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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려면 성신 받아 죄를 벗어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꽂혀

김동남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0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오빠,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였습니다. 제 나이 열세 살 무렵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면서 저는 올케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그 후 열아홉 살 때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 외숙모 댁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작은 직조 공장에 취직해 일을 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상경한 […]

깨우쳐 주신 말씀대로 맑고 성결하게 살기를 기도 드려

김덕화 권사(3) / 기장신앙촌

그 후로 신앙촌 간장을 판매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나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만드는 간장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던 때였습니다. 장사를 나간 첫날 집집마다 다녀 봤더니 그때만 해도 집에서 간장을 담근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앙촌 간장을 떠서 맛을 보여 주면 집에서 담근 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간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가지고 나간 간장이 […]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이심을 확실히 깨닫다

김덕화 권사(2) / 기장신앙촌

그 후 숭의동제단에서 예배드릴 때 아주 고약한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린내가 나더니 조금 지나자 화장(火葬)할 때 나는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화장터가 있어서 화장할 때 나는 냄새를 맡아 봤는데 예배 시간에 그런 냄새가 나니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고약한 냄새가 한참 진동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좋은 향기가 […]

집회장에 진동하는 향기는 하나님 주시는 하늘의 은혜

김덕화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4년 황해도 옹진군 용천면에서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서포산내리라고 불렸던 고향 마을은 집집마다 가까운 바다에 나가 해산물을 잡아 오고 농사를 지으며 사는 시골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아버님이 곡물 장사를 크게 하셔서 항상 쌀가마니가 창고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면장 일을 보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 자주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식사를 준비해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셨습니다. 제 나이 […]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함께하여 주시기를 날마다 기도

조명자 권사(4) / 기장신앙촌

1983년경에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면서 죽성제단의 부관장으로 발령을 받아 시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흔이 가까우신 할머니 권사님이 돌아가셔서 교인들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권사님이 지내시던 방은 벽에 창문이 없고 천정에 작은 창이 하나 있을 뿐이어서 한낮에도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곳이었습니다. 그때가 무더운 8월인 데다 바람이 들어올 창문이 없어서 선풍기를 세게 돌려도 온몸에 땀이 […]

‘동방의 한 사람’이 곧 감람나무요 하나님인 것 깨달아

조명자 권사(3) / 기장신앙촌

저는 그동안 체험한 은혜를 큰오빠와 올케에게 자주 이야기했으며, 반사 활동을 하고부터는 교재에서 배운 대로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과 성경 구절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두 분은 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귀를 기울였는데, 얼마 후 올케 언니가 전도관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용산에 이만제단이 완공된 때여서 언니는 이만제단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큰오빠에게 이사야 41장의 […]

중환자들이 은혜 받고 병이 나아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놀라워

조명자 권사(2) / 기장신앙촌

중앙교회 집회가 끝난 후 곧이어 영등포 백사장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힘 있는 음성으로 설교 말씀을 하셨는데, 단상을 힘차게 “쾅!” 하고 내려치시는 순간 거기서 불덩어리가 번쩍번쩍 하며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 저게 뭘까?’ 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순간 제 몸이 후끈하며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활활 불을 피운 난로를 옆에 […]

박 장로님이 찬송을 부르실 때 마음이 한없이 기쁘고 즐거워져

조명자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4년 평안남도 평원군 해소면 송정리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짓고 과수원을 했던 저희 집은 부족한 것 없이 넉넉한 생활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할머니를 따라 모두 교회에 다녔으며 저는 어릴 적에 할머니 손을 잡고 새벽예배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제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50년에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듬해 1·4 후퇴 때 […]

의인의 자격을 갖추어 천국에서 하나님 뵈옵기를 기도드려

최영옥 집사(4) / 기장신앙촌

그 후 1982년에는 부산에 계시던 어머님이 8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제가 부산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던 1956년부터 어머니도 함께 나가기 시작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큰소리 한 번 내신 일이 없을 정도로 성품이 온화하신 분이었습니다. 언젠가 올케언니가 하는 말이, 어머님이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시면 얼굴이 아주 곱고 환해져서 소녀처럼 예뻐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어머님 입관예배 때 […]

호세아서에 기록된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최영옥 집사(3) / 기장신앙촌

1957년에는 부산 영주동 산언덕에 웅장한 제단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단 터를 고르고 다질 때부터 많은 교인들이 나와서 질통을 지고 흙을 나르며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저도 거기서 일을 도왔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벽돌을 지고도 훨훨 나는 것처럼 가볍게 뛰어다녔습니다. 다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일하는 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귀한 성전을 짓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참 기쁘고 보람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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