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이슬성신절 맞이해

제40회 이슬성신절 맞이해

1981년에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천부교 절기행사 올해는 제40회 이슬성신절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슬성신절은 천부교 주요 절기행사로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내려주시는 이슬성신 은혜에 감사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1981년 1월 3일에 제1회 이슬성신절이 제정되었으며 이후 이슬성신이 가장 많이 내렸다는 때가 초창기 5월 하순이었다는 말씀에 따라 1983년 3회부터 5월로 변경되었다. 당시 제1회 이슬성신절 행사를 다룬 신앙신보 1981년 1월 5일자 신문에는 “기장 신앙촌, 이슬성신절 행사 화려”라는 기사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제1회 이슬성신절 축하 음악 대예배가 지난 1월 3일 기장신앙촌 대예배실에서 국내외 성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 설교에서 이슬성신의 귀중함과 감람나무의 존재를 자세히 밝히셨다.” 또한 이 신문에는 제1회 이슬성신절을 한 주 앞두고 각 지역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슬성신절 축하 예배를 드렸다는 기사도 함께 실렸다. 초창기부터 하나님께서는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이슬성신’으로만 구원 얻을 수 있음을 깨우쳐 주시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존재가 감람나무임을 증거하셨다. 1980년에는 예수의 정체를 벗기시며 성경의 오류를 지적하셨고, 이후 1981년 제1회 이슬성신절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것이다. 1회 이슬성신절 예배에 참석했던 김순덕 권사(덕소교회)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 날 하나님께서는 ‘오늘 제일 기쁜날이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저희들에게 은혜를 깨닫게 해주시며 한 단계 한 단계 구원의 길로 이끌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1부 예배가 끝난 후에는 2부 음악 순서가 펼쳐졌다. 이날 음악 경연대회에는 부산합창단, 전국부인회 합창단, 덕소와 소사 소비조합 합창단, 청주 합창단, 서울교역자 합창단, 대학생연합회 합창단, 부천과 인천 합창단이 참가하여 청중들의 열띤 박수와 환호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이슬성신절 음악 순서는 1981년 1회부터 1987년 7회까지는 음악 경연대회로 예선을 거쳐 출연팀을 선정하는 등 경쟁방식으로 진행되다가 1988년 8회부터는 축하 음악회로 변경되어 오케스트라 연주와 합창 등으로 매년 기장신앙촌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슬성신절 예배 때마다 음악 순서가 함께하는 의미에 대해 천부교 부흥협회 음악 관계자는 “합창은 하나님 은혜를 찬송하는 시간이자 귀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또한 천부교인들은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기를 바라며 음악 순서를 정성껏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신앙촌 음악의 전통은 오늘까지도 이어져 예배와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앙촌에서는 이슬성신절, 추수감사절 등 절기 예배뿐만 아니라 송년 음악회, 신년 음악회, 새교인 합창대회, 음악캠프 등 각종 음악 행사가 자주 열린다. 또한 신앙촌 사원들로 구성된 시온오케스트라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제40회 이슬성신절  축하 음악 순서는 중· 고등학생부터 여청, 입사생, 소비조합원 중에서 선발된 교인들로 구성한 여성 합창단이 시온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다.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천부교회 학생회 교육, 온라인과 병행하며 효과 높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마무리하고 6일부터는 일상과 방역의 조화를 위해 생활 속 거리두기를 이행한다고 발표했다. 전국의 천부교 학생회는 이와 같은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하는 한편,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을 통해 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다. 2월 초부터 천부교 측은 입구 체온측정, 손 소독제 비치, 2m 좌석 간격 유지, 참석자 동선 체크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예배를 드려왔다. 코로나 사태로 촉발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천부교회의 교육 방식에도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지금까지 교육 방식이 교회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하는 대면 교육이 주를 이뤘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육 받는 학생들이 온라인 상의 활동에 익숙한 세대들인 만큼 온라인을 통한 대화와 피드백이 활발히 이루어져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온라인 교육은 카카오 라이브톡으로 진행되며 지역별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1부 예배에 이어 2부는 하나님 말씀퀴즈, 3부는 다양한 비대면 놀이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온라인예배에 참여한 김민경 양(중1, 목동교회)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새로웠어요. 또 요즘 유행하는 수란 도시락 만들기, ASMR을 친구들과 채팅하면서 같이 해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펜데믹만큼 심각해진 기후변화, 봄날이 사라진다

펜데믹만큼 심각해진 기후변화, 봄날이 사라진다

인도 118년 만에 최저기온 이집트엔 112년 만에 눈 우리나라 전역에 냉해 피해 설악산 영하10도 제주에 4월 대설특보 펜데믹만큼 심각해진 기후변화가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 페테리 탈라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가 심각한 국제 보건 및 경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인간의 행복이나 생태계, 경제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전염병(펜데믹)과 기후변화 곡선을 모두 평탄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상 기후 현상은 작년인 2019년부터 심각해졌다. 북극권 산불, 슈퍼 허리케인과 극심한 홍수, 아마존의 대규모 산불이 이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호주 대형 산불과 동아프리카와 중동의 메뚜기떼 재앙 등이 잇따르고 있다. 모두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거나 증폭된 현상들이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인류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을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기후변화를 넘어 이제는 ‘기후 위기’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입으면서 기후변화 수준을 넘어서 ‘기후 위기’ ‘기후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처해 가야 한다. 기상청은 “기후변화가 계속될수록 폭염과 한파, 이상고온과 이상저온 등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더욱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상저온 현상, 곳곳에 발발 실제로 지난겨울 이상 기상 현상이 지구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북미와 이탈리아에서는 이상저온이 발생했고, 아열대기후 지역인 태국과 인도 북부, 이집트에서는 이례적인 폭설이 관측되기도 했다. 인도 북부는 118년 만에 최저기온 기록을 새로 썼고, 이집트 카이로에는 112년 만에 1월에 눈이 내렸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봄이 와야 할 4월에 전국적으로 이상저온이 확대되어 전례가 없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22일 설악산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2도까지 떨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30분 기준 최저기온은 설악산 영하 10.2도, 향로봉 영하 7.4도, 광덕산 영하 5도, 구룡령 영하 4도, 미시령 영하 2.6도, 대관령 영하 2.1도 등이다. 따뜻한 남부 지역도 피해 가진 못했다. 경남 서부내륙 지역의 경우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최저 기온이 떨어지는 날이 수차례 있었다. 최저기온이 영하권을 넘나드는 변덕스러운 추위가 반복되어 추위에 강한 청보리마저 출하량이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이달 중순까지 집계된 전국 과수 작물의 냉해 규모만 해도 7,300만 제곱미터로, 냉해가 심했던 지난 2018년의 피해면적을 벌써 넘어섰다. 제주에 대설특보가 내려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있었다. 13일 제주지방기상청은 전날 오후 3시 30분쯤 제주도 산지에 대설주의보를 내렸다. 이어 이날 오후 7시쯤 대설주의보를 대설경보로 격상했다. 1994년 대설특보 발효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4월에 대설특보가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2019 연간 전도 시상식과 여성회 임원 임명식

