또 계절에 따라 일부 재료를 바꿔 메뉴에 변화를 주고 있다. 박 사장은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식재료를 꼽았다. “식재료는 국산 위주로 신선한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료의 특성에 맞게 조리해야 맛이 살아나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재료 선택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식재료에 맞춰 간장도 자연스럽게 좋은 제품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토담골에서 신앙촌간장을 사용한 지는 13년이 넘었다. ‘골드간장’과 ‘국간장’을 음식의 종류에 따라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박 사장은 “국이나 찌개에는 국간장을 쓰고, 볶음이나 조림, 양념에는 골드간장을 사용합니다. 용도에 맞게 나눠 쓰는 것이 음식 맛을 균형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이나 찌개는 물론 각종 반찬과 양념에도 간장이 폭넓게 사용되는 만큼, 간장의 품질은 도시락 전체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박 사장은 “신앙촌 간장은 양조간장이기 때문에 음식에 사용했을 때 맛이 깔끔하게 잘 어우러집니다. 생선이나 고기반찬, 두부조림처럼 간장이 들어가는 메뉴가 많기 때문에 간장은 거의 모든 조리에 사용됩니다. 양념을 했을 때 맛이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점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토담골에서는 신앙촌두부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두부가 들어가는 찌개는 물론, 두부조림 등 다양한 반찬에도 활용하고 있다. 끝으로 박 사장은 “많은 분이 매일 드시는 식사인 만큼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껏 조리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간장에 이어 두부까지 신앙촌식품을 함께 쓰게 되면서 토담골의 한 끼는 더욱 풍성해졌다.

주니어

전도의 기쁨으로 하나 된 하루

전도의 기쁨으로 하나 된 하루

4월 ‘전도의 날’을 맞아 전국의 천부교회에서 뜻깊은 하루를 보낸 가운데 인천교회와 서면교회의 이야기를 전한다. ■ 전도의 기쁨을 배워가는 인천교회 인천교회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초대장을 전하는 것은 물론, 처음 교회에 오는 친구들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교회 청소와 음식 준비에도 정성을 쏟았다. 김수정 씨(여청)와 김예빈 양(중3)은 아이들에게 줄 참치 주먹밥과 마라탕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직접 맡아 진행했다. 이날 특히 인기를 끈 ‘두바이 쫀득 초코 쿠키 만들기 체험’을 위해 두 사람은 마시멜로를 능숙하게 녹여냈다. 김수정 씨는 “전도의 날에 많은 아이들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초대장을 나눠줬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동생들을 묵묵히 이끌어온 김수정 씨의 영향으로, 이번 전도의 날에는 동생들도 기도하며 함께 전도에 나섰다.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분주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전도에 나선 아이들에게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김예빈 양은 심방에 함께하지 못한 날에도 집에서 기도로 힘을 보탰다. 2년 전 전도의 날에는 강지은(초5), 강서은(초2) 자매를 전도하기도 했다. 지은 양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언니들이 잘 챙겨줘서 낯설지 않았어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번에 처음 전도의 날 준비에 함께한 김지안 양(초6)은 “함께하니까 더 많은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전해 줄 수 있었어요”라며 “처음엔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천부교회를 친구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예진 양(초5)도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전도를 할수록 친구들이 하나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워졌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약속했던 친구가 오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초대장을 전하며 전도를 계속하고 싶다며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라고 덧붙였다. 이날 도우미로 함께한 이혜영 집사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세심하게 돌봤다. 이 집사는 신앙촌상회 고객인 학부모를 먼저 전도한 뒤 그 자녀를 교회로 이끌었고, 그 자녀는 다시 친구인 김지안 양을 전도했다. 이 집사는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 더욱 마음이 갑니다. 아이들이 바르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라며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자주 챙기지 못했는데, 전도의 날을 통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도울 수 있어서 큰 보람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기뻤습니다”라고 전했다. 최원영 관장은 “이혜영 집사님께서 전도에 늘 관심을 가져주시고 아이들까지 세심하게 돌봐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이끌겠습니다”라고 밝혔다. ■ 함께 뭉쳐 더 큰 힘이 된 서면교회 서면교회의 전도의 날은 학생들이 스스로 전도의 의미를 깨닫고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전도의 날을 앞두고 학생들은 기도문 카톡방을 만들어 함께 기도했고, 그 과정에서 처음 목표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기도를 하게 됐다고 했다. 학생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도에 나섰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교회 앞에서 직접 솜사탕을 만들고 초대장을 전하며 친구들을 맞이한 박어진 양(중3)은 “솜사탕을 받은 친구들이 좋아해서 저도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자주 열리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가희 양(고1)은 “처음엔 전도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교회에 온 아이들을 보며 열심히 심방한 보람을 느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라고 전했다. 홍혜정 양(고2) 역시 “선생님과 관장님을 도우며 친구들과 함께 노력한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며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어 앞으로의 전도의 날이 더욱 기대된다”고 했다. 대학생 반사들의 활약도 빛났다. 전소영 씨(대3)는 “지난해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올해는 심방도 하고 풍선 아치도 만들며 끝까지 함께할 수 있어 뜻깊었어요. 처음 도전한 풍선 아치가 기대 이상으로 잘 완성돼서 기뻤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소희 씨(대4) 또한 “초대장을 나눠주고 풍선을 만들며 웃던 시간부터 말씀 공부를 통해 의미를 되새긴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서면교회 유년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남승희 관장은 “어린아이들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챙기는 모습에서 전도의 귀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날이라는 생각으로 더욱 정성을 다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날씨의 역사를 한눈에, 국립기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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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기쁨, 친구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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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신앙촌 봄꽃 축제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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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권사님 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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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43만 년 전 나무 도구 발견

