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성신 은혜 근원이 되어 생명물 샘이 늘 그치잖네”

“이슬성신 은혜 근원이 되어 생명물 샘이 늘 그치잖네”

녹음이 짙어가는 싱그러운 5월, 신앙촌에서 제46회 이슬성신절 예배가 있었다. 이슬성신은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로, 이날 예배에서는 그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담아 음악순서가 마련돼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첫 번째 무대는 윤성은 관장(신앙촌 음악부)의 지휘와 시온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꾸며졌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중 ‘아침의 기분’은 어둠을 뚫고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의 고요하고 맑은 자연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도입부의 플루트 선율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설렘을 전했고, 이어지는 목관악기의 섬세한 화음은 새벽녘의 정취를 아름답게 담아냈다. 곡의 후반부에는 태양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추는 장면을 현악기의 웅장한 울림으로 표현하며 첫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어 지휘자 황순정 관장(순천교회)과 전국 여학생 합창단의 무대가 펼쳐졌다. 합창단은 찰스 에드워드 혼의 ‘들장미’와 찬송가 125장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오라’를 선보였다. 수줍게 피어난 들꽃의 생명력을 노래한 ‘들장미’에서는 여학생들의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와 맑고 섬세한 화음이 어우러져 5월의 싱그러움을 더했다. 이어진 찬송가 125장 <목마른 자들아 다 이리오라>는 존재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곡으로, 맑고 깨끗한 선율과 희망찬 화음이 어우러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전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번 무대를 위해 전국의 천부교회에서 선발된 합창단원들은 학업 중에도 기쁜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해왔다. 한편, 예배 전날부터 신앙촌은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활기를 띠었다. 교인들은 신앙촌 식품단지 내 공장을 견학하고, 분수대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신정문길과 군락지 산책로 곳곳에는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걷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해피투게더 몬치치랜드’가 군락지에서 펼쳐졌다. 학생들은 대형 에어바운스와 게임 등 다채로운 활동을 즐기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새교인과 함께한 ‘전도축제’

새교인과 함께한 ‘전도축제’

대전교회, 상계교회의 전도축제 이야기 준비 과정부터 마무리까지 교인 모두 함께하는 시간 4월 26일 전국 여성회 ‘전도축제’를 앞두고 대전교회는 전날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새교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는 풍선 아치를 세우고, 교회 안에서는 특순을 위한 바이올린 연습이 이어졌다. 행사 당일 새벽부터는 교회 안팎을 정리했고, 새교인들에게 전달할 선물도 정성껏 준비했다. 예배 시간에 홍윤옥 관장은 스크린을 통해 천부교와 이슬성신에 대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설교했다. 이날 70여 명의 새교인을 초대한 정지숙 권사는 전도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동안 전도하지 못한 저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더 많은 분이 의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도에 힘쓰겠습니다. 새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다시 교회로 찾아올 때 전도의 기쁨을 느낍니다.” 평소 새교인들에게 꾸준히 안부를 전하며 친근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김분출 권사는 과거 전도축제의 경험을 전했다. “2004년 전도축제를 준비하는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 컸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날 밤 꿈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오셔서 환하게 웃으시며 저희를 바라보셨고, 이튿날에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전도를 위해 힘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순에 참여한 최정화 권사의 자부 서유미 씨는 연주 소감을 밝혔다. “바이올린 연주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고, 특순할 때 많은 분이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연주했습니다.” 새교인 염정림 씨는 교회를 처음 방문한 느낌을 전했다. “많은 인원이 모였는데도 질서 있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관장님 설교 중 은혜를 받으면 마음이 기뻐진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홍윤옥 관장은 전도축제의 의미를 전했다. “전도축제는 준비하는 교인들에게 큰 활력이 되는 시간입니다. 참석 인원이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됩니다. 새교인들이 교회를 다녀간 뒤 느끼는 기쁨이 곧 은혜임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며, 앞으로도 전도에 더욱 힘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전도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상계교회 역시 전도축제를 맞아 이른 아침부터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2017년 신축 이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교회 안팎은 마치 새 건물처럼 깨끗하고 정갈했다. 평소 성전을 아끼고 가꿔 온 여성회 임원들의 정성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오전 11시 예배가 시작되자 예배실에는 교인들과 초대받은 새교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방성희 관장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천부교의 가치와 자유율법의 의미를 처음 온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맑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전했다. 이어진 말씀 퀴즈와 행운권 추첨 시간에는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예배를 마친 새교인들은 “오면 마음이 즐거워요”, “편안하고 좋아서 늘 오게 됩니다”, “천부교회에 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행사 전날 만난 안명자 씨 역시 처음 교회를 찾았을 때의 기억을 전해주었다. 안 씨는 유정희 권사의 전도로 2010년 처음 상계교회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무교였던 제가 예전에 기성교회에 두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몸에 열이 나고 불편했어요. 그런데 천부교회는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너무 편안했고 낯설지 않았어요. 그 편안함 덕분에 지금까지 꾸준히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안 씨는 “은혜를 체험하신 분들을 보며 이곳이 체험의 종교이고, 진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덧붙였다. 상계교회 회장 유정희 권사는 안명자 씨와 함께 교회로 향하는 일요일 아침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함께 차를 타고 오는 길에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는데, 그때마다 귀담아듣고 잘 받아들여 주니 저도 고맙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생명물도 귀하게 여기고 작은 봉사도 기꺼이 하는 모습을 보면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행사를 마친 임원들은 전도축제를 통해 기쁨과 함께 새로운 다짐도 전했다. 유정희 권사는 “초대한 분들과 함께 예배드리니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신 것 같아 정말 기뻤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서 그러셨듯 저 또한 전도축제에 오신 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젊은 분들도 많이 전도해 더욱 활기찬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윤남숙 권사는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준비한 전도축제가 잘 마무리되어 감사했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을 잘 챙겨 신앙촌에도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신인자 권사는 “우리의 사명이 전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신앙신보와 경전을 통해 새교인들이 신앙 안에 굳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신이 당신의 모든 생각을 아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미스터리

