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천부교 여 교역자 시무식

2019 천부교 여 교역자 시무식

새 전환점 되도록 노력해야 퇴임식, 전도 방향 발표 등 천부교는 7일, 신앙촌에서 천부교 여 교역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해의 결의를 다지는 시무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번 시무식은 우수 교역자 중창을 시작으로 여성회, 학생회 교역자의 새해인사 및 다짐, 데이터로 보는 전도, 교역자 퇴임식, ‘그리운 하나님’ 영상 시청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성회 최성례 관장(서부 총무)은 신년사를 통해 “특전대 영소비조합의 출범이 교단 발전의 혁신적인 전환점이 되도록 정성을 기울이고 복 받는 한 해가 되도록 충실히 살아내자”고 당부했다. 학생회 서정인 관장(남부 총무)은 “맑은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매일 살아있는 정신과 절절한 노력으로 알찬 결실을 맺기 위해 힘껏 달릴 것”을 다짐했고, 하지현 관장(중부 총무)은 “하나님 깊이 의지하며 진실한 노력으로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 은혜를 깊이 아는 알찬 열매 많이 맺는 학생 관장이 되도록 힘차게 뛰겠다”고 말했다. 특별 순서로 8명의 퇴직자에 대한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권옥순 퇴임 관장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은혜로 이끌어주셔서 그동안 즐겁게 교역생활을 했습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날 시무식에서는 데이터를 통해 지난해 전도 활동을 돌아보고, 2019년 전교인 전도의 해 “성신의 은혜 힘차게 전하세” 슬로건이 발표되었다. 올해는 교인들은 물론 새교인들 모두 하나님 은혜를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단계별 신앙교육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2019 전국 여성회 임원 임명식

2019 전국 여성회 임원 임명식

“온 세상 끝까지 다 전하라”  전도와 사업의 사명 8일, 신앙촌에서 2019년 전국 여성회 임원임명식이 있었다. 임명은 중, 서, 남부 연합회와 기장신앙촌 연합회 임원, 도관 임원, 각 중앙 여성회장순으로 호명되었다. 최성례 총무는 “부지런히 일하고 봉사하여 모범이 되는 것이 임원의 역할입니다. 2019년은 어느때보다 힘차게 도약하여 알찬 결실을 맺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중부 연합회장 김순덕 권사(덕소교회)는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라고 했다. 서부 연합회장 정송락 권사(인천교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바 본분을 다하며 구원을 향해 힘차게 박차고 나가는 감람나무 가지가 됩시다”라고 했다. 남부 연합회장 이순희 권사(기장교회)는 “허락해주신 귀한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도록 더욱 맑게 살고 감사히 일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라고 했다.

男, 도관 책임 교역자 시무식 개최

男, 도관 책임 교역자 시무식 개최

전교인, 1인 1명 전도 운동 지난 1월 3일, 신앙촌에서 남성회 각 도관 책임 교역자 시무식이 있었다. 시무식은 김상문 중부 총무의 신년사, 음악 순서, 신년 계획 발표순으로 진행되었다. 김상문 중부 총무는 신년사를 통해 “하나님 앞에 더욱더 간절한 기도와 맑은 생활로 반드시 구원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교역자가 되자”며 특히 “전교인이 화합하여 알찬 열매를 맺는 2019년이 되도록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2019년 남성회 신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남성회는 올 한 해 전교인 1인 1명을 전도하는 해로 정하고 중, 장기 전도 계획의 세부 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모인 교역자들은 신년을 시작하는 1월 20일 남성회 축복일부터 모든 교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전도 활동에 힘쓰자고 했다.

신앙촌 어르신들, 2019년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신앙촌 어르신들, 2019년 새해에도 건강하세요~

여청, 대학생 송년 모임 가져

여청, 대학생 송년 모임 가져

시온의 든든한 일꾼 되자 특강, 티타임, 행운권 추첨 등 신앙촌에서 12월 15일 전국 여청, 대학생 송년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는 권민송 관장(여성협회)의 ‘가톨릭의 실체’에 관한 특강이 있었다. 악행을 선과 평화로 포장해온 가톨릭의 역사를 살펴보며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레스토랑에서 티타임과 선물증정식이 있었다. 한 해 동안 다양한 행사 진행과 봉사 활동에 힘쓴 여청, 대학파트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김선희 관장(소사교회)은 “교단에서 가장 젊고 힘 있는 대학생, 여청들이 언제나 깨어있는 자세로 맑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23일 입사생 대학부도 레스토랑에서 송년 모임(사진)을 가졌다. 올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새해에는 더 많은 분야를 배우고 정진하여 시온의 든든한 일꾼이 되자는 취지였다. 끝으로 각자의 각오 발표와 함께 행운권 추첨도 있었다. 임찬 씨는 “대학부 친구들과 웃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019년 더 힘차게 달리는 입사생 대학부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

지난 12월 23일, 남성회 축복일 예배가 신앙촌에서 있었다. 이날 방영된 하나님 말씀의 주제는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였다. 예배를 인도한 정주현 관장(소사교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이슬성신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 진심성, 간절성을 보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십니다.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앞에 뜨겁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생활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라고 설교했다. 이어 송년 음악순서로 시온 관악단의 연주, 기장교회, 서대문교회 합창단의 특순이 있었다. 끝으로 하반기 두부 사업 시상식(사진)이 있었다. 우수 지역은 목포, 일광, 구리, 덕소, 수원, 소사, 마산 지역, 사업우수자는 김선출(소사), 최우영(서대문), 김인곤(인천), 이숙주(서대문), 박재덕(덕소) 팀장이 수상했다. 한편, 축복일 전날 22일에는 남성회 소비조합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위한 송년음악회와 수원지역 사장단이 준비한 다과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다사다난했던 2018년을 되돌아보고 식품사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의견 및 정보를 교환하는 알차고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가슴 뛰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자”

