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하늘, 푸른 숲, 파란 물빛! 온통 시원함으로 가득한 신앙촌 여름 수영

높은 하늘, 푸른 숲, 파란 물빛! 온통 시원함으로 가득한 신앙촌 여름 수영

여름을 맞아 신앙촌에 온 교인들을 위해 물놀이, 세미나, 신앙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참석자들, 유익하고 즐거운 프로그램 준비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과 함께 신앙촌 수영장이 개장을 알렸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과 깨끗한 수질, 편리한 휴식 공간이 돋보이는 신앙촌 수영장은 교인들과 주민들의 피서를 위해 마련되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7월 학생축복일을 시작으로 사원 휴가, 주민 수영, 우수소비조합 세미나 참석자를 위해 수영장이 개방되었고, 8월에는 학생 여름 캠프, 여성회 축복일 참석자들이 수영을 즐겼다. 지난 7월 29일부터 양일간 열렸던 우수소비조합 세미나 참석자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파랗게 반짝이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색색의 튜브를 타고 시원하게 수면을 가로지르는 소비조합들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또한 물속에서 펼쳐지는 시사상식 퀴즈 개인전과 단체전, 중․서․남부 지역 물속 이어달리기 경기 등 흥미진진한 수중 게임 시간도 있었다. 저녁에는 양념 갈비와 왕새우, 반건조 오징어, 수박 등으로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나무 숲의 운치가 느껴지는 수영장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가 하면, 저녁 수영 후 아로마향이 은은히 퍼지는 편백실에서 돌난로 앞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초가집으로 산책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초가집 앞 작은 계곡의 청량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손과 발을 계곡물에 담가보니 심신의 먼지가 다 씻기는 듯 무척 상쾌했습니다”, “물 온도가 수영하기에 딱 좋았고, 수중 게임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텐트에서도 바람이 살랑 불어서 더위를 잊을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소비조합으로서의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더욱 확실하게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등의 소감을 남겼다. 특히 이번 우수소비조합 세미나 일정 중에는 부산 서면천부교회 신축 예배가 포함되어 있어 더욱 뜻깊고 감동적인 시간이 되었다는 후기가 많았다. 8월 3일부터 5일까지 있었던 유년․학생 여름캠프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영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3대의 스릴 넘치는 워터 슬라이드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했다. 시원하게 미끄러지며 물에 빠지는 재미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저녁식사 이후에도 야간 개장한 수영장 덕분에 어린이와 학생들은 더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시원한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기도 하고, 물 위에 둥둥 떠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기도 했다. 텐트에서 1박을 하는 학생들은 꼬마전구로 텐트도 장식하고, 라면도 끓여 먹으며 저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아이들의 인성과 감수성 함양을 위해 신앙강좌, 합창연습, 스퀴시 열쇠고리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어 더욱 유익한 캠프가 되었다. 수원교회 박세은 양(초2)과 함께 온 학부모 소인원 씨는 “숲 속 도서관, 합창 등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유익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습니다. 식사도 너무 맛있었고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위해 세심하게 행사를 준비해 주신 것에 매우 큰 감동을 받았어요. 캠프를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참석 소감을 전했다.

요구르트 런, 공식 인스타그램 개설

요구르트 런, 공식 인스타그램 개설

젊은 세대 사로잡은 ‘요구르트 런’ 인스타그램, 빠르게 성장 중 ‘요구르트 런’이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https://www.instagram.com/yoghurt.run/)을 개설하며 20~30대 젊은 소비자층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계정은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와 실시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여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요구르트 런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강화하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특히, 다양한 레시피와 건강 정보를 공유하여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제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유익한 콘텐츠는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브랜드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20~30대 젊은 층은 SNS를 통한 소통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요구르트 런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이러한 트렌드에 맞추어 실시간으로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계정을 팔로우하는 소비자들에게는 특별 쿠폰을 제공하거나 참여형 이벤트를 통해 제품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구르트 런 관계자는 “소비자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2024년 6월 11일 계정이 개설된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팔로워 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긍정적인 반응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브랜드의 성장과 인지도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https://www.instagram.com/yoghurt.run/

8월 수영장 이야기(Summer Swimming Talk! Talk!)

8월 수영장 이야기(Summer Swimming Talk! Talk!)