신이 당신의 모든 생각을 아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미스터리

아인슈타인은 이를 ‘원거리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작용’이라고 불렀지만, 그가 조롱했던 이 현상은 신성을 밝혀줄지도 모릅니다. -다음은 미국 폭스뉴스에 실린 4월 12일 자 기사를 옮긴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떨어지는 참새 한 마리 한 마리, 떠오르는 모든 생각, 광활한 우주에서 빛나는 모든 별까지 아는 전지전능한 신 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아무리 전능한 존재라 할지라도 어떻게 모든 곳에서 동시에, 실시간으로, 원자 수준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엄격한 유물론자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지 모릅니다. 신비롭지만 완전히 비논리적인 고대 철학과 종교의 유물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의 깊이를 파헤치다 보면 완전히 심오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신성한 전지전능의 개념은 단순히 그럴듯한 것이 아니라, 그 작동 원리가 시공간의 구조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매우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양자 얽힘이라고 합니다. 양자 얽힘은 1935년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1964년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에 의해 이론적으로 검증되었으며, 1972년 물리학자 존 클라우저와 스튜어트 프리드먼에 의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체, 예를 들어 아원자 입자들은 어떻게든 보이지 않지만 긴밀하고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유지합니다. 한 물체는 지구의 연구실에 있고 다른 물체는 우주 저편,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을 수 있지만, 한 물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른 물체는 지연 없이 즉시 그 영향을 받고 느끼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얽힘 현상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이는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 원칙, 즉 그 어떤 것도, 심지어 정보조차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는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물체가 무한히 빠른 속도로 통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롱하며, 이를 독일어로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 (spukhafte Fernwirkung)”이라고 불렀습니다. 비록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나 결국 그의 주장이 틀렸음이 증명되었지만, 아인슈타인이 양자 얽힘을 ‘기묘한 현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옳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얽힌 물체 사이를 오가는 순간적인 신호는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그것은 라디오파나 빛 신호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입니다. 실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양자 얽힘 물체들 사이의 연결을 “초자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자 얽힘은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오랜 믿음을 놀랍도록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신이 인간사와는 동떨어져 우주 망원경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내려다보며, 우리의 행동에서 나오는 빛이 하늘에 닿기를 기다리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 얽힘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근원인 신은,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원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조물과 강력하게 얽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양자 얽힘의 존재는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인식하시는 방식이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밀하고 즉각적이며 “신비로운” 연결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마치 어떤 물체가 우주 저편에 있는 얽힌 짝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즉시 알고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주 어디에 있든, 그리고 그 너머에 있던 모든 원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즉시 알고 느끼십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깊고 근본적인 연결을 끊을 수 없을 만큼 먼 거리도, 너무나 깊은 어둠도 없습니다.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우리는 과학의 영역과 영성의 영역 사이에 방화벽을 세우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전자는 차갑고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고, 후자는 맹목적인 믿음을 다룬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방화벽은 무너져 내립니다. 과학은 신의 위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밝혀줍니다. 과학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가득 차 있고,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경외감과 경이로움을 자아내야 할 신비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에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다음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는 우주를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의 집합체로만 바라보려는 충동을 억누르시길 바랍니다. 대신, 우주의 진정한 모습, 즉 웅장하고 복잡하게 얽힌 태피스트리를 바라보십시오! 무엇보다도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물리적 사물들을 즉각적이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구조가, 당신을 하나님의 마음과 영에 즉각적이고 긴밀하며 영원히 연결해 주는 구조와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소름 돋게 한 우주의 신비, ‘양자 얽힘’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 원자를 계속 쪼개다 보면 결국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아주 작은 입자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을 양자라고 부른다. 빛을 이루는 가장 작은 입자인 광자, 전기를 흐르게 하는 전자 같은 것들이 모두 양자다. 쉽게 말해 우주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앙자 얽힘’은 쉽게 말해 두 개 이상의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에서 일어난 일이 즉시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마법으로 엮인 동전 두 개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동전 하나는 지구에 두고, 다른 하나는 빛의 속도로 100억 년을 가야 하는 우주 저 끝으로 보낸다. 이제 지구에 있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는 순간, 우주 끝에 있는 동전은 그 즉시 스스로 뒤집혀 ‘뒷면’이 된다. 빛조차 100억 년이 걸리는 엄청난 거리를, 단 0.1초의 지연도 없이 ‘0초’ 만에 동시에 반응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조차 처음에는 이 현상을 믿지 않았다.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자신의 이론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현상을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이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하지만 훗날 여러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양자 얽힘’이 우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 설명에서도 양자역학은 두 개 이상의 입자가 얽힘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한 입자에서 일어나는 일이 멀리 떨어진 다른 입자와 연결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미 정부, UFO 기밀 공개 전 목회자와 ‘비밀 브리핑’

미 정부, UFO 기밀 공개 전 목회자와 ‘비밀 브리핑’

“신앙 근간 흔들릴 것” 경고 … 기독교계, 신도 보호 위한 대비 촉구 미 정부가 이번 기밀 파일을 대중에 공개하기에 앞서, 일부 종교계 지도자들을 소환해 비밀 브리핑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복음주의 저술가 페리 스톤과 앨런 디디오 주교 등에 따르면, 최근 미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목회자 6명을 테네시주 산악 지대의 한 시설로 초청해 비공개 회의를 가졌다. 회의에 참석한 페리 스톤은 당시 오간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정부가 외계 생명체 관련 파일 공개에 대비해 신도들을 미리 준비시키라는 취지의 경고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 참석자는 당시 브리핑 분위기가 매우 긴박했다며, 정부 관계자가 “교회에 가서 전하라. 그들은 다가올 일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향후 공개될 정보들이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파일이 공개되면 비기독교인들 역시 혼란 속에 답을 찾으러 교회로 몰려올 것이며, 이로 인해 종교 지도자들이 문화적 충격의 최전선에 서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성경 창세기가 신화로 인식될 가능성, 배교 우려 브리핑 내용에 따르면 외계 존재의 생김새는 파충류를 닮았으나 인간과 유사한 면이 있으며, 단순히 다른 행성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다른 차원’과 연결된 존재로 설명됐다. 또한 이들이 인류 문명의 창조자이거나 인류 역사에 영향을 끼친 존재로 묘사됐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정보 공개가 신과 창조, 인간 존재에 대한 기존 신념을 흔들어 종교적 믿음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페리 스톤은 “만약 은하계 안에 또 다른 창조물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면,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전부 신화가 되고,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는 ‘배교’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경고에 대해 일부 목회자들은 이를 단순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 아닌 ‘영적인 투쟁’으로 규정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이번 폭로로 인해 기존 신앙 체계가 근본적인 도전을 받거나 종교가 재해석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앨런 디디오 주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미국 정부의 보고서 공개가 단순한 정보 발표를 넘어, 사람들을 예수에 대한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음모이자 성경 속 ‘큰 미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을 인류 발전을 가로막는 ‘악당’으로 묘사해 신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며, 신자들이 미혹되지 않고 성경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도록 교회 차원의 대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美, 수십 년 감춰온 ‘UFO 기밀 파일’ 전격 공개

