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바닷가에 나타나셨던 그분을 초량집회에서 다시 뵙다

안순식 승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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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5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위로 오빠 둘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대대로 지주(地主)인 부유한 가정에서 귀염둥이 막내딸로 자란 저는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다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 나이 예닐곱 살 때, 독립 운동을 하는 아버지가 계시는 중국 하얼빈으로 온 가족이 이주했으며, 저는 거기서 빈강(濱江)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자격증을 얻었습니다.

부산 초량집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등단을 보는 순간
`아!`하는 탄성과 함께 수년 전 바닷가에서 나타나셨던
분인 것을 알고 놀라움과 경외감에 똑바로 볼 수 조차 없어

1945년 해방된 후 저는 안내인의 인도를 받아 삼팔선을 넘어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함양까지 여행하며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후 남북을 가로막은 삼팔선의 경계가 강화되고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중국으로 돌아갈 길이 점점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 땅에 혼자 남게 된 저를 친척들이 따뜻하게 보살펴 주며 직장도 구해 주었으나, 난생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전쟁의 혼란을 겪으면서 저는 자꾸만 외로움과 허무감에 젖어 들게 되었습니다. 처참한 전쟁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눈물조차 말라 버린 채 구걸하는 피폐한 사람들, 폐허가 된 거리를 헤매는 헐벗고 굶주린 고아들……. 그들을 볼 때마다 불쌍하고 애처로운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고 이런 비참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제가 부산 초장동의 친척 오빠 집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초저녁, 저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서 ‘인생은 어차피 죽게 마련이다. 지금 당장 죽는 것과 조금 더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눈앞의 바다는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지만 어두운 제 마음에는 그런 풍경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이 차라리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허무감만이 가득한 그때, 제 앞의 모래밭 위로 키가 훤칠하신 분이 홀연히 나타나시더니 활짝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주변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그분이 서 계신 곳은 빛을 비춘 것처럼 대낮같이 밝았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에 수박색과 감자주색 줄무늬의 산뜻한 넥타이, 광채가 나는 얼굴과 형언할 수 없이 환한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외로움과 허무감에 빠져 있던 어두운 심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연신 함박웃음이 나오던 저는 잠깐 웃음을 멈추고 그분이 계시던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 가셨는지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당시 부산 사세청(現 부산지방국세청)에서 근무하던 저는 집과 가까운 항남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지인들과 함께 부흥회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교회에 나가 친분을 쌓는 것이 사회적인 활동에 도움이 되고 교양적인 면에서도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10월, 지인으로부터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분이 초량에서 부흥집회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은 불과 같은 성신을 내려 준다 하여 ‘불의 사자’라고 불리며, 집회를 하시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체험하고 불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나 전국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한번 참석해 보고 싶어서 집회가 열리는 날 초량동의 집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집회장에는 큰 규모의 천막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속에 군중들이 머리만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서 난생처음 보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리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습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저는 많은 사람들이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상과 제일 가까운 앞자리에는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을 비롯한 인사들이 앉아서 박 장로님께서 등단하시길 기다리며 열심히 찬송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찬송을 인도하던 목사가 박태선 장로님께서 등단하신다고 하여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보는 순간, 저는 “아!” 하고 터져 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부시게 새하얀 와이셔츠와 수박색과 감자주색이 어울린 넥타이, 환한 그 미소……. 수년 전 바닷가에서 뵈었던 바로 그분인 것이었습니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입으셨던 옷과 넥타이까지 똑같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도대체 저분이 누구시기에…….’ 저는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박 장로님을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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