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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집회에서 이슬같은 비가 내리고 성신의 불이 퍼져나가

김복동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5년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한 저는 군복을 생산하는 피복창(공공 기관의 제복 등을 만들거나 수선하여 보관하는 곳)에 취직해 기술을 익혀서 봉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던 1950년, 남편과 아이들이 충남 공주의 큰집에 가 있는 동안 6·25 전쟁이 발발하여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피난길을 떠나게 […]

‘귀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은 무슨 말로도 표현 못 할 축복’

이지수 집사(3)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57년 4월에는 서울 용산구 청암동에 이만제단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어 이만제단이라고 불렀던 그곳은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몇백 미터 되는 기나긴 장사진을 이루며 제단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강을 굽어보는 수려한 경관 속에 우뚝 솟아 있는 제단, ‘앞자리가 금자리’라고 하면서 뛰다시피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은혜 받는 기쁨이 충만한 예배 시간…….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

괴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가슴 속에 차 올라

이지수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 예배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갑자기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제단 안에 내리면서 단에 서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흰 구름에 둘러싸인 것처럼 양쪽 벽의 창문과 뒤편에 있는 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어디서 나는지 향긋한 냄새가 진하게 맡아지는데, 그 냄새는 과일 […]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부신 흰 옷을 입은 분이 저를 불러

이지수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2년 평안북도 용천군 내중면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지어 살림살이가 넉넉한 편이었고, 어머니는 전형적인 양반집 자손으로 자식 교육에 엄격한 분이었습니다. 당시는 검불을 땔감으로 쓰던 때였는데, 간혹 남의 집 검불이 바람에 날려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검불 하나도 남의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문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으로 형제들 모두 어릴 […]

‘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 귀한 은혜를 주십니까!’

김경숙 퇴임관장(3)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65년 8월 첫 부임지인 신철원제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습니다. 신철원제단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흙벽돌로 지은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예배실에 호롱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찬송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가마니가 깔린 작은 제단이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었고 정신은 점점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신념에 찬 여인, 신념으로 일관하는 교역자가 […]

교역의 길을 선택하고 받은 축복에 한없는 감사의 눈물 흘려

김경숙 퇴임관장(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일주일간의 집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몇몇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군종감과 군종차감 등 육군 본부 인사들과 함께 저도 하나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 그 사진을 꺼내 보면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 “성령의 불을 받으면서”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서, 그 집회에서 불성신을 받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회상하게 합니다. 저는 한강 모래사장 집회, […]

안수로 은혜받고 뼛속에서 우러나는 눈물 한없이 흘려

김경숙 퇴임관장(1) / 기장신앙촌

저는 1932년 전남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에서 출생했습니다. 광주고녀(현재의 광주여고)에 다니던 여학생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장로교회에 처음 나갔으며 그 후로 가족들도 함께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언론과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어느 날 신문에서 육군 정훈장교(政訓將校)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정훈장교는 군의 대외 보도 업무를 담당하는 등 언론과 관련이 있으며, 6 · 25 전쟁 후 […]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어 그리운 하나님 뵙고 싶어

김금순 권사(3) / 소사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1963년에는 남편(故 이장헌)이 밥을 잘 먹지 못하더니 얼마 후 음식을 한 숟갈도 넘기지 못하며 얼굴이 새까매지고 꼬챙이처럼 빼빼 말라 갔습니다.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조금도 거동을 못하던 어느 날, 누워 있던 남편이 겨우 손짓으로 저를 부르면서 생명물을 입에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원래 남편은 생명물이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라는 비방을 서슴치 않았는데, 자신이 […]

예배시간에 안개와 같이 뽀얀 이슬성신은 한없이 쏟아지고

김금순 권사(2) / 소사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1956년 11월 26일, 하나님을 모시고 영산포전도관 개관집회가 있었던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개관집회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은 입추의 여지없이 예배실을 가득 메웠고 그래도 모자라 바깥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뇌염 후유증으로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던 셋째 아들이 하나님께 안찰 받은 후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걸어가자 전도관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시누이는 좋아서 춤까지 추고 저는 […]

앞자리 곱추의 등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펴지는 것을 보다

김금순 권사(1) / 소사교회

저는 1924년 전남 나주 보산리에서 4남 3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출가하기 전까지 교회에 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영산포로 시집가 살던 중에 교회에 다녀 보고 싶어져서 영산포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광주집회에서 함께 은혜받은 영산포 장로교회 강희석 목사는 집회 참석 후 돌아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받은 은혜를 증거하다 총회의 통고 받고 ‘박장로는 이단이니 집회 참석말라’고 돌변해 그러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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