2019 연간 전도 시상식과 여성회 임원 임명식

각 중앙, 도관 임원 발표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할 것 1월 7일, 신앙촌에서 2019년 여성회 연간 전도 시상식이 열렸다. 홍윤옥 중부 총무는 격려사에서 “전도의 해를 맞아 더욱더 힘차게 전도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시상식은 개인전도 시상과 우수중앙시상 순으로 진행되었다. 개인전도 1, 2, 3등은 송성복 권사(광안교회), 지성숙 권사(기장교회), 송은아 권사(기장교회) 순으로 수여 되었다. 전도 우수 중앙 대상은 기장교회, 최우수상은 광안교회, 우수상은 안양교회와 구로교회가 받았다. 예배 후 임원임명식에 앞서 전국에 있는 각 교회 사진과 새롭게 임명된 임원들의 모습이 화면으로 소개되었다. 이어서 2020년 전국 여성회 임원임명식이 진행되었다. 임명은 중, 서, 남부 연합회, 전도추진 위원회, 기장신앙촌 연합회, 도관 임원, 각 중앙 여성회장 순으로 호명되었다. 최성례 총무는 “올 한해 전국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하며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임원들이 임명받는 시간입니다. 경자년 올해는 이전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중부지역 연합회장 김순덕 권사(덕소교회)는 “어딘들 못 가며 무엇 못하리까 이 생명을 다하여 힘을 써야 할 때가 지금이라 생각합니다. 감람나무 가지 여러분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힘을 모아 정진합시다”라고 했다. 서부지역 연합회장 송정선 권사(수원교회)는“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직분에 맞게 전도와 사업에 힘쓰겠습니다”라고 했다. 남부지역 연합회장 주미자 권사(서동교회)는 “올해는 진실한 기도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감과 책임을 다해 구원을 향해 힘껏 뛰겠습니다”라고 했다.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하는 신나는 겨울방학!”

“다양한 캐릭터와 함께하는 신나는 겨울방학!”

어린이, 여학생들의 유익한 방학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 준비해 신앙강좌, 말씀 퀴즈대회, 분반공부 등으로 체계 말씀 배우고 레크리에이션, 음악 레슨,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체험할 수 있어 방학을 맞은 천부교 어린이·여학생을 위한 “Music&Dessert 겨울 캠프”가 1월 11일부터 1박 2일간 열렸다. 어린이와 여학생들은 각각 ‘하나님 성신 받아 말씀으로 자라는 천부 어린이’, ‘하나님 말씀 깨달아 전하는 여학생’이라는 주제 아래 캠프에 참가하여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여학생들은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를 주제로 한 신앙강좌와 분반공부를 통해 가톨릭이 저지른 역사적 악행에 대해 배웠다. 또 팔씨름, 피구, 풍선을 지켜라 등 흥미진진한 대항전을 펼친 ‘레트로 게임’, 합창단 여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열린 ‘마카롱&디저트 샵’, 나만의 레시피로 즉석 떡볶이를 만들어 보는 ‘신상 출시 앙~스토랑’, 가면을 쓰고 노래를 하는 ‘히든 보이스 시즌2’ 등 다양하고 참신한 프로그램이 여학생들의 오감을 만족시켰다.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는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의 엘사와 안나 공주가 되어볼 수 있는 체험도 있었다. 엘사와 안나 코스프레 샵에는 다양한 의상이 준비되어 어린이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공주 의상을 골라 입어볼 수 있었다. 올라프가 숨어있는 이글루 에어바운스에서는 관장님과 함께하는 술래잡기 게임도 있었다. 겨울왕국 2의 OST를 부를 수 있는 어린이 노래방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캠프 일정을 마치고 진행된 앙케이트 조사 결과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은 ‘펭하~ 퀴즈야 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야외게임, 겨울왕국 어드벤처, 신앙강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또 신앙강좌를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악행을 저지른 가톨릭의 실체’를 가장 많은 학생이 꼽았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원주민 학살’, 하나님은 기쁨의 신’ 등의 응답도 있었다. 캠프에 참가한 노은빈 양(구로교회, 초5)은 “캠프를 마치고 나니 2020년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더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신앙촌의 청결한 생산 공정에 놀라”

“신앙촌의 청결한 생산 공정에 놀라”

(주)크로바 임직원 신앙촌 방문 12월 20일, 급식 식자재 전문 유통업체 (주)크로바 임직원들이 신앙촌을 방문했다. 크로바는 현재 서울, 수도권의 200여 학교급식 입찰 참여 업체와 지방 34개 대리점을 통해 전국 5,000여 학교에 직간접적으로 식품을 공급하고 있다. 직원들은 신앙촌 식품단지 내 요구르트 런과 생명물 두부, 간장 등 생산 현장을 견학하며 신앙촌 식품의 청결한 위생관리 시스템과 정성스러운 제조 과정을 직접 확인했다. 크로바 홍보마케팅이사 홍승희 씨는 “자연 친화적인 넓은 부지와 무인 무균화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을 보며건강한 먹거리뿐 아니라 친환경까지 지향하는 신앙촌의 생산 공정에 무척 놀랐습니다. 특히 요구르트 런은 맛과 영양 면에서도 훌륭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으로 전국에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식품단지를 둘러본 소감을 밝혔다.