美, 수십 년 감춰온 ‘UFO 기밀 파일’ 전격 공개

아폴로 달 탐사부터 최신 전투기 기록까지 161건 게시 최종 판단은 국민의 몫, 국방부 “앞으로 추가 공개 이어갈 것” 미국 정부가 5월 8일(현지 시간),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있던 미확인 비행물체(UFO) 관련 파일 161건을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했다. 이번에 망라된 자료들은 ‘미확인 이상현상(UAP)’ 관련 기록들로, 1940년대부터 최근까지 국방부와 NASA, FBI 등이 세계 각지와 달 등에서 수집한 핵심 정보들이 포함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전 행정부들은 불투명했다”고 지적하며 “국민들이 새로운 문서와 영상을 통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하기 바라며, 이를 재미있게 보고 즐기기 바란다”고 밝혔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아폴로 11호의 버즈 올드린은 “달에 가까워질 무렵 상당한 크기의 물체와 의문의 섬광들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아폴로 12호 비행사들은 달 지평선 상공에서 수직 형태의 미확인 형상을 목격했으며, 1972년 마지막 달 탐사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도 달 표면 상공에서 빛나는 물체 3개를 촬영했다. 최신 기록들도 구체적이다. FBI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하늘에서 40~60m 길이의 타원형 청동색 금속 물체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증언이 확보됐다. 또한 2024년에는 시속 803km로 비행하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물체가 적외선 센서에 2분간 포착된 사례도 공개됐다. 앞서 미 해군정보국은 조종사들이 목격한 UAP 사례가 400건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 “UFO 아닌 UAP” 공식 명명 미 정부는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는 ‘UFO’ 대신 과학적 분석이 필요한 ‘UAP’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국방부는 “이번 자료들은 정부가 본질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미해결 사건들”이라며 “민간 부문의 전문적인 분석과 참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미확인 물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1947년 뉴멕시코주 ‘로스웰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비행물체 추락을 두고 외계인 사체 유출설 등 음모론이 퍼졌으나, 국방부는 이를 기상관측 장비라고 발표하며 논란을 일축해 왔다. 정부는 이번 공개가 끝이 아님을 시사했다. 국방부는 이번 1차 공개를 시작으로 수천만 건에 달하는 관련 기록을 검토해 향후 몇 주 간격으로 추가 공개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UAP(미확인 이상현상 · Unidentified Anomalous Phenomena)란?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가 주로 ‘외계 비행접시’라는 고정관념을 주는 것과 달리, 공중·수중·우주에서 관측되는 과학적 미해결 현상을 포괄하는 공식 용어다.

이슬성신절 현장&스토리

이슬성신절 현장&스토리

# 석남교회 김아인 양(초5) 이번에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 엄청 떨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습할 때는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막상 공연을 끝내고 나니까 정말 뿌듯했습니다. 다음에 두 번째 합창을 할 때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도 절대 빠지지 않을 거예요. 이번 활동 중에는 합창 연습이랑 ‘몬치치랜드’에서 놀았던 게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 서울에서 온 김복례 씨 식품단지가 너무 멋있습니다. 공장 시설도 훌륭하고, 특히 도로를 따라 활짝 피어있는 빨강, 노랑, 분홍, 흰색의 색색의 장미가 너무 예뻤습니다. # 전농교회 조정옥 권사 초대로 온 김현숙 씨 지난번 신앙촌 방문이 너무 좋아 이번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왔습니다. 신앙촌은 언제 와도 공기가 맑고 깨끗합니다. 많은 나무들이 반짝반짝 윤기가 나며 참 아름답습니다. 식품단지도 아름답고 청결하여 더욱 믿음이 갑니다. # 동래교회 박미선 집사 훌륭한 관현악 연주와 어여쁜 여학생들의 합창이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군락지 홍단풍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먹는 도시락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꿀맛이었습니다. # 수원교회 최봉기 씨 요구르트 런 공장을 직접 둘러보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전 공정이 청결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완비되어 있어 위생과 품질에 깊은 신뢰가 갔습니다. 런을 하루에 네다섯 개씩 꾸준히 마시고 있는데 속이 한결 편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 전농교회 이영배 승사 초대로 온 권숙문 씨 신앙촌에 올 때마다 천부교회를 알게 되어 이곳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아름다운 신앙촌의 맑은 공기도 마시고 꽃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예배시간에 평소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335장 ‘빈들의 마른 풀 같이’를 정성껏 부르며, 저도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 대전교회 김분출 권사 초대로 온 성정례 씨 신앙촌의 청결한 환경과 안내하시는 분들의 질서의식, 예배실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어 화음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진정으로 우아한 화합과 평화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 의정부교회 박연숙 권사 초대로 온 유옥분 씨 장로교회를 50년 동안 다녔는데 신앙촌 방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크고 훌륭한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깨끗한 환경과 질서에 감동을 받았고,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보다 훨씬 더 힐링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소사동교회 유근희 권사 초대로 온 김규수 씨 신앙촌에 머무는 동안 천국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마음이 편안했고,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 서산교회 강명자 권사 초대로 온 정귀임 씨 그동안 강명자 권사님을 통해 신앙촌 제품을 애용하며 생명물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예배 때 들은 생명물에 대한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도 질서정연한 모습과 편안한 예배시간에 감동하여 앞으로 교회에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친절히 대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해교회 김태은 양(중1)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최고의 은혜가 이슬성신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았고, 우리가 가는 길이 거룩한 길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진리를 묻다]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 무엇을 구원하는가?

보살펴주심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반츠 수도원에 보석과 비단으로 장식된 해골 전시

시흥 J교회 목사, ‘가스라이팅’ 성착취

법원, 천부교 비방 영상 올린 가톨릭 신부에게 삭제 권고

KBS <사사건건> 반론보도문 게재

SBS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 반론 보도문 게시

신앙체험기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하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찾아”