교역자 인사

알찬 계획과 실천으로

생각과 행함, 정신이 달라져야

2019년 1월 20일 남성회 축복일

제1회 신앙촌 브랜드 및 제품홍보 UCC 공모전

알쏭달쏭 ‘낱말퀴즈’

신앙촌식품(주), 런 공식 카페 개설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실 때 기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어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하실 때 기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어

저는 태어났을 때 몹시 병약해서 소아과 의사이신 아버지께서도 살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낙담할 정도였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가졌을 때 폐병을 앓으셨기 때문인지 저는 폐와 기관지가 약하고 해수병을 달고 살아서 천방지축 뛰어 놀 나이에도 언덕을 오를 때 숨이 차서 한참 쉬었다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때 살았던 서울 흑석동 2층 집은 연탄 보일러였는데 연탄가스를 조금만 맡아도 침대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니 여동생은 아침마다 “엄마! 언니가 또 죽었어!” 하고 소리쳤습니다. 중학교 진학할 때 아버지가 건강이 더 나빠지면 공부도 못하니 1년을 쉬라 하셨지만 저는 쓰러져도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입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이던 1958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설교하시는 하나님 바라보고 있는데  강대상을 탕탕 치시자 불덩이가 나와 가슴팍에 떨어져 뜨거워 견딜 수 없어 뜨거움 가시자 목으로 단물이 넘어와  당시 저는 부모님을 따라 원효로제단을 거쳐 마포 이만제단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효로제단과 이만제단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강대상을 탕탕 치시는 순간 거기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나와 제 가슴에 푹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뜨거운 느낌이 가시고 나자 입 안에 달콤한 물이 생기더니 꿀꺽꿀꺽 목으로 넘어왔고, 이튿날 학교 가서도 목으로 자꾸 달콤한 물이 넘어와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인 분들 말씀이, 예배 시간에 불이 떨어지고 뜨거움을 느낀 것은 불성신을 받은 것이고 달콤한 물이 넘어온 것은 생수가 통하는 체험이라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몸이 좋아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 계단을 오를 때 웬일인지 숨이 차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처럼 한달음에 올라가면서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키만 멀대같이 크고 볼품없이 말랐던 몸에 시간이 갈수록 포동포동 살이 올랐고, 어머니는 정말 예뻐졌다며 네가 은혜 받아서 사람이 됐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보다 먼저 아버지도 전도관에 다니면서 건강을 찾으셨습니다. 이북에서 철도병원에 근무했던 아버지는 왕진 가방 하나만 들고 월남해 서울에 병원을 열기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에 파묻혀 사시느라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신다며 어머니가 크게 걱정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열 한살이던 1955년이었는데, 마침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가면 불치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가 보신 것이 저희 식구가 전도관에 다니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버지는 원효로전도관에 다니며 박 장로님께 안찰을 자주 받으셨습니다. 학자 타입의 아버지는 늘 온화한 표정으로 말씀이 없으셨는데 안찰 받고 오신 날은 특히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안찰 받은 후로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와서 몇 시간씩 책을 읽어도 몸이 가볍고 좋다며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에 파묻혀 사느라 건강이 안 좋아지셨는데 하나님께 안찰 받고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와서  오래 책을 읽어도 몸이 가볍다고 기뻐하셔 부모님이 매일 새벽예배 드리며 열심히 전도관에 나가시니 5남매 저희 형제들은 자연히 따라 다녔습니다. 새벽 어스름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이만제단에서 울리는 음악 종소리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은지 천국에서 울리는 것 같았고, 예배 시간 어른들 틈에서 손뼉 치며 찬송 부를 때는 가사를 잘 모르면서도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주일학교 예배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직접 나오셔서 설교 말씀을 해 주셨는데, 무슨 말씀을 들은 기억보다는 그때 분위기가 생생히 떠오릅니다. 단상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운 아이들과 사랑이 넘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시던 하나님의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이만제단 2층 단상 옆 학생 성가대 석에서 아래층 예배실을 내려다보는데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것이 보여서 손바닥을 펼쳐 보면 손은 전혀 젖지 않아 예배 시간에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기도 해 그 후 고등학교 시절 이만제단에서 학생 성가대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체험을 했습니다. 성가대 석은 2층 단상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래층 예배실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서 손바닥을 펼쳐 받아 보면 손은 전혀 젖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이슬비가 내리는 것이 보였고,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폭포수 같은 성신은 이만제단 개관식 때 사진에 찍혔던 이슬성신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만 명이 앉을 수 있어서 이만제단이라고 불렸던 예배실은 매 주일 꽉꽉 들어차서 발 하나 넣고 옮길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 사람씩 머리 위에 안수하시며 지나가실 때 보면 날아가시는 것처럼 순식간이었습니다. 옆 사람끼리 무릎이 닿도록 앉아 있는 사이를 지나가자면 사람들의 발이나 무릎을 밟으실 만한데 전혀 거치는 것 없이 훌훌 날아가시는 듯한 모습에 눈을 못 떼고 바라봤습니다. 하루는 안수하시는 하나님을 한참 바라보다 어느 순간 예배실에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점점 짙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나중에는 옆자리 성가대원도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예배실이 안개에 폭 싸인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안개처럼 뽀얗게 은혜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슬비처럼 은혜가 내릴 때, 하나님께 안수를 받을 때, 뽀얀 안개 같은 성신에 싸여 있을 때 그 기쁘고 즐거운 마음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안수하시는 하나님을 보는데 예배실에 점점 뽀얀 안개가 생기더니 옆자리 사람이 안보일 만큼 짙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표현할 길이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삼촌이 계시는 적십자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병명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검사하자 백혈병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병명조차 생소해서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몰랐는데, 건강하고 활동적이셨던 어머니가 얼마 못 사실 거라는 선고는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이북에서 맨손으로 피난 나온 후 어머니는 집안을 일으키느라 억척같이 일하셨고, 오로지 자식들 잘 먹이고 입히는 생각만 하셨습니다. 어머니 그늘 아래 부족함 없이 살던 저희 형제는 3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평생 병원 일만 하셨던 아버지도 어떻게 장례를 치르고 준비할지 막막하신 것 같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명물로 씻기니 얼마나 곱고 예쁜지 탄성이 절로 나와 선홍색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감돌고 피부가 환히 피어 처녀 시절 모습같아 당시 저희 가족은 집과 가까운 흑석동전도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교인 분들이 찾아와 한식구처럼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장례 때 저희 가족이 입을 상복을 손수 지어 주셨고 관 위에 덮는 꽃도 밤을 새워 정성껏 만드셨습니다. 입관예배 드릴 때 힘차게 찬송하는 동안 장례반 어른들이 어머니를 생명물로 씻기셨는데, 다 씻긴 후 봤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곱고 예쁘신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코가 오똑하고 얼굴이 갸름한 미인형이셨던 어머니는 피부가 너무 곱고 환하게 피어서 처녀 시절 어머니가 저런 모습이셨을까 싶었습니다. 루주를 바른 듯한 선홍색 입술은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고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지만 미소 지으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차차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곱고 예쁘게 핀 모습과 밝고 편안한 집안 분위기를 느끼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아직 철부지 같았던 제가 처음으로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은혜 받은 교인끼리는 한 가족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보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항상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에 지친 몸으로 시부모님 저녁상까지 치우고 나면 저는 사랑채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충북 보은으로 시집가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냈습니다. 