8월 캠프에는 물놀이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식사로 먹은 핫골드윙, 오징어, 수박화채가 제일 맛있었어요. 스퀴시 열쇠고리 만들기도 재미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앙강좌 시간에 들은 생명물인데요.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의 능력이 정말 신기했어요. 박수진 양(초4, 덕소교회) 신앙촌 여름 캠프가 2박 3일이 아니라 3박 4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관장님이랑 수영장에서 같이 미끄럼틀 또 타고 싶어요. 정말 잊지 못할 캠프였어요! 이하은 양(초2, 가좌교회) 수영장에 온 기념사진 찍었어요. 매번 올 때마다 설레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혹시 수영하고 있는 모습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사진 골라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요. 호호. 유형자 권사(의정부교회) 2박 3일 동안 많은 걸 배워가는 캠프가 된 것 같아요. 신앙강좌도 쉽게 설명해 주셔서 집중이 잘 되었고, 수영장에서 너무 재밌게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어요. 또 모임에서 입사생 언니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친해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캠프는 여름방학의 기억 중 손꼽을 만큼 저한테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거 같고,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캠프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나(중3, 서면교회) 물놀이뿐만 아니라 교인들과 신앙촌 이곳저곳도 산책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겁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산2중앙 신축예배는 꼭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한 번 더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우수소비조합 세미나는 많은 힘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함께 했던 교인들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많이들 말씀하셨습니다. 지향임 권사(서동교회)

신앙촌 생명물간장 글로벌 홈페이지 오픈

신앙촌 생명물간장 글로벌 홈페이지 오픈

북미 시장에 신앙촌의 가치 철학, 생명물간장의 우수성 등 정확한 제품 정보 전달로 글로벌 브랜드 강화 기대 신앙촌 생명물간장이 글로벌 홈페이지를 새롭게 오픈하며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홈페이지 구축은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생명물간장의 우수성을 알리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북미 지역의 아마존 구매 고객들이 신앙촌 제품을 검색할 때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신앙촌의 철학과 가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이 글로벌 홈페이지는 생명물간장의 차별화된 품질을 강조함으로써 해외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외 영업에서 각국의 바이어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현지 시장에 맞춘 마케팅 전략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도 글로벌 홈페이지가 핵심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앙촌 생명물간장은 글로벌 시장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과 확장을 위한 다각적인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 ‘최후의 만찬’ 패러디에 기독교계 거센 비판

파리 올림픽 개막식 ‘최후의 만찬’ 패러디에 기독교계 거센 비판

바티칸이 지난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공연에 대해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8월 3일(현지 시각) 프랑스어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교황청은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특정 장면에 슬픔을 느꼈으며, 최근 며칠 동안 많은 기독교인과 다른 종교의 신자들에게 가해진 공격을 개탄하는 목소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가 함께 모여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권위 있는 행사에서 많은 사람의 종교적 신념을 조롱하는 암시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그 자유는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제한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7월 26일 열린 개막식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이 연출됐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십자가 처형 전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성경 속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개막식에서 긴 식탁의 가운데 자리에는 예수 역할을 맡은 듯한 여성이 성인(聖人)에게만 비친다는 헤일로(후광) 왕관을 착용한 채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트랜스젠더 모델, 드래그 퀸(여장남자) 등이 예수의 사도들처럼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전신을 푸르게 칠하고 망사 옷을 입은 그리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로 분장한 가수가 거의 나체로 등장해 노래를 불렀다. 이 공연은 공개 직후 ‘신성 모독’ 논란에 휩싸였다.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선 “기독교를 조롱하는 장면이 담긴 개막식에 깊은 유감”, “기독교에 대한 조롱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뿐만 아니라 더욱 환영받는 시대”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내 개신교계 목회자도 “예수의 자리를 동성애를 상징하는 듯한 인물이 꿰찬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것이 지금의 유럽, 프랑스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논란이 일자 이 장면의 예술 감독 토마 졸리는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역사적인 올림픽과 관련된 이교도 축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도 7월 28일 종교 단체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유감을 표명했지만 비난은 계속됐다. 결국 SNS상에서 심각한 악플과 위협에 시달리던 토마 졸리는 수사당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AFP 통신이 8월 2일 (현지시각) 보도했다. 파리 검찰은 개막식 공연을 맡은 졸리가 성적 지향 및 출신에 기반한 살해 협박과 공개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졸리뿐 아니라 해당 공연에서 무대 정중앙에 파란색 드레스를 걸치고 출연한 DJ이자 성소수자 활동가인 바버라 부치 역시 사이버 공격에 시달리다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섰다. 7월 30일(현지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논란의 영상에 출연한 바버라 부치가 개막 공연 이후 살해, 고문, 성폭행 위협을 받았으며 반유대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성차별주의자로부터 모욕의 표적이 됐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부치는 프랑스 인터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언어와 철십자 문양으로 지옥에서 불태워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시청자들, 아일랜드 가톨릭 주교의 성학대 다큐멘터리에 경악

