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서에 기록된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최영옥 집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12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오른쪽) 소사신앙촌에서 새벽예배를 마친 후 우물 축대 공사에 쓰일 돌을 나르는 모습.

1957년에는 부산 영주동 산언덕에 웅장한 제단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단 터를 고르고 다질 때부터 많은 교인들이 나와서 질통을 지고 흙을 나르며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저도 거기서 일을 도왔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벽돌을 지고도 훨훨 나는 것처럼 가볍게 뛰어다녔습니다. 다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일하는 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귀한 성전을 짓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참 기쁘고 보람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무렵부터 하나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건설하시며 신앙촌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신앙촌은 은혜 받은 식구들이 마을을 이루고 사는 곳이며 정결한 마음의 옷을 갖추어 천국에 갈 준비를 하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도 은혜의 마을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신앙촌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뜻 승낙하지 않으셨지만, 얼마 후 제가 전도관에 다니며 즐겁게 지내는 것을 보니 그곳이 좋은 곳인가 보다 하시며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부산제단에 같이 다녔던 봉녀 언니와 함께 1958년 1월 8일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은 은혜 받은 식구들이
정결한 마음의 옷을 갖추어
천국에 갈 준비를 하는 곳이라는
말씀 듣고 은혜의 마을에 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간절해져

제가 입주하고 얼마 후 하나님께서 신앙촌 주민들에게 안찰을 해 주셔서 저도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메리야스 공장에서 근무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저는 다음 날부터 메리야스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제단이 건설되기 전이라 유치원 건물을 임시 제단으로 사용했는데, 매일 근무를 마친 후 제단에 모여서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찬송을 골라서 사람들과 같이 부를 때면 가슴속이 환하게 트이며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백합화 향기같이 아주 좋은 향취가 제단을 가득히 채우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기도 했습니다. 몇 시간을 계속해 찬송을 불러도 지루하지 않았고, 하루의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온몸이 가볍고 개운하게 느껴졌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근무를 마친 후 제단에 모여 찬송을 부를 때면
가슴속이 환하게 트이며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 몇 시간을 계속 불러도
지루하지 않고 하루의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온몸이 가벼워져

신앙촌에 커다란 우물을 건설할 때는 주민들이 전부 돌 하나씩을 들고 우물을 쌓는 곳까지 운반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을 나른 사람들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는데, 봉녀 언니는 안수를 받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원한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몸이 상쾌하고 시원하여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다고 했습니다. 그때를 떠올려 보면 돌 하나 나른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은혜를 허락해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설교 말씀을 들으며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는 구절을 조목조목 풀어 주시며 “내가 바로 이 땅에 나타난 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직접 체험한 은혜를 떠올리면서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이심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62년 10월 8일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도 저는 메리야스 공장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엑슬란 내복과 엑슬란 속치마 등의 제품이 큰 인기를 끌어서 메리야스 공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공장 직원들을 두 팀으로 나눠 경쟁을 할 때는 서로 이기려고 애를 쓰며 신나게 생산을 했습니다. 이긴 팀에게는 푸짐한 상을 주셔서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즐겁고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저는 처음 메리야스 공장에 갔을 때 아무것도 할 줄 몰랐는데, 차츰 미싱을 배우며 기술을 쌓아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주문하신 메리야스를 직접 만들었던 것이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0년 12월 3일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뒤에는 수출품 메리야스를 만드는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1동 건물에 수예 공장, 메리야스 공장, 양재 공장 등이 있었는데 만 평이 넘는 그 넓은 건물에 기계들이 가득 들어차서 활기차게 생산을 했습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모습 가운데
강도희 집사님 모습이 가장 인상적
생명물로 고인을 씻기자 일흔이 가까운
할머니 얼굴이 젊은 처녀가 화장을
한 것보다 훨씬 예쁘게 피어나

저는 신앙촌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교인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입관예배를 드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기장신앙촌에서 돌아가신 강도희 집사님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에 고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환하고 뽀얗게 피었는지 일흔이 가까운 할머니 얼굴이 젊은 처녀가 화장을 한 것보다 훨씬 예쁜 것이었습니다. 반짝반짝 광채가 나는 것 같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머금어 참으로 평안해 보였습니다.

(최영옥 집사님 신앙체험기)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