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와병설’ 돌던 탄자니아 대통령 사망

‘코로나 와병설’ 돌던 탄자니아 대통령 사망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존 마구풀리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6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사미아 술루후 하산 부통령이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마구풀리 대통령은 10년 넘게 싸워온 심장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매주 일요일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 온 마구풀리 대통령은 지난 27일 이후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이상설과 함께 그가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야당은 그가 코로나에 감염돼 케냐에서 치료받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인도로 이송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화학 교사 출신인 마구풀리 대통령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 코로나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발언을 내놓아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신에게 기도하라. 사탄바이러스는 예수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살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했고, 잘못된 코로나 진단키트가 코로나 확진 환자 수를 늘린다고 주장했으며, 서구의 음모인 백신을 거부하고 약재를 달인 증기를 흡입하라고 촉구했다. 탄자니아는 지난해 4월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 관련 수치를 보고하지 않았고, 같은 해 5월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공식 집계를 중단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신의 은총’으로 코로나를 퇴치했다며 코로나 종식을 선언하기도 했다. 마구풀리는 지난 2015년 부패척결과 일자리 창출, 산업화를 공약으로 내걸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전임 정부에서 건설부 장관을 지내며 ‘불도저’란 별명을 가졌던 그는 취임 초기 국립병원에 예고 없이 방문했다가 환자들이 바닥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곤 그 자리에서 병원장을 즉각 해고하는 등 깜짝 행보를 보여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사법기관과 의회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대중 집회를 금지하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들을 폐쇄하는 등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한때 동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안정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탄자니아는 마구풀리 대통령의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작년 10월 부정 선거 논란 속에 재선에 성공했다. 야당은 대선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불복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야당 지도자들을 구금하고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홍수, 황사, 폭설… 이상 기후의 습격에 전 세계 시름

홍수, 황사, 폭설… 이상 기후의 습격에 전 세계 시름

호주, 최대 강우량 1000mm 폭우 중국, 최악의 황사 ‘주황색 하늘’ 유럽, 2천 년간 전례 없던 가뭄·폭염 3월 24일(현지시간) 시드니를 포함한 호주 동남부 연안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기록적 폭우로 100년 만의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선 지난 18일부터 최대 1000㎜에 달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져 시드니의 주 식수원인 와라감바댐이 범람해 지금까지 2만4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에서는 6일간 3월 평균 강우량의 5배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언 뉴사우스웨일주 주지사는 “이렇게 빠른 속도의 극한 기상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며 38곳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고 잠재적으로 인명을 위협하는 돌발홍수를 경고했다. 지난 15일에는 중국과 유럽의 기상이변 소식이 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이 10년 만의 모래폭풍으로 온통 누렇게 덮인 최악의 황사를 맞은 가운데 최근 몇 년간 발생해온 유럽의 극심한 가뭄과 폭염도 200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는 내용의 뉴스였다. 미국 CNN방송 등은 15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이 섬뜩한 오렌지색의 짙은 황사로 뒤덮였다고 보도했다. 고층 빌딩들은 짙은 황사 속에 흐릿하게 보인 가운데 베이징 시민들은 모래바람 속을 걸었고 일부 지역은 황사가 너무 짙어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운행했다. 중국 중앙기상대에 따르면 이번 황사는 최근 10년간 중국에서 일어난 황사 중 가장 강하고 범위도 넓다. 베이징 당국은 시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했고 각급 학교에 실외 활동 중지를 명령했다. 등교 중지 조치를 내린 곳도 있었다. 몽골에서는 강한 모래폭풍으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다수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2014년 이후 유럽에서 잇따른 극심한 가뭄과 폭염이 2000년 만의 최악 수준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실린 이번 연구는 참나무 147그루의 나이테를 분석한 것으로, 연구진은 최근 폭염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농작물 파괴와 산불이 발생했다며 향후 더 극심하고 더 잦은 폭염과 가뭄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구진은 가뭄과 폭염의 원인은 지구온난화가 가장 유력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울프 뷘트겐 교수는 “최근 우리가 경험한 유난히 덥고 건조했던 여름은 정상이 아니었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공기 순환에 변화를 일으켜 가뭄을 야기한 것으로 최근의 기후 상황은 지난 2000년 동안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앞으로 이는 우리 생태계, 사회 전반에 걸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 기후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북부와 중남부 산지에서는 3월에 최대 38㎝의 눈이 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10일(현지 시각) ABC뉴스에 따르면 폭설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일부 고속도로가 통제됐다.

소행성 아포피스 충돌하면 히로시마 원폭 8만배의 위력

소행성 아포피스 충돌하면 히로시마 원폭 8만배의 위력

400m 소행성, 8년 뒤 지구 근접 미국, 프랑스 등 탐사 계획 발표 ‘악(惡)의 신’. 지난 6일 지구를 스쳐 지나간 소행성 아포피스의 뜻이다. 이집트 신화 속 태양신 라와 대결하는 신인 아펩의 그리스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태양신 라가 질서와 빛ㆍ정의를 상징한다면, 아포피스는 혼돈과 어둠을 뜻한다. 2004년 12월 미국 국립광학천문대 산하 킷픽 천문대가 발견한 이 소행성은 지름이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조금 큰 400m에 달한다. 아포피스는 지구와 가까운 공전 궤도를 돌고 있는데 10년에 한 번꼴로 지구와 가까워진다. 지난 6일엔 지구에서 1,680만㎞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다가 초당 4.58㎞의 속도로 지나갔다. 이 정도면 수많은 지구 근접 소행성 중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악의 신이라는 살벌한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따로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 따르면 아포피스는 100년 이내 지구 충돌 확률이 100만분의 1보다 높은 지구위협천체 4개 중 하나로 꼽힌다. 발견 당시 천문학자들은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천문학자들은 아포피스 크기의 소행성이 이처럼 지구에 가까이 접근할 확률은 1,000년에 한 번이라고 계산한다. 아포피스처럼 지름 400m에 가까운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지름 20~50m급 소행성만 하더라도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1908년 러시아 퉁구스카에는 지름 50m급 소행성이 떨어져 주변 2,000㎢의 산림이 초토화됐다. 지름이 400m일 경우 폭발력이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8만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10㎞에 달하면 지구 생물의 대멸종을 일으킬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 지구의 지배자였던 공룡을 멸종시킨 것이 지름 7~10㎞의 소행성이나 혜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해 말 한국지질연구원이 발표한 직경 4㎞의 경남 합천 운석 충돌구엔 5만 년 전 지름 200m가량의 운석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연구원 측은 당시 “합천 운석 충돌로 서울~부산까지 초토화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9년 4월, 지구는 별일이 없을까. 과학자들은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안심하긴 이르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자들은 인류가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포피스가 지구 가까이 오기 전에 탐사선을 보내 정확한 형태와 지질 성분을 파악하고, 혹 분열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2029년 ‘아포피스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MIT 등 4개 기관에서 탐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대만과 프랑스도 아포피스 탐사를 선언했다. 한국 정부도 2018년 1월 발표한 ‘제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서 소행성 탐사를 밝힌 바 있으며, 지난 1월 천문연구원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주재한 ‘과학기술미래포럼’에서 아포피스 소행성 탐사안을 발표했다.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15일 현재 크기가 140m보다 큰 ‘지구위협 소행성’이 2,173개에 달한다. 또 지구 위로 매일 떨어지는 유성도 100t에 이른다. 6,600만 년 전 공룡 대멸종의 주범이 소행성이었던 것처럼, 35만 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도 언젠가 소행성 충돌로 멸종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전에 지구온난화나 핵전쟁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골라 맞을 수 없는 백신… 그 병원장에겐 허락된 화이자