시청자들, 아일랜드 가톨릭 주교의 성학대 다큐멘터리에 경악

아일랜드의 주교 이몬 케이시의 성범죄를 폭로한 다큐멘터리 ‘케이시 주교의 묻혀진 비밀’이 7월 22일 RTÉ(아일랜드 국영방송)를 통해 방영됐다. 다큐는 2017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한 케이시 주교에 대한 충격적인 아동성학대 의혹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그는 4건의 아동성학대와 1건의 아동 보호 문제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그중에는 케이시 주교의 고발자 중 한 명인 그의 조카 패트리샤 도노반의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는 도노반은 5살 때 처음 케이시 주교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후에도 10년 넘게 성적 학대가 계속 되었다고 밝혔다. “그가 나에게 한 짓, 그가 어디서 했는지”에 대해 도노반은 증언했다. 도노반은 “다섯 살 때 그에게 강간당했던 공포와 폭력, 그리고 그것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잡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좋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가톨릭교회 지침에 따르면 아동성학대 사건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성직자는 정상 사제와 동일한 장례를 치를 자격이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케이시 주교의 장례는 2017년 3월 16일 교구장을 비롯한 16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골웨이 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케이시의 친절과 격려를 인정하는 긴 설교, 그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는 도노반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끝으로 케이시가 골웨이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묻히는 영광을 얻게 되자, 도노반은 그의 범죄를 밝히기로 결심했다. 도노반은 2019년에 처음으로 아일랜드 메일 온 선데이에 성학대 피해 사실과 함께 다른 여성들이 제기한 별도의 학대 주장을 광범위하게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케이시 주교가 아일랜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때문에 도노반은 ‘거대한 조직에 맞서는 작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노반은 “그가 나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그가 교회로부터 받은 권력 덕분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충격을 받은 시청자들은 “케이시 주교를 비롯한 수많은 아동학대 혐의를 받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은폐에 경악했다”, “가톨릭교회가 지미 새빌(아동성애자임이 밝혀진 영국 방송인)을 주교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케이시 주교는 쓰레기였다”, “아일랜드의 가톨릭교회가 이몬 케이시 주교와 다른 사람들을 은폐한 것에 대해 헤이그 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정말 끔찍한 존재다. 은폐하고,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하고, 거짓말을 묻어버리는 문화. 또 어떤 거짓말이 묻혀있을까?” 등의 일침을 날렸다.

8월 여성회 축복일

감람나무 가지들의 역할과 사명

남성회 축복일 예배

성경 의무 교육 명령에 반발하는 美 학교들

2024 Summer Camp 어린이, 여학생 여름 캠프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어”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어”