코로나 맞서는 ‘시민들의 힘’

소비조합에 격려의 메세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되자”

신앙의 목표 세우고 결실 맺는 한해 되자

실천하고 노력하고 인내함으로써 알찬 열매 맺을 수 있음을 깊이 새겨야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도 등록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실 때 기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어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실 때 기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어

저는 태어났을 때 몹시 병약해서 소아과 의사이신 아버지께서도 살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낙담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졌을 때 폐병을 앓으셨기 때문인지 저는 폐와 기관지가 약하고 해수병을 달고 살아서 천방지축 뛰어 놀 나이에도 언덕을 오를 때 숨이 차서 한참 쉬었다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때 살았던 서울 흑석동 2층 집은 연탄 보일러였는데 연탄가스를 조금만 맡아도 침대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니 여동생은 아침마다 “엄마! 언니가 또 죽었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중학교 진학할 때 아버지가 건강이 더 나빠지면 공부도 못하니 1년을 쉬라 하셨지만 저는 쓰러져도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이던 1958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설교하시는 하나님 바라보고 있는데  강대상을 탕탕 치시자 불덩이가 나와 가슴팍에 떨어져 뜨거워 견딜 수 없어 뜨거움 가시자 목으로 단물이 넘어와  당시 저는 부모님을 따라 원효로제단을 거쳐 마포 이만제단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효로제단과 이만제단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대상을 탕탕 치시는 순간 거기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나와 제 가슴에 푹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뜨거운 느낌이 가시고 나자 입 안에 달콤한 물이 생기더니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왔고, 이튿날 학교 가서도 목으로 자꾸 달콤한 물이 넘어와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 분들 말씀이, 예배 시간에 불이 떨어지고 뜨거움을 느낀 것은 불성신을 받은 것이고 달콤한 물이 넘어온 것은 생수가 통하는 체험이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몸이 좋아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 계단을 오를 때 웬일인지 숨이 차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처럼 한달음에 올라가면서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키만 멀대같이 크고 볼품없이 말랐던 몸에 시간이 갈수록 포동포동 살이 올랐고, 어머니는 정말 예뻐졌다며 네가 은혜 받아서 사람이 됐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보다 먼저 아버지도 전도관에 다니면서 건강을 찾으셨습니다. 이북에서 철도병원에 근무했던 아버지는 왕진 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해 서울에 병원을 열기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에 파묻혀 사시느라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신다며 어머니가 크게 걱정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열 한살이던 1955년이었는데, 마침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가면 불치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가 보신 것이 저희 식구가 전도관에 다니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원효로전도관에 다니며 박 장로님께 안찰을 자주 받으셨습니다. 학자 타입의 아버지는 늘 온화한 표정으로 말씀이 없으셨는데 안찰 받고 오신 날은 특히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안찰 받은 후로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와서 몇 시간씩 책을 읽어도 몸이 가볍고 좋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에 파묻혀 사느라 건강이 안 좋아지셨는데 하나님께 안찰 받고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와서  오래 책을 읽어도 몸이 가볍다고 기뻐하셔 부모님이 매일 새벽예배 드리며 열심히 전도관에 나가시니 5남매 저희 형제들은 자연히 따라 다녔습니다. 새벽 어스름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이만제단에서 울리는 음악 종소리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은지 천국에서 울리는 것 같았고, 예배 시간 어른들 틈에서 손뼉 치며 찬송 부를 때는 가사를 잘 모르면서도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주일학교 예배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설교 말씀을 해 주셨는데, 무슨 말씀을 들은 기억보다는 그때 분위기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단상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과 사랑이 넘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시던 하나님의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이만제단 2층 단상 옆 학생 성가대 석에서 아래층 예배실을 내려다보는데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것이 보여서 손바닥을 펼쳐 보면 손은 전혀 젖지 않아 예배 시간에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기도 해 그 후 고등학교 시절 이만제단에서 학생 성가대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했습니다. 성가대 석은 2층 단상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래층 예배실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서 손바닥을 펼쳐 받아 보면 손은 전혀 젖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이슬비가 내리는 것이 보였고,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폭포수 같은 성신은 이만제단 개관식 때 사진에 찍혔던 이슬성신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만 명이 앉을 수 있어서 이만제단이라고 불렸던 예배실은 매 주일 꽉꽉 들어차서 발 하나 넣고 옮길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씩 머리 위에 안수하시며 지나가실 때 보면 날아가시는 것처럼 순식간이었습니다. 옆 사람끼리 무릎이 닿도록 앉아 있는 사이를 지나가자면 사람들의 발이나 무릎을 밟으실 만한데 전혀 거치는 것 없이 훌훌 날아가시는 듯한 모습에 눈을 못 떼고 바라봤습니다. 하루는 안수하시는 하나님을 한참 바라보다 어느 순간 예배실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나중에는 옆자리 성가대원도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예배실이 안개에 폭 싸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안개처럼 뽀얗게 은혜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슬비처럼 은혜가 내릴 때, 하나님께 안수를 받을 때, 뽀얀 안개 같은 성신에 싸여 있을 때 그 기쁘고 즐거운 마음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안수하시는 하나님을 보는데 예배실에 점점 뽀얀 안개가 생기더니 옆자리 사람이 안보일 만큼 짙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표현할 길이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삼촌이 계시는 적십자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병명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검사하자 백혈병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병명조차 생소해서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몰랐는데, 건강하고 활동적이셨던 어머니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선고는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이북에서 맨손으로 피난 나온 후 어머니는 집안을 일으키느라 억척같이 일하셨고, 오로지 자식들 잘 먹이고 입히는 생각만 하셨습니다. 어머니 그늘 아래 부족함 없이 살던 저희 형제는 3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평생 병원 일만 하셨던 아버지도 어떻게 장례를 치르고 준비할지 막막하신 것 같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명물로 씻기니 얼마나 곱고 예쁜지 탄성이 절로 나와 선홍색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감돌고 피부가 환히 피어 처녀 시절 모습같아 당시 저희 가족은 집과 가까운 흑석동전도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교인 분들이 찾아와 한식구처럼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장례 때 저희 가족이 입을 상복을 손수 지어 주셨고 관 위에 덮는 꽃도 밤을 새워 정성껏 만드셨습니다. 입관예배 드릴 때 힘차게 찬송하는 동안 장례반 어른들이 어머니를 생명물로 씻기셨는데, 다 씻긴 후 봤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곱고 예쁘신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코가 오똑하고 얼굴이 갸름한 미인형이셨던 어머니는 피부가 너무 곱고 환하게 피어서 처녀 시절 어머니가 저런 모습이셨을까 싶었습니다. 