내 손으로 물 한 그릇 떠 본 일 없이 컸는데 시집에서 밀어닥치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버거웠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하고 농사일에서 벗어나면서 살기가 수월해졌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4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무렵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을 때였습니다. “거기는 찬송이 들리는 집이에요.” 소사리 큰길 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사리전도관이라는 곳이 바로 위에 있어서 새벽마다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과연 새벽부터 찬송이 들리는데 왠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전도관에 가게 된 것은 매일 집에 들르시던 전도관 권사님 때문이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은 신앙촌 메리야스와 속치마를 판매하셨는데 시중에 파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서 애용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간장도 맛있어서 제가 이웃들한테 다니며 대신 팔아 드리니 자연히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권사님이 전도관에 같이 가 보자 하셔도 “저는 신앙촌 물건만 팔아 드릴게요. 전도는 하지 마세요.” 하며 가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셨을 때 거절을 못 하고 따라나선 것이 전도관에 나간 계기였습니다. 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예배실 가득히 모여 있었고, 다들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좋아서 새벽예배와 수요일예배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섯 살짜리 작은아들을 데리고 수요일예배에 갔을 때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아…” 하는 찬송을 부르는데 처음 듣는 찬송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울고 나니 입고 있던 치마 한 폭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다 큰 아들이 “그때 엄마 치맛자락이 흥건하도록 우셨어요.” 하고 기억하는 걸 보면 많이 울기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눈물에 씻겨 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교인들 권유로 예배실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지만 그 후로 누가 뭐라지 않아도 예배에 안 빠지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저를 보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은혜일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확실하게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 센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고 계속 맡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서울 동대문에 있는 신앙촌 센타에 갖가지 신앙촌 제품이 진열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을 도와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던 저는 센타에 처음 가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서 물건 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하며 향기를 맡았는데, 건물 어딜 가나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사러 온 분들이 예쁜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기에 화장품 냄새인가 했지만, 그분들 곁을 지나가 보니 그 향기는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리 맡아도 더 맡고 싶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물건을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인들이 이야기하던 ‘향취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되는데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농동전도관 예배 때 멀리 계씬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눈 마주치는 느낌 들어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나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운 불이 사라지더니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서울 오류동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생명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하필 그때 소사리전도관에 생명물이 없어 몹시 안타까웠는데 대신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신앙촌 간장이 있어서 딸아이가 받아 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축복받은 간장을 타서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옆구리가 터지는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도 저를 보고 방금 전까지 허리를 못 펴고 아파 하더니 이제 괜찮으시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이, 처음 왔을 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낫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퇴원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전농동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날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니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제일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어 단상을 올려다 봤을 때 하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배실이 워낙 넓고 단상이 3층에 있어서 저 멀리 계신데도 그 순간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며 눈이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활활 타는 불이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자 그 불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올 때는 몸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언제 복막염을 앓아서 그렇게 아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몹시 약해서 몸져눕는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잘 못 먹고 약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늘 골골하며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큰딸이 엄마가 안 아픈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복막염이 깨끗이 나은 뒤로 병원과 약을 모르고 살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건강해진 몸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나 믿어 주고 반겨 주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즐거웠고,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보름에 한 번씩 소비조합 축복일이 있어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85년 무렵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얹으시자 그리 아플 수 없어 손 떼시자 눈부터 가슴까지 시원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연신 웃음이 나 그날은 눈안찰을 해 주시는 날로 안찰 받기 전 예배실에서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눈을 감고 찬송하다가 갑자기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찬송에 열중하는 사람들뿐이고 그렇게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너무 떨려서 계속 순서를 양보하다가 제일 끝으로 가게 됐습니다. 안찰 받으면 내가 죄지은 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씻어 주시는 기회이니 꼭 안찰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자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그리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손을 떼셨는데 그 순간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부터 머리,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가 씻어지면 이렇게 좋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직접 안찰을 받고 보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1998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일하며 신앙촌 사람들과 축복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 거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휴게실에 찾아오던 아이들이 20년이 지나 어엿한 신앙촌 사원이 된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따라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까 싶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맙고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 영광된 날에 기쁨으로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신앙촌 신화는 누구도 부인못 할 꿈의 결실”

