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열의와 담대한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자

뜨거운 열의와 담대한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자

9월 26일, 신앙촌에서 9월 여성회 축복일 예배가 있었다. 예배 참석자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및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행사에 참석했다. 예배 시작 전에는 기장교회 새교인들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영상이 방영되어 전도의 기쁨과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은애 관장(대구교회)은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98%가 엉터리임을 지적하시며 창세기의 오류, 성경 속 의인들의 악행, 예수의 허풍을 자세히 밝혀주셨습니다. 또한 행함이 없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는 구원이 없음을 일깨워 주시며, 죄를 씻을 수 있는 이슬성신과 생명물의 권능을 저희에게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우리에게는 많은 사람들을 죄의 길에서 돌이켜야 하는 전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뜨거운 열의와 담대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전도에 노력하고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라고 설교했다. 이날 있었던 9월 사업시상식에서는 식품사업 우수자 발표 및 특순, 식품사업 판매 목표 100% 달성 지역 시상, 신규 신앙촌상회 오픈 시상 등이 있었다. 음료 판매 목표 100% 달성상을 받은 태백지역 정미양 팀장은 “배달 고객들 중에 요구르트 런을 드신 후로 건강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며 저를 보면 무척이나 반겨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한결같이 런을 응원해주시는 고객들이 있어서 큰 힘을 얻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대학생·여청 세미나 및 중학생 모임 열려

대학생·여청 세미나 및 중학생 모임 열려

지난 9월 26일, 신앙촌에서 대학생·여청 세미나 및 중학생 모임이 있었다. 학생들은 사전에 방역수칙 및 안전 교육을 받고 신앙촌에 도착했다. 이날 송미애 관장(부평교회)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기록의 오류를 밝혀주시며, 성경의 핵심이자 총론격인 창세기가 허풍이므로 성경에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기성교회의 말이 모두 거짓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믿어온 예수와 성경의 거짓을 지적하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이슬성신의 권능을 베풀어 주시며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늘 가슴에 새기면서 하나님 바라시는 대로 자유율법을 실천하며 맑게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라고 설교했다. 다양한 파트별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대학생·여청파트에서는 대담, 미션 시상식, 스피치, 조별토론 등의 시간을 가졌다. 입사생에서 소비조합으로, 또 교역자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 온 민혜원 관장(동래교회)이 풀어나가는 대담과 이번 추석시즌 장유 선물세트 판매 사원으로 근무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스피치한 최서영 씨(대구교회)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조별토론 시간에도 사업과 전도 활성화에 대해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퀴즈로 풀어보는 식품여고, 언니와 함께하는 피구대회, 조별 미션 방탈출 게임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또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선배들과 어울리며 또래의 관심사인 진로, 교우 관계, 신앙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유년파트 학생들은 신정문길에서 산책을 하거나 킥보드를 타며 선선한 가을 날씨를 만끽했다.

[포토뉴스] 美 덴버 성당에 적힌 낙서, “사탄이 여기에 산다”

[포토뉴스] 美 덴버 성당에 적힌 낙서, “사탄이 여기에 산다”

10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지역의 가톨릭 교회 정문에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일요일 아침 미사 직전에 발견된 이 낙서에는 “사탄이 여기에 산다” 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현지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나 아직까지 용의자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토뉴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 글로벌 흥행

[포토뉴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 글로벌 흥행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전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기독교인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본 네티즌들은 “세상에서 보는 기독교인의 이미지가 그런 것 같습니다. 위선과 음흉함, 자기만족과 기만으로 차있는 모습이요.” 등의 감상평을 남겼다.

갈색 표지판이 향하는 곳

갈색 표지판이 향하는 곳

우리나라 도로에서 ‘순교 성지’라고 새긴 갈색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갈색 표지판은 관광지나 명소를 표시하는 것인데 특정 종교에서는 교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순교’로 명명하고 그 장소를 관광 명소로 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톨릭은 그 성립부터 순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서기 300년대, 로마의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서기 361~363)가 유대교 신전을 수리하게 하자 가톨릭 신도 세 명이 밤중에 유대교 신전에 들어가 신상들을 부수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예루살렘 주재 로마 총독이 신상 파괴범들에게 회개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어떤 고통이라도 기꺼이 겪겠다.”고 큰소리치다 사형에 처해졌다. 폭력과 범죄를 저질러 처형당한 자들이지만 가톨릭에서는 로마 제국의 압제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순교자로 추앙하고 있다. 가톨릭을 철저히 탄압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다. 1868년 독일인 E.J.오페르트의 도굴 미수 사건이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페르트는 “조선의 가톨릭 탄압에 보복한다.”면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기 위해 조선에 침범했다. 이때 그를 안내한 자들이 프랑스 신부 페롱과 조선인 가톨릭 신도들이었다. 남연군의 묘광이 견고하여 결국 미수에 그치기는 했으나, 가공할 범죄를 공모했다는 점에서 다른 순교 행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01년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사건 또한 이러한 패턴을 보여 준다. 당시 제주도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도민들이 신성시해 온 신당을 부수고 도민들의 금품을 갈취했을 뿐 아니라 성범죄까지 저질렀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마을 유지들이 나섰으나 가톨릭 신도들은 마을 유지와 그 친척까지 천주교 성당에 잡아 가두고 고문을 하다 죽였을 뿐 아니라 항의하는 민중을 향해 총을 발사해 죽이기도 했다. 분노한 민중들은 황사평이라 불리는 넓은 벌판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결국 가톨릭 신도들을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처형이었으나 그들이 믿던 종교에서는 이 죽음을 순교라 추앙하고 있다. 지금 제주도의 황사평은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순교자 묘역’에는 처형당한 가톨릭 신도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이야말로 갈색 표지판이 알려주는 성지와 순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해성사 비밀이 법보다 위? 아동 성학대가 불러온 논쟁