골라 맞을 수 없는 백신… 그 병원장에겐 허락된 화이자

서울성모병원 원장 화이자 접종…청와대 청원글에 논란 커져 “원장은 코로나 환자 치료도 안 하면서…” 뿔난 의료진 국내 백신 접종은 지난달 26일 요양시설과 요양병원 입소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처음 시작된 후 코로나19 전담병원 종사자,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 등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다음 달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75세 이상은 화이자, 65세 이상 74세 이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후 부작용이 연이어 보고되면서 유럽 각국에서 접종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아스트라제네카에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화이자 백신의 선호도가 높아졌지만 정부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백신 가운데 어느 것을, 언제 맞을지는 개인이 선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예외가 확인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 원장이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닌데도 화이자 백신을 맞은 것이다. 해당 병원장의 연령은 만 67세로 화이자 백신 접종 대상이 아닌 데다가, 코로나 환자를 직접 돌보는 필수인력이 아닌 만큼 접종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남성은 지난주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청와대 국민청원란에 고발글이 올라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청원글에는 코로나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응급실 간호사들 몫으로 화이자 백신을 신청해놓고, 정작 그들에겐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해당 청원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병원 측은 “필수 인력 접종 뒤 남은 백신을 접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김 원장 뿐 아니라 병원 미화원 등 의료 인력이 아닌 일반직원 20여 명도 접종했다고 밝혔다.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필수 인력은 아니지만 병원 자체 판단에 따라 접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 병원장이 다른 인력에 앞서 접종을 한 것은 특혜라는 비판이 나왔다. 원칙대로라면 병원장은 5월에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방역 당국은 “백신 폐기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남는 백신의 접종은 병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이러한 규제의 허점을 틈타 병원장의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ID: yk** “불법 자행한 개똘릭 성모병원을 폐쇄하라”, ID: 파랑** “그러고 나서 하느님앞에서 회개하면 된다”, ID: zzzz**** “서울성모병원답습니다~! 예상못한일은 전혀아닙니다. 최전방의료진을 위한 백신을… 휴”, ID: soap**** “그런식으로 경영해온 기관인거지 역겹지”, ID: waaa**** “느그 성모마리아가 그리 하라고 시키더냐” 등 크게 분노하였다. 한편, 이와 관련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 주요 대형병원의 병원장들은 원칙에 따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바 있다.

가톨릭, 넘치는 재정에도 코로나 원조 받아…천주교 서울대교구   노숙인 무료급식소 오픈

가톨릭, 넘치는 재정에도 코로나 원조 받아…천주교 서울대교구 노숙인 무료급식소 오픈

자선단체 40개가 받은 지원보다 2배 가량 많은 재정 원조 받아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살럿에 위치한 가톨릭 교구는 정부의 중소기업 구호 프로그램에 의지해 8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이 교구의 본부, 교회 및 학교는 지난 봄, 약 1억 달러의 현금과 단기 투자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구호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AP통신의 조사 결과,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미국 전역의 가톨릭 교구에서 급여 보호 프로그램으로 원조를 받았으며, 이를 통해 100억 달러가 넘는 현금, 단기 투자 또는 기타 사용 가능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범위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톨릭 교구에서 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재정 안정상태에도 불구하고 112개의 가톨릭 교구는 납세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최소 15억 달러를 모았다. 이들 교구의 대다수는 새로운 수입 없이도 최소 6개월 동안 운영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금이 있는 것이다. 2020년 미국의 가톨릭교회 재정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몇 달 동안 견실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개선되었다. 이는 교구의 크기나 지역에 상관없이 마찬가지였다. 켄터키의 루이빌 대교구도 조직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최소 1억 5300만 달러에서 1억 5700만 달러로 증가했다고 AP는 밝혔다.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대교구는 급여 보호 기금으로 최소 7700만 달러를 축적했다.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롤리 교구도 최소 11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교구의 운영이 코로나19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다. 샬럿, 시카고, 루이빌, 롤리를 포함한 가톨릭 교구 지도자들은 자신들도 본당과 학교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일부 교구는 기부금이 40% 이상 감소했으며, 수입 감소로 인해 임금 삭감과 정리해고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조지타운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입장과는 달리 직접적인 임금 삭감이나 해고조치는 드문 것으로 밝혀졌다. 여유로운 가톨릭 교구에 비해 중소기업의 42%는 직원을 해고하고, 급여를 삭감했으며, 33%는 개인 저축을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은 다른 비영리단체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았다. AP 통신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자선단체 40개가 받은 재정 지원을 합친 것보다 가톨릭교회가 받은 재정 지원이 2배 가량 더 많다고 한다. 1월 22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무료 급식소인 ‘명동밥집’을 열었다. 개소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명동밥집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데,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비싼 땅값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유명한 명동에서 처음 밥집을 연다고 했을 땐 ‘왜 하필 명동대성당에 노숙자를 불러들이냐’는 불만의 소리가 작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가톨릭 성지인 명동성당에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들어선다면 누군가는 고결한 성지가 더러워질 수 있다며 불경하게 여기고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대교구가 노숙인을 위해 성채의 벽을 낮춘다. 코로나 확산으로 노숙인이 부쩍 늘어나자 무료 급식소를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명동밥집이 문을 여는 날 추기경 염수정은 성수를 뿌리며 밥집을 축복했고, 노숙인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가톨릭신문은 ‘명동성당이 명동밥집을 통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명동밥집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은 SK 에너지가 기부하는 것으로 앞으로 1400여 세트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얼어붙은 미국, 지진 피해 입은 일본… 자연재해 곳곳서 포착

