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 ‘생명물간장’ 땅속발효공법 특허에 이어 종균 및 제조 방법 특허 등록 [특허 제10-2135340호]

양조 ‘생명물간장’ 땅속발효공법 특허에 이어 종균 및 제조 방법 특허 등록 [특허 제10-2135340호]

2017년 땅속발효공법 특허에 이어 또 한 번의 특허를 등록하게 된 생명물식품(주) 장유공장을 찾아가 보았다. 기업부설 연구소 허경숙 소장의 소개로 연구실을 둘러보며 간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특허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생명물식품(주) 허경숙 소장은 2011년 장유부로 발령받아 현장부터 연구실까지 공장 전반의 시스템을 익혀왔다. 현재는 연구원들과 함께 생명물 간장 품질개선 및 식품안전에 대해 관리하고 있다.] -간장이 만들어 지는 과정 간장은 크게 누룩 제조, 발효, 살균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집에서 장을 담가 먹던 시절에는 균에 의한 발효를 자연에 맡겼지만 요즘 장유를 만드는 기업에서는 위생적으로 철저하게 관리하여 간장을 만듭니다. 어떤 균을 접종하였을 때 안전하고 맛있는지를 다양하게 연구하여 우수한 균주를 원료에 접종 후 누룩을 만들어 발효시키는 것입니다. -간장의 깊은 맛은 단백질이 발효되면서 나온다. 세계 각국의 발효음식 대부분 그렇지만, 전통 장류의 맛 또한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하고 깊은 맛을 가졌습니다. 이런 깊은 맛은 콩과 미생물이 만들어 냅니다. 콩의 단백질을 미생물이 분해하고 발효시키면서 아미노산이 나오는데 이것이 오묘한 맛의 비결입니다. 숙성을 시킬수록 감칠맛이 더해져 더욱 깊은 맛을 내게 됩니다. 이런 단백질을 이용한 발효식품은 간장 뿐 아니라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의 장류, 우유를 이용한 치즈 등의 유제품, 생선 등으로 발효한 젓갈류가 해당합니다. -단백질 발효식품의 문제점, 바이오제닉 아민에 대하여 그런데 다양한 발효식품들이 갖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단백질이 발효될 때 바이오제닉 아민이라는 물질이 생성된다는 점입니다. 이 물질은 살아있는 세포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구성성분이지만, 히스타민과티라민 같은 일부 바이오제닉 아민은 알레르기나 혈압 상승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인체에는 이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과잉으로 섭취하거나, 또는 이를 소량 섭취했어도 분해효소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인체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유의가 필요하다고 식약처는 밝혔습니다. -생명물식품(주) 바이오제닉 아민 생성 억제시키는 종균 및 그 제조 방법에 특허 등록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비롯, 외국에서도 총체적인 기준이나 규격을 정해 관리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객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기업의 가치를 따라 생명물식품(주) 연구진들은 바이오제닉 아민을 저감화시켜 더 안전하고 건강한 제품을 고객에게 드리는 것을 목표하고 일본 미네 고문(후쿠오카현에서 현대의 명공으로 선정-식품부문), 노다 고문(후쿠오카현 장유양조협동조합 前전무)의 지도로 수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장유의 특성상 하나의 연구결과를 얻기 위해 6개월의 숙성기간이 필요한 만큼 장기전이 예상되었지만 한마음으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한 번 생성된 바이오제닉 아민은 살균이나 조리에 의해 파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식품의 제조과정에서 감소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생명물식품(주)는 간장 발효에 사용되는 유산균인 테트라제노코커스 할로필루스(Tetragenococcus halophilus)중에서 바이오제닉 아민을 생성하지 않는 균만 선택적으로 배양시켜, 발효 시 투입하는 방법으로 히스타민과 티라민의 생성을 저감화 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2020년 7월 13일 자로 “바이오제닉 아민의 생성을 억제시키는 종균 및 그 제조 방법”에 특허를 받게 되었습니다. 미생물을 발효시킬 수 있는 최고의 항균 시스템을 가진 땅속발효실과 좋은 물, 그리고 전 공정관리자분들의 철저한 위생관리가 기반이 되었기에 이번 연구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특허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특허로 양조간장의 풍미를 보다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 다시 한번 제품 품질의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시온입사생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시온입사생

시온입사생회가 입사 33주년을 맞이했다. 1987년 8월 7일,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더 맑은 신앙생활을 하자는 취지로 발족된 시온입사생회는 지금도 신앙촌 기업 등에서 일익을 담당하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입사생들은 33주년을 맞아 “크신 사랑 주의 은혜 속에 기쁨으로 길이 살게 합소서”라는 슬로건 아래 신앙촌에서 생활하는 기쁨과 감사함을 되새기며 구원을 향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또 시온여청회에서는 입사 33주년을 축하하는 기념화환을 입사생회에 전달하였다. 올해 입사 20주년을 맞은 최선희 씨는 “신앙생활과 일, 소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소희 씨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후회와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고, 김현지 씨도 “신앙촌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값진 보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견고한 모습으로 전진하는 입사생이 되겠습니다” 라고 입사 10주년을 맞이한 소감을 밝혔다. 이날 시온입사생회는 나를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자는 취지로 함께 가는 우리, MBTI 성격유형 알아보기 테스트도 SNS로 진행했다. 이재동 관장(시온입사생 담당)은 “입사생은 신앙촌의 귀한 가치를 알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받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속에서 항상 기쁨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입사생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이제는 ‘언택트’ 시대