고해성사 비밀이 법보다 위? 아동 성학대가 불러온 논쟁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지난 70년간 33만 건에 달하는 아동 성(性) 학대가 벌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피해 아동의 숫자는 최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프랑스 가톨릭 성 학대 독립조사위원회(CIASE) 장 마르크 소베 위원장은 “가해자는 가톨릭 사제를 포함한 평신도, 교회 교사 등 3200여 명의 소아성애자들이며, 조사된 가해자 수는 최소한의 추정치”라고 밝혔다. 또한 33만 건에 이르는 가톨릭 내부의 아동 성범죄 건수를 공개하며 사건을 인지한 성직자는 이를 검찰에 알리라고 권고했다. 이에 신자가 고백한 내용을 누설하지 않는다는 고해 비밀 유지가 프랑스 법보다 우위에 있느냐를 두고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 당국이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에릭 드 물랭 보포르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앵포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경찰에 신고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해성사 비밀유지가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 법 위에 있다”며 “그래야 신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바티칸이 지난해 새롭게 발표한 성직자 아동학대 사건 처리에 관한 지침과 일치한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가브리엘 아탈 정부 대변인은 7일 “프랑스에서 프랑스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호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8년 호주 연방정부는 ‘기관의 아동성학대 대응에 관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5년간의 조사 끝에 아동 성학대 주요 가해 집단으로 가톨릭 사제를 지목했다. 호주 정부는 성직자가 고해성사 중 아동 성 학대와 관련한 내용을 들었을 경우 신고하도록 권고하였으나, 가톨릭계가 이를 거부했다. 이에 호주에서는 성직자들이 고해성사에서 아동 성학대 행위를 듣고도 이를 숨길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 중이다.

남성회 축복일 정규 예배 드려

“2022 신앙촌 달력 사진 공모전 개최”

전 세계의 8월,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가벼운 장을 위한 요구르트 런!

신앙신보 구독신청은 각 교회별로 1월 24일까지 받습니다.

총회 소집 공고 –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교인 등록 추가 공고 –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

신도 등록 추가 공고- 한국천부교신도연합회

신앙체험기

“이 땅에 오셔서 한없는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

“이 땅에 오셔서 한없는 은혜 베풀어주신 하나님”

아름다운 소사신앙촌 모습은 놀라워 이만제단 특전대 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많은 청년들이 건설대원으로 지원하게 되었고, 저 또한 은혜 받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 꼭 건설대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57년 11월 신앙촌 건설이 시작되었고 저는 1958년 6월에 소사신앙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많은 건물이 지어져 있던 신앙촌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서울 시내만 해도 곳곳이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공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판잣집이 들어서 있어 형편없었습니다. 소사신앙촌도 건설 이전에는 황무지같이 메말라 있던 땅이었는데 그곳에 주택과 공장, 학교와 각종 공공시설 등 현대적인 건물들로 멋지게 채워진 모습은 당시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었습니다. 건설하는 동안 많은 은혜 허락해 주셔 3동 주택 공사를 마무리하고 학교 건물을 지을 때였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사람 키를 넘을 정도로 큰 기계 두 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시멘트 가루를 넣어 시멘트 벽돌을 찍어내고, 하나는 백토와 석횟가루를 넣어 흙벽돌을 찍어냈습니다. 벽돌을 만들기 위해 기계에 재료를 넣고 물과 함께 섞으려면 기계에 달린 손잡이를 재빠르게 돌려야 했습니다. 아주 힘이 센 사람들이 앞장서서 기계를 돌려 벽돌을 찍어주면 그걸 운반부가 받아서 굳히는 곳으로 한 장씩 조심히 옮겼습니다. 저는 운반 담당이어서 찍어준 벽돌을 운반을 했는데 흙벽돌이 유난히도 무거워 2장 정도씩 지게에 얹어 건물 짓는 곳으로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힘을 내서 일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께서 오셔서 건설대원들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안수해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 차례가 되어 안수를 받는데 하나님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 솜뭉치처럼 사뿐하게 느껴졌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 마냥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건설대 언니들과 함께 은혜 받은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소사신앙촌 노구산 정상에 오만제단을 짓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진두지휘 아래 제단 터를 다지던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설대원들을 빨리 모이라고 하셔서 모두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신 모습으로 한 명 한 명 안수해 주셨고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 편안히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인 1958년 12월 27일.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던 순간 ‘아, 떠나시기 전에 오히려 우리에게 힘을 주시려고 부르신 거였구나’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도관과 신앙촌을 세워 주시고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왜 옥에 가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조용히 제자리에서 변함없이 따라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전국에 전도관이 세워지고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몰려오자 위기감을 느낀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결탁하여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시게 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해 베풀어 주신 끝없는 사랑 그해 겨울에 박한윤 관장님이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으로 발령받아 오셨습니다. 그때 오만제단은 건물을 다 짓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때때로 관장님은 하나님을 뵙고 오셔서 그 말씀을 전해주셨고 저희는 더욱 마음을 가다듬으며 힘을 내고자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하나님께서 머리맡에 물을 떠 놓으면 영적으로 축복을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영어의 몸이 되셨음에도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그 사랑을 헤아릴 길이 없었습니다. 또 한번은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 교인들이 지붕 없는 노천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걱정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천 앞바다가 얼어붙는 영하 20여 도의 혹한 속에서 고된 옥중생활을 하시면서도 오직 가지들만을 생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생각을 하니 저희들은 울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시험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건설대원과 소사신앙촌 식구들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제단 건설에 힘을 쏟아 열심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관장님이 부임하신 지 석 달 만에 오만제단을 완공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년 4개월의 억울한 옥고를 치르시고 1960년 3월 26일 하나님께서 출감하셨습니다. 만 명이 넘는 소사신앙촌 주민들은 새벽부터 오만제단에 앉아 하나님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숙연했던 그 시간. 오만제단 단상 앞에 앉아 저도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드리며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워 눈물이 마를 날 없이 보냈던 저희들이 드디어 하나님을 뵙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몸소 받으신 고통의 크기를 알 길이 없어 애통할 따름이었습니다. 마침내 오만제단에 등단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처럼 평안하고 인애하신 모습으로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죄 짐을 지셨네.” 하는 찬송을 인도해 주셨고 따라 부르던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였습니다. 서울 이만제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특전대를 소사신앙촌으로 부르셔서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소사신앙촌 건설대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특전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눈과 배에 안찰을 해주시며 하나님께서 “단발머리로 왔었지?”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나왔지만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제가 이만제단 안내부원으로 활동을 할 때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처음 안찰을 받았던 그때를 기억하시고 말씀하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나 이번에는 소사신앙촌 건설대원들에게 안찰해 주신다고 하셔서 그때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오만제단 단상 쪽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한 명씩 안찰해 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고 나자 마음이 너무나도 평안하고 기쁨으로 가득해져 또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또 얼마가 지난 후 이번에는 하나님 댁에서 건설대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문 앞까지 갔다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되돌아 나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건설대원들을 이렇게 자꾸 불러주시는 이유가 아마도 어려움 속에서도 더 큰 힘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 죄를 씻어 구원을 얻고자 건설대원으로 참여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을 뿐이었던 저희들에게 한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예배 시간에 두 번째 울타리 덕소신앙촌 건설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옥고를 치르시고 돌아오신 후 한시도 쉬지 않으시고 태산 같은 일을 계획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은혜를 통한 깨달음,  변화를 이끌고 새 삶을 허락하시니”