루주를 바른 듯한 선홍색 입술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고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지만 미소 지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차차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곱고 예쁘게 핀 모습과 밝고 편안한 집안 분위기를 느끼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아직 철부지 같았던 제가 처음으로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은혜 받은 교인끼리는 한 가족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보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항상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에 지친 몸으로 시부모님 저녁상까지 치우고 나면 저는 사랑채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충북 보은으로 시집가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냈습니다. 내 손으로 물 한 그릇 떠 본 일 없이 컸는데 시집에서 밀어닥치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버거웠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하고 농사일에서 벗어나면서 살기가 수월해졌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4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무렵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을 때였습니다. “거기는 찬송이 들리는 집이에요.” 소사리 큰길 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사리전도관이라는 곳이 바로 위에 있어서 새벽마다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과연 새벽부터 찬송이 들리는데 왠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전도관에 가게 된 것은 매일 집에 들르시던 전도관 권사님 때문이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은 신앙촌 메리야스와 속치마를 판매하셨는데 시중에 파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서 애용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간장도 맛있어서 제가 이웃들한테 다니며 대신 팔아 드리니 자연히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권사님이 전도관에 같이 가 보자 하셔도 “저는 신앙촌 물건만 팔아 드릴게요. 전도는 하지 마세요.” 하며 가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셨을 때 거절을 못 하고 따라나선 것이 전도관에 나간 계기였습니다. 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예배실 가득히 모여 있었고, 다들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좋아서 새벽예배와 수요일예배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섯 살짜리 작은아들을 데리고 수요일예배에 갔을 때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아…” 하는 찬송을 부르는데 처음 듣는 찬송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울고 나니 입고 있던 치마 한 폭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다 큰 아들이 “그때 엄마 치맛자락이 흥건하도록 우셨어요.” 하고 기억하는 걸 보면 많이 울기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눈물에 씻겨 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교인들 권유로 예배실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지만 그 후로 누가 뭐라지 않아도 예배에 안 빠지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저를 보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은혜일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확실하게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 센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고 계속 맡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서울 동대문에 있는 신앙촌 센타에 갖가지 신앙촌 제품이 진열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을 도와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던 저는 센타에 처음 가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서 물건 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하며 향기를 맡았는데, 건물 어딜 가나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사러 온 분들이 예쁜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기에 화장품 냄새인가 했지만, 그분들 곁을 지나가 보니 그 향기는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리 맡아도 더 맡고 싶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물건을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인들이 이야기하던 ‘향취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되는데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농동전도관 예배 때 멀리 계신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눈 마주치는 느낌 들어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나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운 불이 사라지더니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서울 오류동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생명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하필 그때 소사리전도관에 생명물이 없어 몹시 안타까웠는데 대신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신앙촌 간장이 있어서 딸아이가 받아 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축복받은 간장을 타서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옆구리가 터지는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도 저를 보고 방금 전까지 허리를 못 펴고 아파 하더니 이제 괜찮으시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이, 처음 왔을 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낫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퇴원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전농동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날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니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제일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어 단상을 올려다 봤을 때 하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배실이 워낙 넓고 단상이 3층에 있어서 저 멀리 계신데도 그 순간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며 눈이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활활 타는 불이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자 그 불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올 때는 몸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언제 복막염을 앓아서 그렇게 아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몹시 약해서 몸져눕는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잘 못 먹고 약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늘 골골하며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큰딸이 엄마가 안 아픈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복막염이 깨끗이 나은 뒤로 병원과 약을 모르고 살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건강해진 몸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나 믿어 주고 반겨 주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즐거웠고,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보름에 한 번씩 소비조합 축복일이 있어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85년 무렵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얹으시자 그리 아플 수 없어 손 떼시자 눈부터 가슴까지 시원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연신 웃음이 나 그날은 눈안찰을 해 주시는 날로 안찰 받기 전 예배실에서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눈을 감고 찬송하다가 갑자기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찬송에 열중하는 사람들뿐이고 그렇게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너무 떨려서 계속 순서를 양보하다가 제일 끝으로 가게 됐습니다. 안찰 받으면 내가 죄지은 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씻어 주시는 기회이니 꼭 안찰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자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그리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손을 떼셨는데 그 순간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부터 머리,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가 씻어지면 이렇게 좋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직접 안찰을 받고 보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1998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일하며 신앙촌 사람들과 축복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 거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휴게실에 찾아오던 아이들이 20년이 지나 어엿한 신앙촌 사원이 된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따라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까 싶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맙고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 영광된 날에 기쁨으로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모두를 속인 사기범은 누구인가? …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긴 미스터리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미스터리를 던져 주었다 누가 31번 확진자를 감염시켜 엄청난 확산을 일으켰는가? 