코로나19 이후, 이제는 ‘언택트’ 시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언택트 산업이 중심 될 것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세상은 BC(Before Covid19)와 AC(After Covid19)로 나뉜다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전문가들은 산업이 급격히 재편되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언택트(비대면)산업’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언택트는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 코로나 이전에도 진행되고 있던 개념이지만, 코로나 이후 보다 급격하게 모든 변화의 축이 되고 있다. 언택트 서비스의 변화가 가장 활발히 일어난 곳은 유통산업이다. 유통업계의 공룡 아마존은 이미 2018년 ̒지나가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아마존고’를 선보였다. 아마존고는 수백 개의 인공지능(AI) 카메라 센서를 통해 고객이 어떤 상품을 샀는지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결제까지 완료하는 구조다. 즉, 고객은 물건을 고른 뒤 그냥 출입문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다. 부르면 달려오는 편의점도 있다. ‘모비마트’는 세계 최초 움직이는 무인 편의점으로, GPS 내비게이션, 각종 카메라 센서, 인공지능 솔루션이 탑재돼 있어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스스로 움직인다. 고객은 스마트폰 앱으로 모비마트를 불러서 문을 열고 들어가 진열된 상품을 집어오기만 하면 된다. 반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불리던 공유경제 산업은 추락하고 있다. 차량을 공유하는 우버, 집을 숙박시설로 제공하는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의 대표주자들은 몇 년 전까지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 공유경제 기업들은 존립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공간이나 소유물을 공유하기는커녕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조차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공유 경제 모델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분야도 언택트로 돌아섰다. 이제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생중계로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동영상 플랫폼을 이용한 영상 서비스를 확산하고 있고, 가상현실(VR)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면 마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몰입도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원격의료 도입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환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통신망이 연결된 모니터 등 의료장비를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의료 서비스는 의료와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면서 새롭게 성장할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앞으로는 개인의 건강기록을 수집하여 현재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모니터링해서 사전 경고를 해 주는 인공지능(AI) 주치의의 개념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성경의 주인공은 감람나무 하나님

성경의 주인공은 감람나무 하나님

7월 25일, 학생축복일을 하루 앞두고 신앙촌에 천부교 어린이와 학생들이 도착했다. 어린이와 학생들은 ‘SUMMER 어드벤처’에 참가하여 워터림보 등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관련 기사 8면) 오후에는 여청·대학생을 대상으로 경전 퀴즈대회와 특강이 열렸다. 퀴즈대회를 앞두고 신앙촌 내 휴게 공간 곳곳에서 경전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관련 기사 6면) 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한 드림캠프도 마련되었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26일, 축복일 예배에서 유명숙 관장 (마산교회)은 “성경에는 자유율법과 이슬성신, 감람나무가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시기 전까지 누구도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이슬성신의 권능을 보여주시니 우리는 성경의 주인공이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라고 설교했다. 예배 후에는 추수감사절 음악순서를 위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함께하는 주니어 합창단 연습이 있었다. 또 샛별부 디저트 만들기, 엘리트 여청 모임 등 파트별 프로그램이 있었다.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마무리하고 6일부터는 일상과 방역의 조화를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를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천부교 학생회는 이와 같은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한편,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을 통해 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다. 2월 초부터 천부교 측은 입구 체온측정, 손 소독제 비치, 2m 좌석 간격 유지, 참석자 동선 체크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예배를 드려왔다.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천부교회의 교육 방식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지금까지 교육 방식이 교회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면 교육이 주를 이뤘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육 받는 학생들이 온라인 상의 활동에 익숙한 세대들인 만큼 온라인을 통한 대화와 피드백이 활발히 이루어져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카카오 라이브톡으로 진행되며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1부 예배에 이어 2부는 하나님 말씀퀴즈, 3부는 다양한 비대면 놀이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온라인예배에 참여한 김민경 양(중1, 목동교회)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새로웠어요. 또 요즘 유행하는 수란 도시락 만들기, ASMR을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같이 해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매일 향상하는 시온의 음악인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매일 향상하는 시온의 음악인

8월 2일 일요일. ‘향상음악회’에 참가하는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들고 약속장소에 모여 음악회장으로 이동한다. 그들의 설렘과 기분 좋은 긴장감이 지켜보는 이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대기실에 도착한 연주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악기를 준비하고 바로 연주곡에 집중하는 모습이 프로페셔널 하다. 연주회장으로 발길을 돌려 보니 여기도 준비가 한창이다. 연주자들을 빛내 줄 꽃꽂이 등 무대 장식과 조명, 음향팀, 공정한 평가를 해 줄 심사위원 교수님들 그리고 청중들을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지와 청중평가 투표지까지 준비가 착착 진행된다. 드디어 사회자가 ‘향상 음악회’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을 알리며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하는 무대가 되도록 청중 평가단이라는 시스템을 더했다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주니어 단원부터 시온오케스트라 단원까지 연주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된 음악회에 김선희 책임 관장의 격려사가 이어진다. “오늘 참가한 연주자들이 가장 연주 실력이 뛰어나고 베테랑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격려하고 싶고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은 점점 발전하기 위해 위를 향하는 자세와 마음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해 매일 향상하는 시온의 음악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청중들은 음악회가 진행될수록 연주자들의 음악에 심취되고 연주를 마친 연주자에게 보내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음악회장 안에 가득찬다. 마지막 무대 후 청중평가단의 한 명으로 내가 뽑은 연주자가 상을 받을지 궁금하다. 두구 두구 … 첼로 노수빈 양과 바이올린 고가영 양에게 우수상이 주어지고 참가자 전원에게 수료증과 부상이 수여됐다. ‘향상음악회’의 취지대로 수상여부를 떠나 오늘을 준비한 참가자들에게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맑게 사는 생활 통해 은혜 입어야

죄를 씻어주시는 이슬성신

코로나 맞서는 ‘시민들의 힘’

소비조합에 격려의 메세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되자”