“은혜를 통한 깨달음, 변화를 이끌고 새 삶을 허락하시니”

저는 1939년 경남 양산군 물금읍 서부리에서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돌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故 윤성조 권사) 슬하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는 목화 농사를 하며 집안을 보살피느라 힘겨우셨을 텐데도 그런 내색 없이 저희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셨고 막내였던 저는 특히 아껴주셨습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라는 제가 안쓰러우셨는지 늘 곁에 두셨고 이웃의 전도로 장로교회 다니신 후로는 예배마다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6·25전쟁으로 장남을 잃은 어머니의 가슴앓이 제가 열두 살 되던 해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집안의 기둥인 오빠가 학도병으로 입대하게 되자 어머니는 날마다 따뜻한 밥을 아랫목에 넣어두시며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셨습니다. 얼마 후 오빠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어머니는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두 살 터울의 순일이 언니는 “어머니가 전쟁터에 나간 외아들 걱정에 마음 졸이시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시다 결국 전사 소식을 듣게 되셨고, 그 충격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셔 심한 가슴앓이로 몸까지 쇠약해지셨다.”며 상세히 기억하는데 저는 오빠 때문에 힘들어하신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애를 태우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머니에게 위로 한 번 못 해 드린 저는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전도관은 장로교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껴 어느덧 시간이 흘러 1955년이 되었을 때, 첫째 둘째 언니는 출가하고 어머니와 저는 고향 살림을 정리해 셋째 언니(이순일 권사/現 기장신앙촌)가 있던 서울 신촌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서울 생활에 적응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어머니도 직장을 얻어 일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이듬해인 1956년 10월 즈음 언니가 “구원을 얻으려면 전도관에 가야 한다.”며 같이 가 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언니가 전도관에 다니고 있었는지도 몰랐고 서울로 와서도 어머니와 함께 일요일마다 장로교회를 가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언니의 말이 난데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언니의 간절한 설득에 ̒가족끼리 같은 길을 가야지’하며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언니와 함께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포 산언덕, 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닦은 곳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둔 임시 예배처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빼곡히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과 그 넓은 규모는 내심 놀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어느새 안내하시는 분이 오셔서 처음 온 사람이라고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천국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라는 찬송을 부르며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함께 찬송을 하는 중에 찬송가 가사가 와 닿으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장로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지만, 찬송 시간은 그저 형식적인 순서인 줄 알았는데 전도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찬송을 부르니 제 마음도 뜨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예배가 시작되어 등단하신 분이 찬송과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찬송과 말씀이 귀에서 왕왕 울려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찬송을 잘 따라 불렀는데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귀가 아픈 것은 아니고, 어떤 찬송을 불렀는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는 웬만한 찬송가는 모두 꿰고 있는데 찬송도 기억이 안 나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전도관에 간 날 그 많은 사람이 진심으로 간구하는 모습에 뭉클한 감동 받아 전쟁으로 아들 잃고 가슴앓이 하시던 어머니 새 소망을 갖게 되시고 소극적이던 나는 귀한 은혜 받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앞장서고 싶어져 하나님 은혜를 깨닫고 전도관으로 그날 이후 어머니는 느끼신 바가 있으셨는지 장로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말고 전도관으로 다니자고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원효로에 있는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일요일에는 마포의 전도관 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전도관을 다니면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것과 마포에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전도관을 건설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공사장에서 일을 돕는 것을 보게 되어 어머니와 함께 나가서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도 가슴앓이로 고생하고 계셔서 공사를 돕는 것이 힘에 부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거기 가면 기쁘고 좋다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일 새벽예배에 다녀오시면 얼굴이 밝아 보이셨고 웃으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큰 돌덩이가 가슴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항상 답답했는데, 하나님을 알고는 싹 다 없어졌다.”라고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어 새벽 4시부터 통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아랑곳없이 어머니는 눈만 뜨면 새벽예배를 가셨습니다. 들리지 않던 말씀이 뚜렷이 들리게 돼 어머니를 따라 원효로 전도관 새벽예배에 몇 번째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등단하셔서 설교 말씀을 하시는데 ‘동방의 한 사람’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이사야 41장의 ‘동방의 땅 끝, 땅 모퉁이, 해 돋는 곳’이 한국을 가리킨다고 하시며 동방의 한 사람이 나타나는 곳은 틀림없이 한국이라고 하셨습니다. ‘동방의 한 사람이 어디서 나타나며, 어떤 역사를 하시는지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껏 몰랐구나’ 하며 생각했습니다. 그제야 지금껏 들리지 않던 말씀이 선명히 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깜깜하게 가려져 있던 눈이 환하게 밝아진 듯 시원했습니다. 그때부터 말씀이 뚜렷이 들리며 예배 시간마다 새롭게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설교 말씀에 ̒죄가 막히면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하셔서 ̒그래서 나도 들리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은혜받으며 의미 있게 보낸 학창시절 1957년 이만제단이 완공되면서 저는 서울동명여고에 다니며 이만제단 학생 성가대에도 들어가고 학생 안내부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안내부원들은 일요일이면 이만제단 2층 사무실에 모여 찬송과 기도를 드린 후 안내를 하러 나갔습니다. 저희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이만제단 언덕길을 올라갈 수 있게 밀어드리는 일이며, 더울 때는 전차 종점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오시는 분들을 위해 마실 물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이만제단 안내부원들을 따로 부르셔서 안찰을 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안찰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순서가 되면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눈과 배에 손을 살짝 대시며 안찰해 주시고 나자 몸이 날아갈 듯이 아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안찰을 통해 은혜를 주셔서 그토록 몸이 가벼워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은혜받은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1957년 5월 9일. 이만제단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특별전도대’가 조직되었습니다. 특전대는 당시 이슬성신과 감람나무를 증거하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때 저도 특전대에 들어가 열심히 전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평소 소극적인 저였지만 은혜 받는 일에는 앞장서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무더기 심방’을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심방을 하신다 하면 3, 4백 명이 무더기로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보고 ̒무더기 심방’이라고 불렀습니다. 특전대 밴드부의 관악소리가 울려 퍼져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여자대원들은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해 설명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한번은 특전대 임원들이 장소를 정해 팀별로 전도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6⋅25전쟁 때 폭파된 한강 철교를 넓적한 고무판으로 임시로 연결해 두었는데 그 밑 모래사장으로 노방 전도를 나갔습니다. 특전대 밴드부가 트럼펫을 불고 힘찬 반주에 맞춰 신나게 찬송을 부르고 있으면 다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면 저도 모르게 용기가 솟아나며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또 기성교회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성경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 먹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전도하는 기쁨으로 달리던 저희들은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저희 힘으로 전도비를 마련해보려는 계획도 했습니다. 자수를 놓아 판매하기 위해 친구들과 열심히 만들어서 드디어 자수를 통해 수익을 얻어 전도비에 보태게 되었을 때 참 뿌듯했습니다. 이렇게 특전대원으로 전도 활동을 하며 하나님 말씀을 더욱 깨닫게 되었고, 신앙이 자라는 시간이 되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신앙촌”을 소사에 건설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신앙체험기 특집