43만 년 전 나무 도구 발견

▲ 세계 최고령 나무 도구 찾아내다 독일, 영국, 그리스 연구팀이 그리스에서 43만 년 전에 사용된 나무 도구를 발견했다. 튀빙겐 대학교, 레딩 대학교, 젠켄베르크 자연 연구소의 연구진이 함께 참여한 이번 발견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손으로 잡는 나무 도구이다. ▲ 그리스 호숫가에서 발굴된 유물 유물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중부의 ‘마라투사 1’ 유적지에서 발굴됐다. 발견된 나무 도구는 오리나무나 버드나무, 또는 포플러(Populus, 사시나무속에 속하는 모든 수종)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나무 도구 외에도 석기 도구와 코끼리 등 동물의 뼈도 함께 발견됐는데, 이를 통해 이 장소가 호숫가 도축장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현미경으로 밝혀낸 인간의 흔적 나무는 돌과 달리 오랜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보존이 매우 어렵다. 연구팀은 현미경으로 나무 표면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칼로 자르고 다듬은 흔적을 발견했다. 오리나무 조각에는 모양을 다듬은 흔적과 사용하면서 생긴 마모 흔적이 모두 있었는데, 땅을 파거나 나무껍질을 벗기는 데 썼을 가능성이 있다. ▲ 나무 도구 사용 역사, 4만 년 앞당겨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나무 도구들은 영국, 잠비아, 독일, 중국 등에서 발견됐지만, 모두 이번 유물보다 후대의 것이었다. 이번 발견은 나무 도구의 사용 시기를 최소 4만 년 이상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동남유럽에서 이런 종류의 나무 도구가 발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PNAS에 발표됐다.

“340만 년 전 발자국, 인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다”

지구온난화, 북극의 땅과 바다가 동시에 요동친다

철저한 계획이 성취를 만든다

1시간 걷기 vs 3분 숨차게 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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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움직일수록 질병 멀어져 운동, 양과 강도의 균형이 중요 그동안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덜 앉고 더 움직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됐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두 개의 연구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 얼마나 많이 움직이느냐 뿐 아니라, 얼마나 강하게 움직이느냐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연구는 약 10만 명 규모의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데이터를 활용했다. 참가자들은 웨어러블 기기로 활동량을 7~8년간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 총 운동량이 비슷하더라도 ‘숨이 찰 정도’의 고강도 운동 비율이 높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8가지 주요 만성질환 위험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치매 약 63%, 제2형 당뇨병 60%, 주요 간질환 위험 48%, 전체 사망 46%, 만성 신장 질환 41%, 면역 매개 염증성 질환(IMIDs) 39%, 주요 심혈관 사건(MACE) 31%, 심방세동 29% 등의 위험 감소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연구에서 의미 있는 효과가 확인된 고강도 운동량은 주당 약 15~20분, 하루로 환산하면 2~3분 수준에 불과했다. 4월 1일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메디슨(Communications Medicine)’에 게재된 다른 연구는 더욱 넓은 개념인 ‘중등도~고강도 신체활동(MVPA)’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신체 활동량이 가장 적은 그룹(주 65분 이하의 하위 10%)과 비교해 주 150분의 MVPA를 수행한 그룹은 총사망 위험이 48% 낮았고, 300분까지 늘린 그룹은 5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계단 오르기, 빠르게 걷기 같은 짧은 중등도~고강도 신체활동을 하루 중 여러 번 나눠서 누적해도 사망 위험이 의미 있게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발견했다. 단순히 2~3분의 짧은 MVPA를 여러 번 하는 것보다, 20~30분 이상 이어서 하는 운동(연속 활동)을 병행할 경우 건강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두 연구를 종합하면 운동은 ‘양’과 ‘강도’를 조합하는 게 수명 연장과 질병 예방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고강도 운동이라고 해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점심 식사 후 산책할 때 1분간 가볍게 뛰기, 계단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오르기, 집 근처 슈퍼마켓 갈 때 걷지 말고 뛰기 등이다. 핵심은 짧게라도 ‘숨이 차는 움직임’을 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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