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길과 생명물의 권능에 감사드려

<신앙체험기 524회> 전주 송천교회 박재하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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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1월생인 저는 전북 임실군 오수면에서 자라며 장로교회를 다니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특별히 신앙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7년 6월 무렵이었습니다.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가 고향에 내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문득 제게 “천국이 있다고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확신이 없다고 답하자, 친구는 자신이 전주전도관에 다니며 직접 목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도관 장례예배에 참석해 밤을 지새우며 지켜보았는데,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환하게 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박태선 장로님께서 한 달에 한 번 전주전도관에 오셔서 생명물을 축복해 주시는데, 그 물에는 많은 이적이 나타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또 전도관에 가면 그 생명물을 직접 받아올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환하고 평온할 수 있다면, 나도 한번 그 신앙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까지의 거리가 멀어 당장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때부터 전도관과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직장 때문에 남원에 가게 된 또 다른 친구가 주일에 남원전도관을 찾았다가 전도사님께 제 이야기를 꺼낸 모양이었습니다. 전도관에 가보고 싶어 하는 친구가 오수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전도사님은 그길로 친구와 함께 바로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당시에 그 전도사님은 남원 지역에서 개척 전도를 하고 계셨는데, 오수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자신도 과거에 기성교회 목사였으나,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고 전도관 전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생명물은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으며, 돌아가신 분이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도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을수록 과연 어떤 분이시기에 그런 권능을 베푸실까 하는 생각이 들며, 꼭 한번 뵙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박 장로님께서 전주전도관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호리병을 준비해 전주로 향했습니다.

당시 태평동의 한 공장 건물을 임시 예배처로 사용하던 전주전도관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군산 집회를 마치시고 다음 날 새벽 단에 서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사람들 틈에 앉아 철야를 했습니다.

마침내 새벽이 되어 박 장로님께서 예배를 시작하시자, 예배실 안은 안개가 낀 듯 자욱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아 생긴 현상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청년회장이 “오늘 은혜가 많이 내렸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당시에는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안개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혜였다는 사실은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박 장로님께서는 안내 봉사를 맡은 학생들에게 안수를 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안내를 하지는 않았지만, 염치 불고하고 안수를 받기 위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기 전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고,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 순간 박 장로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안수를 해주시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라고 격려하셨고, 그 틈에서 제 차례가 되어 저도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마치신 뒤에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그곳에는 큰 항아리 여러 개에 물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이 신기해 어떻게 하시는지 처음부터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성신께서 함께하시고 성신의 불담으로 지켜 주신다는 말씀을 하시며 물을 향해 축복하셨습니다. 축복이 끝나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생명물을 받기 시작했고, 저도 미리 준비해 간 호리병에 생명물을 받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박 장로님께서 전주에 오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주전도관을 찾았고, 평소에는 집에서 약 10리 떨어진 오수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밤길을 걸어 제단으로 가는 길에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다 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한 향취 은혜를 자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1958년 초에는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2차 건설대에 지원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신앙촌에서 약 20리 떨어진 곳에서 벽돌 생산에 필요한 백토 캐는 작업을 맡았는데, 힘들다는 생각보다 신앙촌 건설에 힘을 보탠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설 현장을 자주 찾아오셔서 여러 차례 안찰도 해주셨습니다.

한번은 기와공장에서 작업하던 중 안찰을 해주시러 오셨는데, 저희가 서둘러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했다는 죄송함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하루는 안찰을 받으러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준비하고 움직였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게으르면 내 가지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신앙생활은 물론 일상에서도 늘 부지런해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또 배를 안찰해 주실 때는 하나님의 손이 닿는 순간 몸속에서 무언가가 위로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스르르 가라앉으면 안찰을 마치셨는데, 신기하게도 아픔은 전혀 없었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주신다는 말씀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고, 이후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더욱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15m 거리에서 축복하시자
하나님 손끝에서 나온
물줄기가 물통 속으로 들어가

또 한 번은 식당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오후에 공장을 둘러보시며 축복해 주실 때, 저도 생명물 축복을 받으려고 큰 통에 물을 받아 하나님 쪽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과는 15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축복해 주시는 순간 손끝에서 뻗어 나온 굵은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제가 들고 있던 물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저는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크신지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에서 생활하다가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치고, 1963년 제대 후 개척 전도사 발령을 받아 전주 마령제단에서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 나오던 아주머니가 아픈 딸을 데리고 제단을 찾아왔습니다. 예배를 마친 뒤 아이의 몸에 생명물을 발라 주었더니, 아파서 울며 보채던 아이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도 안심하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틀 뒤 아이가 깨끗이 나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전도된 청년들과 함께 제단 건축에 한창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종각을 쌓는 작업을 하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몸을 부딪히며 떨어졌는데 복부 쪽이 심하게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맹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별다른 치료 없이 나왔고, 5~6일이 지난 뒤 안찰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계시는 덕소신앙촌으로 향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하나님 집무실까지 올라가니 하나님께서 문 앞에 나와 계셨습니다. 안찰을 받으러 들어서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보시며 웃으시더니 “급성이면 이미 갔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안찰을 해주시며 이제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습니다. 아파서 절룩거리며 들어갔던 저는 안찰을 받고 언제 아팠냐는 듯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장례 때
생명물로 굳은 턱이 풀리고
팔다리가 부드럽게 펴져

1965년 오수전도관에 다니시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덕소신앙촌 축복일 예배에 참석한 뒤 마령제단으로 돌아가던 길에 집에 들렀는데, 어머니께서 위독하신 상태였고 결국 그날 밤 숨을 거두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의 몸은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고 턱이 단단히 물려 있었습니다. 저는 축복일에 받아온 생명물을 수저에 떠서 입에 넣어드리려 했으나 대부분 얼굴로 흘러내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흘러내린 생명물로 얼굴을 닦아드리자, 놀랍게도 굳게 다물렸던 턱이 풀리며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생명물을 넉넉히 떠 넣어드리고 얼굴과 손마디, 발끝까지 온몸을 정성껏 닦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굳어 있던 팔다리가 부드럽게 펴졌고, 어머니의 얼굴은 생전보다 더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얼마 후 찾아온 동료 교역자들도 어머니의 모습이 곱게 잘 피었다고 했습니다. 평소 전도관에 냉소적이던 아버지조차 아름답다고 인정하셨고, 문상을 온 동네 사람들도 신기해하며 놀라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전도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친구가 말해 주었던 장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모습이 아름답게 핀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을 찾아갔던 제가, 이제는 어머니의 장례를 통해 그 권능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형편상 교역을 계속할 수는 없었지만, 오수전도관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2009년 전주제단이 새롭게 건축될 때에는 주변 환경을 정비하는 일에 힘을 보탰으며, 경주 천부교추모공원 조성 현장에서도 5개월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하나님께 축복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 부어줄까?”라고 물으시며, “죄짓지 말고 그 세계에 같이 가자”라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세월이 흘러도 제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오셔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그 사랑을 생각하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앞으로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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