누가 진짜 사기 전도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금년 4월 11일, 이탈리아 가톨릭교회는 토리노 수의(壽衣)를 공개했다. 토리노 성당에서 보관하는 이 수의는 예수가 죽은 뒤 시신을 감쌌다고 주장하는 세마포 천으로, 가톨릭에서는 이 천이 병을 낫게 하는 등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1987년 이 수의에 대해 영국 옥스퍼드, 미국 애리조나, 스위스 취리히 실험실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시작했는데 조사 결과 세 군데 모두 동일한 측정치가 나왔다. 토리노 수의는 예수 사후 1300년이 지난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교황 프란치스코는 수의를 보여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선행”이라고 했다. <자료1> 수의가 공개되던 시점은 토리노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가 코로나 때문에 죽음의 도시로 변해 가던 때였다. 30분에 1명씩 사망자가 발생하고 영안실에 자리가 모자라 성당까지 시신이 즐비하게 놓이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토리노 수의를 보고 어떤 선행과 희망을 얻었을까. <자료2> 코로나19는 의학의 영역을 넘어 종교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것에 합리적인 의문을 갖게 되는 지금, 코로나19는 여러 가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이번 <이슈 추적>에서는 코로나19가 남긴 미스터리 두 가지를 추적해 본다. 전체 확진자의 48%. 5,212명.(2020.5.11.0시 기준) <자료3> 이것은 5월 11일 0시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신천지와 연관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의 숫자이다. 매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이 숫자를 방역 당국이 발표할 때마다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웠고, 바이러스가 31번 확진자와 함께 급속도로 퍼져 나가 대구와 경북을 뒤덮은 엄청난 감염 속도에 경악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31번 확진자를 감염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남긴 첫 번째 미스터리는 “누가 31번을 감염시켰나?” 하는 것이다. 한국은 2월 중순까지 전체 확진자가 30명에 불과할 정도로 전파 속도가 미미했지만 31번 확진자 이후 불과 열흘 만에 신천지 관련 감염자가 1,000명으로 폭증했고, 그만큼 전파 속도와 범위에 있어서 차원이 달랐다. 언론은 31번 확진자가 바이러스 전파의 주범이라고 지목했지만 실제 역학 조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31번 확진자는 미지의 전파자에게 옮은 것이며 따라서 신천지 내에서 감염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감염을 당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 31번이 발병하던 날 다른 신천지 신도들도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감염자 여러 명이 뒤섞여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결론은 누가 누구에게 전염을 시켰는지 알아야 미지의 전파자를 밝혀낼 수 있다. 31번 확진자는 2월 10일부터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2.18.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 발표) 31번을 감염시켰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은 1월 중국에 다녀온 신천지 신도들이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그들은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거나 31번 확진자 이후에 감염됐기 때문에 감염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감염을 당한 사람이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신천지에서 감염을 일으킨 사람은 신천지 신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대구 신천지교회가 아닌 다른 지역, 다른 단체의 사람들이 신천지로 바이러스를 옮긴 것인가? 코로나19는 무증상인 상태에서 5차 감염까지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천지 신도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에 신천지 신도와 한집에 사는 가족이 코로나에 먼저 감염됐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다. 의성군 안사면에 사는 아들(27세)은 대구 신천지교회에 다니는 신도였고 그와 한집에 사는 아버지(59세)는 안동 가톨릭 교구 신도였는데, 아버지가 먼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후 2월 23일 확진되었고 아들은 이틀 뒤인 25일에 확진되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감염되었나 하는 것이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안동 가톨릭 교구 신도들은 국내에서 먼저 감염된 후 2월 8일 순례를 떠났다고 했기 때문에 2월 8일 훨씬 이전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 전염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면 대구 지역 감염의 발원지로 안동교구가 지목될 수도 있었다. 또한 대구 신천지교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것은 그보다 뒤인 2월 9일 또는 16일로 추정됐기 때문에 안동교구의 가톨릭 신도인 아버지가 먼저 감염되고 아들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자료4> 그러나 대구에서 확진자가 나오기 전에 경상북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전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례로 서울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은 이미 2월 2일에 증상이 나타난 감염자(35세, 남)가 있었다.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코로나19로 확진되고 그 가족과 간병인까지 확진된 것을 보면 병원 내의 감염이 지역사회 감염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자료5> 뿐만 아니라 은평성모병원 이송요원이었던 확진자가 무려 302명의 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이 환자들이 다른 병원 응급실로 ‘엑소더스’ 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당시 평택 성모병원에서 빠져나간 입원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사례가 생각난다.”고 했다. 은평성모병원의 감염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만약 은평성모병원 확진자와 접촉한 302명을 전수 조사해서 전염 여부를 추적했다면 은평성모병원 관련 확진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조사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안동 가톨릭 교구에서 발생한 확진자 31명은 최소 176명과 접촉했지만 그들에 대한 전수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천지 신도들을 전수 조사했듯이 다른 집단 감염자들도 전수 조사 했다면 “누가 31번을 감염시켰나?” 하는 문제를 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의구심을 낳을 수 있는 추측에 대해 진짜 범인은 몰래 숨어서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감염자의 진술에 의존해 그 동선을 따라가는 역학조사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감염자의 바이러스 게놈을 조사하면 감염 경로와 전염시킨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게놈 정보 해독 건수가 적어서 이 방법을 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31번 확진자를 감염시켜 신천지에서 코로나 전파를 일으킨 범인은 사라져 버렸고, 그의 정체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바이러스 전파자에 관한 미스터리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것은 진짜 전파자보다 엉뚱한 곳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것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에 삼성 서울병원은 슈퍼 전파자로 지목돼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수사 결과는 무혐의로 드러났다.(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양요안, 2015.12.24.처분) 한편 평택 성모병원은 슈퍼 전파자 3명을 감염시켜 전체 확진자의 70%를 양산했지만, 면죄부를 받은 듯(?) 비난의 무풍지대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또 삼성 서울병원은 시민단체로부터 ‘최악의 살인 기업’으로 몰렸지만, 평택 성모병원은 영광의 주인공인 양 가톨릭 평택 대리구 신부에게 감사장을 받고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는 병원”이라는 축복까지 받았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은평성모병원은 수도권 대형 병원 중에 처음으로 병원 내 감염을 일으켜 많은 우려와 불안을 낳았지만, 명동성당 염수정 추기경이 친필 편지를 보내 “여러분의 수고를 기억하며 진심으로 고맙다.”고 격려해 주었다. 