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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꽃 향기같은 진한 냄새가 목안으로 흘러 들어와

최용득 승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3년 8월 서울 서빙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인근의 서빙고 교회를 다니긴 했으나, 비 오는 날 떨어지는 빗줄기를 재며 나갈까 말까 고민하곤 했으니 말 그대로 ‘교회 다닌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저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이따금씩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매년 춘하추동 사계절이 어김없이 변하여 곡식이 자라는 것과 같이 우주 만물이 […]

은혜가 담긴 물건을 전하는 ‘신앙촌 아줌마’로 행복합니다.

하귀례 승사(2) / 면목교회

<이어서>전도관에 다닌 지 1년쯤 지났을 때, 두 살이던 딸 해경이가 황달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 흰자위와 얼굴이 노랗게 된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빨리 병원에 가 보라고 했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축복일이 되어 해경이를 덕소신앙촌에 데리고 가서 안수를 받고 생명물도 축복받아 왔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해경이가 자꾸 생명물 통을 가리키며 달라고 했습니다. 물통 […]

이 서울과 온 천하를 다 준다해도 이렇게 기쁠 수야…

하귀례 승사(1) / 면목교회

1944년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서 태어난 저는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절에 다니셨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교회에 가 본 적은 없었지만 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좋아 보였습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다니는 이웃 분들이 성경 책을 옆에 들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후 결혼하여 […]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하나님 뜻에 맞게 살고파

김동임집사(3) / 기장신앙촌

<이어서>그러던 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 주신 후 병 나은 사람 일어나라고 하시자, 옆에 있던 이웃집 경옥 엄마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무슨 병이 나았냐고 물어보니,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가슴에서 뭐가 툭 떨어져 나가면서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고 했습니다. 경옥 엄마는 오래 전부터 폐병을 앓고 있었는데, 자기가 폐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 […]

은혜를 받아 평안해진 내 마음에 기쁨은 샘솟고

김동임집사(2) / 기장신앙촌

<이어서>그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저는 아랫집에 살면서 이만제단에 다녔던 노 권사님을 따라 이만제단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이만제단을 향해 가는 오르막길은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희가 예배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초만원을 이루어 앞자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지만, 노 권사님이 제가 처음 왔다고 앞자리를 마련해 주어 저는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

박장로님의 집회에서 놀라운 광경을 체험하다

김동임집사(1) / 기장신앙촌

192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저는 열여덟 살에 결혼해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해방 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남대문 근처의 재건교회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잘 믿어 보고자 교회 일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 후 6·25 전쟁이 일어나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도 재건교회를 찾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교리 해석을 두고 목사들끼리 다툼이 생겼는데, […]

소비조합으로 2남 2녀를 모두 대학교육까지 시키고

최종성 승사(2) / 소사신앙촌

<이어서>평창제단에 다니던 교인 중에는 폐병을 앓는 젊은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숨을 거두었다는 연락이 와서 저를 비롯해 평창제단 교인들이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고인의 시부모님은 폐병이 옮을까 봐 무서워하며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지도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남은 명의 우리 교인들이 천을 끊어 와서 수의를 만들고 시신의 얼굴과 몸을 깨끗이 닦아 주었습니다. 축복 캐러멜을 물에 […]

은혜받은 교인들 ‘평창교회’를 ‘평창전도관’으로 간판 바꿔

최종성 승사(1) / 소사신앙촌

저는 1924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결혼 후 평창에서 살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다가, 큰아들이 여섯 살 때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그것을 계기로 저는 평창 감리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교회의 여자 전도사와 저를 비롯한 몇 명이 따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장로교나 감리교 등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

날마다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아침을 맞아

김청희권사(2) / 기장신앙촌

<이어서> 이태원제단에 다닌 지 얼마 후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당장 생계를 이어 가는 일이 급했던 저에게 소비조합은 말 그대로 살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소비조합이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신앙촌 제품은 품질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귀한 축복이 담겨 있기에 그 물건을 전하는 일이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신앙촌 비누를 머리에 […]

내 마음속에 두려움 대신 확신과 희망은 차오르고

김청희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위로 오빠만 다섯이 있는 가정의 귀염둥이 막내딸로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은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던 저는 1951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회사에 취직해서도 나름대로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경성전기 사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중 스물네 살에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1965년경 저희 가족이 서울 한남동에 살 때였습니다. 저는 이웃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