얼어붙은 미국, 지진 피해 입은 일본… 자연재해 곳곳서 포착

미국이 기록적인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 폭풍이 몰고 온 북극발(發) 맹추위에 미국 본토 4분의 3이 눈에 뒤덮였고, 주민 2억명에게 경보가 발령됐다. CNN방송은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 분석 자료를 인용해 본토 48개주(州) 전체 면적 가운데 73%가 눈에 쌓였다고 보도했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넒은 지역에 눈이 내린 것이다. 이번 한파는 눈 구경을 하기 힘든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아칸소 등 남부 지방까지 덮치면서 인명·재산 피해도 커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번 한파로 숨진 사람은 현재까지 최소 15명이다. 맹추위는 발전 시설까지 멈춰 세우면서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했다. 텍사스, 오리건,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등 18개주 550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전력 차단으로 수도 공급마저 끊겨 이중의 고통을 겪는 주민들도 나왔다. 텍사스 등 7개주는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캔자스주는 재난 상황을 선포했다. 한편 최근 일본에서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지 10년 만인 2월 13일 오후 11시 7분께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으로 추정되는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최대 진도(震度)는 후쿠시마 일부 지역과 미야기 (宮城)현 일부 지역에서 ‘진도 6강’에 달했다. 진도 6강이면 기어가야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고 튕겨 나가는 일도 생긴다. 고정되지 않은 가구가 대부분 움직이고 넘어지는 것도 많다. 내진성이 약한 목조 건물은 기울거나 쓰러지는 것이 많다. 땅이 크게 갈라지거나 대규모 산사태 및 산이 붕괴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번 지진으로 최소 30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으며, 피해 확인 과정에서 부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정전도 발생했다. 초기 집계로만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약 95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지진의 진동은 진앙에서 수백㎞ 떨어진 도쿄 도심에서도 꽤 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며 진동이 수십초 동안 이어졌다.

‘나의 꿈을 디자인하다’

전국 소비조합 사업 시상식

한국천부교 여수교회 개축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 1단계로 하향 조정

신앙신보 구독신청은 각 교회별로 1월 24일까지 받습니다.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마음의 어둠을 거둬주시고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