이는 성공적인 이미지 세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자료6> 2009년 신종플루가 창궐했을 때는 가톨릭 수녀가 우리나라에 전염시킨 첫 번째 전파자였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오히려 수녀들이 전염병 대비를 잘했다는 기사가 줄기차게 보도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첫 번째 전파자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바이러스를 전파시켰던 전과자들은 바이러스처럼 능수능란하게 변이를 일으키며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남긴 또 다른 미스터리는 “누가 진짜 사기범인가?” 하는 것이다. 신천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등장한 키워드는 “종교 사기” 또는 “사기 전도”였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성전’이라는 생소한 단체가 사람들을 속이며 사기 전도를 벌이는 것이 알려졌고, 이러한 종교 사기 집단에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다름 아닌 가톨릭이라는 점이었다. 교황청 산하에 ‘종교간 대화평의회’가 있을 정도로 타 종교와 대화하며 너그러운 포즈를 취했던 가톨릭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는 완전히 돌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신천지의 진짜 문제는 사기 전도다.’ 지난 3월 한겨레 신문에는 이런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등장하는 이금재 신부는 이렇게 단언하는 동시에 ‘신천지의 뿌리는 전도관’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했다. <자료7> 이 두 가지 명제는 절묘하게 결합해 ‘신천지의 사기 전도는 전도관(천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천부교도 사기적인 방법으로 전도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신천지가 사기 전도로 비난 받을 때 “신천지 뿌리는 천부교”라는 발언은 천부교로 비난의 집중 포화가 떨어지게 만들 수 있는 방아쇠였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사기범이라는 의혹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려면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물며 타 종교 단체를 두고 사기범이라고 할 때는 개인과는 별개로 정확하고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안 된다. 만약 증거도 없이 사기범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도리어 손가락질한 사람이 사기범이라고 비난 받을 가능성이 높다. 천부교의 전도 방식은 대상자에게 천부교라는 명칭을 분명히 밝히고 그 뜻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천부교라는 명칭에서 종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신앙의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람나무 잎을 물고 있는 비둘기상이 천부교의 상징임을 알리면서 감람나무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것을 알리고, 중요한 교리인 자유율법과 천부교인들의 신앙체험을 알리는 순서로 전도를 한다. 천부교 관련 기업체의 이름 또한 천부교 고유의 의미가 담긴 “신앙촌”을 사용하며 신앙촌 기업의 제품을 판매하는 점포도 “신앙촌 상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다.(1966.12.27.선고, 대법원66후11판결 “신앙촌은 박태선 장로를 따르는 신자들만의 단체를 칭하는 통용어이며 신앙으로써 결합된 특수단체이다.”) 이러한 신앙촌 기업이나 신앙촌 상회를 통해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천부교인에게 관심을 갖고 전도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가톨릭의 주장에 따르면, 신천지의 사기 전도 핵심은 자신의 종교 이름을 숨기고 대상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을 속이고 접근하는 방식은 천부교 교리인 자유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천부교에서는 사기 전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가톨릭 신부가 천부교를 두고 사기 전도 운운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부교는 신천지와 뿌리부터 다른 종교다. 그렇다면 신천지는 자신의 뿌리를 어디라고 했을까. 신천지를 세운 이만희 총회장은 자신의 책 <계시록의 실상(1993)>에서 장막성전이 첫 번째 장막이고 신천지가 두 번째 장막이라고 선언했다. 장막성전이란 ‘1966년 과천에 세워진 장막성전’을 말하며 신천지는 그 명칭(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성전)부터 장막성전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천지 스스로 자신의 뿌리가 장막성전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가톨릭 신부는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라고 단언했을까. 이 신부가 내세운 증거는 단 하나, 이만희가 젊은 시절(27세) 신앙촌(경기도 부천의 소사신앙촌)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만희가 잠깐 몸담았다는 이유로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가 된다면 가톨릭도 신천지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신천지 2인자이자 유력한 후계자였던 김남희 씨가 원래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만희는 정말 신앙촌에 있었을까, 있었다면 무슨 이유로 들어갔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본지는 이만희 주장과 동일한 시점인 1957년경 소사신앙촌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사람들의 목격담을 수집하며 추적하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공통적으로 1958년 여름에 문둥병을 앓았다가 완치된 이만희 씨를 소사신앙촌에서 봤다고 했다. 특히 개신교 언론에서는 이만희 씨와 형제들까지 문둥병을 앓았다고 보도했는데, 기성교회 목사가 이만희를 고소한 사건에서 ‘이만희가 문둥병 치료를 목적으로’ 신앙촌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판결문에 명시돼 있었다. (서울동부지법2013고정385) 이만희가 신앙촌에 들어와 문둥병이 나았다면 그 당시 본지에 보도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1958년 당시 본지에는 문둥병뿐 아니라 각종 난치병과 불치병 환자들이 생명물을 마시거나 안찰을 받은 후로 완치되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 많은 치병 기사 중에 ‘이만용’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는 이만희의 형인 이만용과 거주지, 연령, 한자 이름까지 동일해 이만희의 형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본지에 감사 편지를 보내와 “밀양전도관에서 박태선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생명물을 몸에 바른 후로 수년 동안 고생했던 문둥병이 완치되었다.”고 밝혔다.(1958.10.6.자 신앙신보) 이 증언과 보도를 토대로 하면, 이만희와 그의 형 이만용이 전도관에 입교한 후 문둥병이 완치된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만희는 천부교에서 병이 낫는 혜택을 입은 사람이었고, 그것은 당시 수없이 일어났던 치유 사실 중에서 빙산의 일각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이만희와 천부교의 관계는 간단명료하다. 천부교는 이만희의 문둥병을 고쳐 주었고 이만희는 천부교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만희의 문둥병 치유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해 버리고 천부교가 신천지의 뿌리라는 허위 사실을 집요하게 퍼뜨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신종플루부터 메르스, 코로나19까지 바이러스 전파의 혐의가 농후한 특정 집단이 자중을 해도 부족할 시점에 오히려 바이러스를 빌미로 천부교를 폄훼하는 것은 천부교의 권능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인지 장애인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7일 보도된 CNN 기사를 주목할 만하다. CNN에 따르면 1950년대 천부교인의 숫자가 200만 명이며 이만희는 그중 한 명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이 바로 사실에 입각한 보도일 것이다. ‘사기 전도’란 신천지처럼 전도자가 자기 종교를 숨기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적을 행할 수 없는 종교가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사기전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교황 프란치스코는 신자 없이 홀로 미사를 할 때 “예수는 나의 사랑에 마음을 열라고 말씀하신다.”며 신자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느낄 것을 설파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에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 기초는 이해이고, 이해가 없다면 사랑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토리노 수의는 예수가 죽은 지 1300년이나 지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그 수의를 보며 어떻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고고학자 T. 더글라스 프라이스의 말대로 “토리노 수의가 진짜라고 믿는 것은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같은데, 어떻게 얼룩덜룩한 세마포 천을 보며 예수를 이해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겠는가. 일찍이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칸트는 종교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이라고 했다. 토리노 수의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아니라 더 정확한 증거가 나와도 여전히 맹목적인 믿음을 고수할 것이다. 2,000년 동안 이어진 사기 전도의 폐해는 그만큼 강력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십자가’를 들고 개종을 강요하던 때보다 세상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살인 전도보다 사기 전도가 그나마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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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전도관 신앙 운동의 깊이에 놀라”