<바로잡습니다> 2020년 7월 26일 자 신앙신보 2584호 1면에 실린 죽성천부교회의 신축 예배 날짜를 6월 23일로 바로잡습니다.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쁠 수 없어”

저는 1935년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만주로 건너가 살았습니다. 독실한 감리교인이신 큰아버지가 집 마당에 교회를 세우셔서 어려서부터 거기 다녔습니다. 큰아버지는 만주에 사는 동안 교회를 여러 개 세우셨고 해방 후 서울 용산에 와서도 한성 감리교회를 세워 주동 장로로 일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큰아버지 식구와 같이 살면서 그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수도여고 3학년일 때였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도원동 장로교회 집회에 간다 하셔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도원동교회는 예배당을 새로 짓는 중에 건축 자금을 모으려고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을 모셔와 집회를 연다 했습니다. 저희 식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예배실 맨 뒤에 겨우 자리를 잡았습니다. 언니는 돌 지난 조카딸을 데려갔는데 어린애가 어른들처럼 손뼉 치며 찬송하는 것을 따라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저는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쉬지 않고 힘차게 찬송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예배에 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따라서 손뼉 치며 찬송을 부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남산 공원 집회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아 찬송을 부르면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도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롭고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마음 속에 새겨지며 가슴에는 기쁨이 차고 넘쳐 도원동교회 집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남산 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 집회가 열렸습니다. 공원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았는데 얼마나 넓은지 집회장 끝이 보이지 않았고 모여드는 인파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집에서 밥을 날라다 먹으며 밤을 새울 정도로 집회 열기가 굉장했습니다. 저도 언니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집회장에 있다가 책가방을 베개 삼아 눈을 붙인 후 학교에 갔습니다. 누가 집회장에 있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예배드릴 때마다 기쁘고 즐거워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 장로님 인도하시는 대로 찬송을 부르면 같은 찬송을 수십 번 연거푸 불러도 지겹지 않았고 오히려 가사의 뜻이 하나하나 새겨졌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은 어릴 적부터 늘 부르던 찬송인데 처음 배우는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정말 기쁨이 가슴에 차고 넘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안수해 주실 때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안수하셨는데, 저는 안수 받는 순간 불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온 것처럼 후끈후끈하며 몹시 뜨거웠습니다. 얼굴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부채질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도 부채질을 계속했더니 친구들이 아직 쌀쌀한 3월인데 왜 그러냐고 했습니다. 저는 온몸이 후끈후끈해서 밤중에 집회장에서도 추운 줄 몰랐습니다. 왜 이렇게 뜨거운지 영문을 몰라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박 장로님 말씀을 들으며 그 뜨거운 불이 불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이 집회에서 하나님의 성신이 불과 같이 내리는 것을 많은 사람이 느끼고 체험한다 하셨습니다. 집회장에는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벙어리가 말문이 트였다며 감격해 눈물을 흘렸고 들것에 실려 온 중환자가 일어나 뛰면서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생기니 날이 갈수록 집회장에 오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우리 동네 어른들도 남산 집회에 많이 참석하시더니 그 후로 박 장로님의 영등포 집회와 한강 집회에 따라다니셨습니다. 저도 박 장로님 집회가 있다 하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갔습니다. 그해 가을 무렵 원효로 박 장로님 댁 뒷마당에 예배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렸는데 그곳을 원효로 전도관이라 불렀습니다. 어머니와 저, 언니는 원래 나가던 감리교회와 전도관을 같이 다니다가 나중에 온전히 전도관 교인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감리교 집안에서 전도관으로 가게 된 데는 그만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박 장로님께서 서울 시내 목사와 장로들에게 안찰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성교회 장로인 큰아버지도 안찰을 받으셨는데, 그날 박 장로님을 처음 뵈었고 누가 말씀드린 사람도 없는데 박 장로님께서 “고집이 센 분이지요. 그래서 교회를 여러 개 세웠지요.” 하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하셨습니다. 함께 있던 다른 장로님들도 저 양반 고집 센 것을 어떻게 아시냐며 놀랐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안찰 받을 때 박 장로님의 손이 살짝 닿기만 해도 몹시 아팠는데, 성신으로 죄를 사해 주실 때 그런 통증을 느낀다 하시더라며 신기해하셨습니다. 그때 깨달은 바가 있으셨는지 큰아버지는 박 장로님께서 성신을 주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축복솜으로 닦자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이고 얼굴도 곱고 환하게 핀 것 분명히 보고 온가족이 함께 전도관을 다니게 돼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웃에 사는 전도관 교인들이 한 식구처럼 장례를 도와주며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다녔던 교회의 전도부인은 조문하러 와서는 전도관 교인을 보고 이단이라며 몹시 못마땅해했고, 큰아버지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수의를 입히려면 옷을 잘라야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도부인이 돌아간 후 저희 식구는 전도관 교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 몇 분이 솜에 물을 적셔서 큰아버지를 깨끗이 닦아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닦은 후 수의를 입힐 때 보니 팔다리가 나긋나긋 부드럽게 움직여서 살아 계신 분한테 옷을 입히는 것 같았습니다. 입관하려고 큰아버지를 들었을 때도 온몸이 부드러워 허리가 축 처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분이 얼른 받혀 드렸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부드러워졌을 뿐 아니라 얼굴도 곱고 환하게 피어서 생전보다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그 주 일요일 전도관에서 예배드릴 때 박 장로님께서 “며칠 전 장로님 한 분이 피어서 갔습니다. 성신이 임하면 돌아가신 분도 생전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게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성신을 주셔서 큰아버지가 환하게 피셨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분명한 증거를 보고 저희 가족은 전도관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저는 원효로전도관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사들이 은혜를 받아야 주일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 하시며 안수와 안찰을 자주 해 주셨고, 소풍을 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해 주셨습니다. 저는 반사들끼리 모여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안수를 받는 순간 배 속까지 시원한 물줄기가 쏵 내려오는 것처럼 시원해지더니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달콤한 물이 목으로 넘어와 꿀꺽꿀꺽 삼킬 정도였는데 예배 마친 후에도 단물이 계속 마셔졌습니다. 반사들 모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저처럼 시원한 물이 흐르고 달콤한 물이 마셔진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그것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안수를 받고 나면 생수가 통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1957년 이만제단이 지어진 후라고 기억되는데, 원효로전도관이 있던 곳에 양말 기계를 들여와 반사들이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기술을 배워 다른 반사들과 같이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작업을 둘러보시고 안수해 주실 때면 좋은 향취가 건물에 가득 찬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공장은 소사신앙촌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범적으로 운영한 곳이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양말공장이 옮겨 가게 되었고 다른 공장들도 세워졌습니다. 질 좋은 제품이 없던 시절에 신앙촌에서 좋은 원사로 만든 양말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신앙촌 제품을 좋아하는지 실감하게 됐습니다.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무렵 동두천에서 신앙촌 간장을 판매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빈 병에 간장을 따라주며 판매했는데 한번 신앙촌 간장 맛을 본 사람들은 다른 간장을 못 먹겠다며 제가 갈 때까지 병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저는 장사를 해 보지 않았고 큰 밑천도 없었지만 신앙촌 간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 장사 규모가 커지게 됐습니다. 당시 어려웠던 생계를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며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소비조합을 시작할 때부터 만난 단골들은 제가 신앙촌 간장 덕분에 부자 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소비조합을 하는 동안 영과 육이 아울러 복을 받는 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지런히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쁘게 사는 생활이 그렇게 기쁘고 보람될 수가 없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이 건설될 때 입주했던 어머니는 2008년경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렸는데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 보니 어머니 모습이 참 곱고 예뻤습니다. 원래 검은 편인 피부가 뽀얗게 피어 분을 발라 놓은 것 같았고 입술에는 어린아이 같은 혈색이 감돌았습니다. 얼굴 주름도 언제 펴졌는지 100세 가까운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일편단심 한길을 따라오신 어머니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요즘 새벽예배를 드릴 때면 감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하나님의 은혜일세” 하는 찬송과 같이 이 길을 따라오는 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셨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돌아보면 하나님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받으며 열심히 살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락해 주시는 귀한 시간 동안 은혜를 간구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루하루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허락하신 일 속에 살면서 귀한 은혜를 간직하고 싶어”

