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겉모양은 대결, 속마음은 경제

김근식 / 경남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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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김근식 / 경남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남북이 퇴로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정치군사 합의무효를 선언한 조평통 성명으로 북은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10.4 선언 이행을 요구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북한은 더 이상 남측에게 10.4 선언을 요구하지도 않을 태세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의연한 버티기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때가 되면 남북이 만나게 될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만 하고 있을 뿐이다. 서해에서의 충돌 가능성에 이어 급기야 북은 미사일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대로라면 당장이라도 군사적 대결과 충돌이 발생할 분위기이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조평통 성명이 발표된 그 시각 평양에 있었다. 남북관계 전면대결과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까지 기정사실화하며 호들갑이었지만 막상 평양의 분위기는 평온했다.

무엇보다 평양은 3년 앞으로 다가온 ‘강성대국’ 건설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노심초사 경제건설에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20년 가까이 방치되었던 류경 호텔에 공사용 크레인이 움직이는 것은 평양의 바쁜 분위기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호텔의 한쪽 면은 유리가 거의 채워지고 있었다. 한겨울에도 보통강의 준설작업을 위해 평양 인민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퍼올려진 흙은 거름으로 쓴다고 설명했다. 고려호텔 로비에서는 오랜 만에 손전화(핸드폰)가 다시 보이기도 했다. ‘경제강국 총공격전’이라는 시내 곳곳의 구호들은 지금 평양의 최대관심이 경제임을 짐작하게 했다.

경제 우선에도 불구하고 남쪽에 대한 불만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민경련 관계자는 군부의 반대로 육로 이용이 절대 불가함을 강조했다. 지원을 위해 북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요지부동이었다. 북의 선지원 요구를 대북지원의 조건으로 내걸은 남측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비쳐졌다. 장기 경색중인 남북관계의 냉랭함과 당국간 대결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남측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 여전히 북은 절실하고 절박한 모습이었다. 정치군사적 대결과 당국간 대화 중단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은 여전히 필요할 뿐 아니라 오히려 확대해달라는 입장이었다. ‘남북나눔’이 제안한 모내기용 비닐박막 제공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결국은 합의서가 도출되었다. 정치군사적 합의사항이 무효임을 선언한 그 시각에 평양에서는 대북지원을 위한 새로운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강국 건설에 대한 절박함과 남북경협의 절실함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금의 국면은 분명 남북관계의 위기상황이다. 남과 북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의 굴복을 요구하며 대결하고 있다. 그러나 북의 단호함과 강경함의 이면에는 바로 경제건설을 위한 남북경협이 중단되고 있음에 대한 불만이 녹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과의 기싸움에 매몰되기보다는 경제협력의 물꼬를 통해 관계 복원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나는 평양에서 겉으로는 남북 전면 대결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경협을 기다리는 북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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