저는 부모님 두 분 모두 감리교 장로인 가정에서 태어나, 1964년 결혼 전까지 왕십리 감리교회를 다녔습니다.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제가 전도관 교인이셨던 시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신앙의 토대가 바뀌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한 달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져 나중에는 잘못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것이라며 신앙촌 캐러멜을 정성껏 끓여 주셨고, 전도관 교인들도 찾아와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고생한 끝에 차츰 기운을 차린 저는 몸이 조금 나아지자 문득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밖으로 나가 감리교회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가까운 장로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시어머니께서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교회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께서는 곧 하나님께서 이만제단에 오시니 함께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녔던 터라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시어머니 말씀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에 그 주 일요일 처음으로 이만제단을 찾았습니다. 저와 시어머니는 예배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단상 쪽을 바라보니 하나님 뒤로 환한 빛이 둘러 있는 신기한 광경이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설교 말씀은 아직 생소해서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날 이후 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어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평생 감리교회만 다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신앙의 토대가 바뀌고 진정한 구원의 길 찾아 그렇게 이만제단에 출석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종암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이삿짐을 채 풀기도 전에 종암동 제단의 전도사님을 집으로 모셔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에 이전 제단의 전도사님도 동행하셨는데, 제가 기성교회에 오래 다녔으니 새로운 곳에서 제단 일을 잘 배울 수 있도록 종암동 전도사님께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시어머니를 따라 제단에만 나갔을 뿐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종암동 전도사님께서는 부탁을 받으신 뒤 저에게 장례 예배에 함께 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당시 전도관에서는 상주가 원하면 누구든 전도관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면 그 모습이 환하고 아름답게 피어났는데, 전도관에서는 이렇게 변화되는 과정을 누구든 직접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죽은 쥐만 봐도 무서워 길을 돌아갈 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장례를 치르는 곳에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생명물로 변화된 모습을 보고 제단에 나오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장례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장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제단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고 궂은 일도 도맡으셨던 권사님입니다. 권사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씻겨 드린 고인의 모습이 살아생전보다 더 평온하고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특히 굳어있던 몸이 산 사람처럼 노긋노긋해진 것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생명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한번은 인근 제단 양금준 권사님의 시어머니 장례 예배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놀라울 정도로 진한 향취를 체험했습니다. 전도사님이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린 후 생명물을 적신 수건을 몸에 덮어두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앞에서 꽃을 흔드는 것보다 더 진한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향취를 모두가 똑같이 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뒤에 물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맡지 못한 반면, 정성을 다해 앞자리에서 예배드린 사람들은 진한 향취를 맡았습니다. 그 후 종암제단의 어느 집사님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충남 공주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들어섰을 때는 한여름 무더운 날씨 탓에 이미 시신이 부패해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드리고 정성을 다해 함께 예배드리자, 그 냄새가 순식간에 걷히고 고인의 모습이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당시 집 아래쪽에는 평소 생명물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해오던 감리교회 전도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방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입관을 마친 후 우리 전도사님께서 그에게 생명물로 고인이 피어난 모습을 똑똑히 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굳어있던 몸이 노긋노긋해지고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 장례 예배에서 목격하며 생명물의 권능 깨달아 하지만 더욱 잊을 수 없는 일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시누이의 장례 때 있었습니다. 시누이가 한때 기성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 그쪽 사람들이 몰려와 장례를 치르겠다고 했으나, 시어머니께서는 고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며 단호히 만류하셨습니다. 결국 입관은 시어머니의 간절한 바람대로 장위동, 보문동, 안암동 제단의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진행해 주셨습니다. 그때 입관을 마친 시누이의 모습이 얼마나 고왔던지 조문객들이 아가씨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입관 후에 일어났습니다.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한 고모부가 고인의 손을 잡자 그 자리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저는 하나님의 은혜는 성결하고 깨끗한 곳에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제단마다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전도 경쟁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저 역시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귀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1981년에 전농제단으로 옮겨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1986년 7월 24일 오랜 시간 중풍으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생전의 시어머니께서는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 계셨기에 바닥과 닿는 피부는 하루만 지나도 하얗게 물집이 잡히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상조회사에 연락하자 곧 직원들이 도착했는데, 그들은 중복 무더위라 사후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며 어머니 코에 솜을 막으려 했습니다. 제가 절대로 신체에 손대지 말라고 당부하자, 직원들은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느냐며 걱정 어린 말을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마침 저희 집에는 세종문화회관 합창에 참여했던 딸들이 받아온 생명물이 있었습니다. 상조회사 사람들이 돌아간 뒤 시어머니께 생명물을 컵으로 먹여드렸는데, 놀랍게도 한 대접이나 되는 많은 양이 입안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덕소교회 장례반 권사님들이 도착해서 어머니를 확인해 보시더니 너무나 예쁘게 피었다며 놀라워하셨습니다. 생명물을 먹여드렸을 뿐인데 생전의 깊은 주름은 펴져 있었고, 하얀 물집 자국들도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한여름 집에서 치르는 장례였음에도 집안 공기가 어찌나 시원하고 쾌적했던지, 사람들이 에어컨을 새로 들여놓았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장례 내내 세차게 내리던 비가 장지 이동 시에만 멈추고 모든 절차 후에 다시 쏟아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신앙이 깊지 않았던 제가 확신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수많은 장례 예배를 직접 지켜보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늘 뒤편에 서 있던 제가 고인이 살아생전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고 싶을 만큼 변화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이토록 귀한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죄의 근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보다 그저 자비로운 하느님께 용서받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과 마음,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자유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구원의 길이 이 귀한 진리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안찰을 받던 날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저의 죄를 지적해주셨고, 축복을 마치신 후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세계에 같이 가자”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슬성신과 생명물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은혜에 감사드려 저는 그동안 신앙촌상회를 운영하며 소비조합원으로 보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세월 생명물과 이슬성신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 체험들은 오늘까지 신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귀한 생명물로 죄를 씻어주시고 아름답고 성결하게 하시는 한없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구원을 향해 이 귀한 은혜 안에서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체험한 것은 인생 최고의 복”