천부교회를 찾아서

뉴스
“청년 대집회에서 구원의 참 길을 밝히시다”

1980년 8월 17일, 하나님께서는 만여 명의 청년들이 운집한 집회에서 놀라우신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그해 4월 5일 처음으로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 후 청년들을 위해 친히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말씀해 주신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하나님께서는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행함이 없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또한 이슬성신과 생명물의 권능으로 죄를 씻어 아름답게 화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980. 8. 17. 전국 청년 대집회 말씀 중에서 이 역사를 시작한 때부터 기성교회 전체는 구원이 없다 하는 것을 말해 온 것이에요. 그것을 우리 교인들이 확실히 알게 된 것이에요. 오늘 기성교회에서 왔든지 새로 나온 사람에게는 심히도 어렵겠지마는 알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에요. 왜? 진가(眞假)라는 것이 이제 드러나는 때가 되어지는 것이에요. 그 기성교회 전체 틀리고 모순투성이고, 예수가 구원을 모르는 거예요. 구원이라는 게 어떻게 얻는 것도 모르고 예수가 날 믿어라 그런 거예요. 구원을 얻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날 믿으면 영생 얻어.” 하는 허풍과 엉터리가 어디 있어요. 그럼 이제 생수에 대해 잠깐 말하는 것이에요. 요즘 그 플라스틱 병에 마개를 막고 보자기에 싼 것 쭉 놓으면 3층에서, 한 10여 미터 위에서 내가 축복하는 것이에요. 생수를 죽은 사람에게 바르면, 해골에 껍질 씌운 거와 같은 그런 상태에, 살아 있을 적의 100배 보기 흉한 그 모습이 생수를 바른 다음 한 두어 시간 지나면 은혜의 살이 돋는 것이에요. 보기 좋게 살이 돋는 거예요. 입술이 쭈그러지고 자줏빛이 나고 허옇던 것이 보기 좋게 피어 가지고 구찌베니(くちべに:입술연지) 바른 것같이 화하는 것이에요. 얼굴이 살아 있을 적의 100배 보기 흉하던 것이 100배 아름답게 화하는 것이에요. 귀중한 것이 생명물인 걸 아세요. 시체가 변한다는 것은 죄가 씻어져 맑아진다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보여지는 거예요. 그렇게 시커멓고 살아 있을 적의 100배 흉악하게 보이던 그 모습이, 은혜의 살이 돋으면서 아름다운 걸로 바꿔진다는 그것은 죄를 해결 지어 화해지는 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고로 아름다움으로 화하게 하는 이슬 같은 성신이에요. 최고의 성신이에요. 그럼 이제 믿는다는 말은 떼 버려라 하는 것이에요. 믿는다는 건 어느 한계까지인가 하면, “그 사람 법 없어도 살아. 그건 절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신용할 수 있다는 정도예요. 한계가 그것까지예요. 하나님 믿는다 하면 ‘하나님이 틀림없는 분이야.’ 하는 것까지지, 그 틀림없다는 것만 가지고 구원 못 얻어요. 여러분들, 이거와 같아요. 지금 불란서 파리에서 한 사람이 왔어요. “당신, 내가 믿습니다. 당신 1,000만 번 믿는다고 하면 내가 불란서 갈 줄 믿습니다.” 하면 불란서가 가져요? 비행기 표를 사서 가야 돼요? 비행기 표를 사서 가야 되지요. 그런고로 초창기에 말한 게, 여러분들 목욕해야 때가 지워지지요? 그런데는 기성교회와 전도관을 목욕탕이라 하고 비유를 했어요. 그런데는 이 영의 죄가, 때가 씻어지려면 성신의 은혜가 내려야 되지요. 그런고로 기성교회 목욕탕은 물이 하나도 없는 목욕탕이라 그거야. 여러분들, 물 하나도 없는데 수건에다가 비누질하면 때가 씻어져요? 물 없는, 마른 그 속에 아무리 해야 소용이 없다 하는 게 되는 거예요. 그럼 이제 씻는 방법까지 알았으니까 그거 가지고 되나요? 방법을 알고 여러분들 목욕탕에 물이 줄줄줄줄 넘치니 “내 죄 씻어지는 방법 알아, 때가 씻어지는 방법 나 알아. 수건에 비누를 묻혀 가지고 물에 담가 가지고 하면 때가 씻어져.” 그러고 밖에서 자꾸 말만 하면, 물에도 안 들어가고 씻지도 않으면 때가 씻어져요? 안 씻어져요? 그럼 하나님 믿는 걸로 돼요, 그 은혜로 씻어 주길 바라야 돼요? 씻어 주길 바라는 것만 가지고 돼요, 씻어 주심을 얻어야 돼요? 씻어 주심을 얻어야 구원 얻는 거예요. “빗속에서도 꽉 메운 제단 안팎의 그 감격” 당시 청년 대집회를 보도했던 신앙신보 기사 1980년 8월 17일에 있었던 ‘청년 대집회’. 당시를 보도한 신앙신보에는 ‘빗속에서도 꽉 메운 제단 안팎의 그 감격, 오랜만의 성신의 단비에 부푸른 열기로 노구산 정상엔 은혜 꽃이 만발’이라는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운집한 청년들 사진이 실렸다. 이날 오만제단이 꽉 차서 ‘마룻장이 깨졌다’고 하는 등 청년 대집회의 열기가 대단했다.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말씀을 듣고 난 후 ‘말씀의 소중함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라는 중론 속에서 ‘생명물의 가치를 재삼 느꼈다’,‘ 놀라우신 하늘의 말씀에 감격스럽다’라는 등의 청년들 반응이 있었다. 집회 참가자격을 청년으로 국한 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던 듯하다. “20여 년간 오만제단 앞자리에서만 예배를 보아온 할머니들이 자기 자리에(?) 이른 아침부터 얌전히 앉아 있어서 아무리 나가 달라고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오만제단 관장의 설득으로 일단락되었다.”라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1980년 8월 25일 자 신앙신보. 청년 대집회를 회고하며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말씀에 감격 1980년 8월 17일! 예수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주신 그날!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감격스러웠던 그 순간을 되짚어봅니다. 1980년 4월 5일 하나님의 특별 말씀을 듣지 못한 청년들을 위해 전국 청년연합회(회장 최정모)는 하나님께 “소사 연수회에 청년 3천 명을 모으겠습니다. 