종교학이란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고 안 믿는 사람들은 이렇더라’ 고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정진홍 교수를 서울대학교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1999년 6월 MBC가 천부교에 대한 방송을 할 때 게스트로 나왔던 정교수는 “당시 구호물자 나눠먹기 싸움에 바빴던 기성교회는 신앙촌을 비방할 입장이 아니다” 라고 직설적으로 쏴 붙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한국 종교학계의 태두이다. “바른 말을 하고 기성교회에서 ‘이단’ 편든다고 공격받지 않았습니까?” 하는 질문에 정교수는 “나는 학자적 양심에 따를 뿐이지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특히 6. 25이후의 불모지에서 건설한 천부교의 신앙촌 건설 신화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당시는 한국의 모든 공동체가 파괴된 상황이었지요. 가족이란 공동체도, 이념공동체도, 종교공동체도 모두 갈라졌습니다. 하나도 깨지지 않은 것이 없었죠. 그때 기성교회는 구호물자 가지고 싸우고 있는 동안에 새로운 신앙 공동체운동으로 신앙촌이 건설되었다고 봅니다. 신앙촌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건 굉장한 일이거든요. 요즘에 말하는 키부츠나 원시공동체를 그곳에서 꿈꾸셨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로 순수한 꿈이 이상화 된 것으로 그 순수성과 창조성은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학생이던 정교수는 신앙촌운동이 안팎의 거센 저항에 휩싸이자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여러번 신앙촌을 방문하고 그 순수성을 확인한 바 있었다고 했다. 생로병사에 관한 정확한 이론 있어야 참종교 신앙의 본질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야 신앙촌 운동이 모든 종교의 궁극적 대안 되기를 -참 된 종교는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종교도 종교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새로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이 마치 왕조사와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왜 종교가 없어지는가?’ 하고 연구해 봤습니다. 결론은, 종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균형있게 제시해 줘야 하는데, 첫째는 근본적인 문제들로써 생로병사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왜 괴로움 속에 살다가 어디로 가느냐’ 하는데 대한 명확한 이론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당대의 현실적인 문제들로 예를 들면 인간복제의 문제, 장기이식이나 공해의 문제, 낙태, 뇌사 문제 등으로 이전에는 없던 문제지만 그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줘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균형 있는 해답을 제시할 때야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참된 종교라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여 세인의 신뢰를 받아야 하며 그것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기독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천부교를 종교 현상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새로운 종교의 생성에 대해 설명할 때 말하는 연원론적(淵源論的)으로 볼 때 천부교와 기독교는 세상 끝날까지 갈등관계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말이나 교리보다도 천부교가 다른 종교의 대안(代案)으로 존재하는가가 문제라고 봅니다. 그 대답이 없이 도전만으로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연원론적으로만 설명할 때 새로운 종교가 가진 창조성을 못 보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이게 연원론이 가지는 한계인데 천부교는 바로 그것을 문제시하여 끝내 다른 교회에서 만족하지 못한 걸 여기서 충족함을 얻고, 절에 가서 만족 못한 걸 여기 와서 충족함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결과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촌운동이 모든 종교의 궁극적 대안이 돼 주었으면 합니다.” 정교수는 또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 무수한 종교가 소멸되고 생성됐다고 설명하면서 예를 들어 이집트의 태양숭배교를 들었다. “태양숭배교는 이집트 역사속에 3천년간 존속했던 종교로서 3천년간 나고 죽은 많은 사람들의 규범으로 지배했으나 그 후 소멸되었지요. 나는 어느 신학교에 초빙되어 강연하면서 ‘기독교가 겨우 2천년 됐는데 언제 없어질 줄 아느냐’ 라고 말하였다가 맞아 죽을 뻔하였습니다.” 라고 회상하였다. “기독교는 언제 소멸될 것인가” 신학교서 종교 역사 강의 하다가 청중에게 맞아 죽을뻔 하기도 또 탁명환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정교수는 얼굴 가득히 멸시와 부정의 빛을 나타냈다. “그 사람은 학자가 아니에요. 그 사람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정교수는 끝으로 스승 장병길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면서 파안대소하였다. “종교를 지적으로 연구하는 종교학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을 얻으려면 신도가 되어라.” 곧 정년을 맞아 연구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정교수에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중복의 한여름 햇살이 창 밖의 신록 위에 쏟아지는 그의 아담한 연구실 안은 주인의 겸손과 정열을 닮은 지적 정밀(靜謐)만이 흐르고 있었다. 정진홍 교수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 유니언 신학교 대학원, 샌프란시스코 신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종교현상학을 전공했다. 종교학 박사.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기성교회 부흥집회(하) 중앙교회, 문창교회, 외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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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전쟁보다 무서운 전염병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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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반도 비핵·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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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광신(狂信)의 역사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전도관 신앙 운동의 깊이에 놀라”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2019년 새해에는