“전도관 신앙 운동의 깊이에 놀라”

기획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수은 중독과 매독, 탐욕이 부른 질병에 대하여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수은 중독과 매독, 탐욕이 부른 질병에 대하여

오피니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바라보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바라보며

시온춘추

종교의 진화(進化)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한강집회편(7.끝)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김혜영 관장편 ② 전도의 기쁨

김혜영 관장편 ② 전도의 기쁨

중학생 때부터 반사활동을 해 왔지만 대학교 졸업쯤, 막상 교역자로 나가려니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앙촌에 가서 축복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기장신앙촌과 가까운 부산에서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신앙촌에 가서 축복을 받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때 마음 속으로 전도를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다짐했던 만큼 전도를 하지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더 열심히 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고자 교역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역자로 전도를 하며 서울 광의교회로 발령받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로 무엇보다 학생이 없어서 여러 교회가 함께하는 학생 모임에 관장인 저 혼자 참석하는 것이 무척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예쁜 반사가 생기게 해주시길 기도드렸고, 거의 매일 심방을 하며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조금씩 교회 오는 아이들이 생겼고 그 아이들과 전도의 날을 준비 했습니다. 3월 전도의 날이 되었을 때 예배실이 차고 넘칠 정도로 아이들이 와서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후 교회 근처에 사는 학생이 친구를 전도해 왔습니다. 전도된 학생은 열심히 하는 반사가 되어 같이 일요일 준비도 하고 전도도 함께 하였습니다. 일요일이면 예배 준비에 바쁜 저를 대신해 학생들을 직접 데려올 정도로 전도에 열심이었습니다. 한 번은 오전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같이 심방을 했는데도 아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1명이라도 더 왔으면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습니다. 늦게 온 아이와 예배를 드리는데, 뒤에서 그 반사가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런데 10분쯤 뒤 다른 아이가 스스로 예배드리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드린 반사, 또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그때 그 반사와 느낀 감동과 기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 생애 최고 전도의 해” 이것은 2014년 학생관장들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전도는 항상 꾸준해야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학생 관장으로서 전도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왠지 그 문구를 보았을 때 설레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해 보자! 작지만 저만의 다짐이 생겼습니다. 내 생애 최고 전도의 해. 이 글은 어느 때나 해당된다는 생각에 지금도 찬송가에 끼워 놓고 봅니다. 항상 보는 글인데 어느 날은 무덤덤하게 읽히고, 또 어느 날은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떨림이 느껴집니다. 그 문구를 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내어 봅니다. 내가 기억하는 하나님과 나의 약속,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어느 곳에서든 하는 전도. 그 기쁨과 가치를 알기에 이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열심히 전하는 학생관장이 되겠습니다.

동울산교회 신축하며 하나님 찾는 시간 늘어

동울산교회 신축하며 하나님 찾는 시간 늘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일산 해수욕장이 위치한 울산 동구. 유동 인구가 많이 몰리는 이곳에 한국천부교 동울산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초 신축을 마친 동울산교회는 세련된 구조가 돋보인다. 신축을 위해 많은 수고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김성곤 관장과 김기환 권사를 만났다. ◆ 모두의 바람이었던 신축 수년 전부터 동울산교회 교인들의 바람은 교회신축이었다. 신축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2017년 김성곤 관장 부임 후 모두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김 관장은 “교인 모두가 신축에 뜻을 모으셨어요. 이후 전도 집회도 열리고, 신축 추진위원회까지 발표되고 나니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라고 했다. 지난해 8월 공사가 시작되자 교인들은 기뻐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적극적이었던 사람은 장년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환 권사였다. ◆ 제강공장에서 단련한 기술로 김기환 권사는 과거 기장신앙촌 제강공장 용접부를 거쳐 현대 중공업 기술직으로 근무한 바 있다. 금속을 다루는 모든 작업은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부교의 상징인 비둘기 종각 설치까지 손수 시공했다고 한다. “육십평생 하나님 일을 많이 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신축을 계기로 은혜로운 일을 할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두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인부들이 퇴근할 때까지 현장에 머물렀다. 현장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어떻게 해야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까 많이 고심했다. 김 권사는 “시공을 직접 진행하다 보니 인건비도 절약되고, 불필요한 공사는 과감히 축소해서 비용 절감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공사에 직접 참여해 보람 느껴 밝고 힘이 넘치는 교회 만들 것 ◆ 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신축을 진행하면서 김성곤 관장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교회를 짓는데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사 기간 동안 맘 편히 잠자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럴 때는 가끔 밖으로 나가서 지어지고 있는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떠올렸어요. ‘하나님, 꼭 잘 해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간절한 기도가 절로 나왔어요.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참 소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지어진 동울산교회는 실용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구조로 탈바꿈하였다. 외관에서부터 밝고 힘찬 이미지의 교회를 구상했다는 김성곤 관장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한번 쯤은 들어와 보고 싶은 교회를 염두에 두었어요. 여러 차례 원하는 모습으로 가설계를 하면서 현장 소장님이나 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 앞으로의 바람 이제 새롭게 거듭난 교회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는 김성곤 관장과 김기환 권사. 두 사람의 바람을 들어보았다. “교역자 생활을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간절히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신축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또 성전을 지었으니 하나님 은혜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 목표는 지금보다 교인이 두 배 세배 늘어난 동울산교회입니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성곤 관장)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를 보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노력한 것보다 더 크고 값진 결과를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며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고 싶습니다.”(김기환 권사)

“지난 6년간의 여정 마치고 새로운 꿈 향해”

“지난 6년간의 여정 마치고 새로운 꿈 향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졸업이라는 순간이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14학번으로 입학해 올해 졸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떠올려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이버대학교 영어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시온오케스트라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서 휴학했습니다. 휴학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겨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졌음에도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벌어진 시간 틈새로 무언가 새어나간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복학하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바삐 움직이며 생활해야 마음속에 진정한 기쁨이 솟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늘어졌던 마음에 적당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해야 할 모든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할 때 커다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자격증 공부로 매일 감사해 물론 공부하며 힘든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연습하랴 공부하랴 정신없는 때도 있었고, 중간에 체육대회가 겹쳐 강의가 밀린 적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다 보니 스스로 계획을 짜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친구들, 존경하는 선생님이 힘을 북돋아 주셔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제게 대학생활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스스로 성장하고, 함께해주는 이들에게 깊이 감사함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졸업하긴 했지만 요즘은 다른 공부를 하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앙촌 양로원 권사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관련 자격증을 배워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꿈이 생기니 매일 새롭고 즐겁습니다. 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주변 지인들에게도 휴학하지 말고 곧장 졸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졸업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졸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로운 꿈을 향해 부지런히 매일 달려서, 제가 배우고 공부한 것들이 신앙촌에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혜영 관장편 ① 이슬성신이 담긴 물, 생명물의 권능