꼭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건의드리자, 하나님께서는 “5천 명을 모으라. 그럼 내가 나가마.”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만 5천 명을 모으려니 전국 청년연합회는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면서 배운 교훈은 ‘순종, 순종 그 자체이지 않은가’라며 D-데이를 앞두고 전국 청년연합회는 청년들을 집회에 참석시키기 위해 전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제단의 청년들은 이날을 위해 새벽 기도회와 매일 심방과 전도로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전국 청년연합회 교육부장으로 있으면서 북부지역 협의회 최동욱 제2중앙 청년회장과 당시의 성북구와 도봉구 내 가내수공업을 하는 공장들을 매일 저녁 방문하며 청년들에게 8월 17일 하나님 특별집회에 가자고 설득하였습니다. 제가 속한 제2중앙 전도관은 버스 2대가 목표였습니다. 청년만 100여 명을 모으는 것이 처음에 불가능일 거라고 생각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생겼고 수줍어 말 한마디 못하던 제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청년들이 모두 참석하겠다고 호응을 보였습니다. 드디어 8월 17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는 최 회장과 내심 불안했습니다. 비가 폭포수같이 쏟아지고 있는데 ‘과연 이들이 올까?’라는 노파심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악천후임에도 불구하고 신일 고등학교 입구에 세워둔 버스에 약속했던 사람들이 모두 왔습니다. 모인 사람을 버스 2대에 태워 보낸 후 자리가 모자라서 타지 못한 사람들은 버스와 전철로 데려갔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순종하면 무조건 이루어짐을 이제 또 체험했습니다.”라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오만제단은 인파들로 차고 넘쳐 바깥에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전도관 청년 신앙 연수회’에서 하나님께서는 ‘감람나무가 구원의 주인공임을 밝히시고, 성경이 오류투성이임과 구약의 선지자들의 추한 모습’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설교 말씀에 그날 모인 만여 명 이상의 청년은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그날 이후 전국 청년회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소개하는 전도책자를 인근의 기성교회를 방문하여 나누어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셔서 이를 놓고 또 걱정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말씀이라 책자를 나누어 주러 가서 ‘혹시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습니다. 청년들의 신앙 상태를 아신 하나님께서 “내가 영적으로 모두 꺾어 놓았어. 나가봐.”라고 하셨습니다. 인근 교회의 목사나 전도사를 만나서 “당신들의 교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전도책자를 나누어 주자 어느 누구도 반항 없이 순순히 책자를 받으며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 또 한 번 하나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만이 최고임을 실감하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종민 권사/서대문교회 놀라운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기까지 1980년 교역자였던 저는 당시 서울에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청 파트 총책임자였는데 청년 대집회 소식을 들은 후 5,000명을 참석시키기 위해 여청 파트 임원들과 밤낮으로 심방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전도했던 여청 파트 임원들은 활발하게 움직이며 무서운 기세로 나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집회 당일 아침.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지만 청년들을 실은 버스와 트럭이 줄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차바퀴가 진흙탕에 빠질 정도로 질퍽한 땅을 밟으며 노구산 정상을 향해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집회에서의 하나님 말씀은 너무나 획기적이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성경의 의인이라는 인물들의 죄상에 대해서는 단계별로 밝혀주셔서 이미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날 예수가 구원을 줄 수 없는 존재라고 발표하신 말씀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기성교인 청년들도 너무도 정확한 말씀에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마무리되고 하나님께서 여청 임원들을 만나자고 하셔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굉장히 기쁜 모습이셨고 여청 부회장에게는 “오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로 많이 의지했지”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여청들은 밤을 새워 낮에 들은 말씀을 놓고 열띤 토론을 했고 전도사로 나가고자 결심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청년 대집회와 청년 신앙 연수회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조남일 퇴임관장/기장신앙촌