마음의 어둠을 거둬주시고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

저는 1939년 충청남도 금산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내던 중 어머니께서 막냇동생을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듬해에는 6‧25전쟁이 발발해 아버지마저 전쟁 통에 목숨을 잃게 되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집에는 조부모님과 든든한 오빠들이 있어 먹고 사는 일이 크게 어려워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연이어 부모님을 잃고 나니 깊은 슬픔과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얼마 후 둘째 오빠마저 시골에서 살기 싫다고 집을 나가 버리면서 제 마음은 더더욱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제 사정을 아는 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다녀 보라고도 했지만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신을 믿습니까? 저는 안 믿습니다”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대전전도관에 오라는 둘째 오빠의 편지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1956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을 떠났던 둘째 오빠에게 편지가 한 통 와 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집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오빠가 이번에 대전으로 내려오게 된다며 저보고 대전에 와서 만나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오빠가 홀로 고생하며 공사판을 전전했다는 것과 몸이 상해서 많이 아프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서 전도관이라는 곳에 다니고 있으며 이번에 대전으로 내려오는 것도 대전전도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아픈 오빠를 만나 봐야겠다는 생각에 편지에 적힌 날짜에 맞춰 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대전전도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전도관 사람들은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는데, 예배에 처음 참석해 본 저는 그 광경이 생소하기도 하고, 찬송 부르는 법도 몰라서 그저 멋쩍게 손뼉만 쳤습니다. 반면 둘째 오빠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집회가 끝나고도 3일 동안을 대전전도관에서 머물면서 교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찬송도 부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주무시는 것처럼 편안히 숨을 거뒀습니다. 저는 오빠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그리도 좋아했던 전도관에 오빠의 장례를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대전전도관에 연락하니 곧바로 전도관 교인들이 물통을 들고 저희 집에 오셔서 오빠의 시신을 정성껏 닦아 드렸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한참 예배를 드리는데 전도관 교인들이 이슬이 많이 내린다며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안 어느 곳을 둘러봐도 이슬 같은 것은 안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이슬이 내린다는 걸까?’ 싶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갈 무렵 오빠의 모습을 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빠의 얼굴이 뽀얗게 피어나고, 팔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얼굴도 시꺼메지고 몸도 뻣뻣하게 굳어서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무서웠는데, 오빠는 마치 목욕을 마치고 편안히 잠든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매우 놀라워했고, 몇 분은 알코올로 시신을 닦아서 그렇다며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도관 교인들이 직접 가져온 물로 오빠의 몸을 닦는 것을 봤는데, 거기서 알코올 같은 독한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을뿐더러, 알코올로 시신을 닦아서 피부색이 뽀얗게 되거나 팔다리가 부드러워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살아 있을 적보다 훨씬 밝고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오빠를 보니 전도관은 정말 특별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순간을 전도관에서 보내고 싶어 했던 오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관 교인들이 오빠를 깨끗이 닦아 주었던 그 물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시 찾아간 전도관서 기쁨의 은혜 느껴 얼마 후 대전전도관에서 다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는 혼자 전도관을 찾아갔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예배 시간에 부르는 찬송이 그토록 간절할 수 없었습니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죄 짐을 지셨네’ 하는 찬송을 부를 때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무렵, 예배를 인도하시던 분이 단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시며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으시며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손이 제 머리에 닿는 순간, 목에서부터 배 속까지 박하사탕을 먹은 것보다 더 시원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코에서는 세상에서 맡아 보지 못했던 진한 향기가 맴돌았고, 가슴은 상상도 못 할 기쁨으로 가득 차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그제야 안수를 해 주신 분이 누구신지 궁금해졌습니다. 힘차게 찬송을 인도하시고, 사람들의 머리에 안수를 해 주신 훤칠한 신사분은 바로 박태선 장로님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국에서 집회를 하시고 전도관을 세우시며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교회에 관심이 없던 저만 몰랐던 것입니다. 또 제가 맡았던 진한 향기와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이 박 장로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이 마냥 좋아서 집회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전도관 앞을 배회했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고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대책 없이 전도관 문 앞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권사님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 권사님께 ‘은혜를 받고 나니 전도관에서 떠나고 싶지가 않아요. 저희 집 주변에는 전도관이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권사님께서는 본인은 서울중앙전도관(이만제단) 부인회장이라며 서울 원효로에 살면서 전도관에 열심히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인자하고 친절한 권사님을 만나고 보니 이분과 함께 서울에 가서 매일 전도관에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권사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저만 괜찮다면 권사님 댁에서 생활하며 전도관에 다닐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이 열아홉 살로 이미 성인이었던 저는 상경을 결심하고 권사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1957년도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안수를 받는 순간 목에서부터 배 속까지 박하사탕 먹은 것보다 더 시원해지고, 세상에서 맡아 보지 못한 향취 맴돌아 어둡고 쓸쓸했던 마음에는 상상도 못 할 기쁨이 차올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깨닫고 전도관에 다니게 돼 은혜를 간구하며 달렸던 하루하루 부인회장님은 저를 한 식구같이 대해 주셨고 일요일이면 같이 이만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실 앞자리에 앉기 위해 제단 문이 열리기 전부터 기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일요일만 되면 제단 입구에서부터 아래쪽 버스 정류장까지 길게 늘어선 줄의 끝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 긴 줄을 기다리면서도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조금도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예배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은혜가 연결되어 향취가 맡아지니 어찌 그 기다림이 지루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 처음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눈물로 예배를 드리고 나면 집에 가는 길이 땅을 밟는 것 같지 않고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습니다. 또 집에 도착하면 집 안 어느 곳을 가도 계속해서 향취가 연결되어 며칠씩 지속되곤 했습니다. 평일에는 박태선 장로님을 따라 구역별로 예배를 드렸는데, 수백 명씩 무더기로 따라다닌다 하여 무더기 심방이라고 불렸습니다. 각 지역마다 넓은 장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박 장로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은혜를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집회를 따라다니며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니며 무더기 심방을 따라다니던 그때가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후로 어둡고 쓸쓸하기만 했던 유년 시절의 그늘이 전도관을 다니며 씻은 듯 사라졌고, 은혜를 받은 마음에는 환하고 따스한 빛이 가득 비치는 듯했습니다. 그 하루하루가 기쁘고 좋은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사신앙촌에서 일할 건설대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건설은 해 본 적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1958년 여름에 소사신앙촌에서 노구산 집회가 열린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감동과 환희가 넘쳤던 노구산 집회. 그날 저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에서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집회에 참석한 후 소사신앙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 들어간 저는 한창 건설 중이던 오만제단 작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제단이 완공되고 나서는 신앙촌 주택을 건설했습니다. 모래 질통을 지고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며 일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꼈고,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섞어 콘크리트를 만드는 법, 벽돌을 쌓는 법 등 다양한 기술도 배웠습니다. 1962년 7월에는 감사하게도 덕소 건설대로 선발되어 두 번째 신앙촌을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하게 향취가 맡아지는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하나님께서 환히 웃으시며 저희 쪽으로 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설대원들을 자주 불러서 안찰해 주셨는데, 받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고 몸이 훨훨 나는 듯 가벼워져서 더욱 힘차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힘들지도, 피곤하지도 않고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지어진 덕소신앙촌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축복받은 땅에서 생활할 수 있음에 감사 이후 부산으로 내려와 기장신앙촌 건설을 마치고 장유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장유 공장에서 30여 년간 보람을 느끼며 근무하다 2009년 은퇴한 후,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잘 알고 지내는 소비조합 사장님의 신앙촌상회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사장님은 주로 신앙촌 제품을 배달하는 일을 맡고, 저는 상회에 오는 손님들을 응대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반갑고 친절하게 맞이하며, 제품을 설명하면 고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제품을 구매해 가셨습니다. 단골손님도 생기고, 매출도 오르니 일하는 기쁨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일선에서 물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앙촌 여성회 합창단이 되어 한창 즐겁게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소녀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터라 정식으로 발성을 배우고, 노래를 익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슬픔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제가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은 땅 신앙촌에서 여든이 넘은 오늘까지 기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꿈만 같습니다. 제 마음의 어둠을 거둬 주시고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오늘도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날들이 되도록 하루하루 말씀대로 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전도하는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전도하는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저는 1936년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짓는 부농이라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해방 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 지주들을 핍박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공산당원들이 날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 억지로 사상 교육을 시키며 하루라도 빠진 사람이 있으면 당장 불러다 자아 비판을 하도록 강요하던 모습입니다. 강압적인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산당의 눈을 피해 이남에 먼저 내려가신 후로 연락이 끊겼고, 저와 어머니는 1948년 3․8선을 넘어 어렵게 서울로 내려왔습니다. 공산당 치하에서 벗어나 잠시 숨통이 트인 듯 했지만, 몇 년 후 6․25 전쟁이 일어나 또다시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피난을 가다 보면 쌕쌕이라 불리는 전투기가 떠서 사람들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는데,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서도 저와 어머니는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한바탕 폭격이 지나간 후 지친 몸을 쉬기 위해 근처에 있는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더니 집주인이 무척 놀라면서 ‘저 폭격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당신네들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고 말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피난하는 동안 몹시 쇠약해졌던 어머니는 외갓집이 있는 인천에 정착한 후에 끝내 숨을 거두셨고 그때부터 저는 외가 식구들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그러던 1955년 3월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작은 외삼촌이 서울 남산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다녀오셨는데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남산 부흥집회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나와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그 시간에 불치병자들은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며 환호를 올리고 외삼촌은 세상에서 못 맡아 본 좋은 향기가 진동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외삼촌은 그 좋은 향기가 하늘의 향기이고 은혜라며 박 장로님은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런 은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이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하여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아침마다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9월이 됐을 때 인천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셔서 집회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꼭 한번 참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집회 장소는 동산중학교 운동장이었는데 그곳은 보통 학교 운동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어서 당시 인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외삼촌을 따라 동산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수십 개 연결된 천막 아래 모인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와서 밑에 깔아 놓은 가마니가 푹 젖어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보였습니다. 저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예배를 드렸는데 박 장로님께서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을 인도하시니 사람들도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뜨거운 열기에 저도 동화되어 큰소리로 찬송하며 손뼉을 치던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말로 다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맡아져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리 봐도 비를 맞아 머리와 옷이 젖은 사람들과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 그리고 축축해진 가마니뿐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쿠린내나 쉰내가 나면 낫지 결코 좋은 냄새가 날 리 없는데 어찌된 일인지 너무나 좋은 향기가 점점 코에다 들이붓는 것처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일 향이나 꽃 내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그 향기는 이 세상에서 맡아 보지 못한 진귀한 향기였습니다. 외삼촌이 남산집회에서 맡았다는 향기, 하늘의 향기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며 ‘그럼 나도 은혜를 받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찬송하시던 박 장로님께서 큰 소리로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났습니다. 들것에 실려와 신음하며 누워 있던 환자들도 어느새 일어나 병이 나았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벙어리가 말을 합니다!”하는 큰 소리가 들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벙어리를 단상으로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젊은 여자 분이 단상에 오르자, 하나님께서 마이크를 그분 앞에 대 주시며 말을 해 보라 하셨습니다. 이제 막 말문이 트여서인지 그분이 하는 말은 어물어물 잘 들리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하게 하시며 ‘하나님’이란 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드디어 그분이 ‘하-나-님’을 외치는 순간, 스피커를 통해 그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고, 집회장에 가득 모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올리며 집회장이 떠나가라 손뼉을 쳤습니다.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외삼촌이 말하던 은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일을 하시는 박 장로님께서는 보통 분이 아니신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천집회가 끝날 때까지 참석한 후 저는 박태선 장로님이 세우신 ‘전도관’이 인천 전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은 짠지 공장 2층에 예배실을 마련한 곳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박 장로님께서 인천전도관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실 때 예배실 가득히 안개같이 뽀얀 것이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쾅 하고 내리치실 때마다 단상에서 뽀얀 것이 퍼져 나와 예배실 가득히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찬송을 부르며 왜 그렇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지 가슴에서 기쁨이 넘쳐 흐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슬 같은 은혜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저한테도 은혜를 주십니까!’ 하며 감사한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고, 내 마음에 넘치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마다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해 주며 전도관에 같이 가자고 권유하게 됐는데 원래 말수가 별로 없는 제가 그렇게 전도를 하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사람들을 전도하는 순간에 어김없이 향취가 맡아졌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전도관 같이 가보자고 말을 꺼내는 순간 강한 향취가 진동하니, 하나님께서 내가 건네는 말을 듣고 계시며 전도하려는 마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회장에 비 맞은 사람, 병자들, 푹 젖은 가마니밖에 없는데 악취는 커녕 기막힌 향기가 진동 하나님 인도하시는 예배시간에 뽀얀 이슬같은 은혜 퍼져나와 감사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어 이 귀한 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마음먹으니 말씀 전하는 순간마다 향취가 맡아져 그 후 1957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는 신앙촌에 들어가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한참 일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안수를 해주셨는데, 안수를 받고 나면 몸도 가뿐하고,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서 다들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일을 했습니다. 이후 덕소신앙촌 메리야스 공장을 거쳐 1970년에 기장신앙촌 건설을 위해 부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소사와 덕소에서부터 일해 온 건설대원뿐 아니라 생산 부서에서도 건설대를 뽑았는데 제가 뽑혀서 기장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척척 일을 해나가는 건설대원들과 달리 저를 포함한 공장 출신 신입대원들은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저희들의 사정을 이미 다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공장 출신 대원들이 모래를 나를 때마다 질통을 들어주시며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들은 기쁜 마음에 힘이 나서 훨훨 나는 듯이 다녔습니다.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후 저는 메리야스 부서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잡념 없이 맑은 생각으로 찬송을 부르며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같이 일했던 후배들이 “언니가 화장실도 안 가고 일을 해서 우리도 덩달아 열심히 했다.”고 그때를 기억해서 같이 웃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정체에 대해서 낱낱이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가 부활한 후에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는 이야기, 썩어지는 피로 영원한 구원을 준다고 하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진리인 줄 알고 있는 예수의 이야기들이 결국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1년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는 초창기부터 받았던 은혜를 떠올리며 ‘그래 하늘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 하며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기장신앙촌 메리야스 공장에서 30여 년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한 저는 신앙촌 양로원에서 5년 동안 어르신들을 돌본 후 지금은 은퇴해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마다 제가 어떻게 이 복된 땅에서 평생을 살 수 있었는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오늘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송가 310장을 불러 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구원을 모르고 살아가던 저를 부르셔서 저 높은 곳을 향하게 하신 크신 사랑과 은혜에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하나님 뜻하시는 대로 맑게 살아서 그날에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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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오늘을  힘껏  살겠습니다