2019년 새해에는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2019년 기해년 시작을 알리는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올랐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새해 첫 일출과 희망찬 2019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계획과 소망을 담았습니다. 신년사 – “좋은 결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합시다” 기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이 땅에서 전무후무한 하늘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크신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종교가 있으나 구원의 바른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하늘의 뜻과는 먼 거리에서 허공을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뵙고 구원의 참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썩지 않는 영원한 세계의 진리를 깨우쳐 주셨고 이슬성신의 권능으로 영혼을 맑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차원 높은 자유율법을 지키며 밝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가르쳐 주셨기에 저희는 그 법도 안에서 선을 행하며 살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가 인류 구원을 외친다 해도 신의 권능을 보여 줄 수 없다면 그 종교는 종교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허상일 뿐입니다. 그렇듯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면 영혼이 온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현상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무소불능하신 신의 권능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성신의 역사 속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할 수 있도록 애쓰고 힘써야 할 때입니다. 올해는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실행으로 좋은 결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겠습니다. 참으로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금 감사드리며 희망찬 새해를 출발합시다. 여성회- 책임 의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결과 이뤄내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기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가를 알기에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과 정신을 새로이 가지려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바라고 향하며 가고 있는지, 구원을 향한 진실된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근본이자 복 받는 비결은 진실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부복하며 간절히 구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두 번째로 주어진 일을 쉽게 포기하거나 혹은 목표를 낮추어 편하게 가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점검을 해봅니다. 책임 의식과 주인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우리에게 책임 의식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책임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 만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행동으로 움직이며 실천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과를 이루어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019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구하며 다시 한번 진실된 노력과 땀을 흘리는 참된 가지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회-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학생관장 새해 달력을 보며 노트를 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다져가며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던 입사생에서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맡은 아이들을 챙기며 이 길을 가야 하는 관장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해보다 새로운 다짐이 필요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 교회 나가기를 게을리하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어느덧 그 학생이 시온실고에 입학하였고, 입사 10주년을 맞았고 지난해 말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장님들의 손을 거쳤을까?’ 관장님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죄송함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우리 교회에 있는 꼬마들이 커서 식품고에 입학하고 입사생으로 살면서 관장으로 나오게 된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런 기분이 전도의 기쁨이라는 것일까요? 상상만 했는데도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 전도는 가장 보람되고 복 받을 일’이라는 말씀을 노트 첫 장에 씁니다. 그리고 2019년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관장이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학생회-‘꼭 전도하고 싶다’는 간절함 생겨 항상 새해는 설레고 새롭지만 교역자 직분을 받은 2019년은 저에게 더욱더 새롭고 의미 있는 새해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 신앙신보에 실린 교역일기 중 시무지에서 만난 아이들이 잘 자라 시온의 든든한 입사생이 된 모습을 보니 전도의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고 하신 어느 관장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교역자가 되니 길을 가다가도 예쁜 아이들만 보면 ‘꼭 전도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경주교회에 와보니 교회에 다닌 지 2년, 3년 된 아이들이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이며 말씀 공부에 귀를 기울이고 찬송 부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처럼 바르고 예쁘게 자라서 튼튼한 열매가 될 수 있도록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서툴고 어렵지만 가장 보람되고 복된 일은 “전도”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처럼 예쁜 아이들을 전도해서 열매 맺을 수 있는 2019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성회-전교인이 1명씩 전도하고 유년 전도에 더 힘쓸 것 새해가 밝았습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9 전교인 전도의 해를 맞아 남성회에서는 첫째, 전교인이 1명씩 전도하기 운동을 실천하겠습니다. 매주일 교인들이 한 분씩 초대하는 것입니다. 매주 정성을 들여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보내주실 것이고 나날이 부흥 발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심방을 통한 전도입니다. 요즘 구역을 나누어 관장님들이 쉬고 있는 교인들을 만나는 등 특별 전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속해서 하다 보면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올해는 유년 특별 전도의 해로 정하고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굵은 가지로 자라서 시온의 일꾼이 된다면 그것만큼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역자는 물론 전교인이 노력하고 애써서 아이들이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부교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받는 사람들이 하나가 될 때 천만, 억만의 힘을 낼 수 있다고 하셨으니 올해는 더욱더 화합하여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소비조합-새해, 꼼꼼한 계획과 짜임새 있는 실천으로 신년계획을 세우며 지난해의 아쉬운 점을 돌아봅니다. 시간을 쪼개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많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놓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더욱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서 시간을 짜임새 있게 채워가려합니다. 먼저 마트 시음행사를 늘려 새로운 고객을 많이 만날 계획입니다. 요즘도 런에 대해 잘 모르는 고객들이 종종 눈에 띄어서 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밝고 친절하게 제품을 설명해서 요구르트 런을 고객들 기억 속에 건강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싶습니다. 전도에도 작년보다 더 힘쓰겠습니다. 그동안 전도의 날이나 큰 절기 행사에만 지인들을 초대했지만, 이제는 평소에도 꾸준하게 연락해서 주일 예배에 함께 참석하려고 합니다. 지인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일요일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안으로 가득 차는 날이 되도록 전도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2019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 큰 기쁨과 감사함으로 달리는 소비조합이 되겠습니다. 입사생-“매 순간 최선의 노력으로 달리겠습니다” 2019년 1월 1일. 새벽예배 후 입사생 언니, 동생들과 다 같이 모여 찬송가 ‘시온의 영광’을 부르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저에게 지난 2018년은 변화와 바쁨의 해였고, 입사 주년 행사를 통해 입사 초의 초심을 다시금 깨닫는 감사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후회와 아쉬움만 가득한 저를 보면서 단순히 감사함을 느끼고 바쁘기만 한 생활이 전부가 아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까 고민하던 중, 주어진 일에 조금이라도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과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자세, 매 순간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 이것이 2019년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입사생이 되자’를 모토로 삼고 실천하려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마음으로 노력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입사생이 되고 싶습니다.