하나님 말씀 경전<br />
하나님 말씀 경전
신앙신보 속 천부교 역사
초창기 천막집회와 생명물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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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 종교 탐구 <8> 고고학적인 발견과 성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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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과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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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포럼

이제부터 화합할 때이다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바울의 죄상을 밝히신 하나님
천부교 바로가기

글과 사람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일찍이 알아서 얼마나 좋으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일찍이 알아서 얼마나 좋으세요”

코로나19로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지금. 전국의 천부교회로 찾아오던 새교인들은 어떻게 신앙을 키워가고 있을까. 지난 9월 여성회 축복일에 방영된 기장 천부교회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신앙 안에서 진실하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은혜 받을 기회를 만들고 그 귀한 시간 속에서 가치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기장 천부교회의 이야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 기뻐하시는 새교인들을 보면서 일요일이면 예배 시간에 참석하신 새교인분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그중에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분도 계시고 열심히 노트에 적어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나도 모르게 찬송가가 흘러나온다.”라고 기뻐하시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보내주셔서 마음도 녹여주시고 이분들과 함께해 주심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찬송을 부르며 기뻐하시는 새교인분들 모습을 보면서 찬송을 많이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손님처럼 느껴졌던 새교인들이 어느새 우리 식구처럼 가까워지고 하나님께서 천부교회에 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볼 때면 새삼 놀라게 되고, 용기가 생겨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구원을 향한 길을 열어 주시고 은혜로 함께해 주시니 앞으로도 교인분들과 힘을 합쳐 하나님 말씀과 은혜를 전하는 기장 천부교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 스스로 은혜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천부교회 4년 전쯤 천부교회에 처음 갔을 때 저는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해서 찬송을 부르지 못했어요. 그래도 교회분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예배에 계속 참석하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하나씩 생기더라고요. 천부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스스로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다른 종교에도 한 번씩 가 봤었는데 무조건 믿으라는 식이라 오래 다닐 수가 없더라고요. 천부교회에서는 예배 전에 기도를 드리며 마음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진솔함이 느껴졌어요. 그 평안함 속에서 부르는 찬송이 저의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찬송을 부를 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마음 같아 가사를 생각하면서 부르게 되고 그렇게 찬송을 하니 큰 감동이 되었어요. 예배 시간에 들은 하나님 말씀은 가슴에 콱콱 와닿는다고 할까요, 박힌다고 할까요? 집에 돌아가서도 잊히지 않을 정도였어요. 한번은 자유율법에 대해 배우고 나서인데 지나가는 사람이 담뱃갑 비닐을 벗겨서 땅바닥에 버리는 걸 보게 되었어요. 문득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일인데 이제는 작은 것도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이렇게 말씀이 생활에서 되뇌어져 저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기니 감사한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관장님께서 이슬성신이 담긴 생명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셔서 굉장히 놀랐어요. 그 생명물을 시신에 바르면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하셔서 ‘내 눈으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루하루 천부교회에 가는 날이 많아질수록 마음에 감동이 쌓이고 저 자신이 신앙적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져요. 앞으로도 좋은 변화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 신앙촌 상회에서의 특별한 만남 3년 전쯤이었어요. 저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강순희 권사를 신앙촌 상회에서 여러 번 봤었는데, 어느 날 문득 강순희 권사가 저더러 천부교회에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천부교회에 대해 전혀 모르기도 하고 열렬한 불교신자여서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자꾸 권유하는 것에 못 이겨서 한 번 천부교회를 따라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예배시간 설교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되고 맨송맨송한데 다음 주 일요일이 되니 강순희 권사가 또 가자고 하더라고요. 천부교회가 생소하고 특별하게 느끼는 점도 없었지만, 자꾸 권유하니 따라가게 된 거지요. 말씀이 이해되니 교회가 좋아져 그렇게 천부교회를 나가기 시작해서 두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말씀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이슬성신에 관한 말씀을 듣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성신을 받으면 이슬비처럼 보이기도 하고 향기로도 맡아진다.”라는 거예요. 진짜 그럴 수가 있나 싶은데 설교 말씀을 계속 듣고, 또 교인들이 은혜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그리고 이해가 되니 천부교회 가자고 안 해도 계속 나가고 싶어졌어요. 천부교회 가면 너무 좋고 마음도 편안해져서 그때부터 일요일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쭉 나가게 됐어요. 한번은 일요일에 불교 행사를 가야 하는데 전혀 가고 싶지 않고 바로 ‘천부교회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옆에서 누가 시켜서 하겠어요? 진짜 좋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요. 생명물의 권능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아 천부교회를 꾸준히 나간 지 1년쯤 지난 2019년이었어요. 우리 기장교회에 다니시던 김금순 권사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가셨어요. 그때 강순희 권사가 “입관예배에 한 번 가 봅시다.” 그러더라고요. 천부교식으로 하는 입관 예배를 한 번도 안 가봤기 때문에 얼른 마음이 내켜서 “네, 가봅시다.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기장병원으로 따라가게 됐어요. 도착해서 보니 이미 많은 분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때 강순희 권사가 저를 앞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따라가 보니 시신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지켜보게 됐어요. 저는 친정 부모님부터 시부모님까지 다 돌아가셨고 친구 부모님들 시신까지 많이 봤어요. 내 나이 팔십이 넘었으니 많이 안 봤겠습니까! 여태 봐온 시신들과 비교해서 돌아가신 권사님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생명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돌아가신 분 입에다 계속 넣어 드리는 거예요. 그 물이 전부 다 목으로 다 들어가더라고요. 원래 사람은 숨이 떨어지면 전부 마비되는데 물이 들어가겠어요? 안 들어가거든요. 돌아가신 분한테 물을 먹인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어요. 그런데 계속 쉬지 않고 물을 넣어드리니 그 물이 다 넘어가더라고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이상하다. 살아계셨나? 숨이 안 떨어지셨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의심스러운 거예요. 또 연세가 드셔서 돌아가셨으면 피부색이 어둡게 변해 부모라도 섬뜩하거든요. 근데 입술색이랑 얼굴색이 어쩜 그렇게 맑고 깨끗한지! 내가 분명히 봤거든요. 입술하고 얼굴색이 살아계신 분처럼 화색이 돌기 시작하더라고요. 얼굴이 너무 편안해 보였어요. 지금도 생생히 그려질 정도로 기억해요. 하도 이상해서 ‘내가 모르는 게 있나?’ 하는 생각에 끝까지 지켜봤어요. 그리고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장례반 권사님이 돌아가신 분 팔을 들어서 닦아드리는 거예요. 어쩜 그렇게 유연하겠습니까! 돌아가시면 전신이 굳어서 뻣뻣하기 마련인데 팔이 들어지니 너무 놀라서 잊히지가 않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본 후에 내가 본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천부교회에 진짜 하나님이 계시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꽉 차더라고요. 그렇게 입관예배를 다녀오고 집에 가서도 궁금해서 잠 한숨을 못 잤어요.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물을 목으로 넘길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신의 차원의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주일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 말씀 듣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 물을 축복하시면 생명물로 화하게 되고 그 생명물을 시신에 바르면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때 ‘아, 하나님이 우리 곁에 100% 계시는구나.’ 하며 확실히 하나님을 믿게 되었어요.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을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면 지금까지도 믿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걸 보고 나서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걸 확실히 느꼈어요. 지금부터라도 ̒죄를 안 짓고 하나님 열심히 믿어야 되겠다. 늦은 때는 없다. 지금을 기회로 삼자.̓라고 생각하면서 천부교회를 계속 나가고 있어요. 늦게라도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행운 가슴이 답답한 일이 생겼다가도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언제 그랬냐 하고 마음이 너무 평안한 거 있지요. 그럴 때면 역시 ̒내가 믿고 따를 분은 하나님이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불교를 믿던 생각이 떠오르겠어요? 집안 대대로 친정, 시집이 다 불교여서 이 나이 먹도록 평생을 불교만 알고 살아왔는데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잊혀진다 아닙니까! 전혀 생각도 안 나요. 사실 저는 가족이 많거든요 7남매 중 제가 셋째예요. 지금도 가족들은 다 불교를 믿고 있는데 나는 그쪽을 떠난다고 했어요. 각자 알아서 자기 갈 길 가자고 했어요. ̒나는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싶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천부교회 나오고 있어요. 좋은데 어쩝니까? 그리고 가족도 전도하고 싶어요. 내 죄가 씻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서 천국에 가고 싶어요. 우리 기장 천부교회분들은 저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았잖아요. 그래서 내가 그분들한테 “하나님을 일찍이 알아서 얼마나 좋으세요!”하고 말했어요. 늦게라도 하나님을 알게 된 저도 너무 행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늦었지만 하나님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신앙촌에서 일한다는 것 한마디로 표현하면’기쁨’