“허락하신 일 속에 살면서 귀한 은혜를 간직하고 싶어”

제 나이 열일곱 살이던 1955년 서울 신촌에 살 때였습니다. 이웃에 사시는 연세대 교수 사모님이 남산에서 부흥집회가 열린다며 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저는 부흥집회에 관심은 없었지만 사모님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구경 삼아 저녁예배에 가 봤습니다. 남산광장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단상에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집회장이 얼마나 넓은지 너무 멀어서 단상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창 예배드릴 때 사모님이 “얘, 향기가 나지?” 하셔서 숨을 들이쉬었더니 정말 꽃향기같이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사방에 사람들만 가득할 뿐 꽃 한송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했는데, 사모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 하셔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가을이었습니다. 연세대 교수님 댁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셔서 교수님 여러 분과 가족에게 안찰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도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안찰하실 때 눈과 배에 가만히 손을 대실 뿐인데도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팔다리를 마구 휘젓는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저도 안찰 받을 때 눈이 몹시 아팠지만 부끄러워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시며 속에 있는 죄가 성신으로 소멸돼 나갈 때 그렇게 통증을 느낀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이나마 박 장로님은 성신을 주시는 분인가 보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음 날부터 교수 사모님은 원효로 박 장로님 댁에 마련된 예배실로 예배를 드리러 가셨습니다. 새벽마다 저희 집 창문을 두드리며 같이 가자 하셔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12월에는 거기서 전도관 개관식이 열렸고 날이 갈수록 사람이 몰려와 뒤쪽에 2층을 올렸어도 바깥 샛강 둑에까지 길게 늘어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듬해인 1956년 여름부터 마포 산언덕에 이만제단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어머니와 여동생을 전도해서 같이 다녔습니다. 많은 교인이 이만제단 공사장에서 일을 돕는 것을 보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나가서 일을 도왔습니다. 어머니는 원래 화병으로 고생하시던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몸으로 저희 형제를 키우셨는데, 집안의 기둥인 오빠가 6·25 전쟁 때 군인으로 나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면서 화병이 생겼습니다. 큰 돌덩이가 가슴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항상 답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전도관에 다니시면서 그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예배에 다녀오면 얼굴이 밝아 보이셨고 이만제단 짓는 곳에서 일하면서부터 웃으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공사를 돕는 것이 힘에 부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거기 가면 기쁘고 좋다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니셨습니다. 그 후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세워지면서 어머니와 동생은 소사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는데, 어머니가 오실 때마다 신앙촌에 대해 말씀하시니 차츰 관심이 생겼습니다. 신앙촌은 주인 없는 상점이 운영되고 자기 것이 아니면 길가에 떨어진 못도 가져가지 않는다 했습니다.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고 자유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유율법을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신앙촌의 생활과 저의 모습을 비교하며‘이렇게 살아서는 구원을 못 얻겠구나.’ 하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나도 진실되게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고민한 끝에 1966년 덕소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짐을 싸 들고 간 첫날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신앙촌에 들어온 사람들을 안찰해 주신다고 해서 제일 마지막에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자 하나님께서“세상이 재미있는데 왜 신앙촌에 왔는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앙촌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후에도 친구가 좋고 세상이 재미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들여다본 듯 말씀하시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안찰을 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다시 “세상이 좋은데 왜 신앙촌에 왔는가?” 하고 물으셔서 “이제부터 신앙촌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안찰을 받은 후 훌훌 날아갈 듯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오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졌습니다. 과거의 생활을 버리고 귀한 은혜 주시는 길을 열심히 따라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덕소신앙촌에서 지내며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세상 재미를 좇아 사는 동안 신앙촌에서 은혜 받고 맑게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을 듣고 저는 열심히 일하며 은혜 주시기를 기도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부터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 없이 집중하며 일하고자 했습니다. 그 후 기장신앙촌 양말 공장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도문을 하라고 말씀하셔서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문을 하며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기도문을 하며 작업 자리에 앉았는데 근무가 시작되는 8시가 되자 형언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머리 위에서 퍼붓는 것처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기도문을 계속했더니 향취 또한 하루 종일 진하게 맡아져서 심지어 화장실을 갔을 때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침 8시부터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하루 내내 향취가 계속 연결돼서 맡아지니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침 8시부터 은혜를 보내 준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일하고 기도하는 것이 귀한 은혜 받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75년에는 기장신앙촌에서 함께 생활하시던 어머니가 노환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어머니는 소사와 덕소, 기장신앙촌을 거치는 동안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봉사를 다니셨는데, 저는 언제나 성심껏 일하시는 어머니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렸는데, 원래 피부가 고운 분이긴 했지만 생명물로 닦은 후에는 아기 피부처럼 맑고 뽀얗게 피었습니다. 또 살아 계실 때보다 훨씬 고운 혈색이 양 볼과 입술에 감돌아 화장한 것보다 더 예뻤습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를 보면서 제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을 때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위해 애타게 눈물로 기도하셨던 어머니. 그 기도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드리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신앙촌에 들어와 새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니 잡념 없이 맑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일하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아끼며 바쁘게 일할 때 세상 어디서도 느껴 보지 못한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한일물산 사장으로 재직하는 지금은 일할 수 있는 기회와 건강을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허락하신 일 속에 살면서 귀한 은혜를 간직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을까요.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아서 그날에 구원의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고 살인자로 단죄하다