<지난호에 이어> 10년 가까이 전도관에 가지 못하니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은 저는 서울로 상경해 동대문구 이문동에 정착하여 1970년도 후반부터 이문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문전도관에 다니면서 저는 삶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은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 마음에 걸려서 이제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평소처럼 교회에 갔는데 우연히 어떤 이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예전에는 은혜가 많이 내렸는데 요새는 은혜가 안 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며 집에 돌아왔고 다음 날 새벽예배에 갔습니다. 예배실에서 눈을 감고 기도드리는데 어느 순간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지더니, 그 시원한 것이 배속까지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입맛을 다셔보니 달콤한 맛이 느껴져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 주 수요일 예배 시간에는 향취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말도 못 하게 좋은 향취가 바람처럼 불어와 코끝을 싹 지나가고, 조금 있다가 또다시 싹 지나가며 끊임없이 맡아지니 마음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근심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걷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로 둥둥 떠다니는 듯했습니다. 그날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은혜는 변함이 없으니 앞으로는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그 은혜를 간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일요일 오전에 서울 5중앙(전농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각자 자신의 제단에 돌아가 예배를 드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옆집에 사는 학생 한 명을 전도해서 함께 5중앙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병 환자였는데, 교회에 다닌 이후로 간질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본인도 신기해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은 그 학생이 제게 하는 말이 “아줌마! 이상해요. 단상에 자꾸 안개가 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에게 그것이 바로 이슬 은혜라고 알려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마나 놀라워하며 기뻐하던지 아직도 그 얼굴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5중앙에 직접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예배실 안은 향취로 가득했고, 그 향취를 맡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향취를 맡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실 안에 향취가 진동했기에 저는 모든 사람이 다 맡았을 것이라 여기며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 사람은 물론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저는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기에 은혜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즈음 병에 걸려 숨을 거둔 7살 난 어린아이의 입관예배에 갔습니다. 교인들은 먼저 아이가 누워있는 관 주변에 모여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아이의 발 쪽에 서 있었고, 한참 찬송을 부르는데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관 주변을 한 바퀴 휙 돌아 나가고, 또다시 휙 돌아 나가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문이 열려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온 바람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아! 하나님께서 성신의 바람으로 보호해 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날 바쁜 일이 있어서 찬송만 부르고 자리를 떠나야 했는데, 이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생명물로 너무나 뽀얗게 잘 피어서 다들 놀랄 정도였다고 하였습니다. 5중앙 다니던 시절의 기억 중 또 하나 잊지 못할 은혜 체험이 있습니다. 그날은 예배실 1층에 사람이 꽉 차서 2층으로 올라가 예배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한참 예배를 드리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눈물이 멈추고 마음에 기쁨이 확확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몸이 훨훨 날아갈 듯한 기쁨에 신기해하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잠시 예배를 멈추고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잠시 후 통화를 끝내신 관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지금 기쁨의 은혜를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 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은혜를 받으신 분이 계십니까?”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손을 들었습니다. 방금 전에 겪었던 마음에 차고 넘치는 기쁨이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은혜라고 하시니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이후 서울지역 소비조합이 되어 질 좋은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2005년 신앙촌 요구르트 런이 출시되었는데, 신제품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고객들에게 홍보도 많이 하고, 저 역시 요구르트 런을 즐겨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런이 출시되고 1년쯤 지났을까 단골 고객이 저에게 하는 말이 ‘아줌마는 요구르트 나오고 사람 됐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색도 안 좋고 병원에도 자주 다니더니 요새는 안색도 훨씬 좋아지고 병원도 안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줌마가 요구르트를 마시더니 몸이 좋아진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간이 급격히 안 좋아져서 병원에 들락거리는 일이 많았는데 요구르트를 마신 후로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몸이 건강해지면서 저는 더욱 신나게 일했습니다. 상회에 오는 고객들을 맞이하고, 업체에 신앙촌 식품을 납품하고, 마트에서 홍보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소비조합 은퇴 후 장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기도시간에 ‘죄짓지 않고 마음이 성결한 자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하나님 말씀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동안 선명히 보여주셨던 하늘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75장에 있는 ‘이슬성신 은혜로 모든 것을 이기니 성신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라는 가사처럼 귀한 성신의 은혜를 하나님께 간구하며 죄와 싸워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수집회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따르게 돼