# 소사교회 이철희 관장 저희 소사교회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성전 건축 부지 위에 새제단 착공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하나하나 준비하는 가운데 저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름다운 제단을 신속하게 완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웅장하고 수려하게 세워질 새 제단을 생각하면서 교우 간에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남성협회 최다솔 관장 올해 저는 신앙촌에서 일하게 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이제까지 시무해 온 제단에 대한 아쉬운 마음과 새로운 직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신앙촌에서 기쁘게 일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이기며 나아가리라. 맡겨주신 사명 완수하도록 성신의 힘입어 힘써 일하리.” 찬송가 344장 가사처럼 맡겨주신 직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끈기 있게 최선을 다하여 뛰겠습니다. # 신앙촌베이커리 사원(여청) 장광옥 ‘입사생’이라는 가슴 벅찬 이름으로 보낸 시간을 뒤로하고, 새로운 파트에서의 또 다른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과거를 후회로서만 정의하지 않고 더 나은 오늘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싶습니다.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던 저에서 벗어나, 어제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찾으려고 애쓰는 제가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 동작교회 김은희 관장 새해를 맞아 묵은 때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힘찬 발걸음으로 재촉해 봅니다. 많은 지혜를 모아야 했던 2020년을 교훈 삼아 조금 더 단단하게 다져진 고마운 교인분들과 함께 알찬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오늘을 힘껏 살겠습니다. # 김해교회 김정열 관장 입사생으로 신앙촌에서 생활했던 19년의 시간 동안 일의 참된 의미와 기쁨을 일깨워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교역자 직분을 허락해 주신 것은 이제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가지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받은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신앙촌식품 사원(입사생) 곽소연 올해 입사생 슬로건은 ‘자유율법을 지키며 하루를 충족히 사는 입사생’입니다. 째깍째깍!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하루를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짐을 느낍니다. 저는 올해 임원이라는 직분을 맡아 신앙적으로 한층 성장할 기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온 것처럼 저도 후배들을 응원하며 이끌어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 시온식품여고 안지수 저에게 2021년은 20대의 첫발을 내딛는 해입니다. 희망찬 계획을 세우고 힘차게 나아가기에 앞서 지난 3년의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 바르게 가고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후회와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는 저를 바라보며 올해는 반드시 목표한 바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저의 스무 살 첫 번째 목표인 ‘감사 기도’ 드리는 제가 되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힘껏 살겠습니다. # 신앙촌 소비조합 이영선 사장 신앙촌 소비조합의 선한 영향력과 강인함으로 목표한 것을 기필코 해내겠습니다. 신앙촌 소비조합은 서로 합동할 때 더욱 힘이 솟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그 힘을 발휘할 때라고 생각하고 어디에서라도 신앙촌 소비조합의 힘이 필요하다면 마음과 정성을 모으겠습니다. 소비조합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진정한 소비조합으로 거듭나도록 땀과 눈물로 살아 움직이겠습니다. 저희가 뛰는 발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진심으로 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광안교회 오지선 관장 입사생으로 동고동락하며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신앙촌을 떠나 교역자라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사생 때 샛별부 활동을 하면서 보았던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고등학교에 올라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아이들도 나처럼 입사생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깊이 있게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었는지 지금까지의 생활을 다시 돌아보며 2021년,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교역자가 되기를 다짐해봅니다.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신앙촌의 선한 생산 활동에 관심”

