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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하나님 뜻에 맞게 살고파

김동임집사(3) / 기장신앙촌

<이어서>그러던 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 주신 후 병 나은 사람 일어나라고 하시자, 옆에 있던 이웃집 경옥 엄마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병이 나았냐고 물어보니,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가슴에서 뭐가 툭 떨어져 나가면서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고 했습니다. 경옥 엄마는 오래 전부터 폐병을 앓고 있었는데, 자기가 폐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 […]

은혜를 받아 평안해진 내 마음에 기쁨은 샘솟고

김동임집사(2) / 기장신앙촌

<이어서>그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저는 아랫집에 살면서 이만제단에 다녔던 노 권사님을 따라 이만제단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이만제단을 향해 가는 오르막길은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희가 예배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초만원을 이루어 앞자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지만, 노 권사님이 제가 처음 왔다고 앞자리를 마련해 주어 저는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

박장로님의 집회에서 놀라운 광경을 체험하다

김동임집사(1) / 기장신앙촌

192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저는 열여덟 살에 결혼해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해방 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남대문 근처의 재건교회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잘 믿어 보고자 교회 일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 후 6·25 전쟁이 일어나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도 재건교회를 찾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교리 해석을 두고 목사들끼리 다툼이 생겼는데, […]

소비조합으로 2남 2녀를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키고

최종성 승사(2) / 소사신앙촌

<이어서>평창제단에 다니던 교인 중에는 폐병을 앓는 젊은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숨을 거두었다는 연락이 와서 저를 비롯해 평창제단 교인들이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고인의 시부모님은 폐병이 옮을까 봐 무서워하며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남은 명의 우리 교인들이 천을 끊어 와서 수의를 만들고 시신의 얼굴과 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축복 캐러멜을 물에 […]

은혜받은 교인들 ‘평창교회’를 ‘평창전도관’으로 간판 바꿔

최종성 승사(1) / 소사신앙촌

저는 1924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결혼 후 평창에서 살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다가, 큰아들이 여섯 살 때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그것을 계기로 저는 평창 감리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교회의 여자 전도사와 저를 비롯한 몇 명이 따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장로교나 감리교 등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

날마다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아침을 맞아

김청희권사(2) / 기장신앙촌

<이어서> 이태원제단에 다닌 지 얼마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당장 생계를 이어 가는 일이 급했던 저에게 소비조합은 말 그대로 살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소비조합이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신앙촌 제품은 품질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귀한 축복이 담겨 있기에 그 물건을 전하는 일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신앙촌 비누를 머리에 […]

내 마음속에 두려움 대신 확신과 희망은 차오르고

김청희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위로 오빠만 다섯이 있는 가정의 귀염둥이 막내딸로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저는 1951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회사에 취직해서도 나름대로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경성전기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중 스물네 살에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1965년경 저희 가족이 서울 한남동에 살 때였습니다. 저는 이웃의 […]

날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어 그렇게 미소를 짓나요?

오복순권사 / 영주교회

<이어서>그해 저는 바라던 대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노구산 정상에 오만제단을 건설할 때였는데, 제가 앉아 예배드릴 자리만이라도 제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간 날 때마다 성심껏 건설 일을 도왔습니다. 건설대원들이 다들 밝게 웃으며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저도 힘닿는 데까지 일을 도우며 참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무릎이 아파 오면서 일어섰다 앉을 때면 벽을 잡고 […]

고향떠나 외로웠지만 은혜안에 마음만은 너무나 평안

오복순권사 / 영주교회

저는 1935년 부산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전근을 자주 다니셨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했었는데, 아버지가 폐병으로 돌아가신 후부터 저희 가족은 외가의 도움을 받으며 밀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밀양에서 저와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동생 수옥이는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 교회에 다녔던 터라 수옥이를 보며 전도관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

30년 넘게 마음을 나눈 고객들은 나의 소중한 추억

양금준승사(2) / 기장신앙촌

< 이어서>1958년 12월에는 하나님께서 말도 되지 않는 죄목으로 영어의 몸이 되신 일이 있었습니다. 정계와 종교계가 결탁해 하나님을 투옥시킨 그때, 억울한 심정은 언설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을 중상모략하는 신문 기사를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믿으셨던 시아버지는 제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시면서, 제가 이만제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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