“런, 예비 엄마에게 꼭 필요한 유산균 음료지요”

“런, 예비 엄마에게 꼭 필요한 유산균 음료지요”

아이를 위한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부모들에게 많이 알려진 ‘요구르트 런’이 예비 엄마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개원한 지 올해로 20년이 된 인천 W여성병원에서는 산모들을 위한 간식으로 요구르트 런을 제공하고 있다. W여성병원 박소연 영양사는 예비 맘의 건강을 위해 유산균 음료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최근 임산부 필수 영양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이에요. 유산균은 장내 유해균을 억제하고 유익균을 증식시켜 장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임신 후기에 장이 압박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소화불량을 완화하고 철분제 복용으로 변비가 생겼을 때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촉진시키는 것 역시 유산균이 지닌 장점이죠.” ◆ 런은 처음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연수청에서 영양사 교육이 정기적으로 있는데 몇 년 전 요구르트 런 시음회가 있었어요. 그때 요구르트 런, 신앙촌간장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런을 시음해보고 ‘참 건강한 제품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병원으로 홍보를 오셨더라고요. 유제품에 늘 관심이 있었는데 홍보를 오셔서 무척 반가웠어요. ◆ 런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변비로 고생하시는 산모나 환자분들이 많아요. 평소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섬유소가 풍부한 음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산균 섭취는 필수예요. 또 임산부나 수유부가 먹는 유산균 음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첨가물 사용 여부예요. 임산부가 먹는 모든 것은 태아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산균의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첨가물은 장기 섭취 시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요구르트 런은 믿을만한 제품이에요. ◆ 요구르트 런을 드신 산모들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산모들 간식은 점심, 저녁 하루 2번 제공되는데 점심에 수제로 만든 간단한 음식에 요구르트 런을 함께 드리고 있어요. 간식인데 열량까지 높으면 부담스럽잖아요. 그런데 런은 무지방, 저칼로리인데다 맛이 담백해서 부담이 없다고 다들 좋아하세요. 영양은 물론 자극적이지 않은 깔끔한 맛이어서 산모들 간식으로 제격이에요. 직원들 식사에도 런을 드렸더니 ‘달지 않아서 좋다’, ‘맛있다’, ‘런 병이 예쁘다’, ‘더 먹어도 되냐’면서 더 가져가시는 분도 많고 반응이 참 좋아요. 변비로 고생하는 산모, 환자 충분한 수분, 섬유소 풍부한 식단과 함께 유산균 섭취 필수 ◆ W여성병원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요? -W여성병원의 일반 환자식, 산모식, 조리원식, 직원식까지 모두 총괄하고 있습니다. 환자식의 경우만 해도 일반식, 당뇨식 등 종류가 많아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모든 것을 고려해서 나가야 하니까 신경 쓸 것이 참 많아요. 하지만 환자, 산모들의 건강을 위해서 제품 하나 선택하는 것도, 조리하는 방법 하나하나도 정말 예민하게 고려를 합니다. ◆ 영양사로서 기쁘고 보람될 때는 언제인가요? -매일 라운딩을 하면서 환자분들이나 산모분들께 식사 간은 맞는지, 뭐가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 늘 여쭤보고 체크를 해요. 그런 점을 들어야 식단을 짜거나 조리를 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그럴 때 “오늘 식사, 간식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며 인사해 주시는 분들 말에 힘이 나요. 직원분들도 “오늘 식사 최고예요”라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보람되고 기쁩니다. ◆ 끝으로 신앙촌식품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처럼 늘 건강한 제품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환자나 산모들에게 좀 더 나은 영양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영양, 맛은 물론 새로운 메뉴 개발에도 더욱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구르트 런, 베이비&키즈 시장 본격 공략 나서다

