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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같이 환하게 핀 얼굴로 찬송 부르며 일하던 그 시절 그리워

김복동 집사(4)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공장이 완공되면서 저는 메리야스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중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좋은 원단과 예쁘고 튼튼한 바느질의 신앙촌 메리야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날로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종종 밤새워 일했는데, 작업 중에 어느 순간 향취가 진동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원들에게 축복해 주고 계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라.” 하시던 하나님. 그 은혜 속에서 […]

시신이 곱게 핀 모습을 보고 유족들이 놀라워 해

김복동 집사(3)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는 직원들이 저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제 곧 본인들이 감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인교회 목사가 전도관으로 몰려가는 직원들을 두고볼 수 없어서 피복창 책임자에게 감원을 부추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70여 명이 전부 감원된 뒤에도 다른 직장을 구해 일하면서 부산전도관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당시 부산제단에 다니던 송 권사님은 본인 집의 […]

은혜를 받아 즐거워하며 집회장은 기쁨과 환호로 넘쳐나

김복동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때 박 장로님께서 “오늘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본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슬 은혜를 본 사람은 손을 드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 아까 이슬비가 내리던 것이 바로 은혜였구나.’ 생각하며 손을 번쩍 들었더니, 박 장로님께서 저를 지목하시며 “일어나서 지금까지 본 대로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저는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

천막집회에서 이슬같은 비가 내리고 성신의 불이 퍼져나가

김복동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5년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한 저는 군복을 생산하는 피복창(공공 기관의 제복 등을 만들거나 수선하여 보관하는 곳)에 취직해 기술을 익혀서 봉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던 1950년, 남편과 아이들이 충남 공주의 큰집에 가 있는 동안 6·25 전쟁이 발발하여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피난길을 떠나게 […]

‘귀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은 무슨 말로도 표현 못 할 축복’

이지수 집사(3)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57년 4월에는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이만제단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이만제단이라고 불렀던 그곳은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몇백 미터 되는 기나긴 장사진을 이루며 제단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강을 굽어보는 수려한 경관 속에 우뚝 솟아 있는 제단, ‘앞자리가 금자리’라고 하면서 뛰다시피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은혜 받는 기쁨이 충만한 예배 시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

괴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가슴 속에 차 올라

이지수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 예배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갑자기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제단 안에 내리면서 단에 서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흰 구름에 둘러싸인 것처럼 양쪽 벽의 창문과 뒤편에 있는 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어디서 나는지 향긋한 냄새가 진하게 맡아지는데, 그 냄새는 과일 […]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부신 흰 옷을 입은 분이 저를 불러

이지수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2년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지어 살림살이가 넉넉한 편이었고, 어머니는 전형적인 양반집 자손으로 자식 교육에 엄격한 분이었습니다. 당시는 검불을 땔감으로 쓰던 때였는데, 간혹 남의 집 검불이 바람에 날려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검불 하나도 남의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문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으로 형제들 모두 어릴 […]

‘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 귀한 은혜를 주십니까!’

김경숙 퇴임관장(3)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65년 8월 첫 부임지인 신철원제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습니다. 신철원제단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흙벽돌로 지은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예배실에 호롱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찬송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가마니가 깔린 작은 제단이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었고 정신은 점점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신념에 찬 여인, 신념으로 일관하는 교역자가 […]

교역의 길을 선택하고 받은 축복에 한없는 감사의 눈물 흘려

김경숙 퇴임관장(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일주일간의 집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군종감과 군종차감 등 육군 본부 인사들과 함께 저도 하나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그 사진을 꺼내 보면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성령의 불을 받으면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그 집회에서 불성신을 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회상하게 합니다. 저는 한강 모래사장 집회, […]

안수로 은혜받고 뼛속에서 우러나는 눈물 한없이 흘려

김경숙 퇴임관장(1) / 기장신앙촌

저는 1932년 전남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에서 출생했습니다. 광주고녀(현재의 광주여고)에 다니던 여학생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장로교회에 처음 나갔으며 그 후로 가족들도 함께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언론과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어느 날 신문에서 육군 정훈장교(政訓將校)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정훈장교는 군의 대외 보도 업무를 담당하는 등 언론과 관련이 있으며, 6 · 25 전쟁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