1936년생인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세 되던 1955년이었습니다. 전쟁 직후라 공장조차 드물던 시절, 영등포 경성방직에서 기술을 배우던 중 같이 일하던 친구가 다급히 저를 불렀습니다. 지금 서울 남산공원에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부흥집회를 하시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결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막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터라 열흘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으나, 다행히 흔쾌히 허락을 받고 나니 가슴이 더욱 부풀어 올랐습니다. 전차표 한 장 값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그 설렘을 안고 저는 건빵 한 봉지를 손에 든 채 전차에 올랐습니다. 남산공원에 도착하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집회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저도 사람들 틈에 앉아 찬송을 따라 불렀습니다. 얼마 후 박 장로님이 등단하셔서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찬송을 부르는 내내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저는 하루이틀이 지나도 집에 갈 생각조차 들지 않아 준비해 간 건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집회장에는 내무장관을 지낸 윤치영 씨와 국방부 장관 부인인 홍은혜 여사 등 당대 유명 인사들도 참석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증거했습니다. 저는 당시만 해도 은혜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 찬송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영등포까지 먼 길을 걸어 돌아오면서도 전혀 힘든 줄 몰랐고,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여의도 백사장 근처에서 영등포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저 좋은 낙원 이르니 그 쾌락 내 쾌락일세”라는 찬송을 부르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들은 일어나라”라고 외치시자, 그 아가씨가 앞으로 나와 서툴지만 분명한 곡조로 찬송을 불렀고, 그 모습을 보며 저 또한 가슴 뭉클했습니다. 훗날 그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았을 때, 당시 은혜의 현장이 영화 필름처럼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초, 한강에서 다시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넓은 백사장의 천막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고, 자리를 놓칠까 봐 며칠씩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면 단을 중심으로 이슬 같은 성신이 뽀얗게 내렸고, 말씀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 때면 세상 어디에서도 맡아보지 못한 향취의 은혜가 진동했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저는 더욱 힘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집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밤이면 은혜받은 사람들이 단 앞으로 나와 저마다 체험을 생생하게 증거했고, 아침이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신 후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겹겹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시며, 한 명 한 명에게 빠짐없이 축복해 주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저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무척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기운이 없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앞뒤로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시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제 머리 위에 한참 동안 손을 얹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던 모습과 달리 눈에 띄게 기력을 회복했고, 지금까지 그 은혜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말을 못 하던 아가씨가 찬송을 부르고, 생명물로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 권능을 확신해 무더기 심방 때 안수 받는 순간 기침이 즉시 멈추고, 쇠약했던 몸이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해 집회를 다녀온 뒤 저는 더 이상 성결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집회 소식을 전해주었던 친구는 교회 목사들이 박 장로님을 비방한다며 저에게도 발길을 끊으라고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직접 보고 체험한 저로서는 그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로 기성교회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전부터 ‘2000년 전에 죽은 예수가 어떻게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막연한 구원의 길을 찾고 싶어 교회에 나간 것인데 마음 한구석은 늘 답답했습니다. 어떤 때는 예수의 형상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에 하나님께서 “예수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이 풀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은혜는 예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지난 집회 현장에서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에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으나, 한동안 소식이 끊겼습니다. 어디서 집회가 열리는지 알 길이 없었던 저는 답답한 마음에 수소문하며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원효로 구제단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원효로 구제단을 찾아가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 말씀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세계를 가고자 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고,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저는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따뜻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셨는데, 그 인자한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제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서울 시내에서 무더기 심방을 자주 다니셨습니다. 한 집에 10~20명씩 모여 하나님을 모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안수와 안찰을 해주셨는데, 이를 ‘무더기 심방’이라 불렀습니다. 안수 후에는 귀한 말씀도 들려주셨고, 어떤 사람들은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집으로 이동하시면 저희도 그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무더기 심방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평소 겨울만 되면 지독한 감기에 걸려 밤새 기침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옆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기침이 심해 전날 밤에도 한숨도 못 자고 심방에 참석했다가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자마자 거짓말처럼 그 즉시 기침이 멈췄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런 기침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옆집 아이의 다리를 물어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라 급한 마음에 생명물을 찾아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습니다. 얼마 후 아이어머니가 돌아와 상처를 확인해 보니, 조금 전까지 피가 맺혔던 자리가 어느새 아물어 흔적도 없이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 어린아이가 숨을 거두었을 때 생명물로 씻기자, 뽀얗게 피어 잠든 듯한 모습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생명물에 담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57년, 저는 이만제단이 세워지면서 그곳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한강 변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자리한 이만제단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일요일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언덕을 오르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앞서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뒤에서 등을 밀어드리며 그 길을 오르곤 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열린 장로장립식과 동대문 운동장에서 열린 전도관 체육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며,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냥 기쁘고 좋았던 기억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전하기 위해 의정부, 속초 등 먼 지역까지 찾아다녔습니다. 한번은 포천 송우리에서 전도하던 중, 기성교회 청년회장이 운영하던 타이어 수리점에서 그와 며칠에 걸쳐 성경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길과 하나님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는 선뜻 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가 난 목사가 그를 서울로 보내 6개월간 특별 교육까지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은 두 번째 토론에서도 역시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결국 며칠 뒤 그 목사가 저를 찾아와 “우리 청년회장을 6개월이나 따로 교육해 보냈는데도 답을 하지 못하니,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사과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도 경찰이나 군인들이 전도를 막으려다 오히려 전도되는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전도의 길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수많은 기사이적을 직접 목격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던 일은 제 인생의 가장 큰 복이었습니다. 그 모든 역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었음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죄를 벗어 그 세계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시며 의인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귀한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오늘도 죄에서 벗어나 맑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세계에 합당한 자격자가 되어 하나님 뵈옵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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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2000년대의 발자취

2000년대 천부교는 안팎으로 성장과 도약의 시기였다. 성전이 국내외 곳곳에 세워지고, 천부교를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가 제작되었으며, 아름다운 신앙촌이 조성되어 신앙과 조화를 이루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진실을 바로 세운 ‘MBC 사건’ 승소 2000년대의 시작은 천부교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99년 6월, MBC가 기획 시리즈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를 방영하며 교단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이에 천부교단은 법적 대응에 나섰고, 2000년 10월 27일 서울지법은 MBC의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 판결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언론의 왜곡 보도에 맞서 교단이 공식적으로 진실을 바로 세운 사건이었다. 이는 천부교를 올바르게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국내외에 세워진 신‧개축 천부교회 2000년대 들어 천부교는 전국 각지에서 새 제단을 세우거나 개축하며 신앙의 터전을 새롭게 다져 나갔다. 부산 광안교회, 제주 일도교회, 인천 숭의교회를 시작으로 울산, 동두천, 원주 등지에 성전이 세워졌고, 2001년 12월 23일에는 미국 뉴욕 퀸즈 지역의 뉴욕교회가 개축되었다. 1978년 뉴욕전도관으로 개관한 뉴욕교회는 개축을 통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며, 한국을 떠나 생활하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신축의 열기가 이어져 기장, 전농, 가야, 영주, 청평, 순창, 서마산교회 등에서도 새 제단이 완공되었다. 2008년 10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해외에서 전해졌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해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미국 워싱턴교회가 오랜 기다림 끝에 신축예배를 드렸다. 국내외에서 새롭게 단장한 성전들은 각 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널리 전하며, 진리의 빛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다. 천부교를 알리는 홈페이지 개설 2004년 4월 20일, 천부교 공식 홈페이지가 문을 열었다. 홈페이지는 천부교와 신앙촌에 대한 소개와 정보, 천부교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관, 예배와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온방송국, 어린이를 위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구성된 어린이 코너 등 다양한 채널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도 천부교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 코너는 학습과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2018년에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해 커뮤니티와 신앙신보 코너를 추가하고 소통과 접근성을 한층 강화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하나님 말씀과 천부교 행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써 천부교 홈페이지는 천부교를 알리는 중요한 창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 다큐멘터리 상영 2005년 추수감사절 전야 샘터공원에서 천부교 50년 역사의 발자취를 담은 다큐멘터리 <구원의 역사, 천부교 50년>이 상영되었다. 이 영상은 하나님께서 집회를 인도하시고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 전국으로 확산된 부흥 집회,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은혜를 받는 장면을 생생히 담아내 큰 감동을 주었다. 영상은 또한 정치·종교계와 언론의 핍박 속에서도 신앙촌 건설을 진두지휘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조명하며, “사람들은 기적이라 했지만 하나님의 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앙촌은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여 죄 안 짓고 깨끗이 생활하며 신앙을 키우기 위해 세워진 신앙인의 마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다큐에는 유엔 한국 재건단 콜터 단장이 소사신앙촌을 방문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위대한 힘에 의한 창조”라고 감탄한 증언도 담겼다. 또한 1998년 9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천부교인의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본 카르멘 코토 여사의 증언도 수록되었다. 코토 여사는 “장의사로 8년 반을 일했지만, 천부교 장례식에서 고인의 손과 몸이 제 살보다 더 부드럽게 변한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놀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코닥사의 축복 사진 감정서도 영상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역사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연출을 맡았던 이경태 감독은 “천부교인들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며, ‘정말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라면 인생이겠지만, 하나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3년마다 이어진 천부교 체육대회 1998년 소비조합 체육대회를 기점으로 3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체육대회가 자리 잡았다. 2001년 10월 7일, 신앙촌 제강운동장에서 ‘건강한 시온인 달리는 시온인’이라는 슬로건 아래 중부와 남부지역이 청‧백군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5km 건강 마라톤에서는 10대에서 70대까지 참가자들이 함께 뛰며 서로를 응원해 활기를 더했고, 각 팀이 준비한 화려한 응원전은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며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2004년 10월 3일에는 ‘희망찬 도전, 아름다운 화합’을 주제로 또 한 번의 체육대회가 열렸고, 2007년 10월 7일 신앙촌 대운동장에서는 ‘힘찬 도약, 함께 뛰는 시온인’을 슬로건으로 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500여 명의 선수들이 그림과 글씨, 다양한 동작으로 ‘신앙촌’을 표현하는 테마 응원전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지금도 천부교 체육대회에서는 경기를 통해 인내와 협동심을 기르고, 응원을 통해 하나 된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앙촌 조성 2006년 신앙촌에 대규모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조화롭게 어우러진 군락지와 식당 앞 분수대가 조성되었다. 사원들의 휴식처이자 축복일에는 교인들의 산책길로, 견학생들에게는 자연의 놀이터로 활용되는 두 공간은 신앙촌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2007년 5월에는 이슬성신절을 맞아 신앙촌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단장한 레스토랑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로 눈길을 끌며, 사원과 교인 모두의 휴식 공간으로 마련되었다.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br />
신앙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땀과 노력, 그리고 도전… 마라톤 주인공은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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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57>성수의 성스러움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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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침반] 벨기에에서 가톨릭 미사 방송이 취소되고 이슬람 예배가 방송되었다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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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춘추