요구르트 런, 베이비&키즈 시장 본격 공략 나서다

베이비&키즈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유산균 음료 ‘요구르트 런’ 서울, 대구, 인천 등 전국에서 열리는 베이비페어 행사에서 요구르트 런이 어린이를 위한 건강음료임을 알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신앙촌식품(주) 베이비페어팀에게 2018년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달린 해였다. 송년을 맞아 그들의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올해 베이비페어팀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요, 언제, 어떻게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노소영(신앙촌식품 음료공장): 요구르트 런은 아이들에게 적합한 음료임에도 제품에 대한 인식, 홍보 부족, 신앙촌상회 대리점 중심의 판매로 장년층 음료로 인지되어 있어 판매 시장 확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요구르트 런이 영유아를 위한 건강 음료임을 알리고 시장을 공략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고민하던 중 ‘베이비페어’라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시장조사 끝에 2017년 8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베이비페어를 시작으로 2018년 올해도 전국에서 개최되는 베이비페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박민빈(신앙촌식품 영업팀): 행사에 참가하기 전 부산 베이비페어 참관을 하러 갔는데 이미 타 유산균 브랜드들은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타겟층도 베이비와 산모. 요구르트 런의 컨셉과 딱 맞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 베이비페어 행사에 참가하여 어떤 효과가 생겼나요? -노소영: 첫째는 요구르트 런에 대한 정확한 제품 정보 전달로 베이비&키즈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요구르트라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고 둘째는 젊은 육아 맘을 통한 홍보 효과가 컸습니다. 젊은 아이 엄마들은 육아 정보를 SNS에 올리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육아 정보를 통해 제품을 구입했습니다. 또 가정배달 신청을 통한 고정고객 확보도 이어졌습니다. -봉찬아(신앙촌식품 영업팀): 특히 아가들과 젊은 엄마들한테 크게 홍보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아가들이 너무 잘 먹는 모습에 엄마들이 깜짝 놀라워하면서 정기배송 신청을 많이 하였습니다. -박민빈: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정말 많이 생겼습니다. 지속해서 참여하다 보니 ‘런=아기에게 좋은 요구르트’ 라는 인식이 생겨, 지인들에게 추천받고 방문하시는 고객도 있었고 맘카페에서 보고 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김정선(신앙촌식품 영업팀): 백화점, 마트에서 요구르트 런을 알게 되었다는 고객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업팀, 소비조합원들이 각 지역에서 열심히 홍보한 효과였습니다. ‘키즈’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베이비페어 행사 기간 동안 3만 명에서 10만 명 고객 만나 점점 커지는 베이비 시장에서 요구르트 런의 인지도 점점 상승 ◆ 2018년 베이비페어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나 고객이 있나요? -노소영: 베이비페어 행사 첫날 처음 알게 된 요구르트 런과 유산균에 관한 설명을 듣고 구입한 후 다시 방문하셔서 정기배송 신청하러 오실 때, 고객님들이 런을 드신 후 효과에 대해 글을 올려주실 때, 평소 런 판매에 소극적이던 사장님이 베이비페어를 통해 고정고객 배달을 맡게 되면서 베이비페어로 시작된 고객들이 씨앗이 되어 런 판매에 자신이 생기고 희망이 보인다고 말씀해주셨을 때가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습니다. -고은이(신앙촌식품 음료공장): 저는 소사에서 했던 킨텍스 베이비페어가 기억에 남습니다. 관장님부터 사장님, 판매원까지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느껴졌고 하루하루 판매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하루 판매가 끝나면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그날 기억에 남는 고객님 이야기도 서로 하며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박민빈: 아기의 변비가 심해 고민이던 고객이 있었습니다. 런이 소아 변비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을 듣고 런을 구입하셨는데 얼마 후 변을 정말 예쁘게 봤다며 가정배달 신청을 하러 오셨습니다. 고마워하던 엄마 얼굴을 보며 제가 더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 그동안 베이비페어 행사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이 궁금합니다. -김서윤(물류관리부): 직접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해보니 요구르트 런이 얼마나 우수한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런이 얼마나 소중한 제품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고은이: 새로운 시장과 더 큰 시장을 향해 함께 가는 팀이 있어 너무 든든하고 즐거웠습니다. 2019년 베이비페어 행사도 너무 기대되고 새로운 곳에서 열릴 판매도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봉찬아: 베이비, 키즈 시장이 우리에게 매우 적합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트 판촉 시에도 아기 손님이 많은 날은 매출이 좋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베이비페어 행사 전망은? -노소영: 경기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베이비시장은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제품을 찾는 부모들로 시장 규모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 시장 중 하나인 베이비페어는 4일간의 행사 기간 동안 적게는 3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 규모의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준비된 시장입니다. 조금 더 다양한 지역에서의 참여를 기대해봅니다. 또 행사 당일 판매로 시작된 베이비페어는 지금은 정기배송 고객이 많아지면서 행사 매출도 늘고 런 고정고객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기배송 고객이 더 많아지도록 요구르트 런 커뮤니티 카페나 지역 맘 카페 등 온라인과 연계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베이비페어팀의 2019년도 계획은? -노소영: 이제까지는 베이비페어 행사를 신앙촌식품 음료 공장에서 진행하고 본사 물류부, 영업부와 함께 판매를 주도적으로 진행했지만 2019년부터는 각 중앙, 지역에서 직접 행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동안 대도시 중심으로 진행했었는데 좀 더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행사에 참여해 볼 예정입니다. -김정선: 베이비페어 행사를 위한 최대의 팀워크를 구축하여 지금보다 더 탄탄하고 체계적인 활동으로 더 많은 베이비페어 행사에 참여하여 2019년도 런 사업이 성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족처럼 편안한 신앙촌 미용실로 머리하러 오세요~”