1910년 3월 9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있었던 고해성사에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사형 집행을 앞둔 한국인 사형수가 가톨릭 신부를 만나 고해하는 자리였는데, 이 자리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형수가 다름 아닌 안중근 의사(義士)였기 때문이다. <자료1> ◈ 독립운동가에게 찍어준 살인자 낙인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주권을 침탈당하고 격렬하게 항거하던 때로, 안중근 의사가 식민 지배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은 일본과 중국은 물론 이탈리아에도 보도될 만큼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대, 지배받는 식민지의 국민이 지배국의 최고위 정치가를 사살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일본 재판부와 법 규정에 따라 재판을 받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안 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했으나, 안 의사는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을 뿐”이라고 당당하게 항변했다. 사형을 앞둔 안 의사가 고해성사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언론의 관심은 ‘안중근이 고해할 때 살인죄를 인정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해 준 가톨릭 신부는 프랑스인 빌렘(Nicolas Joseph Marie Wilhelm, 1860년~1938년) 신부였는데 그는 안중근을 만나기 위해 뤼순으로 향한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푸는 이유는, 이토 처단이 하늘에 사무치는 죄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참회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순천시보, 1910.3.15.) 이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한국인의 판단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빌렘 신부의 상관이었던 명동성당 주교 뮈텔(Gustave Charles Marie Mutel, 1854년 ~ 1933년) 또한 안중근의 의거를 ‘증오할 만한 살인 행위’라고 정면으로 비난했다. <자료2>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을 폐위시키고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원수 중의 원수였으나, 뮈텔 주교는 이토가 한국에 가져다준 공적과 이익을 생각할 때 그의 죽음은 슬프고 불행한 일이라며 장례식을 찾아가 조화를 바치고 애도했다. 뮈텔은 안중근이 살인 행위를 스스로 뉘우치고 회개해야만 한다고 했지만 안중근은 자신의 의거를 살인죄라 생각지 않았고, 사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이토를 사살한 것은 식민 지배의 원흉을 제거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1909.12.22. 안중근 10회 신문조서) 결과적으로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살인죄를 범했음을 자인하고 회개하게 만들겠다는 가톨릭 신부들의 시도는 실패한 셈이었다. 당시 한국을 식민 통치하던 일본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로 낙인찍었고 이와 마찬가지로 가톨릭도 안중근에 대해 ‘살인자’라는 평가를 내렸다. 안중근이 사형 집행을 당한 후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는 그의 친척을 삼엄하게 감시했는데, 이는 안중근이라는 살인자 집안에 대한 당연한 처사였으며 일본의 구미에 맞는 조치였다. 가톨릭은 일본과 같은 입장을 견지한 덕분에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됐다. ◈ 고해의 비밀과 맞바꾼 명동성당 진입로 1911년 1월 11일 수요일, 폭설이 쏟아지는 겨울이었다. 명동성당에서 편지를 읽던 뮈텔 주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빌렘 신부가 보내 온 편지에 놀랄 만한 1급 첩보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뮈텔 주교의 손에 들어간 첩보는 안중근의 사촌 동생이자 그만큼 열정적인 독립운동가였던 안명근에 관한 것이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의 총독부에 대항할 계획에 착수했으며 안명근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첩보였는데, 이를 얻은 경로는 다름 아닌 고해성사였다.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던 안명근은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고, 빌렘은 고해성사에서 얻은 정보를 뮈텔 주교에게 편지로 알린 것이었다. <자료3> 편지를 손에 넣은 뮈텔은 그길로 눈발을 헤치며 총독부 경무총감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 1864년~1919년)를 찾아갔다. 독립운동 감시와 말살에 주력하던 아카시 총감에게 안명근은 요주의 인물이었는데 때마침 뮈텔 주교가 그의 활동 정보를 밀고한 것이었다. 뮈텔은 정보의 효용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당시 명동성당의 진입로가 일본 상인들 때문에 가로막혀 길을 뚫는 것이 숙원이던 뮈텔 주교는 “이 기회를 이용해” 통로를 뚫어 달라고 당당히 요청했다. 아카시 총감은 그 자리에서 헌병대 중위를 불러 진입로를 열어 놓도록 명령하는 한편, 정보를 알려 준 뮈텔 주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뮈텔이 밀고한 정보는 총독부의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 귀에까지 들어갔다. 데라우치 총독이 자신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할 것을 명했기 때문에 그 명을 받들어 아카시 총감은 명동성당으로 뮈텔 주교를 찾아가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선을 통치하는 최고위직인 데라우치 총독까지 나서서 뮈텔에게 감사를 표했던 것은 그만큼 가톨릭의 밀고가 일본에게 더없이 유용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 효용 가치를 알아보고 즉각 고해 내용을 알린 빌렘 신부와 그 내용을 받자마자 총독부에 밀고한 뮈텔 주교의 선견지명으로 명동성당은 숙원 사업을 이뤄서 넓고 환한 진입로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자료4> ◈ 뮈텔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가톨릭의 밀고를 받은 일본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당시 안명근은 학교 설립을 위해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일본 헌병대는 이 자금을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위한 군자금’이라 조작하고, 안명근과 함께 계몽 운동을 벌였던 지도자들에게 ‘총독 암살 미수죄’라는 혐의를 씌워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 김구를 비롯한 황해도 안악군의 독립운동가 160명이 검거됐기 때문에 이를 ‘안악 사건’이라고 한다. <자료5> 안악 사건은 일본이 날조한 사건이었다. 