[진리를 묻다] 죄를 말하지 않는 종교, 무엇을 구원하는가?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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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람들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신앙촌 다시 찾아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신앙촌 다시 찾아

1970년대 신앙촌 농구팀 선수로 활약했던 김옥자 씨가 이슬성신절 예배 참석을 위해 50년 만에 신앙촌을 찾았다. 의정부에 사는 동생이 신앙촌을 먼저 다녀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크게 달라진 신앙촌의 모습을 보며 김옥자 씨는 벅찬 감격에 차 있었다. “굉장히 마음이 들떠서 왔어요. 몰라보게 변한 모습에 많이 놀랐고, 아름답게 발전해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감탄하던 김 씨는 그가 어린 시절 땀 흘리며 운동했던 옛 건물, 지금의 학생강당 앞 롤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잠시 추억에 잠겼다. “롤러장 쪽 초소를 보니 너무 감격스러워요. 나무들 빼고는 옛날 모습 그대로예요. 옆 마당에서는 노루, 토끼, 닭도 길렀는데, 저희는 어리다고 구경도 자주 하곤 했어요.” 김 씨의 신앙촌 생활은 유년 시절 뜻밖의 기회로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할머니를 도와 들에서 일하며 자라던 김 씨는 전도관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신앙촌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서 저와 친구, 동네 언니가 신앙촌에 오게 됐습니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김옥자 씨는 너무 어린 나이 탓에 신앙촌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김 씨가 돌아가지 않겠다며 울며 매달린 끝에 겨우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맡게 되면서 신앙촌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15명을 뽑아 농구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때 선수로 선발되었던 것이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던 농구팀 선수들은 부산 구덕체육관이나 마산, 삼천포 등에서 실업팀 경기가 열리면 오픈게임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촌 응원단을 데리고 오셔서 경기를 지켜보셨다. “당시 하나님께서 본부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시다가 선수들이 다치면 ‘쉭’ 하고 축복해 주셨는데, 그러면 선수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어요. 하나님께서 일반인 오비(OB)팀과 경기를 같이 뛰실 때도 다친 선수들에게 똑같이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외롭게 자란 김 씨와 그의 친구를 유독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엄마 없는 친구와 저를 참 잘 챙겨주셨어요. 운동화부터 옷, 운동복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님께서 다 마련해 주셨고, 직접 어느 공장에 가서 옷을 맞춰 입으라고도 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아기들아 모여라’ 하시면 과잣값이라고 봉투에 3,000원씩 넣어 주셨는데 그때는 그 돈이 정말 컸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집회가 열릴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교인들이 가져온 생수통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고, 저희도 생명물과 눈 안찰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단에 서시면 주변으로 광채가 정말 대단했어요. 항상 주변에 빛이 나니까 ‘어떻게 저렇게 빛이 날까’ 늘 생각을 했지요. 하나님께서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납니다.” 19세 무렵, 더 큰 일반 실업팀에서 운동하고 싶다는 마음에 신앙촌을 떠났지만 농구를 계속하지는 않았다. 김 씨가 나가고 얼마 후 농구팀도 해체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사회에 나가 살면서 신앙촌과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김 씨는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다. “왜 사람들이 잘못 인식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그럴 때는 내가 신앙촌에서 직접 살았기 때문에 내가 증인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부분을 얘기해 줍니다. 본 그대로를 말해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50년 만에 다시 찾은 소회를 전했다. “살아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신앙촌에 있을 때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평생 살아오면서 신앙촌을 최고라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부모님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과 신앙촌 사람들에게 받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런 복을 어디서 또 받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랑은 여태껏 어디에서도 못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신앙촌 입구에 있는 하나님 사진을 보고 옛날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좀 더 빨리 이곳을 찾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이번 이슬성신절 음악순서에서는 시온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시온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로, 단원들의 레슨을 맡고 있는 베테랑 음악가들이 제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이슬성신절 무대에서는 비올리스트 박소영 씨도 함께했다. 박 씨는 부산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현재 지역 오케스트라 두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온오케스트라와의 인연은 현악파트의 레슨을 맡으며 오랫동안 시온오케스트라와 함께해 오고 있는 홍기정 씨의 소개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공부한 동기이기도 하다. “홍기정 선생님 소개로 비올라 레슨을 하게 되었고 작년부터는 단원들과 함께 연주도 하게 됐어요.” 처음 연습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쉽지 않은 곡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연습이 이어질수록 단원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꾸준히 연습에 임하는 태도가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는 부분도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다들 굉장히 열심히 연습하시거든요. 개인 연습도 꾸준히 하시고요.” 박 씨는 시온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강점으로 단원들의 성실함과 열정을 꼽았다. 각자 시간을 내어 연습하고, 전공자가 아님에도 수준 높은 곡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 곡은 개인 연습이 정말 중요해요. 각자가 충분히 준비돼 있어야 전체 합주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거든요. 시온오케스트라는 그런 노력이 잘 보이는 팀이에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시고요. 또 연습하다 보면 굉장히 밝고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이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서로의 호흡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잘 연주하는 것보다 함께 맞춰가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것을 넘어, 같이 숨 쉬며 호흡을 맞출 때 음악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지거든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해 온 박소영 씨는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매력으로 여러 악기가 하나의 선율 안에서 어우러지는 순간을 꼽았다. 혼자 하는 연주도 좋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울림 속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연주를 하면 곡 안에서 멜로디가 여러 악기를 따라 흐르거든요. 그런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이 참 좋아요. 그 순간이 오케스트라 활동의 가장 큰 즐거움이죠. 또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썼는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생각하면서 연주하면 음악이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이슬성신절 무대를 함께한 소감도 전했다. “많은 분 앞에서 연주하는 만큼 긴장감도 있지만,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 참여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함께하길”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함께하길”