“신앙촌의 선한 생산 활동에 관심”

기획
다시 쓰는 세계사<17>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골고다에서 코로나까지, 미신(迷信)의 역사

다시 쓰는 세계사<17> 세계에 전파된 악의 기원 ··· 골고다에서 코로나까지, 미신(迷信)의 역사

오피니언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과 우리의 대응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과 우리의 대응

독자의 시각과 편지

종교의 진정한 역할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건강과 기쁨을 전하는 신앙촌 소비조합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입학, 새로운 시작

입학, 새로운 시작

저는 올해 2월,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한결같은 사랑과 관심으로 아껴주시던 많은 분의 축하 속에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현재는 대학교 신입생으로 디자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제가 지금의 학과를 지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있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온식품여고에 입학한 후 새로운 환경에 낯설기도 했지만, 점차 적응하며 많은 경험과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무렵엔 졸업 후 근무할 부서에서의 실습이 있었습니다. 1년 동안 실제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은 저에게 기회였습니다. 부서 실습을 하고 여성협회에서 교육을 들으며 제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매우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 신앙촌 제품 패키지, 절기 포스터, 현수막, 프로그램 소개서 등을 보면서 행사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한 정성을 느끼며 ‘졸업 후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워 내가 직접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실습하고, 이제 실제로 근무할 부서의 제품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을 가지고 발전 시키고 싶은 일이었고 무엇보다 신앙촌에서 받은 사랑을 일을 통해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렇게 3년간의 진로 결정에 대한 여정을 마치고, 디자인학과에 지원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와는 또 다른 대학교 수업에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 공부가 신앙촌의 일원으로 일을 해나갈 준비를 하는 대학생이 되어 나를 더욱 성장 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걱정보단 즐거움이 앞서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이 마음과 결심을 품고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맑게 생활할 수 있는 20대를 보내고 싶습니다.

최고로 가치 있는 선택

최고로 가치 있는 선택

걱정 많았던 2020년, 예배도 전도도 어려워 저는 대학교 1학년부터 본격적으로 반사 활동을 하기 시작해 예쁜 아이들을 만나고 점차 반 아이들이 늘어 전도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버거워 점점 교회 일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새벽예배를 빠지는 일도 많아지고 나중에는 기도문을 되뇌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코로나19로 아이들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웠던 시기였기에 전도를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언제 종식될까 등등 여러 가지 걱정과 생각들로 마음과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여청·여대생 세미나, 어려움은 업그레이드의 기회 그렇게 점점 마음이 굳어가고 있던 지난해 여름, 신앙촌에서 열린 여청‧여대생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업그레이드 마이 셀프’였는데, 주제를 보니 현재 어려움 많은 이 상황이 오히려 나를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미나에서 듣게 된 하나님 말씀은 침체되었던 저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중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하신 구절이 가슴에 콕 박혀 ‘죄짓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주신 시간을 더는 허비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향해 가는 길, 힘차게 나아갑니다 이렇게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버겁기만 했던 새벽예배와 기도문이 자연스레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고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이기에 아이들의 마음이 굳어버려서 교회와 멀어지지 않도록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졸업반인 주변 친구들을 보면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세상의 취업이 생계를 위한 목표라면 하나님 일은 구원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향해 가는 길이기에 세상 어느 일보다 가치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졸업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또 졸업 후의 가치 있는 진로를 생각하며 부족한 저이지만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힘차게 나아가겠습니다.

“영업, 걱정하는 대신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세요!”

“영업, 걱정하는 대신 일단 행동으로 옮겨보세요!”