여수집회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따르게 돼

저는 1940년생으로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7살이 되었을 때 돌아가셨는데, 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그 이후로 저는 자주 토하고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는 아직 어렸던 저희 4남매를 위해 재혼을 하셨습니다. 새어머니께서 마르고 병약한 저를 많이 걱정하셔서 약을 쓰고, 굿도 해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제 상태가 도무지 나아지지 않자 어느 날은 새어머니께서 교회에 가보자고 하셨고, 저 역시 교회에 다녀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겨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게 된 저는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보신다는 생각에 길을 걸을 때조차 조심스럽게 걷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다니던 장로교회 사람들은 신앙과는 거리가 먼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에 많은 구호물자가 오던 때였는데 구호물자가 오면 목사들이 가장 먼저 좋은 옷가지들을 쏙쏙 골라 갔고, 그다음에는 임원들이 욕심껏 옷을 챙겨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목사와 임원들은 네가 가져간 옷이 더 좋아 보인다는 둥 시기 질투까지 하니 어린 마음에도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 다녀도 몸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였고, 목사들의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게 된 저는 결국 얼마간 다니다가 장로교회에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수로 이사를 갔는데 어느 날 친척이 찾아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을 박 장로님이라 부를 때였는데, 친척이 말하길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은혜가 많이 내리고, 병자들이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궁금증이 생긴 저는 동생(장위교회 황송자 권사)을 데리고 여수집회(1956.4.2.~4.7.)에 참석했습니다. 커다란 천막을 친 집회장 내에는 수만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흰 와이셔츠를 입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참 예배를 드리다 보니 집회장 내에 안개가 끼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하나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한 것이 무척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안개는 걷히고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좋은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집회장이기에 불쾌한 냄새가 날 법도 한데 오히려 너무나 은은하고 좋은 향기가 진동하니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예배드리는데 시간이 갈수록 가슴이 뜨끈뜨끈해졌습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뜨겁지’ 이상하게 여길 무렵 전날 맡았던 기분 좋은 향기가 다시 맡아졌습니다. 그러더니 몸이 하늘로 둥둥 뜨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집회에서 신기한 체험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병자들의 병이 낫는 광경이었습니다. 집회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시며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병 나은 사람들은 일어나라고 외치시자 앉은뱅이가 스스로 걷는 등 집회장 곳곳에서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병이 나았음을 증거했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벙어리로 살다가 말문이 트인 사람이었는데, 마이크를 받아 들고 더듬더듬 말하며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이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이분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저 역시 여수집회에 참석한 이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여수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배드릴 공간을 마련하고자 여수전도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질통을 지고, 벽돌을 나르면서도 제단이 생긴다는 것에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집안일로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제 동생은 제단을 짓는데 작은 일손이라도 보탤 수 있게 됐다며 무척 신나 했습니다. 여수전도관이 완공되고 하나님께서 순회집회를 위해 여수에 오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다가 축농증 있는 사람 다섯 명만 나와 보라고 하셨습니다. 선착순으로 다섯 명이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한 명 한 명 코에 ‘쉭쉭’ 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같이 밝아진 얼굴로 코가 뻥 뚫린 것 같다, 숨쉬기가 너무 편하다며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여수전도관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전도사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분은 천주교 신자여서 돌아가신 후에도 십자가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계셨습니다.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닦고, 밤새도록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나니 전도관에 다니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환하게 잘 피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십자가 펜던트가 있던 부분만 피지 않고 새카만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영문을 몰랐지만 훗날 하나님께서 예수의 정체를 밝히셨을 때 저는 십자가가 있던 부분만 피지 않았던 시신을 떠올리며 ‘그런 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저는 미용기술도 배우고, 일자리도 얻을 겸 언니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1960년대 초였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며 일요일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전차를 타고 이만제단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이만제단에서도 여수에서 체험했던 은혜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안개와도 같은 이슬은혜가 예배실 안에 뽀얗게 내려서 하나님 모습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고, 자욱하게 내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졌습니다. 또 예배를 드리면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때 예배실 안을 둘러보면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환하게 피어있어서 ‘저 사람도 기쁨의 은혜를 받았구나!’ 하고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니며 들었던 설교말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밟으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죄를 지었는지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니 너무나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앞으로는 절대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오만제단이 완공되어 개관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실이 꽉 차서 오래 자리를 비우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는 식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도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고, 집회가 열리는 3일 내내 향취가 맡아져서 무척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년 후 저는 결혼해서 시댁이 있는 충북 보은군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댁은 전도관이 없는 시골인 데다가, 시부모님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매우 반대하셔서 전도관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니 마음이 답답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서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1) 창세기의 오류 – 성경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성경 66권은 수천 년에 걸쳐 한 자의 오류도 없는 인류 구원의 지고한 경전으로 신앙되어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은 헛점투성이며 그 속에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2%밖에 삽입되지 못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 주셨다. 본지는 ‘성경의 허와 실’을 연재하여 어떻게 하여 오늘날의 성경 66권이 편찬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성경상의 오류에 대한 몇가지를 논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성경이 구약 39권, 신약 27권, 해서 66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것은 대개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성경은 약 3500년 전의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약 1900년 전의 사도 요한까지 약 1600년에 걸쳐 기록한 것으로, 구약은 기록된 지 2000년이 넘었고 신약은 1,900년이 넘었다. 처음 기록할 당시에는 지금같이 좋은 재질의 종이도, 인쇄술도 없었기 때문에,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나 파피루스(갈대의 일종)로 만든 종이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기록했다. 바이블(Bible)이라는 명칭도 파피루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피지나 파피루스지는 지금 우리가 쓰는 종이처럼 얇은 것이 아니었고, 또 직접 먹으로 썼기 때문에, 성경 66권 중 한 권만 해도 그 양이 무척 많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많은 양피지나 파피루스지를 보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방부제가 있던 시대가 아니므로 방부 처리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대로 창고에 쌓아 두면 벌레가 먹기도 하고 곰팡이가 피기도 했을 테니, 오랫동안 온전하게 보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 아래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성경이 많이 소실되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핍박을 피해 땅속에 묻었다면 썩거나 먹이 피어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원본 내용을 옮겨 쓴 사본들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은 원본이 하나도 없고 사본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원본은 땅에 묻혀 썩고 핍박에 불타 없어져 후세에 모여서 성경을 편찬한 위원들은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단편을 꿰맞추려니 앞뒤가 맞지 않는 뚱딴지 같은 말이 되고 말아 사본 중에서 제일 유명하고 오래 되었으며 많은 양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일명 ‘사해 사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전 세계에 흩어져 박해를 당하며 죽어가기 전에 사해 서북부 쿰란 지역의 동굴 속에 숨겨둔 약 800개의 두루마리 사본이 1947년에서 1969년에 걸쳐 발견된 것이다.쿰란 동굴에서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 많은 사본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렇게 전 세계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을 모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권의 성경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인쇄술이 발달해 구약을 인쇄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라고 하니, 몇천 년 동안 사람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원문이 바뀌거나 훼손되는 일이 없었을까?더 중요한 것은, 원본을 만든 직후에 사본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은 3500년 전부터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가장 일찍 쓰여진 사해 사본조차 그 연대가 고작 2200년 전이기 때문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에 쓰여진 사본. 과연 원문의 내용이 얼마만큼 전해질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성경의 편집자들이 성신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면 불타 없어지고 먹이 지워진 부분이 무엇인지 기도를 통해 얻어서 썼을 텐데, 그들이 자신들의 지식으로 끼워 맞췄기 때문에 지금 성경을 보면 문맥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하셨다. 여기서 또 번역과 개역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된 것은 1884년이고, 처음 개역 성경이 등장한 것은 1938년인데, 이후 성경은 무려 64번의 개역을 했다. 개역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원문의 훼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한성서공회 자체에서도 개역 성경에 오역이 많다는 것을 시인할 정도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개역 성경뿐 아니라 <공동번역 성서, 1977>, <현대인의 성경, 1986>, <현대어 성경, 1992>, <표준신약전서, 1983> 등, 여러 역본의 성경들이 있다. 성경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문이 훼손되었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만도 그러한데, 전 세계 150여 개 국에서 번역·개역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을 것인가. 그런데 성경이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인류의 밀리언셀러로 자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성경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2%가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주옥idjuok@yahoo.co.kr <참고 자료>■대한성서공회 CD-ROM 성경■Marianne Lederer 著, 전성기 옮김,『번역의 오늘』, 고려대학교, 2001■http://www.bibletime.info (바이블타임)■http://www.aspire7.org (성경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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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논리의 그릇으로 풀어나간 하나님 말씀 그리고 성경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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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해외 종교 칼럼&기사 Review] 신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God)