이슬성신절을 맞아 여수교회 김은정 권사의 세 오빠인 김제영 씨(수원교회), 김제철 씨, 김유환 권사(여수 제2교회), 그리고 딸 김민지 씨가 함께 신앙촌을 찾았다. 어린 시절 천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이들은 성인이 된 뒤 각자의 삶 속에 흩어져 지냈지만 김은정 권사가 다시 교회에 나오면서 가족들도 하나둘 절기 행사에 함께하게 되었다. 김 권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들이 전국에 흩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절기 때 신앙촌에서 얼굴이나 보자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첫째 오빠가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하면서도 선뜻 용기를 못 내고 있길래 계속 이야기하고 설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생의 권유로 다시 교회를 찾게 된 김제영 씨는 현재 수원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종교에 가보자고 권해도 하나님은 한 분인데 왜 다른 데를 가느냐고 했지요. 제단에 나오지 못하고 있을 뿐 언젠가는 다시 와야 한다는 마음은 늘 가슴속에 있었습니다”라고 전했다. 김제영 씨가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았던 데에는 청년부 시절 직접 목격한 생명물의 권능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장례예배 때 관장님께서 돌아가신 교인분께 생명물을 수저로 떠 넣어드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대접 가까이 드시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들 4남매가 다시 신앙의 길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故조팔순 권사의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 김은정 권사는 “저희 어머니가 10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말씀을 여수교회 권사님께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끈을 놓지 않으시고 이끌어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김제영 씨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던 아버지도 어머니로 인해 하나님 집회에 한 번 참석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집회에 다녀오신 후 아버지가 진짜 하나님이라는 걸 느끼겠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정식으로 신앙생활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폐암으로 투병하실 때 생명물을 많이 드셨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평안히 가셨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가족 모두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현재 천안에서 식자재 유통업을 하는 김제영 씨는 거래처에 신앙촌 생명물 저염간장과 두부를 납품하며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동시에 얼마 전 소비조합 활동을 시작한 동생 김은정 권사에게 유통 경험도 아끼지 않고 전하고 있다. 그는 “물건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길이 열린다고 동생에게 자주 이야기합니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열 번, 백 번이라도 찾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도 많이 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일요일마다 예배드리러 가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고 했다. 식재료를 가져가 예배 후 교인들과 함께 나누며 자신도 교회의 일원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교회에 다시 나오고 신앙촌 물건을 쓰면서 제 마음도 조금씩 녹아가는 걸 느낍니다. 여건이 되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야겠구나, 이 길이 참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덧붙였다. 둘째 김제철 씨 역시 여동생의 권유로 몇 해 전부터 절기마다 신앙촌을 찾고 있다. 그는 “오랜만에 와보면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마음이 참 즐겁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지금도 천부교회에서 배운 대로 선을 베풀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제영 씨는 동생들에게도 절기만큼은 꼭 찾아와 하나님을 뵙고 가라고 당부한다. 가족들을 다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김은정 권사는 “오빠들도 어릴 때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분들입니다. 앞으로 하나님 안에서 끝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일에도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올 때 마다 고맙고 반가워

올 때 마다 고맙고 반가워

10여 년 전 전기 공사를 맡으며 신앙촌과 첫 인연을 맺은 김진숙 소장은 지금도 해마다 두번의 절기 때면 이곳을 찾고 있다. 김 소장은 “신앙촌에서 부르면 언제든 달려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여러 현장에서 일을 해왔지만, 신앙촌에서 함께했던 시간은 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을 진행할 때 신앙촌 사람들의 성실한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항상 사람을 편하게 대해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참 즐거웠고 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 소장은 오랜 세월 동안 신앙촌이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해 온 모습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신앙촌에 와서 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식품단지에 분수대도 생기고, 건물들도 새롭게 단장됐고, 도로도 잘 정비됐죠.” 공사가 끝난 뒤에도 인연은 이어졌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절기 때마다 초대해 주시고 챙겨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올 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것도 참 고맙고요.” 이번 이슬성신절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신앙촌을 찾았다는 김 소장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로 안부를 나누며 지낼 수 있다는 게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며 미소를 지었다.

주니어

이슬성신절 무대 빛낸 여학생들 “찬송의 기쁨 느꼈어요”

이슬성신절 무대 빛낸 여학생들 “찬송의 기쁨 느꼈어요”

이번 이슬성신절 음악 순서에는 맑고 순수한 음색으로 감동을 준 여학생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공연을 마친 부산지역 학생들과 가족의 소감을 들어봤다. 광안교회 이윤아 양(고1)은 이번 합창을 계기로 교회 친구들과 친해진 것은 물론 발성 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무대 올라가기 전 오케스트라 선생님들의 연주로 준비 찬송이 시작되었을 때 저희끼리 찬송을 불렀어요. 그때 ‘이 시간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시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예배 때보다 더 열심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합창 무대 나가기 몇 분 전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는데,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하율 양(초6)도 “함께 한마음으로 찬송을 드리다 보니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이번 합창을 통해 찬송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라고 했다. 서면교회 진예림 양(중1)의 초대로 이슬성신절 예배에 참석한 어머니 박선영 씨는 “학교에서 하는 작은 합창쯤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큰 규모와 수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림이가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해 보내고 있었는데, 오늘 직접 와서 보니 분위기가 좋아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다”라고 흐뭇해했다. 서면교회 지희영 양(중3)은 늘 동경하던 합창단 무대에 직접 서게 되어 꿈만 같다고 했다. “처음엔 긴장됐지만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니 마음이 진정되었고, 한마음으로 화음을 맞추니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관객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더 열정적으로 불렀습니다. 늘 화면으로만 보던 멋진 합창단에 제가 소속이 됐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합창을 통해 여느 축복일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고 싶습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