조선의 계몽 운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일본은 특히 교육 증진에 앞장서는 황해도 지역에 경계를 기울였는데, 때마침 가톨릭이 밀고한 안명근의 활동 덕분에 황해도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종신형과 징역형, 제주도 유배 등으로 궤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더 큰 규모의 탄압으로 확대했다. 안악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모의하는 또 다른 비밀 단체 ‘신민회’를 포착했다며 그 회원 600명을 검거한 것이다. 이중 10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105인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황해도와 평안도의 독립운동가를 절멸시킨 사건이었다. <자료6> 105인 사건의 핵심은 대규모 조직인 신민회가 총독 암살을 모의하고 실행했다는 것이었는데, 이 내용대로 자백할 때까지 일본은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 105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증거는 오직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뿐이었다. 이는 로마 가톨릭이 마녀재판에서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 내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실제로 일본군이 독립운동가들을 천장에 매달아 잡아당기거나 가죽 채찍으로 온몸을 갈기는 고문, 배가 불룩해지도록 코로 물을 부어 넣는 고문은 가톨릭이 행한 마녀재판과 유사했다. <자료7> 72종에 달하는 악랄한 고문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아카시 총감이었다. 아카시 총감은 뮈텔 주교에게 밀고를 받은 후로 독립운동가들을 구속시켜 끔찍한 고문으로 짓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씌우는 데 능수능란했다. 105인 사건으로 구속된 인사들은 대부분 지식인이나 사업가, 교육가였는데 이중 두 명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고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도 불구가 되었다. 105인 사건 이후 3.1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10년간 국내 항일 운동이 말살되다시피 한 것은 안명근의 고해 내용이 일본 손에 들어간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안명근은 가톨릭 신부가 자신의 고해 내용을 밀고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30대의 젊은 지식인이었던 안명근은 일본의 고문으로 한쪽 눈을 잃었고 감옥살이로 쇠약해진 끝에 48세의 이른 나이에 숨을 거뒀다. ◈ 가톨릭식 신성불가침의 비밀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고해성사할 때 고해신부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신으로서”(“non ut homo sed ut Deus”,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신자의 고백을 듣는다고 한다. 신으로서 고백을 듣기 때문에 고해신부는 신자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고 고해의 비밀을 신성불가침으로 보호해 준다고 한다. <자료8> 안명근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 교리대로 고해신부를 신뢰했다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어떤 경우에도 공개되지 않고 절대 비밀로 보호받는다.’는 교리를 믿은 것이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안중근에게 잘못이 있다면 고해신부가 원하는 대로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중근의 고해를 들었던 빌렘 신부는 살인자 안중근이 회개하기를 원했으나,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안중근은 가톨릭 세계에서 용서받지 못한 살인자가 되었다. 그런데 가톨릭의 신이 느닷없이 살인자에게 용서의 은총을 베풀기 시작한 듯하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을 때 뮈텔 주교는 살인죄를 저지른 자는 가톨릭 신도가 아니라고 정면으로 부정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1999년 가톨릭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가톨릭 인물’에 안중근이 포함되었다. 2010년에는 ‘안중근 의사 100주기’를 맞아 슬그머니 신자 자격을 복권시키더니, 안중근 기념 사업회를 조직해 그 업적을 알리겠다고 나섰다. 이로써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자랑스러운 가톨릭 신도로 안중근을 각인시킬 뿐 아니라, 올해부터는 빌렘 신부까지 ‘안중근의 영적 아버지’로 이미지 세탁에 나서고 있다. 만약 안중근이 자신의 ‘영적 아버지’가 고해성사 내용을 밀고해 사촌동생 안명근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씨를 말려 버린 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과거 일본과 똑같은 입장에서 망언을 일삼던 집단이 이제 완벽한 거짓말을 시도하고 있지만 때로는 망언보다 거짓말이 더 역겹다. 최근 가톨릭의 프란치스코까지 앞장서서 로마 교황청이 발표한 공지를 보면,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는 신성불가침이며 어떤 국가의 법이나 정치 행위로도 거스를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고해실의 신부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신으로서’ 고해성사를 듣는다는 교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전 세계 고해실에서는 가톨릭의 신이 고해성사를 들을 것이다. 성당 진입로를 위해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신. 추잡한 성추행으로 영혼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데 쾌락을 느끼는 신. 어쩌면 가톨릭이 결사적으로 봉인해야 할 비밀은 다름 아닌 이 신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은 종교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신앙촌은 종교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기획
‘고해성사’로 보는 종교 집단의 민낯 … 악랄한 범죄자인가, 용서의 구원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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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1대 국회에 바란다