김혜영 관장편 ① 이슬성신이 담긴 물, 생명물의 권능

아이들에게 생명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줄 때마다 제가 학생 때 보았던 일이 먼저 기억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축복해주신 생명물도 많이 받았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대학생 때였습니다. 어떤 권사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여 같은 교회 학생들과 난생처음으로 시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무릎이 아파 한쪽 무릎을 세운 체로 돌아가셔서 시신을 씻기는 과정에서 권사님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하셨습니다. 목 아래로 통나무같이 온몸이 한꺼번에 들리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찬송과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입에 넣어드리니 고인은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입관할 수 있었습니다. 교역자로 나오고 몇 년 안 되었을 때, 안 믿으시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리니 처음엔 흘렀지만 나중엔 다 넘어갔습니다. 할머니는 뼈에 살가죽만 붙어 있는 모습이셨는데 수건에 생명물을 적셔서 깨끗이 닦아 드리고 난 후에 다시 보니 비쩍 말랐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살이 예쁘게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권능이 담긴 생명물체험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설명해 교역 생활을 하며 여러 번의 장례에 참석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입관 예배는 작년 대전에서 있었습니다. 평소 겁이 없는 편인데 보통 봐왔던 시신과는 달리 처음으로 섬뜩함이 느껴졌습니다. 같이 참석한 분들도 다 그런 느낌이었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관장님들과 교인들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노긋노긋해지며 처음 느꼈던 섬뜩함이 없어지고 예쁘게 피셨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믿지 않는 유가족들과 친지들이 들어오셔서 “어머, 세상에…” 하며 곱게 핀 모습에 연신 기뻐했습니다. 입관 예배를 드리며 생명물의 놀라운 권능을 목격할 때마다, 아직 어려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는 아이들에게 잘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씀 공부 시간마다 생명물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 줍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든 가족이든, 누구나 마지막이 아름답기를 바라지 비참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종교나 천국에 간다, 좋은 곳에 간다고 하지만 그 증거가 없다. 하지만 천부교는 이렇게 확실하신 하나님의 생명물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누구든지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체험의 종교다” 라고 자신 있게 설명합니다. 장난기 가득했던 눈빛이 제법 진지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들 마음속에 새겨짐을 보며 감사드립니다.

교양

‘돌밥돌밥’ 고민 타파 ‘두부’ 간편 레시피

‘돌밥돌밥’ 고민 타파 ‘두부’ 간편 레시피

‘돌밥 돌밥’은 최근 주부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조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돌아서면 밥 차리고 돌아서면 밥 차린다’는 의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외식까지 자제하면서 주부들의 일상이 바뀐 탓이다. 이같은 주부의 고충을 덜어줄 ‘간편한 레시피’를 찾는 이용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신앙촌푸드’ 유튜브 채널에서도 간편하면서 영양까지 챙긴 레시피를 공개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hh1Ln3OcgS_wNGOwxuzQFw) 01 마파두부덮밥 재료 -두부 100g -다짐육 200g -굴소스 1큰술 -대파 1뿌리 -두반장, 고추기름 3큰술 -전분물(물4큰술+전분4큰술) ① 달군 팬에 고추기름을 넣고 대파를 넣어 볶는다. ② 다짐육을 넣어 같이 볶는다. ③ 두반장 3큰술 굴소스 1큰술을 넣어 볶는다. ④ 물 500ml를 붓고 두부를 넣어끓인다. ⑤ 전분물을 넣어 걸쭉하게 만든다. 02 두부스파게티 재료 -두부 100g -토마토소스 500g -양파 1/4개 -느타리버섯 -파슬리 가루 -파스타면 1인분 ① 두부 물기를 제거한 후 으깬다 ② 으깬 두부를 넣어 살짝 볶는다 ③ 토마토소스를 넣고 소스 완성 ④ 끓는물에 파스타면을 8분간 삶기 ⑤ 소스에 면을 넣어 함께 볶는다 03 두부유부초밥 재료 -두부 400g -시판 유부피 -초밥 속 소스 & 조미 볶음 ① 두부를 으깬다. ② 고슬하게 지은 밥에 유부초밥 세트에 들어있는 배합초, 후레이크와 으깬 두부 넣고 섞는다. ③ 조미액을 살짝 짜낸 유부에 ②의 밥을 넣는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여는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코로나, 어디서 왔나?

손목 통증 잡는 스트레칭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어디까지 왔나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어디까지 왔나

AI 예측 결과 치료제는 2년 뒤, 백신은 5년 뒤에나 가능 바이러스 치료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백신이다. 흔히들 예방주사라고 하는데 해당 바이러스의 사체나 독성을 제거하여 몸에 주입해서 면역체계가 항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치료제이다. 이는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화학물질을 투입해서 바이러스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 ◇ 치료제 · 백신연구 어디까지 왔나 5월 3일 과학계 등에 따르면 치료제와 백신은 갈 길이 멀다. 통상 백신 개발에만 10년이 걸리는 상황 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을 출범시킨 우리 정부를 포함해 전 세계 과학자, 바이오업계에서 개발에 뛰어든데다 각국 정부도 유효한 개발에 따른 빠른 시판 허가를 내주려고 하고있다. 실제로 치료제의 경우, 현재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가 속히 효과를 낼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학·의학계 인사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안전’이다. 지난달 1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등이 온라인으로 공동 개최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개발 속도도 중요하지만 이 때문에 치료제나 백신이 급하게 만들어져 부작용을 일으킨다면 더 큰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코로나 19 ‘중대 돌연변이’ 발견 백신 개발에 심각한 지장을 줄 돌연변이 발견에 관한 보고가 지난 4월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를 통해 보도됐다. SCMP에 따르면 대만 국립창화사범대와 호주 머독대 공동연구팀은 중국 우한에서 돌아온 뒤 코로나19에 걸린 인도 의대생에게서 검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대 변이를 일으킨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수용체결합영역(RBD)에서 확인됐다. 스파이크 단백질이란 바이러스 표면에 돌기처럼 오톨도톨 튀어나온 단백질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는 이 스파이크 단백질을 통해 숙주 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해 감염증을 일으킨다. 즉, 스파이크 단백질을 무력화시켜야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백신 개발도 스파이크 단백질 무력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신종 코로나의 다양한 변이 능력 때문에 백신을 개발하더라도 돌연변이에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알렸다. ◇ 화학 백신과 행동백신 국제 학술정보 분석업체인 크래리베이트는 13일 “AI를 통해 백신과 치료제 개발 시점 예측 결과 치료제는 2년 뒤에, 백신은 5년 뒤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든 조건이 차질 없이 진행됐을 때를 가정한 낙관적인 추정이다. 독감 백신은 1940년대에 처음 등장했지만 예방 효과를 현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무려 70년이 걸렸다. 인수 공통 바이러스가 3~5년마다 한 번씩 창궐한다면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은 언제나 패배할 수밖에 없다. 화학 백신을 지금 당장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 생활 속에 실천할 수 있는 백신이 있다. 지금 정부에서 권장하는 “생활 거리 두기”이다. ①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 ② 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건강 거리두기 ③ 30초 손 씻기, 기침은 옷소매로 가리고 하기 ④ 매일 2번 이상 환기, 주기적 소독 등을 지키는 것이다. 훌륭한 행동 백신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할 때이다.

아직도 손 씻을까 말까 망설이고 계신가요?

물이 건강을 지킨다! 호흡기 질환 바이러스 배출 도운다!

조용한 뼈도둑, 골다공증 예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