무슨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 소비조합에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사람이라면 영업이 특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일단 시작해보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통영지역 김명선 팀장과 광주지역 김혜경 팀장이다. Q1. 처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김명선: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하는 것은 성과가 없을까봐 걱정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가서 제품을 권유하면 되고,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거니까요.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김혜경: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파는 것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신앙촌 제품이에요. 자신감을 가져보세요. 의외로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믿을 수 있는 제품이기에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홍보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Q2. 그래도 영업이 어렵다고 느껴져요. 김명선: 처음에는 저도 명절 장유 선물세트 같은 경우는 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못했어요. 그래서 잘하는 사람, 경험이 있는 사람 등을 통해 정보도 얻고 함께 다니면서 분위기를 많이 익혔던 거 같아요. 김혜경: 평소 자주 지나다니는 곳을 공략하세요. 익숙한 곳이라 마음도 편하고, 가까우니까 자주 찾아갈 수 있거든요. 또 거절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거절당하더라도 즐겁고 유쾌하게 대화를 주도하면서 신앙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오는 거예요. 이런 작은 노력도 나중에는 신앙촌에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요. 만약 식당을 방문했는데 제품에 호감을 보이는 곳이 있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에요. 그런 곳은 꾸준히 찾아가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샘플도 주며 살갑게 대하세요.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곳입니다. Q3.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김명선: 예를 들어 벌크두부를 판매하고 싶다면 식당을 가야합니다. 식당 문을 열면서 ‘사장님’ 하고 부르세요. 눈이 마주치면 웃으면서 “사장님 두부 안 필요하세요? 신앙촌 두부에요” 하면 필요하신 분은 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갖다드리면 됩니다. 필요하지 않다고 하시면 그냥 나오지 말고 작은 두부 하나 드리면서 ‘사장님 한번 드셔보세요. 부드럽고 고소해요. 안녕히 계세요. 나중에 들려볼게요!’ 하고 나온 후, 다음번에 꼭 찾아갑니다. 또 거래가 성사돼서 우리 두부를 쓰게 되면, 어느 날 점심에 그 식당가서 밥을 한번 사 먹는 거예요. 그러면 사장님이 무척 기뻐하세요. 명절 때 간장 선물 하나 드리면서 ‘신앙촌 간장 참 맛있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하면 간장도 주문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거에요. 한 번에 되면 좋지만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하시면 다 됩니다. 김혜경: 저는 처음하시는 분들에게 초밥집 공략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초밥집은 초밥을 찍어 먹는 간장이 생명인 곳이라 좀 비싸더라도 좋은 간장을 쓰고 싶어합니다. 신앙촌간장을 들고 가면 맛 좋은 간장임을 한 번에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히려 영업하기 편한 곳이에요. 샘플 간장 두고 가면 가장 많이 연락 오는 곳이 초밥집입니다. 요즘은 또 코로나 시대라 배달주문이 많이 생겨서 사장님들이 파우치 간장을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초밥집 공략은 처음하시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Q4. 그 외에 다른 팁이 있을까요? 김명선: 처음부터 이것저것 한꺼번에 하려면 엄두가 안 날 수 있어요. 한가지씩 시작해보세요. 예를 들어 런이다 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만 공략하는 거죠. 간장이다 하면 시즌 때 명절 장유 선물 세트, 두부는 식당에 납품하는 벌크 두부. 이런식으로요. 김혜경: 저는 다니는 길목에 걸린 현수막들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요. 현수막으로 어떤 메뉴를 파는 식당인지 정보도 얻을 수 있더라고요. 또 플래카드를 건 식당을 찾아가면 거래가 성사될 확률이 많았어요. 현수막을 걸었다는 것은 식당이 잘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 처음 식당을 오픈한 사람들 등 적극적인 곳이라서 잘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한 번만 찾아가지 말고 꾸준히 찾아가세요. 인내가 있어야 결실이 생깁니다. Q5. 처음 시작하는 분들을 향한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명선: 무리한 계획을 세워서 삼일하다 주춤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매일 영업해보세요. 매일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 내가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하루 중 가장 값진 시간이 될 수 있어요. 김혜경: 일단 시작해보세요. 영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일단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홍보물을 주고 오는 순간 50%는 이룬 거라 볼 수 있어요.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결실이 생깁니다. 생각으로 겁내지 마시고 행동으로 도전해보세요.

“자연과 어우러진  신앙촌의 아름다움”

“자연과 어우러진 신앙촌의 아름다움”

기존 건물과의 조화가 가장 중요 바르게 일하겠단 신념 지켜나갈 것 천부교 어린이들의 교육 공간 신앙촌 유년 예배실이 외벽 도장과 샷시, 바닥 공사 등을 거쳐 학생 강당으로 탈바꿈했다. 시공 업체는 아웃테리어 전문 기업 ‘올바른 컴퍼니’(이하 올바른). 이름처럼 정직하고 믿음 가는 기업을 추구한다는 올바른의 정영호 대표를 만나 학생 강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건물과 조화될 수 있도록 노력 ‘올바른’은 학생강당 외에도 꽃방, 다용도실 등을 맡아 공사를 병행했다. 다양한 공사를 진행하며 정영호 대표는 ‘조화로움’을 가장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제가 본 신앙촌의 건물들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고풍스러운 외관을 갖고 있었어요. 그 특징을 살려 기존의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다음으로 고려한 것이 실용성이었어요.” 함께 일하는 기쁨을 중요시 여겨 정영호 대표는 함께 일하는 기쁨의 가치를 팀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사는 여러 명이 하나의 결과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만 내세우면 단합도 안되고 일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수시로 회의하고 토론해서 일의 방향을 잡습니다. 또 경력이 얼마 안 된 신규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하나 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팀원들이 느끼면 좋겠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신앙촌 사람들 부산에 살면서도 신앙촌에 처음 와봤다는 정 대표. 오히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신앙촌을 더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제가 신앙촌 아는지 물어보니 애들이 유치원 때 식품 단지 견학을 여러 번 갔었다 하더라고요. 아내도 아이들 따라 장유 공장 견학을 갔다가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앙촌 간장을 사 먹었다고 했어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는 정 대표는 일을 시작하며 자연과 운치있게 어우러지는 풍경, 맑은 공기가 무척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신앙촌 사람들의 표정이었다고 했다. “표정부터가 밝고 환해요. ‘저 사람들에게도 근심, 걱정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저랑 제일 친한 친구가 큰 교회 장로이기도 하고, 일 때문에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봤는데요. 신앙촌 사람들은 확연히 달라요. 더 선하다고 해야 하나? 또 일을 할 때도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더욱 긍정적이고 큰 시너지를 내는 것 같습니다.” 자유율법,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있나 신앙촌과 천부교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정 대표는 가족들과 함께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예배에도 참석했다. 그는 예배 시작 전 방영된 천부교 소개 영상을 통해 신앙촌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해소되었다고 했다. 영상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지체 없이 ‘자유율법’이라 답했다. “신앙촌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지 알고 싶었는데요. 자유율법, 양심에 가치를 둔다는 말이 가슴에 진짜 와닿는 거예요. 사실 일반 사람들은 양심을 생각하며 살지 않거든요. 양심이 삶의 기준이 된다니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부분을 생각해 보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름처럼 ̒올바르게’ 일하려 노력 정 대표가 5분 만에 지었다는 그의 회사명은 ‘올바른 컴퍼니’. 양심껏 바르게 일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부르기도 좋고, 기억하기도 쉽고, 회사의 철학까지 담긴 ‘올바른’이라는 이름이 딱이더라고요. 이름 때문이라도 저와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름과 달리 엉망으로 시공하면 얼마나 실망스럽고 부끄러워요. 그 때문이라도 최선을 다해야죠.” 가치롭고 새로운 도전 해보고 싶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추구한다는 정영호 대표의 새해 계획을 들어보았다. “가치롭고 새로운 도전이 목표입니다. 지금도 다양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회사의 성장을 위해 새롭고 규모가 큰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것이 바람입니다.”