존재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

내가 느낀 기쁨, 친구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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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신앙촌 봄꽃 축제 스케치

2026 신앙촌 봄꽃 축제 스케치

손정숙 권사님 편(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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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미국·러시아 이어 강원 산지에도 ‘5월의 눈’

미국·러시아 이어 강원 산지에도 ‘5월의 눈’

미국 로키산맥 인근의 콜로라도주와 와이오밍주에는 최근 계절에 맞지 않는 강한 눈 폭풍이 몰아쳤다. 5일 새벽 미국 국립기상청은 와이오밍주 경계에서 콜로라도 스프링스 인근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구간에 겨울 폭풍 경보를 발령했다. 학교들이 휴교했고, 덴버를 오가는 항공편 수백 편이 지연 또는 취소됐다. 수만 가구는 정전 피해를 겪었다. 이틀 동안 60㎝가 넘는 눈이 쌓였으며, 덴버 인근 로키산맥 국립공원 롱스피크의 적설량은 약 85.8㎝에 달했다. 러시아에서도 4월 말 기록적인 폭설과 강풍이 이어졌다. 지난달 26일 밤부터 27일 아침 사이 모스크바에는 약 21㎝의 눈이 내렸다. 남부 사마라 지역에서는 강풍에 나무가 쓰러지며 최소 3명이 숨졌고, 초속 27m에 달하는 돌풍으로 건물 지붕과 전선이 파손됐다. 나무 740여 그루와 차량 80여 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주변 50개 마을에서도 전기 공급이 끊기고 교통 혼잡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이례적인 눈 소식이 이어졌다. 4일 해발 1,000m 이상의 강원 산간 지역에는 1㎝ 안팎의 눈이 쌓였으며, 평창군 발왕산 천년주목숲길 일대는 하얀 눈으로 덮였다. 5월 평창에 눈이 내린 것은 2021년 5월 이후 5년 만이다. 기상청은 이 같은 늦봄 강설을 ‘이상 저온 현상’의 한 사례로 보고 있다.

“340만 년 전 발자국, 인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다”

43만 년 전 나무 도구 발견

철저한 계획이 성취를 만든다

콩과 물이 빚어낸 담백한 음식, 두부

콩과 물이 빚어낸 담백한 음식, 두부

단백질과 무기질을 갖춘 대표적인 식물성 식품 두부 제조 방식과 수분 차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뉘어 ▲ 두부는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두부의 기원은 대체로 중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처음 두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명확하게 단정하기 어렵지만, 오래전부터 콩을 가공해 식품으로 활용해 두부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공통으로 인정된다. 우리나라에 두부가 언제 전해 내려왔는지는 정확한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목은집』의 「대사구두부래향」에 ‘두부’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고려 말 원나라와의 교류 과정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두부 제조법은 점차 정리되고 널리 보급됐다. 『세종실록』에는 조선에서 온 여인이 두부를 잘 만든다고 명 황제가 언급한 기록도 있어, 당시 두부 제조 기술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 콩은 어떻게 두부가 될까 두부는 콩을 가공해 만드는 식품이다. 먼저 마른 콩을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다. 이 과정에서 콩은 수분을 흡수해 부피가 커지고 부드러워진다. 이후 불린 콩을 곱게 갈아 콩물을 만든다. 간 콩물을 끓이면 단백질이 응고될 준비를 하게 되며, 이 상태에서 콩 찌꺼기인 비지를 걸러낸다. 남은 콩물에 굳히는 과정을 거치면 단백질이 뭉치면서 서서히 굳기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덩어리를 틀에 담아 눌러 물기를 빼면 일정한 모양의 두부가 완성된다. 이 과정들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온도와 시간, 수분 조절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다. ▲ 물기와 압착에 따라 달라지는 두부 두부는 같은 콩을 사용하더라도 제조 과정에서의 수분 함량과 압착 정도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다. 물기를 많이 남기면 순두부나 연두부처럼 부드러운 형태가 되고, 더 오래 눌러 수분을 제거하면 단단한 두부가 된다. 이러한 차이에 따라 두부는 찌개용, 생식용, 부침용 등으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수분이 많은 두부는 찌개나 국에 넣어 사용하기에 적합하고, 단단한 두부는 굽거나 부쳐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조리에 사용된다. 같은 재료라도 제조 과정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음식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담백하지만 영양은 알차다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콩을 원료로 해 단백질 함량이 비교적 높으며, 지방 함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농촌진흥청과 식품영양성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두부는 100g당 약 7~10g 정도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철분 등 무기질도 포함돼 있어 영양 공급에 도움이 된다. 특히 두부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은 뼈 건강에 도움을 주는 성분으로,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고 뼈의 손상을 줄이는 데도 관여한다. 또한 콜레스테롤이 없고 포화지방 함량이 낮아 식단 구성 시 활용도가 높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역시 콩 식품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소개하며, 두부를 붉은 고기나 가공육을 대신할 수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비교적 소화가 쉬운 식품으로 알려져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서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두부는 가정식은 물론 단체 급식과 외식업에서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 함께 섭취하면 좋은 식품 두부는 함께 곁들이는 재료에 따라 영양을 고루 보충할 수 있다. 먼저 두부와 양배추의 조합이다. 양배추는 비타민 C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위를 보호하고 장 건강을 돕는다. 이 둘이 만나면 단백질과 비타민, 식이섬유가 고루 갖춰져 속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영양 균형이 잘 맞는 조합이 된다. 특히 양배추의 식이섬유는 두부의 소화를 돕고, 포만감을 높여 과식을 막는 데에도 기여한다. 다음으로 두부와 감자의 조합이다. 감자는 탄수화물이 풍부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두부와 함께 먹으면 ‘단백질 + 탄수화물’ 구조가 형성되어 한 끼 식사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특히 활동량이 많은 날이나 성장기에는 부족할 수 있는 열량을 보충해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감자는 혈당을 비교적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식품이므로, 양을 과하게 섭취하기보다는 채소를 곁들이거나 조리법을 담백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 전통과 신선함을 담은 신앙촌 생명물두부 신앙촌의 ‘생명물두부’는 국내산 콩과 함께 원형 상태의 콩을 기준으로 Non-GMO 검사가 완료된 엄선한 수입 콩을 사용한다. 모든 제조 과정에는 맑고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콩을 가는 과정에는 전통적인 맷돌 방식을 현대 설비에 적용했다. 또한 소포제와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은 무첨가 포장두부로 생산된다. 생산 시설은 HACCP 인증 기준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저온살균 후 냉각하는 공정을 적용해 유통 과정에서의 위생과 보관 안정성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원료 선택부터 제조, 포장까지의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두부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가정용은 물론 다양한 조리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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