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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 경험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5) 대구집회-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 경험

김성여목사가 대구집회에 참석하여 기록한 책

“1955년 6월 9일부터 일주일간 대구에서 박태선 장로가 인도하는 부흥회가 열리었다. 나는 그 집회에 참예하여 박태선장로가 말한 것을 모두 필기하였다. 필기한 것을 원고지에 다 옮기자면 원고지 일천오백매 가량 될것이요 이것으로 책을 만들자면 오백페이지가 될 것이다. 이것을 추리고 추려서 만든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엮은 부산진교회 김성여목사(원내 사진)의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은혜 받은 사람들의 […]

동아일보 사건(6) – 1960년 12월 10일

허위보도 정정요구에 응하지 않는데 분노, 수천 신도들 동아일보사에서 시위

생명물과 축복 사진에 대한 동아일보사의 거듭된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하여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시온대학생들과의 격론 끝에 동아일보사가 마침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는데 대하여는 합의하였으나, 사과와 해명의 형식을 놓고 양측은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1면에 정정기사와 함께 사과문을 발표해 달라는 시온대학생들의 주장과 광고란에 해명문(解明文)을 게재해 주겠다는 동아일보사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동안, 동아일보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신도들의 분노는 […]

동아일보 사건(6) 동아일보사건 당시 현장에서 부상당한 이범옥 권사 이야기

동아일보 사건(6) 동아일보사건 당시 현장에서 부상당한 이범옥 권사 이야기

동아일보사건 당시 현장에서 부상당한 이범옥 권사 이야기

1958년 1월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던 이범옥권사(사진, 73세. LA교회)도 1960년 12월 10일 동아일보사 앞에서 동아일보의 허위보도를 규탄하고 사과와 정정을 요구하는 시위 대열에 끼어 있었다.    “시온대학생학우회 회장과 여학생 회장이 앞에 섰던 것 같은데 도착해서 ‘동아일보는 허위보도 사과하고 정정하라’ 하고 구호를 외치다가 어느 순간 뒤에서 미는 힘에 밀려 얼떨결에 그냥 동아일보 건물 안으로 들어가 3층까지 올라갔습니다.   나는 […]

동아일보 사건(5) – 동아일보와의 대결

동아일보 사건(5) – 동아일보와의 대결

시온대학생들과 진지한 토론 끝에 동아일보 허위보도를 인정하고 사과

시온대학생회원들이 동아일보사를 방문하여 허위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한데 대하여 동아일보는 ‘진위(眞僞)의 대결 삼일간, 박장로 교도들과 본사와의 대결경위’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동아일보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의 감정적인 과장 보도였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기사정정을 강요하던 박장로교 광신도들이 본사를 찾아온 것은 지난 7일 낮부터이다. 그들은 소위 ‘축복’이라는 것이 ‘현실에 나타났고 우리는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해명과 정정을 요구했다. 회의실에서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4) 부산공설운동장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4) 부산공설운동장집회

부산 공설운동장집회 자리, 지금은 파란 잔디깔린 구덕운동장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6·25동란기간중 1950년 8월 18일부터 휴전하던 해인 1953년 8월 15일까지 임시수도였다.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이 모여들며 대거 정착하여 1955년 부산의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선다. 1955년 5월 12일부터 19일까지 안동의 낙동강변 백사장에서 가졌던 안동집회를 마치고 사흘 뒤인 23일부터 하나님은 부산공설운동장에서 네번째 천막집회를 여신다. 한 번 천막을 치고 걷는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어 한 번 집회를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4) 부산공설운동장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4) 부산공설운동장

지금 부산에는 부산 공설운동장이 없다. 다만 구덕운동장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거기가 바로 거기다.   지금의 자리는 1920년대에 조그만 동물원을 곁에 둔 넓은 빈터였는데 주민들이 모이는 일이 많았으며, 마을 체육대회 등의 장소로 사용하다가 1928년 9월에 부산공설운동장으로 건립되었다. 당시에 구 경남도청~부용동~공설운동장까지 전차 차로가 연장 운행되었다.   부산 공설운동장은 1940년 11월 23일 부산항일학생의거의 시발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며, 6·25동란때는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3) 안동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3) 안동집회

기성교회 본고장 강타한 안동집회... 그날의 백사장엔 낯선 찻길만

“영등포백사장집회에는 처음으로 마련된 조립식 천막으로 약 500평의 거대한 가건물이 형성되었는데 남산에 못지않은 은혜가 나려, 특기할 것은 일조(一朝)에 벙어리 10명이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집회가 끝난 후에 영등포 각 교회는 작은데가 2-30명 많은데는 5-60명이 증가되었다.   세번째 가진 안동집회는 초하(初夏)를 재촉하는 때이라 낮에는 뜨거워 설 수 없는 낙동강변 백사장에 위치하였다” 신앙신보는 1956년 5월 21일자 협회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3) 안동집회 이야기

신앙체험기 164편 권차남권사

제가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 커다란 천막 안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새벽예배 때 박 장로님께서 단에 나오셨는데 고개를 들어 박 장로님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흐르는 눈물은 예배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친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2) 영등포집회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2) 영등포집회

서울의 한복판 영등포 집회, 그 여의도 백사장엔 빌딩숲이

워낙 많은 사람이 모였던, 그래서 당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하나님의 남산집회에 이어 1955년의 두번째 천막집회인 영등포집회에 대한 기억을 찾아본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영등포집회라고 말하는 집회장소는 지금의 여의도다. 지금의 여의도는 우리나라 주요 방송사가 있고, 굵직한 기업체 및 정당, 그리고 국회가 자리잡고 있는 우리나라의 ‘맨하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나 1955년의 여의도는 허허벌판 넓은 백사장이었다.   집회가 열렸던 […]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2) 영등포집회-여의도 이야기

1955년 천막집회의 현장을 가다(2) 영등포집회-여의도 이야기

여의도는 원래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넓은 벌판이었으나, 1916년 9월 일제가 간이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비행기지로서의 여의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68년 개발 이전에는 65만여평의 비행장과 30만여평의 밭, 100만평 가량의 모래톱 등 모두 200만평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밤섬 옆으로 너비 200~300m의 한강이 흘렀고 비행장과 양말산 그리고 영등포 사이에는 너비 50m 정도의 낮은 샛강이 흘렀다.   45년 해방 직후 미 군정은 양말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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