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뵈옵는 그날까지 죄와는 상관없이 성결히 살고파

안순식 승사(4)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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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한번은 약국을 운영하는 고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옷을 사기가 망설여지는지 수십 차례나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장사를 빨리 끝내고 신앙촌에서 일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는데, 고객이 계속 시간을 끌자 한시라도 빨리 신앙촌에 가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결국 옷을 사지 않고 “다음에 오시면 꼭 살게요.” 하기에, 순간 화가 나고 언짢은 기분이 들어 “신앙촌 물건은 없어서 못 파는데요.”라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화를 내는 마음이 없어져야 한다. 손님한테 옷을 얼마든지 입어도 괜찮다고, 더 입어 보라고 권하지 그랬느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말씀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고객의 집을 방문하고 나올 때면 ‘하나님, 이렇게 마음먹은 것이 죄가 될까요?’ 하고 낱낱이 고하면서 마음가짐과 언행이 모두 합당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구원을 주시고자 이슬 은혜 아낌없이 주시며
신앙촌을 세워 주셨는데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형언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시던 하나님 모습 결코 잊을 수 없어

1961년 1월에는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영어의 몸이 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갖은 핍박과 비방을 가하여도 하나님께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게 되자, 다급해진 기성 종교계와 일부 정치인들은 온갖 수단과 모략을 동원해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르시게 했습니다. ‘의인을 옥에 가두다니, 이런 악한 일이 어디에 있나.’ 가슴을 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저는 서대문 형무소에 면회 가는 사람들을 따라가서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흰색 한복 차림의 하나님께서 간수들에게 둘러싸여 나오실 때 너무나 기가 막혀 눈물만 흐를 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분간의 면회 시간이 끝나고 뒤돌아서 가시던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측은하게 돌아보시며 “쉭!” 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웬 기쁨인지,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용솟음치며 쓰라린 눈물이 간곳없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손목에 차고 계시던 수갑을 애써 감추셨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통을 당하시는 때조차 가지들을 먼저 염려하시며 은혜를 부어 주신 하나님.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순간은 눈물 없이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이듬해 출감하신 하나님께서는 곧이어 덕소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고, 얼마 후 저도 덕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푸른 한강 줄기를 따라 들어선 덕소신앙촌은 세련된 양옥 주택과 힘차게 가동되는 공장들이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답게 지어진 신앙촌의 어느 한 곳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덕소신앙촌의 대제단을 건축할 당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서 자갈 모으는 작업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 현장에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진두지휘하시고 돌아갈 때는 직접 배를 운전하셔서 강을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덕소신앙촌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노을이 번지는 강 위에서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땅 있도다~” 하는 찬송을 부르자 하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찬송 잘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소풍을 나온 것처럼 마냥 기쁘기만 했던 그때, 하나님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러던 1966년경 어느 날, 하나님께서 덕소신앙촌 대제단에서 안찰하실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제가 안찰을 받을 때 “나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었어!”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지만 1981년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기 십수 년 전에 이미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구원을 주시고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성결하게 되기를 원하셨고,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앙촌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형언할 수 없이 안타까워하셨던 모습은 제가 숨 쉬고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 하나님은 아낌없이 주었어!” 구원을 주시고자 그토록 안타까워하셨던 하나님, 그 심정의 만분의 일이라도 깨달을 듯하니 뼈가 저리게 아파 옵니다.

1970년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기장신앙촌이 건설되면서 1차로 입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촌 각 공장의 폐품을 처리하는 부서와 슈퍼마켓의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1979년부터는 간장 공장과 제과 공장의 공장장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교인들이 생명물을 담는 통으로 갖가지 색깔의 물통을 사용했었는데, 하얀 재질의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하여 깨끗한 생명물 통을 간장 공장에서 직접 제작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하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밭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시던 모습, 천막집회에서 “죄를 소멸 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 최고로 귀한 것이다!” 하고 외치시던 음성, 그리고 기장신앙촌에서 안찰해 주시며 “구원 얻을 자격자가 되어야지. 꼭 이루자. 꼭 이루어야 돼.” 하셨던 말씀까지……. 오직 구원 얻기만을 바라셨던 거룩하신 뜻을 꿈 중에라도 잊을까 조심하면서 순간순간 바라시는 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운 하나님 뵈옵는 그날까지 죄와는 상관없이 성결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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