오피니언
[나침반] 캐나다 가톨릭 원주민 기숙학교  집단학살 드러나. 거룩한 척 아기 예수 안고 내려다보는 성모(聖母)상, 엄마 잃고 산 채로 불에 던져져 울부짖는 아기 영혼 유린하는 참혹한 만행 外

[나침반] 캐나다 가톨릭 원주민 기숙학교 집단학살 드러나. 거룩한 척 아기 예수 안고 내려다보는 성모(聖母)상, 엄마 잃고 산 채로 불에 던져져 울부짖는 아기 영혼 유린하는 참혹한 만행 外

시온포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누가 풀어야 하나?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2) 창세기의 오류 – 앞뒤가 맞는 것이 없는 창세기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하나님을 처음 뵈었던 인천전도관 개관집회

하나님을 처음 뵈었던 인천전도관 개관집회

오랫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천부교 역사의 귀중한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신앙의 선배님들이 전해주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해주셨던 시절’의 이야기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이번호에서는 기장신앙촌 박상희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천부교회를 알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집안에서 교회를 믿는 분위기였나요? 저희 할머니는 그릇에 물 떠 놓고 자손 잘되라고 비는 전형적인 옛날 분이셨어요. 듣기로는 아버지가 대학생 시절 하숙생활을 하면서 잠깐 교회를 다니셨는데, 이를 알게 된 할머니께서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 아니라고 노발대발하셔서 그 후로는 못 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집안 자체는 교회를 다니는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그럼 어떻게 교회를 다니게 되셨나요? 이웃집 아주머니가 감리교회 속장(평신도 신앙지도자)이었어요. 아주머니는 항상 자기는 하늘의 별을 따놨다고 말했어요. 본인은 이미 구원을 얻었다는 거죠. 그분의 아들이 저희 큰오빠랑 친구여서 오빠가 먼저 교회를 다니게 됐어요. 찬송가를 갖고 다니면서 집에서도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이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오빠를 따라서 몇 번 교회에 가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아주머니가 집에 찾아오셔서 저희 어머니께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당시에는 하나님을 박 장로님이라고 부를 때였습니다. 그때가 1월이라 날이 추워서 어머니는 외출을 망설이시는데 저는 너무 가보고 싶은 거예요. 혼자 외투를 찾아 입으면서 엄마 손을 잡고 집회에 가자고 떼를 썼어요. 결국 박상희 권사의 성화에 못 이겨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세우셨다고 한다.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20분 정도 걷자 짠지 공장이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인천전도관은 짠지공장 2층에서 예배를 드렸다. 전도관이 가까워질수록 북소리, 찬송소리가 들려왔고 박 권사는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너무 즐겁고 신이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가 인천전도관 개관집회였다고 하셨는데요. 예배는 어땠나요? 하나님께서 단에 서셨는데 너무나 환한 모습이신 거예요. 단상 주변까지 환해지는 듯했어요.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신 후 사람들을 안수해주셨어요. 그리고 큰소리로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하시니까 정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일어나 자신의 병이 나았다고 외치는 거예요. 정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어나서 병이 나았다며 기뻐하는데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장면이었어요. 집회 이후로 전도관에 꾸준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평일에도 인천전도관에 가서 사람들의 은혜 체험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는 박상희 권사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두 번 인천전도관에 오셨다고 한다. 금요일에는 안수를 받는 날이었기 때문에 주일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박 권사는 기억했다. 일요일에는 기성교회 사람들이 많이 왔는데, 오전에 본인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오후에 전도관을 오는 식이었다. 그만큼 하나님께 은혜받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인천전도관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다들 아실 텐데 하나님께서 목욕탕을 비유로 들어 설교해 주셨던 적이 있어요. ‘목욕탕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때가 씻어질 것을 믿으면 죄가 씻어지느냐, 물에 들어가 비누로 때를 씻어야 깨끗해진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죄도 이슬같은 은혜로 죄를 씻는 행함이 있어야 씻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또 찬송가 505장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의 가사가 지금은 ‘이제 곧 이제 곧 천국에 들어가 만나리’ 잖아요? 그때는 ‘며칠 후 며칠 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찬송을 부르던 중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며칠 후에 들어가요? 아니면 이제 곧 들어가요?’라고 물으시는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곧입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찬송가 가사도 바뀌게 되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구원을 주시는 감람나무가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이제 곧 갈 수 있다고 하신 것 같아요. (다음 호에 계속)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 돌려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 돌려