“가족처럼 편안한 신앙촌 미용실로 머리하러 오세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 가볍고 산뜻해서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새 출발을 앞두고 머리를 자르거나 새로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신앙촌에도 천부교인들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잡은 미용실이 있다. 이곳의 직원 정덕용, 이점덕, 권은숙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신앙촌 미용실에서 일하는 즐거움 세 사람은 모두 서울에서 일하다가 자원하여 신앙촌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점덕 씨는 “여기서는 가끔 머리하면서 연세 지긋하신 분들의 신앙체험기도 들을 수 있어요. 신앙촌 미용실만의 메리트죠”라며 웃었다. 권은숙 씨도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보람 있고 기쁘다며 “오시는 분들이 고객이 아닌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들은 신앙촌 미용실이 다른 곳과 다른 점은 딱 하나라고 했다. 정덕용 씨는 “신앙촌 분들도 커트, 파마, 염색 다 하시는데요. 한 가지 다른 점은 대부분 머리가 짧으셔서 업스타일을 안 하신다는 거예요”라고 했다. 세 사람은 “그러고 보니 여기서는 업스타일을 해본 적이 없네요! 호호호”하고 맞장구쳤다. ◇ 고객의 미소에 힘이 펄펄 나요! 신앙촌 미용실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파마, 염색약을 사용하면서 시중보다 값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축복일이 되면 미용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손님이 몰리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정덕용 씨는 “일이 재미있어서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같은 스타일을 연출해도 고객마다 얼굴형, 머릿결, 두상이 다르기 때문에 제각각 다르거든요”라고 했다. 이점덕 씨는 “어떤 때는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때도 있어요. 신기한 건 일을 하는 동안은 힘든 줄 모른단 거예요. 일할 땐 힘이 펄펄 나나 봐요”라고 했다. 고객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세 사람이다. 권은숙 씨는 많은 고객 중 잊지 못할 고객이 있다고 했다. “매직 스트레이트가 처음 나왔을 때였어요. 엄마와 딸이 함께 미용실에 왔는데 딸이 심한 곱슬머리가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줬죠. 그런데 너무 찰랑찰랑하게 잘 나온 거예요. 이렇게 미용기술이 발전했냐면서 뛸 듯이 기뻐하던 모녀의 환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라고 했다. 서울서 일하다 신앙촌에 자원해 손님 몰려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 새로운 미용 기술 공부하기도 더 나은 서비스 위해 노력할 것 ◇ 기술 발전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고객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미용실 직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이점덕 씨는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인터넷 미용 강의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해요. 또 헤어전용방송 시청을 통해 트렌드를 읽으려고 항상 공부합니다. 이런 것들은 저희가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 더 행복한 미용실을 꿈꾸며 함께 일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 세 사람.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며 웃는 미소가 닮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더욱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사무적으로 인사하게 되더라고요. 찾아오시는 분들께 한분 한분 진심을 담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요.”(권은숙) “미용에 관심 있는 젊은 분들이 계시다면 편하게 만나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신앙촌 미용실에도 후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정덕용) “100살이 넘은 현직 미용사가 여전히 즐겁게 일한다는 외국 기사를 봤는데 참 인상 깊더라고요. 저도 오래도록 반갑게 손님을 맞으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용실에서 일하고 싶습니다.”(이점덕)

교양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 비올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 비올라

중간 음역의 악기, ‘비올라’,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매력적인 음색 가져 화려하고 당당한 위엄이 느껴지는 바이올린, 풍부하고 편안한 중저음을 들려주는 첼로,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비올라가 있습니다. 비올라는 1535년경 북부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1500년 대에만 해도 활로 연주하는 현악기는 모두 비올라라고 지칭했지만, 1800년 대에 들어서서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각각 악기를 가리키는 악기의 명칭이 생기면서 중간 음역의 악기에 ‘비올라’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크기를 비교하면 비올라가 훨씬 크지만, 첼로와 비교하면 크기가 작은 악기입니다. 질감이 따뜻한 비올라는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악기이지만 악기마다 길이가 달라서 몸통의 길이가 38cm에서부터 48c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몸통의 두께, 넓이 등도 악기마다 달라서 연주자에게 딱 맞는 크기의 비올라를 찾는다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음향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유명한 비올리스트인 윌리엄 프림로즈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것은 마치 레슬링 시합을 하는 것처럼 힘이 드는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올라 연주는 신체적 부담이 큰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올리스트들은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고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무반주 소나타》와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Sonata for Viola and Piano》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맛에 반하는, 양념 쏙쏙~ 갈비찜

맵지 않아서 좋아~ 궁중떡볶이

중국의 팔대요리(八大菜系:bā dà càixì)와 음식 문화

눈앞에 벌레가 떠다닌다면, ‘비문증’ 일 가능성 높아

눈앞에 벌레가 떠다닌다면, ‘비문증’ 일 가능성 높아

비문증으로 안과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22만 2,428명으로 2014년 대비 14% 증가했다. 발병 연령층은 대부분이 40대 이상이지만 최근 스마트폰, 컴퓨터, 과로 등이 지속되면서 눈의 피로도가 높아져 20~30대층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만약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비문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 비문증 자가진단 리스트 – 눈앞에 까만 점, 벌레, 실, 거미줄 같은 모양이 둥둥 떠 있다. – 하얀 벽이나 종이, 하늘을 볼 때 이물질이 보이는 증상이 더 심하다. –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이물질도 함께 움직인다. – 눈을 감거나 떠도 이물질이 보인다. – 눈을 감거나 떴을 때 번쩍번쩍(광시증)거린다. ■ 비문증이란? 위의 리스트는 비문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비문증은 나이가 들거나 망막 질환에 의해 유리체가 혼탁해지며 발생하는 질환이다. 눈에 날파리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하여 비문증(飛蚊症, 날 비, 모기 문, 증세 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눈에 무리가지 않는 생활 해야 비문증은 생활에 불편함이 있지만 치료법이 따로 없고, 그 자체로는 눈 건강을 해치지 않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에 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비문증과 함께 출혈, 시력 저하, 시야 협착, 두통 등이 동반되면 실명의 위험이 있는 망막멸공 또는 망막박리일 수 있으므로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당뇨, 고혈압, 급성열성전염병 환자에게 비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속이 답답 체한 느낌, ‘협심증’일 수 있다고?

계속되는 수면장애, ‘하지불안증후군’ 일수도

노인 폐렴, 폐암보다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