21대 국회에 바란다

시온춘추

종교의 진화(進化)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하나님이신 증거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시온입사생회 33주년] 시온 입사 20년을 맞은 저에게 물어봅니다.

[시온입사생회 33주년] 시온 입사 20년을 맞은 저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나는 귀한 신앙의 터전인 신앙촌에서 그 가치를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깨닫고, 끝까지 따라가고자 입사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신앙촌이란 울타리 안에서의 삶은 너무나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입사 초, 어린 시절부터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의 기쁨은 뭐든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러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많이 매달리면서 이겨내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챙기면서 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 길은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줘서 가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그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입사생으로서의 길을 끝까지 가기 위해 초심을 떠올리며 ‘나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였다면 입사생으로 20년을 지내면서 지금의 저는, ‘과연 나는 귀한 신앙의 터전인 신앙촌에서 살아갈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지어주신 귀한 “입사생” 이란 이름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입사 20주년이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먼저 지금껏 신앙촌 안에서 보호받으며 키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척 노력하고 애써 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새기고 신앙촌의 주체가 되어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노력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해봅니다. 해마다 새로 들어오는 고등부 동생들의 입사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잊고 지냈던 저의 입사 초 마음과 다짐이 떠오르며 동생들의 마음이 전해져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 사모하는 마음 변치 않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안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늘 나와 동행하시니 참 막역한 내 친구” 찬송가 88장 가사처럼 저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 사랑 잊지 않고 하나님 은혜 안에서 함께하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앙촌에 오니 기분이 좋네요

신앙촌에 오니 기분이 좋네요

차민주 씨(제주 교회 대4, 맨 왼쪽)는 최윤정 양(초5)을 1년 전에 전도하였고 그 이후로 꾸준히 축복일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윤정이는 밝고 유쾌한 성격에 교회 동생들도 잘 챙기는 따듯한 아이예요”라고 소개해 주었다. 40회 이슬성신절을 맞아 윤정 양이 전도를 했다. 윤정 양은 “이번에 어머니와 동생, 고모까지 함께 신앙촌 와서 기뻐요”라고 말하며 “엄마도 신앙촌에 오셔서 정말 즐거우셨대요”라고 기쁜 목소리로 얘기했다.

신앙촌에서 성장해 가는 딸에게

신앙촌에서 성장해 가는 딸에게

식품 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주연 양의 가족들이 이슬성신절을 맞아 3대 모녀를 주축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에 이슬성신절에 처음 참석한 아버지께서는 주연 양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좋았습니다’라고 짧지만 내심 기특함이 묻어있는 말을 전했다.

은혜의 기쁨, 나도 알고파요

은혜의 기쁨, 나도 알고파요

최수빈, 다빈양 (울산 교회 고3, 고2 맨 오른쪽)은 할머니를 처음 모시고 참석했다. 최다빈 양은 합창자로 가족의 축하를 받았다. 언니 수빈 양은 무대에 서지 못했는데 “동생이 어른들과 합창 연습을 하니 예전과는 또 다른 기쁨이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합창 공연을 보고 왜인지 울컥하더라고요. 다음에는 꼭 해서 알아봐야겠어요”라고 했다.

주니어

美 성경박물관 최고(最古) 성경사본 ‘사해문서’ 알고보니 가짜?!