교양

사실을 얘기해도 죄라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판결

사실을 얘기해도 죄라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합헌’ 판결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의 한 판결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습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는 판결이었는데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무엇이길래 헌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은 것이며, 이슈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적시(摘示)’는 ‘지적하여 보인다.’는 뜻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쉽게 말하면 사실을 지적해 보여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죄를 말합니다.(형법 제307조 제1항) 사실 그대로를 말해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말했을 때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LH 부동산 투기 사건의 제보자처럼 공익을 위해 사실을 알린 사람은 명예훼손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나도 명예훼손범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왜 중요할까요? 인터넷과 SNS로 자유롭게 정보를 공개하는 요즘, 누구나 ‘사실 적시’로 명예훼손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번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이 모 씨도 반려견을 키우는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병원에서 반려견을 잘못 치료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 사실을 SNS에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이 법률이 정말 헌법에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 헌법에 맞을까, 안 맞을까? 그렇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법률이 헌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판단할까요? 이것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법률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가? 아니면 지나치게 많이 제한하는가?를 기준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는 것이 국민을 지나치게 옭아매는 법인가,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를 과잉금지원칙이라고 하는데요, 이 원칙에 따르면 입법 목적이 정당해야 하고 방법이 적절해야 하며 제한을 최소화하고 법익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모든 원칙이 지켜진 법률이라면 헌법에 맞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5:4로 합헌 판결! 이번 사건은 헌법 재판관 9명 중에서 합헌 5명, 위헌 4명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법률이 헌법에 맞게 제정됐으며 국민을 지나치게 옭아매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그 이유를 문답식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문) 사실을 말해도 죄가 된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까요? 답) 그렇지 않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발언은 처벌되지 않으니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으니까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죄가 되지요? 답) 사실을 말해도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죄가 됩니다. 이번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된 이 모 씨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자신이 피해를 입은 동물병원에 대해서 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공개해서 사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없다면 이처럼 사실 공개를 복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겠지요. 문)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답) 명예를 보호할 방법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인터넷이나 SNS처럼 사실을 공개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표현의 전파속도는 빨라지고 효과도 점점 커지는데,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예는 한번 훼손되면 완전히 회복되기 어려운데 훼손할 방법은 많고 구제할 방법은 거의 없으니까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법률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명예훼손을 막는 안전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이 많은 국민들의 명예를 보호하고, 사실 적시라는 가면을 쓰고 부당하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이들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헌법재판소란? 국민들은 법에 따라 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법이 잘못됐다면 어떡할까요? 법도 헌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데요. 그 재판을 하는 곳을 ‘헌법재판소’라고 합니다.

각국에서 잇따른 성당 화재 … 방화 가능성 높아

리처드 도킨스 신작 《신, 만들어진 위험》 출간

“그냥 한글 만들어진 날 기념하는 거 아냐?”알고 보면 더욱 자랑스러운 한글과 한글날

백신 꼭 맞아야 하나요? 궁금한 5가지

백신 꼭 맞아야 하나요? 궁금한 5가지

지난 2월 26일,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는데요. 이는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지 약 1년여만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비롯하여 총 5종의 백신을 확보했는데요. 각 백신의 특징들을 표로 정리하였습니다. ▣ 백신을 맞아야하는 이유 지난해를 돌아보면, 방역 수칙 준수와 거리두기만으로는 팬데믹이 종식 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전염병이 종식되려면 ‘집단 면역’이 형성돼야 합니다. 집단 면역이란 ‘집단 내에서 면역을 가진 개체의 수가 많아질수록 면역이 없는 개체가 감염될 확률도 낮아져 집단 전체의 방역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인데요. 전문가들은 집단 면역을 가지려면 많은 수가 코로나에 걸렸다 완치되어 자연적으로 면역을 갖게 되거나 많은 수가 동시에 백신을 맞는 수 밖에 없다면서 적극적인 백신의 접종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 유례없는 속도의 백신 개발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는 ‘2020년 올해의 과학 성과’중 하나로 ‘코로나19 백신’을 선정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은 개발에 착수한 지 1년도 안 돼 일부 국가에서 첫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다른 백신 개발 속도에 비해 10배나 빠른 속도입니다. 사이언스지는 “유례없는 경쟁과 협력이 백신 개발의 촉매”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개발 기간이 짧은 만큼 부작용에 대한 검증은 아직 미흡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아스트라제네카 부작용 논란 아스트라제네카 뿐만 아니라 백신을 접종하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근육통, 두통, 발열, 오한, 메스꺼움 등인데요. 대개는 수일 내 회복됩니다. 그런데 아스트라제네카만 유독 부작용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스트라제네카는 임상 실험 도중 ‘횡단성 척수염’이 발생해 실험이 중단된 적이 있었고, 접종 후에도 혈전(혈관에 피가 굳어 덩어리진 것)이 생기는 증상이 다수 보고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접종을 중단하기도 했었는데요. 세계보건기구와 유럽의약품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이 혈전 발생과 관련 없다는 공식 발표를 하면서 접종은 재개되었습니다. ▣ 왜 백신 선택권이 없죠? 여러 종의 백신이 있다면 누구나 가장 예방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없는 백신을 맞고 싶을 것입니다. 이에 방역당국은 접종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 하고, 가장 빠른 시일 내 최대한 많은 국민들에게 접종하기 위해 개인의 백신 선택권은 인정하지 않기로 발표했습니다. 이는 미국, 유럽 등 백신 접종을 시작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선택은 못해도 거부는 가능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섣불리 접종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백신 접종에 따른 이익이 부작용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면, 개인적으로 접종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병원장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화이자’ 백신을 먼저 맞아 논란이 되었는데요. 우리는 백신을 선택할 수 없으니, 개인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하여 접종을 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하겠습니다.

코로나 1년 결국… “올해 전 세계 집단면역 형성 힘들 것”

“이탈리아 4세 남아, 작년 11월 이미 코로나19에 감염”

새로운 위협 ‘코로나 변종’ ,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