신앙촌에서 일한다는 것 한마디로 표현하면’기쁨’

저는 언제나 기장신앙촌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소사 오만제단에서 예배드릴 때 진하게 맡아졌던 시원한 꽃향기, 그 뒤에 찾아오는 말할 수 없는 기쁨. 언제나 그 기쁨 안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신앙촌에서 일하게 해주세요. 아름다운 그곳에서 일하며 살게 해주세요.’ 신앙촌과 가까운 데로 이사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신앙촌 슈퍼에서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앙촌에 들어왔습니다. 슈퍼에서 잠깐 일하다가 그 뒤로 쭉 국밥집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설거지만 해도 재미있었습니다. 바쁜 주방의 일손을 돕고, 어렵고 힘든 일을 함께 힘모아서 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이 곳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이라 생각하니 힘든 것이 없었습니다. 국밥집에서 또 다른 보람을 느끼는 날도 있었습니다. 바로 귀여운 꼬마 손님들입니다. 매번 축복일마다 꼬박꼬박 국밥 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한번은 식당 가서 저녁 먹지 왜 국밥집에 왔냐고 물어봤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그 친구들은 “저희는 신앙촌에 오면 국밥을 먹어 줘야 보람을 느껴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하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어떤 날은 어린 친구가 까치발을 들고 저를 부르더니 “권사님, 이거 드시고 하세요” 하며 식혜를 내민 적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어찌나 예쁘고 고맙던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권사님 떡꼬치가 너무 맛있어요’, ‘여기만 오면 마음이 푸근하고 좋아요’, ‘늦은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국밥집이 있어서 참 감사해요’ 등 오시는 분들의 기분 좋은 한마디는 제가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입니다. 신앙촌에 온 지 이제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늦게 오시는 분들을 위해 불을 밝히는 국밥집에서 저도 따뜻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일하다 즐거울 때는 마음에 기쁨의 찬송이 흐르고, 일하다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생길 때는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불가능해 보였던 일도 어느새 해결됩니다. 간절히 바라고 애써서 노력하면 기도를 들어주신 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됐습니다. 오늘도 저는 국밥집의 문을 열며 설레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맑게 살고자 노력하는 마음으로 나의 모든 기쁨과 소망이 있는 이곳 신앙촌에서 앞으로도 기쁘게 일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기쁨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기쁨

지난 8일, 향상음악회 마지막 순서는 시온오케스트라 타악기 파트의 민은정, 이다연 씨의 마림바 듀오 연주였다. 맑고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몬티의 차르다시>를 들으며 청중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타악기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민은정: 입사하고 얼마 안 됐을 때, 트럼펫을 배우고 있는 친한 언니를 따라갔다가 저도 트럼펫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타악기 파트에서 제가 성실하고 리듬감이 있다는 달콤한 칭찬으로 타악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셔서 제가 넘어갔습니다. 하하하. 이다연: 2007 체육대회 때 응원전을 하면서 간접적으로 큰북과 작은북을 배웠는데요. 그때부터 조금씩 타악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또 타악기는 한 번에 마림바, 북, 심벌즈 등 여러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인 것 같습니다. Q. 악기를 배우며 어떤 점이 좋았나요? 이다연: 가장 처음 배운 악기는 심벌즈였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꽤나 무겁더라고요. 또 그냥 쳐서 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맞는 소리를 찾아야 했어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노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민은정: 악기를 배우면 처음엔 더듬더듬 음정을 익히다가, 어느새 한 곡을 완성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뭐든 그렇겠지만 꾸준히 악기 연습을 하면 실력이 점점 늘어나서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요. Q. 시온오케스트라에 대하여 민은정: 신앙촌 사원들로 구성된 시온오케스트라는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다양한 음악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요. 또한 연주자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며 하나 된 소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며 소중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다연: 신앙촌에 오시는 분들께 좋은 연주로 기쁨과 감동을 드리고,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전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주합니다. 시온오케스트라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기고, 절기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Q. 향상음악회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이다연: 향상음악회에 혼자 나가기가 너무 떨려서 제가 같이 하자고 부탁드렸어요. 언니와 함께 연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고, 잊지 못할 추억인 거 같아요. 둘이서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려면 서로 시간도 맞춰야 하고, 의견도 맞춰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있어서 언니가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잘 안되는 부분도 봐주시고 여러 가지로 정말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민은정: 작은 북 연주를 하려다가 마림바로 최종 결정했어요. 원곡도 마림바 음역에 맞게 편곡해서 연습했습니다. 둘이 호흡이 맞아야 하는 곡이라서 한 사람이 틀리면 또 하고 또 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한 곡을 엄청나게 연습했어요. 이번을 계기로 연습량을 늘리게 되어 다연이와도, 마림바와도 많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Q.타악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다연: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말 배우고 싶다면 겁먹지 말고 일단 용기 내서 시작해보세요. 민은정: 타악기는 악기 종류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어요. 다양하게 배우며, 좋아하는 악기는 더욱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음정이 없는 악기로 부담 없이 시작해보세요. 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여청파트 챌린지, 나를 깨우는 시간”

“여청파트 챌린지, 나를 깨우는 시간”

건강에 신경 쓸 일이 없을 만큼 튼튼했던 저는 작년에 갑자기 아프게 되어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내가 왜 병에 걸렸을까?’ 하는 생각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치료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먹고,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 자세로 생활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자기연민, 비관, 우울 등은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들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희망적인 마음, 감사하는 마음, 작은 성취감, 실천하는 행동 등이 제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되고 이 현실을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루에 작은 일 1~2가지부터 실천해보자 결심했습니다. 매일 30분 걷기, 10분 영어 공부, 경전 공부 등을 하면서, 건강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쌓기위해 자료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새롭게 시작하는 신앙촌 여청파트 미션이 발표되었습니다. 신앙촌 봄꽃 사진 찍어서 꽃말과 함께 올리기, 67일 습관화 챌린지 등 재미있고 유익하면서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목표였습니다. 저는 미션을 100% 달성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션을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신정문길과 예쁜 꽃들이 핀 식품단지 산책로를 걸으며 건강을 위해 조성해주신 공간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67일 습관화 챌린지를 통해서는 매일 코어 운동을 3분 이상 하며 몸도 마음도 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이슬성신절 전도미션은 처음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명을 전도하려면 이 정도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구나.’ 지금껏 형식적으로 전도했던 저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많은 미션 중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하기 미션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그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내용부터 마음에 고민, 걱정과 불안까지 다 고하니 하루하루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고, 저도 모르게 걱정이나 불안보다는 밝고 희망찬 마음이 점점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드리며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던 것, 일은 열심히 했지만 건강에 무관심했던 것 등을 반성하게 되었고, 비워진 마음은 감사함으로 하나둘씩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의 사소한 이야기까지 들어주시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소중한 하루를 허락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크고 작은 미션을 완수하는 노력 속에서 하나님 은혜가 언제나 함께해주심을 다시금 느꼈고,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미션들을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며 하나님 앞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니어