서면교회 신축을 담당한 강경민 여성회 관장은 “성전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신 권능과 사랑의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성전 신축은 어느 곳에서나 쉽지 않지만, 서면교회 신축은 그 어느 곳보다 어려운 과정이 많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임시 제단 이전과 새로운 부지의 입지 문제, 처음으로 건축을 담당하게 된 상황 등 하나부터 열까지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서면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강 관장에게는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후 제단을 세우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서면교회에 다니며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또한 부산2중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빨리 교회를 지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전 건축이 가능할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격려는 큰 에너지가 되었다고 한다. “안 될 것 같던 일들이 하나하나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부산2중앙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쏟아주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모여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강 관장은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하나님께서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거야’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르며, 이 일을 허락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만큼 일을 감당해 내야한다는 생각을 주셨고, 처음 하는 일이나 모르는 일, 막막한 상황에서도 의지하고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강 관장은 이번 성전 건축에 중점을 둔 부분을 설명하며, 성전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했다. “제 머릿속에 부산2중앙은 학생 제단이라는 것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 교회에서 느꼈던 것처럼 아이들도 교회가 좋아서 오고, 오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제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한, 임시 제단에서 생활하다 보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특혜였는지 알게 되었고, 예배 공간이 명확히 구분된 성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전이 완성되고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 관장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많은 분들이 새 제단을 보고 기뻐해 주시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복을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기쁨의 은혜를 주시는 것 같아,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꾸는 일에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강 관장은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허락해주심으로 저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전으로서의 역할과 감람나무 가지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부산2중앙이 되겠습니다”라며 희망에 찬 포부를 밝혔다.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하나님 은혜 속에 성장한 부산2중앙, 새로운 성전에서 귀한 결실 맺기를 다함께 기도해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과 감동의 시간 전도와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 1980~90년대 부산2중앙에는 학생회 전도가 활발했다. 당시 서면교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허경숙 씨(신앙촌 여청)는 친구의 전도로 부산2중앙에 오게 되었고, 중학생 시절 강경민 관장(서면교회)을 전도했다. 고등학생이던 최윤원 씨(신앙촌 여청)도 또래 친구 서정인 씨(신앙촌 여청)를 전도했고, 전학 온 친구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성미 관장(여성협회)은 이후 김혜림 관장(진해교회)을 전도했다. 이 밖에도 김미혜 관장(청주교회)과 방성희 관장(서면교회)은 예전 담임 선생님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현재 교역자로서 열심히 전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허경숙 씨는 “학생 때 대부분의 추억이 서면교회에 있습니다. 지금 교역자나 신앙촌 사원이 된 동료들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서면교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하나님의 희생으로 저희가 성장할 수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서면교회가 새롭게 지어지면서 성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반사 활동 당시 지성미 관장이 담당했던 어린이 중 한 명이었던 고미영 관장(익산교회)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방방이와 그네에서 아이들이 줄을 서서 놀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율동과 특순, 예배 후 학년별 담당 선생님과 분반 공부를 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찬송과 율동을 즐겁게 가르쳐 주셨던 긍정 선생님, 따뜻하게 대해 주시며 안전한 귀가를 책임져 주셨던 스마일 선생님, 반사활동을 하며 언제나 힘이 되어 주셨던 선생님, 지금까지도 알뜰히 챙겨주시는 담당 선생님과 동료들이 함께 신앙의 길을 가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라며 든든한 마음을 표현했다. 새로운 희망의 시작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된 성전은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전소영 씨(서면교회 여청)는 “교회 이전 당시 6학년이었던 제가 어느덧 여청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기다린 만큼 교회가 멋지게 지어져 감격스러웠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제단이 아이들로 가득 차도록 전도에 힘쓰겠습니다”라고 했다. 서면교회 여성회 부회장 박영희 집사도 오랜만에 학생들과 재회한 기쁨을 전했다. “3년 동안 학생 파트와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제단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쁨과 감동의 서면교회 신축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다짐의 시간이 되고 있다.

