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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만 가지 은혜를 받은 나의 기쁜 인생 감사할 뿐

남삼호 관장(4) / 부산교회

그 후 저는 결혼하여 아들 형제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생명물로 낫는 것을 자주 체험하곤 했습니다. 1978년 둘째 은성이가 두 살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 중에 뜨겁게 끓인 숭늉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서 방에 놓았는데 그때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바가지 옆을 걷다가 그만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때 바가지가 엎질러지면서 뜨거운 숭늉에 엉덩이와 […]

전도사가 돼 한국 땅에 나타나신 동방의 의인을 증거하다

남삼호 관장(3) / 부산교회

소사신앙촌에서 얼마간 생활했던 저는 1962년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청평의 화학부대에서 복무할 때는 주변에 제단이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날인가 길거리에서 신앙촌 캐러멜 포장지가 떨어진 것을 보고 ‘언제나 제단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얼마 후 다행히 춘천 지역 부대로 이동하면서 춘천제단에 다닐 수 있게 되어 그렇게 […]

감람나무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설교 말씀에 푹 빠지다

남삼호 관장(2) / 부산교회

그해 12월에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신문지상에서 하나님과 전도관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기사가 떠돌고 동네 사람들이 제단에 몰려와서 공연히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교인들은 그럴수록 더욱 똘똘 뭉치며 열심히 제단에 나왔습니다. 이 역사를 가로막으려 하는 세력이 있어도 결단코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전보다 더욱 강하게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9년 […]

죄를 벗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말씀에 ‘내 믿을 곳은 바로 이곳’

남삼호 관장(1) / 부산교회

제 고향은 경상남도 삼천포읍 실안리(현재 경남 사천시 실안동)입니다. 청정 해역인 남해안의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지는 동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님이 토기 공장을 운영하셔서 인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저희 삼 형제는 둘도 없는 친구요 형제로서 의좋게 지냈습니다. 그 후 육이오전쟁을 겪으며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져서 저는 철공소에서 일하는 한편으로 야간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

그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 귀한 구원 얻기를 간절히 기도

김미숙 관장(3) / 전농교회

그러던 중 안동제단에서 하나님 집회가 있을 때 그분을 데려가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에 손을 대시자마자 그분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치며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모태 신앙이 이런가? 모태로부터 성신을 받은 사람이 이런가? 죄가 그대로 있지 않은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다 보신 것처럼 지적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

향취가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기쁘고 즐겁게 예배 드려

김미숙 관장(2) / 전농교회

집회 중에 박 장로님께서 “병 나은 사람들은 다 일어나세요.” 하고 말씀하시면 “앉은뱅이가 일어섰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습니다!”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외쳤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집회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손뼉을 치며 기뻐했습니다. 제 옆에는 들것에 실려 온 환자가 있었는데 며칠 동안 전혀 거동을 못하던 분이 박 장로님께서 “병 나은 자는 일어서라!” 하실 때 벌떡 일어나더니 “저도 […]

은혜를 받고 나니 기쁘고 즐거운 것을 다 표현할 길이 없어

김미숙 관장(1) / 전농교회

저는 1939년 경상북도 영덕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목사 손녀인 친구를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저는 예배에 빠짐없이 나가며 가끔씩 부흥집회에도 참석하곤 했습니다. 경북여고에 진학하고부터는 대구에서 지내며 봉산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교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다니는 것을 두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예배당에 나오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데 열심히 […]

구원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주시는 특혜임을 깨달아

김정임 관장(2) / 영덕교회

이듬해인 1957년 4월에는 서울 이만제단에서 개관집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저는 유종(乳腫)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집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서울에 가서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교인 분의 부축을 받아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첫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면서부터 가슴에 염증이 생겼는데, 큰 통증이 없어 그냥 두었더니 염증이 점점 커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저고리의 옷고름을 매지 못할 정도로 고름 […]

기성교회 목사는 눈 어두워 양떼를 인도하지 못하는 목사(目死)

김정임 관장(1) / 영덕교회

저는 1936년 전라남도 영산포에서 2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약국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영산포 장로교회의 수석 장로였으며, 어머니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이웃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세례를 받고 교회에 꾸준히 나갔으며 고등학교도 미션스쿨인 광주 수피아여고에 다녔습니다.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인근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집회장에서 철야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여고를 졸업하고 영산포 […]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과 힘차게 찬송하시던 모습 못잊어

백정환 권사(2) / 기장신앙촌

이만제단이 완공된 후 ‘특별전도대’가 조직되면서 저도 그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특전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감람나무 체계를 전하며 전도했는데, 기성교회 목사를 찾아가 성경 토론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특전대원 여러 명이 미아리의 제일교회를 찾아가서 목사와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에게 “성경에 나오는 감람나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엘리야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이슬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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