美 성경박물관 최고(最古) 성경사본 ‘사해문서’ 알고보니 가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 필사본 미국 성경박물관에 있는 ‘사해문서’ 과학적 분석 결과, 모두 가짜 판명 ■ 美 성경박물관 사해문서 모조리 가짜 미국 워싱턴 DC에는 억만장자인 스티브 그린씨가 설립한 성경박물관이 있어요. 거기에는 44,000여 권의 성경과 현존 구약사본 중 가장 오래된 사해 두루마리 원본을 비롯해 500년 전 95개조 반박문으로 유명한 마틴 루터가 읽었던 성경,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소장했던 성경 등 보기드문 성경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 전시된 사해문서 조각들이 모두 가짜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오늘은 사해문서란 무엇이고, 이 사해문서가 왜 가짜로 판명됐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가장 맞추기 어려운 퍼즐 사해문서 사해문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필사본입니다. 성경은 원본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오래된 필사본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해문서는 1940년대 예루살렘 쿰란지역에 살던 양치기 소년이 도망친 염소를 찾다가 오래된 동굴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후 학자들이 해당 동굴과 인근 지역을 조사해서 800개가 넘는 양피지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발견했는데요. 보존상태가 나빠서 대부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패되고 찢어져 있었대요. 그 조각들만 해도 2만 5천개는 된다고 합니다. 이 많은 조각들을 어떻게 맞추고 해석할 것인가는 아직까지도 신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는데요. 조각을 잘못 맞추거나, 가짜 조각이 섞여 들어가는 순간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해문서는 ‘가장 맞추기 어려운 조각 퍼즐’이라고 불린대요. 바로 이 조각 중 16점을 스티브 그린씨가 구입해서 자신의 성서박물관에 전시한 거예요. ■ 속속 드러나는 엉터리 퍼즐 조각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티브 그린씨의 성경박물관에 있는 사해문서 조각은 양가죽으로 만들어진 기존 사해문서와는 달리 옛날 사람들의 신발로 쓰이던 가죽이었다고 해요. 게다가 가죽 자체는 오래 된 것이지만 거기에 쓰인 문자는 오늘날 잉크로 기록돼 있었는데요. 잉크가 마르기 전에 사해 주변 지역과 일치하는 종류의 광물을 뿌려서 마치 진짜 사해문서 조각인 것처럼 속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문서 원본은 신뢰할 수 있을까요? 지난 6월 2일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 <셀(Cell)>지에서 ̒고대 DNA 시퀀싱̓ 기술을 사용해 사해문서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됐어요. ̒고대 DNA 시퀀싱̓이란 오래되어 변형되고 오염된 DNA조각의 서열을 확인하는 기술인데요. 분석 결과, 같은 두루마리인 줄 알았던 조각이 하나는 양가죽, 하나는 소가죽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지난 2천 년간 유대 사막은 소를 기르는데 적합한 기후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는 아예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다른 종류의 양가죽이 섞여있는 등 기원이 불확실한 조각들이 발견되며 엉터리로 맞춰졌던 조각들이 속속 드러나게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로 사해문서 퍼즐을 맞추는데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찾아냈다고 밝혔습니다만, 이런 엉터리 조각들의 발견으로 또다른 숙제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아하! 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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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성신절을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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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바람개비 라이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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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의 ‘찬송학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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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돌밥돌밥’ 고민 타파 ‘두부’ 간편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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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밥 돌밥’은 최근 주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조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식까지 자제하면서 주부들의 일상이 바뀐 탓이다. 이같은 주부의 고충을 덜어줄 ‘간편한 레시피’를 찾는 이용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신앙촌푸드’ 유튜브 채널에서도 간편하면서 영양까지 챙긴 레시피를 공개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hh1Ln3OcgS_wNGOwxuzQFw) 01 마파두부덮밥 재료 -두부 100g -다짐육 200g -굴소스 1큰술 -대파 1뿌리 -두반장, 고추기름 3큰술 -전분물(물4큰술+전분4큰술) ① 달군 팬에 고추기름을 넣고 대파를 넣어 볶는다. ② 다짐육을 넣어 같이 볶는다. ③ 두반장 3큰술 굴소스 1큰술을 넣어 볶는다. ④ 물 500ml를 붓고 두부를 넣어끓인다. ⑤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02 두부스파게티 재료 -두부 100g -토마토소스 500g -양파 1/4개 -느타리버섯 -파슬리 가루 -파스타면 1인분 ① 두부 물기를 제거한 후 으깬다 ② 으깬 두부를 넣어 살짝 볶는다 ③ 토마토소스를 넣고 소스 완성 ④ 끓는물에 파스타면을 8분간 삶기 ⑤ 소스에 면을 넣어 함께 볶는다 03 두부유부초밥 재료 -두부 400g -시판 유부피 -초밥 속 소스 & 조미 볶음 ① 두부를 으깬다. ② 고슬하게 지은 밥에 유부초밥 세트에 들어있는 배합초, 후레이크와 으깬 두부 넣고 섞는다. ③ 조미액을 살짝 짜낸 유부에 ②의 밥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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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역서 ‘콜럼버스 동상 수난시대’

새로운 위협 ‘코로나 변종’ ,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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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 염기서열로 된 ‘RNA 유전자’ 바이러스는 증식 과정에서 수많은 변종이 빠른 주기로 나타난다. 설계도가 엉클어져 불량이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발 빠르게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사스, 메르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에볼라, 스페인독감, 인플루엔자 등이 모두 RNA 바이러스인데 이들보다 더 빠르고 변칙적으로 변종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코로나19다. ▷ 요즘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등장했던 코로나19와는 크게 다르다. 코로나19는 유전자 염기서열 차이에 따라 크게 S, V, L, G, GR, GH형으로 분류된다. L은 우한에서 처음 등장한 원형이고 S, V는 약간 변이된 수준이다. G계열 세 유형은 중국에서 미국·유럽·아프리카 등으로 건너간 뒤 크게 변이된 것인데 70%가량이 GH형이다. 한국도 4월 경북 예천의 성지순례단 집단 감염, 5월 초 이태원 클럽 이후 최근 광주와 대전의 집단감염까지 GH형이 주종을 이룬다. ▷ 중국 연구팀이 최근 완치자 41명의 혈액에서 항체를 추출해 변종 코로나19에 투여한 결과 3명의 항체는 바이러스 무력화에 실패하고 한 항체의 대응력은 거의 ‘0’으로 나타났다. 완치자 혈청이 약발이 듣지 않을 정도로 변이가 이뤄진 이 바이러스가 바로 GH형이다. GH형은 세포 침투력이 2배 이상 높고, 전파력은 10배 이상 늘었다. 한국도 GH형이 많은 지역은 확진자 한 사람이 전파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재생산지수(R0)’가 1.34로 전국 평균 1.06보다 월등히 높았다. ▷ 지금 나타나는 변이는 자가 복제 과정상의 오류에 의한 것이어서 변이 정도가 제한적이지만 코로나19가 다른 코로나와의 ‘재조합’까지 이뤄지면 완전히 다른 변종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이혁민 연세대 의대 교수). 현재도 변종 코로나19는 세포를 뚫고 들어가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변이 전보다 4, 5배 많다. 공성전(攻城戰)에서 성에 걸치는 갈고리가 많고 끝이 뾰족해 침투가 쉬워진 격이다. 무증상 감염이라는 ‘스텔스 기능’에 이어 조준 사격할 ‘타깃’마저 수시로 변신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서 고전이 불가피하다.

‘코로나 시대’ 에어컨·선풍기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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