식품고 드림캠프 ‘꿈에 날개를 달다’

식품고 드림캠프 ‘꿈에 날개를 달다’

시온식품여자고등학교(이하 식품고) 주최로 고교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드림캠프가 6월 12일에 있었다. ‘나의 꿈에 날개를 달다’라는 주제로 자신의 진로를 주도적으로 탐색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이번 캠프의 취지다. 참가자들은 신앙촌 출입 시부터 개인 위생은 물론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식품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시간은 참가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부분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학과 체험 시간은 ‘르 꼬르동 블루’ 요리과정을 수료한 신앙촌의 파티셰가 베이킹을 쉽고 재미있게 지도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식품고에 재학 중인 김나영(고1, 식품고) 학생은 “저도 작년에 드림캠프를 참가해 진로 설정에 대해 고민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식품고에 입학해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저를 보면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뿌듯한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이슬성신절에 참석하신 부모님도 저의 변화된 모습을 보시고 내심 놀라시며 격려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드림캠프에 참석한 친구들도 자신의 꿈을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캠프에 참석한 임소민(중3, 마산교회) 학생은 “파티셰 선생님의 지도로 베이킹을 직접 배우게 되어 제빵사를 꿈꾸는 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품고 언니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처음 만났는데도 금방 친해질 수 있어 좋았고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The Law of Liberty

The Law of Liberty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분이 죄를 씻어주시는 진짜 하나님이에요”

“이슬성신을 내려주시는 분이 죄를 씻어주시는 진짜 하나님이에요”

QR코드의 원리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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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수 승사님 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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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독서의 계절 가을, 마음과 지식을 채우는 책

독서의 계절 가을, 마음과 지식을 채우는 책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종교적 상징과 과학을 끌어들인 가상세계를 효과적으로 그려낸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저자: 박지리 / 출판사: 사계절 / 출판일: 16.09.20 우수한 성적에 성품까지 훌륭한 소년 다윈 영은 아빠의 학창 시절 친구의 추도식에 매해 참석한다. 거기서 삼촌의 죽음을 파헤치는 루미를 만나 함께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살인범의 정체는 이미 책 초반에 드러난다. 그러나 소설은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하며 살인을 해야만 했던 이유를 추궁한다. 사건의 진실을 모두 알게 된 다윈 영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출간 후 큰 화제가 되었던 이 소설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호평을 받기도 했다. 별은 늘 제 모습으로 떠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별’로 이해하게 될 줄 몰랐다. 고작 혜성 같은 걱정입니다 저자: 조승현 / 출판사: 마음의숲 / 출판일: 20.07.27 이 책의 저자는 천문대에서 ‘별 볼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천문대의 전체적인 관리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우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사직도 겸하고 있다. 이 책에 천문대의 일상과 별을 통해 삶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저자는 평생 별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저자가 그동안 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듯,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한 저자의 삶을 통해 자신 안의 우주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자와 빼앗는 자로 나뉜다. 부의 흑역사 저자: 니컬러스 색슨 / 출판사: 부키 / 출판일: 21.09.30 부의 약탈 기계로 변모해버린 현대 금융의 역사를 파헤친 책이다. 비정상적인 금융화가 사회에 끼치는 피해를 고발하는 동시에 파생상품, 사모투자 등 첨단 금융 기법의 작동을 해부하여 금융위기의 원인을 진단한다. 또한 이 책은 정부가 금융으로부터 막대한 수익만 뽑아먹고 그 위험은 외부로 떠넘기는 무책임함을 비판한다. 저자는 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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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다이어트 효과? 커피에 대한 ‘오해와 진실’

불면증? 다이어트 효과? 커피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한국인에게 커피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료다.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512잔으로, 밥심이 아닌 커피의 힘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나 커피를 사랑하지만 사실 커피에 대해 모두 알지는 못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는 헷갈렸던 커피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자. 커피는 불면증의 원인이 된다?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 몸은 카페인을 빨리 흡수하지만, 그만큼 배출도 빨리한다. 카페인은 대략 5~7시간이면 섭취한 양의 절반이 배출되고, 8~10시간이면 75%가 사라진다. 즉 너무 늦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상 특별히 잠을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위장 장애나 신경과민으로 숙면을 방해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컨디션에 맞춰 커피를 마시도록 해야 한다. 카페인이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커피는 다이어트에 큰 효과가 없다. 2010년 국제비만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카페인은 흥분효과가 있어 신진대사를 약간 높여줄 수 있지만, 이것이 몸무게 감소에 명확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커피를 마시면 약간의 식욕억제 효과가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다이어트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커피 속의 카페인은 칼슘이나 철분, 아연 등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의 흡수를 막아 영양결핍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청소년이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 흔히 카페인을 마시면 아이들의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결과는 없다.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각성 상태가 길어져 머릿속에 정보 입력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커피가 직접적으로 지능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는 없다. 커피가 골다공증을 유발한다? 카페인에 칼슘 배설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골다공증이 있는 사람은 커피를 많이 섭취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적당량의 칼슘을 섭취하면서, 커피도 하루 세 잔 이하 적정 수준으로 마신다면 골다공증의 위험이 크게 높아지지는 않는다. 커피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된다? 카페인의 각성효과 덕에 술에서 깨는 기분이 든다며 커피를 ‘해장국’처럼 마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카페인이 탈수를 유발해 혈중 알코올농도가 더 높아지고 오히려 두통과 위장질환이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디카페인은 카페인이 전혀 없다? ‘디카페인’이라는 단어 때문에 카페인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디카페인 커피는 카페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반커피보다 함유량이 적을 뿐이다. 디카페인의 카페인 함량기준은 각국마다 다르지만 국제기준은 97% 이상 카페인이 제거된 커피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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