8월 수영장 이야기(Summer Swimming Talk! Talk!)

8월 수영장 이야기(Summer Swimming Talk! Talk!)

8월 캠프에는 물놀이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식사로 먹은 핫골드윙, 오징어, 수박화채가 제일 맛있었어요. 스퀴시 열쇠고리 만들기도 재미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앙강좌 시간에 들은 생명물인데요.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의 능력이 정말 신기했어요. 박수진 양(초4, 덕소교회) 신앙촌 여름 캠프가 2박 3일이 아니라 3박 4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관장님이랑 수영장에서 같이 미끄럼틀 또 타고 싶어요. 정말 잊지 못할 캠프였어요! 이하은 양(초2, 가좌교회) 수영장에 온 기념사진 찍었어요. 매번 올 때마다 설레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혹시 수영하고 있는 모습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사진 골라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려고요. 호호. 유형자 권사(의정부교회) 2박 3일 동안 많은 걸 배워가는 캠프가 된 것 같아요. 신앙강좌도 쉽게 설명해 주셔서 집중이 잘 되었고, 수영장에서 너무 재밌게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어요. 또 모임에서 입사생 언니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더욱 알아가고 친해지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 캠프는 여름방학의 기억 중 손꼽을 만큼 저한테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거 같고,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도 캠프를 준비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나(중3, 서면교회) 물놀이뿐만 아니라 교인들과 신앙촌 이곳저곳도 산책하고 사진도 찍으며 즐겁고 감사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산2중앙 신축예배는 꼭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면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한 번 더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우수소비조합 세미나는 많은 힘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함께 했던 교인들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많이들 말씀하셨습니다. 지향임 권사(서동교회)

교양

치매·뇌질환 걱정되면…장 건강부터 챙기세요

치매·뇌질환 걱정되면…장 건강부터 챙기세요

‘장이 건강해야 치매에 안 걸린다.’ 최근 장내 미생물(세균)과 치매의 관련성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가 치매 환자들의 장내 세균총을 분석한 결과 장내 유익균이 정상인보다 현저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 장과 뇌의 연관성 밝혀 일반적으로 ‘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소화·배변 기능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장내 세균이 인간의 뇌와 신경 활동을 좌우한다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장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뇌와 장을 연결하기 때문에 장이 튼튼하면 뇌 기능도 활발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며, 장 기능이 떨어지면 뇌 기능도 저하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이다.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 뇌를 제외하고 세로토닌이 발견된 곳은 장이 유일하다. 때문에 미국의 신경 생리학자 마이클 거숀 교수는 장을 ‘제2의 뇌’라고 말하기도 했다. ◆ 장내 세균, 치료제로서 가능성 전망 또한 장내 미생물이 우울, 불안, 치매, 자폐 같은 정신건강 상태와 관련 있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학술지 ‘노화신경과학 최신연구’에 발표된 논문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하여 장내 균총을 변화시키자 알츠하이머병을 가진 노인의 인지력과 대사적 불편함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음을 밝혔다. 하버드 의대 프랜시스코 킨타나 교수팀에 따르면 장내 세균이 필수아미노산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물질이 혈관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서 염증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치매, 파킨슨병 등 다른 뇌질환 치료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 유산균의 핵심은 장내 생존율 그렇다면 건강한 장 환경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 건강을 위해서는 장내 유익균을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된 채소와 양질의 단백질원인 육류를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장내 유익균 비율을 높이기 위해 채식과 유산균이 다량 함유된 김치, 된장, 요구르트 등 발효식품을 많이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기름진 인스턴트 식품 섭취나 가공식품과 같이 식품 첨가물이 함유된 식품 섭취, 항생제 장기 복용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므로 피해야 한다.

하루 10분 체조로 건강 지켜요!

더워서 무심코 들이킨 음료수, 건강의 적?

장마철 건강 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